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안장된 모든 선교사와
우리나라 근대화 과정에
기여한 일부 인사들의
공적을 소개 한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책을 펴셨는데요.
제일 먼저 묻힌 분은
1890년 7월 28일
제중원 2대 원장으로
헌신하시던
존 헤론 선교사님이
이곳에 묻혔습니다.
미국 북장로교
파송 선교사님으로
뛰어난 의술을 가진
의사였습니다.
20대에 모교 교수로
초빙 받을 만큼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던 분이었는데
“한국으로 가라”
그 명령을 받고
그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와서
몸이 부서져라
주님 영광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병든 자를 돌보고
가난한 자를 섬기다가
본인 자신이
몸이 쇠약해지고
병이 들어서 5년 만에
서른 네 살의 젊은 나이로
아내와 어린 두 딸을 둔 채로
이 세상에서 숨을 거두고
양화진에 묻히게 됩니다.
그는 이 땅에
주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온몸 바쳐 헌신한 선교사요,
주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순교자의 모습을 보인
주님의 귀한 종이었습니다.
양화진에 묻힌
선교사들을 보면 책에
이렇게 소개되어 있습니다.
“선교와 관련된 이가
145명 가운데
‘선교사가 90명’
(남 36명, 여 54명),
‘가족 55명’이다.
‘어릴 때 묻힌 자녀들
’(45명)이 적지 않고,
어릴 때 자녀들이
병에 많이 죽었어요.
‘여 선교사’가
남 선교사보다
더 많이 묻혀 있다는
사실이 눈길을 끈다.
이 같은 사실에서
기후와 풍토가
맞지 않아서
외지에서의 선교 사역이
‘여성과 어린이들’에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선교사님들의 비문
몇 가지를 소개합니다.
“나는
웨스트민스터성당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하노라.
-호머 허버트(Homer B. Hulbert,
1863-1949)선교사”,
“만일 내가 줄 수 있는
천 개의 생명이 있다면,
모두 조선을 위해 바치리라.
-루비 캔드릭(Rudy R.
Kendrick, 1883-1908)
선교사”,
“나는 한국에
나의 뼈를 묻을
각오로 온 사람이었습니다.
-루(G. H. Rue, 1899-1993)
선교사”
이 책의 발간사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묘역을
둘러보다 보면
‘한국의 근대화와
개신교 선교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분들’뿐 아니라,
‘이름이 낯선,
널리 알려지지 않은
분들’도 적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분들은
‘질병이나 사고’ 등으로
일찍 세상을 떠나,
사람들에게 기억될
만한 큰 자취를
남기지 못했지만,
‘조선인과 이 땅을
사랑했다’는 점에
있어서는
다른 분들과 조금도
차이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기억하는 자 없는
이 낯선 이국땅에
묻히기를 바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분들도
이 땅의 복음화와
발전을 학수
고대하였으며,
목숨이 다하기까지
정성스럽게 조선과
그 민중들을 섬긴
‘희생적인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순종에는
이와 같은 희생이
따르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여러분의 재능도
물질도 목숨까지라도
아낌없이
주님께 드릴 수 있는
그러한 순종의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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