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희극배우이자 희극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배우 중 한 명인 구봉서 씨는 장로 직분을 섬기며 믿음을 전하기 위해 노력하고 계십니다. 지금은 건강이 좋지 않으셔서 예전만큼 활동은 못하시지만 자신의 영향력을 통해 복음을 전하고 계십니다.
한 때 극동방송에서도 방송한 구 장로님의 본업은 배우였지만 직접 대본을 쓰기도 하고 공연 때 연주자 대신 연주를 할 정도로 다방면에 재능이 있었습니다. 젊은 날의 구 장로는 뭐든지 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차 있었기에 하나님의 도움 같은 것은 생각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마을 교회의 십자가를 바라볼 땐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편해지곤 했지만 어머님이 신앙을 권유할 땐 한귀로 흘렸습니다. 이 후 전쟁이 일어나 떠난 피란길에서 지프차 밑에 깔리게 되는 사고를 당했는데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깔린 상태에서 구조될 때 까지 그의 눈에 보인 것은 교회 종탑의 십자가뿐 이였지만 그는 여전히 주를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영화를 촬영할 때는 큰 부상을 입어 촬영이 중단될 위기에 처했으나 주위 분들과 어머니의 기도로 상처가 빨리 회복되어 촬영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삶에 위기의 순간마다 하나님이 신호를 보냈지만 구 장로님은 그때마다 모른 척 넘어갔습니다. 하지만 다 나았던 다리가 다시 아무 이유 없이 아프기 시작했고 그때야 자신을 지켜준 분이 누구인지 깨닫고 바로 하나님을 영접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시는 분입니다. 사망의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다윗의 고백처럼 우리 삶 속의 완전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믿으며 담대하십시오.
우리 사회에도 어느새 2만 여명에 가까운 탈북자들이 활동하고 있는데 자유를 찾아 탈북했지만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힘들어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하나로 교회의 조은성 목사는 이들의 적응과 자립을 도와주며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을 돕는 조 목사도 탈북자 출신으로 북한에 있을 때는 철저한 무신론자였고 북한의 사회체제를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교사였지만 부모님은 몰래 가정교회를 섬기며 밤마다 기도를 하러 나가는 믿음의 사람이셨습니다.
2001년 4월 허기를 이기지 못했던 조 목사 가족은 식량을 구하기 위해 중국으로 건너갔고 여기서 중국의 한 교회에서 북한의 가정교회에 대한 간증을 하게 됩니다. 이 때 처음 찾은 교회에서 조 목사는 신앙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모임 중의 밀고자가 간증 소식을 북한 당국에 전했고 먼저 북한으로 돌아가던 조 목사의 가족은 북한군에게 모질게 학대를 당하며 끌려갔고 모두 숙청되고 말았습니다.
어머니는 붙잡히기 10분 전에 조 목사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남한에 가거든 꼭 목회자가 되거라, 일생을 불쌍한 영혼들을 섬기며 살아라.” 비록 부모님은 지켜드리지 못했지만, 남한에 오자마자 그 유언대로 목회를 하며 자신과 같은 아픔을 지닌 영혼들을 위해 조 목사는 살고 있습니다. 재물은 사라지지만 정신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조 목사님의 부모님은 값진 믿음의 유산을 물려줬고, 그 가치를 깨달은 조 목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아름다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자식들에게, 친구들에게, 믿음의 유산을 나눠 주십시오. 주님! 믿음의 중요성을 알고 가르치는 제자가 되게 하소서. 만나는 사람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복음의 말씀을 전하십시오.
“하라자끼 모모꼬”라는 일본의 어느 개척교회의 목사의 사모가 있었습니다. 남편을 도와 열심히 사역하던 그녀에게 어느 날 ‘악성 폐암’ 진단이 내려졌습니다. 자신이 악성 폐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안 그 사모는 노트 두 권을 마련했습니다.
그리고는 죽기까지 44일간의 투병일기를 썼습니다. 그 투병 일기가 책으로 인쇄되어 수많은 일본인들을 울리고 많은 사람들을 주님께로 돌아오게 만들었습니다.
암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된 “하라자끼 모모꼬”는 바로 그날의 일기를 이렇게 썼습니다. “내 마음은 주를 경배하며, 내 영혼은 내 구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기뻐하노라. 오늘이라는 날, 1978년 6월 28일을 나는 분명히 적어 놓아야만 하겠다.
오늘은 내 길지 않는 생애에 있어서 획기적인 날이 되었다. 나의 생애는 오늘부터 시작된다. 이제부터가 진정한 삶이다.”
그리고 그녀는 그로부터 한 달이 조금 지난 7월 30일, 교회에 갈 수 없을 정도로 기력을 상실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날, 그녀는 교회를 나갈 수 없는 상태에서 교회에서 성도들이 드리고 있을 예배를 상상하며 시 한편을 남겼습니다.
“내 신음이여, 내 찬미의 노래가 되어라.
내 괴로운 숨결이여, 내 신앙의 고백이 되어라. 내 눈물이여, 내 노래가 되어라. 주님을 찬양하는 내 노래가 되어다오. 내 병든 육체에서 나오는 모든 숨결이여, 호흡의 곤란이여, 기침이여, 내 열이여, 땀이여, 내 숨결이여 최후까지 내 찬송이 되어라.”
혹시 지금 인생의 어두운 밤을 지나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노래하십시오. 밤의 두려움 속에서 좌절하지 말고, 새로운 아침을 열어 주실 하나님께 찬미의 제사를 드리십시오. 감사와 찬미의 노래만이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모든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해도 해결할 수 없고, 동서남북을 바라보아도 꽉 막혀 절망뿐인 어두운 밤.
그 처절한 아픔과 눈물로 얼룩진 밤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감사와 찬미의 노래를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을 지극히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밤에 부르짖는 기도와 밤에 부르는 노래를 들으시고 응답하실 것입니다.
한 군인이 군인 병원에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군목님이 와서 그를 도와주려고 할 때 완강히 거절했습니다. 나중에는 더 이상 자기를 괴롭히지 말고 내버려두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그 군목은 병실 밖에서 며칠 동안 머물면서 기도하다가 어느 날 아침에는 예쁜 꽃병을 가지고 들어가서 머리맡에 놓았습니다. 그랬더니 눈물을 터뜨리며 그 병사가 말하기를 “감사합니다. 나는 꽃을 참 좋아합니다.” 군목은 “그래요? 하나님은 우리의 슬픔과 고난을 아시고 우리의 앞길을 밝게 하려고 이런 아름다운 꽃도 주셨답니다.” 환자는 잠시 조용히 있더니 “군목님 그동안 무례하게 행동한 것 미안합니다.
제가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저는 너무나 패역한 죄인이라서 하나님이 나 같은 죄인도 용서해주실 수 있겠는지 의문입니다. 왜냐구요? 아마 제가 지은 죄를 이 병실 벽에다 쓴다면 이 사면 벽을 채우고도 남을 것입니다.”
그때 군목님은 “가서 그대로 해보십시오. 이 모든 벽에 당신의 죄를 다 적어서 꽉 메운다 해도 그 위에 하나님의 말씀 한 절만 적어 넣으면 그 모든 죄는 없어지고 맙니다.” 그 말씀이란 곧 “그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일 1:7) 하는 말씀입니다.” 그날이 바로 그 죽어가던 병사가 구원받은 날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지 못할 죄는 결단코 없습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32,000명이 많으니 그 수를 줄이라고 명하셨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이다. 강조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상식으로 하나님을 조명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우리는 피조물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그분이 하시는 일이 우리에게 다 이해되고 용납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잘못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수가 많은 것이 왜 문제가 된다고 설명하시는가? 이스라엘 백성 32,000명은 미디안 군대 135,000명을 무찌르기에 불리하긴 하지만 아예 불가능한 숫자는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승리했을 경우, 그들은 그 원인이 자신들의 능력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기드온의 전술이 정말 탁월했어. 32,000명으로 그 네 배에 달하는 적군을 무찌를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용감하게 잘 싸웠기 때문이야.’
여기에서 내가 깨달은 하나님의 성품이 있다.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들을 도우셔서 그들을 성공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에서 성공하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그 성공이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일어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도 성공할 수 있지만, 그러한 성공은 반드시 미끄러지게 되어 있다. 결국 하나님 없이 이뤄진 성공은 곧 그것으로 인해 수치의 자리에 빠지게 할 것이다.
내가 항상 두려운 것이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 없는 목회를 하게 되는 것이다. 난 항상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은퇴할 때까지 초심을 잃지 않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놓치지 않는 목사가 되자.’ 사람들의 추켜세우는 말에 속아 교만해져 하나님의 도우심을 잃어버리는 순간 어떻게 되는지를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 모두에게 각인되어야 하는 메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