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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빈민의
성자로 불리는
일본 사람
노무라 모토유키
목사님이
서울시 명예
시민증을 받습니다.

그 명예 시민증을
받게 된 이유는요

 1968년부터
지금까지
한국을 위해서
특별히 서울에 와서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시작하는데요,

 청계천에
나갔다가
깜짝 놀라운
것을 봤어요.

판자촌의 한
무너져가는 집에
들어가 보니까
어린 소녀가
죽어가고 있는데
이 살 헌데로
구더기들이 살을
파먹고 있어요.

너무 놀라서
살을 구더기를
막 손가락으로
다 끄집어내고,
그런데 두 달 있다
그 아이가 죽습니다.

그래서
‘내 남은 삶을 이
불쌍한 아이를
도우며 살겠다.
불쌍한 사람을
도우며 살겠다.’

지난 20년 동안
해외 모금활동을 해서
약 2000명이 넘는
빈민 아동들에게
주린 그 배를 채우는
그러한 귀한
식량을 제공했고,

또 도쿄에 있는
집을 팔아서
청계천에
탁아소를 짓고,

간척지로 옮겨간
철거민들을 위해서
뉴질랜드에서 종자
소 600마리를
사오기도 했습니다.

80년대까지
50여 차례
오고가면서
한국으로 부친
돈만 7500만 엔,
8억 원이 넘고요.

본인은 산골의
조그만 교회를
섬기면서
검소한 삶을 삽니다.

죽어서도 한국에
 뼈를 묻길 원한다는
그러한 소원을 남겼어요.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그 죽어가는
소녀의
눈망울을 통해
예수님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조금씩 알게 됐습니다.

청계천
빈민들은
 하나님께서
저를 위해
보내신 성경
교사들이었습니다.

지옥과 같은
그곳에도
예수님의
십자가가 있고,
희망이 있고,
오순도순 서로 돕고
살아가는 정이 있었습니다.

그곳이야말로
제게는 가장
훌륭한 천국의
모형이었습니다.

큰소리로
외치지 않아도
그들은
예수님의 사랑을
듣고 보고
알게 됐습니다.

앞으로도
한국인을 위해
이 섬김과 나눔을
 계속할 것입니다."

이분은
일본인들의
위안부 만행을
사죄하는
마음으로

주한 일본
대사관 맞은편
 위안부 소녀상 앞에서
홍난파 ‘봉선화’를
플루트로
연주한 일이었다.

일본의 반대와
사람들은
쇼라고 했지만
그분은 진심을
담아서 연습하고
준비를 했답니다.

이웃을
사랑하는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내몸같이 이웃을
사랑하신
노무라 모토유키
목사님처럼
우리들도
이웃과 함께하는
참된 예수의 증인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서울 기독교 100주년 교회에서
은퇴하신 이재철 목사님이
젊은 목회자들과 함께
멘토링을 하면서
나눈 간증의 글을 보았습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외국인 회사에 있다가
사업을 시작해서 20대에
큰돈을 벌었다고 합니다.

가장 큰 집과 가장 좋은
자동차를 굴리며 살았습니다.

27세 때 결혼을 했는데
결혼 2주 만에 아내가
질병으로 죽게 된 것입니다.

20대의 홀아비가 되어서
장례식에서 뼈를 뿌리면서
‘나는 이제
하나님을 안 믿겠다’라고
결심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집에 들어가서
오후 3시에 침대에 누웠는데
창문에서 처음 보는 빛이
글자와 같이 비추더랍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지 않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죽어도
영혼이 죽지 아니하리니”

자신은 하나님을 버리지만,
 하나님이 자신을 버리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답니다.

그러나 아내를 잃은
아픔은 가시지 않았고
마리화나에 손을 댈 만큼
형편없이 살았답니다.

그 후에 지금의 아내가
자신을 도와주겠다며
 만났다는 것입니다.

아내가 자신을
도우려고 애를 썼지만,
이 분은 늘 술 먹고
새벽 2시에 들어간 것입니다.

어느 날인가
술 취해서 집에 들어갔는데
아내가 남편을 기다리다가
엎드려 잠이 들어 있었습니다.

아내의 머리맡에
일기장이 있었는데,
일기장에 눈물 자국이 있어서
그날따라 그것이 보고 싶더랍니다.

그 일기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난 오늘도
하염없이 논길을 걸었다.
그리고 죽음을 생각했다.

손목을 그을까 약을 먹을까"라는
내용의 고민을 쓰다가 “아니다.

그래도 주님께서
내게 맡기신 남편인데
내가 믿어야 된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허랑방탕한 삶에 빠져 있는
자신에게 싫은 소리를 한 번도
 안 하는 사람이었구나,
멀 모르는 사람이구나
 생각했는데,

술독에 빠져 있는 남편으로 인해
죽음까지 생각하면서도
예수님 때문에 자리를
지키는 사람인 것을 보면서
 주님의 사랑을 아내를 통하여
확인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 순간을 이재철 목사님은
 ‘나는 성령을 만났다.
그날 내 인생이 바뀌었다.’라고
고백을 합니다.

허랑방탕하였고,
알코올 중독자에 도박중독자,
마리화나에 손을 되었던
도무지 가능성 없는
자신을 구원하여 주신
주님의 큰 은혜에 감사하며
주님 앞에 충성하면서
살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출처:고재성목사의
목회칼럼중에서
[비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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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1988년 서울 올림픽
탁구 여자 복식에서
금메달을 따는 등
 ‘탁구 여왕’으로
불렸던 양영자 씨는

잘 훈련된
선교사로 바뀌어
몽골에서 15년간
선교사역을 하고 계십니다. 
 
처음 탁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담임선생님께서
초등학교 3학년 때
야외에 나가
그림을 그리는데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집중을 못하기에
그럼 탁구를 해보라는
제안을 받고
 시작을 했답니다.

그는
선수 시절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렸다.

중학교 때부터
팔꿈치 부상으로
 고생을 했고
병원에선 탁구를
그만두라고
권할 정도였다.

 하지만
국가대표를 꿈꿨던
그는 포기할 수 없었고
대신 주기적으로
진통제를
맞아야 했습니다.

 나중엔 진통제를
너무 많이 맞아
효과가 없을
정도가 됐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1984년
경기도 가평 한얼산
기도원에서 기적을
체험했다.

안수 기도를 받고
팔꿈치 부상이
완쾌된 것이지요. 

그는 고백하기를
그는 “하나님이
기도를 들어주셨다"라고
했다.

얼마 후엔 간염이
발목을 잡았고
연습을 제대로 못하면서
그의 기량은 떨어지니
​ 나중엔 국가대표팀에서
탈락하기까지 했다.

그때
주신 말씀이
잠언 24장 16절 말씀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
이였답니다.

‘양영자의 시대는
갔다’는 말이 나왔다.
하지만 그는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났다.

86년 상비군을 거쳐
30여 게임을 치르면서
국가대표로 재발탁됐다.

생방송으로 전국에 방송된​
서울 올림픽에서 최강
중국을 환상의 팀인
현정화와 함께
무너뜨린것입니다.

 최강 중국을
꺾고 나서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가
저절로 나왔답니다.

그런데 영적으로
날마다 기도해주시던
 어머니의 간암으로
먼저 천국에 가면서
우울증이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사람 만나기가 싫었고
아침에 해 뜨는 것이
싫었답니다.

그러나 그의
주위에 의사와
지인의
도움으로 서서히
 회복이 되었습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당신 나 자신도
저의 상태를 몰랐었고
우울증 겪으면서
부족한 믿음을 확인하고
큐티를 통해 말씀묵상과
성경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주신 말씀이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
시편 107편 10~11절 말씀입니다.
​​
하나님께서
이때를 위해
만남을 주셨는데
 이가 바로 남편
이영철선교사입니다.

 은퇴하고 제일모직에서
트레이너로 활동하던 때,
연합뉴스 국제부 기자였던
남편을 인도네시아에서
우연히 만났다.

남편은 같은 교회를
다니던 성도였고
자연스레
교제가 시작됐습니다.

1992년 5월 두
사람은 결혼을 했다.
선교사를 꿈꾸던 남편은
이듬해 회사를 그만두고
총신대 신학대학원에 진학했다.

신학공부를 마친
남편과 함께
선교사로 떠나기 앞서
그는 96년 호주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거기서 WEC 국제
선교회를 알게 됐고
6주간 선교 교육을 받았다.

드디어
 WEC 선교사로
1997년에  몽골 선교지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1990년대
공산 국가였던
몽골이 개방이 되어 
이때 하나님은
 양영자 선교사 부부를
몽골로 부르셨다.

교회를 시작했으나
선교 활동은
말처럼 쉽지 않았고
 언어와 문화 차이
때문에 힘들었다.

 바이러스에
감염돼 안면
근육이 마비되면서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그때 주신 말씀이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 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는
고린도후서 1장 4절
말씀입니다.

남편과 뿌리를 내린 곳은
울란바토르에서 차로
10시간 떨어진
‘생샨드’이었다.

선교 사역을 시작할 때
교인을 단 한 명.
하지만 지금은
200명으로 늘었다.

​그는 몽골을
 제2의 고향이라고 말하며
지금의 기도제목은
전 세계에 흩어진
몽골족 800만영을
주님께 말씀으로
세계를 정복하라는
귀한 통로가 되기
원한답니다.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