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존스홉킨스 병원의
설립자인
하워드 켈리(Howard A. Kelly).
켈리는 1858년
뉴저지의 캠던에서
설탕 도매 상인인 아버지와
청교도 목사의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외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부터 언어에
탁월한 능력을 보였고,
15살 때 대학에
입학할 정도로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그 유명한
존스홉킨스병원의
창립멤버로 30년 동안
창의적인 수술 방법과
방광경
(오줌 보를 들여다보는 내시경)을
비롯한 많은 수술도구를 발명했고,
미국에서 처음으로
제왕절개수술을 성공했습니다.
미국에 코카인 마취를 도입했으며,
라듐을 이용한 동위원소치료를
미국에서 처음으로 시행하여
유럽에 비해 떨어졌던 산부인과 수준을
세계 제일의 수준으로 올려놓았습니다.
결혼하여 아홉 명의 자녀를 두었으며.
자연과 인간을 사랑한 복음주의자로
평생을 가난한 사람들을 치료하고,
도와주며 살다, 85세 때
요독증과 동맥경화로 볼티모어에
있는 연방 기념병원에서 사망했습니다.
1880년 늦봄 어느 날.
하워드 켈리는 자전거로
시골을 돌아다니며
방문 판매를 하며
학비를 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너무 물건이
팔리지 않았습니다.
배고픔에 지친 그에게
남아 있는 것은 동전 한 닢.
아무리 둘러보아도 주위에는
자기 물건을 팔아줄만한
집이 보이지 않고,
아주 초라한 시골집
한 채만 눈에 띄었습니다.
그는 밥이라도
얻어먹을
요량으로
그 집 문을 두드렸습니다.
한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 문을 열었는데
너무 긴장한 나머지 밥을
달라고 말하지 못하고,
물 한 컵만을 부탁하였습니다.
그녀는 켈리가 몹시
배고파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큰 잔에다 우유를 가득
담아 건네주었습니다.
켈리는 우유를
다 마신 후에
그녀에게 얼마를 드려야
할지 물으니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안 주셔도 돼요.
저희 어머니께서는,
늘 저에게 좋은 일을 하거든,
절대 대가를 바라지 말라고 하셨어요.”
그녀의 작은 친절은
켈리로 하여금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도록
힘을 주었고,
또 사람에 대한 사랑과
긍휼의 마음을 더하게 했습니다.
이후 그는
더욱 열심히
노력해서 마침내
산부인과 의사가 되었고,
존스홉킨스 병원을
공동창립하였습니다.
이야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십여 년이 지난 후
켈리에게 우유 컵
한 잔을 건넨
그 착한 여인은
안타깝게도
뱃속에 큰 혹이
생기는 병을 얻게 되었고,
치료를 위해 하워드 켈리가
있는 병원에 오게 되었습니다.
켈리는 그녀가
자신의 병원에
입원한 사실을 알고는
모든 힘을 다하여 그
녀를 살려내겠다고
결심하였고,
많은 시간과 노력 끝에
마침내 그녀를 살려내었습니다.
마침내 퇴원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병을 치료한 그녀는
자신의 병이 치료된 것에
대한 기쁨보다
병원비 걱정이 더 컸습니다.
도대체 병원비가
얼마나 될까?
앞으로 평생을 벌어도
병원비를 값을 수나 있을까?
그런 걱정으로 그녀가
영수증을 열어 보자
그 영수증에 이런 글씨가
쓰여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당신의 치료비는
여러 해 전 우유 한 컵으로
모두 지불되었습니다.”
그 글 밑에는 하워드
켈리라는 서명이 있었습니다.
영어로 긍휼을
'compassion'이라고
표기하며
'함께 고통을 나눈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어려움 당한 사람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는 것은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정신이며,
예수님의 보혈과 십자가는
긍휼의 상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먼저 긍휼히 여겨주셔서
구원해 주셨고,
그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세상일수록
더욱 함께 나누며 사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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