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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평생 끊임없이 
병마와 싸우면서도
자신의 병중의 삶을 
‘보석의 산’이라고 고백했던
놀라운 신앙인이자 <빙점>의 작가,
미우라 아야코가 
어머니를 회상한 내용입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8년이 지났다.
 
어머니를 생각할 때마다 
조용히 무언가를
 참아 내고 있는 얼굴이 떠오른다.

 폐결핵으로
 꼬박 14년을 누워 지내야 했던 나에게
“아무리 긴 터널이라도 끝이 있으니까
반드시 빠져 나올 날이 온다”고
 위로해 주던 어머니는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밝은 성품을 잃지 않으셨다.

내가 열네다섯 살 때의 일이니까
 거의 오십 년이나 된 옛날 일이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였다.

 어린 남동생이 
어머니를 도와주려고
 밥그릇 네다섯 개를 쌓아서 
부엌까지 나르려고 했다.

 내가 “떨어뜨리면 안 되니까 
옮기지 않아도 돼”라고 하자
남동생은 “할 수 있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다음 순간 동생은 
무언가에 걸린 것인지
 앞으로 넘어지며
 밥그릇을 떨어뜨렸다.
 
“그러게 내가 말했지.”
나는 먼저 그렇게 말해 놓고는
밥그릇 조각을 주우면서
 계속해서 나무랐다.

 그러나 그때 어머니는 
다정하게 동생을 위로했고
나중에 나를 살짝 불러서 말했다.

“아야짱,
너 자신은 일평생
 그릇 하나 깨지 않을 인간인 것처럼
 사람을 그렇게 야단치는 게 어디 있니?”
 나는 그 말에 깜짝 놀랐다.

 어머니는 필시 인간이
 여러 가지 실수를 반복해
 가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따라서 서로 용서해 주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는 존재인 것을
 알고 계셨던 것이리라.

「미우라 아야코를 만나는 여행」
포레스트 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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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Gone with the Wind)라는 소설은
​1926년부터 무려 10여 년에
걸쳐 집필한 대하소설이다.

그 당시에는
무명의 작가에 지나지 않았던
마거릿 미첼 (Margaret Mitchell,
1900 ~ 1949)이 쓴 소설입니다.

​이 작품은 황폐한 시대를
힘차게 살아간
남부 여성의 이야기인데
​1936년 퓰리처상을
수상하면서 미첼을
단번에 세계적인
문필가로 만들어주었습니다.


미첼이 스물여섯이던 그녀는
다리를 다쳐 5년 동안이나
다니던 신문사를
그만 두어야 했습니다.

​그녀는
특별히 해야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음으로
취미삼아 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점차 소설에
몰입하기 시작하면서
십년이나 걸려 마침내
​1,037면이나
대하소설을 완성했습니다.

그리고는 두툼한
원고뭉치를 들고 출판사를
찾아다니 자신의 소설을
출판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무명작가의
소설을 선뜻 받아줄
출판사는 아무 데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칠 년의
세월이 무심하게 흘렀고
원고는 너덜너덜해
질 정도로 닳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미국 조지아 주 애틀랜타의
한 지방신문에 뉴욕에서
제일로 큰 출판사 사장이
애틀랜타를 방문하였다가
기차로 되돌아간다."는
 짤막한 기사를 보았습니다.

 미첼은 자신의 원고를 들고
곧 바로 기차역으로 달려갔습니다.

​기차역에 도착했을 때
맥밀런 출판사의 레이슨 사장은
막 기차에 올라타려던 중이었습니다.

미첼은 큰 소리로
그를 불러 세우며 말했습니다.

​사장님,
​제가 쓴 소설입니다.
​꼭 한번 읽어주세요."

 레이슨 사장은 마지못해
원고뭉치를 들고 기차에 올랐지만
그는 원고 뭉치를 선반 위에
올려놓고는 거들떠보지 않았습니다.

미첼은 재빨리 기차역을
빠져나가 우체국으로
달려가 레이슨 사장에게
정보를 쳤습니다.

​얼마 후 기차 차장을
통해 한 통의 전보가
레이슨 사장에게 전달되었습니다.

"저의 원고를 한번만 읽어주세요."

그러나 그는
원고뭉치를 한 번 흘깃
쳐다볼 뿐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다시
똑같은 내용의 전보가 배달되었지만
그는 원고에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다시 세 번째
전보가 배달됐습니다.
​그때에야
그는 미첼의
끈질김에 혀를 내두르며
 원고뭉치를 집어 들었습니다.

원고를 읽으면서 그는
그 소설의 이야기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기차가 목적지에 도착해
승객들이 짐을 챙기는
동안에도 그는 원고를
놓지 않고 있었습니다.

레이슨 사장은 회사로
돌아와 곧 출판을 지시했습니다.

​그리하여 출간된 소설이
바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입니다.

 이 소설은
27개 국어로 번역되었고
​1,600만 부가 판매되었습니다.

한 여인의 지칠 줄 모르는
 10년의 집념이
한편의 소설에 집중되었고
​7년이라는 긴 세월이 한 편의
소설의 출판을 위해 필요했습니다.

​모든 성공 뒤에는
남모르는 인내가
그 속에
들어가 있음을 알지 못하고는
성공을 바르게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인내를 알지 못하는
오늘의 세대들이 배워야
할 표훈이라 생각합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약 1:4) 

출처:정충영교수님이
보내드리는
따뜻한 이야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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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유명한 기독교 작가로
 A. 크로닌 박사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연민 때문에
 좋은 여건을 포기하고
 광산촌에서 의사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병원에는
 억울하게 오해를 받아
그곳으로 쫓겨온
 어느 간호사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쫓겨온데다가
 월급마저 아주 적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불평하지 않고 오히려
항상 웃으며 여유 있고
 성실하게 일했습니다.
 
그리고 병원 
진료시간이 끝났는데도
제일 늦게까지 남아서 
일을 더 하곤 했습니다.

그런 간호사의 모습을
 본 크로닌 박사는
안쓰러워서 
간호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당신이 가진 가치만큼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어요”

 하나님은 
그것을 아실 텐데 말이에요.

” 이 간호사는 
이 말을 듣고 이렇게 대답합니다. 

“제가 가치 있는 존재라는 것을
 하나님이 아신다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겠습니까?”

간호사의 대답은 
크로닌 박사의
마음에 화살처럼 
꽂혔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아신다’는
이 절대적인 신앙을 가졌기에
절대적인 감사가 가능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
(민수기23:19)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1965년 신춘문예에
희곡 "성야"로 등단하여
작가,연극배우
그리고 방송인으로
살아온 오혜령씨를
소개합니다.

극작가 오혜령 씨는
연세대 영문과를 졸업 후
모교인 이화여고에서
교편생활을 해왔습니다.

그러던 중
 조선일보와 경향신문의
신춘문예 희곡 부문에
잇달아 당선되며
등단 한 후 극작가,
라디오 DJ 등
만능스타로 이름을
높였습니다.

특히 1960~70년대를
풍미했던
'별이 빛나는 밤에'서
DJ로 방황하는
청춘들의 '대모'로
활동한 것은
너무나 유명합니다.

하지만 한창나이인  
30대의 젊은 나이에
까마득한
절망의 나락으로
추락하게 됩니다.

1978년도에
 ‘위암과 임파선 암’이라는
청천벽력의 진단을
받게 되었고
의사는 3개월을 넘기기
힘들다고 판정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숱한
질병 속에서
용케 살아왔는데
그것도 모자라 중년에
위기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기독교인으로
성장해왔지만
하나님께 항변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진리를 추구해 온,
제게 왜 매를 드십니까?

당신이 살아 계신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이 고통 중에
말씀해 주시지 않으면,
더 이상 믿지 못하겠습니다."

그렇게 원망하는 가운데
통증은 24시간 동안
단말마로 다가왔습니다.

너무 고통스러워
차라리 죽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달력의 숫자에 빨간
색연필로 빗금을 쳐
나갔습니다.

예정된 죽음의 날짜인
6월 26일에 빗금이 쳐진지
며칠이 더 지났습니다.

물만 먹어도 토하고
혈변을 보는 고통이
계속됐습니다.

어느 날 정신이
몽롱해지기 시작하자
그때 어디선가
그녀의 목덜미를 낚아채는
강한 손길이 느껴졌고 순간
방바닥에 나동그라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삶과 죽음에
개입하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을
원망한 것에
​대해 두려움이
엄습했습니다.

지난날 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으며,
며칠 동안 눈물로
회개했습니다.

 이제는 육체적인
 암이 문제가 아니라
영적인 암이
치료받지 못하면
‘구원이 없다’라는
두려움으로 가슴을 쳤습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난 어느 날,
기도와 찬양으로 예배를 드리던
중 온몸에 오한이 덮쳤습니다.

‘아 이제 부름받는구나’
죽음을 예감하면서
이불깃을
잡아당기는데 웬일입니까?

겨드랑이의 임파선
암 덩어리가
만져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자세히 만져보니
멍울이 없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어깨에
복숭아씨만 하던
멍울도 사라져 버렸습니다.

또 한 복수로 차올랐던
배가 푸~욱 꺼졌습니다.
그동안 가빴던 숨도
고르고 평안해졌습니다.

 너무 놀란 나머지
‘주님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너무 감사한 나머지
서원기 도를 올렸습니다.

‘덤으로
얻은 인생 앞으로
소외된 자들과
함께 살겠습니다.’

그런데,
다시 9년 전에
‘관상 대동맥경련증’이란
희귀병에 걸려 지금까지
투병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을 정도로,
그녀는 질병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몇 번씩이나
찾아온 질병과
죽음의 고통 앞에서
욥과 같이 간절하게
울부짖었다고 합니다.

     그때마다 그녀는,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도움의 손길을 순간
순간 경험하면서,
 
남편 권오정 목사와 함께
경기도 화성군 비봉면에
'평화의 집'을
개원한 후 무의탁 노인과
결손가정 자녀들을 돌보며
헌신적 사역을 오늘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오혜령씨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제가 삶의 에너지를 받는 것은
잠이나 먹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자신의 육신을
지탱하는 방법일 뿐입니다.

저의 힘의 활력은
오직 주님을 의지하게
하는 기도입니다. 

그분 안에 거하는
자체만으로도 한없는
평안을 경험합니다.
 
​절망의 뒤편에 희망의 빛은
이렇게 실제로 존재합니다.
육신의 구원을 넘어 영혼 구원에
초점을 맞출 때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됩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