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하나님의
부름받으신
김준곤 목사님은
한국 대학생 모임인
CCC대표를 섬기면서
거쳐간 대학생이
40만명이나 됩니다.
평신도는 350만
배출했습니다.
그분의 간증을 소개합니다.
전남 신안에
있는 2만여
주민이 사는
지도가 고향인데요.
유학자 집안으로
7대조 제사를
드리는
집안이며
아버지는
동네
유림회 회장으로
엄격한 선비셨습니다.
어머님이 제일먼저
예수믿으시고
철야기도를
많이 하신분입니다.
여덟살 때
문준경 전도사님을
통해서
예수님을 만나
일본군에
끌러 갔다가
구사일생으로
도망오기도 했습니다.
해방후 첫 아내
인정진 사모와
결혼해서 했습니다.
6.25가 발발하자 그 당시 지도면
일대에서는
2천여 명의 민간인이
공산당에게 떼죽음을 당했다
나와 아내가
끌러나가고
어린 딸
살릴려고
조용히 끌러갔습니다.
동네 뒷산까지
끌려갔더니 마을 친척들을
비롯한 60여명의 사람들이 끌려
나와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곤봉으로 사람들을
때려 신신시킨후
한꺼번에
죽창이나 일본도로
찔러 절명시켰는데
내 눈앞에서 아버지와
아내가 죽어가는 모습을 봐야 했다
곤봉에 맞아
숨이 끊어졌다가
다시 정신이 돌아오셔서
아들인 내 이름을
간절히 부르고 계셨다
의식을 잃어가던
나는 아버지의 피 토하는
그 부르짖음에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시체더미 밑에
깔려 있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나는 그 때 이
세상의 모든 죄와 죽음,
고통, 저주, 절망을 짊어지고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하고
울부짖었던 예수님의 고토을 보았다
바로 그 십자가의 고통이
하나님과 만날 수 없었던
우리를 하나님과
만날수 있게 해준 것이고
이런 고통 속에서
주님이 나를 찾아오셨다
사랑하는 내 가족들의
죽음을 경험했기에
전 인류를 향한 예수님의 고
통과 죽음을 함께 체험한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달아
‘전라남도를
거룩한 도시로 만들자’하고
다짐했다
지금 지도는
63%가 기독교화 되었다
전남 성시화 운동은
그렇게 씨가 터서 싹을 냈다
둘째 딸 신희는 C.C.C에서 아버지를
도와 간사를 하다가
결혼하고 미국에 갔는데
미국 병원의 오진으로
뒤늦게 위암을 알게 되었다
한국에 나와
165일동안
투병하다가 내게 슬픈
무덤을 남기고
하늘나라에 갔다
나는 내 딸 신희가
가혹하게 죽음의 순간까지
견디었던 극한 고통을 보면서
그리고 아버지와 첫
아내의 죽음을 보면서
정신을 놓을 만큼
감당못할 아픔을 겪었다
‘아빠, 살길이
없을까요?
살고 싶어요’
간절하게
되뇌던 딸은
죽는순간 마지막
유언기도를 했다
‘사랑하는 주님
나의 눈물과 고통과 죽음이
찬송으로 사랑과 기도로
변하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서 딸은
말을 못하고
의식을 놓더니
하늘나라에 갔다
손이 점점 식어가면서
굳어져 갔다
그 모든 존재가 사
라지는 제로점이었다
그때
나의 아버지가
숨을 넘기면서
내 이름을
불렀다는 것이나
내가 신희의
이름을 부른 것이나
첫 아내가 순교하면서
딸 은희를 불렀을 것이나
그리고 신희가 죽으면서
불렀을 아이들의
이름을 생각할 때
그 모든 고통들 앞에서
존재가 사라지는
‘존재의 제로점’을 느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없었으면
피 흘리는 구원이 없었다면
그때 그 사건이 없었다면
회복할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하나님께
섭섭함이 커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럴 때 십자가의
예수님은 소나기 같은
피를 흘리고 계셨다
내가 없어지는
존재의 제로점에서
나는 주님을 만나서
영혼 전에 택했다는
사랑도 이해되고
아버지의 학살과
첫 아내의 순교가
이해되고
소중한 보물 같은
내 딸아이의 죽음도
용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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