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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3.19 나는 아직도 조선을 사랑한다
  2. 2019.02.27 절망 중에 함께하시는 하나님

닥터 홀이라고 하는 분은  
그 부모님이 한국에 와서
선교사로 일생을 보내고
세상을 떠나시고,

그 아들이
또 한국에 와서 일생을 바치고,
마지막 그 무덤이
부모님과 함께 이 땅에 묻혔는데.

19세기말
그 아버지 닥터 홀이
한국으로 들어올 때,

“왜 당신 그 나라 갑니까?
외국인들을 그렇게 미워하고,
그 박해가 심해서
많은 선교사님들이 죽고
서양 사람들을 핍박을 하고
그러는 데를 왜 가려고 합니까?”

그 때 닥터홀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희생시켜
이 도시의 문을 여실 생각이라면
나는 그 희생자가 되는 것을
 피하지 않겠습니다."

얼마나 그 아버지가
감동적인 고백을 했는지 몰라요.

만약에
한 사람이 가서 순교해서
복음의 문을 연다면
내가 희생되어지겠습니다.

원래 캐나다 출신인데요.

뉴욕에 와서 병원에서 일하면서
부인되는 로제타 셔우드라는
여의사를 만나서,
같이 선교의 열정이 불타올라서
한국에 와서 사역을 하는데,

그 딸이
한국에 와서 병으로 죽고,
남편도 세상을 떠나고,
우리 한국 사람 돌보다가
전염병이 옮아서
남편과 딸이 먼저 죽었어요.

그런데 부인은
한국을 떠나지 아니하고
마지막까지 남아서
주의 복음을 전하다가
천국에 가게 되었는데.

 “내가 죽으면
내 남편이 내 딸이 묻힌
양화진에 묻어주세요.”

여기 양화진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 남편,
또 그 아내,
그 딸 선교사 가정이
거기 묻혔어요.

근데 그 아들이
미국 가서 의학공부를 하고
다시 한국에 돌아옵니다.

그래서 한국 사람을 돌보는데
 이런 고백을 했어요.

“내가 조선인의 가슴에
청진기를 댈 때
언제나 나의 마음도
그들의 심장 소리와
함께 두근거렸다.

나는 아직도 조선을 사랑한다.”

얼마나 우리
한국 사람을 사랑했는지.

그 아버지가, 그 엄마가
조선 사람을 사랑하여서
사랑을 베풀다 죽었으므로
나도 나의 뼈를
한국에 묻기 원합니다.

그가 91세가 됐을 때
한국에 초청을 받아 와서
그가 남긴 말이 있습니다.

“내가 죽으면 나를
나의 고향인 캐나다에,

내가 살고 있는
 미국에 묻지 말고
내 아버지, 어머니,
내 누이가 묻힌
양화진에 묻어주세요.”

그래서 그가 91년
세상을 떠난 후에
양화진에 부모님과
함께 묻혔습니다.

그들의 순교와
그들의 헌신과
그들의 주님을 향한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 것입니다

출처:닥터 셔우드 홀의
"조선 회상"중에서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합정동에 가면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지가 있습니다.

그곳에 선교사,
선교사 가족들
145명을 포함해서
417명이 안장되어 있습니다.

​대표되는 두 분의
선교사님이 아펜젤러
선교사와 언더우드 선교사입니다.

아펜젤러 선교사는
결혼한 지 두 달 만에
한국 땅을 밟고
한국에 들어와
선교사역을 시작했습니다.

배재학당을 세워서
많은 젊은이들을 훈련시키고
여기서 이승만 대통령도 공부하고
졸업하고 한글학자 주시경도
졸업을 하고 오늘날

배재 중, 고등학교,
배재대학교로 발전했으며,
배재학당 내에 출판사를 세우고
또 독립신문을 인쇄하는
그런 귀한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목포에 복음을 전하러
갔다가 배가 침몰할 때
구명조끼를 옆에 있는
젊은 청년에게 전달해주고
그는 거기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마흔 네 살을
일기로 그 청춘,
그 젊음, 그 삶 전체를
우리 한국에 바친 것입니다.

언더우드 선교사는
같이 1885년 4월 5일
부활절 아침에
아펜젤러 선교사와
손을 잡고
인천, 당시 제물포 항에
도착을 합니다.

도착을 할 때 일본에서
이수정이라고 하는 유학생이
예수를 믿고 나서 언더우드,
아펜젤러 선교사에게 한국말을
가르쳐주고 성경 중에 마가복음을
번역해서 언더우드, 아펜젤러
선교사들이 들어올 때
성경책을 손에 들고 들어옵니다.

한국말을
배워가지고 들어왔어요.
이수정이라는 분이
성경을 번역해서
드렸는데 들어와서
이 언더우드 선교사는
지금 4대째 그 모든 자손들이,
일곱 명의 자손들이
한국에서 지금도
계속 선교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연세대학교를 세우고
한국 최초의 장로교회인
새문안교회를 설립을 했습니다.
언더우드 선교사가 이와
같은 기도문을 남겼습니다.

“주여!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지금은 예배드릴 예배당도 없고
학교도 없고 그저 경계와 의심과
멸시와 천대가 가득한 곳이지만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주여! 오직
제 믿음을 붙잡아 주소서“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시기에
 선교사님들이 오셔서
복음을 전하면서
꿈과 희망을 전해주고
믿음으로 모든 어려움을
이길 수 있도록 저들을
신앙으로 이끌어
주었던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절망 중에
감사하는 신앙입니다.
문제와 고통과
괴로움 가운데서도
주님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승리하는 신앙입니다. 

절망 중에 함께하시는
하나님이 일생동안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를 모든 절망 가운데서
건져주실 것입니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 (이사야 43장 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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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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