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 리더 :: '십자가' 태그의 글 목록 (2 Page)

암이 재발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신앙의 위기가 왔어요.

교회도 가지 않고 집에서
울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제게 한 친구가 함께
다시 교회에 가자고 불렀습니다.

교회에 가서
목사님의 간증을 들으며
그 목사님에게는 내가 알지 못하는
하나님에 대한
깨달음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제게도 그 목사님처럼
정말 하나님을 알고 싶다는
새로운 소망이 솟아났고
묵상을 시작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이
제게 큰 도전을 하셨습니다.

“너에게는
금과 은이 너무 많다.
너는 네가 가진 것들을
나보다 더 사랑한다.”

저처럼 금과 은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가진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돈으로도, 지위로도,
우리의 힘으로도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들 때문에 절망하는
영혼들이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절대로 우리 힘으로는
죄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는 것을
그제야 깊이 깨닫게 되었어요.

베드로가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말했을 때,

걸을 수 없었던
다리에 힘이 들어가고,
절망이 소망으로 변하고,
겨자씨만 한 믿음으로
그가 일어나 걸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주님 제게도
그 겨자씨 만한
믿음을 주시옵소서.
금과 은이 필요 없습니다.
저에게 예수님을 주시옵소서.”

그 후 예수님이
저의 생명이 되시는
삶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제부터는
나를 사랑하사
자기 몸을 완전히 버리시고,

자기 몸을 찢으셔서
나를 덮어 주시는,
아무것도 덮어 줄 수가 없는
죄를 덮어 주기 위해서
자기의 삶을 완전히 버리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 예수님의 사랑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겠습니다.”

출처:이어령이 쓴
<지성에서 영성으로>중에서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아래는 베스트 셀러였던
 "주님과 동행하십니까"
(후안 카를로스)의 글입니다. 

하늘에는 지구상에 살았던
 모든 사람들의
신상명세서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식으로
그것을 기록하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기록되던
당시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계산하셔야 할 갖가지 것들을 
모두 책에 기록하고 계시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저의 신상명세서 첫 장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을 것입니다. 
"후안 까를로스...
머리카락은 6,276개..."
 이런 식으로 모든 것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저에 대하여는
더 이상 물을 것이 없습니다.

두 번째 페이지에는 
하나님의 모든 법들,
특히 십계명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다음 페이지부터는 
제가 각 계명을 범할 때마다
표시를 해 놓을 수 있는 칸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저의 신상명세서는
  상당히 두껍습니다. 

맨 마지막 페이지는
차용증서입니다.
"후안 까를로스는
제 1계명을 8,322회 
범했으며, 제 2계명을
5,456회 범했고,
제 3계명은..., 제 4계명은..., 
그러므로 후안 까를로스는
곧장 지옥으로 가야 한다." 

그런데 제가
주님과 함께 죽었기 때문에
주님은 저의 신상명세서를 
꺼내드셨습니다.
그리고 커다란 스탬프 도장에
자신의 피를 듬뿍 묻히시더니 
매 페이지마다
"폐기됨"이라고 찍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쓰레기는 
하늘나라에 두실 수 없기 때문에
영원히 버리셨습니다. 
주님은 저의 신상명세서를
십자가에 못박아 버리셨습니다. 

누근든지 후안 까를로스의
신상명세서를 보고 싶으면
자기자신의 십자가를 
넘어가야 하는데
그것은 이미 영원히
지워진 사건입니다.

이제 우리는 
갚지 못할, 감당못할 빚을
지은 존재들이 아닙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주님과 함께 우리
자신의 완전한 평화를 누리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눅 14:27)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귀찮기도 하고 고달프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십자가지기를 피합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지는 순간
예수님의 영광이 임합니다.

십자가는 결코
무겁고 힘든 짐이 아닙니다.

내가 죽고, 예수님이
내 안에서 사시는 축복입니다.

나의 가치가
극대화되는 놀라운 시간입니다.

저는 스키에 대한
좋지 않은 추억이 있습니다.

처음 스키를 타던 날,
뭣도 모르고 리프트를 타고
정상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니 까마득했습니다.

스키를 타고 내려오는데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아무리 멈추려고 해도
멈추지 못하고
계속 미끄러져 내려가다가
결국 중심을 잃고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심지어 가랑이가 벌어지면서
앞으로 고꾸라지기까지 했습니다.

그렇게 내려오니 온 몸에
골병이 들어 후회도 들었습니다.

스키가 무서워지고 빨리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이것이 스키에
대한 저의 첫 경험입니다.

그 후 지인의 간곡한 요청으로
스키를 배우게 되었는데
막상 배우고 나니
스키의 세계가 달라 보였습니다.

일단 스키에 몸을 맡기니
그렇게 신나고
재미있을 수 없었습니다.

스키에 내 몸을
맡기고 타면 신나지만,
내 힘으로 억지로 멈추려 하면
골병만 든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십자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십자가가 힘든 것은
십자가가 무서워서가 아닙니다.

짊어지지 않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벗으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더 무겁고
힘겨우며 괴롭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짊어지면 영광과
보람과 존귀가 있습니다.

그래서 무겁지 않습니다.

십자가 없는 신앙을
바랄 것이 아니라
기꺼이 십자가를 짊어짐으로
영원한 영광과 기쁨에
참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내게 주신
십자가를 짊어지면
참된 영광과 보람과 생명이
기다릴 것입니다.

김우진
<짊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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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한국가정사역연구소는
언젠가 이런 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습니다.

‘나에게 상처를 줬고
나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사람은
누구인가’를 묻는 조사였습니다.

가장 많은 답변은
‘아버지’(40.7%)였으며
‘어머니’(32.1%)
‘집안 식구’(27.2%)라는
응답이 뒤를 이었습니다.

우리는 이처럼
가장 가까운 존재인
가족들에게도 상처를 받곤 합니다.

그리고 가족 외에
여타 사람들로부터도 상처를 받습니다.

상처는 오랫동안 가슴에
‘삶의 쓴 뿌리’로
남아 인생을 뒤흔듭니다.

쇠사슬이 돼
우리 삶을 옭아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러한 상처에
얽매이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고통당하면서도
자신에게 고통을 준 사람들을 위해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에서
‘상처가 난 동물들은
어떻게 상처를 치료할까’라는
주제의 방송을 내보낸 적이 있습니다.

방송에 따르면
백수의 제왕인 사자는
다른 사자와 싸우거나 사냥을 하다
다치면 바위로 올라갑니다.

 바위 위에서 사자는
햇볕이 상처에 내리쬐게 드러눕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사자의 상처는 햇빛만으로도 아뭅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저마다 상처가 있습니다.

우리의 빛인 주님을
향해 상처를 드러내 보입시다.

주님의
‘은혜의 빛’이 여러분을 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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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한번은 첫째 동연이가
죄책감으로 괴로워했던 적이 있다.

​ 그때 내게 울면서 이렇게 물었다. 

“아빠, 죄를 지으면
안 된다는 걸 아는데
자꾸 죄를 짓게 될 때는
어떻게 해야 해요?” 

어쩌면 우리 가운데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보편적인 질문일 것이다.

불안해하지
말아야 하는 걸 알면서도
자꾸 불안해질 때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시간이 지나고 깨달음이 생기면서,
이것은 밭을 가는 것과 비슷한 원리로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봄에 밭을 갈고
농작물을 심고 난 후,
겨울이 지나면 땅이 녹으면서
더 깊숙한 곳에 있던
돌들이 올라온다.

그러면 다시 그 돌들을
제거하기 위해 밭을 갈아야 한다.

다음 해에도 밭을 또 갈아서
올라오는 돌들을 제거해야 한다.

이렇게 여러 해
같은 일을 반복해야 한다.  

우리가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면
일차적으로 표면에 드러난
우리의 죄의 문제를 수술해주시고,
만져주시고, 치유해주신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더 깊숙한 곳에 있던
문제들이 차례로 올라온다. 

 그것들은 하나님께서
지속적으로 다뤄주셔야 한다. 

진리가 우리 삶에
깊숙이 스며들고,
우리가 그 진리에
자연스럽게 반응하며
살아가기까지
여러 번 다뤄주셔야 한다.

그렇게 우리의 내면이 깊이를
더해가면서 지속적으로
 더 깊은 치유를 누리기에 이른다. 

깊은 병의 경우
먼저 증상을 다스리고
어느 정도 회복된 후에
더 깊숙한 병의 뿌리를
다루어가야 하듯이,

하나님께서
우리의 문제를 다루실 때도
시간의 간격을 두고
깊이를 더해가시는 걸 본다.  

예수님의
임재 안에 거할수록
내 자아는 계속 작아진다.

불안하던 자아가 십자가에
드려지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무한한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한다.

이것이 내려놓음의 과정이다.

내려놓음은
일회적 사건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분의 임재로 나아가는
연속적인 과정이다.

그 가운데
살아가는 게 은혜이다. 

아브라함이
인도하심을 받은 가나안은
약속의 땅이기도 했지만
기근이 기다리고 있는 땅이었다.

후대의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그곳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 동시에
아낙 자손과 같은 거인들과
전쟁해야 하는 땅이기도 했다. 

기근과 전쟁 가운데
우리의 죄성이 드러난다.

우리가 싸워야 할
궁극적인 대상은
기근과 거인들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죄다.

그것을 보기까지
고난과 좌절과
아픔의 시간이 요구된다.  

마음이 무너졌을 때에야
어느새 하나님이 아닌
나 자신을 바라보고 있음을
확인했다.

번번이 넘어지고 좌절할 때
내 기대의 시선은 어김없이
내 능력과 소유에 머물러 있었다. 

​ 기근과 고난은
나 자신을 바라보고
주목하는 삶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삶으로의 전환을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잠시 허락하시는 도구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고린도후서 4장 16~18절]
​이용규선교사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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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중국의 유명한 전도자이며
신학자인 ‘워치만 니’의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가 하루는 꿈을 꾸었습니다.

배를 타고 노를 저어 가는데,
앞에 큰 암초가 나타나서
가로막습니다.

안간힘을 써 보지만
 어떻게 극복을 못하고
 꿈속에서 이 난관을 극복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워치만 니야!
내가 암초를 없애 줄까?
아니면 강물을 많게 해서
 넘어가게 해 줄까?”라고
 물으시는 그 때에

 워치만 니는
 강물을 많게 해서
암초를 넘어가게 해
달라고 구했더니
 강물의 수위가 올라가면서
능히 그 암초를 넘어갔고
 그 다음에 꿈을 깼다고 합니다.

워치만 니는 그 꿈에서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것처럼

 그의 평생에
 수많은 암초들을 만났으나,
넘쳐흐르는 은혜의 강물을
힘입어 넉넉히 이겨냈습니다.

우리의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장애물,
환난과 궁핍이
기다리고 있지만

 넘쳐흐르는 은혜의 강물에
 몸을 맡기기만 한다면,
우리는 넉넉히 이겨내고
승리하는 복된 삶을
 살 수 있을 줄로 믿습니다.

십자가에서 흘러내리는
 은혜의 강물에
 몸과 마음을 던지시는 결단이  
모두에게 있어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서정오목사의
설교중에서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십자가’ 하면 가슴이
 콱 막히면서 힘들어집니까.
당연한 일입니다.
 
십자가는 본래
 사형틀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십자가가 우리 믿는 자들에게는
놀라운 행복의 원천이라는 사실입니다.

십자가는 예수님께서
 죽으심으로 우리가 살아난 곳입니다.
 
이사야는 노래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 53:5)

사도 바울도 고백했습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위해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
 곧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치유를 얻으며,
 좋은 것을 얻은 것입니다.

십자가는 또한 내가 죽어 
모두가 사는 곳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갈 2:20).
 
십자가는 예수님만이 아니라
우리가 죽어 모두가 사는 축복의 장소입니다.
십자가는 미움과 정죄, 분노가 죽고 사랑과
 배려와 긍휼이 꽃피는 복된 장소입니다.
십자가는 행복입니다.

서정오 목사
(서울 동숭교회)
<겨자씨,국민일보>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구원의 주님!
주님의 수난으로 저희가
새생명을 얻게 됨을 감사드립니다.

주님께서
고난의 쓴잔을
받지 않으셨더라면
저희들은
여전히 죄의 종 노릇 하며
마귀의 자식으로
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희 대신
주님이 질고를 지시고
징벌을 받으시고
찔림과 상함을 받으셨기에,

저희가 나음을 입었고
죄사함받고 구원을
소유한 축복된 자녀로
살게 되었음을 믿나이다.

십자가에
달리셨던 주님을 기억하고,
주님의 그 위대하신
사랑 앞에 늘 감격하며
주님을 사모하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께서 고난의 쓴 잔을
받으신 고난주간이 시작됩니다.

호산나, 호산나, 외치며
주님을 찬양하던 무리들이
결국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배반자들이 되었듯이,

오늘 저희들도
주님을 찬양하던 입술로
주님을 부인하고 저주하는
일이 생길까 두렵습니다 

오, 주님!
저희 속에 있는
죄악의 쓴 뿌리들을
제거시켜 주시고,

주님을 위해 아낌없이
향유를 부은 마리아처럼,
온 마음으로 주님을 찬양하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피묻은 십자가를
언제나 사랑하게 하시옵고,
주님께서 받으셨던
고난의 쓴잔을 이제
저희가 받게 하시옵소서

주님이 피로 값주고
사신 교회도
종교적인 겉치레들로만
가득 찬 외식하는
교회가 되지 말게 하시옵고,

 진정으로
주님의 이름을 드높이고
죄악의 사슬을 풀어
생명과 자유를 주신
주님을 힘껏 찬양할 수 있는
교회가 되게 하시옵소서.

특별히 간구하옵기는,
이 나라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경제가 어려워 삶에
고달파 하는 사람들에게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 주시어
그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정치와 사회가
안정되게 하여 주옵소서.

특히북한의
핵무기 보유로 인해
불안해진 한반도를
위기에서 건져주시고
분단된 이 민족이 속히
통일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스스로 버리는
일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갈 길 몰라 방황하는
심령들이 자유와 평화를
주시기 위해서
오신 주님을 만나게 하시고,
천국 복음이 임함으로
주님의 복된 소식을
깨닫게 하시옵소서.

주님의 교회를 사랑하며
몸을 드려 순종하는
성도들에게 주께서 주시는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옵소서!

이 예배의
시종을 주님께 맡깁니다.

예배드리는 동안
평화와 구원의 왕이신
주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는 시간이
되게 하시옵고,

말씀을 강론하시는
목사님도 성령의 능력으로
붙들어 주시옵소서

저희를 죄악에서
구원하여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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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