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림교회의 원로 목사님이신 김선도 목사님. 책을 쓰셨는데요 <5분의 기적>인데요 6.25 전쟁이 났을 때 김선도 목사님은 북한 황해도 해주에서 해주의학전문학교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의과대학 학생이었어요. 의대생이었어요. 그런데 전쟁이 나니까 강제로 붙들려서 북한군의 군의관으로 입대를 했습니다. 본인은 독실한 크리스천이라 탈출을 해서 남한으로 내려가려고 했는데 기회를 놓쳤어요. 끌려서 전쟁터에 나가게 되었는데 자기는 크리스천인데 이 공산군과 함께 있다가 죽을 수밖에 없는 그러한 위험에 처한 신세가 되었으니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맥아더 장군이 인천상륙작전을 해서 전세가 뒤집혀서 이제 북한 공산군이 후퇴하게 되었는데 ‘야, 이때 기회다.’ 하고 그 부대를 탈출하려고 하는데 옆에 딱 젊은 연락병이 쫓아다녀요. 그래서 자꾸 딴 길로 가는데 자꾸 쫓아옵니다. “군의관님, 그쪽 길이 아닌데 자꾸 그 쪽으로 가십니까?” 그래서 하나님께 맡기고 말합니다. “나는 지금 남쪽으로 내려가서 투항할건데 나랑 같이 가겠느냐?”
만약에 그 자리에서 “안 됩니다. 동무” 하고 꽝 쏘면 죽는 거죠. 그런데 따라가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탈출해서 한국 군인에게 투항을 합니다. 딱 보더니 북한 군인 군의관이 왔어요. 그런데 그를 만나서 그를 면접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모르겠는데 참 놀라운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북한 군인인데, 북한 적군인데 “당신 군의관이니까 우리 군인인 되어서 우리 병사들 다친 곳 돌보시오.” 그 즉시 군복을 벗고 우리 한국 군복을 입고 한국 군인이 되었어요. 국군 1시단 11연대에 입대하게 되었습니다. 그게 보통 일이 아니에요. 5분의 기적이라는데 보통 전쟁터에서 붙잡으면 총살하든지 포로로 끌고 가는데 그 즉시 군복을 갈아입고 북한 공산군이 우리 대한민국 국군이 되어 가지고 참전을 해서 지금 주의 종으로 평생 쓰임 받으시고 이제 은퇴하시고 원로목사님이 되셨는데
이런 고백을 하셨습니다. “나는 청년 시절에 북한군에게 강제 징집당한 의학도였다. 공산주의 체제 안에서 나는 숨 막혀 죽을 것 같은 영혼의 질식을 느꼈다.
나는 신앙의 자유를 찾아 북한군을 탈출했고, 정말 기적같이 5분 만에 북한군에서 국군으로 전환되는 은총을 체험했다. 그 은총의 5분으로 지금까지 살아왔으며, 남은 인생의 5분을 살아갈 것이다. 그 영원한 5분을 체험한 이후, 나는 전쟁 속에서 죽음의 얼굴을 보았고 인간의 종말을 보았으며 내 존재의 나약함을 보았다. 죽음 앞에서 하나님께 살려 달라고 절규했고, 살려만 주시면 하나님께 일평생 헌신하겠다고 서원했다. 그때의 서원이 내 인생이 되었으며 내 삶을 이끄는 목적이 되었다. 의학에서 신학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진 것이다. 육신의 치료를 넘어 몸과 영혼, 인간의 모든 것을 치유하는 목사로 인생의 방향을 바꾸게 되었다.” 하나님이 택하시고 그 놀라운 일을 이루신 것입니다.
엘리자베스 클레페인이라고 하는 아주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던 성도님이 [십자가 그늘 아래]라고 하는 찬송을 지었는데요. 원래 어릴 때 몸이 약했어요. 병약해서 늘 병치레를 해야만 했습니다. 엘리자베스 클레페인이라 하는 이 분 굉장히 몸이 약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주변에 자기처럼 고통당하는 이웃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사랑하고 돌본 참으로 귀한 분이었습니다. 가난한 자, 병든 자를 돌보는 일에 앞장을 서서 최소한의 생활을 빼놓고는 다 가지고 있는 모든 재산을 다 털어서 어려운 사람을 도왔습니다. 급하게 수술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독하다는 얘기를 듣고 그 당시 자신이 꼭 필요하고 자기 재산목록 1호인 말과 마차를 팔아서 그 분을 도와주기도 했습니다. 그 분이 1830년에 태어나서 1869년 39세를 일기로 천국을 가게 되는데 천국가기 1년 전에 주님 앞에 기도하는 가운데 지금까지 이렇게 병약한 자신을 지켜주신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면서 그가 신앙의 고백으로 쓴 찬송이 [십자가 그늘 아래] 입니다. 이 찬송을 그 분이 지어서 고백할 때 하나님의 기쁨, 은혜, 평안이 그 마음 가운데 강물처럼 흘러넘친 것입니다.
(찬송가 415) 십자가 그늘 아래 나 쉬기 원하네 저 햇볕 심히 뜨겁고 또 짐이 무거워 이 광야 같은 세상에 늘 방황할 때에 주 십자가의 그늘에 내 쉴 곳 찾았네
여러분의 쉴 곳이 어디입니까? 예수님의 십자가 그늘 아래인 것입니다. 이 분은 39세로 그의 일생을 마쳤지마는 늘 어디를 가든지 얼굴에 만면에 미소를 띠고 예수님의 사랑의 빛을 비춰서 별명이 햇빛이었습니다. 실제로 자기 몸은 아프고 힘든데도 고통당하는 이웃을 늘 돕기 위해 살았던 그 삶을 보면 하나님의 은혜가 그와 함께 있던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어떠한 곳입니까? 죄 사함과 의의 강물이 넘쳐나는 곳입니다. 거룩함과 성령 충만의 강물이 넘쳐나는 곳입니다. 치료의 강물이 넘쳐나는 곳입니다. 부요와 축복의 강물이 넘쳐나는 곳입니다. 영생의 강물이 넘쳐나는 곳입니다. 오늘 그 은혜를 여러분 모두가 체험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엠마오 도상’이라는 유명한 그림이 있다.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은 렘브란트라는 화가이다. 이 사람은 모든 사람이 원하는 그림을 잘 그려서 큰 부자가 되었다. 그는 가족과 함께 부족한 것이 없이 잘 살고 있었다. 그런데 그 행복이 하루아침에 깨어지고 말았다. 사랑하는 아내가 죽어버린 것이다. 렘브란트는 붓을 내던지고 실의에 빠져 있었다. 그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인간의 죽음이 마지막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다. 예수님을 영접 후 그린 것이‘야경’ 이라는 그림이다. 이 그림이 암스테르담 박물관에 전시되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 값을 물어보았다. 그러나 그는“이 그림은 아내의 죽음을 통해 참 생명이 무엇인가를 체험하면서 그린 그림이기 때문에 값으로 평가할 수 없다”고 했다. 그 다음에 그린 그림은 바로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에게 나타나신 부활의 주님을 그린 그림이다. 그는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무려 18종류의 번역 성경을 읽었다고 한다.
그 그림을 보면 그림 속에서 대화하는 제자나 나무들의 모습 속에서 부활의 약동을 느낄 수 있다.
그림을 완성한 후 그는 “나는 위대한 생명의 비밀을 깨닫고 이 그림을 그렸다”라고 고백했다. 그는 아내가 세상을 떠나는 인생의 허무함과 좌절감의 길목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났고 엠마오 도상의 그리스도를 그릴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실의와 좌절에 빠져 있을 때 부활의 주님은 우리 곁에 서서 우리와 함께 걷고 계신다. 좌절의 길목에서 만난 예수님, 그분은 우리를 새로운 희망과 기쁨의 삶으로 반드시 인도하실 것입니다.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는 광고 카피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2등이 있어야 1등도 존재하는 법입니다. 위대한 2등의 배경이 있었기에 1등의 역사가 이뤄집니다. 1953년 5월 29일 11시30분 뉴질랜드 산악인 에드먼드 힐러리는 33세에 인류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정복했습니다. 그는 모든 산 악인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그런 힐러리가 훗날 이런 진실을 밝혔습니다.
“셰르파였던 텐징 노르가이가 에베레스트 정상을 눈앞에 두고 혼자 오르지 않고 뒤에 처진 나를 30분이나 기다렸습니다.” 노르가이는 셰르파의 역할을 벗어나지 않고 힐러리가 에베레스트를 먼저 정복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었던 것입니다.
배경이 되어 주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초기 기독교의 역사에 주춧돌을 놓았고 신약 성서의 상당 부분을 저술했습니다.
그러나 그 꽃이 피기까지 수많은 동역자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바나바는 아름다운 2인자로 사도 바울의 사역을 적극 도왔습니다.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마 20:26∼27)
나를 딛고 일어서세요! 나를 배경으로 꽃으로 피어나세요! 하늘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이렇게 배경이 되어 주는 사람입니다. 한재욱 목사(강남비전교회) <겨자씨/국민일보>
웰치(Welch)라는 포도주스 (WELCH's GRAPE JUICE)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주스다.
그런데 이 웰치 포도주스가 유명해진 간증이 있다. 이 주스가 대중화 된 것은 웰치의 서원 때문이었다. 웰치는 아프리가 선교사로 가려고 서원했던 사람이다.
그런데 떠나기 전에 신체검사를 해보니 자기 부인이 아프리카 기후에 견딜 수 없는 체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실망을 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기도하는 가운데 새로운 서원을 하게 되었다. 선교사로 가지 못한다면 돈을 벌어서 선교사의 일을 돕겠다는 서원이었다. 그 아버지 토마스 웰치 (Thomas Welch)는 치과 의사였다. 그런데 부업으로 포도주 담그는 일을 하였다.
그는 세계 최초로 알코올 없는 교회 성찬용 포도즙을 만들었다. 토마스는 1869년에 뉴저지의 바인랜드 제일 감리교회의 성찬준비위원이었다. 그런데 포도주가 떨어져 포도즙을 짜 가열하여 포도 주스를 만드는데 성공한 것이다.
웰치 역시 아버지로부터 이 기술을 물려받아 오직 주님만을 위하여 돈을 쓰겠다는 목적으로 알콜 없는 포도주스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서원을 받으시고 결국 웰치의 포도주스는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는 십일조는 물론 매출의 10의 5를 선교 사업을 위해 헌신했다. 그의 헌신을 통해 그의 교회는 든든히 섰고, 선교지마다 하나님의 사역이 크게 일어났다. 그는 후원선교사로 위대한 일을 했다.
웰치가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사랑으로 오신 주님이 저의 주인임을 믿기에 저도 다른 사람을 사랑하며 희생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우리의 주인 되신 주님께 온전히 삶의 초점을 맞출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성공으로 이끄시고, 우리의 가진 재능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십니다.”
여러분에게도 여러분의 가슴을 뛰게하는 소원이 있습니까? 웰치( Welch)에게 주셨던 굽힐 수 없는 달란트는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그 일을 찾았습니까? 그 일을 위해 살고 있습니까? 지금 내가 있는 여기, 내 삶의 현장에 있습니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학교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모두 우리에게 주신 소원과 달란트를 가지고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쓰임받는 축복의 사람되시기를 축복합니다.
1855년도 영국에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을 앞둔 조셉 스크리븐이라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행을 다녀오던 조셉의 연인이 탄 배가 침몰되어 결혼식 전날 죽었습니다.
행복한 결혼식 날에 사랑하는 사람의 장례를 치른 청년은 큰 실의에 빠졌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마저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조셉은 모든 일을 다 정리한 후에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 무기력한 나날들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런 생활 가운데에 차츰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회복되었고, 다시 기도를 하며 말씀을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조셉은 아주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도 나를 위해 독생자를 주셨고, 아들을 잃으셨다. 나도 믿음으로 이 상처를 극복해야 한다´ 이와 같은 고백을 하는 순간 조셉의 마음에는 큰 기쁨이 생겼습니다. 조셉은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시로 적기 시작했습니다. ´근심 걱정 무거운 짐 아니 진 자 누군가 피난처는 우리 예수 주께 기도드리세...´ 조셉의 이 고백은 ‘죄 짐 맡은 우리 구주’라는 찬양이 되어 지금까지 많은 성도들에게 불려지고 있습니다. 슬픔과 고난이 가득한 순간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필요한 순간입니다. 고난의 순간에 하나님을 멀리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말고 하나님께 의지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십시오.
반드시 창대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 고난의 순간에 더욱 함께 하시는 주님을 의지하게 하소서! 정말 어려운 순간에 하나님께 의지할 믿음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출처:김장환목사의 큐티365중에서 <나침반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