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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3.30 말씀을 삶으로 증명하라
  2. 2019.03.19 주님과 동행하는 삶​
  3. 2019.03.03 왜 예수인가?

성경 말씀은 삶으로
순종하는 자만이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당대 과학적인 인본주의자였던
사두개인들과의 논쟁을 하신 것에서
이 사실이 잘 드러납니다.

사두개인들은 아이를 낳지 못하고
과부가 된 여인이 남편의 대를 잇기 위해
남편의 형제와 혼인하는 문제에 대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마 22:23~33)

이는 실제로 있었던 일이 아니라,
가정에 근거한 질문이었습니다.

이들은 실제 삶에 존재하지 않는,
가정에 근거해서
부활을 부정하고자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에 대해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다”고 일갈하십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이심을
설명하셨는데,

예수님께서
이 설명을 하실 때의 근거구절은
유대인이라면 다 알 수밖에 없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다만 사두개인들은
이 익숙한 말씀을 삶에
적용한다는 생각을 못했으나,

예수님은 매일의 삶을
말씀에 근거하여 살고 계셨기 때문에
이를 통해 진리를
꿰뚫고 계셨던 것입니다.

사두개인들은
성경을 피상적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이유는 바로 삶으로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경을 삶으로
순종한다는 것은
단지 의식(ritual)으로서의
예배를 잘 드리고,
종교적 의무를 다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바치는 등
그 세부사항을 지키는 데
열을 올릴 것이 아니라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을 저버리지
않아야 한다고 말씀했습니다.

또 관습적인 행동을 지키는 것을
순종으로 볼 수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식사 전에
손을 씻는 관습을 어겼다고
제자들을 비난하는 바리새인들에 대해
그들의 외식을 꾸짖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결국 이런 지식에만 머물러 있거나,
의식에 참여하는 것으로 만족하거나,
종교적인 관습이 곧 신앙이라고
생각하는 태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제자훈련과
소그룹의 특징에 대해서
여러 가지 설명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설명은 바로
“말씀을 삶으로 증명하도록
만드는 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말씀에 대한 지식을
 갖추는 것만을 목적으로 한다면,
소그룹은 설교나 강의에
비해 비효율적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확인하려고만 한다면
예배 의식에
참여하기만 해도 됩니다.

우리가 제자훈련을 하고,
소그룹 사역을 하는 이유는
말씀을 지식으로서
아는 차원에서
삶으로 살아내는 차원으로
옮기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소그룹은
말씀을 정기적으로 듣고는 있지만
체계적으로 정리되지 않은 사람들,
말씀을 지식으로만 알던 사람들,
알지만 실천하기 거부하던 사람들로
하여금 말씀을 제대로 알고 순종하며
실천하도록 변화시키기 위한 장입니다.

매주 주일 예배에
참석하는 성도라 하더라도,
파편화된 성경지식,
의식으로서의 예배,
일상에서의
순종을 요구받지도,
 피드백을 받지도
못하는 삶을 살다보면

성경이 그들의
인생의 교과서라는 말은
아무 의미도 없는
구호에 지나지 않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성경의 정신이
그 사고를 형성하고,
성경의 훈계와 경험이
그 마음에 새겨져 자연스럽고
적절하게 삶에서 드러나야겠지만,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성도를
찾아보기는 그리 쉽지 않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가르쳐
그 삶을 살도록
도전할 뿐 아니라,
그런 삶을 살았는지
피드백을 하는 곳이 필요합니다.

소그룹에서는
성경을 가르칠 뿐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순종해야
할지를 나누고,
또 전 모임에서
나누었던 바를 실천했는지를
이야기하여 지시와
피드백이 계속 반복됩니다.

이를 통해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삶을 예수님께서
사셨던 원리에 맞춰가게 되고,
말씀이 삶의 원리가 되며
삶은 성경의 증거가 되는 생활을
영위하게 됩니다

출처:로버트 콜만의
"주님의 마음"중에서
 [국제제자훈련원]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아래는 베스트 셀러였던
 "주님과 동행하십니까"
(후안 카를로스)의 글입니다. 

하늘에는 지구상에 살았던
 모든 사람들의
신상명세서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식으로
그것을 기록하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기록되던
당시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계산하셔야 할 갖가지 것들을 
모두 책에 기록하고 계시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저의 신상명세서 첫 장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을 것입니다. 
"후안 까를로스...
머리카락은 6,276개..."
 이런 식으로 모든 것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저에 대하여는
더 이상 물을 것이 없습니다.

두 번째 페이지에는 
하나님의 모든 법들,
특히 십계명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다음 페이지부터는 
제가 각 계명을 범할 때마다
표시를 해 놓을 수 있는 칸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저의 신상명세서는
  상당히 두껍습니다. 

맨 마지막 페이지는
차용증서입니다.
"후안 까를로스는
제 1계명을 8,322회 
범했으며, 제 2계명을
5,456회 범했고,
제 3계명은..., 제 4계명은..., 
그러므로 후안 까를로스는
곧장 지옥으로 가야 한다." 

그런데 제가
주님과 함께 죽었기 때문에
주님은 저의 신상명세서를 
꺼내드셨습니다.
그리고 커다란 스탬프 도장에
자신의 피를 듬뿍 묻히시더니 
매 페이지마다
"폐기됨"이라고 찍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쓰레기는 
하늘나라에 두실 수 없기 때문에
영원히 버리셨습니다. 
주님은 저의 신상명세서를
십자가에 못박아 버리셨습니다. 

누근든지 후안 까를로스의
신상명세서를 보고 싶으면
자기자신의 십자가를 
넘어가야 하는데
그것은 이미 영원히
지워진 사건입니다.

이제 우리는 
갚지 못할, 감당못할 빚을
지은 존재들이 아닙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주님과 함께 우리
자신의 완전한 평화를 누리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눅 14:27)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저는 마흔 일곱 살이
되어서야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성경을 보는데
예수님이 제자들을 만나서
​“나를 따르라”라고
한마디 하시는 것입니다.

‘도대체 이분은 왜 멀쩡하게
 어부 생활 잘하는 이 사람들을
찾아와서 자기를 따르라고 하는가?

자기를 따르면
이들의 인생을
책임지겠다는 건가?’
싶었습니다.

나는 예수님이 당시에
보잘것없는 사람들을 제자로
부르시는 것에 완전히 매료되었습니다.

당시 랍비들한테는
문하생이 따라다녔는데
가말리엘이나 힐렐과 같은
유명한 랍비들의
문하생이 되는 것은
요즘 아이비리그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려웠습니다.

열세 살까지 모세오경이라
부르는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통째로 외워야 겨우
입학 자격이 주어졌습니다.

그러고도 그들 중에서
다시 추려서 문하생을 뽑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인생에 단 한 번이라도
랍비의 문하생이
될 생각도 없었고
또 손톱만큼도 그럴 자격이
없는 사람들을 부르셨습니다.

혹시라도 제자 삼아
달라고 찾아오면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단번에 거절해야 할 사람들을
예수님은 직접 찾아가서
“나를 따르라”하신 것입니다.

나는 이 장면에서
숨이 턱 막혔습니다.

‘신이 인간을 찾아간다.’

인간과 깊은 관계를
맺기 원하는
신이 인간을 먼저
찾아간다는 사실을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내가 애써 찾지 않아도
찾아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신을 찾을 능력도 없습니다.

우리가 볼 수 없는 존재는
먼저 우리에게 다가와야 합니다.

신이 유명한 랍비들처럼
많은 문하생 후보생들 중에서
제일 똑똑한 놈을 골라서
제자 삼는다면
나 같은 사람은 아무리
찾아가도 그를 따를 수 없습니다.

그분이 내게 와서
“나를 따르라”라고 해야
나 같은 사람
도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조정민 목사
​ <왜 예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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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