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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길 인생 연극배우 박정자씨는
50년 동안 쉬지 않고 무대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계시는데요.

동승 교회에 출석하면서
지금도 무대에 서기 전에는
떨리기에 기도로 준비를
한다고 합니다.

1962년
이화여대 문리대 연극
<페드라>로 데뷔한
이래 반세기 동안 그는
<따라지의 향연>, <파우스트>,
<위기의 여자>, <신의 아그네스>,
<19 그리고 80>등
 130여 편의 작품에 출연했습니다.

1963년 동아방송
성우 1기로 입사했으며
애니메이션 팬들에겐
인어 공주의 문어 마녀
우르 술라로 유명합니다.
 
2013년 현재,
한국 연극인 복지 재단 이사장,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화 나눔 추진단 단장이다.

1950년 아홉 살 때 
부민관이라는 극장에서
연극하는 오빠의
 도시락을 나르며
 처음 무대를 본,
아홉 살 꼬마 박정자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고
하는데요.

어린 시절부터
사람들의 조명 받는 것을
좋아하고 혼자 노래를
하곤 했답니다.

피난시절에
 제주도 천막교회에
나가서 무대가 서는 것을
좋아해서 성탄절 날
축하예배 때와 새벽송의
그때가 좋았답니다.

연극 "위기의 여자"할 때에
내가 무엇하고 있는가
고민할 때에
고은정 선배께서
이쯤에서 교회 가자고 합니다.

처음에 온누리교회에
가게 되고 성가대에
가서 찬양을 하면서
행복하셨답니다.

박정자 씨가 무대에서
실수할 때가 있는데
왜냐하면 라이브로
하기 때문이라는데요.

그러기에 항상
꿈을 꾸면 대사를
잃어버린 꿈을
꾼답니다.

배우는 아플 권리도
슬플 권리도 없다고
하는데요,

실수하는 순간
"오 하나님"
절체절명의 순간에
죽고 싶다고
할 정도이지만
무대에서 실수를 한답니다.

무대에 오르기 전에
반드시 기도를
한답니다.

멀리서 오고
비싼 표를 사서 왔기에
오는 분들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서
"하나님 저를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해주세요."라고
기도한답니다.

지금은 암기력이
떨어지기에 더욱
열심히 한답니다.

박정자씨는
"연극의 완성은
관객이 해준다."라는
신념이 있기에
무대에서의 관객과의
시선이 중요하답니다.

"엄마는 50에 바다를
발견했다"는 작품을
할때에 딸과 엄마가
관객으로 와서
무대에 감동해서
서로 손을 잡고 울 때에
감격을 했다고 합니다.

무대를 하면서
하나님의 존재를
느낄 때에 있는데요.

"이건 내가 한 것이 아니야
나 아닌 다른 힘이야."

그럴 때에 하나님이
주시는 힘이 구나하고
깨닫게 된답니다.

그래서 박정자씨는
하나님은 무대에서
또 다른 힘을 주는
에너지라고 고백합니다.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1975년 연극 ‘꿀맛’으로 데뷔해
 ‘신의 아그네스’(1983),
 ‘딸에게 보내는 편지’(1995)
‘넌센스’(2001)
‘토요일밤의 열기’(2004)
‘브로드웨이 42번가’(2004)
‘사의 찬미’, ‘아가씨와 건달들’,
‘명성황후’ 등

뮤지컬과 연극을
오갔던 윤석화 씨는
지난 30년간 배우로
온몸을 불살랐다.

1994년부터
돌꽃 컴퍼니 대표를 맡고 있으며
현재 월간
객석의 발행인 겸 편집인,
설치극장
정미소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연출가로써
뮤지컬<톱햇>으로
영국 로런스 올리비에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항상 새로운 작품을
시작하면 제일 먼저
기도로 시작한답니다.

이 작품을 하는 동안
아무런 사고도 없고
관객이 가득 차게 해달라고
한답니다.

그럼 어떻게 이런
믿음의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었을까요?

그녀가 모태신앙은 아니지만
중 고등학교는 미션스쿨을 다녔고요,

 처음으로
하나님의 성령체험을 하게 된 것은
‘신의 아그네스’를 공연할 때입니다.

대 히트가 되면서
하루도 쉬지 못하고
장기 공연을 하다 보니

 6개월 동안 하루도
쉬지 못해 감기에 걸렸는데
그것이 기관지염이 되고,
인후염이 되어
굉장히 고생했답니다.

그때 많이
 하나님을 원망했고
그때까지도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답니다.

스타가 된 이유로
 모든 언론과 동료들은
  아픈 것도 질시를 했고,
편견으로 바라봤답니다.

그녀의 고백입니다.

 "저는 쓸쓸했고
아픔은 극에 달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오기로 끝까지 버텼고,
남은 한 학기를 마치기 위해
미국으로 돌아갈 때는
제 목소리를
완전히 잃은 상태였습니다.

 찬송가를 부르면
목이 막혀
음정이 전혀 맞지 않았습니다.
너무 절망스러워
며칠 밤을 울며 지샜습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목소리는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이런 고통 속에 있을 때에
후배의 권유로 목사님께
가서 안수기도를 받게
됩니다.

 그전에 교회에 가면
조용히 말씀만 듣고
나왔으면 좋겠는데
성도들이
‘아멘! 할렐루야!’ 하고 외치면
저는 무서워서 ‘어머.
왜 저래’ 하며 소리를 질렀답니다.

그러한 나이지만
워낙 다급하고
갈 곳이 없는 상황이기에
안수기도를 받게 되었고,
도중에 방언이 터졌습니다.

그녀의 고백입니다.

"저는 성격이 부끄러움도 많고,
자존심도 강하여
남 앞에서 눈물 흘리지 않는데
그때는 눈물이
폭포수처럼 흐르면서
기도 중에 방언이 터진 것입니다."

그렇게 첫 번째
성령의 체험을 했지만
믿고 싶지도 않았고
하나님 앞에 순종하지는
못했답니다.

그 후로 감사하게도
목소리를 찾을 수
있게 되었고

어느 날 교회에 가서
성경 말씀을 듣고
"빈들에 마른 풀 같이"라는
 찬송을 부르는데

갑자기 다시 내 목소리를
찾게 된 것에 대한
무한한 감사의 마음이 파도처럼
밀려와 막 울었답니다.

그러면서  이전에는
목사님의 말씀을 들어도
졸음이 왔는데 실컷 울고 나니
 목사님의 말씀이
천상에서 떨어져 제 귀에
딱 박히는 것 같았답니다.
 
이게 두 번째 성령체험인데,
그 말씀이 저에게 들어오고
난 후에는 모든 의심이 사라졌습니다.

 목사님 말씀이
한 알 한 알 씨앗처럼
천상에서 제 귀에 쏙쏙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사라지게 되었고,
아무 의심 없이 성경 말씀을
사모하고 교회에 다녔습니다.

그러면서 금요철야 때에
 구체적으로 기도했습니다.

“왜, 연극배우는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
아버지, 저는 정말
아버지가 저에게 주신
이 달란트를 귀한 축복으로 믿고 있는데
이 귀한 축복이 쓰이기 위해서는
일단 제가 취사할 곳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제가
연극하는 것을
반대하셨던 어머님이
제가 7.5평에서 월세를
산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저의 식구들은 다
미국에서 살고
저만 한국에 있었습니다.

연극한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그래서 저의 식구들은
제가 한국에서
어떻게 사는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어머님이
저의 사정을 아신 것입니다.
어머님이 서울에 오셔서
그동안 모아뒀던 쌈짓돈으로
저에게 13평 전세 아파트를 하나
얻어주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머님이 13평
전세 아파트를 얻어주신 것입니다.
그때  나이가
이미 서른이 넘었습니다.
저는 어머님이 가시자마자
그 집을 복덕방에 내놨습니다.

그 돈으로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해서 1987년
제작한 작품이 ‘송 앤 댄스’라는
뮤지컬입니다.

금요철야예배와 새벽 기도 때
이작 품을 놓고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온전히 주님께 의지하고
부르짖게 됩니다.

뮤지컬이 성공을 해서
다시 15평 아파트도 사고
하나님께 의지하고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신 것이고
그때의 개포동 15평짜리
아파트가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답니다.

그녀의 고백입니다.

"주님은 저의
가장 친한 친구십니다.
제가 외로울 때
저의 눈물을 닦아주시고,
제가 너무 기뻐서 우쭐할 때는
저를 다시 제자리에 놓아주시며,
제가 부족한 것을
열심히 애통하면서 간구하면
그것을 마련해 주시기도 하십니다."

하나님은 늘 고난을 주셔서
사실 인기를 누릴수 있는
여유가 없었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큰 축복인데
하나님의 선물인
참 평안이랍니다.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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