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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 작곡가, 가수
방송인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컴패션밴드의 음악감동으로
온누리교회를 섬기고
계시는 주영훈 씨를
소개합니다.

1993년 심신의
"내가 처음 사랑했던 그녀"
를 통해 작곡가로 데뷔해

엄정화의(배반의 장미)
터보의(나어릴 적 꿈)
컨트리 꼬꼬의(오! 가니)
유채영, 코요태, 김종국 등
​많은 가수들의 작곡가로
유명하답니다.

지금은 방송인으로써
열심히 하고 계시는데요.

미국에서 아버지께서
목회하시는 목사님의
아들로 태어났답니다.

어느 날 예언하시는
권사님을 모시고 와서
아들 중에 목사가 나온다고
했는데 주영훈 씨를
신학교에 보낸다고 해서
한국으로 도망을 왔다고 합니다.

도망 올 때에 전 재산이 27만 원이었고
공항 세관에게 악기가 걸려서
세금을 78만 원을 내라고 해서
한 시간을 울면서 빌기도 했답니다.
 
20대 초반에 목사님을 따라
미국 동부 워싱턴으로
이민을 와서

아버지께서 사역하시는
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로
또한 찬양대로 봉사를
하였답니다.

주영훈 씨가 음악을 하게 된
계기가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고 나중에는 고백합니다.
​ 

주영훈 아버지께서는
이북 출신으로 보수적인
분이셨답니다.

 예배 도중에는
아멘을 크게 해도 안되고
교회에서 기타나 드럼도
함부로 하면 안 될 정도였답니다.
 
찬송가를
제외한 세상 모든 음악을
마귀의 음악이라고 해서
반대가 심하셨다고 하네요.

그래서 학교를 갔다 오면
LP가 항상 두 동강 나있었고
교회 가면 기타를 칠 수 있어서
같지만 아버지가 계실 때는
찬송가를 치다가 안 계실 때
몰래 세상 음악을 했답니다.

지금도 초청을 받아서
교회에 가서 메들리를
하다 보면 찬양을 하다가
중간에 일반 음악을
부르면 손뼉을 치다가도
멈추어 계신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팝송을 좋아해서
혼자서 DJ가 되겠다고
연습도 하기도 했답니다.

홀로 한국에 와서
​테이프를 만들어 각 기획사를
찾아다니면서 들어봐 달라고
발품을 팔면서

잘 되지 않으니
하나님을 원망했답니다.

한국에 나오게 해달라고
했다가 다시 왜
한국에 오게 했냐고
원망했답니다.

많은 사람을 1년 동안
만나면서 수백 곡을
만드는 시간이었답니다.

그래도 교회는 다녔지만
뜨거움은 없었답니다.

술 취해서 울면서
기도하기도 했답니다.

심신의 가수를 만나게 되면서
그분이 점을 보면서
점쟁이가 웃는 모양을 보여주는데
그것이 주영훈 씨였답니다.

나중에 주영훈씨는
하나님께서는 귀신을 쓰기도
한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들의 주변에도
점보러 가서 너는
예수믿어야 산다고 해서
진짜 예수 믿기도 하지요.

그때는 인기 있는 가수와
만남이 시간 되면서
심신의 작곡을 7곡을
하면서 소방차까지 연결되고
태진아 씨와도 시작됩니다.

주영훈 씨가 만든 곡들이
거리에서 울려펴지는 것을
보면서 행복해지고
자신이 교만하게 재능을
하나님이 주신 것인 줄을
몰랐답니다.

주영훈 씨는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방황하게 됩니다.

유독 주영훈 씨가
온갖 오해와 억측으로
어려움이 겪게 되고
많은 어려움을 가지는데요.

나중에는 하나님이
이런 경험을 통해서
지금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힘을 주게 된답니다.

자신의 연약하고
부족함을 훈련시키기 위해
좋은 벗들을 연결해주시고
온누리교회를 통해서
뜨겁게 기도하고
이전에 잃어버린
첫사랑을 깨닫게 되는데요.

성공한 작곡가에게
사실 여러 번 위기가 찾아옵니다.

손태영과의 결별과 오해
살이 빠졌다고 두 번이나
검찰청에 불려가서 마약검사를
받기도 했고요.

주영훈 씨의 고백입니다.

"살을 갑자기
예전에 많이 뺐을 때는
마약조사를 받을 때도 있었고,

2007년도에 학력을 속였다
그래서 모든 방송도
쉬게 됐던 적도 있었고,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하면서
빚도 지고
공황장애도 많이 앓았었고.

하용조 목사님께서
큰 힘이 많이 됐던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힘들거나 할 때
정말 하 목사님이 보고 싶어요."

2007년 온누리교회에서
주최한 일본 문화선교 집회
‘러브 소나타’에 참가했는데,

손지창 형제가
하용조 목사님 부탁으로
주변의 연예인을 모을 때
저도 불려가게 된 거예요.

가서 할 일은 연예인들과 함께
찬송가 두 곡 부르는 것밖에 없어서
저는 솔직히 편한 마음으로 따라갔지요.
 
그런데 그곳에서
회개하는 눈물 많이 흘렸어요.

그때 은혜를 참 많이 받았어요.
그런데, 그렇게 은혜를 받고 나서
제게 어려운 일이 바로 닥쳐왔습니다.

일본에 다녀온 지 2주 후였어요.
뜨거워지려고 할 때 사탄이
제게 가장 약한 부분을 건드리더군요.

아마 은혜가 없었다면
과거처럼 예민해서
미쳐버렸을지도
모를 정도로 큰 어려움이었어요.

하지만 “올 테면 와봐라” 하는
담대함이 생겨 감당할 수 있었답니다.

사실 군대를 못 갈 수밖에 없는
심실 조기 흥분 증후군이라는
질병이 있는데

일부러 군대를 가지 않으려고
했다는 오해를 사기도 합니다.

주영훈 씨는 독신 주의자였고
이윤미를 만나면서 마음이
바뀌게 됩니다.

가장 어려운 시기에
악성 루머와 사업 실패
그리고 대인 기피증과
공황장애에 시달리게 되는데

이때 하나님이 예비해 두신
2006년 이윤미와의 결혼으로
평안을 회복하게 됩니다.

주영훈 씨의 고백입니다.

"배우자 기도를 오래 했어요,
제가 혼자서. 항상 웃는 여자,
나보다 남에게 배려가 더 많은 여자,
키 170센티미터
플러스마이너스 1
이렇게 구체적으로 적었어요.

10가지를 정확하게 가진 아내를
제가 만났기 때문에 만나자마자
하나님이 보내주셨나 보다
이런 생각을 갖게 됐죠." 

배후자의 기도에
이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내용이 있는데

그 첫 번째가
잘 웃는 여자인데
이윤미 씨가 심하게
잘 웃는 여자랍니다.

또 하나는
야망이 크지 않는 여자인데
다시 말하면 가정적인 여자를
원했는데

결혼 후에 아내의
내조 덕분에 신앙이 더욱
깊어지게 됩니다.

어느 정도로 이윤미 씨가
남편을 위해 기도하는가 하면

주영훈 씨의 고백입니다.
"어느 날 우연히 수첩을 봤더니
남편이 잘 되게 하는 기도 방법과
주로 남편을 위해 책을 읽고 있었고
항상 우리 오빠 기도를 우선하니
너무 감사하답니다"

부모가 딸의 이름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데요.

두 부부는 큰 딸의 이름을
주 아라라고 지었는데
그 뜻을 "주님의 아름다운
나라를 꿈꾸며"라고
지었답니다.

지금은 컴패션을 통해서
전 세계에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계시답니다.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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