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D 한 장으로 얼굴이 다 가려지는 여자이며 발레를 전공하였지만 심한 부상으로 결국 꿈을 접게 되면서
하나님을 만나게 된 여의도 순복음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박소현 씨(집사)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서울에서 태어나서 1993년 SBS "출발 서울의 아침" 리포터로 데뷔하였고
1993년 드라마 "내일은 사랑"에서 발레를 포기하고 국문과에 입학한 여대생으로 데뷔한 이후에
"종합병원, 도시남녀 맨발의 청춘, 장미 울타리 왕꽃선녀님, 가 문의 영광 등과 라디오 프로그램 "박소현의 러브게임"과 예능 "순간 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를 오랫동안 진행하고 있는데요.
처음에 발레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었답니다.
몸이 약해서 집 앞에 생긴 발레리나의 예쁜 모습을 보고 시작하여서
초등학교 때부터 15년간 발레를 하면서 이화여대 무용과를 거치면서 꿈꾸던 발레를 무릎 부상으로 포기하게 됩니다.
수술을 해도 발레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답니다. 박소현 씨는 좌절했지만 하나님은 그녀를 만나주셨습니다.
그리고 발레리나에서 연예인이라는 새로운 길을 예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그녀의 고백입니다. "사람이 계획할지라도 그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잠언 말씀을 가장 좋아해요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이 모든 과정이 하나님의 인도였다는 걸 느낄 수 있어서 감사하죠,"
처음 방송 출연하게 된 계기가 있었답니다.
홍대에 놀려가서 방송 프로듀서를 만나고 나서 그분이 하는 말이 "너무 얼굴이 작은데 방송을 해보지 않겠어요." 라고 했는데 그때는 발레를 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나중에 몸이 다치면서 다시 전화가 와서 리포터로 시작하게 됩니다. 마침 리포터 중에서 예술을 전공한 사람을 뽑아야 된다고 해서 리포터로 시작해서 드라마 여주인공도 해보고 MC도 보내되면서 쉽게 풀려나가는 것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합니다.
"제가 여주인공을 할 때 경쟁이 심하였지만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하나님께서 세워 주시지 않으시면 불가능한 일이었어요,"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어려서부터 온 가족이 신앙생활을 해 오면서
주일날에는 아예 스케줄을 잡지 않고 교회에 가서 주일예배를 드린다는 것입니다.
박소현 씨의 주일에 대한 고백입니다.
“제게 주일은 당연히 예배드리고 쉬는 날이에요. 연예인이 된 뒤에도 6일 열심히 일하고 주일에 쉬는 생활을 계속하고 있죠. 이것이 바로 오랫동안 방송 일을 할 수 있게 해 준 원동력입니다. 안식은 활력을 줍니다. 또 이 활력은 6일 동안 부지런히 일할 수 있는 에너지가 되어 주죠.
제게 주일은 영적, 육적 재충전의 날이랍니다.
이 날은 결코 제가 양보하지 않습니다."
십일조도 빠지지 않고 드리기를 즐거 한답니다. 신앙생활을 처음 시작하게 된 시기가 초등학교 때에 친구들과 집 앞에 있는 교회를 다니면서 였다는데요.
중간에 굴곡 없이 중고등학교 때도 열심히 다녔답니다.
발레 할 때에도 항상 실수할까 봐서 기도가 더욱 절실하게 되었답니다.
언제 신앙의 낙심이 되었는가 하면은 본인이 그렇게 신앙생활하고 발레를 열심히 했는데 다쳤을 때였답니다.
박소현 씨의 고백입니다. "열심히 신앙생활했는데 왜 나에게 이런 고난이 올까 과연 하나님이 계신가,"라고 질문을 하게 됩니다.
나중에 느끼면서 고백을 합니다. "고난의 순간에도 함께하신 하나님" 이심을 고백합니다.
박소현 씨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기도가 응답이 안된다고 낙심하지 마시고 하나님이 다른 계획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순종하시기 바랍니다,"라고 합니다.
본인이 발레의 꿈을 포기할 정도로 아픔을 주신 이유가 하나님의 발걸음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지네요.
아버지는 연극배우 추송웅이고 작은오빠 역시 배우인 추상록이며, 남편은 뮤지컬 배우인 이석준인 연예인 집안의 배우이자 이제는 영화감독인 추상미 감독을 소개합니다.
1951년, 한국전쟁 당시에 북한의 고아 1,500명이 비밀리에 폴란드로 보내졌고 폴란드 선생님들은 말도 통하지 않는 아이들을 사랑으로 품었고, 아이들도 선생님을 ‘마마’, ‘파파’라 부르며 새로운 가족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8년 후, 아이들은 갑작스러운 송환 명령을 받게 되었고
2018년, 아이들의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지금까지도 폴란드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린다는 "폴란드로 간 아이들"의 영화를 가지고 다시 감독으로 돌아온 추상미 감독을 소개합니다.
추상미 감독은 고등학교까지는 성당에 다녔고
대학교 전기에 떨어지면서 그때 마침 여의도 순복음교회에 다니시던 엄마가 하는 말 "네가 후기 시험이라도 붙으려 먼 교회에 다녀야 해" 라고 하면서 철야예배에 다니게 되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성령의 터치로 방언과 감동으로 평안함으로 후기 시험을 통해 대학교 합격하여서 1학년 때는 ccc에 활동하기도 했답니다.
하지만 국문과이다 보니 어려가지 학문과 철학을 접하면서 세상의 학문 철학들의 매력에 빠져들게 됩니다.
이젠 성경은 사실이 아닌 것 같았고 교회를 다니지 않고 연예인이 되면서도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2003년까지 방황하게 되었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시 부르시게 됩니다.
하나님을 본격적으로 만나게 된 계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2003년도에 생활의 발견에서 주연으로써 잘 나가게 되었고 이젠 잘 될 것 같다고 주위에서 말했는데
그 이후로 섭외가 뚝 끊기게 되면서 어머니, 오빠와 홍대 앞에 소극장을 지으면서 재정이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오빠의 사업의 실패와 보증으로 가정의 어려움과 신앙도 튼튼하지 못했기에 서로 가족 간의 갈등까지 오게 되었답니다.
그 당시 친구 따라서 온누리교회에 다니는데 문제의 해결을 주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어릴 때의 상처까지 치유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그 후로 5년간 성경공부를 하면서 당시 목사님이 인도하면서 성경 속의 인물들이 전부 상처를 통해서 쓰임 받게 되는 과정을 알게 되었답니다.
가장 힘든 시기에 연극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남편까지 준비해 놓으셨답니다.
다시 본업으로 돌아왔지만 배우라는 직업에 대한 회의와 갈등으로 공황장애가 오게 되어서 새로운 길을 선택하게 됩니다.
오래전부터 꿈꿔온 영화 연출, 창작을 위해 대학원 진학을 합니다.
그런데 아이 출산 후에 산후 우울증을 겪게 되면서 자신이 잊혀지는 모습과 남편은 일이 바빠서 늦게 들어오게 되었고 서로 관계의 어려움과 육아의 힘든 상황까지 왔답니다.
어느 누구도 우울증을 해결해주지 못하고 어릴 때 가정의 상처와 부모님들의 갈등으로 가정에서 채우려는 마음이 간절했지만
기대가 결혼의 갈등으로 상처가 우상이 되었음을 하나님이 깨닫게 되었답니다.
그 순간에 하나님께서 오직 주님만 바라보게 하시기 위해 주위의 사람들과의 관계를 분리 시키시며
오직 주님만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십자가에 못 박히는 자신을 환상을 보게 되었답니다.
어느 날 소파에 눈을 감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지친 나를 안아서 십자가로 겹쳐서 못 박히는 환상을 보게 됩니다.
2시간 이상을 울었답니다.
14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산후 우울증으로 매일 아이가 죽는 악몽을 꾸던 시기였답니다.
내가 사랑하는 대상을 잃어버린 것에 것을 반복적으로 아이에게 느껴지게 되었는데 주님이 십자가에서 가져가셨답니다.
너무 극단적으로 창문에 뛰어내리고 싶은 상황 속에서 눈을 감고 있으면서 "하나님 어떡하죠?"
하나님이 "나는 너를 사랑한다" "괜찮다, 내가 너를 다시 세울 것이고 내가 너의 남편이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데 왜 죽음을 생각하느냐"
"내가 너를 정결한 신부로 다시 세울 것이다"
그 순간 마음이 평안해지면서 "이제 어떤 문제가 와도 주님만 바라보면 되는것이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답니다.
6개월은 날마다 "마라 나타" 주 예수님 어서 오시옵소서라는 고백만 나오더랍니다.
그때부터 이런 기도를 시작하게 됩니다.
"하나님께 내 인생에 대한 계획이 있을 텐데 나를 창조하신 목적이 있고"
이제 궁금해지기 시작해서 본격적인 기도를 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내가 너를 하나님 나라의 예술가로 세우고 싶다"라는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시즌별로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고
이 메시지를 작품으로 만들라는 소명을 주셨답니다.
소명을 주신 다음에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작품을 만들겠습니다"라고 고백을 하고 인생을 드린 것입니다.
그런데 너무 막연했는데 그때 하나님께 또 기도했답니다.
"하나님 저에게 장편 영화의 소재를 주세요"
일주일을 야곱처럼 간절한 기도를 한지 일주일 후에 친한 후배가 일하는 출판사에 놀려가게 되었답니다.
그곳에 출판사에 사장님이 무슨 영화에 관심이 있냐고 물어보시길래 아이들이 나오는 성장영화에 관심이 있다고 했더니 그럼 북한 아이들, 한국 전쟁영화 아이들 소재가 있다고 하면서 넘겨주시는데
집에 와서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가 확신이 필요했답니다.
자료를 넘기면서 북한의 아이들이 폴란드에 입양을 왔다가 북한의 천리마 운동이라는 조국 재건운동을 하면서
청소년 아이들을 다시 북송을 시키면서 아이들은 두 번 부모를 잃게 됩니다.
그 당시 폴란드 선생님들이 쓴 일지에서 발견한 "주여! 우리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우리로부터 아이들을 떼어 놓으십니까?"
이 글을 보면서 깨닫게 됩니다.
신앙 깊은 폴란드 교사들에 의해 양육되었던 전쟁고아들인 것이죠.
"폴란드로 간 아이들"은 저 예산 다큐멘터리 영화이기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답니다.
추상미 감독을 먼저 훈련과 과정을 통해 "먼저 예배자가 되어라"라고 하시면서 준비하게 합니다.
2018년 부산 국제 영화제에 개봉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
마침 부산 영화제가 잃어버린 가족의 주제와 일치되게 하셨답니다.
추상미 감독도 자신의 어릴 때의 아빠를 잃었던 상처를 통해서 이 작품을 발견하였는데
폴란드 선생님들도 전쟁을 통한 상처를 통해서 이 아이들을 품게 되었답니다.
추상미 감독이 직접 가서 인터뷰를 하는데 지금도 살아계신 90살 된 폴란드 선생님이 하는 말
"우리가 기차역에 내린 까만 머리 까만 눈의 한국 고아들을 보았을 때 내 유년시절의 모습이 보여 그 아이들에게는 엄마 아빠가 필요하다"
그래서 자신들이 엄마 아빠가 되었답니다.
추상미 감독은 "우리들도 살아온 상처를 가지고 북한의 아픈 민족을 품을 수 있는 하나님의 마음이 전해지기를 원해요" 라고 고백합니다.
1996년 MBC 탤런트 공채 25기로 연예계에 입문한 뒤 드라마 ‘내가 사는 이유(1996)’, ‘그녀는 짱(2003)’, ‘아내가 돌아왔다(2009)’, ‘위대한 조강지처(2015)’, ‘돌아온 복 단지(2017)’, 영화 ‘이대로, 죽을 순 없다’(2005), ‘왕의 남자(2005)’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하여 인기를 얻고 있는 배우 강성연 씨를 소개합니다.
2001~2002년에는 얼굴 없는 가수 컨셉으로 '보보'라는 이름으로 가수 활동도 했으며
김형석이 작곡한 발라드곡 '늦은 후회'로 당시 음악방송 10위권에 드는 등 상당한 인기를 얻었습니다.
어릴 때는 소심한 성격이었고 학교에서 발표를 하기 부끄러워하는 그런 아이였답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에 음악을 좋아해서 어머니의 권유로 성악을 하게 되었는데 대학 진학에 실패를 하게 되었으며
다시 어머니의 권유로 서울에 있는 예술대학교에 진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학교 교수님의 권유로 방송 탤런트의 시험을 보게 되었고 합격을 합니다.
이전에는 내가 잘나서 탤런트로 잘 되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29살 때 원하는 작품은 들어오지 않고 우울증이 심해서
무작정 가까운 동네 교회에 9시 저녁예배를 참석하게 되었답니다.
본인의 할머니와 어머니도 성당에 다니기에 따라다니기만 했으며 중, 고등학교 때 미션스쿨이어서 잠깐 예배와 찬양을 드린 것이 전부였답니다.
나중에 그것이 은혜였음을 알게 됩니다.
너무 힘들어서 간 교회에 가서 눈물 흘리면서 "살려주세요"라고 기도했고 눈을 떠보니 다시 집으로 도망갔답니다.
이제 또다시 시련이 찾아옵니다.
36살 때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연예계와 인연을 끊고 싶었답니다.
거의 포기하는 마음으로 하는 음악 프로그램에서 하나님께서 남편을 만나게 해주시고 예수님을 믿게 해주셨답니다.
지금의 형부인 음악 연주자와 함께 하는 프로그램인데 그곳에서 멋있는 사람이 피아노를 치고 있었답니다.
너무 편안해 보이고 남편을 보는데 너무 후광이 비치더랍니다.
이야기하는 중에 목사님의 아들임을 알게 되었고
나를 하나님께 이끌 파트너가 필요하게 되었으며 바로 이 사람이라고 깨닫게 되었답니다.
현재는 시아버지가 사역하시는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답니다.
결혼이 삶의 피난처이며 무조건 행복할 줄 알았답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을 하면 모든 것이 다 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책임감과 영적인 긴장감 속에 살아가게 되었답니다.
또다시 어렵고 힘든 신앙생활과 결혼의 갈등으로 자신이 너무 하나님 앞에서 작아지게 모습이 되었는데
10년 넘게 믿음의 멘토가 되어준 배우 명세빈 씨가 있었답니다.
같은 말씀 모임이 있었는데 이전에는 부담이 되었지만 용기를 내어 먼저 이렇게 말했답니다.
언니 그 말씀 모임에 나 좀 데려가줘" 라고 했답니다.
강성연 씨의 고백입니다.
"나는 나약하고 도망가려고 만 하는데 내 주위에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해 주셨답니다."
"나를 가장 잘 아시는 하나님은 가장 나에게 잘 맞는 분을 주셨답니다."
그곳에서 말씀과 교제를 나누면서 중보기도중에 울음보가 터지면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답니다.
"내가 너를 발랄하고 활달하고 밝게 빚었는데 상처로 인해 네가 너무 나약해졌구나."
"내가 김가온이라는 친구를 보내줄 테니 그 손을 잡고 당당하게 이 문을 들어오렴."
"그때 주님의 손을 덥석 잡았어요."
원래는 웃음이 많았는데 웃음을 잃어버렸다가 다시 주님을 만나고 나서 웃음을 찾게 되었답니다.
연기자로써 고충과 수면부족으로 힘들었는데 이젠 사람들에게도 깐깐한 모습이 아닌 눈물을 흘리면서 자신을 말할 정도로 바뀌게 되었답니다.
이전에는 나 혼자 연기만 잘하면 된다고 했지만 이젠 스템들과 남편과 자녀들과 소통하는 사람으로 새로운 인생을 산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