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 리더 :: '간증' 태그의 글 목록 (7 Page)

드라마 ‘인어 아가씨’,
‘왕꽃선녀님’, ‘주몽, ’
황홀한 이웃’, 영화 두사부일체
등을 하며

지금은 결혼해서
더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박탐희씨를
소개합니다.

배후자를 위해서
기도를 새벽에 가서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남편을 만나게 되고
또 엄마의 구원을 위해
기도했는데
예수 믿게 되는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남편을 만나기 전에
하나님이 주변의 사람들을
정리시키시고 중매 한 번도
들어오지 않아서
하나님께
"왜 저는 중매 한번
들어오지 않습니까?"
라고 할 정도였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서 온전한 가정을
이루기 원하기 위해였다고
고백한답니다.

남편을 위해 기도하게
된 계기가 있었답니다.

목사님이 예비된 남편을
위해 기도했냐고 물어보았고
그때부터 기도를 종이에
쓰게 되었고
집중적인 기도가 되었답니다.

 남편을 교회에서 만나
기도하는 모습에 반할 정도로
두 부부가 믿음으로
성장하고 있답니다.

박탐희 씨도 하미모
(하나님을 사랑하는
미녀들의 모임)의
멤버이기도 하고요.

여기 소속된 멤버로는 엄정화,
유선, 정혜영, 김성은, 엄지원
최자혜, 신지수, 박지윤 씨 등이
속해 있는 곳이지요.

아이를 가지기 전에
많은 기도를 쌓게
하셨답니다.

아이를 위해 태교 때부터
기도를 하고 나서
만나니
준비를 하고 기도하는
부모가 필요하다는
간증과 책을 쓰기도
했답니다.

박탐희 씨는
어릴 때 언니가 연애인를
해야 된다고 하면서
꿈을 가지게 되었답니다.

 10대 후반
광고 모델로 데뷔해
1998년​그룹
업타운의 객원 멤버로
가수 활동을 하다가
2001년부터 연기를 시작했다.
 
탤런트 박탐희 씨는
중학교 2학년 때
잠깐 교회를 다녔다고 한다. 
 

교회를 1년을 다니다가
그만두게 되었고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
2001년에 반포대교를 지나면서
한강을 바라보고 있다가
 
나는 어디서 왔나?
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묻기 시작했고

자신을 위해 기도를
해주는 친구에게
"네가 말한 교회를
한번 가보려고 한다
그럼 나의 정체성을
알 수 있지 않겠니?"
라고 했답니다.

교회에 가자마자
리더를 맡게 됐다.
동기를 모아놓고
제비뽑기를 했는데
리더로 뽑혔다고 합니다.

그해에 놀랍게도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심한 상처가
생기는 어떤 사건이 있었다.

넉 달 동안 세상과 단절 외롭게
투쟁하면서 힘들고 속상해서
하나님께 막 따졌다고 하는데요.

그리고 술을 못하는데
술 1병 반을 1분도 안되게
마시고는​

‘제가 왜 살아야 해요?
이 몸이 성전이라고 하셨죠?
망가뜨릴 거예요’ 하면서
투정을 부렸답니다.

그리고 기도하다가
 잠이 들었는데
환상을 보여주셨다고 합니다.

낭떠러지를
향해 계속 가고 있는데
저를 바라보고 계시는
 예수님을 봤어요.
 
예수님이 말씀하셨답니다.

"탐희야 그리로 가면 안 돼
​그곳은 낭떠러지야"
 
이렇게 말했답니다.
"밑에는 좋은 것도 많고
가지고 싶은 것도 많아
갈래요."

그런데 예수님이
방망이를 가지고 계시는데
박탐희 씨를 때리지 못하고
바닥을 때리신 것이지요.

박탐희 씨가 "너무 아파요
왜 때리시는 거예요"
하는데​

예수님의 가슴 가운데
파란 멍이 들어있는 거예요.

저 때문에 가슴을 치시다가
멍이 드신 자국이었어요.

저보다 더
아파하는 모습을 보면서
결단했죠.

“제가 잘못했습니다,
이렇게 사랑하시는데
이제부터 제가
예수님을 지켜드릴게요”라고요.
​ 
그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됩니다.

뱃속의 아이를 가졌을 때도
예수님의 사랑을 알았지만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는
더욱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면서
"나도 이렇게 아이가
사랑스러운데
하나님은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요"
라고 했답니다.

하미모의 모임을 통해
큐티와 기도를 하는
공동체를 주셔서
같이 기도를 나눌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합니다.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KBS 아나운서로
1986년부터 방송활동을
시작한 최선규집사님은
 '열전 달리는 일요일'
'전국일주'
'생방송 행복찾기' 등의
프로를 진행했고

 기독교TV '내가 매일 기쁘게'
MC를 맡고 있으며.
 현재 높은뜻숭의교회에
출석하고 있습니다.

최집사님의 가문은
친 할머니께서 절을 3개나
소유할정도로
불교 집안이며

최집사님은 대학시절에
불교 학생회장을 할정도로
불교가 가까이 있었습니다.

교회 다니는 친구들이
전도를 하면
"너나 잘 믿어 나는
부처님 믿을 거야."라고
핍박하는데 앞장 서곤
했답니다.

심지어 명동
코스모스 백화점 앞에서
전도하는 사람들과
싸울 정도였답니다.

그의 삶은
 예수를 믿지 않아도
척척 되어진 것이지요.

아나운서에 합격하고
스타 MC로
그의 삶은 거의 20년은
잘 나간 것이지요.
그런 그가 이렇게 믿음의
사람으로 바뀐 계기가
있었는데요.

집안에 형님도 아들 둘
최 집사님도 아들만 있어서
​ 32년 만에 얻은
딸 혜원이는 보물 같은
존재였답니다.

혜원이가 태어난 날
병원 복도에서 아버지가
만세를 외칠 정도였다네요.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1993년 9월 25일 토요일 11시 50분
SBS 행복 찾기 생방송을 마치고 나니
쪽지가 와 있었는데

"교통사고, 성모병원 응급실
딸 헤원 생명 위독."

쪽지를 전달받고 여의도에서
여의도 성모병원까지 차를
몰고 가는데 그날따라
교통체증이 심했고 너무
답답하고 괴로워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고
계속 눈물만 나왔답니다.

나중에 들은 일이지만
딸 혜원이가
집 앞에서 모래놀이를 하며 노는데
짐을 실으러 온 2.5t 트럭이
뒤로 후진하다가 무엇에
뒷바퀴가 걸린 줄 알고
뒤로 후진하다가
다시 앞으로 뺏으니  
 두 번이나 치여서
급하게 성모병원에 옮겨진 것입니다.

성심병원이 대림동에 있었고
녹화는 여의도에 있어서
평소라면 10분이면 가는 거리였는데
토요일이라 차 막혀
빨리 갈 수가 없게 됩니다.

자신의 삶의 가장 소중한 딸이
죽어가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너무 답답해서 가슴이 터질 것 같고
미칠 것 같은 것이지요.

가면서 너무 급한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하나님 살려주세요.!
아무것도 모르는 3살짜리
딸 혜원이를 살려주시면
하나님을 위해 살겠습니다."라고
절규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핍박하던
하나님께 떼를 쓰듯이
매달렸답니다.

"하나님 당신이 살아 계시다고요.?
그렇다면 저와 내기를 합시다.
제 딸을 살려주세요.
그러면 당신이 살아계시다는 것을
믿겠습니다.

딸아이를
이렇게 데려가지
​마십시오.
지금은 안됩니다.
만약 데려가시려면,
제 품에 있을 때 데려가세요."
라고 울부짖었습니다.

그렇게 울부짖으며
50분 만에
병원 응급실에 도착하여
최혜원이란 이름을 찾아서 보니
침대는 이미 흰 천이
덮인 상태이었습니다.

 흰 시트에 누워있는 딸을
품에 안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아이에게서
따뜻한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나는 “이 아이
안 죽었어요!”라고 소리쳤다.

아이는 “켁켁”하며
입으로 뭔가 쏟아내려고 했다.
나도 모르게 아이 목에
손가락을 넣어 무언가를 빼냈다.

핏덩이가 딸려 나왔고
그 순간 혜원이는
“휴우∼”하며 깊은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작은 소리로
“아빠, 아빠”라고 말했다.
죽은 아이로 판명 받은
혜원이는 그렇게 다시 살아났습니다.

최선규 아나운서는
그때 만약 차가 막히지 않고
10만에 갔다면 하나님을 찾았을까
라고 합니다.

그의 고백입니다.

10분 만에 갔다면,
그래서 하나님을 찾지 않았다면
아마 아이가 죽었다면 할 수 없고,
​살았다 하더라도 내가 좋은 의사를
어떻게든 찾아 내가
고쳐보려고 했을 거예요.

 그런데 저는
하나님께 차 안에서 고백했어요.
​우리 딸만 살려만 주신다면
당신이 시키시는 무엇이든지
 하겠습니다고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을 듣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 일 이후에
최 집사님 가정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축복을 누립니다.

나중에 성경공부를 하면서
이 말씀을 깨닫게 됩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최 집사님의 고백입니다.

​"하나님께서 태초부터
나를 사랑하셔서
통해하실 일을 위해
이 모든 일을 계획하셨다는 사실을.
​우연히 ‘하나님’을 부르짖은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기독교TV CTS에서
‘내가 매일 기쁘게’를 진행하고,
​많은 교회들을 다니며
간증하는 사람으로 세우셨다는 사실이
모두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감사한답니다.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K 팝 스타 2’ 파이널
무대에서 우승을 차지해서
우리에게 돌아온 
​ 악동 뮤지션’
이찬혁·이수현 남매를
키운 이성근, 조세희 선교사님의
간증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일산광림교회에서
2008년에 몽골에
파송된 선교사님이십니다.

특히 엄마인 조세희 선교사는
"행복 발전소"라는 가족명을 쓰며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삼을 정도로
가정의 소중함을 평소에도
가지고 있었고

아빠인 이성근 선교사는
오랫동안 교회에서 학생부 교사를
맡으면서 사춘기 아이들과
소통을 했었답니다.

이 두 선교사님의 가장
잘한 일은
"아이들을 기다려 준 것"이랍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교육도 없이
어떻게 악동뮤지션처럼 창의적인
아이들을 기를 수 있는지
궁금해한다고 합니다.

가장 편견적인 생각은
아이들이 몽골에서 푸른 초원을
누비며 자유로운 영혼으로
자랐기에 가능했다는
오해를 한다고 합니다.

사실 몽골의 푸른 초원을
뛰놀시기는 고작 1년에
겨우 7월과 8월인 두 달이었고

남은 시간은  영하 30~40도의
겨울 추위에서 지내야 했으며
봄에는 황사가 불어와
눈을 뜰 수가 없답니다.

그리고 몽골에 간 후에
찬혁이의 초등학교 6학년,
수현이의 3학년 때는
후원금이 줄고 재정적 한계와
아이들의 학교 적응의 문제로
어쩔 수 없이 홈스쿨링을
시작하게 되었지만

그마저도 힘들었으나
하나님은 그 어려운 순간에
인도하셨다고 합니다.

이 두 선교사님은 기도하면서 
아이들을 키우는 나름대로
삶의 규칙을 정해 놓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신앙관과 기독교적인 세계관을
가르치고 이를 위해
가정예배를 생활화하고
아이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발견되기 원했습니다.

어느 날
몽골한인교회 찬양팀에서
친구들과 춤추는 걸 좋아했는데
찬혁이가 기타를 두 달 배웠는데
노래를 만들었답니다.

첫 번째가 갤럭시이고
두 번째가 똑딱 똑딱 그러더니
나중에는 노래가 48곡이나 되었고
천재 뮤지션이 탄생했지만
그들의 삶이
평탄한 것이 아니었답니다.

큰 시련이 찾아왔는데
몽골에 처음 간 그때
학교 적응을 못하고
경제적 어려움까지 있어서
결국 1년 만에 홈스쿨링을
시작했고 사춘기의 찬혁이는
아빠와 갈등도 보였습니다.

하나님이 왜
이 상황을 허락실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답니다.

그때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께서 요한복음 2장의
가나안 혼인잔치에
대한 말씀을 보여주셨어요.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 회복이
먼저라는 사실을
철저히 깨달았어요.

나 자신이
희생될 각오와 함께
하나님이 원하시는 순종의
모습이 필요하구나
싶더라고요.

집에서 학교를 못 가니
급기야
학교에
보내달라고 해서
마음이 아팠지만
하나님께
깨닫게 하셨답니다.

“홈스쿨링의
주인은 나(하나님)다.
선생도 나인데 왜
너희가
선생 노릇을 하려고 하느냐.
부모인
너희도 학생인데,
누구를 가르치려고 하느냐.”

그 후로 간섭과
평가를 내려놓자
오히려 음악을
즐길 줄 알게 되었답니다.

선교사님께서
원하는 것은 한가지랍니다.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행복에너지를
다른 이들에게 마음께
나누길 원하는 것이랍니다.

선교사 부부가 아이들 키우는 방법

1. 아이들의 달란트대로
꿈을 지지해 주라

찬혁이가 처음 대는
기타를 배울 기회가
있었는데 더
이상 늘지 않았는데
자신의 노래를
하기 시작하니까
저절로 하게 되었답니다.

수현이도
보컬 트레이닝을
한두 번 받았는데
그만두게 되었고
오히려
놀래를 즐기도록
두니까 하루 종일
노래만 했답니다.

부모의 눈은 항상 아이들이
좋아하는 재능을 보는 눈을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가
필요합니다.

2. 하나님을 경외하는
아이로 키우기

이성근, 조세희 선교사님의
홈스쿨링의 중심에는
가정예배가 있고
최우선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하나님을 보고 만나는
삶을 살기를 원했답니다.

3. 사랑을 받아본 아이가
사랑을 줄 수 있다.

모여있는 가정에서
사랑을 받고 자라야
다른 사람에게도
사랑을 줄 수 있답니다.

4. 아이들에게
친구를 되돌려 주어라

"사춘기 아이들에게
가장 큰 동기를
부여하는 존재는
 친구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5. 아이들에게
스킨십을 자주 하라.

처음에는
아이들이 부끄러워했지만
나중에는 아이들이
아빠가 출근할 때
도리어 안아주고
토닥토닥해준답니다.

6. 정서적 안정감과 자신감을 주라

나는 쓸모 있는 사람이야
우리는 못났지만 예쁘다고
계속 이야기했답니다.

이 선교사님 부부가
힘든 청소년 시절에
하나님 때문에
살았기 때문에 자녀들에게는

"과격한 말이지만
체험을 통해
'하나님 떠나면 죽는다'라는
마음으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렸다"라고 했다.


그는 "아이들에게
'아빠가 경험한 하나님은
분명히 살아계시고,
아빠는 하나님 앞에
헌신된 삶을
살기로 했기 때문에

너희들이
사고 싶은 것을
다 사줄 수 없다'라고
말해줬고,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라고 했다.

그분의 선교사님의
자녀를 통해서
온 세상에 예수의 향기가
드러내길 원하는
마음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쓰시는
것에 감사가 되네요.

학교를 보내지도 못하고
집에서 자녀와 갈등을 통하여
오히려 더욱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자녀들의 달란트를 발견하여
기도한 것처럼

우리들도 자녀가
내 소유가 아니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녀가 되길 원하는
마음으로 당당하게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을 증거하는
부모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2003년 MBC 10대
가수 가요제 대상을
 수상하고
 2004년(휠릴리)골든디스크
 대상까지 거머쥐었던

우리들이 잘아는 노래
휠릴리, 덩그러니 굿바이등
수많은 노래를 부른
이수영씨를 소개합니다. 

가수가 꿈이였던
이수영씨가
중3 때 라디오프로
 ‘별이 빛나는 밤에’에서
 주 장원을 했어요.

 제가
가수의 꿈을 꾸면서
 계획했던 절차 중의
 첫 번째 관문이었어요.

거기서 상 받고
 대학가요제 가서
그런 꿈을 꿨는데,
그전에 하나님의
계획이 계셨던 거예요.

고3때 친구따라
 가스펠 콘서트한다고 해서
 그것도 모르고 그냥 갔어요.

처음에는 가수들이
 나오는 걸로 생각했는데
 저도 모르게 막
 눈물이 쏟아지는 거예요.

 가슴은 뜨겁고
 눈물은 쏟아지고….
 친구 손잡고 그냥 간 건데.
 친구가
 나를 전도하기 위해
애를 쓴 것도 아닌데

그냥 가서 울게 되고,
그 다음날부터
 제 삶이
 완전히 변화되었어요.

 ‘하나님이
살아계시는구나.’
 그리고 호기심이
 끝도 없이 시작됐어요. 

 가수를 준비한
소속사에 전화를 걸어
가수하지 않겠다고
하고
가수의 꿈을 접고

24시간 중에
 다른 친구들은
 4시간 자고
 20시간 공부할 때
 저는 4시간 자고
 20시간 전도하는 데에
 시간을 다 썼어요.

300명의 친구들을
  전도했답니다.

이수영의 아버지는
 그녀가 초등학교
 2학년일 때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으며

 어머님은 스무살 때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그 후 2명의 동생과
 외할머니를 모시고
 살아야 했다. 

 그 때부터 여동생과
 남동생의 가장이 됩니다.

큰 시련이 오니
하나님을 원망하고
 가수의 길로 다시 가게되어
인기있는 가수가 됩니다.

정상의 위치에 있으나
영혼은 공허해지고
너무 힘들어 했는데

그때 친구인
이지훈가수가
너 왜 그렇게 사니?
그때 정신이 바짝들게 됩니다.

이지훈씨 자신이 간증하면서
새벽2시부터4시까지 기도하면서
자신은 어려움을 이겨냈다는 거예요.

그친구의 손을
 잡고 기도모임에
같는데 2시간의 기도가
처음에는 힘들었는데

나중에는
잊고 살던 방언기도가
터지면서 
밑바닥까지 잊고 살았던
상처가 치유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세월을
지었던 죄, 받았던 상처를
씻어주셨고 그때부터
하나님 앞에 다시 서게되었습니다.

그의 고백입니다.
"너무 부끄러웠고
시편 2편4절의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는 말씀을 깨닭게 해주셨습니다.

처음 가수 시작한 소속사가
가수가 혼자이였고
 사장이 핍박이 심해서
그것때문에  힘들어서
차에서 뛰어내리고 싶었고
그것이 상처가 되어
힘들었고 어려웠답니다.

그곳에서
주일을 지킬수도
없었​답니다.

기도중에 최고의 몸값일때
기독교인 사장의 소속사를 만나게
돈보다는 신앙을 선택하여
 처음은 좋았습니다.

또 다시 소속사가
가수를 키운곳이 아니라서
회사가 커질수록 사장의
모습이 바뀌면서
너무 힘들게 됩니다

그의 고백입니다.

"다 내려놓고 오직
기독교인 사장을 선택했는데
잡은 것이 썩은 밧줄입니까?"
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했답니다.

오직 수익 창출과 악행을
보면서 끝까지 기도하면서
기다렸는데 돌아오지 않아서
돌아서게 되고 그 회사가
소송을 걸고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것은 자신의
고모가 부모역할을 했는데
대리법적으로 오고 가면서
하나님께 돌아오게 된것입니다.

영혼구원을 위해
고난을 주신것에
감사하게 되면서
잘 정리해 주게됩니다.

결국 일인 기획사로
시작하게 되면서
목사님과 예배드리게
되었고

그때 목사님께서
"하나님이 가라고
 하면 가라"
이 말씀에
경험이 없지만
순종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응반8집에
"내려놓음"을
발표하게됩니다.

지금은
2013년
 9월 이후
블루프린트
 뮤직 소속이다. 

이수영씨가 전도했던
탈렌트 서민정씨의
간증을 들어보면
하나님은 놀랍게
역사하시게됩니다.

서민정씨가
2004년 SBS 라디오에서
 DJ를 하고 있을 때
그의 프로그램에
가수 이수영씨가
출연하여 처음 만나게 되었다

 그날따라 이수영씨가
아름다워 보였기에
그 비결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이수영씨는 하나님이
다 해주시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예전같았으면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비웃을 지도
모르겠지만
그날만큼은 알지도 못했고
 알수도 없었던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주셨을 것
같은 확신이 들었다.

방송중 광고나 노래가
 나올때마다 이수영씨에게
 하나님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주었는지를 물었다.

 이수영씨는
이번 주일 우리교회
한번 같이 가자고 제안했다.
그래서 함께 분당
 지구촌교회 예배에 참가했다.

하지만 설교내용이
귀에 들어오지 않고
찬양할때마다
사람들이 손을 드는
모습도 어색하고 무서웠다.

그래서
몇번 예배를 참석하다가
 이수영씨의 전화를
피하게 되었다.
 이수영씨는 마지막 음성
 메세지를 다음과
같이 남겨주었다.

 "너를 통해 다시
겸손함을 배우게 된다.
네가 나에게
하나님에 대해 질문할때
나는 전도할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으로 마음이 들떠있었는데
 하나님은 다시 들뜬
 내마음을 내려놓게 하신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기도뿐이라는
 말씀을 주셨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하나님은 한번 시작하신 일은
 절대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나의 임무는 여기까지이지만
다른 사람을 너에게 붙여주셔서
 더깊이 하나님을 알게 하실거야.
그때까지 기대하고 기도를 할께"

그후에
사랑과 야망이라는
드라마를 찍으면서
 이유리씨를
만나게 되면서

결국 서민정씨는
예수를 믿게 되었고
 거침없이 하이킥을 통해서
인기도 얻고 미국에서
결혼해서 예수님을
증거하게 됩니다.

이수영 커플은 
 다니는 교회
지인의 소개로 만나
 1년 가량 교제한 끝에
 부부의 연을 맺게 됐다.
 
 이수영은
 예비 신랑을
 “내가 항상 기도해오며
 꿈꾸던 분”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하나님은 한 영혼
한 영혼의 구원을 위해
고난을 통해서 이지훈을
통해서 이수영씨가 예수믿고
또 서민정씨가 예수믿고
참 하나님은 멋진분 같아요.

하나님께서 우리들통해서
죽어가는 영혼들을 살릴려고
잠시 어려움과 고난이 와도
더 큰 하나님의 계획이 있답니다.

고난을 당당하게 기도와
말씀으로 붙잡고
지금도 하나님께 나오지 못하는
영혼들을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기도하도록해요.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남양주 추수감사 교회를
 담임하고 계시는 분은 바로
​탤런트이셨던
 이진우 목사님이신데요.

 한세대학교를 졸업하고
​ 목사 안수까지 받으며 
본격적으로 사역을
 하고 계십니다.
 
 사모님은 이응경 씨
탤런트이기도 하지요.

그럼
이진우 목사님은
어떻게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을까요.

집안이 불교 집안이었고
어머님이 불공을
드려 낳은 지식였고
어렸을 때는 부처상이라는
말을 듣고 자랐답니다.

중학교 때는 장래희망이
스님이라고 할 정도이었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잃어버린 자녀를
구원받기를 원하셔서
자신의 펜이었던 분을
통하여 역사하십니다.

​이진우 목사님의 고백입니다.

 2004년
sbs 아침드라마
‘초원’을 하고 있었는데
 미국 뉴저지 주에 사는
  74세나 되신 박형자 권사가
편지와 책 두 권을 보내주었습니다.

당시 권사가
무엇인지도 몰랐고,
누가 장난하나 보다 했습니다.

버리기는 뭐 해서
집에 가져다가
구석에 놔뒀는데,
그로부터
2달 반 후 새벽 2시 반에
벌떡 일어나 앉아
주기도문을 외는 겁니다.

저도 모르게
의아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제가 중학교 때
기독교 학교를 다녔던 거예요.

박형자 권사의 편지에는
“하나님께서 이 선생을 많이
사랑하셔서
아래 구절을 적습니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않음과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시편 1편 3절’ 하나님이
이 선생을 많이 사랑하시며
나한테도
기도 많이 하시라고 해서
축복기도 많이
드리고 있습니다”라고
씌어 있었어요.

그로부터 일주일 후쯤
또 새벽 2시에 자다가
 벌떡 일어나 앉았는데
머리끝에서부터
보호막이 쳐지면서
모든 근심과 걱정,
두려움이 사라지는 거예요.

그날 이후부터
불을 끄고 잡니다.
​그 전에는
 불을 켜고 자야 했습니다.

몇 년 전 어느 행사장에 갔다가
유명한 점을 보는 사람에게 명함을 받았습니다.
저는 손금도 안 본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그 사람 생각이
나서 전화를 했더니
왜 이제 전화했느냐고 그래요.

그 사람이 나라를 위해서
큰 제를 지낸다고 해서 좋은 일한다고
경제적으로도 힘든 상황이었는데도
천만 원을 드렸고, 제도 참관했습니다.

그 후 그 사람이 저에게
불상을 갖다 주기 시작했어요.
 중국 것이다, 북한 것이다 하며
여러 가지를 갖다 줘요.
처음에는 거부했어요.

그런데도 막무가내로
 갖다 줘서 받다 보니까
모아두면 나중에 돈이 되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 나중에는 또 없느냐고
그래서 집에 한 방
가득히 많은 불상이 있었어요.

어느 날 자다가 깜짝 놀랐어요.
딱 소리가 나면서 불똥이 좌측에서
우측으로 튀면 눈이 번쩍 떠져요.

새벽에. 깜짝 놀라요.
그런 다음 무서움이 생기고.
불상이 있는 방을 보면
아무렇지도 않다가
내 방에 오면 무서운 거예요.

그때부터 불을 켜고 잤어요.
굉장히 무서웠습니다.

그리고 머리와 눈과 허리를
쇠꼬챙이가 찌르는 것 같은 통증이 왔어요.

어느 날 안 되겠다 싶어
가져가라고 해서
트럭으로 네 차인가
다섯 차를 가져갔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악마
소굴에서 살았던 것 같아요.

어느 날 미국에서 편지를 보낸
박형자 권사님이
국내에 오셔서 전화를 하셨어요.

그때만 해도
 좀 이상한 사람 아닌가,
사기꾼이 아닌가 생각했어요.
70살이 넘은 분인데도. 

어느 날 TV를 보고 있는데
제가 딱 나오더래요.
그때 하나님이
음성을 주신겁니다.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
편지를 보내라” 그러셨대요.
나는 모른다고 하자,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대로 하여
소포를 보낸 거예요.

편지를 어떻게 보냅니까 ?
그러니까 편지지를
책상 위에 놔두고 기도하며
네가 느낀 대로 써라
그래서 편지를 쓴 거예요.

저는 이 편지를 받고서도
술 담배를 많이 했고,
권사님 만나 말씀을 듣고
자다가 벌떡 일어나
주기도문을 하는
그런 과정에서도
하나님을 전혀 몰랐어요.

그러다가 어느 날
 하나님이 예비해 놓은
이응경씨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존재를
어렴풋하게 느끼던 그는
이응경 집사의
안타까운 사연을 접하게 된다. 

19세의 어린
나이에 결혼했던
이응경 집사의
삶은 시련의 연속이었다.

 전 남편과 14년간의
결혼생활은 결국
이혼으로 마무리됐다.

친정에 돌아온
이응경 집사에게
또다시 시련이 찾아왔다.

아버지가 혈액암
선고를 받은 것이다.
무당이 접근해왔다.

함께 절을 짓자고 했고
‘굿을 하면 아버지가
살 수 있다’는 말로 꾀어
수천만 원을 갈취했다.

이런 이응경 집사의
상황을 알게 된 이진우 집사는
법당을 찾아가 모든
집기를 끄집어내어 불 질렀다.

이응경 집사와 함께 기도하며
그녀의 회복을 전적으로 도왔다,
만난 지 40일 만에 이진우 집사가
프러포즈했고 이들은 결혼에 골인했다.
​ 
당시 두 사람은 각자
아들과 딸을 데리고
재혼 가정을 이뤘다.
이들은 3년 전부터
교회에 출석했다.
​ 
목사님이 7개월간
 일주일에 한 번씩 심방을 오셨고,
 집안을 70일
 여리고를 돌게 하셨어요.

 그리고 7개월 되는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때
 가족 모두 세례를 받았습니다.

목사님이 심방 오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주셨어요.

“네(이진우)가 고집이 세니까
너에게 직접 임하리라.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하라.
 내가 너에게 직접 역사하리라”  

이진우 목사님의 고백입니다.

제가 40일 후에 방언이
터지면서 환상을 본 거예요.
목사님이 보니 제 안에 있던
전봇대만 한
구렁이가 쑥 나가더래요.

하나님을 만난 이후에도
위기는 찾아왔다.
지난 5월 이진우 집사가
뇌출혈로 쓰러졌다.
평소처럼 교회에서 간증을 하던
중 갑작스럽게 어지럼증을 느꼈다.

“대전 중문교회에서
간증을 할 때였는데
 갑자기 어지럽고
구토 증상을 느꼈어요.

가까스로 간증을
마치고 단상에서
내려와 인근 병원을 찾았죠.

최근 몇 달간 드라마
촬영에 교회활동까지,
너무 무리해서 그러려니 하고
그날 밤을 병원에서 보냈어요.

서울로 올라와
다시 병원을 찾았는데,
MRI며 CT 촬영을 하더니
 ‘뇌출혈’이라고 하는 거예요.

저나 집사람이나 깜짝 놀랐죠.
바로 수술실로 들어갔는데
수술이 끝난 뒤 의사의
첫 마디가 ‘기적입니다’였어요.

뇌출혈이라는 게 말 그대로
뇌에서 핏줄이
 터져 흘러내리는 건데,
제 경우는 피가 굳어 있어서
그 덩어리를 살짝
떼어내기만 하면 됐던 거예요.

덕분에 수술 시간도 보통은
네다섯 시간이 걸린다는데
저는 1시간 50분 만에 끝났어요.

의사 말이 피가 자연스럽게
굳었다는 것도
믿을 수 없을뿐더러
뇌출혈이 시작되고
하루가 지났는데도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건 ‘기적’이라고
하더라고요.

뇌출혈로
반신불수가 되거나
언어장애가 오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아무런
후유증이 없거든요.
분명 하나님이
지켜주신 거라 생각해요.” 

 이진우 목사님은 이때부터
주의 종으로 가기로
결심하게 됩니다.

그의 고백입니다.

 “3년 전 뇌출혈로
수술을 받고 건강을 되찾은 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
목회자의 길을 걷기로 했다"라며
“앞으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성실하게 목회를 해 나갈 것”
이라고 말했다.
​ 
이진우 목사님는  결혼 후
전원생활을 하기위해
산과 강을 끼고
있는 한적한 팔당리 마을에
땅을 마련했는데

 2005년 이응경 씨와 결혼한 뒤
2층 집을 지어 살다 
1층에 교회 예배당을 만들었다.
​이곳이 지금 사역하고
계시는 추수감사 교회입니다.
 
그분의 고백입니다.

“돌이켜보니 모두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땅 구입과 교회 개척, 감사예배까지
모두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우리 부부는 하나님이
이끄시는 대로
순종한 것밖에 없어요.
하나님께 순종하니
원하는 것을 주셨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의지하니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시고(출 13:21),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여주신 것
(출 16:12∼31)처럼 말입니다.”

 실제 이진우 목사님의 설교를
들어보면 이전에 연기자이셨는가
할 정도로 너무 열정적으로
하나님의 사역하시는 것을 보면서
기쁨과 감사가 넘칩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시며
약속하신 언약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어떤 환경과
상황 속에서도
결코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성품과 살아온
인생을 잘 알기에
꼭 알맞게 인도하시고
응답하시며 가장
멋지게 예수 이름을
증거하는 축복의
증인으로 쓰실 것을
믿습니다.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2014 MBC연기대상
시상식에서 '왔다 장보리'로
대상을 수상하며

 "사랑하는 우리
남편 정말 감사하다.
힘들고 어렵지만 함께
오래 오래 행복
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전한
탈렌트 이유리의
신앙고백을 나누고자 합니다.

영화와 드라마를
23편이상 출연하며
오랫동안 내공을 쌓았는데요.
 
그녀가 지금의
신앙생활을 하기까지
뿌리깊은 불교 집안의
높은 벽이 있었습니다.

어느 정도였느나 하면
그의 차에 늘 불경을
담은 cd가 있을 정도였답니다.

그의 고백입니다.

"저의 집안은
대대로 불교집안이었어요.
어느 누구도 안 믿으시고,
할머니와 할아버지께서는
안 좋은 것들을 믿으셨는데,
하나님께서 저를 구원해 주셔서
오늘 이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1남3녀중
막내딸로 태어난 그는
다른 사람과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는
외향적인 성격이였지만  

또한 내성적이고
상처를 많이 받아서
혼자 있는 것을 좋아했고
자신의 울타리에 갇혀서
청소년기에는 왕따와
다름없는 시기를 보내게 됩니다.

의외로 그는
미술를 전공했는데
우연히 오디션을
보게 되었고 그 경험이
너무 좋아서 연기속을
빠져 들게 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발견하게
된것이지요.

그의 고백입니다.

"연기를 하는데
온 몸에서 떨리는
희열이 느껴지더라구요."

그는
연기자로 해석하고
소화하기 어려울때는
기도함으로써 하나님이
주시는 감당할수 힘을
얻는다고 합니다.

어느 정도냐하면
촬영을 마치고
모니터를 보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발견하게 되고
감사가 된다고 하네요.

이유리씨의
가정구원의 간증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유리씨 집안은
아무도 안 믿으셨는데,
제가 하나님께
4년 정도 계속 기도했답니다.

부모님께 같이
교회 다니자라고 권면하면
소리지르고 너나 가라고 할때에도
꾸준히 식사때 혼자  기도했답니다.

이유리의 고백입니다.

어느 날 아버지께서
저를 기다리시는 거예요.
식사를 안 하시고.
그래서 이왕 하는 거
엄마, 아빠 함께 기도하면
좋겠다고 하니
순순히 들어 주셨어요.

저는 기도 기도할 때
‘하나님, 맛있는
음식을 주셔서 감사하옵고,
이 음식물이
에너지가 되게 해 주시고,
이 음식을 만든
저의 어머니 손길을
기억하여 주세요.’라고
기도했는데,
아버지 눈에서 눈물이
그렁그렁 한 거예요.

저는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딱히 부모님 교회 나오게
해 달라는 그런
기도를 한 적이 없는데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하나님께서 성경에
식사기도 하라고 해서
작은 행동을 했을 뿐인데
하나님께서 그때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마음을 움직여 주셔서

어머니가  크리스마스 때에
교회 등록을 하게 하시고,
세례를 받게 하셨어요.

어느 날
기도하고 성경을 보는데
언니가 ‘네가 지금 그럴 때냐.
영화보고, 연기연습 할 때인데
성경말씀만 볼 때냐’고
다그쳐서 굉장히 상처를 받았어요.

그런데
한 달 후 언니가
자기도 교회 나가야
되겠다고 하는 거예요.

언니는 얼마 전
하나님을 믿게 되었고,
당시 저는 몰랐지만,
제가 한 작은 행동들을 통해서
성령님께서 역사해 주시고
계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유리씨가
처음 신앙생활했던
고백입니다.

 2003년 1월에 친구가
교회 가면 좋다고 하여
나도 한 번 가볼까 하고
교회에 나가게 되었고,

그때 그녀는
인생에 정답이
있을 것 같은데
도무지 알 길이 없어서
철학을 공부할까 생각하던
무렵이였답니다.

친구가 사 준
성경책에서
주기도문을 읽게 됐어요.

‘시험에 들지 말게 하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그 말씀을 읽고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는 거예요.

제가 살아온
환경이 악했었나 봐요.
이유도 없이 마음이
아프고 괴로운 거예요.

예배를
드리러 들어갔는데
왜 이제야 불러주셨느냐는
듯이 앞으로 넘어져서
주님 앞에 엎드렸어요.

그때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고,
세상 속에서 채울 수 없던
가슴에 뻥 뚫린 구멍을
하나님이 사랑으로 채워 주셔서
하나님을 만나자마자
사랑하게 됐어요.

교회를 다니기 시작한후에
이상하게 주일만되면
촬영이 있어서 괴로웠답니다.

몇 주 동안
주일을 못 지키고
 어느 날 차 뒤에 있는데
갑자기 눈물이 막 나오는 거예요.
아무 이유도 없이 너무 힘들고….

매니저에게 가까운
교회에 가자고 했어요.
예배도 없는데.
교회에 발만 들여놓았는데
하나님의 사랑이 확 느껴지는 거예요.

제가 회복되는 것을
느끼기 때문에
예배드리지 못할 때는
금요철야예배라라든지,
그렇지 못할 때는
제가 섬기지 않은
교회라도 가면
하나님이 늘 계시는 거예요.

성전에 들어가기만 해도
저를 만나 주시고,
찬양만 들어도
하나님이 만나주셔서
밥은 굶고 잠은 못 자도
꼭 하는 것은 기도와 예배입니다.


이유리씨가
 가장 좋아하는 찬양인
 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 자’를
즐겨 부르는 것도
큰 것에서부터 지극히
작은 것까지
세밀하게 응답해주시는
하나님이 마냥 좋기 때문이다.

새로운 인생에
 2막장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는데요.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강력한 성령의 체험을 하면서
새로운 2막2장을
 써나가기로 했습니다.

한국 교회를 위해
저의 달란트를 아낌없이
드리고 싶은 소망이 생겼어요.”

작은 도움이라도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가려 한다.

또 조연 주연,
심지어 엑스트라든
배역의 크고 작음을
더이상 개의치 않는다.

“최근 하나님이
환상을 보여주셨어요.
손이 3개나 되더라고요.

 원래 두 손에다
야망의 끈을 잡고 있는
한 손이 더 보였어요.
잘못된 손은 반드시
제거해야죠.”

이유리는 배우자를
위해 기도를
하기 시작합니다.

"존경할수 있는 사람이요.
그리고 저를 하나님께
더 끌어 줄수 있고
멘토가 되어 줄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사람은
완벽할수는 없지만
하나님을 만나면
그 부족한 부분이
조금씩 완벽해지는 것을
느끼는데
그런 사람이면 좋겠어요."

그리고 드디어
하나님께서 그런
남자를 만나게 하십니다.

이유리의 남편 조목사는
원래 잠실에 호산나교회라는
작은 교회에 전도사를 했고
이유리보다 나이가
12살연상인데요.

이유리는 이전에는
큰교회를 다녔는데 
그쪽에는 일꾼도 많고
더 하나님께
헌신할곳을 찾다가

 크지 않는 호산나교회를
다니게 되는데
그곳에 하나님은 선물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호산나교회의
목사님이 여자목사이고
지금의 이유리
시어머님 되시죠

여목사님을 따르고
좋아해지다가
그분의 아들을
만나게 됩니다.

이유리의 고백입니다.

"어느날 스쿠터를 탄
그분이 헬멧을 쓰고 있는데
너무 멋져보이더라.
내심장이 시동이 걸렸고

내 스타일은 아닌데
장갑을 터프하게 끼고
헬멧을 쓴 뒤 시동을
거는 모습에 반했다."

 그때부터
짝사랑이 시작됐고
놀이동산에서 남편이
짝짝이로 신은 양말을
보면서 평생 챙겨주고
싶어서 먼저 고백을 했는데

남편은
여자로 보이지 않고
여동생으로 밖에
안 느껴진다는 말에
그전에는 청바지만 입던
여자가 여성스러운 옷으로
변신하기 시작했고

남편 집안에서도
나이차이와 연예계 쪽과
목회쪽이 달라서 반대를
했답니다.

1년동안
꾸준히 사랑하는
변함없는 마음에
결국 받아주시고
결혼에 공인하게 됩니다.

이유리는 삶속에서도
예수님을
증거하는 삶을 살고자
남보다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고,최선을 다해
NG없이 연기하려고
노력을 한답니다.

몸관리를 위해서도
꾸준한 운동을
위해서 수영과
헬스를 쉬지않고
정서적인 연기자가
되기위해서
색소폰과 무용도
배운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반드시 가족구원과
삶의 응답으로
인도하신줄 믿습니다.

이유리씨처럼 자신의
달란트를 발견하고
성실하게 준비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최고의 작품답게
최선을 다해 사는
예수의 증인되시기를
축원합니다.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어린 시절
목회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는 이성재집사는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
출신의 배우입니다.

MBC 24기 공채로 TV 드라마
<두 여자의 사랑>을 통해
배우생활을 시작한 그는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
<주유소 습격사건>
<신라의 달밤>, <공공의 적>등
우리에게는 영화배우로
많은 기억하고 있죠.

모태신앙이면서
 주일성수만은 훈련이
잘되어있습니다.

어느 산속에서
촬영을 해도
꼭 지킨다고 하는데요.

어느날은
지방 촬영을 같은데
 교회가 문이 닫히어
있어서 결국 혼자 가서
기도하고 오기도 했답니다.

고3때 고외를 했는데
과외 선생님이
2시간중에 1시간은
말씀을 전해주어서
결국 신학교 간다고 해
집안이 뒤집힌적이
있어서 목사님과
상담을 하기도 했답니다.

그때 목사님께서 꿈이나
환상을 통해서나
말씀해 줄수도 있지만
조금 지나면 생각을
바꾸신다고 해서
기다렸는데
일주일후에 그런
생각이 없어지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이구나
깨닭게 되었습니다.

신학교의 꿈을 접고
막연하게
문과나 이과가서
직장이나 다니고
살고 싶었는데
연기학과에 가게되면서

이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집안분위기도
상상도 못했는데
아버지는 맘에 들지는 않았지만
신학교보다는
낫다고 해서 재수하고
결국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사실 영화배우가 되고
싶었지만 할수 있는것이
무엇인가 하다가
방송 공채로 들어가고 싶어서
3번째 만에 들어가게 됩니다.

하나님은 즉시
응답해주시지는 않는데
결국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처음방송에서는
2년동안 방송에서 한달에
2번에서 3번나간후에
결국 드라마에 케스팅되고
2편의 드라마가
시청률이 저조하게 됩니다.

처음으로 시사회때
공공의 적에서 아버지를
모시고 난후에
아버지가 하신 말씀
"다시는 그런 영화하지
말라"고 하시였답니다.

영화는 잘되면 감사하고
안되도 더 감사한다는 이분은
다시 하나님께 부르실때는
언제나 말로 듣지 않으니
때리시게 하신답니다.

일의 즐거움도 잃고
경제적인 문제도 오고
교회의 권사님들의 모습처럼
평안을 소원을 했는데

어머님이
 영성훈련원을 초청해서
가게 됩니다.
가서 신앙생활이 바뀌게 되고
성령충만과 방언을 하게되면서
하나님의 은혜속에서

몇가지 결단을 내립니다.
첫째는 담배와 술을 끊게 되고
둘째는 새벽기도를 나가게 되고
셋째는 회개가 나오게 됩니다.

그러면서
작은 개척교회를 가게되고
집사님으로 섬기게 됩니다.

처음 교인이 두세명이였고
옥수동 월드미션교회인데

그 교회를 보내시고
말씀훈련과
기도훈련을 통해서
 어린아이수준에서
성숙된 신앙으로 자라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놀라운 일을
준비하시는데
가장 알맞게 나를
교회로 인도하시고
말씀으로 훈련시키는
응답하시는
예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성재집사님은 말씀이
스폰지가 물을 먹듯이
말씀이 쑥쑥들어오게 됩니다.

이전에 차가
 없을 때는 택시로
옥수동까지 다니게 되며
전도를 새롭게 깨닭게 됩니다.

누구를 만나든지
예수를 믿으라고
하는 말이 쉽게 되고
누구를 만나든지
평안하게 전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한번은 목사님이 계속
예수 영접하는
전도를 보면서
자신이 직접 전도하면서
전달했는데
그 기쁨이 가득하게
됩니다.

미용실에 가서도
택시타면서도
보험가입하면서도
온통 예수님을
전달하고 싶다라는
참 멋진 집사님으로
변하게 됩니다.

전도할 목표를
정해서 먼저는
성경책을 사고
전달하면서
한달에 30명을 목표가
되기도 했는데
정말 한번은 31명이 되기도
했답니다.

지금은 3명인 교회가 70명이
되면서 축복의 집사님으로
섬기고 계십니다.

개척교회에 사람이 없으니
직접 운영위원장으로 맡고
제정 위원장이 그만 두어
하게 되고 주일학교 교사가
부족하여 하게되고
새신자반도
부족하여 하게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쓰임받고
있답니다.

2008년부터
하던것들이 안되면서
어려사건으로 고난이 오면서
긴 공백 기간으로 물질에 어려움도
당하게 되고 집안에 있는 물건까지도
내다 팔게 되고 차와 집까지 내어놓고

집이 근저당잡히고
남에게 보증서준것까지 밀려오고​
IMF의 경제 위기까지
곂치면서 할수있는것은
오직 기도 뿐이였답니다.

꼭집이 나가야 하는데
나갈수 없는 상황이 되니까

성경 인물처럼 해보자
하면서 여호수아처럼
여리고성을 7번 도는 것처럼
하면서 여호수아처럼
여리고성을 7번 도는 것처럼
집을 돌게 되었답니다.

월요일부터 집을 차로 돌로
7일까지 7번돌고 산에 가서
마지막에 소리를 질렸고
다음날 하나님께 집을
팔게 해주신것 감사합니다라고
미리 큰 헌금을 드렸는데

그 다음에 팔리게 되고
체험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 하나님께 받은줄 알고
믿고 생활을 실천하면
반드시 주신다고 고백합니다.

이성재 집사님의 고백입니다.

"제가 하는 연기는 아르바이트이고
세계선교가 제 본업입니다."
라고 말합니다.

이성재 집사님은 간곳이
월드 미션교회이고
국내이든지 국외이든지
한 영혼을 살리는 일에
달란트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원합니다.

이성재집사님은
고난을 통하여서
작은 교회를 만나게 되고
특별과외를 통해서 말씀과 기도로
회복되면서 교회와 현장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하는 그 마음이
하나님이 보실때에
너무 멋지고 아름답게
느껴지실것 같네요.

우리들에게 있는
하루 하루의
삶이 어쩌면 빨리
기도응답이 없는것 같고
여러고난이 곂쳐오니
힘들고 괴로울찌라도
하나님은 우리가
이해할수도 없는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1965년 신춘문예에
희곡 "성야"로 등단하여
작가,연극배우
그리고 방송인으로
살아온 오혜령씨를
소개합니다.

극작가 오혜령 씨는
연세대 영문과를 졸업 후
모교인 이화여고에서
교편생활을 해왔습니다.

그러던 중
 조선일보와 경향신문의
신춘문예 희곡 부문에
잇달아 당선되며
등단 한 후 극작가,
라디오 DJ 등
만능스타로 이름을
높였습니다.

특히 1960~70년대를
풍미했던
'별이 빛나는 밤에'서
DJ로 방황하는
청춘들의 '대모'로
활동한 것은
너무나 유명합니다.

하지만 한창나이인  
30대의 젊은 나이에
까마득한
절망의 나락으로
추락하게 됩니다.

1978년도에
 ‘위암과 임파선 암’이라는
청천벽력의 진단을
받게 되었고
의사는 3개월을 넘기기
힘들다고 판정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숱한
질병 속에서
용케 살아왔는데
그것도 모자라 중년에
위기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기독교인으로
성장해왔지만
하나님께 항변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진리를 추구해 온,
제게 왜 매를 드십니까?

당신이 살아 계신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이 고통 중에
말씀해 주시지 않으면,
더 이상 믿지 못하겠습니다."

그렇게 원망하는 가운데
통증은 24시간 동안
단말마로 다가왔습니다.

너무 고통스러워
차라리 죽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달력의 숫자에 빨간
색연필로 빗금을 쳐
나갔습니다.

예정된 죽음의 날짜인
6월 26일에 빗금이 쳐진지
며칠이 더 지났습니다.

물만 먹어도 토하고
혈변을 보는 고통이
계속됐습니다.

어느 날 정신이
몽롱해지기 시작하자
그때 어디선가
그녀의 목덜미를 낚아채는
강한 손길이 느껴졌고 순간
방바닥에 나동그라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삶과 죽음에
개입하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을
원망한 것에
​대해 두려움이
엄습했습니다.

지난날 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으며,
며칠 동안 눈물로
회개했습니다.

 이제는 육체적인
 암이 문제가 아니라
영적인 암이
치료받지 못하면
‘구원이 없다’라는
두려움으로 가슴을 쳤습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난 어느 날,
기도와 찬양으로 예배를 드리던
중 온몸에 오한이 덮쳤습니다.

‘아 이제 부름받는구나’
죽음을 예감하면서
이불깃을
잡아당기는데 웬일입니까?

겨드랑이의 임파선
암 덩어리가
만져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자세히 만져보니
멍울이 없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어깨에
복숭아씨만 하던
멍울도 사라져 버렸습니다.

또 한 복수로 차올랐던
배가 푸~욱 꺼졌습니다.
그동안 가빴던 숨도
고르고 평안해졌습니다.

 너무 놀란 나머지
‘주님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너무 감사한 나머지
서원기 도를 올렸습니다.

‘덤으로
얻은 인생 앞으로
소외된 자들과
함께 살겠습니다.’

그런데,
다시 9년 전에
‘관상 대동맥경련증’이란
희귀병에 걸려 지금까지
투병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을 정도로,
그녀는 질병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몇 번씩이나
찾아온 질병과
죽음의 고통 앞에서
욥과 같이 간절하게
울부짖었다고 합니다.

     그때마다 그녀는,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도움의 손길을 순간
순간 경험하면서,
 
남편 권오정 목사와 함께
경기도 화성군 비봉면에
'평화의 집'을
개원한 후 무의탁 노인과
결손가정 자녀들을 돌보며
헌신적 사역을 오늘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오혜령씨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제가 삶의 에너지를 받는 것은
잠이나 먹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자신의 육신을
지탱하는 방법일 뿐입니다.

저의 힘의 활력은
오직 주님을 의지하게
하는 기도입니다. 

그분 안에 거하는
자체만으로도 한없는
평안을 경험합니다.
 
​절망의 뒤편에 희망의 빛은
이렇게 실제로 존재합니다.
육신의 구원을 넘어 영혼 구원에
초점을 맞출 때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됩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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