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 리더 :: '풍경이 있는 묵상' 카테고리의 글 목록 (39 Page)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4년째 되던 해,
​그러니까 1974년이었다.

​나는 사업상
독립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세상 어느 곳에나
경쟁자가 없는 곳은 없지만
내가 하려 했던 사업의 경쟁자는
재벌 기업 하나와 대기업 둘이었다.

​나는 혼자였기에
그야말로 그들과는 경쟁
상대조차 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저는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제 백그라운드가 되십니다.

​하나님이 이 사업을
할 수 있게만 해주신다면,
제가 버는 돈으로 평생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면서
살겠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신실하신 분이기에

나처럼 미약한
사람의 기도를 들어 주셔서,
​그 사업을 할 수 있는
권리를 내게 주셨다.

​그리고 나는 수년 동안
참으로 많은 돈을 벌었다.

모든 경비를 다 제하고 하루에
 1,200만원을 버는 날도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처럼
나의 기도를 들어주셨지만
나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그 많은 돈으로 서울에서
가장 크고 좋은 아파트를 사고
외제 고급 승용차를 굴렸다.

​낮에는 골프장에서 살고,
​밤에는 술독에 빠져 있었다.

​그때야말로 지난
나의 인생 중에서 가장 부끄럽고
가장 수치스럽게 살던 시기였다.

물론 나는 그때도 크리스천이었다.

​그런데도 왜 주중에는
돈과 더불어 그처럼
타락에 빠져 있었을까?

왜 인생의 가장 귀한 황금기를
그다지도 허망하게 탕진해 버렸을까?

​이유는 단 한 가지다.

​크리스천으로서 바른 물질관을
갖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바른 물질관을 갖고
있지 않으면
물질은 많아질수록
독약이 된다.

​아무리 열심히 교회에
다닌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출처: 이재철 목사가  쓴
<청년아, 울더라도 뿌려야 한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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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엘리아의 수필’
이라는 걸작을
쓴 찰스 램은
영국 최고의
수필가로
평가받습니다.

그는 회사에
다니면서
글을 썼는데
매일 아침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일을
한 뒤 집으로 돌아와
 저녁시간에
글을 쓰곤 했습니다.

램은 회사 생활을
30년간 하는동안
하루 빨리
자유로워지기를
소망했습니다.

회사를 그만두면
훨씬 좋은 책을
쓸 수 있고
 즐거운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정말로
퇴직을 하게 되자

램은 친구와
가족들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습니다.

“드디어
자유를 얻었다네.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로 기쁘구먼.
 사람들은 모두
‘열심히 일하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내가 봤을 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노는 일’이
가장 좋은 일이라네.”

램은 이제
마음껏 글을 쓰며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년 뒤에
램이 다시
보낸 편지를 보면
그런 기쁨을 전혀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일이 전혀 없다는 것이나
일이 매우 많다는 것이나
 안 좋은 것임을 깨달았네.

이 한없는 여유는
내 인생을 좀먹고 있다네.
이것만큼 사람에게
좋지 않은 것은 없다고
 나는 확실히 얘기할 수 있네.”

많은 사람들이
일이
없는 여유로운
삶을 꿈꿉니다.

하지만 무엇을
하고자 하는
열정이 없는
삶은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없습니다.

지난 일 년을
은혜 속에
잘 마무리 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앞으로
일 년을 함께한
새로운 열정을 품으십시오.

주님!
지난 한 해 동안
무사히 보내게
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한 해를 마침에
감사드리고
새 일을 시작할
열정을 품으십시오.

출처:김장환 큐티365
[나침반출판사]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생후 5개월쯤에
심한 열병을 앓아서
청력을 상실하고
말을 제대로 못하는
장애인이 된
 박영주 집사님.

지금 호주
사회에서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
불려지고 있는
귀한 집사님인데,

1급 청각 장애인으로
호주 토지국 공무원으로
30년째 일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막 놀리고
하는 그런 어려운
어린 시절을 지나면서
이제 중학교 2학년 때

부모님과 함께
호주로 이민을 갔는데
호주에 가서
거기서 공부하면서
또 구화학교에 가서
수화로 말하는 것을
배우면서


영어의 장벽을
뛰어넘어서
그가 많은
사람 앞에서
인정받는 일꾼이
되어가지고
공무원이 되었어요.

그런데 한국어,
영어뿐 아니라
4개 국어를
그 수화로 다 하는데
그 입모양만 보고
무슨 말 하는지
다 알고 대화가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장애인들을
위한 행사는
어디든지 달려가서
열심히 섬깁니다.

20여 년 전
멜버른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농아아시안게임
자원봉사를 시작해서

뉴질랜드와
멜버른에서
열린 농아올림픽,
세계농아교육대회,
아시아태평양
농아교육대회,
시드니올림픽 등

곳곳에 나가서
섬기는데
이 집사님 가족이
모두가 청각
장애인입니다.

의과대학에
재학 중인 아들도
장애를 갖고 있는데
자기들 같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요.

이렇게 고백을 했습니다.

“장애를 지닌 것을
어렸을 때는
원망했지만,
지금은 장애자가
된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힘으로
여기까지 왔어요.

기도할 때마다
늘 갈 길을
준비해 주셨거든요.

남편과 두 자녀도
모두 청각 장애를
갖고 있지만
장애는 불편이지
불행이 아닙니다.

장애를 이긴
저를 보며
많은 이들이
희망을 갖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자원봉사와
기부는
나도 행복하고,
남도 행복하게
만드는 전염성이
높은 만큼 앞으로
더 열심히 남을
위해 살겠습니다.”

 한국관광공사의
한국홍보대사로도
지금 열심히
활약하고 있는데요.

여러분
우리의 삶이
이렇게
주님의 기쁨이 되고
이웃에게 기쁨을
주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이분에게는
장애가
가족의 모든
장애가
축복이랍니다.

​우리들의 모습이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멋진 인생을
사시길
축복합니다.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남편과 아들을 잃고
지금 소년원에서
십 년 넘게 밥을
지어서 나르는,
봉사를 하는
전귀선 집사님.

어린 시절에
질병을 앓고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서
한 쪽 다리를
쓰지 못하는
지체3급
장애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좋은 남편을 만나서
같이 신앙생활을 잘하고
교회 봉사도 열심히 하고

이렇게 부러울 것이
없는 가정으로,
또 착하고 훌륭한
아들 주셔서 잘 살고 있던
가정이 하루아침에
환난의 밤이 다가왔습니다.

남편이
철탑 세우는
공사 현장에서
발을 헛디뎌
떨어져서 죽고 말았고

남편을 잃은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단기선교 간다고
농수산물
시장에 나가서

늘 아침저녁으로
일하던 아들이
학교에서
M.T를 갔다가
신호대기를 무시한
음주 차량이
덮쳐가지고
그 자리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보통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시험이 아닙니다.

뭐 잘못한 게
있어야지요.

 그저 착하게
주님 잘 섬기고,
아들도 단기선교
 간다고 시장에 나가서,

농수산물 시장에서
대파를 수천 단씩 나르던
그 아들이 M.T가 가지고
교통사고로 죽었으니.

“하나님, 이거
어떻게 된 겁니까?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습니까?

통곡하며 웁니다.

울고
또 울고
또 울고.

그녀는
홀로 남아
야곱처럼
얍복 나루터에
밤새 울며 천사와
씨름했던
야곱처럼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그때 주님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를 원한다.

네가 나의
일을 하기 원한다.

이 세대에
나의 말을
바로 가르치라.”

이 절망의 밤에
나는 이제부터
만인의 어머니가
되겠습니다.

내 아들을 죽인
그 사람을
용서하고 거기서
받은 보상금 전체를
부산 극동방송 짓는데
다 헌금으로 내놓고,

그리고 극동
방송의 자원봉사로
청소를 하고
소년원과
재소자들을 위해서
집밥을 해서 나릅니다.

이런 고백을 했어요.

 “아들을 죽인
음주 운전자를
용서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하지 않았다면
폭풍 같은
고난의 시간들 속에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했을 거예요.

만약 내 아이가
살아 있었다면
저는 오로지 그
 애에게만 집중했을 겁니다.

그런데
그 아이를
떠나보내니
비로소
세상의 아이들이
보였습니다.

집을 나와
거리를 방황하는
아이들,
집안에서 오히려
더 상처받는
아이들의 아픔이
보였습니다.

저는
그 아이들의
엄마가 되고
싶었습니다.

이 모든 것
이기게 하신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여러분,
어떤 절망에
처해있습니까?

어떠한 고난이
여러분에게
다가와 있습니까?

절망의 밤에
여러분은
혼자가 아닙니다.

주님이
​함께하십니다.
주님을
붙잡고
씨름하십시오.

응답이
다가올 때까지
씨름하십시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가
이스라엘이 되리라.’

앞으로
너의 기도가
응답되어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은혜와
축복이 네게
임할 것이다.
절망의 밤에
믿음으로
승리하셔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아가는 주님의
귀한 일군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지난 7년간의 사역을 돌아보니
선교사역에 있어서 가장 큰 방해꾼은
다름 아닌 생각이 바뀌지 않는
나 자신임을 알게 되었다.

내 영향력이 커질수록
내 사역의 영역이 넓어질수록
나는 점점 더 하나님의 방해꾼이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었다.

처음 선교지로 나갈 때만 해도
내게 어떤 가능성이 있어서
보내시는 줄 알았다.

그러나 선교지에서 철이
들고 보니

"애, 내가 하는 놀라운
일들을 함께 해 보지 않겠니?"

이런 마음으로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은 혼자서 일을
더 잘하실수 있는 분이시다.

그분께서 나의 도움이
필요한것이 아니다.

그저 그분과 같이 걸으며
그분의 인도하심을 기뻐하는
어린아이 같은 순전한 믿음의
고백을 원하실 뿐이다.

몽골에서 사역하는 동안
하나님께 집중하고
그분과 같이 걸으면서
어느새 7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분이 나와 동행해주시는 한
주변의 어두움도 두려움으로
다가 오지 않았다.

어떤 광야 어떤 사막을 홀로
걸어가고 있다 해도
나는 결코 혼자 걷는 것이 아니다.

나의 가장 친밀한 동반자,
주님이 바로 내 곁에서
같이 걷고 계신다.
=================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사랑하는 자야, 같이 가자"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아가서 2장10절)

출처:이용규선교사의
"같이걷기"중에서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새찬송가549장(구431장)은
독일 루터교회 목사였던
‘벤자민 슈몰크
(Benjamin Schumolk)’
목사님의 기도문이
가사가 되었습니다.

1618년에 시작된
유럽의 신. 구교전쟁은
1648년 전쟁이 끝나기까지
30년 동안 온 유럽을 피로
물들였습니다.

전쟁은 끝났지만
신. 구교의 대립은 여전했고,
 건물은 폐허가 됐으며,
흑사병이 유행하면서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여가고
있었습니다.

1730년 슈몰크 목사님은
과로로 쓰러져
오른손을 쓰지 못하게 되었고,
백내장으로
실명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앞을 보지 못하고
지팡이에 의지한 채
넓고 넓은 교구를 심방하며
보살펴야 했습니다.

어느 날, 목사님 부부가
심방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보니,
집이 완전히 불타고 여기저기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집에 있어야 할
아이들이 보이지 않아서
이리 저리 잿더미를 파헤치자
그 속에 어린 아들
형제의 시체가 있었습니다.

그때 두 아들의
시체를 앞에 놓고
울면서 드렸던 기도가
새찬송가 549장 (구431)
가사가 되었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온 몸과 영혼을 다 주께 드리니
이 세상 고락 간 주 인도하시고
날 주관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큰 근심 중에도 낙심케 마소서
주님도 때로는 울기도 하셨네
날 주관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내 모든 일들을 다 주께 맡기고
저 천성 향하여 고요히 가리니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

슈몰크 목사는
두 아들의 죽음 후에도
변함없이 혼신의 힘을 다하여
흩어져 있는 교구들을 목회하다가,
 1730년 어느 주일 과로로 쓰러졌고,
곧 이어 뇌졸중으로
한 동안 자리에 누워있어야 했습니다.

회복된 후에도
오른손과 발을
제대로 쓰지 못하게 되었고,
그 후에도 두 번이나
뇌졸중이 재발했습니다.

또한 백내장으로
실명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중에도
몸을 지팡이에 의지해서
먼 길을 심방하러 다녔습니다.

그런 그의 심방에 성도들은
눈물을 흘리며 감격했고,
열심히 교회에 출석해서
오히려 교회가 부흥했다고 합니다.

그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1,000편이 넘는 많은
찬송시를 남김으로써
그 시대를 대표하는
찬송작가로 공헌했으며,

또한 어떠한 환경에서도
하나님의 명령에
절대 순종하는 신앙인이었고,
위대한 설교가였습니다.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윌리엄 맥도널드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대체로 무엇인가가 깨어지면,
그 가치가 하락하거나
아예 사라진다.

깨어진 접시, 깨어진 병,
깨어진 거울은 쓰레기에 불과하다.

심지어 가구에 금이 가거나
옷이 약간만 손상되어도
그 값이 현저히 떨어진다.

그러나 영적인
​ 영역에서는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깨어진 것들,
특히 깨어진 사람에게
프리미엄을 붙인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여, 나를 깨뜨리소서!”

빈 구덩이는
내가 깨어지는 자리입니다.

 요셉은 빈 구덩이,
물도 없는 빈 구덩이에서
완전히 깨진 것입니다.

우리도
빈 구덩이를 경험해야 합니다.

나를 깨뜨리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완전히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빈 구덩이에
있는 것 같은 분이 있다면
그 구덩이에서
더 이상 형제들을 찾지 마세요.

나를 도와줄 것
같은 형제들 없습니다.

그들이 아무런 도움 안 됩니다.
그저 악한 사람들일 뿐입니다.

그 빈 구덩이에서 나의 죄됨,
어리석음, 교만, 강한
내 자아 다 깨뜨리세요.

‘내가 죄인입니다,
나를 어리석습니다,
 나는 교만합니다’
인정하면 됩니다.

그리고는 주님께
인생을 맡기는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빈 구덩이는
내가 깨어지는 자리입니다.

요셉은 빈 구덩이,
물도 없는 빈 구덩이에서
완전히 깨진 것입니다.
​ 
깨어진 사람에게 하나님은
손을 내밀어 만나주십니다.

요셉이 형들을 부르다
지쳐 있는 그 때
형제들은 음식을 먹습니다.

그러다가 이스마엘
상인들을 만납니다.

그리고는 형들이
요셉을 구덩이에서 건져내서
이스마엘 상인들에게 팝니다.

그리고 그 상인들이
요셉을 데리고 애굽으로 가고,
거기서 요셉은 보디발의 집에
노예로 팔려가게 됩니다.

비록 형들이 요셉을
그 구덩이에서 건져냈지만
요셉을 건져내신 것은
주님이십니다.

주님의 손길입니다.

이 때부터 요셉은
주님과 함께
사는인생이 되었습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 팔려가고,
또 감옥에 갈 때
계속해서 나오는 말씀이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입니다.

​요셉은 하나님과
늘 함께 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요셉과 함께 하신 주님이
 우리와도 늘 함께 하십니다.

출처:유기성목사의
설교중에서
[선한목자교회]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황은호 목사님이란
 분이 계십니다.

어느 이른 새벽,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은 시간에
예배를 인도하기 위해 차를 몰고
원효대교를 건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앞에
검은 물체가 지나가는 것입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자세히 보니 어떤 사람이
검은 양복을 입고 원효대교를
뛰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목사님이
별 이상한 사람이 다 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지나가면서
그 사람의 얼굴을 자세히 보니
많이 본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교회의
후배 목사님이었습니다.

비상등을 켜놓고 
차에 타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 시간에
왜 양복을 입고 뛰고
있냐고 물었습니다. 

 이 목사님이
 두 살짜리 아들이
간 이식을 받아야만
살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의사가 지방간 수치가 높아서
이식이 안 된다는 했다는 것입니다.

의사가 살을 빼면
간수치가 줄어들어 이식할 수가
있을지도 모르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운동할 시간이 없으니까
이렇게 출근시간이라도 양복을 입고,
살을 빼려고 뛰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들을 위해서 간 이식을 하려고
아침부터 검은 양복을 입고
운동하는 이 아버지의 마음처럼,

바로 이 땅에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시고,

그를 십자가에
대신 희생하게 하시어
우리를 구원하고자하는 것이
 하나님의 깊은 마음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조그마한
믿음의 모습을
요구하시지만
그러나 더 많은 것,
아니 자신 전부를 희생시키고
주고자하는 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아버지의
깊은 마음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여러분의
삶의 자리는 어떤 상황입니까?

지금 상황에 매몰되어
원망과 섭섭함과 두려움으로
 잘못된 해석을 할수도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더 깊은
마음을 읽으려고 해보십시오.

십자가로
해석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과거에 주님이
여러분에게 은혜를 주셨습니까?

그분이 오늘도
우리를 사랑하실까요?

미래도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실까요?

사랑하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십자가가
그것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출처:고재성목사의
목회칼럼중에서
[비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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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