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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예술단장 <김정택> 장로
40대 이상이면
그가 만든 곡 한두 개쯤은
알 것입니다.

​전영록의 "불티"
"아직도 어두운 밤인가 봐"
현숙의 "정말로”,
인순이의
“외로운 밤이면 밤마다”
심수봉의 "미워요"등의
가사로 시작되는 인기가요가
그가 작곡한 것입니다.

현제 한국음악 저작권협회에
등록된 작사 작곡 편곡까지
모두 포함해 수록된 곡이
319곡 정도 된다고 하는데요.

월 저작권료의 인세가
2천만에서 3천만 원이 나오는데
지금은 그 인세로
봉사와 섬김의 삶을 살고
있답니다.

가수 현숙과 함께 병원,
요양원, 구치소 등에
찾아가는 음악회도 열고
무의탁 어르신을 위해
효 콘서트도 같이 한다고
하네요.

김정택장로는 평양 출신으로
미국 선교사로부터 세례를
받은 아버지의 신앙으로
태어나게 됩니다.

어릴 적부터 교회를 다녔지만
종교적인 생활만 했다는데요.

음악적인 재능을 처음
8살때에 피아노를 배우면서
알기 시작했으며
배재중학교를 거쳐서
서울예고에서 트럼펫을
전공하게 됩니다.
 
그리고 서울대학교
음대를 졸업하고
대중음악 연주가 겸 작곡자,
지휘자로 방송계와 밤무대에서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연주가 끝나고
불 꺼진 무대를 뒤로하고
돌아갈 때엔 허탈감과
끝없는 고독감이 밀려왔어요.

술로 달래 보기도 했지만
그것은 순간이었어요.

이럴 때마다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쫓기던 터라
쉽게 그만두지 못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회식을 가려는데
가수 심 봉수 씨와
전에 본 적이 있는
여자 전도사가 찾아와,

하나님이 보내서 왔다면서
"선생님! 어떠세요?"
그 물음에 이렇게 답을
했다는데요.

"죽지 못해서 살지요, 뭐...
그랬더니 이렇게 말합니다.
“더 이상 죄를 짓지 말라"라는
말을 남기곤 가버렸어요.

그 말을 듣자 처음에는 불쾌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자꾸만
그 말이 머릿속을 맴돌면서
가슴이 답답해져 회식에
못 간다고 양해를 구하고
차를 타고 무작정
강변도로를 달렸습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어요.
갑자기 엄청난
공포감이 그를 덮쳤어요.

그는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차 안에서 울부짖었습니다.

“주님, 잘못했습니다.
살려주십시오.”

정신없이 집에 와서는
먼지가 가득 덮여 있던
성경을 집어 들었어요.

그리고 피아노
밑으로 기어 들어가
끝없이 떠오르는
과거의 죄에 대해
회개하고 또 회개했어요.

밤이 새는 줄도 모르고
울며 토해내게 됩니다.

그 순간 어두움이 물러가고
뜨거운 눈물이 얼굴을 적시며
마음에는 감사가 넘쳤습니다.

회개한 후에
그는 신앙에 도움이 되지 않는
생활습관들을 정리해 나갔어요.

밤무대 출연도 중단했어요.
단호한 태도예요.
대단하지요?

이로 인해 생활에
어려움을 겪어야 했지만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하나님 품 안에
돌아온 저를 인도하소서...”
기도하며 나아갔어요.
쫓기는 삶을 다 내려놓았어요.

그리고 완벽하게 하나님께
자신의 시간, 재능,
심지어 일까지도 다 맡겼어요.

하나님을 진실하게
섬기는 사람이 되었어요.

 이렇게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며
살아가기 시작했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지금껏 맛볼 수 없었던
참 평안을 허락하셨어요.

생전 느껴 보지
못하던 여유를 주셨어요.

헛된 것을 버리니
가치 있는 것보다 의미 있는 것이
깨달아지게 하셨어요.

이렇게 마음의
평안과 기쁨을 주셨는데
이제 얼마 되지 않아
하나님은 그를
SBS 관현악단장으로 세워주셨어요.

그것만이 아니에요.
몇 년 후 합창단과 무용단을 합쳐
만든 예술단장의 직책까지
맡게 하셨어요.

놀라운 일이에요.
하나님은 교회에서도
그를 장로로 세우셨어요.

영혼의 귀함을 깨닫게 하시고
전도에 불을 붙게 하셨어요.

연주인 연예인 할 것 없이
누구든지 닥치는 대로
전도하는 열정을 불어
넣어주셨어요.

개그맨 이영자 씨를 전도를
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1997년 1년 동안 진행해온
"아이 러브 코미디"라는
녹화를 마친 뒤 송별회식을
위해 가려는데

이영자 씨가 갑자기 이렇게
물어봅니다.

"단장님, 숨겨놓은 여자 있죠?"
"엥... 뭐라고요?"

"제가 1년 내내 지켜봤는데
어떻게 단장님은 항상
싱글벙글 하세요?"

그 말을 당황스러웠지만
무슨 말을 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답니다.

그래서 "나야 뭐 할렐루야를
하니까 늘 웃죠
늘 다름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잖아요,
영자 씨는 웃을 일 많지 않아요?"

그랬더니 영자 씨가
"저는 그렇지 않아요
밤에 잠을 잘 못 자요."

순발력과 재치를
가지고 인기를 누리는
이영자 씨가 늘 새로운
아이디어와 노력을 해야
한다는 부담으로 항상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고

부모와 형제들의 생활을
거의 책임지고 있던 상황이기에
더욱 남에게 보여줄 수 없는
갈등과 고민으로 시달리고
있었던 겁니다.

장소를 식당으로 옮기고 나서
일부러 영자 씨 옆으로 가서
내가 웃을 수밖에 없는가를
설명하면서 예수그리스도를
소개해주게 되었고

그곳에 같이 있던 홍진경 씨와
조연출자, 코디 담당자에게도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몇 주 후에 이영자 씨는 교회에
나가게 되었고 다시
몇 주 후에는 아버지, 오빠
올케 온 가족이 예수를
믿게 되었답니다.

 김정택 장로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 “앞으로도
제 입술의 나팔을 불어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하려고 합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상한 심령을 고치시며
외로움과 고독으로 몸부림치는
우리에게 충만한 기쁨과
만족을 주실 수 있기에,

이 비밀을 혼자만 알고
있을 수 없어서
저는 오늘도 나팔을 붑니다”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댄스 가수가
흔치 않았던
80년대 후반에
 ‘아 바람이여’로
데뷔한 이후
‘널 그리며’,
​‘사랑의 불시착’ 등의
히트곡을 통하여
뛰어난 가창력에
탁월한 댄스 실력으로

1989년
KBS 10대 가수상과
mbc 가요대상 등
최고의 인기를 누린
가수 박남정을
소개합니다.

어머님의 소원이
목사가 되는 것을 원했고
박남정 씨는 음악에
관심이 많았는데

1985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음악을 하고
싶었지만 눈물을 흘리시는
어머니의 모습에

음악을 포기하고
안양 성결 신학대 영문과에
입학을 하게 되었지만
결국 적응을 못하고 
대학을 그만두게 되었고
연예인으로써의 삶을
살게 됩니다.

처음 방송을 시작을
mbc 합창단으로 하였답니다.

합창단에 들어간 이유가
연예인이 되기 위해서
였다는데요.

그곳에서 문희옥이
있던 소속사에
뽑히게 되었고

소속사 사장님이
작곡가이신데
이분이 아 바람이여를
주셨고 연습을 하고
데뷔하게 됩니다.

그리고 널 그리며를
통하여 ㄱ, ㄴ춤인
 댄스 열풍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렇게 잘 나가던
순간에 잠시 재충전의 기회를
가지고자 잠시 쉬는 중에
급변하는 가요계에
 따라가지 못하고

2004년 재기를 꿈꾸며
7집 음반을 발표했지만
성대결절이라는 큰 어려움에
가요계의 활동을 접게 되면서

다시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고
그의 곁에는 아내와 두 딸이
곁을 지켜주었고
날마다 기도해주시는
어머님이 계셨기에
힘을 다시 낼 수 있었답니다.

그런데
결혼 전에 부모님의
반대가 있어서
4년간의 연애와
4년간의 동거 끝에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왜냐하면 박남정 씨의 어머님이
목사님이셔서 지금의 아내
집안이 불교 집안이기에
반대를 하셨답니다.

그리고 또한 장모님도
반대를 하셨는데
아내의 나이가
8살 연하였고
연예인이라는 것으로
반대하셨답니다.

두 사람은 너무 사랑하였기에
4년의 동거를 통하여
결국 어머님이 인정해 주셨고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린 후에
지금은 두 자녀와 같이
교회에 잘 다니고 있답니다.

그의 아내인 허은주씨는
박남정 씨가 슬럼프에 빠졌을 때
불평이나 투정을 하지 않고
대신 기도로 힘을 주었답니다.

얼마 전에는
 "유자식이 상팔자"라는
곳에 나오셔서
딸 박시은, 박시우가
나와서
시청자의 사랑을 받기도
했답니다.

박남정 씨의 끼와 재능을
그대로 물려받은
딸 시은이가 탤런트로
데뷔를 했는데요.

육룡이 나르샤와
시그널에서 야무진 딸로
멋진 연기를 보여주면서

박남정 씨의 기도로
새롭게 펼쳐질
하나님의 쓰임 받을
시은이를 기대해 봅니다.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1996년 영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로
데뷔하였지만
1994년 영화
"이도백화"가
데뷔작인데요.

그후로도
영화와 드라마에서
종횡무진 활발한
활동을 하고 계시며

2005년 11월 11일
결혼을 하였고
지금은 아이를
세번을 둔 당당한
엄마이기도 합니다.

조은숙씨의 남편은
 틈커뮤니케이션즈 대표이사
(광고기획사)룰 맡고 있는
CEO 박덕균씨입니다.

그런데 조은숙씨보다는
남편이 열심히 있는
크리스천이라는데요.

남편따라서 신앙에
깊이가 생겼다고
합니다.

시어머니와 남편이
적극적으로 연기자생활을
하도록 밀어준것에
늘 감사하다고 하네요.

첫째달(박윤)의 이름을
무엇으로 할지를 가지고
 온가족이 고민을
하다가 남편이 기도하는중에
"윤"자가 떠올라서
외자로 지었다고 합니다.

어릴때부터 탈렌트가 될려는
꿈을 가진것이 아니고
대학도 문예창작과를 진학을
했답니다.

유학을 결심했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혼자서
유학비용을 벌려고
여러가지 아르바이트를
해 보았답니다.

그러던중에
"사주 팔자를 고칩니다"라는
연극에 출연하게 되면서
잘한다는 평을 듣게 되었고

그 다음에 출연한
"나의 라임 오렌지"에
영화 관계자분들이 오셔서
결국 케스팅되게 되었습니다.

신앙생활은 어릴때부터
다녔고 교회가 평안했답니다.

어느날 친구들끼리 모여서
7명이 기도를 하다가
갑자기 큰 불덩어리가
한명 한명에게 다가와서
그때는 성령의 역사를
모르기에

뒤로 넘어지고는 너무
무서워 다시는 교회에
다니지 않게 됩니다.

그후로 점집에 제집 드나들듯이
다니게 된것입니다.

조은숙씨가 너무 어려울때에
점집을 찾아다녔는데
그 말대로 하니 더욱
되는 일이 없자

이제는 점을 끊겠다고
결심하고 점쟁이를 찾아갔는데

그때 하는 말이
"너 같은 사람은 다신
이런 곳에 오면 안돼!
교회를 나가, 교회를!"

그때는 황당했지만
결국 남편를 따라서
독실한 기독교인이
된것이지요.

그래도 유일하게
하나님께 기도한것이
있는데 남자친구에 대한
기도는 했답니다.

"이런 것 저런 것
다 필요없으니
하나님 보시기에 온전한
사람을 달라"고
해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된것이랍니다.

남편은 밤새 술집에서
조은숙씨의 말벗이 되어주다가
새벽기도를 드리는 곳에
같이 데리고 가기도 했답니다.

결혼전에 남편은 2년동안
경제적 어려움이 많아서
결혼에 대한 고민을 하다가

어느날 교회로 운전을 하고
가서는 조은숙씨를 차안에
두고는 혼자 교회로 가서
자신의 전재산 130만원을
헌금을 드리고

이렇게 기도했답니다.
"같이 살고 싶은
은숙이가 밖에 있어요"라고
간절한 기도를 드리고
결국 결혼하게 된것이랍니다.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그때 그사람"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사랑받게 난 몰라"
"여자이니까"등으로 
80년 대를 주름잡았던
가수 심수봉
 (본명 심민경)씨는

여러가지 고난과
아픔을 겪으면서
예수님을 영접했지만
당당하게 고백을 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고

그러면서 더욱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개인적인 체험을 한 간증을
고백했는데요.

집을 짓고 지하에 와인저장
창고를 만들려고 땅을
파는데 계속 물이 나와서
결국 하나님께 회개하고
나니 물이 멈추더랍니다.

그때부터 그 집을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산의 이름을 따서
"모리아"라고
고백을 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기도와 찬양하는
공간으로 만들어져서
쓰임받게 하셨답니다.

심수봉씨는
1955년 7월 11일
충청남도 서산에 태어나서
19​78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그 때 그 사람(자작곡)으로
데뷔했습니다.

원래는
 1976년 "여자이니까"를
발표했지만
데뷔곡은 이것이지요.

그전에 1975년 청와대의
초청받아 박정희 대통령앞에서
노래를 불렀고

그당시 최고의 가수
나훈아앞에서도
노래를 불러서 음반을
녹음했지만
음반사와의 분쟁으로
취소되면서
뒤늦게 명지대학교에
입학하게 됩니다.

그후에 명지대학교
경영학과에
재학중일때에
대학가요제에
참가한 곡이
"그때 그사람"으로
가요제에 입상은 못했지만

당시 ‘그 때 그 사람’이
전국을 강타하면서
1979년 최고의
히트곡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1979년 10.26 사건에
 휘말려 출연금지령을 받았고
잠시 활동을 중단했었고

그 당시 계엄사에 끌러가서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하게 되었고
한달동안 고통을 겪다가 나왔지만
1980년 방송정지를 당하게 됩니다.

​1984년 가수로 복귀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를 내놓아
​2만여장을 판매하는
기록을 세웠으며,

​이후에도
(사랑 밖엔 난 몰라)
(백만송이 장미) 등
주옥같은 히트곡을 남기며
음악인으로 사랑받았습니다.

심수봉 씨는 수많은 히트곡과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뒤에
숨겨져 있던 외로움과
완벽한 사랑을 찾아
헤메던 젊은 날들,
​그리고 진리를 찾은 기쁨과
고난을 통과하며
“나의 하나님“을 만났다.

심수봉은
상아색 그랜드 피아노 앞에서
하늘색 원피스를 곱게 차려 입고
스물셋 꽃 다운 나이에
​‘그때 그 사람’을 부르며
1978년 화려하게 데뷔했다.

​그러나 이듬해
10·26 정치현장을
 목격했다는 이유로
5년간 방송 출연
금지 조치를 당했다.

참으로 팍팍한 인생.
​한창 열정적으로 무대에
서야 할 나이에
그녀는 족쇄에 묶여버렸다. 

벗어날 방법을
찾던 그녀는
사주와 점술에 빠졌다.

“무엇을 보고,
​누구를 만나도
제 운명은 항상 나쁘더군요.


1985년 큰언니가
기도를 하다가
전도를 하였고
어이없게도 따라가게 됩니다.

 제게
‘너 같은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길이 있다’고
했어요.

​바로 예수님을 믿는 것이라고.”

심수봉씨는 사주 운명 팔자는
바뀔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말에 너무 큰 충격을 받아서
결국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1985년 그녀는 충현교회에
등록하고 믿음생활을 시작했다.

 3일 동안 눈물만 흘렸다는
심수봉씨의 고백입니다.

“마치 잃어버렸던
부모님을 찾은 심정이었지요.

​세상에서 겪은 외로움
서로움 고통들이 모두 얽힌
눈물이었을 거예요.

​절대자 앞에
다 내려놓으니
그렇게 마음이
편안할 수 없었어요.”

​이후 첫 남편과
광림교회에서
결혼한 그녀는
집사 직분도 받았다.

​그러나 곧 이혼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

​외국에 나갈 때면
가끔 찬양 간증집회에
초청되기도 했지만

이혼 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
교회 집회에
일절 나서지 않았다.

​그러다가
1993년 재혼하면서
그녀는 교회와 멀어지게 됐다. 

기독교에 대한
남편의 거부감이 심했던 것.

그러나 ‘아이들을 키우는 데
말씀보다 더 중요한 게 없다’는
것을 깨닫고
심씨는 남편을
이끌고 6년 전 부터
한우리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답니다.

심수봉씨는 험난했던
지난 세월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자신이 있었다면서
전화위복을 주신 주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고
고백했다.

심수봉 씨는
 “아버지 없이 자라면서
평생 아버지 사랑 같은
완벽한 사랑을 찾아 헤맸다.

하지만 결론은
이 세상엔 완벽한 사랑은
없다는 것이었다.

​배우자에게
완벽한 사랑을 기대했지만
나중에는 제가 더
사랑을 주고 끌어안아주고
북돋워줘야 할
사람임을 깨달았다. 

완벽한 사랑은
우리가 완벽한 사람,
​예수를 만났을 때
비로소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이혼의 아픔을 겪고
현재의 남편과도 한 때
어려운 시기를 겪은 그녀는

“평생 소망이
사랑 받고 싶은 것이었기 때문에
남편과의 문제가 제일 힘들었다.

​그러나 모든
축복의 통로는 나이며,
하나님과
저와의 관계가 바로서면
남편이나 자식과의 관계,
​모든 것이 풀린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고백한다.

하나님은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을 놓게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너 한테는 내가 있지 않니?"
라고 하셨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지은 노래가 바로
(백만송이 장미)입니다.

​라트비아 가요
‘마라가 준 인생’을
원곡으로 하는
이 곡은 심수봉 씨의
신앙이 묻어있다. 

그녀는
"최근에서야
기도의 기쁨을 알게 돼
시간만 나면
기도를 하게 된다"면서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다"고 고백했다.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2012년,
시청률 40%를 넘기며
화제의 드라마, 
최고의 드라마가
된 해를 품은 달! 
극중 꽃도령 허염 역을 맡으며

차분한 연기와 반듯한 외모로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배우 송재희!

서울예대 영화​과를 졸업하고
10년이라는​
오랜 무명에 지쳐
배우를 포기하려는 순간 
주신 선물이었다.

해품달로 얼굴이 알려졌고,
일도 많아졌다. 
그러나 배우 송재희는
어깨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죽음의 문턱에서 그를 살리시고 
세워주신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

원래는 초등학교 때
카톨릭에서 영세를 받았고
집안이 천주교인이며

본인 주위에 기독교인들이
안 좋은 모습을 보여서
싫어했답니다.

고등학교 때 검도를 했는데
허리 부상으로 그만두게 되고

주위에서 잘생겼다고
해서 그럼 배우를
해볼까라고 시작했답니다.

2004년에 20대 초반에 쉽게 
돈을 벌고 싶은 마음에 
시작했던 배우의 길이지만

CF 메인 모델로 
시작은 거창했으니
당연히 돈도 벌고
잘되다 보니
성공할 줄 알았는데
 그 후 일이 뚝 끊겼다.

기획사도 있었고
노력도 열심히 했으므로​
잘 될 거라는 희망고문 속에
무명생활은 계속됐다.

친구들에게 밥 한 번도 못 사고
부모님을 도와드리지도 못하고

연예인이지만 늦게 지급되는
상황에서 ​
돈이 없어 밥을 굶어야 했고, 
한줄기 희망도 보이지 않았다. 

인생의 벼랑 끝에서
그는 자살을 생각했고, 
행동에 옮겼다.

아 그만하자라고
하면서 자취방에서
자살을 기도하기까지
했답니다.

그 순간에 너무 억울하고
나 자신이 행복해보지도
못한다는 생각에
다시 
정신을 차렸다.

숨이 턱밑까지 차오를 때
 불현듯 찾아든 생각 하나는

 ‘내가 진정 행복해
본 적이 과연 있었나?’

라는 생각에 노트에
글을 쓰는데
나에게도 빽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하나님이 내 빽”이라
자주 떠들던 친구에게
왠지 전화를 걸고 싶어졌다.

친구에게 30분간 울면서
나 살고 싶다고 하니까
그럼 교회에 다니자라고 합니다.

 친구 따라 간 오륜교회에
예배당에선
스캇 브래너 목사가
예배를 인도하고 있었고,
 
그때 담임목사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답니다.

“너 왜 이제야 왔니?
내가 널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니?!”

 ‘나만 잘못 들었나?’ 싶어
확인하려고 다시 교회를
나갈 때마다 그 음성은 계속 들렸다.

그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게 되었고
들릴 때마다  울었답니다.

진짜 사랑하는 아버지가
눈물을 흘리신 것 같았고
들을 때마다 그의 영혼은
치유받았으며
급속도로 회복되었습니다.

혹시 몰라서 다시 그 음성을
듣고 싶어서 교회를 가면
또다시 그 음성을 듣게 됩니다.

죽으려다가 만난 하나님이니,
 죽었다가 살아난 인생이었다.

그러니 모든 걸 접고 내려놓으며
주의 길을 가리라는 다짐도 했다.

처음 교회를 다니다 보니
적응이 안 됐다,
사이비 집단 같았다,

그런데 말씀으로
주님의 터치를 받은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매주 주님께서는
목사님의 말씀을 통해 
그에게 말씀하셨다.

성경책을 팔에 끼고 다니고
주위 사람들에게 본인은
행복하다고 이야기하고
다닙니다.

조금씩 행복함이 느껴졌다,

세상에서
느껴보지 못한 행복이었다. 
행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알기 위해 
말씀을 읽기 시작했다. 
말씀이 꿀보다 더 달았다.
 
​어느 정도로 은혜를
받았는가 ​하면
"하나님께 내 삶을 드리자고
결심하게 됩니다."

그리고 배우는 그만두고
목회자가 되자고 했는데

하나님을 만났지만 
바로 인생이 풀린 건 아니다.
오히려 시험이 많이 들었답니다. ​

누구나 겪는 일이지만
처음 하나님 만나고 기쁘고 즐거움이
있는 것만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3년을 더
광야에 있었지만
그러나 그의 마음이 달라졌다.

​너희 힘들어서 기도와 말씀에
갈급해서 집 근처 아무 교회나
갔는데 그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받게 됩니다.

예레미야 29장 11절 말씀인데요.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빨리 응답이 오지는 않았지만
말씀을 붙들고 있었답니다.

돈도 없고 일도 없었지만
하나님만 바라보았고
그래도 행복했답니다.

사람들이 오해하기를 힘드니까
교회에 열성 광신도가 되는구나라고
주위에서도 부모님도 걱정할
정도 없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3년이 지나자 응답의
문을 여신 것입니다.

‘해를 품은 달’ 오디션이 그랬다, 
배우 생활을 접으려는 순간 주신 기회였다. 
부담 없이 오디션을 봤고, 기대도 하지 않았다,

감독님과 한 시간을 이야기하는데
거의 대부분을 간증이었답니다.

​그의 고백입니다.
"난 이 작품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난 얼마 전에 깨달았고 모든 것에
감사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감독님이
하신 말씀이
"내려놓는다는 걸
당신 참 빨리 느낀 것 같다면서
대단하다."
그리고 그런 총명함에
뽑았답니다.

그런데 결과는 합격이었다.

해품달을 하며,
또 일일드라마를 하며 
그는 자신이
크리스천임을 자연스럽게 
알릴뿐 아니라

하나님을 만난 이후로
하나님의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연기자 동료들과 함께 
기도도 하고,
지인들을
적극적으로 전도한답니다.

최근에는
오랜 카톨릭 신자였던 
어머니를 전도해
큰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어머니가 26년 이상을
카톨릭에 다니셨기에
반발도 심하고
싸우기도 했답니다.

어느 날 어머님께
우상과 연옥에 대한
비성경적인 것을
말씀드리고

어머니를 위해서
기도문을 벽에 붙여놓고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는
어느 날 집안의
우상들도 없어지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번 주부터
교회에 간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머님이
교회에서 기도하시면서
신앙이 회복되었고
나중에는 아버지도
같이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송재희 씨는 날마다
감사편지를 노트에
쓴답니다.

"아침에 눈 뜨게 한 것
감사합니다."
하면서 죽음에서
다시 살려주신 것에
감사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답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의 내 인생이 아닌
당신의 내 인생이기에 내가
지금 겪는 두려움도 실패도
절망도 팝박도 아픔도 약함도
당신을 드러낼 탁월할 기회이기에
이젠 당신만 드러내게 하소서"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조용필의 (상처), 유미리(젊음의 노트)
최진희의 (꼬마 인형), 박정식(천년바위)
장미화의 (어떻게 말할까) 등
수많은 히트곡을 만들어

별명이
히트 제조기일 정도의
인기를 누렸고

그 당시에 크게 히트했던
가요 "고목나무"를 불렀던
 장욱조씨가
예수님을 만나고
목사님이 되셨는데요.

장욱조목사님은
총회 개혁신학
대학원(MDIV)을
졸업하고
 일산 한 소망교회
선교 목사로
계신답니다. 

 수많은 히트곡과
천곡이 넘는 곡을
작곡했던 이분이
 
어느 날
음반 제작을 하다가
완전히 실패해서
빚더미에
앉게 되었습니다.
 
집마저
다 잃어버리고
 빚잔치하고 나니까
가진 것이 없어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아내가
그를 교회로
인도했습니다.

만약 한참
잘나가고
뭐 여기저기
부르는 곳이
많았더라면
아마 교회 오기가
힘들었을지 모릅니다.

완전히 실패하고
빚더미에 앉은
그를
아내가 인도할 때
순순히 교회로
따라 나왔던 것입니다.

그가
교회에 나와서
연예인 선교단과 함께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찬양을 부르다가
은혜가 임했습니다.
그때의 고백입니다.

“하루는 연예인
선교단을 따라
찬양집회를 갔는데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이란
찬양을 부르면서
마음에 이상한
감정이 치솟아
올랐습니다.
 
그 전부터
알던 찬양이었는데
그날따라 왜
그렇게 눈물이
쏟아지는지
알 수가 없더라고요."

눈물 콧물 쏟고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빚을 갚고
생계를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에서도
술집 무대에
서지 아니하고, 
 약속의 말씀만
붙잡고 나아갔습니다.
 
그때 붙들었던
말씀이 마태복음
6장 26에서 33절입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 말씀 붙잡고
나아갈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습니다.
기적이 임했습니다.
축복이 임했습니다.

1년 6개월 만에
모든 빚을 다 갚고
그리고 장막 터까지
마련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변에서는 예수를 믿고
미쳤다고 했지만
기쁘기만 했답니다.

복음을 전하고 찬양집회를
다녔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은혜받고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이 무엇일까?"하다가
내린 결론이 가족을 먼저
전도하기로 합니다.

장인을 집으로 모시 고와
병든 몸을 1년간 수발하며
복음을 전하게 되었고

드디어 장모가 먼저 변화되었고
40년간 원불교였던 장인도
예수를 믿게 됩니다.

너무 기쁘고 감격에 넘쳐서
지은 찬양들이 "할 수 있다 하신이는"
"주님 나의 동산" 하늘나라 여는 문"
"전하세"등 100여 곡을
발표하게 됩니다.

특히 신앙적으로 경제적으로
힘들 때에 교인들이 즐겨 부르는
"할 수 있다 하신이는"의 가사는
이영후 장로님이 주셔서
본인이 작곡을 하게 된 것이랍니다.
 
 그런데 교회에 사역을 하면서
말씀의 갈증을 느끼게 되면서
평신도이기에 설교와 축복권이
없어서 고민하다가

같은 동역자인 김석균 와
노문환목사,그리고 김민식전도사와
의논을 하여
"우리가 평생 하나님의 종으로
사역을 할 거라면 신학공부를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결론을
내리고 네 사람이 함께
신학교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아내는 신학교를
가지 말고 평신도로 찬양으로
사역을 하라고 말렸지만

3년 동안 설득하여 결국
신학교에 입학을 하고
졸업을 하여
2000년 안수를 받게 됩니다.

현재는 일산 한 소망교회에서
선교목사와
남양주 세계로 교회의
협동목사로 섬기며
한국 복음성가 협회를
섬기고 계신답니다.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규장 문화사 대표
여운학 장로의 이야기입니다.
 
25년 동안 출판계에서
 일을 하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쉬는 날도 없이 일하다
심한 허리디스크에 걸려
 자리에 눕게 되었습니다.
 
교회에 나가던 아내가
누워서 심심하니
​책이나 읽으라며
성경책을 주었습니다.
 
특히 잠언을 읽으라고
펼쳐 주었습니다.

그는 생전 처음으로
성경을 읽게 된 것입니다.
 
출판사에서 일하며
책을 많이 읽고
원고 교정도 하였지만,
별 감동이 없었는데
잠언서를 읽는 순간 마음이
녹아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잠언 8장 32절
“내 말을 순종하는 자에게는
복이 임하고
불순종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임한다”는 말씀을
읽을 때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복을 주신다는
말씀이 강하게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그는 잠언만
읽은 것이 아니라
전도서도 읽고
시편도 읽었습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에 감동이 왔습니다.
결국 하나님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자
더 이상 누워서 허송세월을
할 수 없었습니다.
 
새벽기도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낫기 힘들다는
허리디스크가
치료되었습니다.
 
은혜를 받고
믿음을 갖게 되면서
그는 인생을 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는 
 자기를 위해서 일했지만
이제부터 하나님을 위해
일할 것을 결심하였습니다.
 
배운 것이
출판일밖에 없으니
문서 선교하는 출판사를
세우고자 계획하고,
규장 문화사를 시작했습니다.

이슬비 전도편지를 만들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책을
번역하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경영이 어려워서
빚더미에 올라앉기도 했지만,
하나님께 모든 것을
다 맡기고 나니
마음에 평강이 넘치고
어려운 고비도 넘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복으로 양재동에
규장 문화사 사옥도 신축하고
베스트셀러를 많이 내어
흥황하게 되었습니다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1986대학가요제에서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
데뷔하여 대표곡으로는
 (이별 이래)  (화려한 날은 가고)
(가을비)  (사랑의 찬가)이며

2005년 KBS 가요대상과
2011년 대한 가수협회 부회장과
 현제 유열컴퍼니 대표이사,
어린이 뮤지컬의 감독으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처음 신앙생활을 하게 된 것은
중학교 때라고 합니다.

친구 따라 크리스마스 때
불광동 성서침례교회에서
시작을 했답니다.

대학을 재수와 삼수하면서
잠시 하나님을 떠나 있었고
집도 기울어졌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나중에 강남에 소망교회를
출석하게 됩니다.

중학교 때 성가대에서
발성과 찬양을 통해서
가수에 큰 도움이 되었답니다.

교회 여자 선배에 잘 보이려고
기타를 치다가 재능을
발견하기도 했다는데요.

대학가요제에 대상을
받기 전에
기도하기를 "하나님 본선에만
오르게 해주세요."라고 기도를
드렸는데 대상을 받게
되었다는데요.

유열 씨는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세 가지로 이야기하는데요.

첫째는 1886년 대학가요제와
두 번째는 2012년 결혼과
세 번째는 아이의 탄생이랍니다.

 "하나님께서 왜 나에게
이렇게 쓰임 받게 하셨나요?"
라고 하나님께
질문하면서

요즘 기도제목이
더불어 사는 삶을
실천하며 살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한답니다.

원래의 꿈은 가수가 아닌
무역학과였는데 본인에게
맞지 않는 것 같아서
결국 가수로 데뷔를
하였답니다.

라디오 DJ를 13년을
하다가 그만두게 된
이유가 있답니다.

개인적인 애착이 있었지만
새로운 개편으로 바뀌게 되면서
드라마 "겨울연가"를 통해서
연기에 도전하게 됩니다.

나중에 연기는 나의
길이 아니라는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하면서

어린이 뮤지컬을 하게 되고
자신의 전문성을 발견하고
나중에는 결국 CEO로
쓰임 받게 됩니다.

유열 씨는 어린이 뮤지컬이
우리나라에 너무 열악하고
전문성이 부족해서
더욱 사명을 가지게 됩니다.

브레멘 음악대가
대표적인데요.

큰 규모의 뮤지컬을
다시 줄여서
어디든지 가서 산골까지
가게 됩니다.

프랭키와 친구들이라는
뮤지컬을 또 준비하고
있기도 합니다.

매년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있는
것을 느끼고 있다는 데요.

어떤 목사님의 설교에서
들은 말씀이 가슴에
파고들게 됩니다.

"왜 걱정하느냐
기도할 수 있는데"

하나님은 기도 한 후에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수많은 어려움을 통해서
자신을 단련시키시는
하나님을 고백합니다.

유열 씨가 15살 차이가 나지만
아내를 만나게 된 계기가
음악을 통해서 서로 힘든 부분들이
있었지만 결국 하나님께서
결혼까지 하게 됩니다.

사실 오랫동안 사귀면서
만나고 있었지만
하나님이 허락하신
선물이었다고 고백합니다.

유열 씨가 감사의 제목을

첫째는 새로운 삶을 갖게 된
아빠가 된 것이 감사합니다.

둘째는 발견할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합니다.
삶 속에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게 하신 것 감사하답니다.

세 번째는 살아있는 동안
사랑할 수 있고 사랑받을 수
있는 것 감사하답니다.
사랑은 지친 누군가를 위로하고
힘을 줄 수 있어 서랍니다.

결혼할 시기에 큰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 고난을 이겨낼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하네요.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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