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는데 찬양집회 하는 곳에 들어갔다가 은혜 받고 예수 믿게 됩니다.
그의 고백입니다.
"어릴 때는 교회에서 큰 소리로 기도하는 사람들을 보면 '왜 저러나' 그랬어요. 그래도 성가대 찬양은 좋았죠. 찬양 때문에 매주 가기는 했지만 신앙심은 없었습니다. 근데 어느 날 성가사 박종호씨의 찬양집회 소리에 저도 모르게 이끌려 참석하게 됐죠. 그때 찬양에 큰 감동을 받았고 '나를 키우고 귀하게 쓰실 것이다'라는 마음을 품게 됐어요.
그리고 나서 신학을 전공하고 이탈리아에 성악을 공부하러 떠났는데, 참 한달 동안 아버지가 생활비를 보내주고 나서 사업이 망한 후에, 생활비를 보내주지 않아서 극심한 어려움을 겪습니다.
삼년동안 거의 가족들이 굶다시피 지냅니다. 레슨비가 없어서 공부도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그 절망의 때에 울부짖어 기도합니다. “‘고통의 끝자락’에서야 비로소 ‘기도의 자리’로 나아갔습니다. 울음을 넘어 절규하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 버리신 거 맞죠?’ 바로 그때 천둥 같은 소리가 들렸습니다. ‘태성아, 태성아, 너는 내가 가르친다!’” 엎드려 울며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그때로 부터 기적을 베푸십니다. 그런데 어느 교수님이 그 분의 목소리를 듣고 나더니, 무료로 레슨 해 주고 한 달 동안 열심히 성악 시킨 다음에 콩쿠르에 나가라고 떠밀어 내보냈는데 나가서 일등을 했어요. 그걸 계기로 해서 그가 여러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발탁이 되어서 2006년 이태리 베르가모 극장에서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에 정식 데뷔한 이후, <운명의 힘>, <마농 레스코>, <아이다>, <투란도트>, <오텔로>등 많은 오페라의 주역으로 그가 활동하게 됩니다. 현재 이탈리아 매니지먼트 소속으로 활동하면서, 자기처럼 가정 형편상 음악을 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레슨을 해주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리라면 어디든 그가 달려갑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남모르는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상황이더라도 하나님은 결코 버리시지 않으시며, 늘 함께하시고 붙들어주십니다. 믿음으로 그분 사랑 안에 거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고백하고 싶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은 제게 지금 무엇을 원하십니까?" 조용히 겸손한 기도를 하면서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향에는 아버지가 유산으로 물러준 넓은 불모지가 있었다.
그녀는 이 땅을 개간해서 농사를 지었다.
그리고 여기서 수확한 것으로 중국선교사들의 선교비를 보냈다.
그런데 농사하다가 추수하고 탈곡하던 중에 탈곡기에 손이 끼어들어가는 바람에 손이 부러져서 자르게 되었다.
오른손이 잘렸다. 그러나 그녀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겸손히 기도했다.
"하나님, 하나님은 제게 지금 무엇을 원하십니까?"
그녀는 농사를 멈추고 그 땅에다가 양로원을 짓고 노인들을 위로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성공적으로 확장되어서 유명한 양로원이 되었고 그녀는 "노인의 어머니"라고 하는 사랑스러운 칭호를 받게 되었다.
그녀는 어떠한 여건에도 "주여,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가?"하고 여건을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주여, 주께서는 내게 지금 무엇을 원십니까?”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찾았다.
예레미야는 29장11절 말씀에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들에게 재앙이 아니라 소망을 주시고 심판이 아니라 평화를 베푸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심판 대신에 구원을 주시고, 절망 대신에 희망을 주시고, 회의와 의심 대신에 확신을 주시는
니콜라우스 진젠도르프 (Zinzendorf. 1700-1760)는 젊은 날 그의 영혼이 방황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어느 날 화랑에 갔다가 이탈리아 무명 화가 도미니코 페티의 그림, "이 사람을 보라"(에케 호모)를 보게 되었습니다. 거기에 주님의 십자가가 있었고 그 십자가는 이렇게 그의 양심에 물어 왔습니다.
“나는 너를 위해 이 십자가를 졌다 너는 내게 무엇을 하였느냐?" 진젠도르프의 가슴은 뜨거워졌고 감동의 눈물이 그의 볼을 적셨습니다. "저는 주님을 위해 한 것이 없습니다. 이제부터 십자가만 따르겠습니다." 거룩한 삶을 살기로 다짐하며 평생 주님의 십자가와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진젠도르프는 정부의 공직을 버리고 박해받는 기독교인들의 피난처가 되기를 자처했습니다. 자신의 재산을 털어 독일과 체코와 폴란드 국경에 인접한 헤른후트에 공동체를 만들어 18세기 신앙의 박해를 받는 사람들을 보호하였습니다. 루터 이전의 개신교도 모라비안 교도들과 형제단을 만들어 경건생활에 힘썼습니다. 전 세계에 주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였습니다.
이 모라비안 운동이 할레대학과 함께 근대 선교의 불을 일으켰고 1832년 7월, 한국 최초의 선교사인 귀츨라프(1803∼1851)를 우리나라 서해안으로 보내게 됩니다. 고아원의 아버지 조지 뮐러를 회심시켜 영국으로 보냅니다.
미국 선교에 실패하고 돌아온 후 영적인 문제로 고민하던 1738년 5월, 런던 모라비안 교도 집회에서 웨슬리의 영혼이 거듭나게 됩니다. 감리교가 탄생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정직하게 자신을 바라 볼 때 자신이 회복되고, 삶이 정돈되고, 무엇이 가치 있는 것인가를 분별해지게 되고, 그래서 자신을 넘어 세계의 역사를 바꾸는 놀라운 회복과 부흥의 역사가 있어나게 된 것입니다.
비가 주룩주룩 오고 있었다. 창문가에서 끙끙대는 소리가 들려 창문을 열어 보니 우리 집 처마 밑에 한 형편없는 거지가 보따리를 옆에 끼고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가 너무 불쌍하고 딱해 보여서 대문을 열고 그 사람한테 다가갔다. “춥고 배고프시죠? 들어오셔서 몸을 녹이고 식사하세요.” 그분을 집에 들이고 식사를 차려 드렸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생겼다. 그 순간 형편없던 거지가 영광스러운 주님의 모습으로 변하는 게 아닌가! 반면 나는 세상에서 제일 피곤하고 지치고 병이 든 아주 비참한 모습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입장이 180도 바뀐 것이다. 끔찍한 냄새가 나고 지저분한 누더기 옷을 입고 지친 나를 주님이 다가와서 안아 주셨다. 그것은 주님의 임재였다. 주님의 눈을 보니 울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까지 나는 내가 주님을 애처롭게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주님을 뵙고 보니, 주님이 나를 사랑하고 계신 것이었다. 모든 수치와 비난과 모멸도 잊으신 채 주님은 내가 내쫓은 문밖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나를 기다리고 계셨던 것이다.
그때 주님은 보따리를 푸셨다. 그 안에는 이런 말씀이 적혀 있었다. “내가 너를 십자가만큼 사랑한다.” 그리고 주님은 물으셨다. “너 목사되지 않을래?” 40년 전의 환상이지만 지금도 생생하다. 내가 얼마나 놀랐을지 상상해 보라.
그날 나는 눈물범범이 된 채 이런 일기를 썼다. ‘나를 사랑하시다 못해, 기다리시다 못해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신 주님이 이제 내가 필요하다고 하신다, 지금 이때가 아니면 내가 언제 순종할까?’ 그날 밤 나의 일생를 주님께 헌신했다. 질병은 나의 목회1번지이다. 오늘 내가 나된 것은 바울의 고백처럼 하나님의 은혜다. 출처 하용조 목사가 쓴 <사도행전적 교회를 꿈꾼다> 중에서
데일 카네기 (Dale Carnegie, 1888~1995)는 경영 컨설턴트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었다. 그는 일평생 100권에 가까운 책을 쓴 저술가로서도 유명하다. 그가 쓴 『절망은 없다』는 미국을 비롯해서 전 세계에 이미 수천만 부가 팔렸다. 그리고 그가 죽고 난 지금도 매년 1백만 이상의 사람들이 이 책을 읽는다고 한다.
데일 카네기는 본시 어려운 가정에서 자랐다. 그의 아버지는 일찍 세상을 떠났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며 아주 가난하게 살았다. 그의 가족은 매일마다 먹고 사는 문제를 걱정해야 할 평편이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신앙심이 돈독했다. 그래서 그가 어린 시절 잠자리에 들때면, 그의 어머니가 그를 위해서 늘 기도해 주셨다. 그러면서 그의 어머니는 그에게 이런 말을 늘 해주었다. "얘야, 하나님이 너를 돌보아 주신다. 그래서 너는 반드시 훌륭한 인물이 될것이다. " 어린 카네기의 마음에는 어머니의 말이 깊이 새겨졌다.
그래서 그 뒤로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어머니의 말대로 하나님이 자기를 보살펴 주신다는 사실을 늘 생각했다. 그 결과 그는 무슨 일이든지 신나게 기쁨으로 할수 있었다. 그는 하나님을 힘입어 가난을 극복했다. 그는 어려운 형편에서도 열심히 공부를 하여, 결국은 유명한 저술가가 되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명성 있는 강연가가 되었다.
그는 자기 부모에게서 한 푼의 유산도 받지를 못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어머니에게로 부터 아름다운 믿음을 유산을 이어 받았다. 그 결과 그는 하나님의 은총으로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크고도 귀하게 쓰임을 받았다.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시 37: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