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버그의 십자가’라고 하는 유명한 그림이 있습니다. 이 그림의 유래는 이렇습니다. 화가 스탠버그는 성 베드로 성당 신부의 요청으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그림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림을 얼마 동안 그리다가 중단하고 말았습니다. 이유는 그림 값을 너무 적게 주겠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림 값을 다시 흥정할 생각으로 그리기를 중단하고 한 쪽으로 제쳐 놓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페피타’라고 하는 집시를 모델로 한 세속적인 그림이었습니다. 아마도 천박한 나체화 같은 그림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어느 날 그림을 그리다가 잠시 쉬는 시간에 모델인 페피타가 초안만 작성한 채 그냥 내팽개쳐 버린 십자가의 그림을 보면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저건 무슨 그림입니까?” “예수님에 관한 그림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모습이군요!” “예 그렇습니다.”
“무슨 사연이지요?”하고 집시여인이 물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는 질문이 귀찮았지만 간단하게 예수님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베들레헴에서 태어셨으며 이 땅에 오신 것은 사람들이 지은 죄를 용서해주고 사망에서 건지기 위함이죠,
수많은 병든 자를 고쳐주셨고 특히 거리의 죄 많은 여인들도 용서해 주셨고 착한 일을 했지만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이야기를 듣던 여인은 눈물을 왈칵 쏟으며 슬퍼했습니다.
그래서 스탠버그는 여인을 달래며 위로하기 위해 “울지 마세요. 예수님은 죽고 끝난 것이 아니라 부활하셨답니다.
그러니까 울음을 그치세요.” 그러자 집시여인은 눈을 번쩍 뜨면서 “정말 부활하셨습니까?”하고는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습니다.
이걸 보면서 스탠버그는 마음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만백성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부활하셨다고 말했는데 이 말을 들은 여인은 저렇게 밝은 생명력을 얻고 있지 않는가! 나는 정말 예수의 부활을 믿고 있는가?”라고 스스로 자문자답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을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그리면서 돈이 적다 불평하며 그리기를 팽개친 것을 회개하고 기쁨으로 그림을 완성하였습니다. 그 그림이 바로 유명한 ‘스탠버그의 십자가’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영감을 주는 그림으로 기독교회사에 전해지고 있습니다. 시간이 흘러 스탠버그도 페피타도 죽은 오랜 후에 스탠버그의 화랑을 방문했던 어느 귀인이 십자가 그림을 보고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모라비안 선교운동의 경건한 지도자 ‘진젠도르프 백작’입니다. 여러분들도 ‘스탠버그의 십자가’의 그림에 큰 감동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그래서 우편의 강도와 같은 신앙을 고백하므로 죄 용서함 받고 천국 백성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주님께서 사망 권세 이기시고 부활하신 것처럼 그런 부활의 능력이 여러분의 생애 속에서도 나타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한복음11:25~26)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셨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축복은 그대로 현실이 되었고 노아의 세 자녀에 대한 축복과 저주가 그대로 성취되었다.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막 11:23)
예수님은 수로보니게 여인에게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막 7:28~29)고 하셨다. 말은 씨가 된다는 말이 있다. 사람은 그 입술의 복록을 먹는다. 예수를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고 (롬 10:10) 하였다. 하나님의 약속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면 그대로 된다.
어느 교회의 사모님이 병원에서 위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사모님은 낙심이 되어 입술을 굳게 다물고 음식도 전혀 입에 대지 않았습니다. 개척 교회 때 고생했기 때문에 병이 생겼다고 생각해 목회를 하는 남편과 목회를 시키신 하나님께 원망의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목사님이 가까운 지인을 만나 사모님의 병명을 말하며 괴로워했습니다. 한참을 고민하던 지인은 사모님에게 때마다 감사한 일에 대해 적게 하라고 조언했습니다. 목사님은 그 길로 즉시 노트와 볼펜을 사 들고 집에 가서 아내에게 주면서 감사할 일에 대해 써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었습니다. “다 죽어 가는 마당에 무슨 감사한 일이 남아 있다고 그러세요.” 사모님은 퉁명스럽게 대답했으나 목사님이 나가자 한참 동안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문득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찾아 다니며 감사 인사를 하고 감사 기도를 드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모님은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사람들을 찾아 다니며 감사를 쉬지 않았습니다. 통증은 점점 사라지고 힘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더 이상 암 환자로 살지 않았고, 오히려 병이 들기 전보다 더 생기 넘치고 활기찬 삶을 살았습니다. 결국 암세포가 모두 사라지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맑은 날도 궂은 날도 있고, 비가 오고 폭풍우 치는 날도 있습니다. 기뻐 웃을 때도 슬퍼 울 때도 있고, 즐거워할 때도 고통과 괴로움 속에 보낼 때도 있습니다. 시시때때로 변하는 상황과 환경에 맞춰 감사하는 것은 그릇된 반응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모든 상황에 감사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