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 리더 :: 비록 고난이 기다리고 있다고 할지라도​

중국 최초의
선교사인 로버트
모리슨 선교사가
있습니다.

 오늘날 중국교회가
엄청나게
부흥하고 있는데요.

처음에 이곳에
복음을 들고 간 것이
바로 영국 선교사
로버트 모리슨인데
그는 열다섯 살 때
이미 선교사의
꿈을 꾸었습니다.

그는 매우 총명한
머리를 갖고
있어서
어릴 때부터
주목을 받고
대학에서도
공부를 잘하여 교수가
그를 이끌어서 교수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때 그는
이런 고백을 합니다.

“예수님, 저는
주님을 위해
나 자신을 버렸습니다.

저는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신
말씀을 기억합니다.

주님, 저는 비록
고난이 기다리고
있다고 할지라도
‘복음이 가장 필요한
곳’에 가기를 원합니다.

주님, 이 일을
위하여 저를 인도하소서!”

25세 때 그가
중국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당시 중국은
 우리나라
대원군 시대처럼
 외국을
가장 적대시했고,

서양인의
중국선교가
전면 금지되었고
중국인들에게
중국어를 
 배우는 것조차도
금지되었습니다.

중국인이 만약
외국인에게
중국 말을 가르치다가
 적발되면 극형에
처함을 받았기 때문에
중국 사람들이
중국 말을 가르쳐 주
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곳에
들어가서 고생에
고생을 하면서,
창문도 없는 지하
화물창고에서
생활을 하며
중국 말을 배우고 
 복음을 전합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첫아들이
태어난 날 바로
그 자리에서 죽었고,
아내는 결혼한 지
6년 만에
세상을 떠납니다.

그리고 얼마나 
 핍박이 심한지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열매가 없었습니다.

7년 동안에
겨우 한 사람
전도했고요,

25년 동안에
열 명에게 침례를
베풀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 긴긴
세월 동안 눈에
보이는 열매는
나타나지
않았지만은

장차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을 것을
믿고
성경을 번역하기 
 시작했습니다.

언젠가는
천명 이상이
침례를 받을 것이다.

그런 꿈을
가지고
성경을 번역했는데,
이와 같은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모리스는 
 1834년에 죽기까지
‘열 명’의
중국인들에게
침례를 베풀었으며,
‘100년 후 1934년까지
천 명이 침례를 받는 것’이
그의 꿈이었다. 

 그러나 1858-1860년
중국 내륙이 열림으로써
‘교회의 확장’은
박차를 가하게 되었고,
1877년에 이미
회식자들의 수는
‘1만 3천 명’에 달하였다.

‘많은 수의
선교사들’이
이곳으로 왔으며,
‘대학교, 중고등학교,
병원, 의과대학’이 설립되었고,

모리슨이 처음
중국을 찾은 뒤
‘백 년’ 만에
‘3,445명의 선교사’,
‘33만 명의 중국인 신자’,
‘10만 명의 중국인
목사들과 교사들’이
생겨났다!

 백 년 만에
그가 꾼 꿈의
목표가
330배 이상의
그 부흥을
가져오게 되었고요.

오늘날
중국은 미국,
브라질 다음으로
가장 많은 크리스천을
가진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가
그 극심한
환난 가운데
번역한 성경은
중국 복음화의
초석이 되었고

이 중국어
성경을 가지고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왔던
퀼츨라프 선교사와
 토마스 선교사가
이 성경을 갖고
들어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모리슨
선교사를 통하여
위대한 일을
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중
국 난징에 있는
애덕 출판사에서는
성경을 1년에
천만 권씩 찍고
있으니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
큰 복을 주셨는데
이 모리슨 선교사의
뿌려진 적은 씨앗이
이와 같은 큰 열매를
맺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주님의 일을 할 때
어떠한 고난이
다가와도 참고
견디고 믿음으로
나가면 기적은
일어납니다.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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