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 리더 :: '간증 모음/일반인' 카테고리의 글 목록 (2 Page)

람은 누구나 살면서 실패를 경험하게 됩니다. 미국인들이 역사상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으로 평가받는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은 실패의 연속을 경험한 대표적인 인물이기도 합니다. 아버지 토머스 링컨은 가난한 농부였고 어머니 낸시 행크스 링컨은 미혼모의 딸이었으며 둘 다 문맹이었습니다.
  
링컨을 연구한 전문가들은 링컨이 27번의 실패를 거듭했다고 합니다.
 
15세 - 집을 잃고 길거리로 쫓겨남.
23세 - 사업 실패.
24세 - 주 의회 선거에서 낙선.
25세 - 사업파산 (이 빚을 갚기 위해 17년간 고생하였음).
26세 - 약혼자 갑작스런 사망.
28세 - 신경쇠약으로 입원.
30세 - 주의회 의장직 선거에서 패배.
32세 - 정부통령 선거위원 출마 패배.
35세 - 하원의원 선거 낙선.
36세 - 하원의원 공천 탈락.
40세 - 하원의원 재선거 낙선.
47세 - 상원의원 선거 낙선.
48세 - 부통령 후보 지명전 낙선(100표차).
50세 - 상원의원 출마 낙선.
링컨이 실패를 거듭하자 그의 친구들이 모든 칼과 면도날을 그의 주변에서 다 치워버릴 정도였다고 합니다 .

그러나 링컨은 절망의 감옥에 갇혀있지는 않았습니다. "난 낙선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곧바로 음식점으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배가 부를 정도로 많이 먹었다. 그 다음 이발소로 가서 머리를 곱게 다듬고 기름도 듬뿍 발랐다.
 
이제 아무도 나를 실패한 사람으로 보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난 이제 곧바로 또 시작을 했으니까...배가 든든하고 머리가 단정하니 걸음걸이가 곧을 것이고
 
목소리는 힘이 찰 것이다. 내 스스로 다짐한다. 다시 힘을 내자. 에이브럼햄 링컨!" 
 

마침내 링컨은 52세되던해 16대 대통령에 당선되고 이듬해 또 한번 대통령에 재선되었습니다. 링컨의 실패는 실패가 아닙니다. 실패를 거듭하긴 했지만 실패한 사람은 되지 않았죠. 오히려 실패를 밥먹듯 했기 때문에 실패안하는 법을 을 알 수 있었던거죠.
 
어떻게 성공을 하느냐가 아니라 실패를 어떻게 딛고 일어서느냐였습니다.
수많은 실패와 좌절 속에서도 도전과 희망을 포기하지 않은 그의 승리였습니다.

 기도의 사람

아브라함 링컨, 
그는 거듭된 실패와 불행을 통해 
겸손과 인내와 강한 믿음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링컨은 성경의 사람이었을 뿐만 아니라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기도 소리에 
친근해 있던 링컨은 대통령이 되어서도 
기도하는 일을 매우 소중하게 생각하였습니다.
 아침이면 기도로 
영혼의 호흡을 시작했으며 
저녁이면 커튼을 닫듯이 기도로 
하루의 일과를 마감했습니다. 
그는 하느님께 기도하는 일이야말로 
다른 어떤 일보다 우선되는 일이며,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는 도구라고 믿었고 
그의 믿음대로 그는 기도를 통해 많은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그 중 노예해방을 위한 남북전쟁 때의 이야기입니다.

 제퍼슨 데이비스를 비롯하여 
명장 로버트 리, 스톤 잭슨, 잭스 스튜어트 등 
막강한 지휘관들이 모두 남부 연합군을 이끌었습니다.
반면 유능한 지휘관 부족으로 북군은 계속적으로
남군에게 패전을 거듭하고 있었습니다.
그로 인하여 민심은 분열되었으며
일부 진영에서는 탈퇴의 기미가 보였고,
극단주의자들의 견제 속에서 링컨은 현명하게
균형을 유지해야만 했습니다.
거듭되는 패전의 소식 속에서 링컨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도우심과 지혜를 간구했습니다.
오직 북군에게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는 
기도 밖에는 없었습니다.

 링컨은 쉬지않고 기도했으며 그의 간절한 기도는 자신과 
전 국민의 금식기도로 이어졌습니다.
전쟁의 승패가 사람의 지혜나 군사의 수나 무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의 손길에 있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북군의 승리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대통령 각하 이제부터 아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 북군의 편이십니다."

 그 말을 들은 링컨이 대답했습니다.
 "오직 나의 염려는 
내가 하나님 편에 서 있는가 하는 것일세.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서 있기만 하면 
언제나 하나님은 우리 편이 되어 주신다네. 
하나님께서는 성경의 다윗을 통해서 
내게 그 사실을 깨우쳐 주셨네." 
 이처럼 링컨은 아무리 어려운 상황 일지라도 
하나님 편이길 소원했고 하나님의 기쁨이 되길 바랬습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삶을 책임져 주실 것이라고
굳게 믿었기 때문입니다.

 링컨은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며
자신을 하나님께 굴복시켰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링컨의 마음을 아셨고 
그의 마음을 받아 주셨으며
그의 편이 되어 주셨습니다.
 링컨의 생애는 수많은 슬픔과 실패의 연속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링컨의 생애를 통하여 하나님을 의지하고
순종하는 한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볼 때 어쩌면 링컨 그는 고통과 슬픔의 세월로
생의 많은 시간을 허무하게 보냈다고 생각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처음과 끝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링컨은
하나님의 큰 일을 맡길 수 있는 귀하고 큰 그릇이었습니다.
그가 하나님께 끝까지 순종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밤 늦은 야간에도
백악관에서는 하나님께 향한 
겸손하고 간절한 기도의 흐느낌이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런 링컨의 모습을 보았던 그의 부하들은 대통령에게
더욱 충성하며 사랑을 다짐했습니다.
백악관을 기도실로 만든 아브라함 링컨,
그의 삶은 하나님 앞에서 아름답고 빛나는 보석이었기에
우리의 영혼을 감동시킵니다.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 지선아 사랑해"란
​이 책의 주인공인
이지선 씨가 미국 UCLA에서
사회복지학 박사가 됐습니다.

23살의 나이에
교통 사고로 전신에
3도 중화상을 입었지만
그녀가 16년 후,
미국 UCLA에서
사회복지학 박사가
된것이지요.

최근에는 한동대학교
상담심리사회복지학부에
교수로 임용되었답니다.

이꿈을 이루기까지의
과정은 너무 힘들고 어려움이
있었지만 결코
꿈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선것입니다.

그 삶의 중심에는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은혜와
감사가 넘친다는 사실입니다.

지금부터 10년 전에,

이화여자대학교 유아교육과를
다니던 이지선이라는 학생이
공부를 마치고 오빠와 함께
집에 돌아 가다가
신호대기 중에 서있는데,

술에 만취한 분이 운전하고
오다가 들이받아 가지고
차가 불에 휩쓸린 겁니다.

그래서 그 소녀를,
그 자매를 끓어 냈더니
온몸이 불에 다 탔어요,

55%가 타고
3도 화상을 입었습니다.

처음에 병원에 왔을 때
온몸이 숯 덩어리가
돼서 오니까,

의사 선생님이
 “쯧, 쯧, 쯧.”
아까운 생명이 하나 여기서
끝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도와주셔서 7개월 동안
입원하면서
수술을 30차례를 받고,
그 고통의 순간순간을
넘어서서 믿음으로
승리한 것입니다.

하나님 은혜를
체험한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가
그에게 임한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거룩한 꿈을 가졌습니다.

2004년 미국에
유학을 가서 보스턴 대학에서
재활상담학 석사학위를 받았고
컬럼비아 대학에서
사회복지 석사학위를 받았고
올해 9월에는 UCLA에서 사회복지
박사과정을 공부를 하여
드디어 박사학위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 책에 소개된 모습에는
 순간순간 모든 것에
대해 감사하고 있어요,

자기가 교통사고가
 나기 전까지는
크게 하나님께
감사하지도 못했고,
하나님의 큰 은혜를
체험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온몸이 다 타버려 갖고
완전히 절망적인 상태였는데,
어느 날 세수하고 나서
눈 위를 만져 보니까
눈썹이 나는 거예요.

“허.” 너무 감사해.
눈썹이 하나 나는 걸 가지고.
  온몸이 다 타서 그 예쁘고
아리따웠던 자매가 저렇게
조금 이상하게
변하게 됐지만은

그래도 감사하고,
감사하고,
그저 감사하고.
그래서 그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까?”
하는 질문인데
자긴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자기가 이전에 체험할 수 없는
놀라운 은혜를 체험했기 때문에
주님은혜 너무 감사해서
지금이 좋다는 거예요.

이런 고백을 합니다.

“하나님이 재처럼
타버린 저에게 화관을
씌워주신 것 같아요.

일그러진 제 모습이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다는 게 감동이에요.

고난이 축복이라고
이제는 크게 말할 수 있어요.

눈물은
눈물로만 닦아줄 수 있고,
아픔은 아픔으로만
위로할 수 있어요.

하나님은 지금
이 모습이 아니고는,
전할 수 없는 메시지를
저에게 전하게 하신 거지요.

정말이지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지않아요."
 
지금 조금 문제와
어려움을 당한 것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중에 얼마나
큰 축복이 오는지
헤아릴 수 없는 큰 은혜로
우리에게 갚아주신다는 것입니다. 
​ 
이지선교수로 한동대에
임용되면서 인터뷰에서
이런 고백을 합니다.

"시편 78편의 말씀처럼,
 다윗이 양들을 기를 때
목자로서 마음의 온전함과
손의 능숙함으로 했다고 했는데,
제 마음도 사랑으로,
정말 능숙한 지식과 기술을 가지고
그렇게 지도하고 싶다"면서

또 마지막으로 이런
고백을 합니다.

"동굴이라고 느껴질 때
가장 힘들었던 게
'이게 다인가보다,
이게 끝인가보다'라는
 절망이었습니다.

그런데 절대로 거기서 끝이라고,
지금 내 모습이 전부라고
단정하지도 말고, 판단하지도 말고,
그냥 조금만 더 힘을 내서
조금만 더 움직여갔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그런 시간들을
지나고 와봤더니, 
 하나님은 인생을,
또 고난을 결코
 동굴이 아닌 터널로 허락하신 것"
이라고 했다.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순회 선교단을 이끄시며
"십자가의 완전한 복음"
"복음을 영화롭게 하라"
"믿음은 분투다"
"다시 복음으로"
여러 책을
출간하신
김용의 선교사님이 계십니다.

이 김용의 선교사님은
예수 믿고 나서
하나님의 손에 붙잡힌
다음에 완전히 180도
달라진 인생을 살았습니다.

다섯 자녀를
다 선교사로 키워내고
온 세계를 다니며
복음을 전하는 귀한
선교사님이 되었는데요,

 본인은 태어날 때
술집 사장님의
아들로 태어났어요.

그래서 어릴 때부터
입을 열면 처음부터
끝까지 욕을 하는
그러한 바닥에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험하디 험한 인생을 삽니다.
보는 것이
죄요, 듣는 것이 죄요,
사는 삶이 죄의 모습들입니다.

아버지는
밤낮 술에 취해가지고
온 집안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중학교 다닐 때
그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남긴 재산도 없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니
모든 것 다
빚잔치해버리고
빈손이 되었습니다.

그때로부터
망가진 청년기의 삶을
살았다고 말합니다.

사람을 증오했고,
세상을 불 지르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집 한 칸 없이
주민등록증도 없는 사람들이
사는 뒷골목에
내동댕이쳐졌습니다.

그곳은 술,
살인, 마약, 음란이
전혀 뉴스거리가 되지 않는,
매일 일상이
되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자살할 이유가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술집 아들이라는
부끄러운 혈통,
지긋지긋한 가난,
중학교 중퇴라는 학력 등
전부 저에게는
자살할 이유였습니다.”

이 보잘것없고
볼품없는
마른 막대기 인생에
예수님이 찾아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날 사랑해서,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내대신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면서까지 날 사랑했다고?

저는 이 말만
가지고도 평생 감동하다
죽어도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말은 저에게
이렇게 들렸습니다.

‘너는 재수 없이
태어난 망한 술집
아들놈이 아니다.

너는 내가 널 대신하여
죽을 만큼 소중한 사람이다’

그때 저는
하나님의 사랑에
홀랑 미쳤습니다.”
 

김용의 선교사님.
그 아들이 김선교입니다.

막내의 이름을
아예 선교로 지었어요.

아들을, 2남 3녀를
낳았는데
 다 선교사가 되라고.
그런데 마지막 아들한테는
이름까지 선교로 붙였어요.

그런데 이 아들이
『믿음은 분투다』라고 하는
책을 냈습니다.

늦둥이 막내
이름을 선교라고 짖고
어릴 때부터 철저하게
신앙 교육을 합니다.

성경 읽기로 한글을 가르치고,
매일 아침 학교 가는 아이에게
“밥먹었니?”가 아니라,
“말씀 묵상했니?”라고
물을 정도로
철저하게 신앙교육을 했는데.

아 얘가 사춘기가 되니까
방황하기 시작하는 거에요.

중학교 2학년 때
중2병에 걸려가지고
부모님의 마음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모릅니다. 

 이 아이가
중학생
2학년이 되고 나니까
싸움하는 아이들과
어울려 싸움하고
얘들 괴롭히고
담배도 피고 막 외박도 하고
사고를 치는 겁니다.

그런데 17살 때는
고등학교를 자퇴해 버렸어요.
영적 방황을 계속 합니다.

밤에 가위에 눌리고
정신과 치료도 받고
신경안정제나 수면제를
먹을 정도가 되었어요.

자살하려고
나무에 목매달러 갔다가
다른 사람이 발견해서
생명을 건지기도 했습니다.

십년동안 방황했어요, 

 십년동안 부모님의
마음이 너무 힘든것입니다.

그런데 십년 후,
주님이
그 아들을 찾아오셨습니다.
주님을 만났습니다.

아들이 고백합니다.

“그동안 내가
답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은
답을 내게서
찾으려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연약해,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이런 식으로 계속
나를 주목하니
답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답은 너무도
단순하고 명확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
복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있었고,
내주하시는 성령이
계신 것이었습니다!

아무 소망이 없던 저는
이천년 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실 때 함께 죽었고,

사흘 만에
다시 부활하실 때
함께 예수 생명으로
부활했음을 믿음으로
붙들게 되었습니다!”

그 아들이
『믿음은 분투다』라는
책을 내었을 때,
그 아버지가
추천사를 썼습니다.

아버지의 추천사입니다.

“젊은 날의 성장통을 겪으며
영혼의 내적 투쟁을
치르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이
때론 안타깝고 조바심이
나는 때가 있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철없는
어린 아들로만 생각하고
믿음 없이 염려하던 부모인
저희가 심히 부끄러워졌습니다.

운동회 날 달리다가
넘어진 아들에게 보내는 응원처럼,
‘일어나! 다시 뛰어!
괜찮아! 승리할 수 있어!‘라고
 목이 쉬도록 외치면서
함께 트랙을 뛰고 돌며
두 팔을 휘두르던
흥분의 그 순간처럼,

’그래! 복음이면 충분하지!
예수면 다지!’라고
외쳐봅니다!”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마약치료·재활공동체
 ‘소망을 나누는 사람들’을
만든 신용원 목사님은
17년째 마약 중독자
재활을 돕고 계십니다.

3대째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 태어났지만
아버지께서 갑자기 심장마비로
돌아가셔서 가세가
기울게 되자 방황을 했습니다.
전교 1등 하던
그 학생이 삐뚤어 나갔습니다.

그래서 부잣집
아이들 돈을 뺏고
싸움하다가 마약까지
손을 대게 되어서
마약중독자가 되고
폭력사건에 연루되어
수배자가 되어 도망을
다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숨을 곳을 찾던 중
숨어들어간 곳이
오산리 기도원입니다.
이 오산리 기도원에서
살아계신 주님을 만납니다.

41세에
청상과부가 되어서
늘 자기를 위해서
눈물로 기도하신
어머니 기도가 떠올랐습니다.

그때에 그가 기도원에서
하나님께 매달려 통곡하며
부르짖고 기도할 때
성령이 임했습니다.

이와 같이
그는 고백합니다.
“하늘을 보며
살려달라고 빌었죠.
‘어머니가 맨날
하나님은 살아 계시다는데,
나에게 그걸 믿게 해주시면
평생 배신하지 않겠다고’요.

그런데 정말
‘어마어마한 불덩어리’가
몸 안에 쑥 들어오는 거예요.
방언이 뭔지도 모를 때였는데
제가 ‘방언’을
제가 하고 있었어요!

8시간이나 울다가
웃다가 하며 뒹굴었어요.
아침에 나뭇잎이
흔들리는 걸 보는데,
그게 그렇게
아름다운 거예요.
그때부터 거짓말처럼
마약이 끊어지더라고요!”

신학을 공부한 다음
 17년 째 자기처럼 마약 때문에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구해내는
 귀한 사명을 감당하고 있고,
2005년에는 세계 마약의 날
기념국민근정포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는 이런 고백을 합니다.
“‘복음’으로 안되는 게
어디 있습니까?
마약보다 강력한 체험은
‘성령 체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신 목사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던 중독자및
그 가족 40여명을 모아
마약치료·재활공동체 ‘소망을
나누는 사람들’을 만들었습니다.
​  재활을 위해
인천시 남동구
모래내 시장에 떡집과
순대공장을 만들었다.
 이후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가질 수 있도록
‘고추장에 빠진 순대’라는
프랜차이즈 회사를 차렸습니다.

 신 목사는
프랜차이즈가 성공한다면
언제가는 마약사범을 노동으로
교화시킬 수 있는 전용교도소를
운영할 꿈을 갖고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성령 충만 받고
주님이 주신 희망을 품고
모든 문제와 어려움을
넉넉히 잘 이겨내고
승리하는 위대한
하나님의 일꾼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에베소서5:18)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현재 멕시코에서
15년 동안 복음을 전하고 있으며
현제 멕시코 몬테레이의
예수 사랑교회를 섬기고 계시는
권에스더 선교사님 가족 이야기입니다.

최근에 『부탁합니다
제발 자살하지 마세요』라고
하는 책을 썼습니다.
​ 
집안에서는 주부이고
나가면 선교사역을
감당하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음성을 통해서
사명을 주셔서
남편을 따라 선교지인
멕시코에서 사역하고
감당하고 계십니다.

남편 김정원 선교사님은
의료선교사로 멕시코
몬테레이 지역에서
"김 덴탈 센터"라는
치과병원을 하며
멕시코 누에보 레온
주립 치과대학교수로
사역을 하시는 데요.

예수 믿기 전에는
그 과거가 그 삶
자체가 절망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술만 먹으면
와서 폭력을 행사합니다.
 그렇게 술만 마시면
폭력을 행사하고
어떤 때는 가족들 모아놓고
불 질러서 다 죽자 그러고.
그러다가 아버지가
집에서 자살을 합니다.

둘째 오빠는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남묘호렌게쿄에 빠졌는데
우울증이 더 심해져갖고
18살 때 산에서 자살합니다.

 큰 오빠는
 불교에 빠져있었는데
25살에
한강에서 자살을 합니다.

 무려 7년 안에
6명 가족 중 절반이
자살한 것입니다. 

그때 어머니께서 전도 받고
교회 나가서 부흥회 참석했다가
 성령의 불을 받습니다.
성령 받고 불을 받으면서
변화되어서
가정의 운명이 바뀌는데요.

그때 상황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날 하나님은 어머니를
인격적으로 만나주셨습니다.
성령의 강한 불이 임하면서
방언이 터져 나왔습니다.

‘사랑하는 내 딸아!
더 이상 슬퍼하지 마라,
울지 마라!’ 하나님께서는
이 음성으로
두 아들을 자살로 잃은
어머니의 갈기갈기 찢겨진
마음을 어루만져 주셨습니다!

그 순간부터 어머니는
‘오직 예수! 오직 예수!’ 하며
 전도하러 다녔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며
 자신의 삶을 비관했던 어머니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나서 자기처럼
 절망적인 현실 속에 빠져 살고 있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건설현장에 식당을 경영하면서
노숙자들과 독거노인에게
무료 음식을 대접하고 전도하고,
한글도 잘 모르는데

 더듬더듬
성경을 일 년에 두 번씩 읽고,
새벽 기도 주일성수를 빠지지 않고.
그래서 하나님이 축복해주셔서
좋은 식당도 개업하게 해주시고.

식당에 오는 사람 너무 전도해서
“여기가 식당이야, 교회야?”
할 정도로 열심히 전도하게 되었고요.

물질 축복도 많이 받아서
장막 터도 마련하게 되고,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자를
 돌보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한남동에 ‘새 생명의 집’이라는
 공동체를 만들어서

노숙자, 교도소 출소자,
독거노인, 장애인,
소년소녀 가장들을 돌보고요.
 10년 후에 그 결과
 한남동의 천사로 불리며
장한 어머니 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권에스더 선교사님도
불과 7년 사이에
3명의 가족이 자살함으로 인해
 늘 죽음의 그림자와 싸워야 했습니다.

 "이번엔 네 차례야!"
이러한 악한 소리와 신음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내 딸아,
 죽지 마라. 죽지 마라"
 하나님의 이 음성을 붙잡은 그녀는
목에 피가 나도록 기도하기
시작하면서 영안이 열리게 되었다

그리고
신학을 공부한 다음 은혜를 받고
치과의사 남편을 만나가지고
멕시코에서 선교사로 사역하고 있습니다.

 셋째 오빠도 성령 받고
변화되어서 허리디스크를 치료받고
신학교 가서 목사가 되어서
멕시코에 가서
선교사로 사역하고 있습니다.

연로하신 어머님은
23년 전
이와 같은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때가 되면
나의 모든 재산을 정리해서
하나님 앞에 바치겠습니다.”

기도한 대로
한남동 집을 처분하여
‘십자가 사랑’이라고
하는 출판사를 세우고
재정은 선교, 구제, 교회를 세우며
복음을 전하는 곳에만 사용하고,
미국, 멕시코에 교회를 설립하고,

멕시코의 죽어가는 어린 영혼들을
돌보기 위해서 고아원을 설립하고,
그리고 마지막에 자기가 죽은 다음
본인의 유골을 그곳에
뿌려달라고 하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선교사님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남아 있는 우리 가족이
 예수님 앞에 나왔을 때,
죽음의 골짜기에서
건져주셨을 뿐 아니라,
푸른 초장으로
친히 인도해주셨습니다!

권에스더 선교사님이
한번은 멕시코 선교지에서
마피아를 만나게 됩니다.

총을 겨누고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타나서
납치를 하려 했답니다.

그때 주님께서 그 순간
나타나셔서 그들의
눈을 보이지 않도록 하셨는데
그 순간 하나님께서
지켜 주신 것으로 알고
감사를 드린 적도 있답니다.

어떤 상황과 어려움에
있다 해도 자살은 사단이
속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계속 저주와 재앙이
오면 우리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날 위해서 대신 죽으시고
다시 사신 예수그리스도는
우리의 어떤 절망과 저주에서
건져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써
당당하게 일으켜주십니다.

이사야 60장 1절~2절 말씀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황국명 목사는
1981년 ‘다윗과 요나단’으로
찬양활동을 시작,
 ‘친구의 고백', ‘요한의 아들 시몬아’
‘주만 바라볼찌라’, ‘주님 손잡고 일어서세요’
찬양곡을 잇따라 발표하며
당시 한국 CCM을 이끌었었다.

황국명목사님은
​ 어린시절에
힘든 시절을 보냈습니다.

“아버지는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돌아가셨다.

가난하게 영덕에서 살다가
서울에 있던 넷째누님이
불러 어머니와 함께 갔는데

누님은 월세방도
구하기 어려워 여관방 하나에
아이들 다섯과 함께
식구가 살고 있었다.

 그 작은 방에서
아홉 식구가 살면서
나는 사춘기를 보내야 했다.

그 때까지는 웃을 일도
노래할 일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고등학교 1학년때
예수님을 만나면서
구원의 감격과 기쁨을 맛보았고
 그 분을 찬양하게 됐답니다.

그런데 서울에 있는
누님이 신을 받아서
무서웠어요.

한마디 전도를
하지않았지만

하나님이 황목사님을
인도하신것을 보고
결국 예수를 믿고
지금은 전도사님으로
계신답니다.

황목사님의 고백입니다.

“절망가운데서도
 우리의 고난과 아픔을
부르짖을 분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항상 예수님안에 거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를 바랍니다. 

1981년도에 대학교 3학년때
친구인
전태식(지금은 선교사님)
이와 가수가 될려고
대학가요제에 나가서
되려고 했다가
​팀 이름을 결성했는데
시기와 명인이라고 지었답니다.
 
그런데
 신학생이어서
그룹 명칭을 바꾸기로 하고
결국 다윗과 요나단이라고
했답니다.

 그러다가 1984년도에
극동방송에서 하는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그 대회에
 '친구의 고백'이라는 곡으로
 나가서 상을 받았습니다.

1987년에
목사안수를 받았습니다.
그 때는
복음성가 경연대회에 주로
많이 나왔습니다.
신학생들이 대회에 나와서
상은 받지만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안수를 받기 위해서는
 활동을 멈추고
교회안으로 다 들어갔지요.

저도 목사 안수를 받고
목회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이 쪽 사역에 비전이 있어서
 기도하다가 담임목회를
 하기로 안수를 받았는데
 상황이 바뀌어서 계속
 이 사역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워냑 가난하게 살다가 보니
돈을 벌고 싶은 욕심도
있었고 여러가지 유혹도
많았답니다.

더 심각한 것은
우선순위가 바뀐것이고
하나님전하는 일로
노래하는 일로 성공
목사라는 것을 성공을
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 평안을
잃어버렸고
수많은 사람들에게서
인정받는것 좋아하고

작은 교회에 가면
기분이 나쁘고
여러신문에 나오고
음반이 많이 팔리고
10만명앞에서 노래를
불렸지만
행복을 잃어버렸습니다.

첫사랑을 잃어버렸고
고난이 찾아오게 됩니다.

 둘이 같이 하다가
친구가 먼저 미국으로 가고
혼자 남아서 1994년도에
절망가운에 주신 찬양인
'주만 바라볼찌라'를 발표하면서


홀로서기를 하고 사역하면서
4년 연속 복음성가 대상까지
받았지만 

1998년도에 건강이 무너지고
 의사가 죽는다고 해서
 1년만 쉬기 위해서
 1999년 2월에 미국으로 건너갔는데
 제 계획과 달리 하나님은
14년을 그곳에 머무르게 하셨습니다.

1998년도에 그 절망가운데
발표한 곳이
 "주님손잡고 이러서세요."
입니다.

김석균선배
(지금은 목사안수받으심)가
작가 작곡을 했고
이것을 다윗과 요나단에게
주셔서 부르게 됩니다.

그곳에 있는 동안
 미국을 중심으로
이민교회들을 사역하다가
 지난 1월에 하나님이 다시
 조국으로 보내주셔서
또 열심히 사역하고 있습니다.

찬양 중에 병이
 나았다는 간증도 있고
 제 음반을 선물로 줘서
 결혼에 성공한 사람도 있고

 17년동안
 교회에 다니는 것 때문에
 남편에 맞고 고난당하다가
 남편을 위한 기도를 포기하는 순간
 남편이 갑자기 교회에 가겠다고 해서
 왜 그런가 물었더니
 어디서 무슨 노래를 들었는데
 가슴에 와 닿고 좋더라고 해서
 무슨 노래인가 봤더니
제가 불렀던
 '친구의 고백'이라는 곡이었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교회에 나오게 되었다는
 간증을 듣기도 했고
 심지어는 자살하러 가는 길에
그 노래를 듣고
지금까지 살아있다는 분도 있고

 이민자들 중에는
 남편 따라갔다가 공항에서
 버림받고 영어도 안되니까
 구걸해서 30년, 40년
근근히 버텨온 이민자들이
그 찬양이 없었으면 난 죽었어요라는
 눈물의 고백을 들을 때는
정말 소름이 돋습니다. 

항국명목사님의 고백입니다.

"고난은 우선 순위를
바꾸라는 하나님의
사인(sign)입니다.
어떤 잘못을 살았든지
어떤 죄를 지었든지
빨리 주님께 오면
새벽빛같이 어김없이
찾아오십니다."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Houston 제일감리교회를 섬기셨던
Charles Allen(찰스 알렌)목사님께서 쓰신
God''s Psychiatry(하나님의 마음 치료)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하루는 사업을 시작해서
큰 회사로
성장시킨 사람이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그 사장은 성공의 가도를
달려와서 돈도 많이 벌었지만,
한가지 갖지 못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행복이었습니다.
그는 긴장에 쌓여있었고,
염려와 걱정으로
마음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정신과 의사를 만나서
치료를 받던 중
목사를 좀 만나보라는
권고를 듣고 찾아왔습니다.

Allen 목사님은
이 사람에게 처방을 써주었습니다.
그 처방이란 바로 앞으로
1주일 동안 하루에
다섯 번 시편 23편을 생각하면서,
그 의미를 되새기면서,
깊이 있게 읽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한번,
아침 식사 후에,
점심 식사 후에,
저녁식사 후에 그리고
 잠자리에서 꼭 시편 23편을
정성스럽게 읽으라고 부탁했습니다.

오늘은 시간이 없으니까
한꺼번에 몰아서
다섯 번 읽는다든지,
혹은 2,3일 해보고
이제는 잘 아니까
적당히 외워서
넘어간다든지 하면
 별로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의사의 지시에 따라
시간 맞추어서 약을 먹듯이
꼭 처방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이런 처방을
하신 이유는 분명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처방대로 하다가
참으로 부족함이 없는 인생을
찾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도 이 처방을
여러분께 소개해 드립니다.
우선 일주일 동안
복용하시기 바랍니다.
정성껏, 때를 맞추어서
해보시기 바랍니다.

 목자되신 우리 하나님께서
은혜 주실 것입니다.
부족함이 없는 삶이
시작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목자가 되시면
부족함이 없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도 변함이 없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도
변함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요한삼서 1:2)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소아마비로 걷는데
장애가 생긴 분이
예수님 믿고 변화되어서
하늘을 나는
비행기 파일럿이
된 놀라운 간증이 있습니다.

 장애인 파일럿
최영재 집사님.
아시아 최초의 장애인
파일럿,
미국 산호세뉴비전교회 집사님이신데요.

3살 때 아주 고열이
심하게
난 후에 소아마비가
왔습니다.

하루아침에 하반신
마비 장애인이
됐습니다.

정말 예수님 만나지
않았더라면
평생 절망 가운데
살았을지 모릅니다.

여러분 진짜 장애는
마음의 장애입니다.

‘아이고, 나는 이제부터
아무 쓸모없구나.

사람들이 나를
인정하지 않는구나.

나는 끝이다.’라고 하는
그런 마음의 장애가
문제입니다.

그러나 이분이 예수를
믿고 나서 달라진
것입니다.

그 마음에 늘
꿈이 있고 소원이
있었습니다.

비행기를 참 좋아했는데
하늘을 나는 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컴퓨터 프로그램을
전공하고
e-bay라고 하는 회사에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취직하게 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양팔
없는 여성
파일럿 제시카 콕스의
영상을 보면서
‘어릴 때부터 가졌던
꿈을 나도 도전해보자.’
대단하죠?

팔이 없는 다리로
운전해서
하늘을 나는데
그래서 도전하기로 했던
그때 나이 53살.
여러분 우리가
꿈을 꾸는 데는
나이가 상관은 없습니다.

100세가 되도
꿈은 꾸는 것입니다.

꿈과 믿음이 합쳐지면
 기적을 만들어 냅니다.

그런데 어렸을 때부터
큰 수술을 5번이나 받고
또 5년 전에 c형 간염으로 죽을뻔 하다가
겨우 살아난 어려운
시기를 지냈는데
파일럿에 도전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그 공군사관학교
 시험 보러 갈 때
몸에 큰 수술이 있으면
아예 합격이 안돼요.

어디하나 상처가
없어야 됩니다.

그런데 5번의 대수술을
받은 분이
비행기를 탄다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죠.

그런데 여러 비행학교를 다니면서
이 장애인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탈수 있는 비행기를
타는 훈련을 시키는
그 곳을 찾았는데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 선생님을 찾았지만
찾기 힘들었는데
놀라운 것은 매년
미국 전역에서
5,6명의 장애인을
선발해서 비행훈련
교육비용을
전액지원해주는
비영리재단 에이블
 플라이트라고 하는
 그곳에서 뽑는
그 대상에 동양인 최초로
그가 뽑힌 것입니다.
 
6주 동안 비장애인과
같은 고강도 비행훈련을
받고
아시아 최초로 장애인
파일럿이 됩니다.

그런데요. 참 그 모든
훈련을 다 통과하고
나중에는 일반 파일럿도
참 힘들다고 하는
곡예비행도 이 비행기
 타고 하늘로 도는 것인데
우리가 화면을 보니까
 비행기가 막 돌아가고

 화면이 돌아가는 게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한번타고 돈다고
생각해보세요.

온 지구가 막 뒤집히고 뒤집히는데
저런 곡예비행을 하면서 성공적으로
비행을 할 수 있게 되었고
그는 장애인
파일럿으로 이름을
날리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그는
고백합니다. 

“두 다리로 걸을 수는
 없었지만,
하늘을 자유롭게 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도전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불가능한 것처럼
 여겨지는
상황이라도
포기하지 마세요.

제가 금방 포기했다면
성취되는 일들은 없었을 겁니다. 

 ‘꿈과 믿음’을 가지고
나아간다면
이루어집니다.

진짜 장애는
 ‘우리의 생각’이며,
생각이 바뀔 때 ‘꿈’은
‘현실’이 됩니다.

앞으로의 제 꿈은
 우주선
비행을 해보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에 대해서
긍정적인 자아상을
가져야 합니다.

건강한 자아상을
가져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께
 사랑받고 있다.
나는 매우 귀중한
존재이다.

나는 더 이상
실패자가 아니다.

나는 더 이상
버림받은 인생이 아니다.

하나님이 나를
귀하게 보신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복 받은 존재로 세워주시고
일생동안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살게 만들어주십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 (고전 10:31)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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