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 리더 :: '풍경이 있는 묵상' 카테고리의 글 목록 (27 Page)

한 육체미를 뽐내는
 보디빌더들은
 ‘거리의 수도사’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근육의 성장을 위해
식단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운동과 휴식시간을 완벽히
일정에 맞춰서 생활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보디빌더들이
그날의 한 운동이 잘 됐는지
알아보는 신호 중의 하나가
근육의 통증입니다.

근육은 무거운 무게를
반복해서 들어
근육이 과부하 상태가 되어
상처를 입고,
그 빈틈에 충분한 단백질과
영양이 채워 들어감으로
생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맥락으로 세계적인
발레리나 강수진 씨도
연습을 하고 다음날 눈을 뜰 때
몸에 통증이 없으면 마음이
불안했다고
한 토크쇼에 나와서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정원사들은 병충해에 걸려
죽어가는 꽃을 살리기 위해서
가위를 듭니다.

이미 썩은 부분의 줄기를
대각선으로 자른 뒤에
불로 지져서 봉합을 하면
 병이 더 이상 퍼지지 않고
물을 받아들이는 표면적이 늘어납니다.

그러나 꽃이 상할까 봐
두려워 가위로 잘라주지 않으면
곧 시들뿐만 아니라
주위의 다른 꽃들에게까지
병충해가 전염됩니다.

사람의 인생 가운데
어려움과 고통이 없다면
성장도 없게 됩니다.

보디빌더의 근육처럼
고통이라는 틈이 생길 때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스며들 수 있고,
이로 인해 신앙이 성장하게 됩니다.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이라 하더라도
나를 살리기 위한
하나님의 손길임을 믿고
주님을 더욱 의지하십시오.

반드시 창대하게 될 것입니다.

출처:김장환목사의
 "큐티365"중에서
<나침반출판사>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미국 사람들과
편지를 교환할 때
종종 크리스천들이
편지의 마지막에
이렇게 쓴 것을 보았다.

"승리 편에 서 있는"
이라는 표현인데
맨 처음 쓴 사람은
유명한 청교도 장군,
올리버 크롬웰이었다고 한다.

영국에서 내전이 벌어졌을 때,
불확실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는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그래서 공문서에도,
모든 개인 편지에도
"승리 편에 서 있는
올리버 크롬웰"이라고
썼다고 한다.

이 공문서를
읽는 참모들은
그들의 상관이 승리를
확신하고 있음을 느꼈고
그 결과 승리에 대한
확신이 확산되었다.

그 후 전세는 바뀌었고
그들은 놀라운 승리를 거두었다.

한순간의 좌절과
사건 앞에 넘어지고 쓰러지고
피 흘리는 모습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마침내
궁극적인 최후의 승리를 가지고
주님 앞에 영광스럽게
설 것을 확신하는가?

그렇다면 오늘 피흘리고
쓰러졌음에도, 연약함에도,
눈물 흘림에도 불구하고
좌절할 필요가 없다.

당신을 다시 용납하시고
일으켜 세워주시며
"너는 승리할 자야,
일어나야해"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빛나는 손을 잡고
승리의 저 높은 고지,
최후의 승리를 선포하는
그 날을 향해서
나아가야 한다.

출처:이동원 목사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조금 깨지고 금이 간,
못생긴 물 항아리 하나가
있었습니다.

주인은 그 항아리를
다른 온전한 것들과 함께
물을 길어오는 데 사용했습니다.

깨진 항아리는 늘
주인에게 미안했습니다.

‘내가 온전치 못해
주인님에게 폐를 끼치는구나.

나로 인해
그 귀하게 구한 물이
새어버리는데도 나를
아직도 버리지 않으시네.’

어느 날 깨진 항아리가
주인에게 물었습니다.

“주인님 어찌하여
온전한 항아리를
구하지 않으시나요.

저는 별로 가치가
없는 물건인데요.”

주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 물 항아리를 지고
계속 집으로 걸어갔습니다.

그러다가 조용하고
부드럽게 말했습니다.

“얘야 우리가
걸어온 길을 보아라.”

길가에는 예쁜 꽃들이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듯
싱싱하게 피어 있었습니다.

“주인님 어떻게
이 산골 길가에 이렇게
예쁜 꽃들이 피어 있을까요.”

항아리가 묻자 주인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습니다.

“메마른 산 길가에서
너의 깨어진 틈으로
새어 나온 물을 먹고
자란 꽃들이란다.” 

이 세상에 존재 이유가
없는 것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풀 한 포기, 돌멩이 하나도
그 자리에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물며
인간이야 어떻겠습니까.
자신의 존재에
큰 의미를 갖지 않으셨다면
조금 더 자신을 귀하고
자랑스럽게 여기십시오.

고경환 목사
(순복음원당교회 목사)
<겨자씨/국민일보>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미국에서

한 시골 청년이
캔자스 시티에서
출판사와 신문사를
찾아다니며,

자기가
그린 만화를
실어달라고
부탁하였으나
한군데도
상대해 주지 않았습니다.

마침
주일이 되어
아무 교회나
길거리에
보이는 교회로
들어간 청년은
예배 내내
눈물만 흘렸습니다.

그 교회의
목사님이
그런 청년을 보고
사정을 들은 후
교회 창고에서
지내도록 해주었습니다.

 그 목사님은
청년에게

“용기를 잃지 말게.
그리고 하나님이
자네를 사랑하고
계시다는 것을
잊지 말게”하고

겪려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 창고에는
쥐가 많이 살고 있어서
낮밤을 가리지 않고
쥐가 많이 나다녔습니다.

청년은
그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지내다보니
쥐들이 다니는 것도
익숙해졌습니다.

그리고는
쥐들에게
먹을 것을
조금씩 주기
시작하면서
마치 친구처럼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쥐를 관찰하다가
그림으로
그리기도 했습니다.

이 먹을 것도,
잘 곳도 없던
청년이 월터 디즈니였고,
오늘날
전 세계를
사로잡은
‘미키 마우스’의 아이디어는
그렇게 탄생한 것입니다. 

우리는
나약한 인간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다면,

힘들고 어려운 환경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바로
그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바울은
우리의 힘으로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어려운 일을 당하여
기도조차 할 수
없는 지경에 처할 때,
 주의 성령이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제임스 심슨
(James Simpson,
1811-1871)은
1847년 11월에
클로로포름이라는
액체를 마취제로
사용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논문을
발표하였습니다. 

영국의 산부인과 의사였던
그는 29세의 젊은 나이로
그의 모교인 에딘버러
대학의 산부인과
교수가 되었습니다.

그는 수많은
외과수술을 하면서
수술 중에 환자들이
당하는 고통을
가슴 아프게 여겼습니다.

그 당시에는
마취제가 없었으므로
유럽에서는
수술을 할 경우
환자의 수족을
결박한 후 다리를
자르는 등의 외과적
수술을 시행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수술환자가 겪는
공포심과 고통은
이루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그는 어느 날 성경
창세기를 읽다가 창세기
2:21-22에 기록된 말씀에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
끌어 오시니"
(창2:21,22)

하나님이 아담을
잠들게 하고
 갈빗대를 꺼내듯
환자를 고통 없이
잠들게 하고
수술을 끝낼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를 생각했습니다.

그는 곧 수술용
마취제의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였고
마침내 그 뜻을
이루게 되었고
1847년 마취제가
공개되었습니다.

실은 16년 전에
그가 발견하였지만
모두 두려워 마취제를
사용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험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심프슨은 자신이
직접 실험대상이 되었습니다.

클로로포름이란
액체를 코에
갖다 대고 긴 숨을
들이마셨습니다.

잠시 후 그는
술에 취한
사람처럼 웃으며
수다를 떨다깊은
잠에 빠졌지만
몇 시간 후
아무렇지도 않은 듯
깨어나 그 효능이
 증명되었습니다. 

1853년에는
빅토리아 황후가
왕자를 분만할 때
이 클로로포름 마취를
이용하여 고통 없이 순산
하게 함으로써

이 마취법을
공인받게 되었고
이 공로로
스코틀랜드 출신
의사로서는 처음으
로'경(Sir)'의 칭호를
받게 되었습니다.

의학계에서는
이러한 대발견에
경탄을 금치 못하였습니다.

그가 어느 학술
발표 자리에서
발표를 하고 있었을 때
한 교수가 질문했습니다.

“선생님의 생애에
가장 뜻 깊고
소중한 발견
한 가지를 들라고
하면 무엇입니까?”

모두들 그가
발견한 마취제일거라는
대답을 예상했으나,
심프슨은 뜻밖에도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의 생애에
가장 소중한 발견은

 ‘나는 죄인이라는 것’과,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나를 구원해주신 사실’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발견한
위대한 것은
내가 죄인인것과
날 위해서
예수님이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셔서
나를
구원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그 분의 은혜로
날마다 한걸음 한걸음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축복의 인생되시기를
기도합니다.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차동엽 신부는
『무지개 원리』라는 책에서,
중국산 대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 소개해 줍니다.

극동 지역의 사람들은
중국산 대나무를 많이 심는데,
중국산 대나무는
나무를 심고 물과 거름을 주어도
4년 동안 거의 성장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5년째 되는 해에 놀랍게도
5주일 동안 높이가 약 27.5m나
자란다고 합니다.

눈으로 직접 보지 않고는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4년 동안 자라지 않다가
5년째 되는 해에 5주일 만에
27.5m 자란다니 말입니다.

이 이야기를 소개해 주면서
차동엽 신부는 이렇게 묻습니다.

“과연 이 대나무는
5주일 동안에 27.5m가 자란 건가요,
아니면 5년 동안에 자란 건가요?"

정답은 당연히
5년 동안 자란 것입니다.

5년의 기간 동안
씨앗은 싹을 틔우고,
 서서히 자라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영성가 헨리 나우웬은
여기에 기다림의 비밀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진정한 기다림은
하나님의 약속의 씨가
현재에 심어져 있다는 것을
믿을 때에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기다림은 미래에 있을
무언가 마술적인 어떤 것,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할
 어떤 은혜가 우리를 찾아오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현재의 삶 속에
하나님의 약속이 이미
시작되었음을 보는 것입니다.

 이 약속의 씨가 이미
내 안에 시작되고 자라나고
있음을 믿는 것입니다.

그때에 비로소 우리는
고통스러운 현재를
살아갈 수 있습니다. 

기다림에 대한 오해는
미래만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기다림의 모든
대상이 미래입니다.

그래서 지금 기다리고 있는
 현재의 시간은
무의미한 시간, 고통스러운 시간,
빨리 지나가고 싶지만
더디게 흘러가고 있는
 시간으로만 생각됩니다.

하지만 현재는 약속이
이루어져가고 있는 한 부분입니다.

현재는 약속의 씨앗이
 심어져서 자라나고 있고,
하나님이 신비하게 일하고
계시는 시간입니다.

이것을 깨달을 때에
 기다림이 비로소 가능해집니다. 

내 삶에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하나님의 약속이
지금 신비하게 자라나고
 있음을 의지하며,

 하나님이 회복의 약속을
완전하게 이루실 그날까지
믿음의 기다림으로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하박국 2:3)

출처:소기범목사의
"기다림의 영성1"중에서
<크리스찬 저널>
[뉴저지 은혜와 사랑교회]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미국 디트로이트시의 어느 겨울날,
​시외에 살고 있는 유명한 정비사가
아침 출근 도중에 자동차가
고장이 났습니다

​차를 길가에
세워 두고 고장이
난 곳을 찾았으나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마침 지나가던
고급 승용차 한 대가 멈춰 서더니
노 신사 한 분이 차에서 내렸습니다.

​노 신사는
​ “도와드릴까요?”하고
다가 섰습니다.

​정비사는 생각하기를
“디트로이트에서 가장 유명한 정비사인
내가 못 고치는 차를 고치겠다고?”하며
노 신사를 업신여기는
눈으로 쳐다보았습니다.

​노신사는 몇 군데를 만지더니
시동을 걸어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정비사는 별 기대감 없이
시동을 걸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시동이 걸리는 것이었습니다.
​정비사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는 “도대체
저 노 신사는 누구인가?
​나도 못 고치는 차를 고치다니…”
​하며 노 신사를 바라 보았습니다.

노 신사는 명함을 한 장 주더니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떠났습니다.

​정비사는 명함을
자세히 보고 놀랐습니다.

‘헨리 포드’라고
적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노 신사는 ‘포드’라는
자동차를 만든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 만물과
우리 인간을 창조하신 분이고,
​오늘도 살아 계셔서
이 우주 만물을 운행하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을
신뢰하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뒤로한 채,
​혹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혹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우리의 힘으로 하려고 하니까
실패하고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입으로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하면서도
우리 힘으로 하려고 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출처: 박도훈이 쓴
<당신의 인생에 창문이 있습니까?>
​중에서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한 마을에 넘치는 사랑으로
유명한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목사님은 어떤 사람에게도
 화를 내지 않았습니다.

큰 실수를 한 사람이라도
다독여주며
다시 주님께 돌아올 것을
 종용했습니다.

그 모습을 마땅찮게
여긴 한 농부가
하루는 목사님을 찾아와
말했습니다.

“목사님, 잘못한 사람에겐
 혼을 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또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최근에 목사님이 만난
그 사람은
마을 사람들에게 큰 피해를
 입힌 악한입니다.

 하나님도 그 사람은
용서해주시지 않을 것입니다.”

목사님은 이번에도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습니다.

“형제님, 형제님의
마음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제가 한 가지
묻겠습니다.

찢어져 있는 수표가
한 장 있다면
형제님을 그것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당연히 다시 붙여서
사용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냥 지폐도 아니고
수표인데요!”

“그렇습니다. 큰 가치가
있기에 다시 붙여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형제님이
 수표를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들을 더욱 생각하십니다.

 그분은 모든 회개를
기쁘게 받아주시고
우리가 새 삶을살기를
바라십니다.”

사람을 살리는 것은
사랑의 마음입니다.

용서가 없는 사랑은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을
정말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웃의 잘못을 용서하십시오.

주님! 나를 용서한
 주님의 사랑으로 남을
용서하게 하소서!

모든 일에 먼저 용서하고,
먼저 사과하십시오.

출처:김장환 목사의
'큐티365'중에서
<나침반출판사>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