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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MBC 10대
가수 가요제 대상을
 수상하고
 2004년(휠릴리)골든디스크
 대상까지 거머쥐었던

우리들이 잘아는 노래
휠릴리, 덩그러니 굿바이등
수많은 노래를 부른
이수영씨를 소개합니다. 

가수가 꿈이였던
이수영씨가
중3 때 라디오프로
 ‘별이 빛나는 밤에’에서
 주 장원을 했어요.

 제가
가수의 꿈을 꾸면서
 계획했던 절차 중의
 첫 번째 관문이었어요.

거기서 상 받고
 대학가요제 가서
그런 꿈을 꿨는데,
그전에 하나님의
계획이 계셨던 거예요.

고3때 친구따라
 가스펠 콘서트한다고 해서
 그것도 모르고 그냥 갔어요.

처음에는 가수들이
 나오는 걸로 생각했는데
 저도 모르게 막
 눈물이 쏟아지는 거예요.

 가슴은 뜨겁고
 눈물은 쏟아지고….
 친구 손잡고 그냥 간 건데.
 친구가
 나를 전도하기 위해
애를 쓴 것도 아닌데

그냥 가서 울게 되고,
그 다음날부터
 제 삶이
 완전히 변화되었어요.

 ‘하나님이
살아계시는구나.’
 그리고 호기심이
 끝도 없이 시작됐어요. 

 가수를 준비한
소속사에 전화를 걸어
가수하지 않겠다고
하고
가수의 꿈을 접고

24시간 중에
 다른 친구들은
 4시간 자고
 20시간 공부할 때
 저는 4시간 자고
 20시간 전도하는 데에
 시간을 다 썼어요.

300명의 친구들을
  전도했답니다.

이수영의 아버지는
 그녀가 초등학교
 2학년일 때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으며

 어머님은 스무살 때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그 후 2명의 동생과
 외할머니를 모시고
 살아야 했다. 

 그 때부터 여동생과
 남동생의 가장이 됩니다.

큰 시련이 오니
하나님을 원망하고
 가수의 길로 다시 가게되어
인기있는 가수가 됩니다.

정상의 위치에 있으나
영혼은 공허해지고
너무 힘들어 했는데

그때 친구인
이지훈가수가
너 왜 그렇게 사니?
그때 정신이 바짝들게 됩니다.

이지훈씨 자신이 간증하면서
새벽2시부터4시까지 기도하면서
자신은 어려움을 이겨냈다는 거예요.

그친구의 손을
 잡고 기도모임에
같는데 2시간의 기도가
처음에는 힘들었는데

나중에는
잊고 살던 방언기도가
터지면서 
밑바닥까지 잊고 살았던
상처가 치유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세월을
지었던 죄, 받았던 상처를
씻어주셨고 그때부터
하나님 앞에 다시 서게되었습니다.

그의 고백입니다.
"너무 부끄러웠고
시편 2편4절의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는 말씀을 깨닭게 해주셨습니다.

처음 가수 시작한 소속사가
가수가 혼자이였고
 사장이 핍박이 심해서
그것때문에  힘들어서
차에서 뛰어내리고 싶었고
그것이 상처가 되어
힘들었고 어려웠답니다.

그곳에서
주일을 지킬수도
없었​답니다.

기도중에 최고의 몸값일때
기독교인 사장의 소속사를 만나게
돈보다는 신앙을 선택하여
 처음은 좋았습니다.

또 다시 소속사가
가수를 키운곳이 아니라서
회사가 커질수록 사장의
모습이 바뀌면서
너무 힘들게 됩니다

그의 고백입니다.

"다 내려놓고 오직
기독교인 사장을 선택했는데
잡은 것이 썩은 밧줄입니까?"
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했답니다.

오직 수익 창출과 악행을
보면서 끝까지 기도하면서
기다렸는데 돌아오지 않아서
돌아서게 되고 그 회사가
소송을 걸고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것은 자신의
고모가 부모역할을 했는데
대리법적으로 오고 가면서
하나님께 돌아오게 된것입니다.

영혼구원을 위해
고난을 주신것에
감사하게 되면서
잘 정리해 주게됩니다.

결국 일인 기획사로
시작하게 되면서
목사님과 예배드리게
되었고

그때 목사님께서
"하나님이 가라고
 하면 가라"
이 말씀에
경험이 없지만
순종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응반8집에
"내려놓음"을
발표하게됩니다.

지금은
2013년
 9월 이후
블루프린트
 뮤직 소속이다. 

이수영씨가 전도했던
탈렌트 서민정씨의
간증을 들어보면
하나님은 놀랍게
역사하시게됩니다.

서민정씨가
2004년 SBS 라디오에서
 DJ를 하고 있을 때
그의 프로그램에
가수 이수영씨가
출연하여 처음 만나게 되었다

 그날따라 이수영씨가
아름다워 보였기에
그 비결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이수영씨는 하나님이
다 해주시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예전같았으면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비웃을 지도
모르겠지만
그날만큼은 알지도 못했고
 알수도 없었던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주셨을 것
같은 확신이 들었다.

방송중 광고나 노래가
 나올때마다 이수영씨에게
 하나님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주었는지를 물었다.

 이수영씨는
이번 주일 우리교회
한번 같이 가자고 제안했다.
그래서 함께 분당
 지구촌교회 예배에 참가했다.

하지만 설교내용이
귀에 들어오지 않고
찬양할때마다
사람들이 손을 드는
모습도 어색하고 무서웠다.

그래서
몇번 예배를 참석하다가
 이수영씨의 전화를
피하게 되었다.
 이수영씨는 마지막 음성
 메세지를 다음과
같이 남겨주었다.

 "너를 통해 다시
겸손함을 배우게 된다.
네가 나에게
하나님에 대해 질문할때
나는 전도할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으로 마음이 들떠있었는데
 하나님은 다시 들뜬
 내마음을 내려놓게 하신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기도뿐이라는
 말씀을 주셨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하나님은 한번 시작하신 일은
 절대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나의 임무는 여기까지이지만
다른 사람을 너에게 붙여주셔서
 더깊이 하나님을 알게 하실거야.
그때까지 기대하고 기도를 할께"

그후에
사랑과 야망이라는
드라마를 찍으면서
 이유리씨를
만나게 되면서

결국 서민정씨는
예수를 믿게 되었고
 거침없이 하이킥을 통해서
인기도 얻고 미국에서
결혼해서 예수님을
증거하게 됩니다.

이수영 커플은 
 다니는 교회
지인의 소개로 만나
 1년 가량 교제한 끝에
 부부의 연을 맺게 됐다.
 
 이수영은
 예비 신랑을
 “내가 항상 기도해오며
 꿈꾸던 분”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하나님은 한 영혼
한 영혼의 구원을 위해
고난을 통해서 이지훈을
통해서 이수영씨가 예수믿고
또 서민정씨가 예수믿고
참 하나님은 멋진분 같아요.

하나님께서 우리들통해서
죽어가는 영혼들을 살릴려고
잠시 어려움과 고난이 와도
더 큰 하나님의 계획이 있답니다.

고난을 당당하게 기도와
말씀으로 붙잡고
지금도 하나님께 나오지 못하는
영혼들을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기도하도록해요.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남양주 추수감사 교회를
 담임하고 계시는 분은 바로
​탤런트이셨던
 이진우 목사님이신데요.

 한세대학교를 졸업하고
​ 목사 안수까지 받으며 
본격적으로 사역을
 하고 계십니다.
 
 사모님은 이응경 씨
탤런트이기도 하지요.

그럼
이진우 목사님은
어떻게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을까요.

집안이 불교 집안이었고
어머님이 불공을
드려 낳은 지식였고
어렸을 때는 부처상이라는
말을 듣고 자랐답니다.

중학교 때는 장래희망이
스님이라고 할 정도이었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잃어버린 자녀를
구원받기를 원하셔서
자신의 펜이었던 분을
통하여 역사하십니다.

​이진우 목사님의 고백입니다.

 2004년
sbs 아침드라마
‘초원’을 하고 있었는데
 미국 뉴저지 주에 사는
  74세나 되신 박형자 권사가
편지와 책 두 권을 보내주었습니다.

당시 권사가
무엇인지도 몰랐고,
누가 장난하나 보다 했습니다.

버리기는 뭐 해서
집에 가져다가
구석에 놔뒀는데,
그로부터
2달 반 후 새벽 2시 반에
벌떡 일어나 앉아
주기도문을 외는 겁니다.

저도 모르게
의아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제가 중학교 때
기독교 학교를 다녔던 거예요.

박형자 권사의 편지에는
“하나님께서 이 선생을 많이
사랑하셔서
아래 구절을 적습니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않음과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시편 1편 3절’ 하나님이
이 선생을 많이 사랑하시며
나한테도
기도 많이 하시라고 해서
축복기도 많이
드리고 있습니다”라고
씌어 있었어요.

그로부터 일주일 후쯤
또 새벽 2시에 자다가
 벌떡 일어나 앉았는데
머리끝에서부터
보호막이 쳐지면서
모든 근심과 걱정,
두려움이 사라지는 거예요.

그날 이후부터
불을 끄고 잡니다.
​그 전에는
 불을 켜고 자야 했습니다.

몇 년 전 어느 행사장에 갔다가
유명한 점을 보는 사람에게 명함을 받았습니다.
저는 손금도 안 본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그 사람 생각이
나서 전화를 했더니
왜 이제 전화했느냐고 그래요.

그 사람이 나라를 위해서
큰 제를 지낸다고 해서 좋은 일한다고
경제적으로도 힘든 상황이었는데도
천만 원을 드렸고, 제도 참관했습니다.

그 후 그 사람이 저에게
불상을 갖다 주기 시작했어요.
 중국 것이다, 북한 것이다 하며
여러 가지를 갖다 줘요.
처음에는 거부했어요.

그런데도 막무가내로
 갖다 줘서 받다 보니까
모아두면 나중에 돈이 되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 나중에는 또 없느냐고
그래서 집에 한 방
가득히 많은 불상이 있었어요.

어느 날 자다가 깜짝 놀랐어요.
딱 소리가 나면서 불똥이 좌측에서
우측으로 튀면 눈이 번쩍 떠져요.

새벽에. 깜짝 놀라요.
그런 다음 무서움이 생기고.
불상이 있는 방을 보면
아무렇지도 않다가
내 방에 오면 무서운 거예요.

그때부터 불을 켜고 잤어요.
굉장히 무서웠습니다.

그리고 머리와 눈과 허리를
쇠꼬챙이가 찌르는 것 같은 통증이 왔어요.

어느 날 안 되겠다 싶어
가져가라고 해서
트럭으로 네 차인가
다섯 차를 가져갔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악마
소굴에서 살았던 것 같아요.

어느 날 미국에서 편지를 보낸
박형자 권사님이
국내에 오셔서 전화를 하셨어요.

그때만 해도
 좀 이상한 사람 아닌가,
사기꾼이 아닌가 생각했어요.
70살이 넘은 분인데도. 

어느 날 TV를 보고 있는데
제가 딱 나오더래요.
그때 하나님이
음성을 주신겁니다.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
편지를 보내라” 그러셨대요.
나는 모른다고 하자,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대로 하여
소포를 보낸 거예요.

편지를 어떻게 보냅니까 ?
그러니까 편지지를
책상 위에 놔두고 기도하며
네가 느낀 대로 써라
그래서 편지를 쓴 거예요.

저는 이 편지를 받고서도
술 담배를 많이 했고,
권사님 만나 말씀을 듣고
자다가 벌떡 일어나
주기도문을 하는
그런 과정에서도
하나님을 전혀 몰랐어요.

그러다가 어느 날
 하나님이 예비해 놓은
이응경씨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존재를
어렴풋하게 느끼던 그는
이응경 집사의
안타까운 사연을 접하게 된다. 

19세의 어린
나이에 결혼했던
이응경 집사의
삶은 시련의 연속이었다.

 전 남편과 14년간의
결혼생활은 결국
이혼으로 마무리됐다.

친정에 돌아온
이응경 집사에게
또다시 시련이 찾아왔다.

아버지가 혈액암
선고를 받은 것이다.
무당이 접근해왔다.

함께 절을 짓자고 했고
‘굿을 하면 아버지가
살 수 있다’는 말로 꾀어
수천만 원을 갈취했다.

이런 이응경 집사의
상황을 알게 된 이진우 집사는
법당을 찾아가 모든
집기를 끄집어내어 불 질렀다.

이응경 집사와 함께 기도하며
그녀의 회복을 전적으로 도왔다,
만난 지 40일 만에 이진우 집사가
프러포즈했고 이들은 결혼에 골인했다.
​ 
당시 두 사람은 각자
아들과 딸을 데리고
재혼 가정을 이뤘다.
이들은 3년 전부터
교회에 출석했다.
​ 
목사님이 7개월간
 일주일에 한 번씩 심방을 오셨고,
 집안을 70일
 여리고를 돌게 하셨어요.

 그리고 7개월 되는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때
 가족 모두 세례를 받았습니다.

목사님이 심방 오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주셨어요.

“네(이진우)가 고집이 세니까
너에게 직접 임하리라.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하라.
 내가 너에게 직접 역사하리라”  

이진우 목사님의 고백입니다.

제가 40일 후에 방언이
터지면서 환상을 본 거예요.
목사님이 보니 제 안에 있던
전봇대만 한
구렁이가 쑥 나가더래요.

하나님을 만난 이후에도
위기는 찾아왔다.
지난 5월 이진우 집사가
뇌출혈로 쓰러졌다.
평소처럼 교회에서 간증을 하던
중 갑작스럽게 어지럼증을 느꼈다.

“대전 중문교회에서
간증을 할 때였는데
 갑자기 어지럽고
구토 증상을 느꼈어요.

가까스로 간증을
마치고 단상에서
내려와 인근 병원을 찾았죠.

최근 몇 달간 드라마
촬영에 교회활동까지,
너무 무리해서 그러려니 하고
그날 밤을 병원에서 보냈어요.

서울로 올라와
다시 병원을 찾았는데,
MRI며 CT 촬영을 하더니
 ‘뇌출혈’이라고 하는 거예요.

저나 집사람이나 깜짝 놀랐죠.
바로 수술실로 들어갔는데
수술이 끝난 뒤 의사의
첫 마디가 ‘기적입니다’였어요.

뇌출혈이라는 게 말 그대로
뇌에서 핏줄이
 터져 흘러내리는 건데,
제 경우는 피가 굳어 있어서
그 덩어리를 살짝
떼어내기만 하면 됐던 거예요.

덕분에 수술 시간도 보통은
네다섯 시간이 걸린다는데
저는 1시간 50분 만에 끝났어요.

의사 말이 피가 자연스럽게
굳었다는 것도
믿을 수 없을뿐더러
뇌출혈이 시작되고
하루가 지났는데도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건 ‘기적’이라고
하더라고요.

뇌출혈로
반신불수가 되거나
언어장애가 오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아무런
후유증이 없거든요.
분명 하나님이
지켜주신 거라 생각해요.” 

 이진우 목사님은 이때부터
주의 종으로 가기로
결심하게 됩니다.

그의 고백입니다.

 “3년 전 뇌출혈로
수술을 받고 건강을 되찾은 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
목회자의 길을 걷기로 했다"라며
“앞으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성실하게 목회를 해 나갈 것”
이라고 말했다.
​ 
이진우 목사님는  결혼 후
전원생활을 하기위해
산과 강을 끼고
있는 한적한 팔당리 마을에
땅을 마련했는데

 2005년 이응경 씨와 결혼한 뒤
2층 집을 지어 살다 
1층에 교회 예배당을 만들었다.
​이곳이 지금 사역하고
계시는 추수감사 교회입니다.
 
그분의 고백입니다.

“돌이켜보니 모두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땅 구입과 교회 개척, 감사예배까지
모두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우리 부부는 하나님이
이끄시는 대로
순종한 것밖에 없어요.
하나님께 순종하니
원하는 것을 주셨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의지하니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시고(출 13:21),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여주신 것
(출 16:12∼31)처럼 말입니다.”

 실제 이진우 목사님의 설교를
들어보면 이전에 연기자이셨는가
할 정도로 너무 열정적으로
하나님의 사역하시는 것을 보면서
기쁨과 감사가 넘칩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시며
약속하신 언약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어떤 환경과
상황 속에서도
결코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성품과 살아온
인생을 잘 알기에
꼭 알맞게 인도하시고
응답하시며 가장
멋지게 예수 이름을
증거하는 축복의
증인으로 쓰실 것을
믿습니다.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2014 MBC연기대상
시상식에서 '왔다 장보리'로
대상을 수상하며

 "사랑하는 우리
남편 정말 감사하다.
힘들고 어렵지만 함께
오래 오래 행복
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전한
탈렌트 이유리의
신앙고백을 나누고자 합니다.

영화와 드라마를
23편이상 출연하며
오랫동안 내공을 쌓았는데요.
 
그녀가 지금의
신앙생활을 하기까지
뿌리깊은 불교 집안의
높은 벽이 있었습니다.

어느 정도였느나 하면
그의 차에 늘 불경을
담은 cd가 있을 정도였답니다.

그의 고백입니다.

"저의 집안은
대대로 불교집안이었어요.
어느 누구도 안 믿으시고,
할머니와 할아버지께서는
안 좋은 것들을 믿으셨는데,
하나님께서 저를 구원해 주셔서
오늘 이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1남3녀중
막내딸로 태어난 그는
다른 사람과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는
외향적인 성격이였지만  

또한 내성적이고
상처를 많이 받아서
혼자 있는 것을 좋아했고
자신의 울타리에 갇혀서
청소년기에는 왕따와
다름없는 시기를 보내게 됩니다.

의외로 그는
미술를 전공했는데
우연히 오디션을
보게 되었고 그 경험이
너무 좋아서 연기속을
빠져 들게 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발견하게
된것이지요.

그의 고백입니다.

"연기를 하는데
온 몸에서 떨리는
희열이 느껴지더라구요."

그는
연기자로 해석하고
소화하기 어려울때는
기도함으로써 하나님이
주시는 감당할수 힘을
얻는다고 합니다.

어느 정도냐하면
촬영을 마치고
모니터를 보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발견하게 되고
감사가 된다고 하네요.

이유리씨의
가정구원의 간증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유리씨 집안은
아무도 안 믿으셨는데,
제가 하나님께
4년 정도 계속 기도했답니다.

부모님께 같이
교회 다니자라고 권면하면
소리지르고 너나 가라고 할때에도
꾸준히 식사때 혼자  기도했답니다.

이유리의 고백입니다.

어느 날 아버지께서
저를 기다리시는 거예요.
식사를 안 하시고.
그래서 이왕 하는 거
엄마, 아빠 함께 기도하면
좋겠다고 하니
순순히 들어 주셨어요.

저는 기도 기도할 때
‘하나님, 맛있는
음식을 주셔서 감사하옵고,
이 음식물이
에너지가 되게 해 주시고,
이 음식을 만든
저의 어머니 손길을
기억하여 주세요.’라고
기도했는데,
아버지 눈에서 눈물이
그렁그렁 한 거예요.

저는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딱히 부모님 교회 나오게
해 달라는 그런
기도를 한 적이 없는데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하나님께서 성경에
식사기도 하라고 해서
작은 행동을 했을 뿐인데
하나님께서 그때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마음을 움직여 주셔서

어머니가  크리스마스 때에
교회 등록을 하게 하시고,
세례를 받게 하셨어요.

어느 날
기도하고 성경을 보는데
언니가 ‘네가 지금 그럴 때냐.
영화보고, 연기연습 할 때인데
성경말씀만 볼 때냐’고
다그쳐서 굉장히 상처를 받았어요.

그런데
한 달 후 언니가
자기도 교회 나가야
되겠다고 하는 거예요.

언니는 얼마 전
하나님을 믿게 되었고,
당시 저는 몰랐지만,
제가 한 작은 행동들을 통해서
성령님께서 역사해 주시고
계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유리씨가
처음 신앙생활했던
고백입니다.

 2003년 1월에 친구가
교회 가면 좋다고 하여
나도 한 번 가볼까 하고
교회에 나가게 되었고,

그때 그녀는
인생에 정답이
있을 것 같은데
도무지 알 길이 없어서
철학을 공부할까 생각하던
무렵이였답니다.

친구가 사 준
성경책에서
주기도문을 읽게 됐어요.

‘시험에 들지 말게 하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그 말씀을 읽고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는 거예요.

제가 살아온
환경이 악했었나 봐요.
이유도 없이 마음이
아프고 괴로운 거예요.

예배를
드리러 들어갔는데
왜 이제야 불러주셨느냐는
듯이 앞으로 넘어져서
주님 앞에 엎드렸어요.

그때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고,
세상 속에서 채울 수 없던
가슴에 뻥 뚫린 구멍을
하나님이 사랑으로 채워 주셔서
하나님을 만나자마자
사랑하게 됐어요.

교회를 다니기 시작한후에
이상하게 주일만되면
촬영이 있어서 괴로웠답니다.

몇 주 동안
주일을 못 지키고
 어느 날 차 뒤에 있는데
갑자기 눈물이 막 나오는 거예요.
아무 이유도 없이 너무 힘들고….

매니저에게 가까운
교회에 가자고 했어요.
예배도 없는데.
교회에 발만 들여놓았는데
하나님의 사랑이 확 느껴지는 거예요.

제가 회복되는 것을
느끼기 때문에
예배드리지 못할 때는
금요철야예배라라든지,
그렇지 못할 때는
제가 섬기지 않은
교회라도 가면
하나님이 늘 계시는 거예요.

성전에 들어가기만 해도
저를 만나 주시고,
찬양만 들어도
하나님이 만나주셔서
밥은 굶고 잠은 못 자도
꼭 하는 것은 기도와 예배입니다.


이유리씨가
 가장 좋아하는 찬양인
 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 자’를
즐겨 부르는 것도
큰 것에서부터 지극히
작은 것까지
세밀하게 응답해주시는
하나님이 마냥 좋기 때문이다.

새로운 인생에
 2막장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는데요.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강력한 성령의 체험을 하면서
새로운 2막2장을
 써나가기로 했습니다.

한국 교회를 위해
저의 달란트를 아낌없이
드리고 싶은 소망이 생겼어요.”

작은 도움이라도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가려 한다.

또 조연 주연,
심지어 엑스트라든
배역의 크고 작음을
더이상 개의치 않는다.

“최근 하나님이
환상을 보여주셨어요.
손이 3개나 되더라고요.

 원래 두 손에다
야망의 끈을 잡고 있는
한 손이 더 보였어요.
잘못된 손은 반드시
제거해야죠.”

이유리는 배우자를
위해 기도를
하기 시작합니다.

"존경할수 있는 사람이요.
그리고 저를 하나님께
더 끌어 줄수 있고
멘토가 되어 줄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사람은
완벽할수는 없지만
하나님을 만나면
그 부족한 부분이
조금씩 완벽해지는 것을
느끼는데
그런 사람이면 좋겠어요."

그리고 드디어
하나님께서 그런
남자를 만나게 하십니다.

이유리의 남편 조목사는
원래 잠실에 호산나교회라는
작은 교회에 전도사를 했고
이유리보다 나이가
12살연상인데요.

이유리는 이전에는
큰교회를 다녔는데 
그쪽에는 일꾼도 많고
더 하나님께
헌신할곳을 찾다가

 크지 않는 호산나교회를
다니게 되는데
그곳에 하나님은 선물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호산나교회의
목사님이 여자목사이고
지금의 이유리
시어머님 되시죠

여목사님을 따르고
좋아해지다가
그분의 아들을
만나게 됩니다.

이유리의 고백입니다.

"어느날 스쿠터를 탄
그분이 헬멧을 쓰고 있는데
너무 멋져보이더라.
내심장이 시동이 걸렸고

내 스타일은 아닌데
장갑을 터프하게 끼고
헬멧을 쓴 뒤 시동을
거는 모습에 반했다."

 그때부터
짝사랑이 시작됐고
놀이동산에서 남편이
짝짝이로 신은 양말을
보면서 평생 챙겨주고
싶어서 먼저 고백을 했는데

남편은
여자로 보이지 않고
여동생으로 밖에
안 느껴진다는 말에
그전에는 청바지만 입던
여자가 여성스러운 옷으로
변신하기 시작했고

남편 집안에서도
나이차이와 연예계 쪽과
목회쪽이 달라서 반대를
했답니다.

1년동안
꾸준히 사랑하는
변함없는 마음에
결국 받아주시고
결혼에 공인하게 됩니다.

이유리는 삶속에서도
예수님을
증거하는 삶을 살고자
남보다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고,최선을 다해
NG없이 연기하려고
노력을 한답니다.

몸관리를 위해서도
꾸준한 운동을
위해서 수영과
헬스를 쉬지않고
정서적인 연기자가
되기위해서
색소폰과 무용도
배운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반드시 가족구원과
삶의 응답으로
인도하신줄 믿습니다.

이유리씨처럼 자신의
달란트를 발견하고
성실하게 준비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최고의 작품답게
최선을 다해 사는
예수의 증인되시기를
축원합니다.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어린 시절
목회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는 이성재집사는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
출신의 배우입니다.

MBC 24기 공채로 TV 드라마
<두 여자의 사랑>을 통해
배우생활을 시작한 그는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
<주유소 습격사건>
<신라의 달밤>, <공공의 적>등
우리에게는 영화배우로
많은 기억하고 있죠.

모태신앙이면서
 주일성수만은 훈련이
잘되어있습니다.

어느 산속에서
촬영을 해도
꼭 지킨다고 하는데요.

어느날은
지방 촬영을 같은데
 교회가 문이 닫히어
있어서 결국 혼자 가서
기도하고 오기도 했답니다.

고3때 고외를 했는데
과외 선생님이
2시간중에 1시간은
말씀을 전해주어서
결국 신학교 간다고 해
집안이 뒤집힌적이
있어서 목사님과
상담을 하기도 했답니다.

그때 목사님께서 꿈이나
환상을 통해서나
말씀해 줄수도 있지만
조금 지나면 생각을
바꾸신다고 해서
기다렸는데
일주일후에 그런
생각이 없어지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이구나
깨닭게 되었습니다.

신학교의 꿈을 접고
막연하게
문과나 이과가서
직장이나 다니고
살고 싶었는데
연기학과에 가게되면서

이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집안분위기도
상상도 못했는데
아버지는 맘에 들지는 않았지만
신학교보다는
낫다고 해서 재수하고
결국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사실 영화배우가 되고
싶었지만 할수 있는것이
무엇인가 하다가
방송 공채로 들어가고 싶어서
3번째 만에 들어가게 됩니다.

하나님은 즉시
응답해주시지는 않는데
결국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처음방송에서는
2년동안 방송에서 한달에
2번에서 3번나간후에
결국 드라마에 케스팅되고
2편의 드라마가
시청률이 저조하게 됩니다.

처음으로 시사회때
공공의 적에서 아버지를
모시고 난후에
아버지가 하신 말씀
"다시는 그런 영화하지
말라"고 하시였답니다.

영화는 잘되면 감사하고
안되도 더 감사한다는 이분은
다시 하나님께 부르실때는
언제나 말로 듣지 않으니
때리시게 하신답니다.

일의 즐거움도 잃고
경제적인 문제도 오고
교회의 권사님들의 모습처럼
평안을 소원을 했는데

어머님이
 영성훈련원을 초청해서
가게 됩니다.
가서 신앙생활이 바뀌게 되고
성령충만과 방언을 하게되면서
하나님의 은혜속에서

몇가지 결단을 내립니다.
첫째는 담배와 술을 끊게 되고
둘째는 새벽기도를 나가게 되고
셋째는 회개가 나오게 됩니다.

그러면서
작은 개척교회를 가게되고
집사님으로 섬기게 됩니다.

처음 교인이 두세명이였고
옥수동 월드미션교회인데

그 교회를 보내시고
말씀훈련과
기도훈련을 통해서
 어린아이수준에서
성숙된 신앙으로 자라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놀라운 일을
준비하시는데
가장 알맞게 나를
교회로 인도하시고
말씀으로 훈련시키는
응답하시는
예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성재집사님은 말씀이
스폰지가 물을 먹듯이
말씀이 쑥쑥들어오게 됩니다.

이전에 차가
 없을 때는 택시로
옥수동까지 다니게 되며
전도를 새롭게 깨닭게 됩니다.

누구를 만나든지
예수를 믿으라고
하는 말이 쉽게 되고
누구를 만나든지
평안하게 전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한번은 목사님이 계속
예수 영접하는
전도를 보면서
자신이 직접 전도하면서
전달했는데
그 기쁨이 가득하게
됩니다.

미용실에 가서도
택시타면서도
보험가입하면서도
온통 예수님을
전달하고 싶다라는
참 멋진 집사님으로
변하게 됩니다.

전도할 목표를
정해서 먼저는
성경책을 사고
전달하면서
한달에 30명을 목표가
되기도 했는데
정말 한번은 31명이 되기도
했답니다.

지금은 3명인 교회가 70명이
되면서 축복의 집사님으로
섬기고 계십니다.

개척교회에 사람이 없으니
직접 운영위원장으로 맡고
제정 위원장이 그만 두어
하게 되고 주일학교 교사가
부족하여 하게되고
새신자반도
부족하여 하게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쓰임받고
있답니다.

2008년부터
하던것들이 안되면서
어려사건으로 고난이 오면서
긴 공백 기간으로 물질에 어려움도
당하게 되고 집안에 있는 물건까지도
내다 팔게 되고 차와 집까지 내어놓고

집이 근저당잡히고
남에게 보증서준것까지 밀려오고​
IMF의 경제 위기까지
곂치면서 할수있는것은
오직 기도 뿐이였답니다.

꼭집이 나가야 하는데
나갈수 없는 상황이 되니까

성경 인물처럼 해보자
하면서 여호수아처럼
여리고성을 7번 도는 것처럼
하면서 여호수아처럼
여리고성을 7번 도는 것처럼
집을 돌게 되었답니다.

월요일부터 집을 차로 돌로
7일까지 7번돌고 산에 가서
마지막에 소리를 질렸고
다음날 하나님께 집을
팔게 해주신것 감사합니다라고
미리 큰 헌금을 드렸는데

그 다음에 팔리게 되고
체험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 하나님께 받은줄 알고
믿고 생활을 실천하면
반드시 주신다고 고백합니다.

이성재 집사님의 고백입니다.

"제가 하는 연기는 아르바이트이고
세계선교가 제 본업입니다."
라고 말합니다.

이성재 집사님은 간곳이
월드 미션교회이고
국내이든지 국외이든지
한 영혼을 살리는 일에
달란트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원합니다.

이성재집사님은
고난을 통하여서
작은 교회를 만나게 되고
특별과외를 통해서 말씀과 기도로
회복되면서 교회와 현장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하는 그 마음이
하나님이 보실때에
너무 멋지고 아름답게
느껴지실것 같네요.

우리들에게 있는
하루 하루의
삶이 어쩌면 빨리
기도응답이 없는것 같고
여러고난이 곂쳐오니
힘들고 괴로울찌라도
하나님은 우리가
이해할수도 없는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1965년 신춘문예에
희곡 "성야"로 등단하여
작가,연극배우
그리고 방송인으로
살아온 오혜령씨를
소개합니다.

극작가 오혜령 씨는
연세대 영문과를 졸업 후
모교인 이화여고에서
교편생활을 해왔습니다.

그러던 중
 조선일보와 경향신문의
신춘문예 희곡 부문에
잇달아 당선되며
등단 한 후 극작가,
라디오 DJ 등
만능스타로 이름을
높였습니다.

특히 1960~70년대를
풍미했던
'별이 빛나는 밤에'서
DJ로 방황하는
청춘들의 '대모'로
활동한 것은
너무나 유명합니다.

하지만 한창나이인  
30대의 젊은 나이에
까마득한
절망의 나락으로
추락하게 됩니다.

1978년도에
 ‘위암과 임파선 암’이라는
청천벽력의 진단을
받게 되었고
의사는 3개월을 넘기기
힘들다고 판정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숱한
질병 속에서
용케 살아왔는데
그것도 모자라 중년에
위기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기독교인으로
성장해왔지만
하나님께 항변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진리를 추구해 온,
제게 왜 매를 드십니까?

당신이 살아 계신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이 고통 중에
말씀해 주시지 않으면,
더 이상 믿지 못하겠습니다."

그렇게 원망하는 가운데
통증은 24시간 동안
단말마로 다가왔습니다.

너무 고통스러워
차라리 죽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달력의 숫자에 빨간
색연필로 빗금을 쳐
나갔습니다.

예정된 죽음의 날짜인
6월 26일에 빗금이 쳐진지
며칠이 더 지났습니다.

물만 먹어도 토하고
혈변을 보는 고통이
계속됐습니다.

어느 날 정신이
몽롱해지기 시작하자
그때 어디선가
그녀의 목덜미를 낚아채는
강한 손길이 느껴졌고 순간
방바닥에 나동그라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삶과 죽음에
개입하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을
원망한 것에
​대해 두려움이
엄습했습니다.

지난날 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으며,
며칠 동안 눈물로
회개했습니다.

 이제는 육체적인
 암이 문제가 아니라
영적인 암이
치료받지 못하면
‘구원이 없다’라는
두려움으로 가슴을 쳤습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난 어느 날,
기도와 찬양으로 예배를 드리던
중 온몸에 오한이 덮쳤습니다.

‘아 이제 부름받는구나’
죽음을 예감하면서
이불깃을
잡아당기는데 웬일입니까?

겨드랑이의 임파선
암 덩어리가
만져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자세히 만져보니
멍울이 없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어깨에
복숭아씨만 하던
멍울도 사라져 버렸습니다.

또 한 복수로 차올랐던
배가 푸~욱 꺼졌습니다.
그동안 가빴던 숨도
고르고 평안해졌습니다.

 너무 놀란 나머지
‘주님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너무 감사한 나머지
서원기 도를 올렸습니다.

‘덤으로
얻은 인생 앞으로
소외된 자들과
함께 살겠습니다.’

그런데,
다시 9년 전에
‘관상 대동맥경련증’이란
희귀병에 걸려 지금까지
투병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을 정도로,
그녀는 질병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몇 번씩이나
찾아온 질병과
죽음의 고통 앞에서
욥과 같이 간절하게
울부짖었다고 합니다.

     그때마다 그녀는,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도움의 손길을 순간
순간 경험하면서,
 
남편 권오정 목사와 함께
경기도 화성군 비봉면에
'평화의 집'을
개원한 후 무의탁 노인과
결손가정 자녀들을 돌보며
헌신적 사역을 오늘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오혜령씨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제가 삶의 에너지를 받는 것은
잠이나 먹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자신의 육신을
지탱하는 방법일 뿐입니다.

저의 힘의 활력은
오직 주님을 의지하게
하는 기도입니다. 

그분 안에 거하는
자체만으로도 한없는
평안을 경험합니다.
 
​절망의 뒤편에 희망의 빛은
이렇게 실제로 존재합니다.
육신의 구원을 넘어 영혼 구원에
초점을 맞출 때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됩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소망교회에서 장로님으로
섬기고 계시며
건국대학교 교수인
류태영박사님의 간증입니다.

한 평의 땅도
소유하지 못한
머슴의 아들로 태어나
집안에서 유일하게
국민학교에 입학했고,
남들보다 늦은 나이인
열 여덟 살에 비로소
중학교를 졸업했다.

 그리고는 무작정 상경,
구두닦이, 신문팔이,
아이스 케이크 행상 등을 하며
겨우 야간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찌들어지게 가난했고 장래를
보장받을 수 없는
암담한 현실이었지만,
 
그는
구두를 닦으면서 생활하던 중
그는 우연히
 '유학'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가 '유학'이
뭐냐고 묻자

"외국에 나가
훌륭한 선생들 밑에서
공부하는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때부터 그는
유학의 꿈을 그리기
시작했다.

당시의 상황으로 볼 때
그것은 너무도
허황된 꿈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는 어린 시절부터
그의 삶을 지탱해준 좌우명이었던
성경말씀 빌립보서 4장 13절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라는
말씀에 의지해 기도하며
꿈을 구체화시켜 나갔다.

'어느 나라에 가서 공부할 것인가.
무엇을 배울 것인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가난한 농촌을
잘살게 하는 길이 무엇인가를
배우기 위해 선진 농업국가인
덴마크로 가자"라는 답을 얻었다.

이제 그 꿈을 현실로
실현시킬 일만 남은 것이다.
그는 열심히 기도하며
한국의 농촌문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그리고는
한국의 농촌현실과 함께
그의 사상을 피력한
다음 덴마크에 가서
공부하고 싶다는 내용의 편지를
영어로 완성시켰다.
이제 편지를 부치는 일만 남았다.

그러나 누구에게 어떻게
보내야 할 것인지가 문제였다.
고민하던 중 '그 나라의 가장
높은 사람에게 보내라'는
마음의 확신이 들었다.

가장 높은 사람이 왕인지
대통령인지도 몰랐기 때문에
도서관에 가서 확인한 다음
편지의 겉봉투에 이렇게 썼다.

'프레드릭 9세 국왕.
코펜하겐. 덴마크' 
주소도 없이 그렇게만
쓴 편지를 부치고 난 후
약 40일쯤 지난 어느날
편지 한 통이 날아들었다.

그것은 바로 덴마크의 국왕
보좌관으로부터 온 것이었다.
며칠 후에는 덴마크의
외무성으로부터 편지가 왔다.
왕복 비행기표까지 동봉되어 있었다. 
정말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덴마크의 국왕이
무엇을 보고
구두닦이 청년을 초청한단 말인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건국대학교 설립자
유석창 박사와의 만남을 통해
류태영 박사는 농촌학습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를 할 수 있었다.

강의와 농촌방문을 통해
실질적인 개발 청사진을 제시했다.
이후 류 박사는 청와대 농촌발전
담당관실의 실무책임자로서 1970년대
새마을 운동을 추진하는데
일조하게 된다. 
 
류태영 박사는 자신의
자전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역경 속에서 갖은 시련을 겪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용기를 주고
힘이 되어 주게 되었습니다.

환경, 그것은
원망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어려운 환경에 처했을 때
우리는 두가지 선택을 할 수 있다.
맞서서 극복할 것인가,
아니면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절망할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어떤 환경도
문제도 우리가 꿈을 꾸고
믿고 나가면 이룰 줄 믿습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립보서 4장 13절)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인천 주안 장로교회
나겸일 원로 목사님.
​  약 30년 전
교회가 한참 부흥하던
 어느 날 갑자기
목사님께서 몸의 상태가
안 좋아서 병원에
가보니 급성 간암입니다.

왜 몸이 이지경이 되도록
계시다가 오셨습니까.
그래서 또 다음 병원을 가보는데
그다음 병원에서도
똑같은 진단을 내립니다.

이제 우리가 손대서
치료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세 번째로 갔던
병원이 세브란스 병원입니다.

그랬더니 한
삼일을 못 넘기겠습니다.
그러니 집에 가서
쉬고 계십시오.

아니 지금 사람은
숨이 다 넘어가기
전이라도 숨만 붙어있으면
병원에 입원하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인데
냉정하게 집에 가서 쉬고
죽음을 맞이하라니까 그래서
떼를 써서 병원에 입원을 합니다.
 
금요일 날 저녁입니다.
얼굴이 새까매지고
복수가 찹니다.
본인은 주의 종으로 죽으면
천국 갈 것이니까 죽는 것이
두렵지 않았지만,
홀로 아내를 남겨놔야 되고

아홉 살, 여섯 살 난 어린 두 딸이
옆에서 아빠 죽지 마,
죽지 마 우는데
​너무나 불쌍해요.
교회 성도들을 생각하니까
참 마음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말씀 붙잡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합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제 간을 창조하신 하나님,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제 간이 나을 줄 믿습니다!
제가 죽으면 하나님 영광 가립니다.
하나님 영광 위해 살려주세요!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 53:5)‘는
말씀을 믿습니다! ’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마 8:17)는
말씀을 믿습니다! ’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약 5:15)’는 말씀을 믿습니다!”
 
주일날 목사님이 위독하셔서
곧 임종하실 정도까지 위독하다는
말씀을 듣게 되니까 1부부터 5부까지
모든 성도들이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저녁예배로 7시 반에 모였는데
많은 성도들이 나와서 본당에서
교육관 그 부속 성전까지 다 채워서
밤새 워 다음날 새벽까지
성도들이 떠나지 않고 기도를 합니다.

그런데 상황은 더 악화되었어요.
주일 저녁에 간호사가 와서
상태를 보더니
‘이제 삼십분 못 넘기겠습니다.’
흰 천을 가져다가 ‘이제
운명하시면 덮으시기 바랍니다.’
의사 두 사람이 차트를 들고 와서
이렇게 들여다보더니
 ‘이거 다 됐네.’
 
 성도들이 교회서 밤새부터
우리 목사님 살려달라고
부르짖어 기도하고,
또 옆에 사모는 내 남편
살려달라고 기도하고.
아이들은 집으로 데려갔어요.

 아버지 임종하는 것
안 보여 주려고 데려가고.
그런데 그 밤 12시가 지나가면서
이제 숨이 다 된 순간에
갑자기 배가 꼬르륵하더니,
탁하고 뭐가 혈변이
쏟아지기 시작하면서
시커먼 핏덩어리가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하루에 세 번씩 나흘 동안
열두 번 혈변을 쏟고 난 다음
남산만 한 배가 쑥 들어가고
그다음 회복이 되기 시작합니다.

그를 담당했던 주치 의사
김병수 박사는 말합니다.
“저는 의사로서, 의대 교수로서
이런 기적은 처음 봤습니다.

목사님의 경우는 1%도
장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엔 병원 측에서
목사님을 받으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목사님을 받는다는 것은 곧
시체를 받는 것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의학적으로 설명이 안 됩니다! 이건
‘하나님께서 고치셨다’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로부터 하나님께서
건강을 회복시켜 주셔서
 건강한 모습으로
교회를 부흥시키게 해 주시고
십만 성도를 이루고 큰 교회를 짓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면서 주의 일
하다가 은퇴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더니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병상에서 목사님도 믿었고
성도들도 믿었고
함께 기도하니까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기도는 불가능을 가능케 합니다.
모든 문제와 어려움을 무너뜨리는
위대한 능력이 바로 기도인 것입니다.
 
믿음의 기도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
놀라운 역사를 일으켜 주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막 11:24)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MBC 뉴스데스크와
​생방송 오늘 아침
최윤영의 세계 다큐 기행
지금은 MBN의 아궁이까지
대표적인 아나운서 출신이며
사랑의 교회에 다니고 있는
최윤영자매님을 소개합니다.

최윤영아나운서는
 4대째 믿는 집안이였답니다.
외가쪽은 3대재 이며
어머님이 365일 기도하신답니다.

모태신앙이지만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난것은
중학교 찬양집회때입니다.

너무 감격스럽고
주체를 할수가 없었고
지금은 내옆에 계신 분을 느낍니다.
아이처럼 물어본답니다.

고교시절 선배 아나운서가 쓴
‘9시 뉴스를 기다리며’를 읽은 뒤
 아나운서의 꿈을 키운 그는

대학 2학년 때인
1998년,여성용품
CF 모델로 방송계에 입문했다.

 화장기 없는 맑은 모습으로
시청자들에게 호감을 주었고
한 방송사가
그녀를 리포터로 기용했다.

방송이 나에게
맞는것인지 알기위해서
대학교4학년때 교육방송의
리포터로 시작했습니다.

7분나가는데 아침부터
저녁까지 해서 너무 힘들고
적성에 맞는것 같지 않아서
울기도 했답니다.

이것 내길이 아니다라고
확신했고
어학연수를 신청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감되었다는 사실에
하나님께 원망을 했고
그때 한밤의 TV 연애에서
같이 하자고 연락이 왔습니다.

방송7분밖에 나가지 않았는데
그걸 보고 부른것입니다.

그리고
 방송 아나운서 시험을 보고
합격을 했는데
광고했던것 때문에
취소될 위기에 처했고
너무 힘든 상황에서
 힘들기도 했고
결국 MBC입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도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왜 광고를 하게해서
이렇게 힘들게 하는지요.

나중에 알게된것은
MBC전에 다른곳에
같다면 더 힘들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됩니다.

그의 고백입니다.

"주님이 어려움을 통해서
원하시는 곳으로 이끄시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항상 주님은 최선의 결과를
주셨습니다.

제가 거만해질까봐
하나님이 과정을 주시고
기도하게 하시고 활짝​ 문을
여시고 응답해주시는 분이십니다.

저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은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갈려면
고난을 주시고 주님께 맡기면
좋은 길로 응답하십니다."


자신의 힘으로 한것은 없었고
하나님이 하셨답니다.
나의 것보다 항상
더 많이 주신분입니다.

한번은
2002년 월드컵 방송을 하면서
“송종국 선수가
방송에 출연한 적이 있어요.

그때 송 선수가 골 세리머니로
무릎꿇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제가 ‘은혜스러웠다’ 고
​저도 모르게 하나님을
향한 속마음을 내비쳤나 봐요.”  
멘트를 했는데
그때 항의전화가
빗발치기도 했답니다.

결혼을 하면서
 MBC아나운서를
그만 두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아이의 엄마로써
출산후 3개월을 쉬지 못하고
방송에 나갔답니다.

그런데 아이가 너무 엄마를 찾아서
그만 둘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엄마가 눈앞에 사라지면
너무 불안해 하고 힘들어 해서
결국 1년 휴직을 하다가
결국 사표를 쓰게됩니다.

그때의 상황은 힘들었지만
지금은 하나님이 준비하신
단계를 알게되었답니다.
 
그런데 육아가 넘 힘들고
어려웠다고 합니다.

거의 맨붕상태에서 ​ EBS에서
섭외요청을 했는데
부모라는 프로그램입니다.

그의 고백입니다.
"벼랑 끝에 서있는데
하나님께서
다리를 쫙 놓아 주시면서
“이리로 걸어가지 않을래?”
하는 기분이었어요."
그 계기로 육아에 도움을
받게되고 넘 좋았답니다.

이젠 TV에 나오는 내모습이
너무 좋다는 딸에 맞게
프로그램인 ‘아궁이’
(MBN)에서 연락이 온 거예요.

하나님께서
 미리 준비해주시는데
혼자 불안해 하고 있었답니다.

그의 고백입니다.
"하나님께 푯대를 꼿아라
그럼 길을 예비해 주신답니다." 

선배들이 섭섭하지 하면
저는 주님은 좋은 길로 여시고
인도하신것을 아시기에
이젠 두렵지 않습니다.

롬8:28절에
모든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고 하십니다.
나중에 돌이켜보면
하나님은 최선의 방향으로
인도하신분이십니다.

최윤영 아나운서의
성령충만하는 것이랍니다.

이땅의 젊은이들이
말씀으로 서있길 원합니다.
​“기도는 창이고 말씀은 갑옷이다.
물론 공격용 무기인 창이 중요하지만
갑옷을 입고 있지 않으면
언젠가 이 창이 나를 찌를 수도 있다.
반드시 말씀의 갑옷을 입어라.”
 
그가 좋아하는 성경구절은
 (빌립보서 4장 13절)의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말씀은 항상
암송하는 구절이랍니다. 

지금은 당당하게 멘토가 되어
​젊은이들에게 외칠수 있는것은
어쩌면 최윤영아나운서가
힘들고 괴로워서 울었던
과정을 통하여서
축복의 모델로 쓰시네요.

하나님을 우리가
지금 길이 막히고
어려움이 다가오면
원망하고 불평하지만
하나님은 놀라운 방법으로
길을 예비하시기에
지금은 걱정을 하지말고
믿음으로 감사의 고백을
드리시기 바랍니다.

지금 우리들에게
예수님이 손을 내미십니다.

이시간 손을 잡으시고
항상좋은것 주시는 주님의
품에 거하시기를 축원합니다.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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