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느 목사님의 간증을 듣고 많이 운 적이 있습니다. 그 목사님은 어느 날 창세기 22장을 읽고는 아들과 함께 이스라엘로 가셨습니다. 아침 일찍 모리아 산이라 추정되는 산으로 아들의 손을 잡고 올라갔습니다. 목사님은 아들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가슴에 칼을 하나 품었습니다. 그때서야 창세기 22장의 말씀이 책상머리에서 읽을 때와는 천지 차이가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산 위에 올라가서 칼로 아들을 찔러 하나님께 바친다고 생각하니 발걸음이 무겁고 두려워 산에 올라가 울었습니다. 그러자 아들이 “아빠 왜 울어?”하고 물었습니다. 목사님은 대답을 하지 못하고 얼버무렸습니다.
순종은 고통의 길입니다. 지금 견디기 힘든 고통으로 하나님이 당신에게 너무 하신다는 생각이 듭니까? 그렇다면 이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모리아 산에 올라가기 전에 하나님은 자신의 독생자의 손을 잡고 산에 올라 가셨습니다. 그 산의 이름이 갈보리입니다. 하나닝은 아들의 고통 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모리아에 가본 사람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어린 양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나의 가장 소중한 것을 하나님께 드려본 사람만이 하나님이 나를 위해 예비하신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를 안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가장 소중한 것을 바치기 전까지는, 모리아에 가기 전까지는 십자가를 안다고 함부로 말하지 마십시오. 순종의 길을 걸어본 사람만이 하나님이 자신을 위해 무엇을 준비하신 것은 바로 하나님 자신이었습니다. 성자 하나님 말입니다.
하나님의 길은 항상 우리의 최고의 상상력을 장난처럼 뛰어넘으신다. 하나님이 길을 내시면 모두가 “그런 길이 있었어?” 하며 입이 쩍 벌린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이기 때문에 다들 의심하지만,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면 놀라운 길이 보인다. 그러니 자꾸 자기가 생각하는 해결책으로 하나님을 설득하지 말고 이렇게 기도하라. “하나님, 제가 모르는 길을 보여주시옵소서. 하나님의 길을 보여주십시오.”
하나님이 만들고 인도하시는 길이 당장은 고난과 시련의 길 같고 패배의 길 같지만, 늦게 가는 길 같고 뒤처지는 길 같지만 그렇지 않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손을 잡고 한 걸음 한 걸음 가다 보면 폭풍이 몰아치는 그 길이 내가 생각했던 길보다 훨씬 빠른 지름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인생을 하나님의 시각으로 봐야 한다. 이 길이 저 길로 어떻게 연결되는지 우리의 지식과 경험으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신묘막측한 방법으로 우리가 모르는 길, 도저히 연결될 수 없을 것 같은 길들을 연결해서 반드시 길을 내신다.
가진 것이 없어서 남보다 좋은 길을 가지 못한다고 생각하는가? 하나님은 빈털터리 난민에 불과했던 이스라엘 백성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다.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길을 보여주신다.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더 겸손하게 기도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를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며 함께 팀워크를 이루어 걸어갈 수 있다. 하나님의 길을 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 앞의 방해물들을 치워주신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속받은 사람들은 이 길을 가면서 모든 원수 마귀의 공격에서 특별한 보호하심을 입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은 안전한 길이다.
하나님의 길이 그렇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길은 안전하고 튼튼한 길이다. 화려한 길이 오히려 위험한 길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소박해도 안전한 길로 우리를 인도하신다.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는 하나님의 길, 가장 빠르고 가장 안전한 그 길을 걷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란다.
로렌스 형제는 17세기 프랑스 사람으로 전쟁에 나가 다리를 다친 후 가르멜 수도원, 그곳에서도 남의 눈에 뜨이지 않는 주방에서 30년 동안 요리사로 봉사하며 냄비와 팬을 닦는 것 말고는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일을 거의 하지 않았던 수사입니다. 로렌스 형제가 원했던 것은 오직 하나였습니다. 임마누엘이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알고 사랑하는 것이었으며, 어떤 일이든 자신이 하는 일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훈련하는 데 온 힘을 다 하는 것입니다. 로렌스 형제는 책 한 권 쓰지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어떻게 하나님의 임재하심에 그렇게 민감할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수도원 안에서도 로렌스 형제는 낮은 지위의 수사였고, 특별한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닌 것처럼 보였지만 현재, 많은 사람이 로렌스 형제를 알고, 그의 행한 일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반면 로렌스 형제의 윗 사람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혹 그 윗 사람의 윗 사람의 이름을 아는 사람도 거의 없습니다.
우리에게 무엇 보다 중요한 것은 주님과의 인격적이고 친밀한 관계입니다. 이것을 깨닫는 사람만이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게 됩니다. 에녹은 성경에 아주 짧게 기록되어 있고, 그의 삶에 대한 세세한 기록조차 없는 사람이지만 성경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아주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가장 유명한 성경인물 중의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죽지 않은 사람이었다는 것과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 이었다는데 있습니다.
“동행”이란 말의 의미는 영어성경(KJV)에는 “함께 걷는다” 로 해석이 되어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함께 그의 인생의 길을 걸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지금 어느 곳에서 어떤 형편 가운데 있든지 오직 주님과 친밀히 동행하는 일에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 창 5 : 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