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님, 원장님이 이상해요. 퇴근하고 나가셨다가 다시 돌아오시더니 지금 누워 계세요. 혈압도 자꾸 떨어지시고….” “여보! 기도해 줘.” 남편은 나를 보자마자 손을 붙잡고 기도해 달라고 했다. 그때의 감격이란…. 뭐라고 기도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게 기도하고 밖에 나와서는 간호사들과 일하시는 아주머니들에게 “원장님이 기도해 달라고 했다”하고 큰 소리로 울던 것만 기억난다. 평소에 늘 기도하고 말씀을 읽던 내 믿음을 알고 기도를 부탁하는 남편이 너무 반갑고, 그렇게도 예수님을 믿지 않던 사람이 쓰러지고 난 이후에라도 예수님을 찾는 것이 너무 기뻤다. 더 기뻤던 이유는 그날 아침 큐티를 하면서 남편의 구원을 높고 눈물의 기도를 드렸었기 때문이다. “혈통으로도 육정으로도 구원되는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해야 남편의 구원이 이루어질까요. 주님, 저의 생명을 내놓고 기도드리오니 남편의 구원을 이루어 주세요. 먹을 것, 입을 것을 구하지 않고 이렇게 구원을 위해 기도하는 인생만큼 더 기쁜 인생이 어디 있겠습니까….” 남편은 장로이셨던 아버님 밑에서 자랐건만, 도무지 주님께로 돌아올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병실에 누워 산부인과 의사로서 낙태 시술을 했던 자신의 죄를 시인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불과 몇 시간 뒤 하나님은 나의 기도에 상상치 못할 사건으로 응답하셨다는 것을 알았다. 바로 그 다음날 남편이 숨을 거두었던 것이다. 누구보다 성실하던 남편, 의사로서 항상 자기 몸을 체크하던 남편을 하나님이 데려가신 것이다. 남편은 가기 직전에 내게 말했다. “이제 예수 실컷 믿겠네!” 내가 오직 예수님만 소망하여 살았다는 것을 남편은 자신의 입으로 확증해 주고 내 곁을 떠났다. 출처:김양재목사의 [복있는 사람]중에서
메리큐스 마네라는 부인이 있습니다. 남편은 사업에 부도를 내고 어디론가 몸을 숨기고 말았습니다. 살림을 다 잃어버리고 알거지가 되어 길거리로 나 앉게 되었습니다. 어린 아들 하나가 문방구에서 연필 하나를 훔치다 들켰습니다.
학교에서 쫓겨났습니다. 더 이상 살고 싶은 마음이 없었습니다. 깨끗이 죽자! 아이들을 재우고 가스를 켰습니다. 가스가 스며 나오는데 정신이 몽롱해져 옵니다.
이웃집에서 찬송소리가 들려왔습니다. ♪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근심에 쌓인 날 돌아보사 내 근심 모두 맡으시네.”
그래 내가 죽을 생각을 하면서 왜 기도할 생각은 못했는고?
아이들을 밖으로 밀어내고 가스를 잠궜습니다. 방 한가운데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리는 데 눈물이 왈칵 쏟아집니다. 용기를 냈습니다. 시골에 내려가 빈 집 하나를 얻어 새 삶을 꾸리기 시작합니다.
훗날 자녀들은 모 두 멋지게 성공을 합니다.
그녀의 자서전적인 글 “근심이여 안녕”이라는 책 마지막 결론에서 그렇게 말합니다. “죽을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자들이여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 있는 용기로 바꾸어 보십시오!”
“백 번의 탄식보다 한 번의 기도가 당신에게 기적을 가져다 줄 것이요.
백 번의 절망보다 한 번의 믿음이 당신의 운명을 바꾸어 줄 것이요.“
여러분 주어진 환경만 보지 마십시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십시오. 믿음으로 남들이 듣지 못하는 것을 들으십시오. 기도할 수 있다면 아직 많은 놀라운 것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롬 8:32) 출처:수지 기쁨의 교회
저는 암 병동에서 근무하는 간호사입니다. 야간 근무를 하는 어느 날 새벽 5시, 갑자기 병실에서 호출 벨이 울렸습니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 호출 벨 너머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자 초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환자에게 말 못할 급한 일이 생겼나 싶어 부리나케 병실로 달려갔습니다. 병동에서 가장 오래된 입원 환자였습니다.
“무슨 일 있으세요?” “간호사님, 미안한데 이것 좀 깎아 주세요.”라며 사과 한 개를 쓱 내미는 것입니다. 헐레벌떡 달려왔는데 겨우 사과를 깎아달라니… 큰일이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맥이 풀리는 순간이었습니다. 그의 옆에선 그를 간호하던 아내가 곤히 잠들어 있었습니다. “이런 건 보호자에게 부탁해도 되는 거잖아요?” “미안한데 이번만 부탁하니 깎아 줘요.” 한마디를 더 하고 싶었지만, 다른 환자들이 깰까 봐 사과를 깎았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더니 심지어 먹기 좋게 잘라달라고까지 하는 것입니다. 할 일도 많은데 이런 것까지 요구하는 환자가 못마땅해서 저는 귀찮은 표정으로 사과를 대충 잘라 놓고 침대에 놓아두고 발길을 돌렸습니다.
성의 없게 깎은 사과의 모양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환자는 아쉬운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그래도 전 아랑곳하지 않고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그 환자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며칠 뒤 그의 아내가 수척해진 모습으로 저를 찾아 왔습니다.
“간호사님… 사실 그 날 새벽 사과를 깎아 주셨을 때 저도 깨어 있었습니다. 그 날이 저희 부부 결혼기념일이었는데, 아침에 남편이 선물이라며 깎은 사과를 저에게 주더군요. 제가 사과를 참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남편은 손에 힘이 없어 사과를 깎지 못해 간호사님께 부탁했던 거랍니다. 저를 깜짝 놀라게 하려던 남편의 마음을 지켜주고 싶어서 죄송한 마음이 너무나 컸지만, 모른 척하고 누워 있었어요. 혹시 거절하면 어쩌나 얼마나 가슴을 졸였는지.. 그 날 사과를 깎아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저는 눈물이 왈칵 쏟아져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그 새벽 가슴 아픈 사랑 앞에 얼마나 무심하고 어리석었던가.. 한 평 남짓한 공간이 세상 전부였던 그들의 고된 삶을 왜 들여다보지 못했던가.. 한없이 인색했던 저 자신이 너무나 실망스럽고 부끄러웠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제 손을 따뜻하게 잡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말해주었습니다.
“고마워요. 남편이 마지막 선물을 하고 떠날 수 있게 해줘서..”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 사소한 도움이라도 요청한다면 기꺼이 도와주시는 분들도 계실 것이고, 너무 사소하여 지나쳐 버리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누군가에게 사소한 일이 또 누군가에겐 가장 절박한 일일 수 있다는 것만 기억해 주세요!
따뜻한 하루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영화 '히말라야' 실제주인공 엄홍길 대장 동료 고(故) 박무택 대원의 아내가 쓴 편지입니다.
‘찬민아빠! 당신이 떠난 지도 벌써 일 년이 지나버렸습니다. 문기둥에 그려놓은 찬민이 키 높이가 한 뼘이 커지도록 당신은 오시질 않는군요. 그곳에서 지켜보고 계시겠죠.
우리 민이가 얼마나 씩씩하고 의젓하게 자라고 있는지. 처음엔 당신이 언제 오냐고 하루에도 몇 번씩 묻고 묻고 하더니 이제는 그 마음에도 아빠는 돌아올 수 없다는 걸 받아들였나 봅니다. 당신이 떠나던 날 아빠 가지 말라고 그렇게 울던 찬민이가 이제는 제 눈물 닦아주고 위로해주는 든든한 아들이 됐답니다.
이곳엔 벌써 봄이 오려 합니다. 당신과 한 번도 같이 해보지 못한 그 봄이 또 오고 있습니다. 이맘때만 되면 짐을 꾸려 떠나던 당신 모습이 자꾸만 떠오릅니다. 제가 그렇게 말려도 아랑곳하지 않던 당신이 미울 때가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은데, 같이 하고 싶은 일이 많은데, 왜 혼자 가버렸냐고 원망도 해봅니다. 당신의 그늘이 그렇게 크고 넓었음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찬민이랑 살아갈 날들이 두렵고 겁이 납니다. 보고 싶은 사람, 불러보고 싶은 이름, 이제는 가슴 속에 묻어야 되는 당신이 너무도 그립습니다. 하나 이젠 잊은 척 살아가겠습니다. 찬민아빠! 잘 가세요.
그곳에서 우리 민이 꼭 지켜봐주세요.
작별 인사도 못하고 떠나보낸 당신께 이제 마지막 인사를 하렵니다. 부디 좋은 곳에서 편히 쉬시라고..
2000년 이승환의 ‘그대가 그대를’의 뮤직비디오로 데뷔하여 MBC TV '논스톱 3', KBS 2TV '백설공주' KBS 1TV '광개토 대왕' tvN '연애조작단; 시라노'에 출연하였고
연기뿐만 아니라, 모델, MC, 라디오 DJ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며 당대 최고의 하이틴 스타로 손꼽히며 화려한 삶을 살던 김정화 씨는
CCM 가수 겸 작곡가 유은성과 결혼하여 벌써 두 아이의 엄마로 행복의 소식을 전해 주었는데요.
그녀에게도 남모를 시련이 있었다.
모태신앙이었던 김정화 씨는 우연히 길거리 캐스팅이 되면서 방송을 시작하게 되었답니다. 나중에는 바빠서 신앙생활을 못하게 됩니다. 일요일의 SBS 인기가요 진행을 하다 보니 주일예배는 상상도 못한 거죠. 그러다 보니 우울해지고 힘들었답니다. 성격도 소심해서 누구와도 이야기를 못했고 가족과도 만날 시간이 없었기에 “왜 나를 연예인으로 만드셨어요?” 라고 기도할 정도였답니다.
가장 왕성한 시기에 우울했는데 그녀가 의지할 수 있었던 유일한 힘은 하나님과 그녀의 중심을 잡아 준 엄마의 중보기도였다. 그러던 중 어머니가 믿음의 유산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처음 어머니가 암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너무 충격을 받았다는데요.
어머니는 개척교회를 섬기면서 주일 식사를 도맡아하셨고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는 빠짐없이 드렸답니다. 밤샘 촬영하고 지금쯤 엄마가 있겠다고 생각하고 교회에 가면 목사님과 어머님이 단둘이 예배를 드리고 계셔서 이젠 셋이서 예배를 드렸답니다.
이렇게 헌신적인 어머니가 아프시니까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하고 낙심하기도 했답니다. 한 번은 어머님이 기도원에 다녀와서는 응답받았다고 하시는데 하나님께서 "수고했다" 라고 말씀하셨답니다. 마지막은 병원에서 한 달을 먹지도 못하시고 고통스러워하시면서도 하루에 두 번 예배를 드리시고 마지막에는 장기기증을 하시고 가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계기가 되었답니다. 김태우 씨가 아프리카에 봉사활동이 있는데 가자고 제의가 들어와서 좋다고 가게 됩니다. 그래서 아프리카 우간다에 간 것이 축복으로 바뀌게 됩니다.
한국 기아대책 기구 홍보대사로 김정화 자매가 자신이 결연한 9살 소녀 아그네스를 만나게 됩니다.
김정화 씨가 마음으로 낳은 딸인데요.
아그네스라는 소녀는 에이즈에 걸렸는데 에이즈에 걸린 부모는 아그네스 3살 때 죽었고 역시 에이즈에 걸린 이모집에 살고 있었답니다.
그곳에서 부모의 입장에서 빨래, 설거지, 식사 준비 학교에서 선생님과 면담 등 5일 동안 함께 한 것이지요.
"아그네스 만나고 한국에 돌아와 제가 가장 크게 변한 건 하나님이랑 깊은 교제를 시작하게 된 것이에요.
아프리카가 어렵다는 말은 들었지만 제 눈으로 보고 오게 됐고, 내 딸이,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가 그 현실에 있다는 걸 생각하니까 너무 마음이 아픈 거예요.
그러니 기도할 수밖에 없었어요. 집 앞 교회 금요철야 가서 모자 푹 눌러 쓰고 맨 뒤에 앉아 엄청 울고 기도했어요."
그러면서 김정화 씨는 동시에 하나님과의 관계도 회복이 되었고
고난을 통하여서 하나님이 정화 씨의 아픔과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예비해 놓으신 선물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놀랍게도 우리들에게는 CCM 작곡가로 유명한 유은성 씨와 결혼을 발표하였는데요. (국제구호단체) 기아대책 홍보대사인 두 사람은 기아대책을 통해 서로를 알게 되었고 2012년 정화 양이 에세이 <안녕, 아그네스!>를 출간하면서 녹음한 동명의 노래 '안녕, 아그네스!'를 작곡한 작곡가이자 CCM 가수 유은성 님"이 작곡을 맡으면서 인연을 맺게 되었고
또한 '안녕, 아그네스!'를 작업하고 녹음하는 과정에서 사랑을 키워가게 됐다" 라고 했습니다.
2012년 연말에 엄마 돌아가시고 교제를 시작했는데,
데이트할 때 시간의 십일조를 같이 드려보자는 제안을 제가 했어요.
같이 큐티 나눔을 해보자는 거였는데요,
이전에 다니던 그대로 방배동에 있는 늘 함께 교회에 지금도 출석하고 있답니다.
가장 화려한 시기에 우울증에 시달리게 되었고 그때 하나님은 어머니의 아픔과 마음의 낳은 딸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고
어느 독실한 크리스천 부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결혼한 지 10여년이 되도록 아이가 없었습니다. 그들 부부는 물론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이 가정에 아이를 주시도록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던 중 그 부인이 임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모두들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지요.
드디어 열 달이 지나 아이를 낳았는데 그 아이는 심각한 장애아였습니다.
이 사실을 안 남편은 ‘어떻게 아내에게 설명 할 것인가?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셨다고 확신했는데….’ 이렇게 고민하며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사실을 알게 된 아내는 많이 울었습니다. 그 때 아내가 남편에게 말했지요. “여보! 당신이 나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애쓰는지 알아요. 말씀 안하셔도 괜찮아요.
하나님께서 제게 말씀 하셨어요. 하나님이 이 생명을 세상에 보내시려고 생각하시다가, 생각하시다가... 우리가정에 보내면 가장 사랑을 많이 받을 것 같아서 바로 우리 가정에 보내셨다고요.”
저는 김인수 김수지 교수 부부의 가정이야기 오디오북을 듣고 있었던 중, 위의 이야기가 나왔을 때 눈물이 핑 돌면서 뭔가 고압 전류에 감전된 것 같은 진한 아픔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 남편은 어려운 가정에서 장남으로 자라났습니다. 남편은 부모님과 형제들에게 폐 끼치지 않으려면 자기라도 착한 아들이어야 한다는 고정 관념이 강했습니다. 그래서 저와 저희 자녀 모두 남편 자신과 같아져야 한다면서 희생을 강요하고 힘들게 했습니다.
일중독에 빠진 남편은 가족에게는 관심이 없고 무책임하면서도,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것에는 목숨을 걸다시피 하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이 같은 남편이 저에게는 장애아와 같았습니다.
이때 저는 “그래, 이 사람을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다가, 생각하시가다.... 내게 주시면 가장 잘 거둘 것 같아서 내 남편이 되게 하셨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그 순간 하나님의 아련한 마음을 알 것 같아서 참 아팠습니다.
그동안 저는 남편을 돕는 배필로 살기보다는 남편에게 바라는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그렇기에 늘 상처투성이였습니다. 그런 상처받고 아픈 내 모습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서 회개할 때에 성령께서는 싸매시고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하게 해주셨지요. 그 뒤 아주 오랜만에 남편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그동안 당신을 잘 이해하지 못했었어요. 그리고 얼마나 많은 바라는 마음으로 당신을 힘들게 했었는지….”
이처럼 남편에게 저의 잘못에 대한 회개의 고백을 통해 용서를 빌고 사랑의 마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이 모두가 깨닫게 하시고 온전케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섭리이심을 굳게 믿습니다. 그 섭리하심에 감사드립니다.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 이니라 여호와의 말씀 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 이니라 여호와의 말 이니라” (사 55: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