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 리더 :: '풍경이 있는 묵상' 카테고리의 글 목록 (42 Page)

청계천 빈민의
성자로 불리는
일본 사람
노무라 모토유키
목사님이
서울시 명예
시민증을 받습니다.

그 명예 시민증을
받게 된 이유는요

 1968년부터
지금까지
한국을 위해서
특별히 서울에 와서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시작하는데요,

 청계천에
나갔다가
깜짝 놀라운
것을 봤어요.

판자촌의 한
무너져가는 집에
들어가 보니까
어린 소녀가
죽어가고 있는데
이 살 헌데로
구더기들이 살을
파먹고 있어요.

너무 놀라서
살을 구더기를
막 손가락으로
다 끄집어내고,
그런데 두 달 있다
그 아이가 죽습니다.

그래서
‘내 남은 삶을 이
불쌍한 아이를
도우며 살겠다.
불쌍한 사람을
도우며 살겠다.’

지난 20년 동안
해외 모금활동을 해서
약 2000명이 넘는
빈민 아동들에게
주린 그 배를 채우는
그러한 귀한
식량을 제공했고,

또 도쿄에 있는
집을 팔아서
청계천에
탁아소를 짓고,

간척지로 옮겨간
철거민들을 위해서
뉴질랜드에서 종자
소 600마리를
사오기도 했습니다.

80년대까지
50여 차례
오고가면서
한국으로 부친
돈만 7500만 엔,
8억 원이 넘고요.

본인은 산골의
조그만 교회를
섬기면서
검소한 삶을 삽니다.

죽어서도 한국에
 뼈를 묻길 원한다는
그러한 소원을 남겼어요.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그 죽어가는
소녀의
눈망울을 통해
예수님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조금씩 알게 됐습니다.

청계천
빈민들은
 하나님께서
저를 위해
보내신 성경
교사들이었습니다.

지옥과 같은
그곳에도
예수님의
십자가가 있고,
희망이 있고,
오순도순 서로 돕고
살아가는 정이 있었습니다.

그곳이야말로
제게는 가장
훌륭한 천국의
모형이었습니다.

큰소리로
외치지 않아도
그들은
예수님의 사랑을
듣고 보고
알게 됐습니다.

앞으로도
한국인을 위해
이 섬김과 나눔을
 계속할 것입니다."

이분은
일본인들의
위안부 만행을
사죄하는
마음으로

주한 일본
대사관 맞은편
 위안부 소녀상 앞에서
홍난파 ‘봉선화’를
플루트로
연주한 일이었다.

일본의 반대와
사람들은
쇼라고 했지만
그분은 진심을
담아서 연습하고
준비를 했답니다.

이웃을
사랑하는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내몸같이 이웃을
사랑하신
노무라 모토유키
목사님처럼
우리들도
이웃과 함께하는
참된 예수의 증인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어떤 변호사 부부가
미국의 어느 지방에
출장을 갔다가 그곳에서
주일을 보내게 되었다.

 주일날 아침
차를 몰고나가서
어느 교회를
가야할 지 몰라 헤매다가
교통경찰을 만나 좋은 교회를
소개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경찰은
한 교회를 소개해 주었다.

변호사 내외는
그 교통경찰이 가르쳐준 대로
차를 운전하며 가다가
여러 교회를 지나치게 되었다.

​가는 길에도
교회가 여러 곳이 있는데
경찰은 왜 더 멀리 있는
이 교회를 소개해주었을까
의아해하면서 교회에 도착하여
예배를 드리고 나왔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그 교통경찰을 또 만나게 되었다.

변호사 내외는 경찰에게
굳이 왜 그 교회를
소개해주었는지를 물었다.

​그러자 경찰은 이렇게 대답했다.

“이 지역에 어느 교회가
참 교회인지 좋은 교회인지
제가 직접 가보지 못해서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일요일 아침마다
교통정리를 하면서 보니
그 교회에 다니는
교인들의 표정이
가장 밝고 기뻐보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교회를
자신 있게
소개한 것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유행하는 말이 있다.

“일 맛 나는 직장생활,
​꿀맛 나는 가정생활,
​신바람 나는 건강생활”이다.

이는 모든 사람들에게
무언가 활력소를 불어넣어
재미있고 즐거운 삶을
영위하자는 것이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다.

​성도가 소속한 교회는
항상 생기가 넘치고, 평안과
기쁨이 떠나지 않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의 평안을 위해
기도하며 노력해야 한다.

​우리 교회를 위해
평안을 구해야 한다.

평안한 교회는
서로 마음을 같이하여
하나 됨을 만든다.

​“인생의 방황은
하나님을 만나면 끝나고,
​신앙의 방황은
행복한 교회생활로 끝난다”는
말이 있다.

행복한 교회는
항상 평안한 교회다.

​가고 싶고
머물고 싶은 교회라면
틀림없이 좋은 교회이다.

​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행 9:31)

출처:​남택률목사의
목회칼럼중에서
[광주유일교회]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하나님은
복을 주기 원하신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다.

 하늘의 복과 땅의 복이
임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우리가 가족을 '축복'하는 것이다. 

 반대로 가족을 비난하거나
판단하면 복이 임하지 않는다.

 화를 내고
가족과 싸우면 일도
잘 풀리지 않는다.

나는 한 번
교통사고를 경험했다.

  신호 대기 중에
정차하고 있었는데,
뒤차가 추돌했다.

  평범한 사고라
 여길 수 있지만
  우리 부부는
진지하게 회개했다.

사고 직전에 우리는
점심 메뉴를 고르는 일로
말다툼을 했었다.

  곧이어 다른 주제로
대화가 번지면서 심하게 다퉜다.

  큰 사고는 아니었지만
 그때 나는
중요한 원리를 배웠다.

작은 사고나 큰 사고나
하나님이 지켜주셔야 한다.

 하나님의 보호가
있어야 안전하게 살 수 있다.

이런 보호는
우리가 서로 축복할 때
 그분이 허락하신다.

 그래서 우리가 축복하면
모든 일이 합력하여 잘 된다.

배우자와 부모를
위해서도 기도하고 축복하자.

 자신의 가정을 축복하자.

가정 사역 세미나에서
 반드시 강조하는 것이 있다.

  집에 들어갈 때마다
현관문을 열면서
가정을 축복하라고 권한다.

자기 가족을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고,
 사랑하지 않고,
감사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일하실 수 없다.

하나님은 충분히
각 사람의 가정을 새롭게
하실 수 있지만 기다리신다.

가족 중에서
먼저 믿는 그리스도인이
기도하면 하나님이 일하신다. 

 과거의 아픔을
믿음으로 극복하면서
가족을 신앙의 힘으로 축복하면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

출처:홍장빈, 박현숙의
 "기도는 죽지 않는다"중에서
[규장출판사]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아주 친하지는 않지만
조금 알고 지냈던
부부가 카페를 열었다.

 어느 날 연락이 왔는데
자신들의 카페에서
예배를 드리면
좋겠다는 제안을 해왔다.

  가서 보니 장소가
아늑하고 좋았다.

길에서 예배드리다가
비나 눈이 오면
아무 카페나 들어가서
조용히 한 쪽 구석에서
예배드리곤 했었는데
그곳은 우리가 갔던
어떤 장소보다 훌륭했다.

  몇 주 예배를 드리다 보니
카페를 운영하는 형제를
멘토링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카페 운영에
 적자가 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장소 사용료와
음료수 값을 지불했기 때문에
운영에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워낙 적자 규모가 컸다.

  카페를 열 때
융자도 받은 상황이라
상황이 심각했다.

  본래 두 사람
다 믿음이 좋았고
또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으로
카페를 시작했지만
재정이 어렵다 보니 부부간에
다툼도 많아진 모양이었다.

  혼수로 해왔던 예물은
물론이고 아이들 돌 반지까지
내다 팔고 있었다.

 부인은 ‘정 안 되면
한강에 가면 된다’는
극단적인 말도 한다고 했다.

 형제는 왜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는지
잘 모르겠다며 우울해했다.

나는 전철역 바로 앞에
유명 프랜차이즈 카페가
크게 생기면서
그 옆에 있던 큰 카페마저
문을 닫았으니

지하에 있는 이 카페가
문을 닫지 않은 것만도
감사할 일인 것 같다고
형제를 위로했다.

 그리고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살아남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하신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형제는 상황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져야 할 책임과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한 상황에 대해서
분별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욕심과
믿음으로 하면 될 거라는
과도한 영적 허영에 대해서도
반성하고 겸손해졌다.

  나는 그에게
목 좋은 곳에
큰 카페를 놔두고
지하에 있는 카페에 오는 사람은
카페가 가지고 있는 분위기나
주인의 친절함 때문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니 아르바이트 직원은
아주 바쁠 때만 쓰고
늘 주인이 자리를 지키는 게
좋겠다고 조언했다.

형제는 감사하게도
내 말을 잘 들어주었다.

  우리는 함께
하나님을 의지하는
기도를 했다.

 하나님이 손님을
보내주셔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자면 카페에 관한
모든 상황을 하나님께
의지할 필요가 있었다.

  형제는 카페를 알리는
전단에다 성경 말씀을
배경으로 넣었다.

그 마음이 좋아 보였다.

손님이 점점
늘어나는 만큼 그의
하나님을 향한 의존도
깊어지고 있었다.

 얼마 후 그는
매출에 연연하면서
재정 때문에
부부싸움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런 믿음으로 아내를 돌보고
가정을 지키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빚은
생산수단을 빼앗아가고
가정을 해체시킨다.

이렇게 강력하게
나쁜 것은 없다.

그럼에도 빚을
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다음의 두 가지를
다시 생각했으면 좋겠다.

  첫 번째는
빚의 위험성이다.
어쩌면 평생 자리를 못 잡을 수 있고
제대로 된 일을 감당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두 번째는
정말로 빚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존했는지
 잘 살펴보면 좋겠다.

 누구나 돈이 마르고
재정적으로 힘들 때가 있다.

인생에 흉년이 오는 것이다.

 그때에 하나님을
충분히 의지했고
하나님의 허락이 있어서
빚을 낸 것인지 살펴보아야 한다.

  재정이 어려우면
일단 빚을 지고 보는 사람은
하나님을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빚에 의존하는 삶을 살기 쉽다.

  하나님을 의지하면
하나님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빚을 의지하면
빚에 묶이게 된다.

 하나님께서
이번 달에
이 정도 수입을 주셨다면
이 안에서 살아야 한다.

  먼저 빚을 갚아라.

 내가 쓸 것 다 쓰면서
빚을 갚을 수는 없다.

 먼저 빚을 갚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빚을 갚아나가는 것은
나의 삶을
건강하게 만들어주며
삶에 대한 책임감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빚에 대해서
책임감이 없는데
다른 것에
책임감이 있을 리 없다.

삶의 내용 전체가
무책임하게 되는 것이다.

출처:김길목사의
"전적의존"중에서
[규장출판사]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대학 1학년 시절,
​나는 교회도 열심히 다녔지만
나름대로 세상의 변화를 꾀했다.

​날마다
실천 없이 교회 안에서
사랑 타령만 하면서
무기력해 보이는 선배들과는
다른 삶을 살아야겠다며
세상으로 뛰쳐나갔다.

​그러면서
야학 교사를 하게 되었는데,

​내가 모르고 있던
노동자의 삶을 보면서
재야 운동권 인사였던
외삼촌의 삶을 뒤따르게 되었다.

그러던 10월 어느 주일,
​오전 예배를 마치고
시위 현장에 가서
운동권 집회에 참석한 후,
바로 이어진 가두 투쟁에 나섰다.

​투석전이
벌어지는 가운데
최루탄 가스 분말이
그곳을 뒤덮었다.

나는 눈물
콧물로 뒤범벅이 된 채,
온 힘을 다해 짱돌을 던졌다.

​그런데 어느 순간,
​갑자기 어떤 거룩함이
온몸을 감싸는 것 같더니,
내가 갖고 있던 정체불명의
분노가 추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한 질문 앞에
나는 굳어 버렸다.

“네가 던지는 그 돌로
세상이 변화 되리라고 믿느냐?

​너는 너 자신도
변화시키지 못하면서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키려고 하느냐?”

​그날 화장실 거울에 비친
내 슬픈 초상을 본 뒤로
나는 더 이상 시위 현장에서
돌을 들 수 없었다.

이 사건은
사람이 변화되는
유일한 방법인 복음에
내 생애를 헌신하게
된 출발점이 되었다.

​그 후, 목사 안수를 앞두고
‘돌항아리에 담긴 물’이란
말씀의 씨앗을 묵상하는
나에게 하나님은 바로
이 장면을 답으로 보여 주셨다.

돌항아리의 물은
한 번 사용 된 뒤에는
집 밖 거리나
하수구에 버려져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하는 일회성 물이었다.

그런데 주님이
혼인 잔치집의 기쁨을
회복하게 하시는 재료로
그 허드렛물을 쓰셨다.

​그날, 나를 부르셔서
사명 있는 자로 세워 주신
하나님의 탁월한 은혜에
감격하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 출처:이정엽이 쓴
 <생명의 삶을 이끄는 QT>
​중에서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비행기가
인천국제공항으로
천천히 하강하기 시작하면서
극도의 피로가 느껴졌다.

​보스톤을 떠나 북극을 넘어
한국으로 오는 긴 여정을 시작한지
스물두 시간이 지나 있었다.

다음 주에는 하루에
여덟 시간씩 학생들을 가르치고
사람들을 만나야 했다.

​그 모든 스케줄을
감당할 힘을 어디서
얻을지 막막하기만 했다.

게다가 일정은 바로
다음날 아침부터 시작해야 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놀랍게도 피곤과 무력감은
사라지고 도리어 상쾌했다.

​새 힘이 생긴 것이다.

​이것은 전적으로
말씀을 깊이 묵상한 결과였다.

그 무렵, 나는
고린도후서를 묵상하고 있었다.

​그날의 묵상 구절은
고린도후서 1:2이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이 구절을 묵상할 때
주님은 많은 약속을 주셨다.

​그분을 기다리는 자는
새 힘을 얻을 것이며,
​그분의 임재 안에서 정신적,
​영적, 신체적으로 충만한
기쁨을 누리게 된다는
약속을 주셨다.

나는 이 모든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이루어졌음을 감사드렸고,
주의 얼굴을 뵙고 온종일
주와 함께 동행하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씀드렸다.

​묵상하는 동안
그분이
내게 임재하셔서
나의 영혼뿐 아니라
내 몸을 위해서도
새로운 안식으로
나를 이끄시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나는
내 육신이 회복되었으며
그날과 그 주간에
그분이 계획하신 모든 것을
할 준비가 되었음을 알았다.

​묵상을 마무리하면서,

​묵상하는 동안
나를 회복시키신
하나님께 “아멘!”을 외쳤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그분의 백성을 치유하고
회복시키신다!

  출처:오대원이 쓴
<묵상하는 그리스도인>
중에서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인
 미국의 '제너럴 모터스'사
최고의 엔지니어 찰스 케터링은
 빈틈없는 기술을 가지고 있어
 업계에서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한 모임에서 사회자가
그의 '신화의 손'을 높이 쳐들며
 "케터링 씨, 이 손으로 한 일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이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사회자는 물론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은
모두 '자동차 탄생!'이라는 말을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손으로 한 일 중
가장 중요한 일은
두 손을 잡고 기도한 일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4절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생각하는 사람’을 
조각한 로뎅이 예술가로써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쉰 살이 다 되어서였습니다.
 
그의 뛰어난 실력은
 이미 40대가 되면서부터 
빛을 발했지만
사람들은 그의 재능을
 인정해 주지 않았습니다.

로뎅이 한 전람회에
 출품한 ‘청동시대’라는 작품은
너무나 정교하고 사실적이라
 심사위원들은
​조각이 아닌 진짜 사람을 
본뜬 조형물이라고 판단하고
 그를 실격처리 하려고 했습니다.
 
그 뒤에도 로뎅은
 많은 뛰어난 작품들을 내놓았지만
 다른 조각가들은 모두
 그를 사기꾼이라고 비난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로뎅의 제자들과 친구들은
 사실을 정확히 밝혀서 
빨리 누명을 벗으라고 재촉했지만
 로뎅은 언제나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는가?
 지금은 더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조각에 집중하고 싶네.
 
사실이 아닌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밝혀지기 마련이네.”

그리고 정말로 몇 년이 지난 뒤 
로뎅은 결백하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로뎅이 자신을 향한 악평에
 계속해서 신경을 썼다면
 아마 그의 마지막이자 최고의 걸작인
 ‘발자크 상’ 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현재 로뎅은 조각의 최고경지에
오른 예술가로 높임을 받고 있으며
그의 작품들은 값을 매길 수 없을 정도의
 값진 예술품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삶을 살아가면서 
원하는 만큼의 성과가
나오지 않았다고 해도 
조급해 하지 마십시오.

 결과가 좋지 않아도 
과정을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면
언젠가 반드시 
놀랄만한 결과가 나올 것입니다.
 
가장 좋은 때를 
허락하실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주님! 
주님을 믿음으로 
때를 기다리게 하소서!

평안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인내하십시오.
 
출처 :김장환 큐티365
(나침반출판사)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