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 리더 :: '풍경이 있는 묵상' 카테고리의 글 목록 (40 Page)

빛 가운데 살다가
빛을 남기고 간 한 사람이 있다.

​바로 1995년 12월 25일
성탄절 날 새벽 1시 45분 경,
85세를 일기로 하나님 품으로
돌아간 장기려 박사다.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한국의 슈바이처’라고도 불렀고,
‘살아 있는 작은 예수’라고도 불렀다.

​그는 하나님의 충성스러운
청지기로 산 사람이었다.

​장기려 박사는
평생 무료로
병든 사람들을 진료했고
무소유의 삶을 살았다.

1975년 정년퇴임 후에는
집 한 채 없이 고신 의료원이
병원 옥상에 마련해 준
20여 평 관사에서 여생을 보냈다.

그는 소유하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았다.

​자기 자신을 주인이나
소유주로 간주하지 않고
철저하게 종이나
청지기로 생각하며,
평생을 깨끗하게 살았다.

​보통 사람들과는
너무나 판이한 삶을 살았다.

장기려 박사는
먼저 아내를 극진히 사랑했다.

1950년 12월,
​아내와 다섯 자녀를
북한에 두고
월남한 후 45년 동안
아내를 그리며 홀로 살았다.

​재혼하라는
권유를 받을 때마다
“우리의 사랑은
육체의 이별과 무관하다.

​사랑하는 사람과 영원히
살기 위해 혼자 산다”라고
말했다.

​또한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극진히 사랑했다.

1951년 5월부터
부산에서 창고를 빌려
간이 병원을 설립하고
피난민들과 전상자들을
돕기 시작했다.

​그는 1969년부터
8천여 명의 간질 환자들을
무료로 진료했다.

​예수님을 따르면서
예수님처럼 사랑하며 산 것이다.

​장기려 박사는
자신의 무덤 비문에
‘주를 섬기고 간 사람’이라고
적어 달라고 유언했다.

​장 박사는
평생 주님을 섬기며,
장로로 그리고 의사로 살았다.

항상
‘예수의 마음을 본받자’라고
말하면서 주님을 섬겼다.

​출처: 김명혁이 쓴
<영 몰라! 통 몰라!
​가르쳐 줘도 몰라!>
​중에서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독일의 한 철학자는
무엇이든 실행에 옮기기 전에
철저히 공부하고 연구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에게는 사귀고
있는 연인이 있었는데
하루는 여인이 먼저 청혼을 했습니다.

철학자 역시
자신의 연인을 사랑했지만,
‘결혼’이 정말로 할 만한 것인지는
아직 확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철학자는 여인에게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만
결혼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합니다.

평생이 걸린 일입니다.
생각을 좀 해보겠습니다.”

철학자는 집에
돌아가 그날부터 결혼에
대해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결혼이 시작된 유래,
각 나라의 결혼 풍습,
그리고 결혼을 찬성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들의 책과
논문을 읽으며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오랜 시간 끝에 그는 결국
여인과 결혼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때는 너무 늦었습니다.

그 여인은 이미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어
두 아이와 함께
가정을 꾸렸기 때문입니다.

가슴의 응답을
무시하고 머리로만
이해하려고 하면 때는
이미 늦습니다.

사랑의 감정,
성령님의 임재와 같은 것들은
 머리로 이해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또 머리로만 이해할 수도 없는 것들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뜨겁게 가슴으로 응답하십시오.
주님! 온전한 부르심에
뜨겁게 응답하게 하소서!

가슴 속의 확신이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바로 행동하십시오.

출처:김장환 큐티365
[나침반출판사]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미국의 ‘백화점 왕’
존 워너메이커는
 200억이 넘는 재산을 모았고,
그 중대부분을 기부했습니다.

200억 달러는 지금으로는
20조가 넘는 정말로 큰 액수입니다.

이런 부를 축적한 그에게
많은 사람들이 돈에
관한 질문을 했습니다.

한사람이 워너메이커에게
가지고 있는 재산 중에
가장 귀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배운 것도 없는
가난한 소년이었지만,
하나님의 도움으로
많은 재산을 모았습니다.

얼추 계산해도
200억 달러가 넘습니다.

지금은 좋은 집과 여러 건물들,
그리고 많은 재산을 소유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 중 가장 귀하고
아끼는 것은 11살 때
정확히 2달러 75센트를 주고
산 빨간 성경책입니다.

그 성경이 오늘날 저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워너메이커는
성경을 묵상하고
말씀을 늘 실천하던 사람이었습니다.

 ‘백화점 왕’ 워너메이커의
또 다른 별명은
‘십일조의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을 묵상하고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많은 복을 주십니다.
 세상 모든 것을 잃어도
하나님만 있다면 괜찮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얻어도
하나님이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구원과 영생이 가장 귀하고
가장 필요한 것임을 잊지 마십시오.

주님!
세상의 어떤 것보다
주님의 말씀이 최고임을 알게 하소서!

언제나 주님의 말씀에
인생의 최고 가치를 부여하십시오.
출처:김장환 큐티365
[나침반출판사]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양화진문화원(원장 박흥식)이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안장된 모든 선교사와
우리나라 근대화 과정에
기여한 일부 인사들의
공적을 소개 한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책을 펴셨는데요.

제일 먼저 묻힌 분은
1890년 7월 28일
제중원 2대 원장으로
헌신하시던
존 헤론 선교사님이
이곳에 묻혔습니다.

미국 북장로교
파송 선교사님으로
뛰어난 의술을 가진
의사였습니다.

20대에 모교 교수로
초빙 받을 만큼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던 분이었는데

“한국으로 가라”
그 명령을 받고
그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와서
몸이 부서져라
주님 영광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병든 자를 돌보고
가난한 자를 섬기다가
본인 자신이
몸이 쇠약해지고
병이 들어서 5년 만에
서른 네 살의 젊은 나이로
아내와 어린 두 딸을 둔 채로
이 세상에서 숨을 거두고
양화진에 묻히게 됩니다.

그는 이 땅에
주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온몸 바쳐 헌신한 선교사요,
주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순교자의 모습을 보인
주님의 귀한 종이었습니다.

양화진에 묻힌
선교사들을 보면 책에
이렇게 소개되어 있습니다.

​“선교와 관련된 이가
145명 가운데
‘선교사가 90명’
(남 36명, 여 54명),
‘가족 55명’이다.

‘어릴 때 묻힌 자녀들
’(45명)이 적지 않고,
어릴 때 자녀들이
병에 많이 죽었어요.

‘여 선교사’가
남 선교사보다
더 많이 묻혀 있다는
사실이 눈길을 끈다.

이 같은 사실에서
기후와 풍토가
맞지 않아서
외지에서의 선교 사역이
‘여성과 어린이들’에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선교사님들의 비문
몇 가지를 소개합니다.

“나는
웨스트민스터성당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하노라.
-호머 허버트(Homer B. Hulbert,
1863-1949)선교사”,

“만일 내가 줄 수 있는
천 개의 생명이 있다면,
모두 조선을 위해 바치리라.
-루비 캔드릭(Rudy R.
Kendrick, 1883-1908)
선교사”,

“나는 한국에
나의 뼈를 묻을
각오로 온 사람이었습니다.
-루(G. H. Rue, 1899-1993)
선교사”

이 책의 발간사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묘역을
둘러보다 보면
‘한국의 근대화와
개신교 선교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분들’뿐 아니라,

‘이름이 낯선,
널리 알려지지 않은
분들’도 적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분들은
‘질병이나 사고’ 등으로
일찍 세상을 떠나,
사람들에게 기억될
만한 큰 자취를
남기지 못했지만,

‘조선인과 이 땅을
사랑했다’는 점에
있어서는
다른 분들과 조금도
차이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기억하는 자 없는
이 낯선 이국땅에
묻히기를 바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분들도
이 땅의 복음화와
발전을 학수
고대하였으며,
목숨이 다하기까지
정성스럽게 조선과
 그 민중들을 섬긴
‘희생적인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순종에는
이와 같은 희생이
따르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여러분의 재능도
물질도 목숨까지라도

아낌없이
주님께 드릴 수 있는
그러한 순종의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한국에서
볼펜의 대명사로
알려진 모나미
​ 153 볼펜이 있습니다.

볼펜을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이나 기술도 없었던
상태의 도산의 위기에서
송삼석 회장이 기도하면서
직접 붙인 이름입니다.

송삼석 모나미 회장은
‘모나미 153’라는
명칭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MonAmi는 불어인
Mon(나의)와Ami(친구)를
합친 것으로

 ‘나의 친구’라는
의미이고
​ 153이라는 숫자는
기독교적 의미를 담고 있는데

‘베드로가 예수님이
지시한 말씀에 순종하여
​153마리의 고기를 잡았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는
요한복음 21장에서
영감을 받아 이름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회사가 가장
어려웠을 때
당시 제조업체 사장인
송삼석 회장이 기도원에
올라가서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하면서
생각해보니
그간 사업을 하면서
하나님 앞에 범죄한 게
너무 많더라는 것입니다.

첫째,
주일성수를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철저히
회개를 했습니다.

“이제부터 주일
성수를 하겠습니다”

둘째,
돈을 많이 벌고도
십일조를 안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것을
떼어먹었습니다.
이제부터 십일조를
하겠습니다.”라고
회개를 했습니다.

셋째,
새벽 기도하지
않은 것을
회개했습니다.
 “내가 새벽마다
주님 앞에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했습니다.
이제 새벽기도를 하겠습니다”
이렇게 결심을 했습니다.

이렇게
기도하고
난 다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있었는데,
요한복음 21장1-14절의
말씀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이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고
말씀하신대로
그물을 던졌더니
물고기가 얼마나
많이 잡혔는지
그물을 끌어올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잡혔습니다.

육지로 끌어올려
물고기를 세어보니
153 마리의 큰
물고기를 잡았으나
그물이 찍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모나미153’이라는
볼펜을 만들겠습니다.

​하나님,
​이 볼펜이
모든 사람의 손,
​아니 전 세계에
있는 모든 사람의 손에
다 들려지기를 원합니다”

기도하고
난 후
그는 목표를
크게 잡고
“50억 자루가
팔리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근거해서 도전을
하였습니다.

망해 가는 회사가
볼펜 50억
자루를 판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 텐데
통계에 따르면
이미50억 개 이상이
팔렸다고 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이렇게 어려움을
통과하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 체험과
함께 축복을
경험하게 될 때
활력을 얻게 되고
더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송삼석 회장님처럼
기도하시다가
말씀을 붙잡고
153마리의
물고기를 잡았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않는 예수님의
증인의 삶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영국의 청교도
존 번연 (1628-1688,)은
1628년 잉글랜드의 베드포드,
땜장이의 맏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가난한 가정으로 인해
정규 교육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번연은 거짓말을 일삼고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모독하면서 젊은 시절을 보냈습니다.

존 번연이 처음 성경과
예수님에 대해 알게 된 것은
방 문 옆에서
서너 명의 가난한 여인들이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내가
​결혼 지참금으로
가져온 두 권의 책인
“평범한 사람의
천국으로 가는 좁은 길”과
“경건의 연습”을 읽으면서
자신의 죄와 종교적 각성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번연은 하루에
두 번 이상 교회에 가서
기도하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회심을 체험한 번연은
결혼하여 첫 아기를 낳았는데
장님인 딸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 일로 큰 충격을 받은
존 번연은 신앙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이 할 수 없는 한계상황,
자신의 무능과 가난함으로
고민을 하다가 고향 마을에 
존 길포드 (John Gilford) 목사님과
상담 후 그리스도를 구체적으로
만나게 됩니다.

그 후 성경 읽으며, 기도하며,
깊은 신앙생활,
은혜의 자리에 들어가게 됩니다.

또 인생의 문제들을 극복하며
살기로 결심하게 됩니다.  

  하나님으로 받은
특별한 은사로 설교를 하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감화를 받았습니다.

1660년 왕정이 들어서면서
설교를 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주변에 있던
귀족 계층이 미워하였으며
결국 그는 고소하여
감옥에 수감되게 됩니다.

결국 12년 옥살이를 했습니다.

감옥에 있는 동안
잠시 절망하였지만
<명사의 유익>,
<죄인 괴수에게 넘치는 은혜> 등
여러 권의 책을 쓰게 됩니다.

1667년부터 1672년까지의
5년에는 <천로역정>을 쓰게 됩니다.

이 글은
기독교 불후의 명작이 되었고,
글을 통해 감옥 밖에 있을 때 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큰일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존 번연은
끊임없는 고난과 역경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하나님의 사랑을 붙잡았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이겨냈습니다.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서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믿음으로 살아갈 때
 고난이 축복의 발판이 되어
더 놀라운 일을 이루셨습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시편 119:71]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독일 나치가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키고
폴란드를 침략할 때였습니다.

로만 폴스키라는 유명한
비행기 조종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폴란드 사람이었는데
프랑스에서 자가용
비행기 조종사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호텔로 들어가다가
어떤 사람과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그가 쓰러진 사람을 부축하는데
갑자기 상대가 다리를 잡으면서
"독일 경찰에게 쫓기고 있으니
숨겨 달라"라고 요청합니다.

할 수 없이 자기 호텔 방
모포 속에 숨겨 주었습니다.

그가 호텔에서 떠날 때
상대는 자기도 데려가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래서 몰래 자가용 비행기에
태워서 국경에 내려 주었습니다.

폴란드가 점령당하자
로만 폴스키는 영국군
전투 조종사로 지원합니다.

얼마나 잘 싸우는지
영국 신문은 매일
이 사람의 전투 상황을
보도했습니다.

전투 조종사로
혁혁한 공을 세우던
어느 날 갑자기 뇌에 파편을
맞는 사고를 당하고 맙니다.

병원에 이송되어
수술을 해야 하는데 병원에
뇌 전문 의사가 없었습니다.

급기야 영국 "런던 타임스"에
뇌 수술 전문 의사를
급히 구한다는 광고를 냈습니다.

그때 멀리 스코틀랜드에서
한 의사가 왔는데
매우 유명한 뇌 전문의였습니다.

이 의사가
얼마나 열심히 수술하는지
모든 사람이 놀랄 지경이었습니다.

마침내 깨어난
로만 폴스키가 수술을 
집도한 의사를 만났습니다.

그 의사는
자신을 모르겠느냐고 물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당신이 지난날
오스트리아 빈에서
도망가던 사람을
살려 주었던 걸 기억하나요?

바로 그 도망자가 저입니다.

당신이
그때 살려 주었기에
나는 영국에서
뇌전 문의가 될 수 있었습니다.

신문에서 당신이
죽어 간다는 기사를 보고
급히 달려왔습니다.

내 평생에
이렇게 정성을 다해
수술을 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때 나를
살려 줘서 고맙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다른 사람에게 좋은 일을 하면
반드시 하나님이
그 열매를 거두게 하십니다.

출처:이태근 목사의
"열매 맺는 사람" 중에서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미국의 실업인
스탠리 탐은
 모든 사람이
말리는 데도 불구하고.
 앞서 경영하다가

네 사람이나
망해버린
 플라스틱회사를
억지로 인수하여
 다섯 번째로 경영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파산하고 말았습니다.

낙심한 그는
엎드려 기도하던 중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 이번에는 주님을
사장으로 모시고
다시 해봐라"

그는 변호사를
찾아가 법적으로
예수님께 51%의
주식을 드리기로 하고
예수님께 조언을 구하며

 경영한 결과
매년 우리돈으로
15원의 순이익을
벌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중심이 되면
어떤 일도
보장 할 수 없고
 마치 모래위에 
집은 짓는 것과 같습니다. 

스탠리는 기도를 통해
진리의 음성을 듣고 
고지식할 정도로 하지만
 분명한 방법으로
예수님을 최우선의
 자리에 모셨습니다.

그 때 부터
그의 복은 예정되었던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 할 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잠언서 16장 9절]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