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아틀레이라고 하는 선교사님의 순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중앙아프리카에서 선교하던 이 선교사님이 강가에서 죽은 시체로 발견되었을 때, 가보니 적대적인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그를 창으로 찔러 비참한 모습으로 순교했는데, 놀랍게도 그가 갖고 있던 라이플 총이 발견되었는데, 10연발 윈체스터 라이플 총인데 총을 당기면 열 발까지 자동적으로 쏠 수 있는 총입니다. 사나운 맹수로부터 자신을 지키려고 갖고 있던 총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위태할 때 얼마든지 그 총을 사용할 수 있었는데 그는 창에 찔려죽으면서도 그들에게 예수의 사랑을 전하고 피투성이가 되어서 죽었습니다. 그 뒤에 나온 이야기에 따르면, 그 사람이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져죽어서 그의 소지품, 가진 것이 무엇인가 찾아보러 왔을 때 총이 있었고 총 안에 총알이 열 발이 장전되어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그들이 자기들의 창에 찔리면서도 뭐라고 그렇게 전하려고 했던 그 메시지가 무언가. 결국은 그가 갖고 온 성경, 그가 갖고 온 그 책들을 통해서 예수님이 살아있는 것을 알게 되었고 예수 믿고 온 마을이 변했다고 하는 그런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그의 이야기를 소개한 『our daily bread』에 이와 같은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그는 영혼을 잃을 것에 대한 부담감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변함없는 헌신의 마음에서 지고한 희생을 택했다. 사도 바울의 고백과 같이 살든지 죽든지 그의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기를 원했던 것이다.” 빌립보서 2장 30절입니다. 그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 여러분 일생이 이와 같이 아름다운 일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남에게 상처를 주고 남에게 고통과 괴로움을 주는 그러한 삶이 아니라, 이제부터는 사랑과 용서로 이웃사람을 변화시키고 치료하고 새롭게 만들고 주님의 자녀로 변화시키는 그와 같은 은혜가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호흡이 다하는 그 날까지, 주님을 찬양하며 주님의 사랑을 만방에 전하는 주님의 귀한 일꾼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스왈드 스미스 목사님이 30살이 되던 해에 하나님께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님,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큰 교회의 목사보다도,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설교를 하는 인기 부흥강사보다도,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것에 따라 살아가는 목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스미스 목사님은 오로지 하나님의 뜻에 맞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목사님이 되기만을 바랐습니다. 목회자로서 유명해지고 능력을 인정받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하나님의 뜻에 맞추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또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에 맞추려고 노력한 목사님에게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목사님이 시무하는 카나다 토론토의 피플 처치 (PEOPLE CHURCH)는 뜨겁게 부흥해 성도가 몇 천 명이나 모였고 500명이 넘는 선교사를 보내는 큰 교회로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스미스 목사님은 전 세계의 선교지를 돌아다니며 복음의 중요성을 전하는 세계적인 부흥강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추려는 삶을 살 때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위하는 척 하면서 나의 욕심을 내세울 때는 모든 것이 헛된 수고일 뿐입니다. 우리의 소망과 뜻을 온전히 하나님께 맞추십시오. 주님! 모든 헛된 욕심과 생각을 내려놓게 하소서! 나의 욕심과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십시오.
그러는 동안 그의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건강도 많이 상했습니다. 그래서 고향 미국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타고 돌아오던 배에는 루스벨트 대통령도 함께 탔습니다. 루스벨트는 아프리카에서 사냥한 코끼리 한 마리를 싣고 오는 길입니다. 이 배가 뉴욕에 도착하자 대통령을 맞이하기 위해 붉은 레드 카펫이 깔리고, 군악대의 팡파르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조기를 흔들며 환호했습니다.
대통령 일행이 나가자 이제는 이 모리슨 선교사가 출구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대통령 때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레드 카펫도 없고, 군악대의 팡파르도 없습니다. 한 사람도 그를 마중 나온 사람이 없습니다. 이 선교사는 저녁노을이 지는 하늘을 향해 이렇게 탄식했습니다.
“주님, 이것이 지난 40년간 아프리카에서 저의 청춘을, 저의 건강을, 그리고 저의 인생을 바친 결과입니까?” 그때 그는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고 합니다. “모리슨아, 나의 사랑하는 아들아, 너는 아직 고향에 오지 않았단다.
네가 고향에 돌아오는 날 레드 카펫이 아닌 황금 길로, 군악대가 아닌 천사들의 나팔소리와 함께 내가 너를 마중 나오리라”
여러분,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세상의 환호와 박수소리를 받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더 나은 본향에 갈 때 받는 환호입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히브리서 11장 13절 - 16절 )
케냐에서 20년 가까이 선교활동을 하고 있는 안태경 선교사님은 케냐에 도착한 뒤로 당해보지 않은 고난이 없다고 합니다.
물론 편안한 삶을 위해 선교를 떠나는 사람은 없겠지만 총에도 맞고 칼에도 찔리고 돌팔매질 까지 당하며 목숨의 위협을 느꼈던 순간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그러나 목숨의 위협보다도 더욱 안 선교사님을 힘들게 했던 것은 바로 사람들의 배신이었습니다. 99년도 케냐에 가자마자 야심차게 세운 선교센터를 사람들의 배신으로 송두리째 뺏겼습니다. 처음부터 선교센터 운영만을 바라보고 케냐로 떠난 안 선교사님은 이때 생애의 가장 큰 절망감을 느꼈습니다.
심지어 지금까지 믿어왔던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할 정도로 힘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고난 중에 야곱의 마음을 알고 야곱의 신앙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신앙의 계승자로 숱한 고난을 이겨내고 결국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던 야곱의 인생을 통해서 비록 계획했던 대로의 선교센터 운영이 아니더라도 믿음을 계승할 수 있는 역할을 자신이 감당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어떤 고난이 임하더라도 주님께 맡기고 고난을 딛고 일어날 수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야곱의 축복’도 숱한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내일을 바라봄으로 받았던 축복이었습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을 신뢰할 수 있다면 우리는 신앙의 계승자로써 인생의 여정에 가장 귀한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주님을 철저히 신뢰하십시오.
주님!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믿음을 계승하게 하소서! 고난으로 힘든 마음까지도 주님께 맡기십시오. 출처:김장환 큐티365 [나침반출판사]
연세대에서 언더우드 선교상을수상한 김철기, 허운석 선교사 부부는 아마존 인디오들에게 복음을 20년 동안 전하고 있습니다.
브라질 사람들조차 ‘들판에 뛰어다니는 영혼 없는 짐승’이라고 부르는 인디오들에게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2006년 허 선교사는 ‘폐암’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수술하고 6개월 만에 의사의 만류를 뿌리치고 선교지로 돌아갔습니다.
얼마 후 아마존에 놀라운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에게 넘치는 성령의 은혜가 부어졌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단 한 번도 열매를 맺지 않았던 망고나무가 가지가 꺾일 정도로 과실을 냈습니다. 그리고 신학교를 세워 100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50여 명이 목사안수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2010년 암이 재발 되어 1년을 넘길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아마존에 4개의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허 선교사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제 제가 선교사로 사람들에게 존경받을 만한 위치에 섰습니다. 제 스스로가 교만해질 수 있는 시기였죠.
그런데 이때 하나님께서 저에게 암을 허락하셨어요. 사람들의 존경보다 천국에서의 선물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배려죠. 사실 암이 발병하고 까닭 없이 많은 모욕과 수치를 당했어요. 그렇게 헌신했으면 복을 받아야지 왜 암을 받았느냐며 의심의 눈초리도 있었죠. 그런데 죽음과 투쟁하는 그 고통이 예수 그리스도를 덧입게 하는 축복의 통로였습니다. 이 생명 다하기까지 예수님만 높이다가 이 땅의 사명을 마감하는 날, 주님 앞에 설 것입니다”
2013년 허운석선교사님을 하나님은 보고 싶으셔서 먼저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김철기 선교사님은 허운석 선교사님께 보내는 마지막 편지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제가 남편으로써 33년을 부부로 함께 보내면서, 허 선교사는 제가 만나 본 모든 그리스도인들 중 이 세상에서 최고로 뜨겁게 순전하게 주님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가장 가치있는 삶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부름에 따라서 순종한 예수님처럼 우리들도 묵묵히 십자가를 바라보며 사는 삶이 아닌지 생각해 보는 시간되었으면 합니다.
닥터 홀이라고 하는 분은 그 부모님이 한국에 와서 선교사로 일생을 보내고 세상을 떠나시고, 그 아들이 또 한국에 와서 일생을 바치고, 마지막 그 무덤이 부모님과 함께 이 땅에 묻혔는데. 19세기말 그 아버지 닥터 홀이 한국으로 들어올 때, “왜 당신 그 나라 갑니까? 외국인들을 그렇게 미워하고, 그 박해가 심해서 많은 선교사님들이 죽고 서양 사람들을 핍박을 하고 그러는 데를 왜 가려고 합니까?” 그 때 닥터홀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희생시켜 이 도시의 문을 여실 생각이라면 나는 그 희생자가 되는 것을 피하지 않겠습니다." 얼마나 그 아버지가 감동적인 고백을 했는지 몰라요. 만약에 한 사람이 가서 순교해서 복음의 문을 연다면 내가 희생되어지겠습니다. 원래 캐나다 출신인데요.
뉴욕에 와서 병원에서 일하면서 부인되는 로제타 셔우드라는 여의사를 만나서, 같이 선교의 열정이 불타올라서 한국에 와서 사역을 하는데, 그 딸이 한국에 와서 병으로 죽고, 남편도 세상을 떠나고, 우리 한국 사람 돌보다가 전염병이 옮아서 남편과 딸이 먼저 죽었어요. 그런데 부인은 한국을 떠나지 아니하고 마지막까지 남아서 주의 복음을 전하다가 천국에 가게 되었는데. “내가 죽으면 내 남편이 내 딸이 묻힌 양화진에 묻어주세요.”
여기 양화진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 남편, 또 그 아내, 그 딸 선교사 가정이 거기 묻혔어요. 근데 그 아들이 미국 가서 의학공부를 하고 다시 한국에 돌아옵니다. 그래서 한국 사람을 돌보는데 이런 고백을 했어요. “내가 조선인의 가슴에 청진기를 댈 때 언제나 나의 마음도 그들의 심장 소리와 함께 두근거렸다.
나는 아직도 조선을 사랑한다.” 얼마나 우리 한국 사람을 사랑했는지. 그 아버지가, 그 엄마가 조선 사람을 사랑하여서 사랑을 베풀다 죽었으므로 나도 나의 뼈를 한국에 묻기 원합니다. 그가 91세가 됐을 때 한국에 초청을 받아 와서 그가 남긴 말이 있습니다. “내가 죽으면 나를 나의 고향인 캐나다에, 내가 살고 있는 미국에 묻지 말고 내 아버지, 어머니, 내 누이가 묻힌 양화진에 묻어주세요.” 그래서 그가 91년 세상을 떠난 후에 양화진에 부모님과 함께 묻혔습니다. 그들의 순교와 그들의 헌신과 그들의 주님을 향한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