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 리더 :: '풍경이 있는 묵상' 카테고리의 글 목록 (74 Page)

젊은 선교사님이
아프리카
말리에서
순교를 하셨습니다.

 권지상 선교사님.
목사님 가정에서
태어나서
어릴 때부터
선교사가 되기를
소원해서
한양대 영문과를 나오고

총신대를 졸업한 후에
그 불어권인
서아프리카 쪽
선교를 위해서
프랑스 어학연수까지
다녀왔습니다.

아프리카는
동쪽으로는
영어권이고
서쪽은 불어권인데요.

아프리카 말리는 오랜
종족갈등으로 내전이 일어나자
여행 금지구역으로 된 것인데

그곳의 ‘보조족’이라는
곳을 가서 섬겼는데
소수민족으로 부족 99퍼센트가
무슬림이고 가보니까
기독교인이 두 명밖에 없었습니다.

이 부족을 섬기기 위해
2010년부터
아내와 함께 들어가서
정말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선교 사역을 하다가

지난 6월 차가
전복되는 사고로
서른다섯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선교사로 간지
4년 만에 그의 삶을 마칩니다.

그런데
그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그러한 위험을 가지고
선교하고 있기 때문에
미리 유서를 써놓으셨어요.
유서가 공개됐는데요,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제가 선교지에서
만약 순교하게 된다면,
개인적으로 무척
영광스러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먼저 저를 아끼는
많은 분이
저의 죽음으로 인해
인간적으로는 잠시 같이
있지 못해 슬프지만,
천국에서 큰 상급을 받고
있을 저를 생각하면서
기쁨으로 장례해주셨으면 합니다.

저는
각막과 장기 기증을
해 놓은 상태입니다.
선교지에서 가능하다면
선교지 사람들을 위해
시신이 쓰여졌으면 좋겠고,
가능하지 않다면
화장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자녀들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이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살 때
가장 가치 있는 일’은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는 것’과
‘그 하나님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입니다.

사랑하고 축복하며
 ‘소풍과 같은 삶’을
잘 마무리하여
‘천국’에서 뵙길 기대합니다.”

우리가 어릴 때 소풍간다고
 하면 들떠서 나가지요.
우리가 이 세상 사는데
이렇게 좀 소풍 같은 삶을
들떠서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되면
모든 것 다 놓고
주님 앞에 서게 되는데
그때에 부끄러움 없이
우리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도 바울은 모든 사람들이
가지 말라고 막았을 때에
울면서 막았을 때에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바울이 대답하되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사도행전21장:13절)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27살에 백만장자가 된
폴 마이어 박사는
 어느 날 어항 속에서
한 진리를 발견하고
그 인생을 산 결과
백만장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폴 마이어는 어항에
금붕어와 메기를 넣고 키웠는데
메기들이 금붕어를
다 잡아먹어버렸습니다.

그래서 폴 마이어는
어항에 유리 칸을 막아놓고
한 쪽에는 금붕어를 넣고
한 쪽에는 메기를 넣었습니다.

메기가 금붕어를 보고
 잡아먹으려고
쏜살같이 달려들었지만
유리에 부딪쳐서 아픔을
느끼고 돌아섰습니다.

몇 번을 거듭한 메기는
이제 포기를 하고 금붕어에게
관심을 보이지 아니했습니다.

그래서 폴 마이어는
며칠 후에 유리 칸막이를
빼어내 보았습니다. 

  그런데 메기는
금붕어를 잡아먹지 않고
금붕어를 향해 달려들다가
중간쯤 와서는 홱 돌아서고
잡아먹을 수 있는 기회가
왔는데도
그만 자포자기하고 돌아섰습니다.

여기에서 폴 마이어는
놀라운 진리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진리입니까?

“나를 어떤 일에서도
결코 자포자기하지 아니하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메기처럼 미리 겁먹고 좌절해서
돌아서는 자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미리 낙심하고 좌절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보배롭고
존귀한 자의 모습이 아닙니다. 

  심리학자에 의하면

우리들이 걱정하고
근심하는 것은
이미 일어난 것
과거 걱정을 40% 하고 있고

50%은 아직 일어나지
않고 있는 것을 걱정,
근심하고 있고,

10%만이 현재 걱정거리를
근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문제 앞에서
조금도 낙심하지 말고
어깨를 활짝 피고 힘차게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새벽이
가장 어두운 때는
해 뜨기 바로
직전이라는 것입니다.

어려움이 더해 올수록
하나님의 응답은 문 앞에
가까이 이르고 있다는 것을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
​(막 9:23)

출처: 곽노아 목사의
설교중에서 
(노아방주교회)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주님은
삭개오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고 밝히신다
(눅 19:10).

바로 삭개오가 잃어버린 자였다. 

삭개오가
주님을 찾은 듯 보이지만,
사실은 주님이
삭개오를 찾으셨다는 말이다.

삭개오가 나무 위에 올라가서
주님을 만난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주님이 나무 위에
달리심으로
삭개오를 만나신 것이다. 

삭개오가 주님을 자기 집에
거하게 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주님이 먼저 삭개오 안에
유하시겠다고 말씀하심으로
삭개오 역시 주님 안에
거하는 삶을 살게 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삭개오는
틀림없이 누가복음 15장에
등장하는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은 아들이고,

18장에 등장하는
바늘귀를 통과한 낙타이며,
“무릇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라고
하신 말씀의 산 증거인 셈이다.

이 삭개오의 사건은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시며
유일한 구원자라는 사실을
너무도 명쾌하게 드러내는 사건이다.

주님은 이 구원을
‘오늘의 구원’이라고 선포하신다
(눅 19:9).

​예수님을 믿어
얻을 미래적 구원이 아니라
바로 오늘,
지금 이 순간의 구원이다.

삭개오와 같이 그대를
혁신적으로 변화시킬
바로 그
‘오늘의 구원’을 선포하신 것이다. 

그대에게는 이
‘오늘의 구원’이 있는가?

내 언어를 바꾸고,
생각을 바꾸며,
행동과 삶과 습관을
바꾸어버릴 만큼 강력한
오늘의 구원이 그대에게는 있는가?

없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아직도 그대가
그대의 돌무화과나무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 나무에서 내려오라.
내려옴이 만남이다.

그저 예수님을 관망만 하면서도
그것이 마치 내 신앙의 열심인 양
착각하게 만드는 내 인생의
돌무화과나무에서 내려와야 한다. 

그 나무 위에 있는 이상,
결단코 예수님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없다.

내려와야 예수님의
진짜 모습이 보인다. 

그 모습은 예수님이
우리 대신에 우리의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
달리신 모습이다.

그 수치와 조롱의 나무에
대신 올라가 달리심으로
우리에게 구원과 치유를
선포하시는 모습을 보아야 한다.

내려와야 보인다.

​ 그 나무에서
내려오는 방법은
오직 말씀 그대로를
순종하는 것뿐이다.

우리가 말씀에
순종하는 순간
우리에게는 기적 같은
변화가 일어난다.

예수님을
관망하던 자리에서
이제는 내가 예수님 안에
거하는 전인격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내 인생의 절대 가치가
변하는 기적 같은 일을
경험하게 된다.

바로 오늘 삭개오와 같이
아프고 외로웠던 그대 인생이 
즐거이 그대의 돌무화과나무에서
내려옴으로
주와 함께하는 기적을 경험해보라.

예수님을 만나려고
열심을 내지만 잘되지 않는가?

그래서 힘겨운가?

그대는 지금 자신의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 있는 것이다.

다시 철저하게
말씀대로 순종하여
그 나무에서 내려오라.

나무 밑에 있어야
나무 위에 달리신
예수님을 진짜로
만나게 될 테니….

출처:​김상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느낄 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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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배가 바다를 항해하다
암초에 부딪혀 배는
파선되고 말았습니다.

이 사고로 승선한
사람들은 모두 다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유일하게 한
사람이 생존하였습니다.

정신을 잃고 파도에
이리 저리 밀리다
작은 섬에 도착하였고
그는 눈을 떴다.

기적이었습니다.

그는 인적이 없는
작은 섬에 갇힌
몸이 된 것입니다.

그는 이 섬에서
나갈 갖가지 방법을 궁리해
보았으나 전혀 가망이 없었습니다.

구원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으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남마다 바다 저 너머 배가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렸으나
그것도 허사였습니다.

그는 쓰러진 나무와
나무 잎을 모아 움막을 지었고
몇 가지도 되지 않는 물건들을
좌초된 배에서 건져 올릴 수 있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적은 섬에
그래도 산 짐승들이
가끔 눈에 띄어
그것들을 사냥하려
이곳저곳 뛰어다녔다.
실패하기가 일수이었습니다.

어느 날 먹을 것을
찾아다니다가 돌아보니
자기의 움막에 불에 붙어
연기가 하늘로 오르고 있었다.

뛰어 움막에
도착했을 때는
벌써 움막은 완전히
재로 변해 있었습니다.

정말 더 이상 견디기
어려운 시련이
닥쳐온 것이었습니다.
이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절망감으로 몸을 떨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기도에
대한 응답은 이외로
빨리 이루어졌습니다.

다음날 일찍 배
한척이 그 섬을
찾아 온 것이었습니다.
기쁨은 말로
할 수 없이 컸습니다.

배의 선장에게
거듭 감사의 말을 드리면서
어떻게 그 섬을 찾아오게
되었는가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선장은 말했습니다.

어제 당신이
이 섬에서 불을 질러
연기를 보내
신호하지 않았습니까?
그 연기를 보고 사람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해가 뜨기가 바쁘게
서둘러 이렇게 왔지요!"
자기가 그렇게
절망했던 움막의 화재가
그를 구원하는
신호탄이었음을
그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씀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삶의 현장에서 그
사실을 믿지 않고
절망만
거듭할 때가 많습니다.

이 말씀이 뜻하는
바를 다시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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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칭찬은 우리의 삶에
놀라운 에너지를 창출한다.

존 맥스웰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칭찬과 격려를 통해 성장한다.

칭찬과 격려는
인재개발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칭찬의 말 한마디는 짧지만,
그 파급효과는 어마어마하다.

이탈리아 나폴리의 한 공장에
성악가를 꿈꾸는 소년이 있었다.

그는 혼자
열심히 노래를 연습하다가
어려운 중에 겨우 
 첫 레슨을 받게 됐다.

그런데 교사는
그에게 아주 심한 말을 했다.

“너는 성악가의
자질이 전혀 없어.
네 목소리는 마치 덧문에서
나는 바람 소리 같아.”

아이는 크게 실망했다.

 다시는 노래를
부르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때에 이 모습을
지켜보던 소년의 어머니는
실망하는 아들을 꼭 껴안으며
이렇게 말해주었다.

 “아들아 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를 지녔다.

너는 할 수 있어.
실망하지 말아라.

네가 성악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엄마는 어떤 희생도
아끼지 않을 거야.”

소년은 어머니의
격려와 칭찬을 받고
다시 노래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세계적인
오페라 가수가 됐다.

그가 바로 위대한 성악가
엔리코 카루소이다.

잠언 21장 21절은
“도가니로 은을, 풀무로 금을, 
 칭찬으로 사람을 단련하느니라”고
말씀하신다.

칭찬함으로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으며,
칭찬함으로 사람을
위대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김대동 목사
(분당구미교회)
<겨자씨/국민일보>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스코트랜드의 호수에서
노 젓는 배로 사람을
실어 나르는 한 노인이 있었다.

그 배에는 노가 두 개 있었는데
각각의 노에는 ‘믿음’과 ‘실천’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한 승객이 노에
믿음과 실천을 새긴 이유를 묻자
노인은 “자, 한번 보세요”하더니
​‘믿음’이라는 노를 힘차게 저였다.

하지만 배는 원을 그리며
제자리에서 빙빙 맴돌 뿐이었다.
다시 ‘실천’이라는 노를 저었다.

그러자 배는 반대 방향으로
원을 그리며 맴돌았다.

이번에 노인은
두 개의 노를 함께 힘껏 저였다.

그러자 배는
물살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노인은
승객에게 잔잔한 미소로
그 의미를 설명하고 있었다.

<설원>이라는
중국 책에는 이런 말이 있다.

“여우는 맹수지만
의심이 많아서 머뭇거리며
실천하는 일이 적은데,
이것은 벌이나 반딧불이
독을 쏘는 것만도 못하다.”

믿음이 있다 하면서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믿음은 없지만
신념을 갖고 사는
사람보다 못하다.

그리스도인이 아닌 데
더 큰 일을 해내는 위인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믿음은 행동이다.
행하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큐티의 목적은
묵상한 말씀을 적용하며
하루를 살고자 하는 것이다.

묵상만 깊어지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빙빙 맴도는 생활을 할 수 있다.

묵상 없이 행동만 앞세워도
빙빙 도는 것은 마찬가지다.

묵상과 실천을
함께 하는 사람이
온전한 믿음을
소유한 사람이다.

믿음의 정상에
 다가서기 위해서는
이런 온전한 믿음을
소유해야 한다.

온전한 믿음을
소유한 사람의 이름은
아브람이 아니라 아브라함이다.

온전한 믿음으로
믿음의 조상이 된 아브라함처럼
행함으로 믿음을 보이는
하루하루를 살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축복하신 것처럼
당신을 축복하실 것이다.

 출처:김인환이 쓴
<말씀을 붙들면 이긴다>
중에서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로빈 샤르마라는 작가가
쓴 ‘내가 죽을 때
누가 울어줄까’라는
책에 나오는 글입니다.

“남에게
부탁을 하는 사람은
5분 동안 바보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부탁하지 않음으로
평생 동안 바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남에게 부탁하는
사람에게는
최소한 그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그러나 부탁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습니다.”

남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사람이
도움을 줄 수도 있습니다.

남의 도움이
꼭 필요한 상황이라면
 거절을 두려워하지 말고
일단 부탁하십시오.

진심으로 돕고 도우면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시오.

이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생활과도 의미가 통합니다.

구하지 않고
얻으려고 하는 것은
현명한 생각이 아닙니다. 

무엇이든
구하면 응답하시는
 하나님께 필요를 구하십시오.

주님!
선을 행하는 일이라면
담대히 도움을 요청하게 하소서!

도움을 받는 것과
주는 것에 인색하지 마십시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다하라 요네꼬(Yoneko)
라고 하는 분이
『산다는 것이 황홀하다』라고
하는 책을 썼습니다.

이 분은 18살 때 어머니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시고
난 다음 큰 충격을 받고
방황했어요.

어머님 한 분을 의지하고 살았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니까
삶의 목적이 사라져버렸어요.
그래서 아마 깊은
우울증에 빠졌던가 봐요.

 어느 날 달려오는
전차에 몸을 던졌습니다.
그런데 온몸이
으스러져 죽는지 알았는데,
참 생명이 끈질긴 겁니다.

두 다리가 잘려가고
한 팔이 잘려 한 팔이 잃고
손가락만
세 개 남았는데 살아났어요.
이전보다 더 절망적인 삶입니다.

두 다리도 없고 한 팔도 없고
손가락만 세 개 남았으니
더 죽을라고 몸부림치는데
손가락 세 개를 갖고
죽을 수가 없어요.

병원에 누워있는데
한 신학생이 와서 전도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시고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한 계획이 있으니
예수님을 믿으세요”라는
복음의 메시지를 듣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영접하였음에도 그녀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이번에는 실패하지 않고
완벽하게 죽을 수 있도록
다시 자살하기 위해
수면제를 모아오던 요네꼬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더 이상 살 기력이 없습니다.
나에게는 손도 발도 없습니다.
이런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남에게 폐만 끼치게 될 뿐...
나에겐 전혀 가능성이란 없습니다.
 죽는 일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하나님 당신이 살아계신다면
나를 제발 도와주세요..."라고
기도하고 잔 그녀는...
잠에서 깨었을 때...

전혀 새로운 삶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녀에게는 이상하게도
하나님의 일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퇴원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생활은 어떻게 해 나갈 것인가?
식구들에게 폐가 되지 않을까?
그런 걱정들은 다
하나님께 맡겨 버리게 되었다 말합니다.
 

‘아, 아직도 나에게는
오른팔이 남아 있고
엄지, 검지, 중지
세 개의 손가락이 남아 있구나’를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전 도인들이 주고 간
 
성경책의 책장을 처음으로 넘기는
그녀의 눈 속에
한 줄의 글이 뛰어들어 왔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후 5:17)
 
그 말씀이 그녀의 마음을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서
그 마음속에
어두운 그림자가 사라지고
 삶을 살아야 하겠다고 하는
삶에 대한 희망이 생기고
용기가 생겨났습니다.

그의 내면세계가 아주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지금까지는 내가 나의
문제 때문에
고통 속에 살았지만

이제는 나의 남은
여생을 불쌍한 사람,
어려운 사람, 나같이
고통당하는 사람을 위해
 살아야 되겠다.

당시 18세였던 요네꼬는
그날부터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의사와 간호사를 비롯해
만나는 사람들마다
웃는 얼굴로 대합니다.

요네꼬는 황홀한 인생을
사는 비밀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의 변화된 모습을 보고
한 사람이 프러포즈를 해서
결혼을 하게 됐는데
그분이 바로 그를
전도한 그 신학생입니다.

결혼해서요 아주 행복하게
자녀도 낳고 잘 살고 있는데,
그래서 지금 아주 절망에
처한 사람들만
찾아다니면서 복음을 전해요.

그런데 책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이제 남편과 애들 위해서
부엌에서 요리를 하려고 그러는데
감자를 깎으려는데
손가락 세 개만 가지고
감자를 제대로 쥐어지지가 않아요.

감자가 굴러가요.
잡으려면
또 굴러가고 잡으려면
굴러가고 그렇잖아요.
두 손 갖고 써도 부족한데
손가락 세 개 가지고 감자 갖고
요리를 하려니까

그래서 100번 해도 안되는데
주님이 지혜를 주시기를
‘그 감자를 잡으려 그러지 말고
감자를 눌러 반 토막을 내라’
그래서 칼을 가지고 토막을 내니까
더 이상 안 굴러갔단 말이죠.

아주 단순한 건데,
우리는
두 손 갖고 하니까 쉬운데
손가락 세 개갖고 하려니까
굉장히 힘들었던가 봐요.
그런데 감자를 반 토막 내고 나서
요리를 하게 되니까
너무나 감사한 거예요.

아주 작은 것에 감사
우리는 너무 감사가 부족해요.
감자를 반 잘랐다고
감사하는 사람이 그 참 감사하는
모습이 얼마나 귀한지 몰라요.
 
예수를 만난 다음
이런 고백을 합니다.

“하나님, 제게는
손가락이 세 개나 있습니다.
이 세 개의 손가락으로
주님을 전할 수 있도록
사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심각한 장애를 안고
살아온 다하라 요네꼬 여사는
이제 80세의 할머니가 되었는데,
사고 후 60여 년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웠다고 고백을 합니다.

그리고 간증 집으로
책을 썼는데 책 제목이
“산다는 것이 황홀하다!”입니다.
 
여러분 산다는 것이 황홀한 거예요.

왜?
손가락 세 개밖에 없고
두 다리를 잃고 정말 한 팔도 없는데
손가락 세 개만 갖고도
불쌍한 사람을 섬기며
살 수 있으니까
너무나 산다는 것이 기쁨이고
기적이고 감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삶 가운데
희망을 주셨기 때문에
이렇게 절망에
처한 자에게 희망을 줬기 때문에
산다는 것이 황홀하다는 고백을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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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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