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 리더 :: '함께' 태그의 글 목록

부모를 잃어버린 미아나
 버려진 아이들은 공격적이라고 한다.
자기 보호본능에서
다른 사람들을 적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반면 엄마의 품에 있는
아이들은 상대적으로 많은 여유가 있다. 

한국 사람들은 세상에서
 제일 바쁜 사람처럼 보인다.
“바쁘다 바빠”가 몸에 배어 있다.
그래서인지 삶의 여유가 없어 보인다.

여유가 없으면 사람은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그래서 삶 속에서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며 화를 잘 낸다. 

성경에 보면 다윗은 참으로
여유로운 사람이란 걸 알 수 있다.

 그는 모든 어려움을
반드시 복되게 만들었다.
그래서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고 말했다.

그는 원수 사울왕이 죽자
슬퍼하며 진정으로 애도했다.
다윗은 목동에서 왕이 되기까지
수많은 적대자들이 있었지만
한번도 그들을 비난하거나
복수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마침내
적들까지도 그를 따르게 되었다. 

다윗의 이런 여유는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그는 늘 부모보다도
크고 안전한
하나님의 품 안에서 살았다.

그래서 그는 노래한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물론 우리의 생활은
 말할 수 없이 바쁘고 쫓기는 생활이다.
그러나 충분히 여유를 갖고 살 수도 있다.

그 여유는 바로 주님께서
나와 함께하고 계심을
믿는 믿음 안에 있다. 

출처:최승일 목사
(서울 상도교회)  
[국민일보/겨자씨]

'풍경이 있는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맙습니다. 성령님  (0) 2019.04.06
야곱의 고난  (0) 2019.04.06
고난의 파도를 타라.  (0) 2019.04.06
절망을 기쁨으로 노래한 시인  (0) 2019.04.06
하나님만 의뢰합니다   (0) 2019.04.05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잠이 깨어 있는 동안 내내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다가,
​주의 품에서 잠들고,
주님의 임재 속에서 깰 수는 없을까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사이에
필리핀에서 선교사로 사역한
프랭크 루박(Frank C.Laubach)라는
미국 출신의 선교사가 그의 책
“프랭크 루박의 편지”에서 한 말입니다.

​그는 이 질문대로 살았던 사람이었고
이 책은 현대판 로렌스 형제의 ‘
​하나님의 임재연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대는 다르지만 날마다의
일상 생활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며
그 은혜를 지속했는지, 절망과
슬픔과 때론 육신의 고통속에서도
어떻게 하나님의 임재를 놓치지 않고
주님과 동행할 수 있는지를 이 책은 보여줍니다.

​그는 이 책에서 민다나오 섬의
 이슬람교도들인 모로족과의 힘든 생활중에
하나님의 임재를 풍성히 경험하고
하나님을 만난 일들과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것들에 관하여 일기 형식으로 기록했습니다.

 플랭크 루박은
미국 우표에 그의 얼굴이
나올 정도로 미국사회에서는
크게 존경받는 인물입니다.
필리핀선교사로서 문맹퇴치
음절도표를 창안했고
국제적인 문맹퇴치 활동으로
큰 영향을 끼친 사람입니다.

그는 선교사로
헌신하여 사역하면서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었지만
실제로 삶 속에서 주님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고민하고 기도한 끝에
마흔다섯이 되었을 때에
24시간 예수님을 바라보는 삶을
살아보겠다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그러한 결심을
실천하는 방법으로 날마다
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매일 예수님을 생각하고
살았는지를 일기로 기록했습니다. 
​의식이 깨어있는 동안 계속해서
주님을 생각하지 않고 살아왔기 때문에
처음에는 그런 일기를
쓰기가 대단히 어려웠습니다.

​처음에는 주님을 생각하며
산다는 것 자체가 매우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몇달이 지나자
주님이 함께 계심을 느끼게 되고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가 변한 것은 주님을 계속 생각하고
일기를 쓴 것뿐이었는데 사람들은
루박선교사가 변했다고 말하기 시작합니다.
​점점 본인 자신도 변한 것을 알게 되고
6개월이 지났을 때 주님이
더 이상 낯선 분이 아니며
주님이 온전히 자신에
안에 계심을 고백합니다.

프랭크 루박은 그의 책에서
“나는 깨어 있는 동안은 쉬지 않고
‘아버지 하나님,
​제가 무슨 말을 하기를 원하십니까?
​지금 이 순간 어떻게 행하기를
원하십니까?’라는 질문을 하며,
마음 속에서 들리는 세미한 음성에
계속 귀를 기울였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예수님이 온종일
행하신 일이었습니다.” 라고 고백합니다.
새벽기도회나 기도시간 등 특별히 구별하여
주님께 드리는 시간외에도,
​아침에 말씀을 묵상거나 함께 찬양드리고
예배드릴 때뿐만 아니라 일상속에서
종일토록 24시간 주님의 임재속에서
주님과 동행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생각만이 아니라 실제로
예수님의 생명으로
온전히 지배를 받으며 그분이
내 안에 사시는 것을 날마다 체험하며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과연 이러한 삶이 가능할까요?
​루박선교사님처럼 24시간 주님의
얼굴을 구하는 삶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는
임마누엘의 그 약속이 실제가 되도록
날마다 순간마다 하나님 자신을
구하며 여러분도
24시간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에
도전해 보시길 바랍니다.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시 27:4)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리차드 범브란트 목사님이
1948년 루마니아 비밀경찰에 의하여
투옥되어 20년 가까이를 옥살이를 할 때,
공산 당국은 그의 신앙을 버리게 하려고
온갖 고문과 핍박을 하였습니다.

그가 옥에 갇힌지 수년
동안 일절 면회조차 없다가
 한번은 감옥에서 방송을 하기를
가족 면회를 허락하니 집에다가
엽서를 보내라고 했습니다.

면회가 예정된 날, 면도를 하고
지급된 새 내복도 입고
마음이 들떴는데,
 범브란트 목사님에게만
아무도 면회를 안오는 것입니다.

자신의 엽서가 아내의 손에 들어가지도
 못했음을 알 수 없는 이 분이
혼자 남아 있는데, 방송이 나왔습니다.
 "아무도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
이제는 아무도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는데
나중에는 흐느끼며 울었습니다.
몇 년을 한번도 아내도
아이들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이 날은 만날 수 있으리라
어린아이처럼 들떴었는데,
아무도 나를 찾으러 오지 않다니!
방송에서 나오는
"그들은 더 이상 네게 관심이 없다" 는
 말을 부인하다가 나중에는
 몸부림을 쳤습니다.

다음 날 동료들이
돌아 왔습니다.
아내를 만난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을 비웃습니다.
더러운 말을 합니다.

그때 방송이 다시 나옵니다.
  "하나님은 죽었다. 하나님은 안 계신다"
그런데 그 말들이 믿어지기
시작함을 느꼈습니다.
'내가 지난 몇 년 동안 어떻게 믿을 지켰는데,
하나님 이게 뭡니까?'

그런데 그 순간 성경에
나오는 배교의 때가
이를 것이라는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예수님께서 무덤에 묻히셨던 때
여인들을 생각했습니다.

그 여인들도 나처럼
이렇게 절망스러웠겠지!
 그러나 ‘그들은 울면서도
예수님의 무덤을 떠나지 않았다!’ 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그 시간 범브란트 목사님은
자신을 하나님께 다 드렸습니다.
이유를 알 수없는 환란과 혼돈 속에서
자신의 모든 판단까지
하나님께 다 드렸습니다.

“하나님 나는 그냥 울 것입니다.
무덤 곁에서 울던 여인들처럼!” 
결국 그는 믿음을 지켰고,
석방의 날이 왔으며,
루마니아에 다시 기독교
부흥의 때가 왔습니다.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이 믿어지면
우리는 어떤 형편에서도 힘을 얻게 됩니다.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히 13:5 ) 

'풍경이 있는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수님이 내 인생을 연주하시면  (0) 2019.03.15
하나님과의 약속  (0) 2019.03.15
빛이 필요한 곳  (0) 2019.03.15
내가 여기 서 있는 것은  (0) 2019.03.15
하나님처럼 하라  (0) 2019.03.14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어느 날 이미 서너 번
가출을 했던 샤론이가
또 가출을 하려고
짐을 싸고 있었다.

집을 나가려는 샤론이를
막을 방법이 없었다.

그때 “나처럼 하라”는
음성이 들리는 듯했다.

‘하나님처럼 하라고?’

순간 하나님은
늘 우리와 함께하면서
징계하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샤론이가 집을 나가자
나도 따라나섰다.

그리고 몇 미터 뒤에서
조용히 따라갔다.

의지를 꺾지 않고
가출을 허락해 주었지만 
아빠는 너를 떠나지도 버리지도
않을 거라는 의지를 보여 주고 싶었다.

샤론이는
화가 난 듯 걸음을 재촉했다.

논길을 지나 버스 정류장에
다다랐을 무렵 
내가 따라온 것을 눈치 챈
샤론이는 버스를 그냥 지나쳐 보냈다.

그러더니 갑자기
택시를 잡아 올라탔다.

나 역시
그 택시의 앞자리에 탔다.

샤론이는 나를 향해
영어로 소리를 질렀고,
택시 기사는 깜짝 놀라
어쩔 줄 몰라 했다.

“내가 얘 아빱니다.

그냥 얘가 가자는
대로 가 주세요.”

샤론이는
수원 버스터미널에
내려서 버스표를 샀다.

나도 같은 곳으로
가는 표를 샀다.

샤론이는
가만히 앉아 있었다.

아무 말 없이….
그렇게 밤 11시가 되었다.

샤론이가
무슨 결심을 한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터미널을
나와 걷기 시작했다.

터미널부터 집까지
그렇게 걸어왔다.

나도 샤론이를
따라 걸었다.

걸으면서 기도했다.

딸을
사랑하게 해달라고
계속 기도할 뿐이었다.

아이가 당하는 아픔을
부모가 함께 겪는다면,
그것은 축복이다.

아이를 통해서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끝까지 추적하신다.

끝까지 버리지 않으시고,
우리와 함께해 주신다.

이미 아들이 겪은
아픔과 고통의 순간에
늘 함께하셨던 분이기에 가능하다.

출처:김요셉의
"삶으로 배우는 것만 남는다"
중에서​ 

'풍경이 있는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빛이 필요한 곳  (0) 2019.03.15
내가 여기 서 있는 것은  (0) 2019.03.15
양의 가치  (0) 2019.03.14
위대한 발견  (0) 2019.03.14
하나님은 제게 지금 무엇을 원하십니까?  (0) 2019.03.13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로렌스 형제는
17세기 프랑스 사람으로
 전쟁에 나가 다리를 다친 후
가르멜 수도원,

그곳에서도 남의 눈에
뜨이지 않는 주방에서
30년 동안 요리사로 봉사하며

냄비와 팬을 닦는 것 말고는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일을
거의 하지 않았던 수사입니다.

로렌스 형제가
원했던 것은
오직 하나였습니다.

임마누엘이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알고
사랑하는 것이었으며,

어떤 일이든
자신이 하는 일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훈련하는 데
온 힘을 다 하는 것입니다.

로렌스 형제는
책 한 권 쓰지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어떻게 하나님의 임재하심에
그렇게 민감할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수도원 안에서도
로렌스 형제는
낮은 지위의 수사였고,
특별한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닌 것처럼 보였지만

현재, 많은 사람이
로렌스 형제를 알고,
그의 행한 일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반면 로렌스 형제의
윗 사람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혹 그 윗 사람의 윗 사람의
이름을 아는 사람도 거의 없습니다.

우리에게 무엇 보다
중요한 것은
주님과의 인격적이고
친밀한 관계입니다.
이것을 깨닫는 사람만이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게 됩니다.

에녹은 성경에
아주 짧게 기록되어 있고,
​그의 삶에 대한 세세한
기록조차 없는 사람이지만

성경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아주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가장 유명한 성경인물
중의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죽지 않은
사람이었다는 것과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
이었다는데 있습니다.

“동행”이란 말의 의미는
영어성경(KJV)에는
​“함께 걷는다”
로 해석이 되어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함께
그의 인생의 길을
걸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지금 어느 곳에서
어떤 형편 가운데 있든지
오직 주님과 친밀히
동행하는 일에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 창 5 : 24 )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때늦은 후회

소소한 일상 2019. 3. 10. 02:52

18세기 영국의 시인이자
평론가인 사무엘 존슨이
무더운 여름날 장터
한쪽에서 몇 시간을
 서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인사를 하거나
 말을 걸어도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서서 눈물만
흘리고 있었습니다.

반나절이 지나자
걱정이 된 제자가
스승의 낯선 행동에
대한 이유를 물었습니다.

“스승님,
무슨 일이 있으셨나요?”

그러자 사무엘 존슨이
대답했습니다.

“사실은 오래전 우리 아버지께서
이 자리에서 헌책방을 하셨다네…

그날도 아버지는 장사를 위해
일어나셨지만, 몸이 안 좋으셨는지
나에게 하루만 대신 장사를
해줄 수 있느냐고 물으셨었지.”

제자는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그래서 스승님은
뭐라고 대답하셨나요?”

사무엘 존슨은 한참
지나서 다시 말했습니다.

“우리 집이 시장에서
 헌책방을 운영하는 것도 창피한데
내가 어떻게
그런 일을 하냐면서 거절했다네.

그런데 너무 무리했던 탓인지
아버지는 그날 이후 몸이 약해져서
시름시름 앓다가 돌아가시고 말았다네.

오늘은 그때의
기억이 지워지지 않아
이 자리를 떠날 수가 없다네.”

몇 해 전, 모 금융회사
 CF가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젊은 아빠들을 대상으로
몰래카메라를 실시했는데
아이와 하루에
 얼마나 시간을 함께 보내는지,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은 뭐고,
아이의 사진은 지갑에 넣고
 다니는지 등등에 관해 물었습니다.

대부분 아빠는
자신 있게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반대로 물었습니다.

아이 대신 그 자리에
‘부모님’을
넣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부모님과 하루에 얼마나
시간을 함께 보내는지,
부모님의 좋아하는
 음식은 뭐고,
부모님 사진은
지갑에 넣고 다니는지를요.

그러자 젊은 아빠들은
죄송한 마음에
일제히 눈물을 흘렸습니다.

앞으로 부모님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요?

우린 항상 부모님이
늙지 않고 곁에 있을 거로만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곁을 떠나셨을 때
뒤늦은 후회를 합니다.

시간은 항상
멈춰 있는 게 아닙니다.

# 오늘의 명언
수천의 생을 반복한다 해도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만난다는 것은
 드문 일이다.
지금 후회 없이 사랑하라.
사랑할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 샨티데바 –

출처:따뜻한 하루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어느 날 밤
한 사람이
꿈을 꾸었습니다.
 
그는 꿈속에서
주님과
함께 해변을
걷고 있었습니다.
 
모래 위에는
두 사람의
발자국이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는
그의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주님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삶의 마지막
장면이 비쳐졌을 때
하나의 발자국만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그때가
가장 어렵고
슬픈 시기들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물었습니다.
 

"주님, 제가 당신을
따르기로 결심하면
저와 동행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가장
힘들었던 순간에
한 사람의 발자국밖에
없음이 어찌된 일입니까?
 
제가 주님을
가장 필요로 할 때
왜 떠나셨는지
이해할 수 가 없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나의 소중한 자야,
나는 너를 사랑한단다.
 
나는 결코 너를
떠난 적이 없었다.
 
네가 고통과
환난 가운데 있을 때
한 사람의 발자국을 본 것은
내가 너를 업고 갔기 때문이다." 


주님 나와 함께 하시겠노라
약속해놓고 내가 정작
어려울 때는 어디 계셨습니까?

내가 아플 때 힘들 때 갈등으로
괴로워 할 때 당신은
어디서 뭐하고 계셨단 말입니까?

이렇게 항의하는
우리에게 주님은
조용히 다가와
내 어깨에 손을 얹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주저 앉아 있을 때,
일으켜 세워도 다시 무너질 때
차마 너를 두고 그냥 갈수 없어
너를 업고 걸었단다’

네가 회복되어
이제는 안심하고
같이 걷다가
조금만 손을 놓으면
다시 다리가 비틀 거릴 때
나는 어리지도 않은
너를 업고 다시 걷곤 했단다.

 내가 혼자
버려진 것 같은
외로운 순간에도
주님은 내 곁에 계십니다.

내 손을
붇잡고 걸으시며
내가 힘든 때
나를 업고 걸으시는
진정한 친구이십니다.

고난의 때가
힘들기 때문에
길게 느껴지지만
 우리 인생에 항상
고난만 있지는 않습니다.

지금 고난의 계절을
보내는 분들이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시고
무덤에 묻히신 후에야
부활의 아침을 맞이하신
주님을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주님은
우리를 절대로
그냥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언젠가 돌아보면 거기
두 쌍의 발자국이
있거나 아니면
더 움푹 패인 한 쌍의
발자국이 있을 것입니다.

'풍경이 있는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나님 제게는 손가락이 세 개나 있습니다  (0) 2019.03.07
시인 미즈노 겐조의 감사  (0) 2019.03.06
하나님은 아십니다.  (0) 2019.03.05
짊어짐  (0) 2019.03.05
독수리의 비상  (0) 2019.03.05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역사와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거룩하신 하나님아버지.
우리민족의 고유명절인
 설날을 맞이하여

사랑하는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주님께 예배드리는
우리 가족들을 통하여
거룩히 여김 받으시옵소서.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가정과 가족들을
통하여 섬기는 교회와
우리나라에
이루어 지기를 기도하오니,

우리의 심령과 가정과
교회와 우리나라에
의와 평강과 희락이
항상 샘솟게 하옵시고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 진것 같이
  우리 각자의 심령과 가정과
우리나라를  통하여
이 땅에서
이루어 지기를 기도합니다.

지난 한해도
주님의 돌보심 가운데
지금까지 지켜 주시고
 인도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영적으로 육적으로
여러 가지 일들을
경험하여 깨닫게 하시고,

하나님이
함께 하여 주셔서
 이 아침 예배할 수 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새해에는 하나님이
준비하여 놓으신 찬란한
새 아침과 새로운 세계를
맞게 하시옵소서.

우리와 함께 하셔서
악을 멀리하고 선을 행하며
승리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수 많은 사고와
재난의 소식이 들려오는 가운데,
우리들이 살아 숨 쉬는 것이
주님의 은혜임을 깨닫습니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여러 가지 가슴
아푼 사건 사고를 접하며
상처받은 우리들의 심령을 
품어 주시며 말씀으로
치유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묵상과 기도와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세계적인 경제불황 속에서
우리 가정을 지켜주시고
축복하심을 감사합니다.

항상 주님의 동행하심과
인도하심을 감사하며
살게하옵소서.

우리 심령이
부흥하게 하시고
 우리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
되게 하시고,

각자 섬기는 교회가 날로
부흥 성장하며 기쁨과 희락이
 샘솟는 행복한 교회되게 하옵소서.
 
하나님!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합니다.

우리에게 말로
상처를 주고 힘들게 했던
 사람과 여러가지 사건으로
 우리를 분노케 했던
사람들을 용서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용서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축복하오니
그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복 받는 사람들이
되게 하시옵소서.

하나님!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해 준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우리 또한 다른 사람에게
아무렇지 않게
상처 주는 일들을
하였음을 고백합니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우리가
시험에 들지않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물질로 건강으로
사람들로부터
시험에 들지 않게 하옵소서.

금년에도
주님의 한 없는 은혜로
 저희들의 심령과 가정과
교회와 나라를 지켜주시옵소서.

추위와 굶주림과
압제에 심음하는
저 북한 동포들을
불상히 여겨 주옵소서.

저들이
주님의 은혜로
하루속히 압제와
굶주림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히
하나님 아버지께 있사오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 멘

'기도문 > 절기 예배 기도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설날 가정 예배 기도문 (3)  (0) 2019.02.27
설날 예배 기도문 (2)  (0) 2019.02.27
사순절 예배 기도문 (3)  (0) 2019.02.27
사순절 예배 기도문 (2)  (0) 2019.02.27
사순절 예배 기도문 (1)  (0) 2019.02.27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