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 리더 :: '선교사' 태그의 글 목록 (2 Page)

미국의 명문대학을
졸업한 다섯 명의
젊은이들이 있었다.

그들 중 피트는
신혼여행도 포기하고
에콰도르 선교에 나섰다.

다섯 명의 선교사는
아내들을 후방에
남겨둔 채 경비행기를 타고
 단 한 명의 기독교인도 없는
아우카 인디언 마을로 떠났다.
 
1956년1월2일.
피트 선교사는
아내에게 긴급무선을 쳤다.

 "흥분한 인디언들이
몰려오고 있다.
기도해 달라."
그 후 연락이 끊겼다.

 이튿날 구조대원과
가족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다섯 명의 선교사들은
 싸늘한 시체로 변해있었다.

복음을 거부한
인디언들에게 순교 당한 것이다.
 
 20대의 선교사 부인들은
울부짖으며 한 가지 다짐을 했다.

 "남편들이 이루지 못한
과업을 우리가 완수하자"

아내들은
아우카 마을로
이사해 복음을 전했다.

40여년이 지난
지금 그 마을은
'복음의 땅'으로 변했다.

선교사를 살해한
다섯 명의 인디언들 중
네명이 목사가 됐고
 1천 여 명의 주민들이
모두 그리스도인으로 변했다.
 
최근 피트 선교사의
부인 라이펠트 여사는
 선교사들의 용기있는 활동을 담은
'아우카 선교이야기'라는 책을 펴냈다.

40여년 전 뿌려진
순교의 씨앗이
활짝 꽃을 피운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성취된다.
다만 시기가
좀 늦을 뿐이다.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미국의 스텐레이
 탐 장로님 이야기입니다.

그는 다른 사람이 7번
 실패한 사업을
인수받았습니다.

그리고 경영을 시작할 때
주님께 기도부터 드렸습니다.
주님이 기도중에 말씀하셨습니다.

<네 사업을 내 이름으로 등기하고
내 이름으로 사업을 하거라.>
그는 어떻게 등기할 지 고민하다가
등기소에 가서 말했습니다. 
<내 사업체를 예수님 이름으로
등기하여 주십시오.>

관리가 웃었습니다.
그러나 탐 장로님의 이야기를 들은
기독교인 관리는 기꺼히 승낙하였습니다.

<주소는 무엇이라고 할가요?>
곰곰이 생각하던 장로님이 말했습니다.
<천국 일번지라고 하십시오.>

<전화 번호는요?>
<66국에 3927로 하십시오.>

<무슨 의미인가요?>
<성경은 66권입니다.
구약은 39권이고
 신약은 27권입니다.
성경을 들고 주님께
물어 보면 다 가르쳐 주십니다.>

그래서 탐 장로님은
예수님 이름으로 등기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사업체이기에
사장님을 예수님으로 모시고
무엇이든지 주님께 물었습니다.

이익금은 모두 주님께 드리고
자기는 월급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18개국에 선교사를
파송하여 신나게 일하고 계십니다.

주님을 목자로 모시면
항상 잔이 넘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잔까지
넘치게 만들어 줍니다.

예수님을 목자로 모시고
살면 잔이 넘치는 삶을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요16:24)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현재 멕시코에서
15년 동안 복음을 전하고 있으며
현제 멕시코 몬테레이의
예수 사랑교회를 섬기고 계시는
권에스더 선교사님 가족 이야기입니다.

최근에 『부탁합니다
제발 자살하지 마세요』라고
하는 책을 썼습니다.
​ 
집안에서는 주부이고
나가면 선교사역을
감당하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음성을 통해서
사명을 주셔서
남편을 따라 선교지인
멕시코에서 사역하고
감당하고 계십니다.

남편 김정원 선교사님은
의료선교사로 멕시코
몬테레이 지역에서
"김 덴탈 센터"라는
치과병원을 하며
멕시코 누에보 레온
주립 치과대학교수로
사역을 하시는 데요.

예수 믿기 전에는
그 과거가 그 삶
자체가 절망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술만 먹으면
와서 폭력을 행사합니다.
 그렇게 술만 마시면
폭력을 행사하고
어떤 때는 가족들 모아놓고
불 질러서 다 죽자 그러고.
그러다가 아버지가
집에서 자살을 합니다.

둘째 오빠는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남묘호렌게쿄에 빠졌는데
우울증이 더 심해져갖고
18살 때 산에서 자살합니다.

 큰 오빠는
 불교에 빠져있었는데
25살에
한강에서 자살을 합니다.

 무려 7년 안에
6명 가족 중 절반이
자살한 것입니다. 

그때 어머니께서 전도 받고
교회 나가서 부흥회 참석했다가
 성령의 불을 받습니다.
성령 받고 불을 받으면서
변화되어서
가정의 운명이 바뀌는데요.

그때 상황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날 하나님은 어머니를
인격적으로 만나주셨습니다.
성령의 강한 불이 임하면서
방언이 터져 나왔습니다.

‘사랑하는 내 딸아!
더 이상 슬퍼하지 마라,
울지 마라!’ 하나님께서는
이 음성으로
두 아들을 자살로 잃은
어머니의 갈기갈기 찢겨진
마음을 어루만져 주셨습니다!

그 순간부터 어머니는
‘오직 예수! 오직 예수!’ 하며
 전도하러 다녔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며
 자신의 삶을 비관했던 어머니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나서 자기처럼
 절망적인 현실 속에 빠져 살고 있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건설현장에 식당을 경영하면서
노숙자들과 독거노인에게
무료 음식을 대접하고 전도하고,
한글도 잘 모르는데

 더듬더듬
성경을 일 년에 두 번씩 읽고,
새벽 기도 주일성수를 빠지지 않고.
그래서 하나님이 축복해주셔서
좋은 식당도 개업하게 해주시고.

식당에 오는 사람 너무 전도해서
“여기가 식당이야, 교회야?”
할 정도로 열심히 전도하게 되었고요.

물질 축복도 많이 받아서
장막 터도 마련하게 되고,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자를
 돌보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한남동에 ‘새 생명의 집’이라는
 공동체를 만들어서

노숙자, 교도소 출소자,
독거노인, 장애인,
소년소녀 가장들을 돌보고요.
 10년 후에 그 결과
 한남동의 천사로 불리며
장한 어머니 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권에스더 선교사님도
불과 7년 사이에
3명의 가족이 자살함으로 인해
 늘 죽음의 그림자와 싸워야 했습니다.

 "이번엔 네 차례야!"
이러한 악한 소리와 신음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내 딸아,
 죽지 마라. 죽지 마라"
 하나님의 이 음성을 붙잡은 그녀는
목에 피가 나도록 기도하기
시작하면서 영안이 열리게 되었다

그리고
신학을 공부한 다음 은혜를 받고
치과의사 남편을 만나가지고
멕시코에서 선교사로 사역하고 있습니다.

 셋째 오빠도 성령 받고
변화되어서 허리디스크를 치료받고
신학교 가서 목사가 되어서
멕시코에 가서
선교사로 사역하고 있습니다.

연로하신 어머님은
23년 전
이와 같은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때가 되면
나의 모든 재산을 정리해서
하나님 앞에 바치겠습니다.”

기도한 대로
한남동 집을 처분하여
‘십자가 사랑’이라고
하는 출판사를 세우고
재정은 선교, 구제, 교회를 세우며
복음을 전하는 곳에만 사용하고,
미국, 멕시코에 교회를 설립하고,

멕시코의 죽어가는 어린 영혼들을
돌보기 위해서 고아원을 설립하고,
그리고 마지막에 자기가 죽은 다음
본인의 유골을 그곳에
뿌려달라고 하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선교사님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남아 있는 우리 가족이
 예수님 앞에 나왔을 때,
죽음의 골짜기에서
건져주셨을 뿐 아니라,
푸른 초장으로
친히 인도해주셨습니다!

권에스더 선교사님이
한번은 멕시코 선교지에서
마피아를 만나게 됩니다.

총을 겨누고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타나서
납치를 하려 했답니다.

그때 주님께서 그 순간
나타나셔서 그들의
눈을 보이지 않도록 하셨는데
그 순간 하나님께서
지켜 주신 것으로 알고
감사를 드린 적도 있답니다.

어떤 상황과 어려움에
있다 해도 자살은 사단이
속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계속 저주와 재앙이
오면 우리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날 위해서 대신 죽으시고
다시 사신 예수그리스도는
우리의 어떤 절망과 저주에서
건져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써
당당하게 일으켜주십니다.

이사야 60장 1절~2절 말씀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합정동에 가면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지가 있습니다.

그곳에 선교사,
선교사 가족들
145명을 포함해서
417명이 안장되어 있습니다.

​대표되는 두 분의
선교사님이 아펜젤러
선교사와 언더우드 선교사입니다.

아펜젤러 선교사는
결혼한 지 두 달 만에
한국 땅을 밟고
한국에 들어와
선교사역을 시작했습니다.

배재학당을 세워서
많은 젊은이들을 훈련시키고
여기서 이승만 대통령도 공부하고
졸업하고 한글학자 주시경도
졸업을 하고 오늘날

배재 중, 고등학교,
배재대학교로 발전했으며,
배재학당 내에 출판사를 세우고
또 독립신문을 인쇄하는
그런 귀한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목포에 복음을 전하러
갔다가 배가 침몰할 때
구명조끼를 옆에 있는
젊은 청년에게 전달해주고
그는 거기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마흔 네 살을
일기로 그 청춘,
그 젊음, 그 삶 전체를
우리 한국에 바친 것입니다.

언더우드 선교사는
같이 1885년 4월 5일
부활절 아침에
아펜젤러 선교사와
손을 잡고
인천, 당시 제물포 항에
도착을 합니다.

도착을 할 때 일본에서
이수정이라고 하는 유학생이
예수를 믿고 나서 언더우드,
아펜젤러 선교사에게 한국말을
가르쳐주고 성경 중에 마가복음을
번역해서 언더우드, 아펜젤러
선교사들이 들어올 때
성경책을 손에 들고 들어옵니다.

한국말을
배워가지고 들어왔어요.
이수정이라는 분이
성경을 번역해서
드렸는데 들어와서
이 언더우드 선교사는
지금 4대째 그 모든 자손들이,
일곱 명의 자손들이
한국에서 지금도
계속 선교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연세대학교를 세우고
한국 최초의 장로교회인
새문안교회를 설립을 했습니다.
언더우드 선교사가 이와
같은 기도문을 남겼습니다.

“주여!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지금은 예배드릴 예배당도 없고
학교도 없고 그저 경계와 의심과
멸시와 천대가 가득한 곳이지만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주여! 오직
제 믿음을 붙잡아 주소서“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시기에
 선교사님들이 오셔서
복음을 전하면서
꿈과 희망을 전해주고
믿음으로 모든 어려움을
이길 수 있도록 저들을
신앙으로 이끌어
주었던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절망 중에
감사하는 신앙입니다.
문제와 고통과
괴로움 가운데서도
주님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승리하는 신앙입니다. 

절망 중에 함께하시는
하나님이 일생동안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를 모든 절망 가운데서
건져주실 것입니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 (이사야 43장 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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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1988년 서울 올림픽
탁구 여자 복식에서
금메달을 따는 등
 ‘탁구 여왕’으로
불렸던 양영자 씨는

잘 훈련된
선교사로 바뀌어
몽골에서 15년간
선교사역을 하고 계십니다. 
 
처음 탁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담임선생님께서
초등학교 3학년 때
야외에 나가
그림을 그리는데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집중을 못하기에
그럼 탁구를 해보라는
제안을 받고
 시작을 했답니다.

그는
선수 시절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렸다.

중학교 때부터
팔꿈치 부상으로
 고생을 했고
병원에선 탁구를
그만두라고
권할 정도였다.

 하지만
국가대표를 꿈꿨던
그는 포기할 수 없었고
대신 주기적으로
진통제를
맞아야 했습니다.

 나중엔 진통제를
너무 많이 맞아
효과가 없을
정도가 됐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1984년
경기도 가평 한얼산
기도원에서 기적을
체험했다.

안수 기도를 받고
팔꿈치 부상이
완쾌된 것이지요. 

그는 고백하기를
그는 “하나님이
기도를 들어주셨다"라고
했다.

얼마 후엔 간염이
발목을 잡았고
연습을 제대로 못하면서
그의 기량은 떨어지니
​ 나중엔 국가대표팀에서
탈락하기까지 했다.

그때
주신 말씀이
잠언 24장 16절 말씀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
이였답니다.

‘양영자의 시대는
갔다’는 말이 나왔다.
하지만 그는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났다.

86년 상비군을 거쳐
30여 게임을 치르면서
국가대표로 재발탁됐다.

생방송으로 전국에 방송된​
서울 올림픽에서 최강
중국을 환상의 팀인
현정화와 함께
무너뜨린것입니다.

 최강 중국을
꺾고 나서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가
저절로 나왔답니다.

그런데 영적으로
날마다 기도해주시던
 어머니의 간암으로
먼저 천국에 가면서
우울증이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사람 만나기가 싫었고
아침에 해 뜨는 것이
싫었답니다.

그러나 그의
주위에 의사와
지인의
도움으로 서서히
 회복이 되었습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당신 나 자신도
저의 상태를 몰랐었고
우울증 겪으면서
부족한 믿음을 확인하고
큐티를 통해 말씀묵상과
성경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주신 말씀이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
시편 107편 10~11절 말씀입니다.
​​
하나님께서
이때를 위해
만남을 주셨는데
 이가 바로 남편
이영철선교사입니다.

 은퇴하고 제일모직에서
트레이너로 활동하던 때,
연합뉴스 국제부 기자였던
남편을 인도네시아에서
우연히 만났다.

남편은 같은 교회를
다니던 성도였고
자연스레
교제가 시작됐습니다.

1992년 5월 두
사람은 결혼을 했다.
선교사를 꿈꾸던 남편은
이듬해 회사를 그만두고
총신대 신학대학원에 진학했다.

신학공부를 마친
남편과 함께
선교사로 떠나기 앞서
그는 96년 호주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거기서 WEC 국제
선교회를 알게 됐고
6주간 선교 교육을 받았다.

드디어
 WEC 선교사로
1997년에  몽골 선교지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1990년대
공산 국가였던
몽골이 개방이 되어 
이때 하나님은
 양영자 선교사 부부를
몽골로 부르셨다.

교회를 시작했으나
선교 활동은
말처럼 쉽지 않았고
 언어와 문화 차이
때문에 힘들었다.

 바이러스에
감염돼 안면
근육이 마비되면서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그때 주신 말씀이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 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는
고린도후서 1장 4절
말씀입니다.

남편과 뿌리를 내린 곳은
울란바토르에서 차로
10시간 떨어진
‘생샨드’이었다.

선교 사역을 시작할 때
교인을 단 한 명.
하지만 지금은
200명으로 늘었다.

​그는 몽골을
 제2의 고향이라고 말하며
지금의 기도제목은
전 세계에 흩어진
몽골족 800만영을
주님께 말씀으로
세계를 정복하라는
귀한 통로가 되기
원한답니다.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