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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케냐의
마사이 족을 방문했는데
그곳에서 선교하는
안찬호 선교사님이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목사님! 이곳에 오면
꼭 거쳐 가는 코스가 있습니다.

​원주민들이 사는 곳에서
하룻밤을 묵어야 합니다.”

나는 선교학을 공부하고
문화인류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호기심도 있었고,
‘목사로서
그 정도도 못하겠는가’라는
생각을 하고 흔쾌히 허락했다.

그리고 어느 집에서
잠을 자게 되었다.

​집에 들어 가자마자
느껴진 것은 메케한 냄새였다.

​그 집은
소똥으로 지어 졌는데,
안은 소똥을 태워 온기를
느끼도록 되어 있었다.

​깔 것이나
덮을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
나무 바닥에 누워
잠을 청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뭔가 스멀스멀
몸에 기어 다니는 것 같아
좀처럼 잠들 수가 없었다.

아침에 일어난 나는
내 몸을 보고 깜짝 놀랐다.

가려워 긁었던 곳마다
빈대와 벌레들이 터져서
죽어 있었고,
​하얀 셔츠는
피로 물들어 있었다.

​한국에 도착한 후로도
1주일 동안이나 온몸이
가려워 고생을 했던 기억이 있다.

나는 그때 구한말
한국에 왔던 선교사들을
생각해 보았다.

​우리나라에
 들어와 선교하며
평생을 함께한 미국과
캐나다 선교사들은
얼마나 견디기 힘들었을까?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마음으로
이 땅 조선을 바라보지 않았다면
이 땅에 복음이 들어올 수 있었을까?

​온갖 멸시를 받으며,
​조롱을 받으며,
 생명의 위협을 당하는
순간들을 어떻게 견딜 수 있었을까?

​우리는 조그만 모욕도,
 불이익도 참지 못하는데 말이다.

​그리고 결론 내렸다.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을 말이다.

 출처:김병삼목사의
<하나님을 눈물나게 하는 이야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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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큰 아들은 고1을 자퇴하고
외국에 선교사로 갔다.

친척 집도 혼자
안 가본 아이가
가족과 떨어졌다.

 몇 달이 지나서
아이가 보고 싶기도 하고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던 차에
그곳에서 함께 사역하는
선교사 한 분이 잠깐 귀국을 했길래

 “우리 아이,
잘 하고 있느냐?”
물었더니
“잘 하고 있다.

 너무 잘해서 탈이다”라고
대답했다.

너무 잘해서 탈이라니,
 칭찬을 한다고 한 말이
오히려 내 마음을 건드렸다.

 그게 무슨 의미냐고
다시 물으니 나이에 비해
너무 잘 해서 하는 칭찬이라고
하였다.

고작 고1을 마친
나이가 아닌가.
그런데 어떨 때는
말수가 적어지고
 너무 우울해 보여서
왜 그러는지
어렵게 하는 말을 들어보니

그 나이에 얼마든지
실수할 수 있는데
실수를 하고 나서
그런 자신을 용납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자격도 안 되는
어린 자기를
선교사로 보내주신
하나님을 실망시키고,
누구보다 자기를 믿어주는
아버지의 기대를 실망시킨
자신이 용서가 안 되어
어렵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가
내 마음에 부담으로 박혔다
'아, 이 자식이 오해하네?
 부모 떠난 외국 생활에
대강대강 살기에도 벅찰 텐데..

집이 그립고
부모가 보고 싶을 텐데,
이런 식으로
신경을 쓰기 시작하면
도대체
어떻게 감당하려고 이러나….

 내가 언제 그런 정도의
수준을 요구한 적이 있나?

이런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너무 안쓰럽고
안타까웠다.

보고 싶기도 하고
아들의 오해도 풀어주고 싶어서
나는 그날 밤 비행기를 타고
아들에게 날아갔다.

아들을 만나서
바닷가를 거닐며 말했다.

 “김충성,
내가 너한테 이 이야기를
꼭 해주고 싶어서 왔다.

 잘 기억해둬야 해.
네가 성공했을 때,
정말 떳떳하고 자랑스럽고
멋지게 일을 해내고 성공했을 때,

 너 똑바로 들어둬.
 너는 분명히 내 아들이야.
알겠나?
너무 당연한
이야기를 분위기 잡고 하니까
아들이 피식 웃으면서
“그렇죠. 아들이죠”라고
말했다.

 말없이 조금 더 걷다가
“아직 내 말이 안 끝났어.
네가 알아야 할 게
한 가지 더 있어.
네가 성공했을 때
그때 분명히 내 아들인 게
사실인데,

만약에 네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네가 너 자신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을 만큼
실패했거나 죄를 지었거나
돌이킬 수 없는
 비참한 지경에 떨어졌거나
기가 막힌 실패를 경험했을 때.

 너 똑똑히 들어둬.
그때는 더욱
내 아들이야! 알겠나?
... 간다!

그 후 비행기가
아들이 있는 섬을 선회하고
본궤도에 올랐을 때,
 더 이상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그때.
갑자기 내가 아들에게 했던
그 말을 주님이
내게 거꾸로 들려주시기 시작했다.

야, 김용의.
 내가 너한테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

네가 성공했을 때,
잘 나갈 때 그때
너는 분명 내 아들이다. 

 그런데 네가
죽어라고 애를 썼지만 
 초라한 텅 빈 바구니만
덜렁 들고 있을 때.

네가
너 스스로 용납이 안 돼
도저히 용서할 수 없을 때.
네가 돌이킬 수 없는
실패자로 형편없이 처박혔을 때.
그때 너 똑똑히 기억해둬라.

  그때는 더욱 내 아들이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사 43:1)

주님이 지금
우리에게 동일하게 말씀하신다
사랑하는 내 아들아,
그리고 사랑하는 내 딸아.
네가 자랑스럽고
떳떳하고 의기양양하고 성공했을 때,
그때 분명
너는 내 아들이며 내 딸이지.

 그러나 사랑하는 내 아들아,
 그리고 딸아,
네가 애를 쓴다고 죽어라고
달려왔는데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는
텅 빈 바구니를 들고
초라하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서 있을 때
못 견디게
네가 너를 용서할 수 없을 때,

자책감으로
고개를 들 수 없을 때,
  도저히 회복이 불가능해 보이는
치명적인 죄 가운데 엎드러졌을 때.
 아무도 네 곁에 남지 않고
환멸을 느끼며 다 떠나가 너 혼자일 때,
기억해라. 반드시 기억해라.
그때는 더욱 내 사랑하는 아들이며
그때는 더욱 내 사랑하는 딸이다.

 나는 한 번도
너를 향한 나의 꿈을
접어본 적이 없고
한 번도 너를 향한
나의 사랑의 손길을 멈춘 적이 없다.

 출처:김용의 선교사의
"복음을 영화롭게 하라"중에서
[규장출판사]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1988년 국내에서
최초로 우렁이 양식에
 성공한 안용준
대표의 이야기입니다.

 일본의 양식 법을
국내에 맞게
적용한 안 대표는
국내 농가들의
수익증대를
위해 종패를
분양하려고 했습니다.

사업은
때마침 방송과
언론에서 우렁이
양식 사업이
수익성과 미래성까지
부각시켜줘
 안 대표의 양식장은
수많은 농가와
 종패 분양 계약을 미리
체결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분양일이
다가오는 도중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졌습니다.

양식장의
지하수가
아무 이유 없이
단수된 것입니다.

우렁이 양식의
생명인 물이
나오지 않게 되자
 안 대표는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잘 나가지도 않던
교회의 목사님에게
전화를 걸어
기도를 부탁하러
찾아가기 시작했고
입에선
 “하나님, 제발
도와주세요.”
소리가 계속해서
나왔습니다.

안대표는 목사님과
함께 기도를 드린 후에
양식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도착을 하자마자
 기적과도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양식장 밑에 있던
지하수가 갑자기
 폭포수처럼 터져
올라오는 것이었습니다.

안 대표는
벼랑 끝에서
건져주시는
하나님을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이후
백 여 농가에
종패 분양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바로 교회에 나가
침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안 대표는 이후
자신의 경영 철학을
‘사랑과 나눔,
고객에 대한 섬김’으로
정했습니다.

하나님을 잘은
몰랐지만
 도와주실 것이라고
믿었던
안 대표의 믿음과
절박함을 주님을
들어주셨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기억하십시오.

그 사랑의 보답을
생활로, 가정으로,
직장으로 확장시켜
나가십시오.

주님!
당신의 의심 없이
당신의 말씀을 따라
살게 하소서!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지 마십시오. 
 
출처:김장환 큐티365
[나침반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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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오 헨리라는 필명으로
유명한 작가 윌리엄 시드니 포터는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의
한 은행에서 재직할 때
계산 실수로 고소를 당했습니다.

횡령죄로 징역형 5년을
선고받은 그는
교도소 내 야간 약국에서
일하면서 단편소설을 출간했습니다.
그중 ‘마지막 잎새’는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책에서 생활비를 벌고자
 며칠째 잡지에
 들어갈 그림을 그리던 존시는
폐렴에 걸려 병석에 눕게 됩니다.

그는 창밖의 담쟁이넝쿨을 보면서
“넝쿨의 마지막 한 잎이 떨어지면
 나도 떠나게 될 거야”라고 말합니다.

존시가 희망의 끈을
놓으려는 것을 알아챈
동료 화가 수는 또 다른 화가인
베어먼을 찾아가 존시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어느 날 담쟁이넝쿨의
 나뭇잎이 한 장 남았습니다.

그날 밤은
줄기찬 비가 내렸습니다.
 그러나 이튿날에도
그 잎은 그대로 남았습니다.

이를 본 존시는
다시 새 힘을 얻게 됩니다.

며칠 뒤 존시는
베어먼의 사망소식을 듣게 됩니다.

평소 “훌륭한 화가는
사람을 위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하던 베어먼은
 비바람 치던 밤 존시를 위해 벽에
마지막 잎사귀를 그리다 병을 얻었고,
결국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베어먼에게서
예수님의 사랑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죄 없는 몸으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고,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습니다.

출처:장덕봉 목사(요나3일영성원)
<겨자씨/국민일보>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갓 태어난 여자 아기가
사망판정을 받은 뒤
 12시간 만에 살아나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진 일이 있었습니다.

아르헨티나 지방 차코의
한 병원에서 미숙아로
태어난 아기가
시신보관소에 들어간 뒤
죽음에서 깨어난 것입니다.

엄마가 “죽은 아기를
한번만 보겠다.”고
고집하지 않았으면
아기는 영영 세상을
보지 못할 뻔했습니다.

아기는 전날 차코의 페란도
병원에서 태어났지만
미숙아로 태어난 아기는
엄마 품에 안기기도 전에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의사들은 사망판정을
내린 뒤 아기를
시신보관소로
옮기도록 했습니다.

아기가 죽었다는 말에
울음을 터뜨린 엄마는
수술실을 나온 뒤에도
눈물을 멈추지 못했습니다.

아기가 시신보관소로
옮겨진 지 12시간
만인 9일 밤 엄마는
남편에게 “마지막으로
한번만 아기를 보고 싶다.

아기가 있는 곳에
가보자.”고 했고,
 부부가 나란히
시신보관소로
내려가 사정하자
경비를 서던
 직원은 아기가 누워
있는 관을 꺼내왔습니다.

직원은
이미 봉한 관을 열어
아기를 보여주었습니다.
아기는 이미 매장처리가
완료된 상태였습니다.

기적은 바로
그때 일어났습니다.
엄마는 “아기가 살아
있다.”고 소리쳤습니다.

곁에서 지켜보던
남편이 황급히
살펴보니 아기는
가늘게 숨을 쉬고
있었습니다.

아기는
신생아 병실로
옮겨져 기적처럼
소생했습니다.

딸을 살려낸 엄마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관을 열자마자
아기의 신음소리가
느껴졌다.”고
말했습니다. 

애기 엄마는
관을 열자마자
아기의 신음소리를
느낀 것입니다.

이것이 엄마의
사랑의 본능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작은 신음소리라고
다 알고 계시고
듣고 계신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히스기야가
​죽음의 병에
걸렸을 때
벽을 향하여 울며
기도을 하였고
하나님은 생명을
연장시켜주셨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하나님께 울며
기도하면 
​우리의
작은 신음 소리도
들으시고
기도를 응답해 주십니다. 

 “너는 가서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네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이사야 38:5]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영성 분야에 유명한
안소니 드 멜로
(Anthony de Mello)라는
사역자가 있습니다.

이 분이 이런 글을 썼습니다. 

 “나는 주님과
퍽 사이좋게 지내고 있었습니다.

혹은 뭘 청하기도 하고,
혹은 찬양하기도 하고,
혹은 감사드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늘 나에게는
이런 찜찜한 느낌이 있었습니다.

내가 그분의 눈을 들여다보기를
바라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나는 곧잘 말씀을
여쭙곤 하면서도,
그분이 날 바라보고
계시다고 느껴지면 그만
그 눈길을 피해
달아나는 것이었습니다.

언제나 나는
그 눈길을 멀리했습니다.

그리고 그 까닭을
알고 있었습니다.
두려웠던 것입니다.

그 눈길 속에서
뭔가 뉘우치지 아니한
죄에 대한 나무람을
보게 되리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어떤 요구가
있으리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뭔가 나에게 원하시는
바가 있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은근히 염려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느 날, 나는
기어이 용기를 가다듬었고,
그리고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 아무
책망도 없었습니다.
아무 요구도 없었습니다.

그 눈은 그저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을 따름이었습니다

나는 그 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살피듯 바라보았습니다.

그래도 역시 그 눈길이
전해주는 말씀은
한 마디뿐이었습니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그리고 나는
나와서 울었습니다

베드로처럼...” 

출처:고재성목사의
목회칼럼중에서
(비전교회)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내가 어릴 때는 신발에 따라
빈부 차이를 알 수 있었다.

형편이 아주
어려운 아이들은
검정 고무신,
보통인 아이들은 흰 고무신,
잘사는 아이들은
운동화를 신고 다녔다.

나는 항상
검정 고무신을 신고
학교에 다녔는데,
그것이 나를 위축되게 만들었다.

나 같은 가난한 아이는
선생님께서 사랑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생각해
수업 시간에 질문도 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일 년에
몇 차례씩 선생님들께
​“내일 학비 안 가져오면
맞을 줄 알아”라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항상 웅크리고 있어야 했다.

그렇게 일주일의 엿새 동안
주눅이 든 나를 구원해 준 곳이
바로 교회였다.

주일에 교회만 가면
내가 주인공이 되는 것이었다.

남루한 옷을 입고
말도 어눌하게 하고
얼굴도 못 생겼는데
교회만 가면 주목을 받았다.

“찬수야, 너는 걱정할 것 없다.

네 아버지가 기도하시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잖아.

그런 아버지를 둔 네가
잘못될 리가 없단다.

너는 잘될 수밖에
없는 아이란다.”

어린 시절 교회만 가면
선생님들이 내게
이런 축복을 해 주셨다.

이민 초기 우울증이 찾아
올 만큼 힘든 그 시절에도
나를 구원해 준 곳은 교회였다.

특히 잊히지 않는 것이
교회 찬양대에서의 사랑의 교제다.

나는 찬양대에서
섬길 만한 목소리가 아니다.

내가 찬양대로
섬기기 시작한 후
‘금붕어’ 파트가 추가되었다.

노래도 못하고
음악적 소질도 없는
내가 찬양대에 들어간 이유는
그 찬양대 안에 있는
대원들의 사랑 때문이었다.

감당하기 버거운
삶의 무게로 힘들어하던
나를 따뜻한 사랑으로 보듬어 주고
격려해 주던 분들이 거기에 있었다.

성도들이 지방으로
이사 가는 경우 좋은 교회를
추천해 달라고 부탁한다.

나는 만남의 축복이
제공되는 교회,
허다한 허물을 덮어 주는
사랑이 넘치는 교회인지
아닌지를 보고
결정하라고 한다.

출처:이찬수가 쓴
​ <보호하심>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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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암이 재발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신앙의 위기가 왔어요.

교회도 가지 않고 집에서
울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제게 한 친구가 함께
다시 교회에 가자고 불렀습니다.

교회에 가서
목사님의 간증을 들으며
그 목사님에게는 내가 알지 못하는
하나님에 대한
깨달음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제게도 그 목사님처럼
정말 하나님을 알고 싶다는
새로운 소망이 솟아났고
묵상을 시작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이
제게 큰 도전을 하셨습니다.

“너에게는
금과 은이 너무 많다.
너는 네가 가진 것들을
나보다 더 사랑한다.”

저처럼 금과 은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가진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돈으로도, 지위로도,
우리의 힘으로도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들 때문에 절망하는
영혼들이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절대로 우리 힘으로는
죄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는 것을
그제야 깊이 깨닫게 되었어요.

베드로가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말했을 때,

걸을 수 없었던
다리에 힘이 들어가고,
절망이 소망으로 변하고,
겨자씨만 한 믿음으로
그가 일어나 걸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주님 제게도
그 겨자씨 만한
믿음을 주시옵소서.
금과 은이 필요 없습니다.
저에게 예수님을 주시옵소서.”

그 후 예수님이
저의 생명이 되시는
삶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제부터는
나를 사랑하사
자기 몸을 완전히 버리시고,

자기 몸을 찢으셔서
나를 덮어 주시는,
아무것도 덮어 줄 수가 없는
죄를 덮어 주기 위해서
자기의 삶을 완전히 버리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 예수님의 사랑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겠습니다.”

출처:이어령이 쓴
<지성에서 영성으로>중에서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