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기독교적인 정신을 보여주는 운동 중의 하나는 해비타트(Habitat) 즉 사랑의 집짓기운동입니다. 미국의 사업가 밀러드 퓰러(Millard Fuller)와 부인 린다(Linda Fuller)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28세에 백만장자가 되어 남부러울 것이 없이 살고 있던 퓰러에게 갑자기 아내가 이혼하자고 합니다. 너무 놀라서 이유가 무엇이냐 물었더니 아내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돈이 전부인줄 아는 당신에게 환멸을 느꼈습니다”.
아내의 말에 충격을 받은 그는 가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찾기 시작했습니다. 소홀히 하던 신앙생활도 열심히 하였습니다.
그리고 클래런스 조던(Clarence Jordan) 박사가 이끄는 코이노니아 농장(Koinonia Farm)을 방문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인종을 초월하여 아름다운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는 생활을 보며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거기에서 자신의 지금까지의 삶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됩니다.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용서를 빌었습니다. 예수께 영생을 얻으러 왔다 물질에 대한 욕심 때문에 고민하며 돌아간 부자를 생각하며 그런 부자가 되지 않겠노라 결심하며 재산을 정리하였습니다. 자신이 살던 집을 제외한 일체의 재산을 정리하고 무주택자에게 집을 지어주는 사랑의 사역에 헌신하였습니다. 백만장자에서 빈털터리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 되었으며, 가장 가치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퓰러는 해비타트 운동으로 미국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에 헌신한 사람들에게 수여하는 자유의 메달을 받았으며, 마틴 루터 킹 인도주의 상을 수상하는 등 세계에서 존경 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에베소서2장8절)
인도의 성자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도 어렸을 적에는 평범한 아이로 자랐습니다. 어릴 적에 친구들과 놀다가 가게에서 구워 파는 양고기가 어찌나 먹고 싶었던지 몰래 아버지 침실로 들어가 장롱을 뒤져 동전 몇 푼을 꺼내들고는 고기 몇 점을 사 먹었습니다. 너무나 맛이 있어서 먹어 치우기는 하였으나 마음에 걸려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이불 속에서 뜬눈으로 이리 구르고 저리 굴러도 편안하지가 않습니다.
고통스럽게 밤을 지새우기보다 벌을 받을지언정 정직하게 고백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늦은 밤에 아버지께 말씀드리기 어려워 종이에 몇 줄 적어 돌돌 말아 아버지 침실 열쇠구멍에 끼워 넣고 돌아왔습니다.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 같았습니다.
이튿날 날이 밝자마자 아버지가 노한 모습으로 달려오실 것 같은 예감이 들어 아버지 침실 쪽으로 향해 갔습니다. 그런데 열쇠구멍에 꽂혔던 종이가 없어졌습니다. 구멍을 통해 살펴보니 아버지께서 종잇조각을 읽으시며 눈물 닦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더 오래 지체할 수 없어 간디는 방문을 열고 들어가 잘못을 고백하였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그를 꼭 껴안아 뜨거운 사랑을 표시해주셨습니다. 후에 간디는 성인이 되어 이때의 경험을 회고하면서 아버지의 얼굴을 보는 순간 하나님의 인자하신 얼굴을 발견할 수 있었노라고 술회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회개하는 자에게 임한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를 고백하고 회개할 때에 집 나가고 재산을 탕진한 둘째 아들이 돌아올 것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오늘도 기다리십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 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한1서1장9절)
서울로 이사 온 후, 아내는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나는 신학대학 진학을 목표로 고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재수를 거쳐 감리교 신학대학교에 입학했다. 아내는 남편이 신학 공부를 하는데 주일에 일하는 병원을 다닐 수 없다며 그만두고 소시지 좌판 장사를 했다. 이렇게 우리는 갖은 고생을 하며 신학대학원까지 마쳤다.
신학대학원에 다닐 때는 학교에서 매일 탄광촌의 어린이들을 위해 기도했다. 그들을 생각하면 언제나 눈물이 앞을 가렸고 어린 시절의 아픔이 떠올랐다. 나는 하나님과 약속한 대로, 온몸이 늘 새까맣고 부모의 관심도 없이 자라는 탄광촌 아이들을 돌봐야 한다고 결심했다.
졸업 후 아는 분의 배려로 아프리카 선교 여행을 다녀오게 되었고 그곳에서 나는 가슴이 벅차 올랐다. 마사이 족 원주민 아이들을 만나는 순간, 나는 그 아이들이 사는 모습에 기가 막혀서 움직이기는커녕 숨조차 쉴 수 없었다. 선교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뒤에도 그 아이들을 위한 기도와 함께 앞으로의 목회 방향에 대해 주님께 간절히 매달렸다. 그러나 여전히 탄광촌 아이들을 버릴 수 없었다. 어느 날 기도 중, 주님이 아프리카로 가라는 것이었다. 나는 주님께 탄광촌 아이들을 돌보고 싶다고 말했지만 주님은 탄광촌 아이들을 위한 목회자는 많다 하셨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고된 훈련은 아프리카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고 하셨다. 나는 “아멘!”이라고 말했지만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고, 두려웠지만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떠나기로 했다.
그러나 이 일을 통해 하나님의 뜻과 계획은 인간의 생각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그 뜻에 순종하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그 일을 행할 때에 오직 주님이 주시는 힘과 능력으로 살아갈 수 있다.
헨리 나우웬은 세계 최고의 대학이라고 손꼽히는 미국 하버드 대학의 교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50대 중반의 나이에 하버드 대학 교수직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캐나다 토론토의 장애인 공동체인 ‘데이 브레이크’에 갔습니다. 세상의 명예를 내려놓고 떠난 그가 그곳에서 한 일은 ‘아담’이라는 이름을 가진 장애인을 섬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날마다 아침 7시가 되면 아담을 깨웁니다. 그 다음에는 욕실로 데려가 조심스럽게 면도를 해 주고 목욕을 시킵니다. 옷을 입힌 뒤 식당에 데리고 가서 아침을 먹입니다. 식사가 끝나면 휠체어에 태워서 주간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으로 보냅니다.
헨리 나우웬은 날마다 이런 생활을 반복했습니다. 그러던 중 그의 내면에서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아담의 발을 씻겨 주면서 아담 안에 있는 또 다른 아담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는 마음이 설레었습니다. 자신은 아담을 돕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예수님을 섬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아담이 더듬거리는 말로 헨리 나우웬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당신이 정말 좋아요.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때 그는 하늘의 음성을 들었다고 고백합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마 3:17). 헨리 나우웬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며 섬기는 일에서 놀라운 설렘과 기쁨을 맛본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에덴동산에서 살게 하셨습니다. 에덴은 ‘즐거움’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을 주며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해 줍니다. 하나님만 생각하면 마음이 설레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남편은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아들은 교포여자와 결혼해 뉴욕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고,
딸은 결혼 후 남편을 따라 지방도시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 여인은 50세 중반을 넘어서자 외롭고 쓸쓸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재혼할 형편도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친구가 애완견을 키워보라고 권유해 개를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약간 귀찮은 점은 있었지만 키우는 재미가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함께 놀아주고 밖에 나갔다 돌아오면 뛰어오르며 반겨줍니다. 어느 날 저녁 식사 후 TV를 보고 있는데 곁에 앉아있던 개가 꾸벅꾸벅 졸고 있습니다.
그 순간 문득 “내가 개만 바라보고 개한테 위로를 받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나는 개친구 밖에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자기 모습이 처량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3년 후 결국 애완견은 병이 들어 주인 곁을 떠났습니다.
얼마나 섭섭하고 불쌍하고 아쉬운지 엉엉 울었습니다.
100만원이나 되는 비싼 오동나무 관을 준비해 전문업체에 맡겨 장례식을 치뤘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생각해 보니 죽은 개가 불쌍하기도 하고 밉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죽은 개가 눈에 아른거렸습니다. 그러면서 사람이 ‘사람을 의지하고 살아야지 말도 못하는 개를 의지하고 살았구나’라는 반성을 하며 생활태도를 바꾸기로 결심했습니다.
친구의 전도로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교제권이 만들어졌습니다. 여전도회에 참석하고, 교회봉사하고, 고아원, 교도소, 장애자시설을 찾아가 봉사하면서 자기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사람하고 놀고, 이야기하고, 친해야 바람직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람 사이에 주고받는 우정, 교제, 사랑은 허실하고, 허약합니다. 쉽게 금이 가고, 깨지며, 상처받고 후회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으로 알려줍니다. 시편 121편에서 시인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여 손을 들고 도움을 청하고 교제하겠노라고 노래를 부릅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로다”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사람, 하나님과 교제를 바라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결코 실망을 주지 않으십니다. 내 친구가 되어 인생의 필요를 때를 따라 공급하십니다. 우리에게 찾아오신 주 님께 마음을 열고 인생을 나눌 때, 미련하여 깨닫지 못하는 우리를 깨닫게 하여 주십니다.
인생길이 캄캄할 때 환한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이러한 삶의 주인공이 되는 비결은 주 안에서 쉬지 않고 기도하는 생활을 이어가는 것입니다. 출처:온세계교회 김용택목사님의 목회칼럼중에서
‘하나님 없이도 잘산다는 것을 보여 주리라’ 고 생각한 청년은 세상에서의 삶을 즐겼습니다.
결혼하여 두 딸의 아버지가 되었고 미8군에 근무하던 중 미국 정부의 초청으로 미국행을 준비하게 됩니다. 그런 가운데 원인모를 안질로 갑자기 시력이 떨어지더니 나이 37세에 시각장애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죽음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몇 번의 자살시도가 실패로 돌아갔을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난생 처음 느끼는 안식이었습니다. 이후 서울역 거리를 전전하는 우여곡절 끝에 성직자가 되었습니다.
자신과 함께한 거리의 아이들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 주기 위해 야간학교를 설립했습니다. 교육을 받은 8백여명의 아이들이 검정고시에 합격했고 각자의 삶을 개척했습니다.
그가 설립한 새빛 맹인선교회에 수많은 시각장애인이 찾아왔습니다. 새빛 맹인선교회 설립자 안요한 목사의 이야기입니다.
안 목사의 희망과 도전 이야기는 1982년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그는 유명 인사가 되었습니다.
앞을 볼 수 있었던 37년보다 영의 눈으로만 생활하는 지금이 오히려 기쁘고 감사하다며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안 목사는 오늘도 소외된 시각장애인들의 재활 치료와 복음 전도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얼마 전 어느 안과의사가 수술을 하면 볼 수 있다며 수술을 권했으나 거절했습니다. 실명의 선물로 예수님이 주신 생명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축복이었다고 안 목사는 간증합니다.
“지금의 제 모습에 감사드립니다. 버림받았기에 버림받은 자들의 아픔을 알 수 있었고, 시력을 잃었기에 시각장애인들의 고통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작은 종이 눈 감은 덕에 알게 된 창조주 하나님을 세상 끝까지 전하려고 합니다. 복음 전파가 제 여생 마지막 사명입니다.”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여호수아1장9절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