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 리더 :: '풍경이 있는 묵상' 카테고리의 글 목록 (58 Page)

최근 100년 동안
세계 최대 재벌은
록펠러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록펠러라고
하는 사람이
50대까지는
자기중심으로 살았어요.

그런데 50대 중병을
겪게 되면서
죽음을 눈앞에 두게 되니까
내가 지금까지 잘못 살았구나.
내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겠다.

그때부터 가진 것을
내어 놓기 시작했는데,
하나님이 90세가 넘도록
장수하는 복을 주셔서,
그리고 그가 가진 그 재산을 다
하나님 영광 위해서 쓰게 만드셨는데,
하나님께서 크게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미국 전역에 큰 대학 도서관만
2,000개를 넘게 지어줬고,
그 시카고대학은
 아주 명문 대학인데
그 분이 혼자 성금을 내서,

600억 달러, 지금은
 6,000억 아님  6조가 되는지
 지금을 얼마만큼의
화폐가 되는지 몰라도
그 돈을 내서 그 대학을 세웠어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요.
하나님의 이름만 높여
지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조엘 오스틴 목사님이
최근 ‘긍정의 힘’에서
이와 같이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어려운 상황’을
골똘히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병원 진단서나
바닥을 보이는 은행 잔고,
불가능한 확률을
계속해서 곱씹는다.

이제는 방향을 바꿔
‘하나님’을 바라봐야 할 때다.

‘걱정할 시간’에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하는 게 어떤가?
하나님의 역사에 감사하라!

지금 내려오고 있는
응답에 대해 감사하라!
완벽한
다스리심에 감사하라!
이것이 ‘회복의 열쇠’다.

하나님이 크게 보일수록
문제는 작아진다!”
지금 고난이, 지금 문제가,
지금의 어려움이 장차
다가올 축복의 전주곡입니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로마서 8장 18절]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면
응답해주신다라고 말합니다.

 당연한 것이지만
반쪽진리에 불과합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한 것
이상으로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또 우리가 생각지 못하는 것도
채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열왕기상3장9절에
솔로몬이 백성의 재판을 위해
지혜를 구하였더니

하나님은 구하지 않는
부와 영광 그리고 
장수의 복을 덤으로
주십니다.

마태복음9장2절의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는
오직 치료받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예수님은 덤으로 치료와
죄 사함으로 영육의
건강함을 허락하셨습니다.

에베소서 3장 20절에 보면
​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금 여러분이 구하는 것보다
하나님은 넘치도록 풍성하게
채워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님의
핏값으로 산 하나님의
최고의 작품이며
하나님의 자녀이니까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응답을 이벤트로 준비하시는
멋진 하나님을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채희동목사의
수요예배중에서
[우리들교회]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성경 말씀은 삶으로
순종하는 자만이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당대 과학적인 인본주의자였던
사두개인들과의 논쟁을 하신 것에서
이 사실이 잘 드러납니다.

사두개인들은 아이를 낳지 못하고
과부가 된 여인이 남편의 대를 잇기 위해
남편의 형제와 혼인하는 문제에 대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마 22:23~33)

이는 실제로 있었던 일이 아니라,
가정에 근거한 질문이었습니다.

이들은 실제 삶에 존재하지 않는,
가정에 근거해서
부활을 부정하고자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에 대해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다”고 일갈하십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이심을
설명하셨는데,

예수님께서
이 설명을 하실 때의 근거구절은
유대인이라면 다 알 수밖에 없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다만 사두개인들은
이 익숙한 말씀을 삶에
적용한다는 생각을 못했으나,

예수님은 매일의 삶을
말씀에 근거하여 살고 계셨기 때문에
이를 통해 진리를
꿰뚫고 계셨던 것입니다.

사두개인들은
성경을 피상적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이유는 바로 삶으로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경을 삶으로
순종한다는 것은
단지 의식(ritual)으로서의
예배를 잘 드리고,
종교적 의무를 다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바치는 등
그 세부사항을 지키는 데
열을 올릴 것이 아니라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을 저버리지
않아야 한다고 말씀했습니다.

또 관습적인 행동을 지키는 것을
순종으로 볼 수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식사 전에
손을 씻는 관습을 어겼다고
제자들을 비난하는 바리새인들에 대해
그들의 외식을 꾸짖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결국 이런 지식에만 머물러 있거나,
의식에 참여하는 것으로 만족하거나,
종교적인 관습이 곧 신앙이라고
생각하는 태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제자훈련과
소그룹의 특징에 대해서
여러 가지 설명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설명은 바로
“말씀을 삶으로 증명하도록
만드는 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말씀에 대한 지식을
 갖추는 것만을 목적으로 한다면,
소그룹은 설교나 강의에
비해 비효율적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확인하려고만 한다면
예배 의식에
참여하기만 해도 됩니다.

우리가 제자훈련을 하고,
소그룹 사역을 하는 이유는
말씀을 지식으로서
아는 차원에서
삶으로 살아내는 차원으로
옮기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소그룹은
말씀을 정기적으로 듣고는 있지만
체계적으로 정리되지 않은 사람들,
말씀을 지식으로만 알던 사람들,
알지만 실천하기 거부하던 사람들로
하여금 말씀을 제대로 알고 순종하며
실천하도록 변화시키기 위한 장입니다.

매주 주일 예배에
참석하는 성도라 하더라도,
파편화된 성경지식,
의식으로서의 예배,
일상에서의
순종을 요구받지도,
 피드백을 받지도
못하는 삶을 살다보면

성경이 그들의
인생의 교과서라는 말은
아무 의미도 없는
구호에 지나지 않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성경의 정신이
그 사고를 형성하고,
성경의 훈계와 경험이
그 마음에 새겨져 자연스럽고
적절하게 삶에서 드러나야겠지만,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성도를
찾아보기는 그리 쉽지 않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가르쳐
그 삶을 살도록
도전할 뿐 아니라,
그런 삶을 살았는지
피드백을 하는 곳이 필요합니다.

소그룹에서는
성경을 가르칠 뿐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순종해야
할지를 나누고,
또 전 모임에서
나누었던 바를 실천했는지를
이야기하여 지시와
피드백이 계속 반복됩니다.

이를 통해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삶을 예수님께서
사셨던 원리에 맞춰가게 되고,
말씀이 삶의 원리가 되며
삶은 성경의 증거가 되는 생활을
영위하게 됩니다

출처:로버트 콜만의
"주님의 마음"중에서
 [국제제자훈련원]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연극 무대에서
 30여년 동안 그리스도 역할을 맡아
온 안톤 레인지라는 배우가 있었다.

어느 날 한 여행객 부부가
레인지의 무대를 찾아왔다.

당시 무대 위에는
연극에 사용되는 소품인
큰 십자가가 놓여 있었다.

그 부부는 십자가를 진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기 때문에
 레인지에게 양해를 구하고
십자가를 들기로 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십자가를 들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 십자가는
너무나 무거웠기 때문이다.

여행객은 땀을 닦으며
레인지에게 물었다.

“단지 연극일 뿐인데
왜 이렇게 무거운 십자가를
사용하십니까?”

그는 진지한 모습으로 대답했다.

“만일 제가
십자가의 무게를 느낄 수 없다면
 이 역할을 소화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십자가의 무게를 공감하고 있는가.
아니면 동감하고 있는가.

때로는 우리에게 닥친 일들이
 너무나 무거운 십자가처럼
느껴질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통해 우리 삶에
진정한 십자가의 의미를
동감할 수 있어야겠다.

주님이
지워주셨음을 믿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좇지 않으면
​제자가 될 수 없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를 제자로 부르고 계신다.

출처:안성우 목사
(일산 로고스교회) 
<국민일보/겨자씨>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어려서부터
아프리카
선교를 위해
 준비해 온 웰치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뜻을
이해해주는 아내와 함께
아프리카 선교를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고
 드디어 꿈을 이루기 위해
선교사 면접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면접에서
‘기후에 적응할 수
없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오랫동안 준비해 온
그의 아프리카
선교의 꿈은 좌절되고 맙니다.

하지만 웰치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겐
‘주님은 한쪽
문을 닫으면
다른 한쪽을 열어주신다’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의
앞날에 대한 구상을 하다가
 성찬용 포도주를 만드는
아버지로부터 영감을 얻어서
포도주스 사업을 하기로 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웰치스 포도주스라는
 세계적인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뉴턴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아버지를
여의었습니다.

그가 3살 때
어머니가 재혼을 했지만
부모님은 뉴턴을
잘 챙겨주지 않아
줄 곧 소외감 속에서
성장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뉴턴은
마음을 다잡고
학업에 뜻을 품고
정진했습니다.

 하지만 페스트가
창궐하여 공부하던
학교가 폐교되어
 어쩔 수 없이
학업을 중단하고
고향에서 요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불우한
사건들이
계속해서
일어났고

 페스트로 인해
죽음을 걱정하며
 살아야 할 처지에 놓였지만
뉴턴은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때 고향에서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해 내었습니다.

좌절과 절망이라고
생각되는 사건들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확신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언제나
잘되기를 바라십니다.
절대적으로
주님을 신뢰하십시오.

주님!
모든 상황 속에서
주님을 신뢰하게 하소서.

우리의 모든 삶이
하나님의 계획안에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십시오. 

출처:김장환 큐티365
[나침반출판사]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어떤 미국 사람이
프랑스 파리에 여행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자기 아내에게
 줄 선물을 사기 위해
파리 시내의 어떤 장신구점에
들어가서 중고품 목걸이를 하나 샀습니다.

 그런데 그가 미국으로 돌아올 때
공항의 세관에서 그 목걸이에다
많은 세금을 부과시키는 것입니다.
그는 이상하게 생각해서 목걸이를 들고
보석상으로 달려가서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자 보석상 주인은 자기가
2만 5천 달러를 줄터이니
이 목걸이를 팔라는 것입니다.
그 소리를 듣자 더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다른 보석 감정사에게
찾아 가서 다시 감정을 의뢰했습니다.
 현미경으로 열심히 들여다 보던
그 감정사는 자기가 이 목걸이를
3만 5천 달러 줄 테니 팔라는 것입니다.

그 목걸이 주인은 더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도대체 그 목걸이가 왜
그렇게 값이 나가는지를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감정사는 그에게 현미경을 통해
그 목걸이에 적혀 있는
글씨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자, 보세요.
무엇이 보입니까?”
그는 현미경을 통해 목걸이에
새겨진 글을 읽고 나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거기에는 “조세핀에게.
나폴레옹으로부터.” 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 목걸이는 나폴레옹 황제가
자기 애인이었던 조세핀에게
준 선물이었던 것입니다.

 사실 그 목걸이 자체는
그리 값이 나가는
재료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나폴레옹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기 때문에
그토록 값이 많이 나갔던 것입니다.
 
똑같은 물건이라도
이처럼 누구의 이름이
새겨져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가끔 유명했던 사람들이
사용하던 물건을 경매하는
경우을 보게 되는데
별것도 아닌 물건들이나 옷,
 또는 악세사리 등이 터무니 없이
비싼 가격에 팔릴 때가 있습니다.
그 사람의 유명도에 따라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팔려나간다는 것입니다.

지금 어려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핏값으로
산 하나님의 자녀요
배경은
이 세상의 창조주의 자녀입니다. 
결코 하나님의 사랑에서
벗어날수도 없고
1초도 놓치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의 몸에
예수의 흔적이 있기에
지금 어떤 고난과 시련이 있어도
미래에 다가올 영광과 바꿀수도 없고
명품인생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
(갈라디아서 6:17)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20세기 후반의 가장
중요한 러시아 문예가로​
1970년에는 노벨 문학상까지
탄 솔제니친이야기입니다.

 2차 세계대전에서 
소련군 포병 장교로 근무하던 중 
스탈린의 분별력을 의심하는 내용을
담은 편지를 친구에게 보냈다가
1945년에 투옥되어
10년 동안 수용소 생활을 했다

그는 10년 형을 받아
감옥에서 긴 세월을 보내야 했다.
공산주의 철권시대의 희생양이었다.
이 감옥소에서는
 매일 똑 같은 일을 반복시킨다.

이 쪽에 쌓아 둔 벽돌을
저쪽으로 옮겨서 쌓게 하고
또 그 다음에는 그렇게 쌓아두었던
집 더미 만한 벽돌을
또 원래의 위치에 갔다 놓게 한다.

똑 같은 일의 반복이다.
매일 매일 반복시킨다.
우리 인간이 얼마나 버틸까?
정말 사람 죽이는 방법도
여러 가지인가 보다.

이 절망 앞에서는
인간이 스스로 죽고
마는 것이 그들이 바라는 것이다.
비싼 총알을 들여서
죽일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죄수들은
1-2년 만에 희망을 버리고
낙심하여 병들어 죽어갑니다.

그런데 이반데니쏘비치는
10년이 넘도록 잘 참고 지내다가
다른 죄수들과는 달리 살아서
 건강하게 감옥을 나오게 됩니다.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는 하루 하루의 중요함을 깨닫고
살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솔제니친은 그가 만난
이반데니쏘비치에 대한 책을 쓰면서
책 제목을
‘이반데니쏘비치의 하루”로 정하였습니다.

이반데니쏘비치는
하루 하루를 매일 매일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갑니다.
바로 그것이 10년을
이기게 했다는 것입니다.

믿은! 희망!
아주 중요한 개념이다.
그 지독한 감옥에서
이반 한 사람의 하루가 변화되니까
한 사람이 변화되고
한 사람이 변화되니까
전체 수감자들이 변화되어 지고
그것이 10년이라는 긴
수감생활을 이기게 한 지름길이 된다. 

희망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단지 희망을 포기한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매일 희망을
가지고 사십시오.
매일 태양이
떠오르고 있습니다.
매일 하나님은
여러분을 기대하고 계십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것이니라
(예레미야29:11)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찬송가 419장 ‘주 날개 밑’
그 찬송을 지은 윌리엄 쿠심
(William O. Cushing, 1823-1902)
목사님이 계십니다.

윌리엄 쿠심  목사님이
고난 가운데 이 찬송을 지었어요. 

 미국 매사추세츠의
주의 힝햄에서 태어났습니다.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된 그는
첫 사역지에서 헤나 프로퍼라는
 여인을 만나 결혼을 했습니다.

1864년 결혼한 지 10년이 되던 해,
​행복하게 살며 은혜로운 목회를 하던
그에게 뜻하지 않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힘든 내색 한번 하지 않고
 넉넉지 못한 생활과 사역을
뒷바라지해주던 사랑하는 아내가
이름 모를 병에 걸려
시름 시름 앓게 된 것이었습니다.

 윌리엄 쿠심 목사는 아내의 요양과
목회를 병행하기 위해
사역지까지 옮겼지만,
​아내는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1870년에
남편의 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시련이 끝나지 않았어요.

그 충격 때문이었을까요?

 아내의 병간호와 목회를
 병행하던 윌리엄 쿠심 목사님은
건강도 급격히 나빠졌고,
​급기야는 성대에 이상이 생겨
강단에 설 수 없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전하는 것이
생명과도 같은 목사에게
이 일은 죽음과도 같은 일이었습니다.

​아내를 잃고,
​목소리까지 잃은 그에게
그 어떤 것도
위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낙심
가운데서 주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주님
, 주님의 뜻은 어디에 있습니까?

​저를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신
이유가 있기나 한 것입니까?
​사랑하는 아내도 데려가셨으니,
​제 목숨도 거두어 주십시오.

​말도 못하는 이
육신을 데려가 주십시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절망 가운데 있던 어느 날,
​완악해진 그에게
주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너는 내 것이다.
말 못하는 입술도,
병든 네 몸도 모두 내 것이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노라.
내 사랑하는 아들을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게 하면서까지
내 너를 값 주고 샀노라”
​ 
​하나님의 그 음성에
그의 굳었던 마음이 녹아졌습니다.

​그리고 그는 다시 고백했습니다.

“사랑하는 주님,
​건강한 몸으로는
주님께 충성하지 못했지만,
​이제 병든 몸으로나마
충성하기 원합니다
.
​주님을 위해
제가 할 일을 말씀해 주옵소서”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온전히 주님만을 의지했고,
​주님의 날개 그늘 아래 
있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종으로
산다고 하면서
완전히 주님의
날개 아래 거하지 못 했던
지난 시간들을 철저히 회개하며

펜을 들어 시를 지어서
이것이 유명한 당시
복음 성가 작가인 셍키라는 선생님이
곡을 붙여 가지고 만든 것이
바로 ‘주 날개 밑’입니다.

(새 찬송가 419장/통 478
‘주 날개 밑 내가 편안히 쉬네’)

주 날개 밑 내가 편안히 쉬네
밤 깊고 비바람 불어쳐도
아버지께서 날 지켜 주시니
거기서 편안히 쉬리로다

주 날개 밑 평안하다
그 사랑 끊을 자 뉘뇨
주 날개 밑 내쉬는
영혼 영원히 거기서 살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현실이 너무도 힘들고 어렵습니까?

때로는 슬프고 괴롭고
피곤하여 지쳐있습니까?
오늘 “너는 내 것이라”
“너는 나의 걸 잘 품이다”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일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위하여
예비해 놓으신 주님의 날개
그늘 아래 거하시는
복을 받기를 바랍니다. 
​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일 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롬 8:37~39)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