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 리더 :: '풍경이 있는 묵상' 카테고리의 글 목록 (61 Page)

캐나다에
처음 이민 와서 만난 분 중,
12년 전 내가 이곳에
콘서트 겸 왔을 때의
조하문을 기억하는 분을
만나 뵌 적이 있다.

그분은 내가 가수였을 때
나를 자신의 차에 태우고
다녔다고 하셨다.

난 그분에게 “집사님,
집사님이 생각하시는
​ 10년 전 조하문은
1997년 9월에 죽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여기에 있는 조하문은
이름만 같을 뿐입니다”라고
말씀 드렸더니
그제야 비로소
얼굴 표정이 풀리셨다.

그분은 아마
옛날의 나를 기억하고
​‘어떻게 그런 사람이
목사가 되었나’라고 
생각하신 것 같았다.

세월이 지날수록,
주님을 만난다는 것이
옛사람의 죽음을 분명하게
포함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주님을 만나고 난
나는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기 위해
그동안 알고 있던 분들을
많이 찾아 다녔다.

그 중에는 당시 내가 운영하던
사업장의 직원들도 있었다.

동일하게
용서를 구하는 과정에서
직원들 중에는
내 달라진 모습을 보고
교회에 출석하는 분이 생기기도 했다.

사업과 음악을 가진 채
만난 예수님은
결국 나에게 모든 것을
내려놓게 하셨고
한참 동안 조용히
혼자 있게 하셨다.

그리고 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하게 하셨다.

계속되는 훈련 속에서
주의 도구로 만드신 것이다.

극장 사업 이후
내가 손대고 있던 사업을
그만 둔 것도 망해서가 아니라,
신학을 시작하고 보니
두 가지를 동시에
섬길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난 ’돈’으로부터의
자유함을 얻었고
그로 인해 스스로
폐업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분의 손을 잡고 동행하면
별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지난 9년간 나에게
문제된 것들이 있다면
가끔 그분보다
앞질러 가거나 나의 생각을
그분 생각이라고 우긴 경우다.

이런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분은 내게 평안을 주셨다.

출처:조하문이 쓴
<내 아픔을 아시는 당신께>
​중에서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나는 연구소를 사직했으나,
곧바로 중국으로 갈 수는 없었다.

이미 스탠포드대학교와
공동연구를 진행하기로
약속했는데,
갑작스럽게 약속을 파기하고
관련된 사람들에게
불편을 끼치는 것은
신앙인으로서
할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1년 정도
연구를 수행한 후에
중국으로 가기로 결심하고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갔다.

이미 한국의 연구소에
​사표를 낼 때
생활비 지원을 포기했기 때문에,
살고 있던 집을 팔아서
돈을 가지고 갔다.

그 돈도 나중에 중국에서
제자들을 먹이고 돌보는 데
쓰느라 금세 바닥이 났지만 말이다.

미국에서 체류하는 동안
우리 가족은
은혜로운 시간을 가졌다.

우리는 산호세에 있는
교회에 등록하여
성경공부를 하면서
중국으로 들어가기 위한
준비를 열심히 했다.

그런데 그때까지도
아내는 머리로만
중국 선교에 동의했지,
마음으로는
확정을 내리지 못했다.

아내는
불안과 초조감을
늘 품고 있으면서
가끔 내게 중국에 안 가면
안 되느냐고 묻곤 했다.

어떤 때는
꼭 중국으로 가지 않아도
선교하는 방법이 있다고도
말하는 등 변덕을 부렸다.

아내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해주기 위해
집 안 청소는
거의 내 차지였는데,
진공청소기를 돌릴 때마다
나는 늘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카펫에 있는
먼지나 휴지 조각들을
청소기로 모두 빨아들이듯이,
제 마누라 마음속에 있는
세상에 대한 미련,
미래에 대한 걱정 등을
제발 쏙쏙 빼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3개월쯤 지났을까,
 하루는 아내가
주일예배를 마치고 집에 오더니
밝은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하나님 일을
하겠다고 하면서
이것저것 계산한
나 자신이 부끄러워요.

이제 더 이상
나에게 계산이란 없어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는데,

내가 염려해서 되겠어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였다!

그날 주일예배 시간에
교회 목사님이
마태복음 6장 33절 말씀을
본문으로 설교하셨는데,
그 말씀이 아내의 가슴에
와 박힌 것이었다.

나는 그동안 마음고생 하느라
수고한 아내의 등을
토닥여주면서 하나님께 감사했다.

출처:최하진선교사의
"네인생을 주님께 걸어라"
중에서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오스트리아의
작은 마을에 벼룩시장이 열렸다.

 먼지가 잔뜩 묻은
바이올린이 경매에 올라왔다.
누군가 3달러에 사겠다고 했다.

그러자 한 노인이 손을 들었다.
 “내가 그 바이올린을 한 번
연주해 봐도 되겠습니까?”

그 노인은 바이올린의
먼지를 닦고 줄을 튜닝한 후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멋지게 연주했다.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았고
그중 한 사람이 소리쳤다.
“내가 3000달러에 사겠소.”
결국 그 바이올린은
3000달러에 팔렸다.

마찬가지로 사람은
누구에게 쓰임을 받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는 것이다.

필자가 3세 때 아버지는
7남매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는 돈을 벌어야 했기에
필자를 8세까지 고아원에 맡겼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돈을 벌었다.
 신문배달도 하고 우유배달도 했다.

구두도 닦았다.
어머니는 교회 사찰집사로 일하셨다.
어머니가 자식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은 기도뿐이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기도를 드리면서
자식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셨다.
 자녀들은 모두 하나님의 손에 붙잡혔고
그중 4형제가 목사가 됐다.

만약 어머니의 기도가 없었다면
7남매가 어떤 가치로 살아가고 있을까.
하나님 손에 붙잡힌 인생을 생각하면
늘 감사할 뿐이다. 험악한 세상이다.

부모는 자녀들이
하나님 손에 붙잡힌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출처:설동욱 목사
[서울 예정교회]
<겨자씨/국민일보>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의 저자인
 마크 빅터 한센은 최근에
미국 애틀랜타 조지아에 있는
 라이프 카이로프랙틱 대학의 졸업식
연설을 맡은 적이 있었습니다.

졸업생 중에는
엄청 나이 들어
보이는 할머니가
한 분 계셨습니다.

올해 일흔 두 살이라고
밝힌 그녀가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왜 어려운 의학을
공부하는지 궁금한 마크는
 몇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 
“선생님,
의학을 공부하기
전에는 무엇을 하셨나요?”

“나의 전직은
수녀였습니다.

하지만 내가 있던
수녀원의 정년은
66살이었고 그
나이가 되면 반드시
 수녀원을 나와야 합니다.”

“이미 많은
나이인데도
어째서 7년이나
되는 세월을 의사가
되는 일에 쓰겠다고
결심하셨습니까?”
​ 
그러자
그녀가 미소를
띠며 말했습니다.

“나이는
들었지만 나는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제 인생의 목적은
남을 섬기는 데 있습니다.”

그렇게 대학을
졸업한 그 수녀님은
현재 하루에 150명의
환자들을 돌보고 있습니다.

사명자는 죽지 않습니다.

자신의
나이나 성별, 건강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자신의
사명을 다할 때까지
주어진 시간을
감사하며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값진 인생을 살기위해
자신의 사명을 찾으십시오.

주님! 사명자로의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먹고사는 일 이외에 말씀을
실천할 수 있는 일을 찾으십시오. 
 
출처:김장환 큐티365
[나침반출판사]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어떤 청년이 유명한
부흥사인 스펄전 목사님에게
찾아와서 부탁을 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정말 신앙생활을
잘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교회마다
문제가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저에게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
교회를 소개해 주세요.

” 그때에 스펄전
목사님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여보게 젊은이,
자네가 돌아다니다가
그런 교회를 찾게 되거든
나에게 꼭 연락을 해주게.

나도 그 교회에
가서 목회하고 싶다네.”
 그리고는 한마디를 더했습니다.

 “만일 그런 교회가
있다면
절대로 가지 말게.
자네가 그
교회에 가는 순간에
그 교회는
다시 문제가 생길 것이네.”

 이 세상의
모든 교회는
문제가 있습니다.
아마도 문제가 없는
교회는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이
교회에 와서 문제를
보고는 실망해 합니다.

세상에서는 문제가
 생겨도 교회는
문제가 없을 것 같았거든요.

정치에서나
경제에서나
문제가 있는
줄로 알았는데,
교회에 와 보니까
여기도 문제가 있는 거예요.

  사람들이
죄인이거든요.
죄인이 모였으니
문제는 당연히
있게 되는 겁니다.

어쩌면 문제가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예수님의
치료가 필요하기에
교회에 모이는
것이지요.

이제 문제가
기도제목으로
바꾸어서
사람들을 살리는
축복의 사람이
되세요.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시 42:11).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전에 한신대 학장을
지내셨던 고 김정준
목사님이 있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목사가 되었습니다.

일본 유학까지
갔다 온 일꾼입니다.
김천에서 목회하던 중
폐결핵에 걸렸습니다.
더 이상 가정에도
 교회에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마산 요양소로 갑니다.
좌우에 결핵 환자로 가득합니다.
여기저기서 콜록콜록합니다.
매일 아침 사람들이 죽어 나갑니다.
그는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가 절규하며 기도합니다.

 “하나님! 왜
나를 이렇게 하셨습니다.
주의 일하겠다는 데
왜 이렇게 하십니까?”
그때 다음과 같은
주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네가 여기에
온 목적이 있다.
병에 걸렸기
때문에 온 것만 아니다.
 사람들을 돌보라.”
김 목사님은 그들을
돌보아 주기 시작합니다.

폐병 아닌 사람은
이런 폐병의
사람들을 돌볼 수 없습니다.
간호사들이 있긴 해도
이들과 함께 잘 수는 없습니다.
‘나를 폐병에 걸리게 하여
 폐병 걸린 사람들을
돌보게 하셨구나.’

그는 이들을 돌보면서
시편 1편에서 150편까지
전부 외웠습니다.
그는 죽으면 죽으리라
그러기를 3년간 하였습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자신의 병이 낫게 된 것입니다.

그 후 그는 영국
에든버러 대학에 유학을 갖고,
박사논문은 ‘시편 연구’였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수고를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유학을 갔다 와서
그는 연세대 교수를 지냈고
한신대 학장까지 했습니다.

내가 있는 이 자리,
내가 원하지 않았을지라도
있게 된 이 자리를 신학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경륜적 의미라고 합니다.

여러분의 현재의
자리가 어디입니까?
하나님의 경륜적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을 깨달아 사명적인 인간으로
살아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타이밍과
사람의 타이밍이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타이밍은
인간의 타이밍보다
더 늦어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더 정확하고
더 옳습니다.
​그걸 믿어야 됩니다.

현재 여러분이 자리가 무엇입니까?
​형편과 처지가 어떠십니까?
​내가 원하는 자리와 일과 형편이
아닐지라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원망하지 마십시오.
대신 하나님께서 주신
소망의 말씀을 붙잡으십시오.

​세상적인 소망,
​막연한 기대는 버리십시오.
​그리고 내가 있는 이 자리가
하나님의 경륜적 자리요,
​일이라 믿고 힘차게 사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우리를 높이
들어 올리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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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새찬송가 382장,구찬송가432장)

이 찬송은 1904년
아내인 셉비아
덜피 마틴이 가사를 쓰고,
남편인 월터 스틸맨 마틴 목사님이
작곡을 한 조금은 특별한 찬송입니다.

월터 마틴은 하버드대학을
졸업한 후에 침례교 목사가 되었지만,
후에는 전도자로서
전국을 다니면서 사역을 했습니다.

1900년, 월터 목사가
서른 여덟 살 때였습니다.
목사 부부는 아홉 살 된
아들과 함께 뉴욕에 있는
한 성경학교를 방문했습니다.

당시 아내 셀비아 마틴
여사의 건강이 좋지 않아서
사역을 감당하기에 매우
 어려운 상황 중에 있었습니다.

사모님은 뉴욕
레스터숴 성경학교
관저 병상에 누워 있었으나

하지만, 남편 월터 목사는
그곳 성경학교 교장과 공동으로
진행하던 찬송가 편찬
작업을 취소할 수가 없었습니다.

계속되는 바쁜 사역과
또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아내의 입원이
계속 미루어 지게 되었고,
그로 인해 아내의 몸은
쇠약해지고 병세는
완전히 악화되고 말았습니다.

월터 목사는 아내를
이 지경에 이르게
한 자신을 자책하면서,
찬송가 편집
작업을 그만두고서라도
아내의 입원을
서두를 마음으로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주일 오후,
월터 목사는 미리
약속이 되어 있던 설교를 놓고,
아내를 병상에 두고
그곳에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그의 어린
아들이 찾아와 말합니다.

“아빠,
만일 오늘 거기서
설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아빠가 안 계시는 동안
하나님께서 엄마를
지켜 주시지 않을까요?”

월터 목사는
어린 아들의 설득으로
설교를 하러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집에 아들과
남겨진 시비야 사모는
속히 병 낫기를 구하며
남편이 빨리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어린 아들이
병상에 앉아 말씀으로
엄마를 안심시키고 있었지요.

 아들을 통해 다시
하나님을
바라보게 된 시비야 사모는
 말할 수 없는 감격으로
눈물로 기도를 했습니다.

그렇게
기도를 하는 중에,
너무도 선명한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되지요.

그 때 들었던 음성이
바로 이 찬송의 후렴구인
‘내가 너를 지키리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주 너를 지키리 어디서나
아무 때나 주 너를 지키리
늘 지켜 주시리
셀비아 마틴 사모는 그 음성을
근거로 후렴구를 이 완성했고,

이어서 자신의 가족의
모든 어려운 형편을 돌보시고
지키시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고백을 시로 남깁니다.

어려워 낙심 될 때에
주 너를 지키리
  위험한 일을 당할 때
주 너를 지키리
너 쓸 것 미리 아시고
주 너를 지키리
 구하는 것을 주시며
주 너를 지키리
 
병은
계속 악화 되고 있었고,
병원에 조차 갈 수 없었던
재정적인 어려움도 그대로였지만,
셀비아 마틴 사모는 믿음으로
주님께서 지켜
주실 것을 선포했습니다.

마틴 목사의 저녁설교는
 성공적이었습니다.

수십 명의 결신자를
낸 은혜로운 집회였습니다.

마틴 목사는
기쁨과 감사로 예배를 마치고
황급히 아내 곁으로 돌아왔습니다.

기쁨에 찬 마틴 목사를
병상에서 맞는 셀비아 마틴 사모는
환희에 차 있었습니다.

셀비아 마틴사모는 남편에게 손을
내밀며 쪽지를 건네주었습니다.

쪽지를
받아든 마틴 목사는
 단숨에 읽어 내려갔고
곧 뜨거운 감격 속에
젖어들었습니다.

그는 바로 빌혼 올갠
(접어서 간편하게 이동할 수
있는 4옥타브짜리 올갠)
앞에 앉아
단숨에 음표를
오선지에 적어 나갔습니다.

그리고 단 30분 만에
곡조를 완성했습니다.
참으로 위대한
찬송의 탄생 순간이었습니다.

악보가 완성되자 때
아닌 음악회가 열렸습니다.
주일학교 교사
두 사람과 마틴 목사 부부,

그리고 9살 난 아들과 같이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
의 최초 공연이 열린 것입니다
 
후에, 셀비아 마틴 여사는
자신이 병상에서 했던
그 믿음의 고백대로
병에서 완쾌되었고,
82세까지 장수하였습니다.

사실
셀비아 마틴 사모의 이 고백은
그녀만의 고백이 아니라,
예수님을 말씀을
그대로 믿고 따랐던
우리 신앙의 선조들의
고백이기도 했습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마7:26)

우리 생각에 우리가
처한 상황이
견적이 나오지 않고,
감당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이야 말로
우리를 지키시며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경험할 순간입니다.

자신의
느낌을 의지하지 않고,
주님의 이 말씀을 붙잡고
주님을 신뢰하는 자마다
늘 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고,
이 찬송의 고백을
함께 하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시121:5-6)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였던
 세례 요한의 죽음은
일반적으로 예상하기 어려운,
매우 비참한 죽음이었다.

그가 헤롯 왕의
부정한 결혼을 비난한 데
앙심을 품은 헤롯과 헤로디아는
그를 잡아 옥에 가두었다.

우리는 사도행전에서
감옥에 갇힌 베드로를
풀어주시는 하나님을 만난다.

그러나 세례 요한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어느 날 그는
결국 형장으로 향한다.

목이 잘려나가기 전에
세례 요한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하나님, 왜 제게?”

어쩌면 이것이
그가 마음속 깊이 묻어두었던
질문이었는지 모른다.

세례 요한에게
무고한 죽음이 주어질 때
그것을 허락하신 하나님,
그분은 세례 요한의 “왜?”라는
질문에 어떻게 답하셨을까?

그 질문은
예수님의 입을 통해서
다시 우리 귀에 전해진다.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시편 구절을 인용하여
하나님께 이렇게 외친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이것은 예수님 이전에도
하나님을 섬겼던 수많은 이들이
고통과 핍박 가운데 처할 때
가졌던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해서 하나님은
끝까지 침묵하셨다.

예수님은
그렇게 침묵 가운데
십자가에서
저주받은 채 버려지셨다.

이 일 가운데
예수님의 사명이
묻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고통 이면에
그리고 하나님의 침묵 배후에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사명이 숨겨져 있다.

하나님이 세례 요한을
형장에 버려두신 이면에는
그들이 받은 사명이 숨어 있었다.

그들은 예수님의
사역을 예표하고
준비하는 자로
부르심을 받았던 것이다.

그들의 상실감과 거절감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의 증거가 되었다.

예수님이
그 모든 고난을 겪으셨기 때문에
그분은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는
치유자가 될 수 있으셨다.

영적인 영역에서는
상처받은 사람이
치유의 열쇠를 가진다.

아이를 잃은 부모를
가장 잘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은
동일한 아픔을 경험한 사람이다.

그가 아이를 잃은
상실감에 울고 있는 부모를 찾아가
“많이 힘드시죠?
내가 당신의 아픔을 압니다”라고 할 때
그 말에 진정한 위로가 담기는 것이다.

그 위로에는
누구의 위로보다 강력한 힘이 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 히브리서 4장15절-

출처:이용규선교사의
"같이걷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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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