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훤칠한 외모와 반듯한 분위기로
8,90년대 TV 드라마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탤런트 김성일 씨

두 번의 큰 고난을 통하여서
하나님께 돌아와서
지금은 온누리교회 집사로
섬기고 계십니다.

1981년 MBC
13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하여
(모범 작문),
(​아무렴 그렇지 그렇고말고),
(훠어이 훠어이),
(무풍지대),  (왕룽일가),
(삼국기), (자매들),
 좋(은 남자 좋은 여자) 등
​드라마와 영화를 하였습니다.

사실 연기를 하게 된 계기가
우연이었다는데요.

학교 다니면서 용돈이 부족하는데
친구의 한 명이 돈을 많이 벌어와서
그 친구가 신인 탤런트가
돈을 많이 벌수 있다고 해서
mbc 입사를 하게 됩니다.

연기를 열심히 해서
15년을 채우고
이제는 공부를 하고 싶어서
1995년에 모든 활동을 접고
유학을 가게 됩니다.

그 당시에는 컴퓨터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에 결심하게 되고
3개월 만에 떠납니다.

하필 그때에 IMF가
와서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한국에 다시 돌아옵니다.

자포자기하다가
오디오 쪽으로 관심을
같다가 새로운 것을
발견을 하게 됩니다.

세계 최초로
5.1 채널 헤드폰을
발명하여서
사업을 시작한 지
3년 만에 회사 가치가
500억 원 규모로
성장을 하게 되었습니다.

신앙생활은 처음 시작은
교회에 크리스마스 때
선물 받으러 다녔고

중학교 때에 참석한
수련회에 친구 따라서
놀러 갔는데 집회 때에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내리면서
따뜻한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렇게 교회를 다니게 되지만
교회 안에서 여러 상처로
세상에서 방황을 하게
됩니다.

결혼하여 만난 아내가
3대째 모태신앙이었고
신앙심이 깊었답니다.

장인 장모님께서
교회에 출석을 하지 않으면
결혼 허락을 해줄 수 없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교회에
다니게 됩니다.

일부러 스케줄을
주일날로 잡고
빠져나왔고

그러다가 유학을 가면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다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미국에서 정기적인
신앙생활을 하게 되는
훈련을 받았지요.

5.1헤드폰을 출시하면서
승승장구하다가
사업의 성장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였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스페인과의 거래로 잘못됨으로
회사가 흔들리면서
6개월 만에 채권단에
 넘기게 되었고

막대한 채무만이
남게 됩니다.

2004년도에 채무를
가지고 2008년까지
고통을 당하게 되면서

너무 힘들고 어려움으로
결국 나 자신을 항복하고
손들게 됩니다.

간신히 2012년에야
모든 것을 정리할 수가
있었답니다.

그 과정에서 가족의
고통이 너무 많았답니다.

그동안 쌓였던 문제들이
터지기 시작하였고
아픔을 견디기 어려웠답니다.

그런데
사업이 잘 될 때에
아내의 기도는

"하나님 지금 사업이
잘되면 큰일 납니다,
먼저 하나님의 올바른
성도가 된 후에 복을
주세요."라고
기도했답니다.

나중에는 아내도
너무 힘드니까
"하나님 이제 무엇입니까"
라고 하니

김성일 집사가
"당신이 그렇게 기도했잖아"
라고 했답니다.

소송과 채권자의 시달림으로
새벽 2시에서 3시까지
전화로 어려움을 겪다 보니

조항 중에 대표이사는
다른 직업을 가질 수가 없기에
빌딩 청소와 화장실 청소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하였습니다.

다시 새로운 날이 밝아오면
고통이 시작되니까

스스로 자신을 끝내고
싶었지만 죽으면
바로 지옥이라는 공포와
두려움에 이겨낼 수가
있었답니다.

자살을 회개할 수도 없고
다시 돌이 켤 수가 없다는
생각이 붙잡고 있게 됩니다.

아침에
쌀이 없어서 굶어야 했고
아들은 휴학을 하고
딸 또한 학교를 가지
않겠다고 합니다.

다른 것은 견디겠는데
자녀들이 방황하고
가출해 버립니다.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음에
스스로 내가 돈보다 더
귀한 가족을 잃었고
모든 가족을 파괴 시켰다는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자녀를 데리고 공원에
한 번도 가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나중에 깨닫고 변화를
하려고 노력했답니다.

하나님은 아버지라고
하는데 왜 나를 힘들게 하고
고난을 주시고 벌주시고
야단을 치신 분으로 알았답니다.

 그동안 나름대로
신앙생활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도대체 왜 나한테
이런 일들이 생겼나
하는 회의와 반감이 생겨,

기도하다 말고
하나님을 향해
큰소리로 따지기도 하고
떼를 쓰기도 했답니다.

 하지만 그 당시 주변의
모든 것이 그에게 등을 돌리고
 기댈 데라고는
오로지 신앙밖에 없었답니다.

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오직 유일한 길은
하나님 한 분 만이라는 생각에,
하나님이 제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고
죽기 살기로 노력했습니다.

결국 그는
교회를 찾아가

“하나님
제게 왜 이러세요?”라며
실성하듯 몸부림쳤다.

“하나님 살아계시면
나 좀 죽여주십시오”라고
기도한 적도 있었다.

그렇게 몸부림치며
1시간이 지나고,
4시간이 지나던
어느 날이었다.

갑작스레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생각이 퍼뜩 지나갔다.

‘지금 네가 기도하며
원하는 하나님은 성경에서
말씀하신 하나님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었다.

‘내가 기도하며 소원을
이뤄달라고 구하는 대상은
내가 만든 하나님이고,
성경에서 말씀하는
하나님이 아닐 수 있다니···.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런 생각이 들면서
기도가 바뀌었어요.
‘하나님, 다 필요 없어요.
저 만나주세요’라는
기도로 바뀌었고,

‘하나님은
어떻게 만나지’라는
질문 앞에 ‘성경에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설명해 놓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됐어요.

이때부터
저는 성경을 읽고,
기독교의 고전을 읽으며
성경이 계시하는
하나님을 찾아가기
시작했어요.

그때까지 저는
소문으로 들어왔던,
하나님,
하나님은 이런 분이다는
사람들의 체험에
너무 의존해왔어요.

내가 만든
내가 복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제는 하나님을
만나야겠습니다"라고
생각이 바뀌게 됩니다.

성경을 공부하며
잘못된 신앙을 바로
잡아가기 시작했어요.”

세상 것을 생각하던
과거와 달리
하나님의 본향을 생각하면서
나 자신이 그림자 인생을
살았고
아무것도 아니었구나라고
말씀으로 신앙의 성장을
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 아내가 계속
금식과 눈물의 기도로
견딜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합니다.

자식에 대한 것도
사실을 지적했지만 사랑이
없었기에 오랫동안 참지 못하고
상처 주고 아프게 했답니다.

김성일 집사님의 고백입니다.

"고난을 이겨내는 길은
내가 무슨 봉사를 하고
남을 도와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내 존재가 변해야 한다는
것이고

그리 아니하실 찌라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김성일 집사님은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특허 기술이 500개가
넘게 되었고
발명왕이라는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됩니다.

2002년도에
1회용 껍뚜껑을
발견하게 되였고

명칭을
‘머 그리드’라고 붙이고
사업을 다시 시작했답니다.

2010년에 본격적으로
개발한 MUGLID는
뜨거운 커피가 입술에
닿기 전에 먼저
컵 뚜껑에 고여서

그 사이에 뜨거운 온도를
살짝 잡아주어서
 뜨거운 커피를
혀나 입술에 직접 대지 않고
즐길 수 있게 해주며
잃어버린 맛과 향도
느낄 수 있게 된답니다.

2014년에는
‘단국대학교 창업지원단’의
‘지원 대상 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으며

2015년 현재
전 세계 39개국에
컵 뚜껑을 수출하고
한국뿐 아니라
미국·일본에까지 특허권을
냈으며
현제  투썸플레이스에
 납품되고 있답니다.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배우 유혜리 집사는
현재는 분당 만나 교회를
섬기고 계시는데요.

배우 최수린 씨가
여동생이기도 합니다.

동생과 10살 차이가
나는데도 언니가
연기를 하는 것을
보면서 연기를 하게
되었답니다.

유혜리 집사는
본명은 최순옥이지만
 아버지의 반대를 벗어나기
위해서 유혜리란 예명을 사용하게
됩니다.

단국대학교 의상학과에
재학하면서 cf 모델로 활동하다가
1988년 영화에 데뷔하게 됩니다.

그 후로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와 연극배우로써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계시는데요.

스타로서의 삶을 누렸지만
공허한 마음을 채울 수가
없어서 많은 것들을
해보았지만

참 행복을 못 찾았고
산에서 충격적인 장면을
보면서 인생을
하나님께 맡기게 됩니다.

지금은 유혜리 집사님은
예수를 믿고 너무 많이
변해있고 행복하다고
하는데요.

말씀 속에서 자존감을
회복하였고

하나님께서
"너를 통해서 하나님을
떠나간 많은 영혼이
올 것이다"라고
하셨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냐고
물었더니
"내가 너의 목적과
계획을 이루려고 준비
하셨다"라고 했답니다.

지금은 제자 양육과
훈련과정을 통해서
많은 영혼을 세우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언니로써
동생을 체크해주고
기도도 나눈답니다.

어릴 때 집안이
불교 집안이었고

보수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기에
남자는 성공하고
딸은 시집가면 된다고
했답니다.

할머니가 굿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고
보수적인 가정에서
불만이 많았답니다.

위에 오빠와 밑에 남동생이
있어서 외롭고 힘들었고
어릴 때 애 늙은이처럼
내면의 갈급함이
있었답니다.

결혼하면서도
부모에게서 탈출하고 싶다고
생각을 하였답니다.

선배님의 권유로
cf 모델이 되었고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집안이 난리가
난 것입니다.

아버지가 tv를
보다가 광고가
나오는데
딸이 나오기
시작하게 되니
알게 되면서

아버지가 너무 화가
나셔서 다시 배워야
한다고 하셨고
집안에서 외출금지까지도
시키셨답니다.

유혜리 집사님이
처음 교회를 나가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요.

부수적인 성향 속에서
자라다 보니
올바른 자아가 성장되지
못한 상황 속에서
결혼을 하고 나서
결국 이혼을 하게 되었고
남편이 독특한 종교를
가지고 있었답니다.

순탄치 못한 가정의
상처와 사람들의
편견 된 시선으로

남동생의 아내가
예수님을 믿게
권면을 하였답니다.

너무 힘들어서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고
혼자 살면서
등산을 하는데

산속에 집이 있는데
맹인 안내견을 훈련시키는
곳에서 개를 끈으로
나무에 올리는데

그때 나도 결국 그렇게
죽겠구나라는
결론을 내리고
3년을 방황하면서
올케가 말한
"예수님을 믿으면
새삶이 있어"라는
말이 떠오르게 됩니다.

아무도 모르게 혼자
교회에 가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 놓기 시작하고

하나님 계신 가요라고
하면서 고백을 합니다.

그러면서 교회를 다니게 되고
구원이 무엇인가
복음이 무엇인가
내가 어떤 존재인가
라는 것들을 질문하게 되고

예수님의 핏값으로 살 만큼
나 자신이 귀중한 존재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그때부터 내가 이렇게
귀한 존재인데
속았구나 이제 숨을 이유가
없고 다시 세상에 나가게
됩니다.

"나는 열등감 가질
이유가 없어
예수님이 나를 핏값으로
사셨어"

내가 노력을 해야 될 줄 알았는데
이미 이루어 놓으신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이제 이렇게 기도합니다.

"저를 믿음으로 이끌 수 있는
영적인 멘토를 주세요"라고
기도합니다.

성경공부도 사실 다
여러웠고
분당으로 이사를 가면서
한 달 반 정도를 기도합니다.

교회에 친구를 전도했는데
그 친구가 먼저 양육을
받는다고 해서

친구에게 먼저
내가 해 보고
너는 순서상
내가 해볼게라고
합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양육을 2년을 받게 되고
말씀을 집중하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계획이
있는가를 묻기 시작하게 됩니다.

양육하면서 자신도
성장하게 됩니다.

지금은 너무 감사하답니다.

힘든 과정이 있었기에
예수님을 만나게 되고
"너를 통해 많은 영혼이
돌아오게 될것이다"
라는 말씀을 주시고
쓰임 받게 됩니다.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또 하나의 열매를 바라시며",
"약할 때 강함 되시네",
주를 향한 나의 사랑을,
"주님 말씀하시면", 등
시간이 흐를수록 많은
성도들의 신앙고백이 되고 있는 
주옥같은 찬양을 부른 사람,

현재는 사랑의 교회를
섬기고 계시는
찬양사역자 조수아 씨를
소개를 하려고 합니다.

본명은 방혜령이며
조수아가 본명은 아니지만
여호수아의 영어식 발음
조슈아(Joshua)를
한국식 발음으로
바꾸게 된
이유가 있다는 데요.

가나안을 정탐하러 갔던
여호수아의 적극적인 모습을
담고 싶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에게는 늘 기쁘고
즐겁고 힘 있는 이름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깊은
뜻이 있답니다. ​

또 하나
특별한 조합인데요.

남편 되시는 분은
판소리를 하시는
최용석 님이시고요.

찬양과 판소리의
만남을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랍니다. ​

 1995년 CCM 그룹
‘마르지 않는 샘’의 멤버로
CBS 창작복음성가제에서
금상을 수상하며 데뷔했습니다.

2000년 솔로 앨범을 발표하고
1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꾸준한 사랑을 받으며
실력과 대중성을 겸비한 
CCM 계 대표
여성 사역자가 되었습니다.

​조수아 씨는
 모태신앙으로
경찰 공무원을 하다가
헌신한 아버지를 비롯해, 
어머니, 오빠 모두 목회자인데요.

매일 가정예배가 있었고
매일 성경을 읽어야 했고

어머님이 처음으로
목사 안수를 받으셨고

아버지도 나중에
2호 목사로 안수 받으시고
그다음에 오빠도
목사 안수를 받게 됩니다.

조수아 씨가
신앙고백을 하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요.

한 친구가 신앙이
좋아서 날마다 감사와
기쁨이 넘쳐서
내심 너무 부러워서
속으로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고
2년을 기도한 후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세미나를 마치고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를
지은 분의 강의가 끝나고
찬양과 기도를 하는데
본인도 모르게 방언과
 은혜의 파도가
넘치게 됩니다.

그 후로 새롭게 삶이
바뀌게 되었답니다.

그 후로 멀리 계신 하나님이
아니고 지금 나와 함께
계신 하나님을 누리게 됩니다.

교회에서 자연스럽게 노래와
반주를 한 그녀는
노래에 재능을 보였지만,
꿈은 연기자였다.

그런데 그녀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열리는 길은
연기가 아닌, 노래. 

항상 자신의 뜻이 아닌
다른 사람에 의해
노래했던 삶이기에
소명이나 기쁨은 없었다.  

우연히 참가한 CBS
창작복음성가제에서
마르지 않는 샘이라는
이름으로
금상을 받고,
몇 년 동안 찬양사역을
하면서도 그랬다.  

같이 사역을 했던 분들은
음반을 내는데

본인들은 어느 누구도
불러주지 않아서
낙심하고 있다가

1997년 3월에
마르지 않는 샘으로
본격적인 사역을
시작하게 됩니다.

1년을 사역하였지만
그때도 집에 올 때에는
공허함이 있었답니다.

노래보다는 선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1999년 2월에
팀에서 탈퇴를 하고
사역을 그만두게 됩니다.

이제 새로운 길을
가고자 했지만
다른 길이 열리지 않았고

그때 친구하고 살면서
하루를 시편으로 시작을 했고
하루 종일 고민을 하면서
한 달이 지나게 됩니다.

다시 사람들이
찬양을 하라고 했지만
확신이 없었는데
어떤 분이 음반을
만들고 싶다는 제의가
들어오게 됩니다.

솔로 음반의 시작을
하게 되면서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이
"사람을 감동시키려면
아픔이 있어야 한다"라고
하셨답니다.

그때 만약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 맞는다면
많은 사역자를 붙여주세요"
라고 기도했는데
그대로 응답이 됩니다.

첫 번째 음반을 내고
사람들에게도 주목을
받기는 했지만

진정 노래가 알려지지는
않았고
본인 나름은 유명하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2집을 만들었지만
별로 좋지 않았고
그만두고 싶은데

벌써 3집을 내게 됩니다.

이 3집은 특별하게
만들자고 의견을 내놓는데요.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
사람들이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
그런 테마로 하자고 합니다.

준비하는 중에
어느 교회에 초대로
특송을 하는데

사람들이 서로 따로따로
앉아있는 것을 보면서
교회가 서로 다툼이
있어서 힘들다고 하는
사연을 듣게 되면서
마음이 아픈 것입니다.

그때 청년들이 헌금을
가지고 강대상으로
나오면서
"감사해요"찬양을
하는데 너무 감동이
오게 됩니다.

그래서 이 악보를 가지고
음반에 내자고 하면서
작곡자를 찾는데
못 찾았고 헤매고 있는데
결국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의 이름이
설경욱목사님이
십니다.

2002년 ‘또 하나의
열매를 바라시며’를 통해
세상에 조수아라는
이름을 알렸다.

또 하나의 열매를 바라시며를
쓰신 설경욱목사님이
작사, 작곡을 하셨는데요.

고속버스를 타고
지방을 내려가고 있었답니다.

앞으로의 사역과 다가올
미래를 계획하며 기도하고
찬양을 흥얼 거리던 중에
내가 바로 사랑받기 위해
태아 났으며 소중한 존재
라는 사실을 깨닫고

감사함이 넘치게 되었고
그때 영감을 받고 쓴
곡이랍니다.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대중음악 작곡가, 가수
방송인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컴패션밴드의 음악감동으로
온누리교회를 섬기고
계시는 주영훈 씨를
소개합니다.

1993년 심신의
"내가 처음 사랑했던 그녀"
를 통해 작곡가로 데뷔해

엄정화의(배반의 장미)
터보의(나어릴 적 꿈)
컨트리 꼬꼬의(오! 가니)
유채영, 코요태, 김종국 등
​많은 가수들의 작곡가로
유명하답니다.

지금은 방송인으로써
열심히 하고 계시는데요.

미국에서 아버지께서
목회하시는 목사님의
아들로 태어났답니다.

어느 날 예언하시는
권사님을 모시고 와서
아들 중에 목사가 나온다고
했는데 주영훈 씨를
신학교에 보낸다고 해서
한국으로 도망을 왔다고 합니다.

도망 올 때에 전 재산이 27만 원이었고
공항 세관에게 악기가 걸려서
세금을 78만 원을 내라고 해서
한 시간을 울면서 빌기도 했답니다.
 
20대 초반에 목사님을 따라
미국 동부 워싱턴으로
이민을 와서

아버지께서 사역하시는
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로
또한 찬양대로 봉사를
하였답니다.

주영훈 씨가 음악을 하게 된
계기가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고 나중에는 고백합니다.
​ 

주영훈 아버지께서는
이북 출신으로 보수적인
분이셨답니다.

 예배 도중에는
아멘을 크게 해도 안되고
교회에서 기타나 드럼도
함부로 하면 안 될 정도였답니다.
 
찬송가를
제외한 세상 모든 음악을
마귀의 음악이라고 해서
반대가 심하셨다고 하네요.

그래서 학교를 갔다 오면
LP가 항상 두 동강 나있었고
교회 가면 기타를 칠 수 있어서
같지만 아버지가 계실 때는
찬송가를 치다가 안 계실 때
몰래 세상 음악을 했답니다.

지금도 초청을 받아서
교회에 가서 메들리를
하다 보면 찬양을 하다가
중간에 일반 음악을
부르면 손뼉을 치다가도
멈추어 계신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팝송을 좋아해서
혼자서 DJ가 되겠다고
연습도 하기도 했답니다.

홀로 한국에 와서
​테이프를 만들어 각 기획사를
찾아다니면서 들어봐 달라고
발품을 팔면서

잘 되지 않으니
하나님을 원망했답니다.

한국에 나오게 해달라고
했다가 다시 왜
한국에 오게 했냐고
원망했답니다.

많은 사람을 1년 동안
만나면서 수백 곡을
만드는 시간이었답니다.

그래도 교회는 다녔지만
뜨거움은 없었답니다.

술 취해서 울면서
기도하기도 했답니다.

심신의 가수를 만나게 되면서
그분이 점을 보면서
점쟁이가 웃는 모양을 보여주는데
그것이 주영훈 씨였답니다.

나중에 주영훈씨는
하나님께서는 귀신을 쓰기도
한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들의 주변에도
점보러 가서 너는
예수믿어야 산다고 해서
진짜 예수 믿기도 하지요.

그때는 인기 있는 가수와
만남이 시간 되면서
심신의 작곡을 7곡을
하면서 소방차까지 연결되고
태진아 씨와도 시작됩니다.

주영훈 씨가 만든 곡들이
거리에서 울려펴지는 것을
보면서 행복해지고
자신이 교만하게 재능을
하나님이 주신 것인 줄을
몰랐답니다.

주영훈 씨는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방황하게 됩니다.

유독 주영훈 씨가
온갖 오해와 억측으로
어려움이 겪게 되고
많은 어려움을 가지는데요.

나중에는 하나님이
이런 경험을 통해서
지금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힘을 주게 된답니다.

자신의 연약하고
부족함을 훈련시키기 위해
좋은 벗들을 연결해주시고
온누리교회를 통해서
뜨겁게 기도하고
이전에 잃어버린
첫사랑을 깨닫게 되는데요.

성공한 작곡가에게
사실 여러 번 위기가 찾아옵니다.

손태영과의 결별과 오해
살이 빠졌다고 두 번이나
검찰청에 불려가서 마약검사를
받기도 했고요.

주영훈 씨의 고백입니다.

"살을 갑자기
예전에 많이 뺐을 때는
마약조사를 받을 때도 있었고,

2007년도에 학력을 속였다
그래서 모든 방송도
쉬게 됐던 적도 있었고,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하면서
빚도 지고
공황장애도 많이 앓았었고.

하용조 목사님께서
큰 힘이 많이 됐던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힘들거나 할 때
정말 하 목사님이 보고 싶어요."

2007년 온누리교회에서
주최한 일본 문화선교 집회
‘러브 소나타’에 참가했는데,

손지창 형제가
하용조 목사님 부탁으로
주변의 연예인을 모을 때
저도 불려가게 된 거예요.

가서 할 일은 연예인들과 함께
찬송가 두 곡 부르는 것밖에 없어서
저는 솔직히 편한 마음으로 따라갔지요.
 
그런데 그곳에서
회개하는 눈물 많이 흘렸어요.

그때 은혜를 참 많이 받았어요.
그런데, 그렇게 은혜를 받고 나서
제게 어려운 일이 바로 닥쳐왔습니다.

일본에 다녀온 지 2주 후였어요.
뜨거워지려고 할 때 사탄이
제게 가장 약한 부분을 건드리더군요.

아마 은혜가 없었다면
과거처럼 예민해서
미쳐버렸을지도
모를 정도로 큰 어려움이었어요.

하지만 “올 테면 와봐라” 하는
담대함이 생겨 감당할 수 있었답니다.

사실 군대를 못 갈 수밖에 없는
심실 조기 흥분 증후군이라는
질병이 있는데

일부러 군대를 가지 않으려고
했다는 오해를 사기도 합니다.

주영훈 씨는 독신 주의자였고
이윤미를 만나면서 마음이
바뀌게 됩니다.

가장 어려운 시기에
악성 루머와 사업 실패
그리고 대인 기피증과
공황장애에 시달리게 되는데

이때 하나님이 예비해 두신
2006년 이윤미와의 결혼으로
평안을 회복하게 됩니다.

주영훈 씨의 고백입니다.

"배우자 기도를 오래 했어요,
제가 혼자서. 항상 웃는 여자,
나보다 남에게 배려가 더 많은 여자,
키 170센티미터
플러스마이너스 1
이렇게 구체적으로 적었어요.

10가지를 정확하게 가진 아내를
제가 만났기 때문에 만나자마자
하나님이 보내주셨나 보다
이런 생각을 갖게 됐죠." 

배후자의 기도에
이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내용이 있는데

그 첫 번째가
잘 웃는 여자인데
이윤미 씨가 심하게
잘 웃는 여자랍니다.

또 하나는
야망이 크지 않는 여자인데
다시 말하면 가정적인 여자를
원했는데

결혼 후에 아내의
내조 덕분에 신앙이 더욱
깊어지게 됩니다.

어느 정도로 이윤미 씨가
남편을 위해 기도하는가 하면

주영훈 씨의 고백입니다.
"어느 날 우연히 수첩을 봤더니
남편이 잘 되게 하는 기도 방법과
주로 남편을 위해 책을 읽고 있었고
항상 우리 오빠 기도를 우선하니
너무 감사하답니다"

부모가 딸의 이름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데요.

두 부부는 큰 딸의 이름을
주 아라라고 지었는데
그 뜻을 "주님의 아름다운
나라를 꿈꾸며"라고
지었답니다.

지금은 컴패션을 통해서
전 세계에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계시답니다.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탤런트 김혜자 씨의
 간증 글이다.

첫 임신 때 입덧을 없애려
담배를 접한 후 나도 모르게
30년 골초가 되었다.

​집에서나 방송국에서나
늘 내 손에는 담배가 들려 있었다.

​오죽했으면 연예계
‘체인 스모커’를 뽑을 때
늘 1위를 차지하곤 했을까.

​나는 흡연가라기 보다는
애연가였다.

담배를 물었다 하면
필터만 남을 때까지 피웠고
폐 속 깊숙히 연기를 빨아들이며
참 맛있게 피웠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면서도
담배만은 포기할 수 없어
교회에 갈 때마다
“하나님,
이것만은 좀 봐 주세요”라고
기도하곤 했다.

​그런 내게 ‘사건’이
일어난 것은 6년 전 이맘때였다.

​여느 때처럼 아침에 일어나
담배부터 피워 물었는데
이제껏 피던 맛이 아니었다.

​깜짝 놀라 껐다가
다시 불을 붙이기를 거듭했지만
쓰고 역겨운 맛뿐이었다.

​그날 밤 미국에 사는 딸이
전화를 했기에
“고은아, 정말 이상하다.
​담배 맛이 싫어졌어”라고
말했더니

딸이 갑자기
“하나님 감사합니다”라며
울음을 터트렸다.

“엄마, 하나님이
아름답게 지어 주신 몸을
담배 따위로 더럽혀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이렇게 빨리 들어주실 줄 몰랐어.”

​자신이 태어날 때부터
담배를 피워 온 엄마에게
차마 담배를 끊으라는
말은 못하고

무려 백일 동안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새벽 기도를 다녔다는
딸아이의 말을 듣고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날로 담배와의
길고 긴 인연이 끊겼다.

​다행히도
금단현상은 전혀 없었다.

​누가 바로 옆에서
담배를 피워도 피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내가 거짓말처럼
한 순간에 금연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딸의 기도를
들어주신 하나님의 힘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가족의 관심과
사랑보다 더 큰 힘은 없다.

 출처: 염동권이 쓴
<영이 가난해질 때까지> 중에서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1989년 MBC
공채 탤런트로 데뷔,
 드라마 ‘엄마의 바다’,
‘M’, ‘순풍산부인과’
야인시대 하야시역’ 등
수많은 드라마에서
주인공을 도맡아 하며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탤런트 이창훈씨

드라마 30편 이상을 하는데
12년밖에 걸리지 않다 보니까
자신이 스스로 다른 것을
하고 싶다고 기도했는데
MC도 도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배우 이창훈씨의 누님이
배우 이금주씨이기도 하는데요.

처음 교회를 다니게 된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에
친구를 사귀고 싶어서
교회에 가게 되었답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된 것은
배우를 하면 서랍니다.

연기를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어서
연기하는 법을
몰랐기에
대사를 외는것 밖에
없어서 대본을
다 외워버렸답니다.

"하나님 배우를
잘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를 늘 했답니다.

작품 선택을 할 때도
기도를 하다가 편해지는 것을
선택해서 했다고 합니다.

놀라운 것은
기도하고 선택한 것은
꼭 드라마가 잘 되는
응답을 누린다고 합니다.

언제부터 연기를
시작했냐면

20대 초반 이창훈은
유학을 준비하던 중
길거리에서
광고모델 캐스팅 제의를 받아
모델 아르바이트를 하며
방송계를 시작하게 되었답니다.

그 후 1989년
탤런트 모집 광고를 보다
연극배우였던 친누나
이금주 씨의 권유로
MBC 탤런트에 지원해 합격합니다.

”배우라는 직업을 주시면
이 직업을 통해서
하나님을 증거하고 다니겠다고
열심히 기도했더니 배우가 됐어요.“ 

독신주의를 고수하던 그가
갑자가 미스코리아 출신의
연하와 결혼을 하게 됩니다.

결혼하게 된 계기가 있다는데요.

오랫동안 사귀던 자매와 헤어지고
이젠 시골에서 교회를 세우고
여생을 살자라고 생각까지 할 정도로
낙심해 있었다는데요.

41살이 되고 나니 나에게
과연 짝이 있을까 괴로워하다가
3개월 동안 배후자 기도를
시작하게 됩니다.

"제게 배후자 없다면 인정합니다
그러나 있다면 만나게 해주세요."

얼마큼 구체적으로 기도를 했다면
나이, 키, 운전할 수 있는 사람
신앙생활할 수 있는 사람 등
상세하게 하였답니다.
그전까지는 항상 인기가 있어서
기도도 하지 않았더랍니다.

그런데 때가 된 것입니다.

2007년
크리스마스 때 후배가
 소개팅을 해주어서
만났는데 아내의 첫 느낌은
꽃으로 비유하면
코스모스 같더랍니다.

전화번호를 받고
일주일까지 전화를
 할 수가 없었답니다.
왜냐하면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나기에
미안한 것이죠.

그런데 먼저 자매가 전화가
오고 피하다가
결국 하나님의 계획임을
알고 응답을 누리게 됩니다.

2008년 9월에
 결혼의 응답을 누리면서
기도를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믿음의 기도의 사람으로
바뀌게 된 계기가 있다는 데요.

1남 4녀 중 넷째
외동아들로 태어난 이창훈은
7살에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34년 동안 어머님이 키우셨다는데요.

1남 4녀의 생계를 위해
그의 어머니는
좌판 장사를 시작해 미용실, 회사 
구내식당, 슈퍼마켓 일까지
해보지 않은 게 없을 정도이시던

어머니가
17년 전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져 혼수상태가 되었답니다.

회생 가능성이 10%도
안되니
‘기적밖에 없으니
장례를 준비하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효자이던 이창훈 씨는
어쩌면 사는 의미이셨던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답니다.
 
담당하던 박사님을
찾아가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때 담당 의사가
하는 말이 "종교가 무엇인가?
네 기독교입니다."라고 했을 때​

지난날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고

하나님께 저도 가겠습니다라고
자살을 결심하게 됩니다.

다음날 갑자기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고

“하나님, 어머니를
데려가시면 저도 갑니다.
어머니 살려주시면
당신을 증거하겠습니다.”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 
 그리고 기적처럼 어머니는
한 달반 만에 깨어나셨는데
 
담당 의사가 이런 일이
없는 데라고 하시면서
너무 오래 전심 마비가
왔기에 오래 살지도 못하고
평생 휠체어를 타고
다닐 거라고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또 한번 기적을
구하면서 수영을
좋아하시는 어머니가
수영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게 됩니다.

"하나님 주실 것 다 주세요.
전 이미 맹세했고
저는 부르시면 다 가서
간증할 때니 응답해주세요."

하나님께서 응답하셔서​
2~3달 후엔
수영도 하실 만큼 회복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믿음이
더욱 굳건하게 자라게 됩니다.

그리고 간증을
가서 준 돈을 개척교회에
헌신하거나 그 교회가
조금 연약하면
그곳에 헌금을
드린답니다.

이창훈 씨가 결혼을 한 다음에
결혼하고 임신하고 다 가진 것
같았는데 탤런트 수입의 사건이
터지면서

너무 편안하게 살다 보니
집 사고 차 사고 물질의
부족함이 없이 살다가
한가지 부족한 것인
결혼 문제가 해결되고
아이까지 생기니
다 가진 것 같더랍니다.

주위 분들이 이번 사건들이
있으니 조금 쉬라고 해서
쉬는데 2-3년 공백 기간이
생기면서 우울증까지
찾아오게 됩니다.

비가 오면 혼자 나가서
울었답니다.

처음으로 자신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에 감당하기
힘든 것이고 인정하고
싶지도 않은 것이지요.

거의 1년을 울면서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혼란이 오고
방황하고 술 먹고
쓰러져서 있기도 했답니다.

그렇게 1년 반을 지내는데
자살을 하고 싶을 정도로
어려움을 지나는데

하나님께서 다시 기도하게
하시고 운동을 하고
2년이 지난 후에 감독의
전화가 오게 됩니다.

"하나님 다시 주세요.
라고 기도합니다."

처음 대본이 23살의
아빠를 원하는데
너무 화가 나서
있는데

작가가 전화를 해서
저도 사실 크리스천인데
한번 만나주세요라고
합니다.

갑자가 생각나는데
너무 일이 없어서
주례를 하셨던 목사님께
찾아가셔서 기도해달라고
했더니

목사님께서 기도한 후에
말씀하시는데
내년에 드라마가 두 편을
동시에 한다는 겁니다.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던
그 말씀이 떠오른 겁니다.

작가를 만났더니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라."라고
물어서 그럼 "나이가
넘 많다고." 하니
걱정 말라고 고치겠다는 겁니다.

그때 또 갑자기
목사님이 하신 말씀이
떠 오른 겁니다.

"일이 들어오는데
받기는 힘들 것이다."
그때 기도를 해라고
하신 말씀이 기억납니다.

그래서 너무 평안해서
작가에게 한다고 하니
나중에 전체 1등을
하고 그 작품이
 당돌한 여자이었답니다.

또 이산이라는 사극의
일일 드라마가 섭외가 오게 되고
목사님 말씀이 떠오르면서
결국 하면서
최고의 드라마가 되고
놀랍게 역사하십니다.

개인적으로 34년 동안
하던 담배를 끊게 되었고
금연 전도사가 되었답니다.

요즘에는 아임쏘리강남구라는
드라마와 예능프로그램의
아빠본색에서 딸과의 재미있는
일상으로 우리들에게 행복을
전하고 있는데요.

하나님은 우리들의 고난과
어려움을 통해서 믿음의
사람으로 훈련시켜서
예수그리스도만을
증거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SBS 예술단장 <김정택> 장로
40대 이상이면
그가 만든 곡 한두 개쯤은
알 것입니다.

​전영록의 "불티"
"아직도 어두운 밤인가 봐"
현숙의 "정말로”,
인순이의
“외로운 밤이면 밤마다”
심수봉의 "미워요"등의
가사로 시작되는 인기가요가
그가 작곡한 것입니다.

현제 한국음악 저작권협회에
등록된 작사 작곡 편곡까지
모두 포함해 수록된 곡이
319곡 정도 된다고 하는데요.

월 저작권료의 인세가
2천만에서 3천만 원이 나오는데
지금은 그 인세로
봉사와 섬김의 삶을 살고
있답니다.

가수 현숙과 함께 병원,
요양원, 구치소 등에
찾아가는 음악회도 열고
무의탁 어르신을 위해
효 콘서트도 같이 한다고
하네요.

김정택장로는 평양 출신으로
미국 선교사로부터 세례를
받은 아버지의 신앙으로
태어나게 됩니다.

어릴 적부터 교회를 다녔지만
종교적인 생활만 했다는데요.

음악적인 재능을 처음
8살때에 피아노를 배우면서
알기 시작했으며
배재중학교를 거쳐서
서울예고에서 트럼펫을
전공하게 됩니다.
 
그리고 서울대학교
음대를 졸업하고
대중음악 연주가 겸 작곡자,
지휘자로 방송계와 밤무대에서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연주가 끝나고
불 꺼진 무대를 뒤로하고
돌아갈 때엔 허탈감과
끝없는 고독감이 밀려왔어요.

술로 달래 보기도 했지만
그것은 순간이었어요.

이럴 때마다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쫓기던 터라
쉽게 그만두지 못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회식을 가려는데
가수 심 봉수 씨와
전에 본 적이 있는
여자 전도사가 찾아와,

하나님이 보내서 왔다면서
"선생님! 어떠세요?"
그 물음에 이렇게 답을
했다는데요.

"죽지 못해서 살지요, 뭐...
그랬더니 이렇게 말합니다.
“더 이상 죄를 짓지 말라"라는
말을 남기곤 가버렸어요.

그 말을 듣자 처음에는 불쾌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자꾸만
그 말이 머릿속을 맴돌면서
가슴이 답답해져 회식에
못 간다고 양해를 구하고
차를 타고 무작정
강변도로를 달렸습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어요.
갑자기 엄청난
공포감이 그를 덮쳤어요.

그는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차 안에서 울부짖었습니다.

“주님, 잘못했습니다.
살려주십시오.”

정신없이 집에 와서는
먼지가 가득 덮여 있던
성경을 집어 들었어요.

그리고 피아노
밑으로 기어 들어가
끝없이 떠오르는
과거의 죄에 대해
회개하고 또 회개했어요.

밤이 새는 줄도 모르고
울며 토해내게 됩니다.

그 순간 어두움이 물러가고
뜨거운 눈물이 얼굴을 적시며
마음에는 감사가 넘쳤습니다.

회개한 후에
그는 신앙에 도움이 되지 않는
생활습관들을 정리해 나갔어요.

밤무대 출연도 중단했어요.
단호한 태도예요.
대단하지요?

이로 인해 생활에
어려움을 겪어야 했지만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하나님 품 안에
돌아온 저를 인도하소서...”
기도하며 나아갔어요.
쫓기는 삶을 다 내려놓았어요.

그리고 완벽하게 하나님께
자신의 시간, 재능,
심지어 일까지도 다 맡겼어요.

하나님을 진실하게
섬기는 사람이 되었어요.

 이렇게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며
살아가기 시작했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지금껏 맛볼 수 없었던
참 평안을 허락하셨어요.

생전 느껴 보지
못하던 여유를 주셨어요.

헛된 것을 버리니
가치 있는 것보다 의미 있는 것이
깨달아지게 하셨어요.

이렇게 마음의
평안과 기쁨을 주셨는데
이제 얼마 되지 않아
하나님은 그를
SBS 관현악단장으로 세워주셨어요.

그것만이 아니에요.
몇 년 후 합창단과 무용단을 합쳐
만든 예술단장의 직책까지
맡게 하셨어요.

놀라운 일이에요.
하나님은 교회에서도
그를 장로로 세우셨어요.

영혼의 귀함을 깨닫게 하시고
전도에 불을 붙게 하셨어요.

연주인 연예인 할 것 없이
누구든지 닥치는 대로
전도하는 열정을 불어
넣어주셨어요.

개그맨 이영자 씨를 전도를
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1997년 1년 동안 진행해온
"아이 러브 코미디"라는
녹화를 마친 뒤 송별회식을
위해 가려는데

이영자 씨가 갑자기 이렇게
물어봅니다.

"단장님, 숨겨놓은 여자 있죠?"
"엥... 뭐라고요?"

"제가 1년 내내 지켜봤는데
어떻게 단장님은 항상
싱글벙글 하세요?"

그 말을 당황스러웠지만
무슨 말을 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답니다.

그래서 "나야 뭐 할렐루야를
하니까 늘 웃죠
늘 다름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잖아요,
영자 씨는 웃을 일 많지 않아요?"

그랬더니 영자 씨가
"저는 그렇지 않아요
밤에 잠을 잘 못 자요."

순발력과 재치를
가지고 인기를 누리는
이영자 씨가 늘 새로운
아이디어와 노력을 해야
한다는 부담으로 항상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고

부모와 형제들의 생활을
거의 책임지고 있던 상황이기에
더욱 남에게 보여줄 수 없는
갈등과 고민으로 시달리고
있었던 겁니다.

장소를 식당으로 옮기고 나서
일부러 영자 씨 옆으로 가서
내가 웃을 수밖에 없는가를
설명하면서 예수그리스도를
소개해주게 되었고

그곳에 같이 있던 홍진경 씨와
조연출자, 코디 담당자에게도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몇 주 후에 이영자 씨는 교회에
나가게 되었고 다시
몇 주 후에는 아버지, 오빠
올케 온 가족이 예수를
믿게 되었답니다.

 김정택 장로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 “앞으로도
제 입술의 나팔을 불어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하려고 합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상한 심령을 고치시며
외로움과 고독으로 몸부림치는
우리에게 충만한 기쁨과
만족을 주실 수 있기에,

이 비밀을 혼자만 알고
있을 수 없어서
저는 오늘도 나팔을 붑니다”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댄스 가수가
흔치 않았던
80년대 후반에
 ‘아 바람이여’로
데뷔한 이후
‘널 그리며’,
​‘사랑의 불시착’ 등의
히트곡을 통하여
뛰어난 가창력에
탁월한 댄스 실력으로

1989년
KBS 10대 가수상과
mbc 가요대상 등
최고의 인기를 누린
가수 박남정을
소개합니다.

어머님의 소원이
목사가 되는 것을 원했고
박남정 씨는 음악에
관심이 많았는데

1985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음악을 하고
싶었지만 눈물을 흘리시는
어머니의 모습에

음악을 포기하고
안양 성결 신학대 영문과에
입학을 하게 되었지만
결국 적응을 못하고 
대학을 그만두게 되었고
연예인으로써의 삶을
살게 됩니다.

처음 방송을 시작을
mbc 합창단으로 하였답니다.

합창단에 들어간 이유가
연예인이 되기 위해서
였다는데요.

그곳에서 문희옥이
있던 소속사에
뽑히게 되었고

소속사 사장님이
작곡가이신데
이분이 아 바람이여를
주셨고 연습을 하고
데뷔하게 됩니다.

그리고 널 그리며를
통하여 ㄱ, ㄴ춤인
 댄스 열풍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렇게 잘 나가던
순간에 잠시 재충전의 기회를
가지고자 잠시 쉬는 중에
급변하는 가요계에
 따라가지 못하고

2004년 재기를 꿈꾸며
7집 음반을 발표했지만
성대결절이라는 큰 어려움에
가요계의 활동을 접게 되면서

다시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고
그의 곁에는 아내와 두 딸이
곁을 지켜주었고
날마다 기도해주시는
어머님이 계셨기에
힘을 다시 낼 수 있었답니다.

그런데
결혼 전에 부모님의
반대가 있어서
4년간의 연애와
4년간의 동거 끝에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왜냐하면 박남정 씨의 어머님이
목사님이셔서 지금의 아내
집안이 불교 집안이기에
반대를 하셨답니다.

그리고 또한 장모님도
반대를 하셨는데
아내의 나이가
8살 연하였고
연예인이라는 것으로
반대하셨답니다.

두 사람은 너무 사랑하였기에
4년의 동거를 통하여
결국 어머님이 인정해 주셨고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린 후에
지금은 두 자녀와 같이
교회에 잘 다니고 있답니다.

그의 아내인 허은주씨는
박남정 씨가 슬럼프에 빠졌을 때
불평이나 투정을 하지 않고
대신 기도로 힘을 주었답니다.

얼마 전에는
 "유자식이 상팔자"라는
곳에 나오셔서
딸 박시은, 박시우가
나와서
시청자의 사랑을 받기도
했답니다.

박남정 씨의 끼와 재능을
그대로 물려받은
딸 시은이가 탤런트로
데뷔를 했는데요.

육룡이 나르샤와
시그널에서 야무진 딸로
멋진 연기를 보여주면서

박남정 씨의 기도로
새롭게 펼쳐질
하나님의 쓰임 받을
시은이를 기대해 봅니다.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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