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TBC 방송국의
공채 6기로 선발되어
반공 드라마 "추격자"를
시작으로 연기 48년의
중견 연기자로써
이후에 "야인시대"
"인어 아가씨"
"모래성"
"간첩 리철진"등
다수의 연기를 선보인
정영숙 권사는
여의도 침례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계시는데요.
48년이 다 돼가는
연예계 활동 외에
월드비전 친선대사,
한민족복지재단 홍보대사,
한기총 여성위원회 부위원장,
한국갱생보호공단 홍보대사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정영숙 권사는
평북 선천이 고향이다.
할아버지가 장로였고
어머니는 권사인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북한에서 지주고
믿는다는 이유로
숙청을 당해서
가족과 함께 3살 때
남한으로 넘어왔다고
합니다.
어릴 때 신앙생활을 하면서
교회에서 성극과 성가대를
하였던 것들이 나중에
연기하는데 도움이 된것이
라고 하는데요.
그런데 중학교 졸업 때
큰 고난이 찾아오게 됩니다.
고등학교를 떨어지고
2차로 다시 넣어보니
숭의 여고 야간학교만
있어서 가기 싫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등록금이 없었는데
어머님이 가셔서
이곳은 미션스쿨이니
돈 없어도 받아달라고
학교 교장을 찾아가서
허락을 받기도 했답니다.
감사하게도 기독학교를
통해서 성가와 설교를
들으면서 기쁨으로
졸업을 하게 되었고
그 고난을 통해서
1차로 대학을 붙게 되면서
고난이 유익임을
고백합니다.
시편 119편 71편
"고난 당하는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래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1968년,
아버지와의 오랜 씨름 끝에
숙명여자대학교 사학과를
지원하게 된 정영숙 권사님은
이화여자대학교
진학을 원했던
딸의 노력과 간절함은
비싼 등록금으로 무마되고
결국 그녀는 숙명여대에서
대학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평범했던 그녀에게
뜻밖의 일이 찾아왔는데,
바로 탤런트 모집 오디션이었다.
6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당당하게 배우로서의
입지를 굳히게 된 그녀.
만약 이화여대를 택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정영숙 권사님의 고백입니다.
"그 당시 이화여대는
연기자 활동을 금했어요.
입학 당시 제 뜻대로
해주지 않은 아버지가
왜 원망스럽지 않았겠어요.
그런데 돌아보니
대학 진학뿐 아니라
어느 것 하나도
하나님의 인도하심 없이
이뤄진 일이 없더라고요.
제가 무지해서
이제야 깨닫게 된 것이지요.
이 일마저도
얼마 전에 깨닫고 이제야
아버지께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어요."
화려할 것만
같은 연기자 생활은
오히려 그녀에게
신앙 생활을 더욱 깊이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다줬다.
대학교 2학년 때
봉사단체에서
섬김을 나누는데
어느 날 인도자가 같이
돌아가면서 기도하자고 하니
창피해서 나가지 않았고
나중에 후회를 합니다.
대학 졸업 때 추천제로
탤런트로 나가게 되었는데요.
그 당시에 특별한 탤런트를
모집해 보자고 하였고
숙대에서 모집하니
친구들의 추천으로
돈을 벌고 싶어서
시험을 보게 되었고
친구들이 화장을 해주어서
임신복 같은 옷을 입고
시험을 보러 갔답니다.
그리고 합격을 합니다.
추격자에 뽑히게 되었고
카메라 앞에 두려워서
우물 우물 기도를 했답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직업이
아니지만 도와주세요"
정말 표정이 굳었지만
북한의 역할을 잘했다고
칭찬을 받게 되지만
하나님이 기도를
들어준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계기가 있었답니다.
결혼하여 십일조를 시작하게
되었고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 드린 것은
그대로 응답하셨습니다.
결혼할 때에 70만 원
전세에서 시작을 하였지만
십일조를 드린 것입니다.
잠언 3장 9-10절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이 말씀처럼 응답하셔서
60평 아파트를
응답 주셨답니다.
오랫동안 교회를
다녀왔지만
성경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다는 생각에
동료 연예인들과 함께
성경공부를 시작하게 됐고,
처음 연예인 교회가 생기고
고은아 집사님이 끌고 가서
같이 성경공부를 한 것이지요.
그런데 연예인 교회를 다니지
않았기에 자주 가기가 힘들었고
탤런트 정재순 씨가 전화로
성경공부를 하자고 하여서
좋다고 했는데 그곳이
성경암송하는 것이랍니다.
그런데 정재순 씨의
집에서 하는데
그래도 내가 수익이
더 많으니 우리 집에서
성경공부를 해야지
마음을 먹었는데
드디어 집에서
드리게 됩니다.
정영숙 권사님 집은
매주 붐비게 됐다.
성경공부를 위해 모인
동료 연예인들을 식사로
섬겼던 그녀의 섬김이
지금은 나라와 세계를
섬기는 일로 커져 갔다.
성경공부 모임은
98년 '한국TV연기자
기독신우회'를
조직화 하는 기초가 되었고,
기독신우회는
자체적인 예배와
성경공부 모임뿐만 아니라
어려운 이웃과 교회를
돌보는 일로 자라갔다.
정 권사는
연기자 신우회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연기자 신우회에서는
각종 좋은 일을 많이 한다.
교도소 방문,
군부대 방문도 한다.
‘건너가게 하소서’ ‘퀸 에스더’
‘영문 밖의 길’ 등 성극(聖劇)에도
자주 참여한다.
연기를 통해
복음을 전한다는 보람과
하나님 앞에 모든 걸 바쳐야
한다는 믿음으로 임하고 있다.
또 나라를 위한
기도모임인 ‘에스더 모임’과
‘땅 밟기 기도모임’
‘사랑의 쌀 모임’도 계속하고
있답니다.
정영숙 권사님이 특히
선교에 대한 비전을
품기 시작한 것은
30대 중반에 접어들어
말씀 암송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좁혀가기 시작을 했을 때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강하게 영혼의 울림을
주셨답니다.
정영숙 권사님의 고백입니다.
"그때 저의 영혼을
강하게 울렸던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라는
히브리서 4장 12절이었어요,"
연기자 생활을 계속하면서
하나님의 선한 마음을 계속
주셨고
이런 소망을 들어주셔서
월드비전의 친선대사가
되어 소말리아의 선교를
가게 되었고
1997년 국내 최초로
대북지원 사업을
실시한 한민족복지재단의
홍보대사로
북한을 방문하게 되었답니다.
사실 정영숙 권사님의
고향이 평북 선천이랍니다.
어릴 때 외 할아버지가 사업을
하셨기에 집안이 넉넉했는데
어느 날 북쪽의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아시고
아버지에게 할아버지는
남쪽으로 내려가서 자리를
잡으라고 하셨고
그러다가 전쟁이 나서
이산가족이 되었답니다.
그런 실향민의 아픔을
가진 정 집사님은
북한을 향한 선교에
가슴이 뜨거울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48년이 다 돼가는
연예계 활동 외에
월드비전 친선대사,
한민족복지재단 홍보대사,
한기총 여성위원회 부위원장,
한국갱생보호공단 홍보대사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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