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 리더 :: '간증' 태그의 글 목록 (3 Page)

"아시나요" "슬픈 영혼식"
"너의 곁으로"등
발라드의 황태자로
불리는 조성모 씨를
소개합니다.

그런데 이분이
조성모 집사님으로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니
감사할 뿐이네요.

조성모 집사님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크리스천이라고 고백하는 게
왜 힘든 일일까?"

"오히려 자부심을 가지고
들어내야지 순간적으로
머뭇거리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먼저
 조성모 집사님의
20주년을 맞이하여
활동했던 모습을 잠깐 나누고
신앙고백을 나누도록 할게요.

1998년 9월에 
조성모의 데뷔 앨범을
발매했지만
공식 데뷔 무대는
하지 않고
뮤직 비디오"To Heaven"을
광고하면서
인기를 누리게
되었는데요.

사람들이
얼굴 없는 가수로
방송에 출연을 하지
않으니
 목소리에 비해
 얼굴이 딸리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가졌지만

하지만 한 달 뒤
이소라의 프러포즈에
출연하면서
외모까지 받쳐준다는 것이
알려졌고,
 풋풋한 얼굴과 목소리를
무기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그 해
최고의 신인가수가
됩니다.

1999년 9월 9일
 발매된 정규 2집 앨범
 타이틀곡은 슬픈 영혼식은
  총 판매량 2,047,152장으로,
그 해 KBS, MBC, 서울가요대상,
골든디스크 시상식에서
대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현제 조성모 집사님이
교회에서 찬양 감독으로
하나님께 섬기고 있다고
합니다.

교회에서 찬양인도하면서
이렇게 고백한답니다.

"저는 오늘 그리스도의 편지로
온 조성모입니다"라고
시작한답니다.

"하나님께서
많이 사랑한답니다."

그럼 많은 성도님들이
감동하시며
기뻐한다고 합니다.

20주년을 맞이하여
하나님께만 받으려고만 했지
드릴 기회가 없었기에
"Thanksgiving"이라는
이름으로 CCM 클래식
앨범을 발표했답니다.

조성모 집사님은 처음부터
가수가 되려고 한 것이 아니고
작가가 꿈이었지만 이것으로는
먹고살기 힘들 것 같아서
가수가 되었다고 합니다.

고등학교에서 수학여행에서
장기자랑을 하면서 노래를 하는데
인기스타로 떠오르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나를
이렇게 인도하시는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답니다.

조성모 집사님이
 처음
예수 믿게 된 계기가
있었답니다.

원래 불교 집안이었기에
​주위에 어느 누구도
교회와 예수님을 알려주지
않았는데 전국에서 1등을
한다는 친구가 전학을
오게 됩니다.

그런데 목사님 아들이었고
그 친구가 전도를 하게 됩니다.

조성모 집사님이 학교 끝나고는
그 친구에게 "나와 오락실 가지고
하니까"
그 친구가 하는 말
"네가 주일날 교회에 온다면
같이 오락실 갈게"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교회에 가게 되었고
사람들이 반갑게 환영해주고
따뜻하게 맞아주고 교회 선생님이
떡볶이도 사주고 좋았답니다.

목사님 아들
친구가 테이프를
선물해주었고 찬양사역자
송정미사모의
찬양이었답니다.

찬양을 처음으로 들으며
눈물을 흘리게 되었고
"때로는 너의 앞에
어려움과 아픔 있지만"
들으면서 마음에
감동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결국 찬양을 품고
가수까지 가게 됩니다.

가수로써 정상까지 갔지만
예배의 자리를 잃어버리는 것이
가장 힘들었답니다.

4년 동안 한 번도 쉴 수가 없었기에
영혼의 힘을 얻을 곳이 없었고
슬럼프가 오게 되었습니다.

나중에야 깨닫게 되었답니다.

다시 예배를 회복하게 된
시기가 3집 앨범
"아시나요"활동 당시에
 
차에 타고 있는 불안정한
조성모 집사를 발견한
친척 형이 무조건 예배 자리로
데리고 가고자 했답니다.

그 후로 무조건 예배를
가게 되었답니다.

조성모 집사님의
아들이 아플 때에
"내가 아들을 위해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면서
예수님이 왜 날 위해
십자가에 죽으셔야 했는가를
깨닫게 되었답니다.

조성모 집사님은 이렇게
기도한답니다.

"주님이 허락하시는 곳에
가기 원합니다."라고
고백한답니다.

지금 현제 출석하고 있는
교회는 "가시나무"원곡을
부르는 가수 하덕규 목사님의
권유로 핑클 이진, 배우 조인성이
속해있는 ♡♡교회에
다닌다고 합니다.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가수 이지훈을
소개하려면 너무 다방면에
최선을 다하고 있어서
겸손하면서도열심이 하는
예수님을 믿는 청년이라고
말하고 싶다.

가수이면서 드라마와
뮤지컬 그리고
이번에 복면가왕에 나와서
김장군으로 놀라운 노래 실력을
드러내는 실력자가
확실한것 같네요.

모태 신앙이기도 하는데
 방언도 초등학교
4학년 때 받았고
어렸을 때부터 뜨겁게
하나님을 믿었답니다.

1996년에 발라드가수로
18살때부터 데뷔해서
부,명예,인기등
 많은것을 얻었습니다.

인기를 얻다보니
하나님을 멀리하게 되었고
하나님이 주신 것인지를
몰랐습니다.

세상은 냉정했고
내인기는 시들게 되고
좌절하면서 방황하고
방탕하고 술로 보내고
어둠의 시기를 지나게 됩니다.

귀공자 같은 스타일에
여심을 자극하는 부드러운 목소리에
자신이 너무 자만하다가
큰 시련이 오면서
다시 하나님께 돌아오게 되었는데요.

3집 앨범 때 어깨를 다쳐서
 군대 면제 판정을
받았는데 곱지 않는 시선으로
힘들었는데 폭력과 사기 사건에도
몰리면서 거의 절망적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의 고백입니다.
""이렇게 계속 연예계
생활을 해야 하나 많이 힘들었어요.
 하지만 고통의 이유를 알게 되었어요.
​기도하라는 말씀이시구나!"

그에게 고난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시간이 되었고
깊은 교제와 기도모임으로
더욱 굳건한 믿음을
회복하게 됩니다.

 결혼한 누나가
손을 내밀어 주어서
누나가 다니는 교회로
옮기게 되면서
기도가 회복되게 됩니다.

이 생활을 2년동안 하면서
내자신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니
세상과의 관계가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빨리 응답이 없지만
감사가 되고
드라마와 뮤지컬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제마음속에서
무조건 형통한 것이 잘된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하는것이
축복이구나라고 깨닭고
마음에 평안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지훈씨는 이런고백을 합니다.

"하나님은
다 예비해 놓으셨는데
우리가 하나님이 원하는 길로
가지 못하시니
 주시지 못하신답니다."


​신앙적으로
한층 성숙해진 그는
 ‘연예인 전도사’답게
평소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전도’에 대한 솔직한
의견을 내놓았다.

“불신자를 교회로
끌어들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주위에는
교회를 열심히 다니다가
잠시 신앙을 멀리한 이들,
미지근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
상처를 안고
쓰러져가는 이들이 더 많습니다.

저는 그들을 먼저
살리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옆에서
성령을 체험할 수 있도록
격려해주고 함께
나누는 게 전도의 열매입니다.”

이런 소신을
가진 이지훈은
평소 친하게 지내는 가수
이수영에게 신앙을
되찾아주었다.

방송활동을 하면서
교회를 한두번 빠지기
시작한 이수영이
신앙상담을 해왔고
함께 금요철야예배에
기도모임에서 함께 하기도
했답니다.

지금 자라는 다음세대에게
자신은 꿈이 없이 살아온것
같다는 데요.

"가장 중요한 것은
멘토가 중요한것 같습니다.
지금 제가 섬기는
목사님이 저의 멘토가 되십니다."

대화단절과 맞벌이 하면서
자녀들이 홀로
있게 된다고 합니다.

우리들의 영혼한 멘토는
예수님이시지만
그가 어려울때
누님을 통해서 담임목사님을
만나게 되고 이젠 주위사람들을
전도하고 섬기는 멘토가 된것처럼

우리들도 내주위의
멘토가 되어서 참 섬기는
전도인의 사명을 감당하는
축복의 사람되시기를
축원합니다.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온누리교회 집사님이신
 우리 한국의 국가대표선수로
이름을 날린 이영표 집사님,

2002년
한일월드컵 주역이자
KBS 축구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고 계신데요.

어릴때 기독교가
싫었답니다.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이 세뇌당했는데
그것을 모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서로 사랑하라고 하는데
자신들이 사랑하지 않고
서로 용서하라고 하면서
자신들이 용서하지 않아서
싫었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왜 선악과를 주셨고
따먹게 그대로 두셨는가?

한국에 복음이 오기전에
있는 조상들은 어떻게 되는가?

어떤 사람들은 선하게 사는데
고통을 당하는데
 공평하다고 하는가?

이런 고민으로 기독교가
싫었답니다.

그런데 국가대표선발이 되고
친구들이 계속 전도를 했는데
하나님을 믿게된 계기가
있었답니다.

결정적인 두가지가
있었답니다.

첫번째가
제가 죽는다는 것입니다.

죽은 이후에 무언가 있다라는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았답니다.

하나님은 영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귀신을
과학적으로 확인되지는
않지만 귀신은 있기에
나는 어떻게 할것인가의
고민으로 갈등합니다.

그때 이런 질문을 드립니다.

"하나님 나는 당신을
믿을수 없습니다.

당신과 나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두번째는
살아계신다고 믿는
사람들을 보니
믿을수가 없습니다.

제 앞에 컵이 있는데
이 컵을 올렸다가 내려놓던지
아니면 하나님이
나타났다가 살아지던지
하세요."
라고 질문을 드렸는데

컵이 사라지거나
하나님이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그런데

또 다른 질문이 있었다.
내 마음을 바꾸어주세요.

그런데 그때부터
마음이 바뀌기 시작했고
성경공부를 하고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깨닭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고 나서
하나님께서 처음으로
주신 말씀이

"나는 언제나 네 주위에
있었는데 네가 믿지 않아서
만나지 못했다."


처음 믿고
예수님을 자랑하고
다니는데 

그날도 숙소에서
전도를 하고 있으니
어떤 선배가 너만 믿지
왜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가라고는
말을 듣고

호텔에 들어왔는데
책을 읽을려고 6개월을 들고
다닌 곳을 펴니
이렇게 써 있었습니다.

하얀백지에
"진리를 아느자가
진리를 모르는 자 앞에서
침묵하는 것은 죄이다.

그때부터
 침묵하지 않았고
나중에 그 책에서
하얀백지에 한줄이 있는
그곳을 다시 찾는데
그 책에는 없었답니다.

신앙심이 깊어진
계기가 있었는데요.

2002년 한일 월드컵 개막
사흘 전 부상을 당합니다.

근육이
12센티미터가 찢어져서
6주 진단에 회복까지는
석 달 이상 걸린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기부스를 하고
아파서 쩔뚝거리며 월드컵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본인은 교회 집사로
 1년 반 동안 하나님, 
 월드컵에 나가서 
 좋은 성적을 얻어가지고

그래서 유럽에
프로선수로
진출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기도했는데
그만 부상을 당한 거예요.

그래서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욥기를 읽다보니까
마음에 탐심이 있었어요.

월드컵을 발판으로
내가 유럽으로 진출해서
내 이름을 좀 날려야 되겠다.

기도 하는데
주님 물으십니다.

“지금 너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뭐냐?”
“월드컵입니다.”

“그 월드컵을 날
위해 포기할 수 있느냐?” 
 “네. 포기할 수 있습니다.”

주님 앞에 회개하고
자기의 욕심, 모든 것
다 내려놓으니까
맘이 편안해지는데
그때부터 이상하게
다리가 아프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처음 두 시합을 쉬고
그다음 나간 것이
포르투갈전인데

포르투갈전에
그의 어시스턴트로
말미암아
박지성이 꼴을 넣어서
역사상 최초로
16강에 진출합니다.

 이렇게 고백을 했습니다.

다음날 신기하게도
 다리가 아프지 않은 거예요.
목발 없이 걸었고
사흘 뒤에는
뛰게도 되더라구요.

의료팀에서는
오진이 아니었느냐라는
말까지 나왔어요.

처음 두 경기는 쉬고
세 번째 포르투갈전에 나갔는데
보통 선수가 열흘 정도 쉬면
체력이 떨어져 90분을 소화하지
 못하는데
저는 전혀 힘들지가 않더라구요.

그날
어시스턴트한 공이
들어가 16강 진출이
결정되자마자
믿는 선수들끼리 무릎 꿇고
한참을 감사하며 기도드렸어요.

그다음에 더
놀라운 일은 이탈리아전에서
그의 어시스턴트로
안정환이 다시 골을 넣습니다.

이때 4강 신화를
만들어냈는데요.

이때도 탁
어시스턴트 했는데
그 골이 들어갔어요. 
다 포기하니까
하나님이 주셨어요.

이런 간증을 합니다.

월드컵이 끝나고
온누리교회에서
6개월 간 거의 매일
새벽기도를 했어요.

그러던 2002년
11월 24일 주일예배에
찬양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마음에 감동이
밀려오고 눈물이 났어요.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해 주셨거든요.

“내가 너를
유럽에 보내주겠다.”

그리고 정확하게
두 주 후,
히딩크 감독님이
저를 찾으셨어요.

그리고
또 정확히 5주 후,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네델란드 아인트호벤으로 갔어요.

제 능력이라기보다
그분의 보이지 않는 손이
보내주신 것이죠.

이 세상에
우연은 없습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 은혜입니다.

이렇게 간증합니다.

“저에게 축구는
예배입니다. 

 저의 실력과
위치를 인정하고
겸손히 무릎 꿇고
고난과 역경을 이겨냅니다.

성공과 실패가
중요하지 않아요.
오직 한 곳을
향해서 달려갈 뿐입니다.

제 역할을 다할 때
아름다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저는 하나님을 위해
축구를 하는 예배자입니다.”

하나님께서 멀리계신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
않아서 손을
내밀지 못하신겁니다.

우리가 고난과 어려움을
통해 간구할때에
놀라운 기적과 응답을
선물로 주신답니다.

지금 어떤 힘든일때문에
좌절과 낙심해 있나요?

지금이 기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문제에 결코 답답해하거나
고민하지 않으십니다.

더 이상 내려갈때가
없다면 이제 하나님께서
일을 시작하실때가
된것이지요.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하나님 없이 살고픈
 청년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없이도
잘산다는 것을
​보여 주리라’ 고
생각한 청년은
세상에서의 삶을 즐겼습니다.

결혼하여
두 딸의 아버지가 되었고
미8군에 근무하던 중
미국 정부의 초청으로
미국행을 준비하게 됩니다.

그런 가운데
원인모를 안질로
갑자기 시력이 떨어지더니
나이 37세에
시각장애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죽음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몇 번의 자살시도가
실패로 돌아갔을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난생 처음
느끼는 안식이었습니다.
이후 서울역 거리를 전전하는
우여곡절 끝에 성직자가 되었습니다.

자신과 함께한
거리의 아이들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 주기 위해
야간학교를 설립했습니다.

교육을 받은 8백여명의
아이들이 검정고시에 합격했고
각자의 삶을 개척했습니다.

그가 설립한 새빛 맹인선교회에
수많은 시각장애인이 찾아왔습니다.
새빛 맹인선교회 설립자
안요한 목사의 이야기입니다.

안 목사의 희망과
도전 이야기는
1982년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그는
유명 인사가 되었습니다.

앞을 볼 수 있었던 37년보다
 영의 눈으로만 생활하는 지금이
오히려 기쁘고 감사하다며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안 목사는
 오늘도 소외된 시각장애인들의
 재활 치료와 복음 전도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얼마 전 어느 안과의사가
수술을 하면 볼 수 있다며
수술을 권했으나 거절했습니다.
 실명의 선물로 예수님이
 주신 생명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축복이었다고
안 목사는 간증합니다.

 “지금의
제 모습에 감사드립니다.
버림받았기에 버림받은
자들의 아픔을 알 수 있었고,
시력을 잃었기에 시각장애인들의
고통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작은 종이 눈 감은 덕에
알게 된 창조주 하나님을
세상 끝까지 전하려고 합니다.
 복음 전파가 제
여생 마지막 사명입니다.”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여호수아1장9절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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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가수 알리
(​본명 조용진 )는

​2003년 리쌍 3집의 수록곡
<내가 웃는 게 아니야> 등의
곡의 피처링에 참여하면서
데뷔했다.

불후의 명곡에서
단독으로 열 번의 우승과
최고 동점까지 한
숨겨진 실력자라고
알려져 있답니다.

알리의 아버지는
문화일보 산하의 IT 전문
신문인 디지털 타임스의
대표이사 사장인
조명식씨이며

2012년 말 대표이사로
재 선임되었답니다.

처음 신앙생활은 
초등학교 때 친구 따라서
충현교회를 다니게 되었고

그 당시에
어머니가 불교였기에
가지 말라고 했지만 나중에
어머니가 예수를 믿게 되면서
다시 다니게 되었고

고3 때 성가대 하면서
찬양을 통해서 신앙이
자라게 되었답니다.

대학교 때에 끝까지 술을
마실 정도였지만
그 다음날에는
교회에 반주하러 가기도
했답니다.

2011년에는
서울종합예술전문학교
실용음악예술학부 겸임교수로써
가르치기도 합 답니다.

원래 아버지께서 노래대회를
나가면 상을 받을 만큼
노래를 잘하였고

통기타를 가지고 다녔지만
장남이어서 가수의 꿈을
접었다고 합니다.

알리는 어릴 때부터
김완선의 "피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와 나미의
"빙글 빙글"을 흥얼거리고
다닐 정도였다네요.

초등학교 5학년 때는
친구로 왕따를 당하면서
내성적으로 변했고
우울증과 조울증 증세도
오기도 했다고 합니다.

판소리를 초등학교 3학년 때
배우다가 왕따 때문에
더 판소리에 몰입했는데

알리의 숨겨진 진실하면서
호소력 있는 목소리가
판소리로 다듬어진 것
같다고 합니다.

알리는 국악중학교를 진학
하려고 했지만 부모님이
반대하셨기에

일반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진학했는데 음악이 너무 좋아서
중학교 때는 사물 놀이패를
고등학교 때는 관현악단에서
바이올린을 했고

고3 때는 실용음악학원을
다니게 됩니다.

이후에 하이 서울 페스티벌과
강남구청 등에서 각종 상을
휩쓸면서 실력을 입증받고
부모님으로부터 허락을
받게 됩니다.

대학교 때는 재즈를 했으나
어느 날 피처링으로 다른
가수들의(휘성, 거미)
 노래에 참여를 하면서
대중가수로 첫걸음을
걷게 되었답니다.
그러다가
리쌍의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발레리노"에 참여하면서
힙합 음악까지 경험하게
됩니다.

알리의 예명은 복싱선수
"무하마드 알리"에서 유래가
되었는데 원래는 타이슨이
였는데 리쌍의 길 오빠가
타이슨을 지어주었답니다.

그런데 알리는 복싱선수의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처럼
대중에게 기억되고 싶어서
알리로 바꾸었답니다.

알리는 자신의 신앙의
근원은 아침마다 드리는
큐티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알리의 고백입니다.

“힐링을 드리기 위해서
저 스스로는 큐티
(성경 묵상)를 한다”라며

 “아침마다
큐티를 하지 않으면
하루가 엄청 흔들린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녀는 또 고백합니다.

“제가 많이
나약해서 말씀이 없으면
흔들리는 제 모습을 발견해요.

알리는 노래를 통하여
하나님이 담기기를 소망하고
있는데요.

알리의 고백입니다.

 “제 목소리와 톤은
모두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며

“말하지 않아도 내 뒤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노래를 통해) 느껴지도록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가장 큰 꿈”이라고 했습니다.  

 이웃에게 사랑한다고
  표현하려면
말씀으로 저를 먼저
 채우는 게 정답인 것 같아요.

 지키기 힘들지만
매일 큐티를 열심히 하는 게
저의 힐링법입니다.”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히야, 마지막 콘서트,
비와 당신의 이야기
소녀시대, 안녕이라고 말하지 마
네버엔딩 스토리, 인연 등
우리들의 가슴속에 따뜻한
노래를 전하고 있는
이승철 씨가 지금은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고 합니다.

교편을 잡은
어머니 밑에서 엄하게 자랐지만
 고2 때인 1983년
그룹사운드 '봉랑제'에서
대상을 타며
가수 데뷔를 꿈꾸게 됩니다.
 
당시 같은
동네 막역한 형이었던
김태원의 녹음실에 놀러 다니면서
 김종서의 후임 보컬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던 다가
어머니 봉급 1년 치를 가져다가
 팀에 악기를 증정한 뒤 보컬이 
발탁됩니다. 

2년 뒤인 1985년
둘은 그룹 부활을 결성하고
 '희야'와 '비 와 당신의 이야기'를
연거푸 히트시키며
2장의 앨범을 냈으나

김태원이
대마초 사건에 휘말리면서
이승철은 팀을 탈퇴하고
솔로로 전향하여
인기를 누렸지만

그러나 가수 인생에
가장 후회를 한다는
대마초 사건과
톱스타와의 결혼과 이혼

어두운 터널을 지나기까지
16년이라는 시간을
견디어야 했습니다. ​

그런데 하나님은
지금의 아내 박현정 씨를
만나게 되어 결혼을 하면서

인새의 중대한 터닝 포인트가
되는 내조와 더불어
​아내의 기도와 헌신으로
예수님께 한 걸음씩 다가가게
되었답니다.

이승철 씨는 불교의 신자이었고
아내와 결혼 때도 점을 보고
했을 정도이었고

 새 앨범이 나오면
제일 먼저 주시 스님께
선물할 정도였답니다.

하지만 아내와의 절충으로
천주교에 다니게 되지만

결국에는
 자신의 딸이 교회를
다니게 되었고

아내의 권면으로
기독교로 바뀌게 되었고
예수님의 품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지상파의 한 방송에서
아내와 함께 새벽 기도를
다니는 이승철의 모습은

그동안 대중에
잘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라
관심을 끌었는데,

그는 10여 년 전
지금의 아내와
새 가정을 꾸린 뒤부터
교회를 나가게
된 것으로 알려졌답니다.

이승철 씨의 고백입니다.

 “집 근처에 교회가 있어
아침마다 새벽 기도를 하러 갑니다.

“교회에 가서 가볍게
기도하고 하루를 시작하면
 마음이 좀 편안해질까 해서
나가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승철 씨는 아내 박현정 씨에게
 하나님을 만나게 해주고
 늘 조용히 옆을 지켜주는
고마운 사람이라고
감사하다고 합니다. 
​ 
이승철 씨의 고백입니다.

“정신적인 위안이 되고
안식처가 되어 주는 부분이
아내에게 가장 고마워요”
라고 표현을 합니다.

이승철씨가
새벽 기도 나갈 때마다
느끼는 뿌듯함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자신이 아끼던 피아노를
새벽 기도 나가는 교회에
기증한 일입니다. 
 
​이승철씨의 고백입니다.

“교회에 기증한
피아노로 많은 곡들을 만들었습니다.
네버엔딩 스토리, 인연 등
저를 대표하는 많은 발라드 노래들을
전부 이 피아노로 녹음했습니다. ”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서
이승철은 "한혜진과 같은
교회에 다닌다"라고 했는데요.
 
"엄정화 한혜진이
주보를 나눠주고
내가 주차 사역을 한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승철은 자신이
A형이라서 완벽주의를
추구하며 살아왔지만

그러나 교회를 다니면서
그전에는
울컥 치솟는 화를 이기지 못해
스태프들에게
육두문자를 쓰기도 했지만,
지금은 더없이 부드러운 말투로
상대를 배려하게 됐다고
합니다.

이승철씨와 아내는
국제구호개발 NGO 굿네이버스와 함께
 아프리카 최빈국 차드에 학교를 건립,
가난으로 꿈을 잃어버린
아이들에게 희망을 전하고
있는데요.

10년간 30여억 원을 기부해
 아프리카에 10개의
‘희망학교’를 짓기로 했답니다.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대한민국 성우로
36년의 인생을 살다가
충무로의 블루칩으로
우뚝 선 탤런트
장광장로님을
소개합니다.

​​처음에는 연극을 시작했었고
연극으로 성공하려고 했지만
연극을 같이 하는 중에
성우들과 같이 하면서
성우로 목소리를 가다듬고
다시 연극을 하려고
하다가
36년간 성우로
살게 됩니다.

​ kbs15기 성우로
1978년에 입사하여
현재는 성우와 배우로
활동하고 있는데요.

 [도가니]
[광해, 왕이 된 남자],
[신세계],
[은밀하게 위대하게],
 [수상한 그녀]​ 등

신인 배우로써
독보적인 활동을 보이는데
사실은 성우로써

에니메이션,
극장용 애니메이션,
드라마,영화
그리고 입체 낭송 성경까지
탄탄한 숨겨진
내공을 쌓아두고 계셨네요.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모든 가족이 전부 연기자란
사실입니다.

아내 전성애 권사는
[제빵왕 김탁구]에서
공주댁 역할로
인기를 누렸고

​드라마 MBC
 [백년의 유산]에서
심이영의 비서로
맛깔나는 연기를
펼친 바 있으며

아들 장영은
영화 "26년"에
단역으로 출
연한 바 있습니다. 

개그우먼 장윤희가
그의 딸이랍니다.

장광 장로님의
신앙생활의 시작은
군대를 다녀왔는데

어머님이 협심증이
있으시다면서
부축해달라고 하면서
교회에 데려가려고
어머님이 유도하셨고

교회에서 성가대가
너무 좋았고
목사님 설교 때는
졸면서 시작했답니다.

그런데 그에게
위기가 찾아오는데요.

​정광장로님은
​ 베테랑 성우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면서
너무 바쁘게 살아왔답니다.

그런데 욕심을 내면서
쌓은 재물을
부동산 투기와 사기로
하루아침에 날려 버리게
되면서 병도 생기고
IMF까지 오게 되면서
성우의 역할도 줄게 됩니다.

그 후로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릴 때
매달 돌아오는 은행 이자와
압류는
부부의 숨통을 옥죄였답니다.

 쌓여가는 빚으로
사면초가에 몰리자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이해가 되었답니다.

 그 당시 정광 집사님과
권사님 부부는 오직
새벽 기도와 기도원을
찾으면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성경을 일독하며
말씀에 매달렸답니다.

너무 힘이 들어서
전성애권사님은
이렇게 기도했답니다.

"하나님 이 상황과
제목 숨을 바꿀 순 없을까요"
라고 기도를 한 것이지요.

나중에 합당한 기도가
아니기에 접었지만
자녀에게 빚이 넘어가게 되니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었답니다.

오로지 시간만 나면
가까운 교회에 새벽 기도를
가게 되고 기도원에
다니는 것이 모든 것이
였답니다.

마지막까지 모든 것을
다 놓을 때에
정광 그 당시 집사님은
이렇게 기도했답니다.

"하나님 이제는
아무것도 할 것이 없습니다"
고백하였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깊은 내면에서
"그래 이제는
내가 한다"라고
하셨답니다.

새벽 기도로 40일
작정 기도를 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응답으로
 ‘도가니’라는데
영화를 만났는데요.

800명 중에서
악역으로 선택되는 데는
숨겨진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답니다.

도가니의 역할은
반짝이는 머리와
50대 후반,
선악이 공존하는
얼굴을 찾았답니다.

배역을 맡고 보니
악역에 대한
갈등이 왔지만

그래도 최대한
기도하면서
연기를 통해서
사회에 도가니법까지
나오는 열매를
맺게 됩니다.

아내 전성애권사님은
도가니를 개봉을 하고
3일 동안 남편에게
말을 하지 않을 정도로
영화가 충격이었답니다.

부부갈등까지 오기도
했다는데요.

권사님으로써는
너무 싫었지만
돈이 너무 필요하였기에
어쩔 수 없어서
하라고 했답니다.

광해와 도가니 사이에서
하나님께서 예능을 통해서
이미지를 회복시켜주셨고
단계별로 응답을 주셨답니다.

정광 장로님이 젊을 때는
사람을 좋아해서
술을 먹고 가정이 무너질 정도로
이혼 위기까지 오게 되었고

전성애권사님은
"하나님 감당할 만한 시험만
주신 다고 했는데 왜
이렇습니까"라고
울면서 기도했답니다.

권사님의 기도와
기다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문제와 어려움이
이젠 장광 장로님을
회복시키시는 기회를
주셨답니다.

권사님의 기도 중에
장광 장로님이 되기를
기도했는데
그것까지 응답하셨답니다.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1998년대 아이돌 그룹
핑클로 데뷔하여
이효리, 옥주현, 성유리와
함께 가수로 활동을 하다가

2002년에는 MBC 청춘 시트콤
논스톱 3에 출연을 시작으로
지금은 당당한 배우로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이진 씨를 소개합니다.

​이진의 데뷔에는 같은
핑클의 멤버인 동갑내기
친구인 옥주현의 추천으로
멤버가 되었답니다.

​ 처음에는 가수로 데뷔를
하였지만 원래의 꿈은
연기자가 되는 것이
목표이었고

그래서 연극 영화과를
준비하였는데
하나님은 가수의 길로
인도하신 것이랍니다.

이진은 기도하는
크리스천으로 유명한데요.

그럼 언제부터
신앙생활을 했을까요.

이진 씨는 모태신앙으로
자라왔다는데요.

아버지가 군이셔서
부대 내 교회를 다니면서
장년부 예배를 드렸답니다.

이진 씨의 고백입니다.

"신앙을 무엇보다
중요시 여기는 부모님에 의해
새벽 기도를 다니며
믿음이 깊어졌습니다."

특히 명성교회의 성가대원으로도
섬기고 새벽 기도에 빠지지
않을 정도로 믿음의
사람이었는데요.

이진 씨의 고백입니다.

"특별 새벽 기도는
 빠지지 않았고
새벽 기도 중에서 더 빨리
응답을 해주시는 하나님을
알고서는 더욱 빠질 수가 없었어요"

어느 정도로 새벽예배를
드렸는가 하면

핑클 시절 때도
특별새벽 기도만큼은
드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일정을 허락해주셨다고 합니다.

이진 씨가 가수에서 연기자로
전환한 후에 나머지 멤버들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을 때에
혼자만 쉬고 힘들고
불안한 시기가 있었는데요.

그때 하나님은 이진 씨를
훈련시켜 주신 것이랍니다.

이진 씨의 고백입니다.

"하나님은 그때 나를
훈련시켜주셨어요,
가수 시절 겸손하지 않고
감사하지 않는 점을 반성하고
봉사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어서 성가대를 시작했어요"

그 힘든 순간이 있었기에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게 된 것이랍니다.

문화,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관련 종사자들의
크리스천 모임이
"지저스 페스티벌"을
통하여서

이전에는 자신만을 위해
기도를 했는데
페스티벌 이후에 남을 위해
기도해야 되는 것을 깨닫고
주위의 나약한 연예인
친구들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답니다.

이진의 고백입니다.
"산소를 들이 마시지 않으면
죽는 것처럼 기도 없이는
세상을 살아가지 못 합니다."

그녀는 모든 삶의 중심이
기도가 되기를 소원하며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늘 갈망한다고 합니다.

이진하면
"연예인 집사"로도
유명한데요.

이진의 고백입니다.

"연예인 생활을 하다 보면
외롭고 지칠 때가 많잖아요,
주변에도 그런 분들이 많은데

위로가 필요한 분들에게
어렵고 힘겨운 상황을 아시고
지켜주시고 위로해 주실 분은
오직 아빠이신
하나님뿐이라는 것을
이야기해줘요."

연예인 생활 중에 가장 힘든 일은
회식자리에서 술을 거절하는
것이였답니다.

한두 번은 거절을 할 수 있지만
계속하기가 힘든데
요즘에는 주위에서
이해를 해주신다고 하네요.

그리고 이제는 당당하게
"예수님을 믿어
술을 못 합니다."라고
고백한답니다.

이진 씨는 연예인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고
싶다고 합니다.

"자식이 잘하면 부모가
칭찬을 받는 것처럼
하나님이 저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높임을 받기를 원합니다,

무엇보다 저의 달란트를
통해서 제게 주신
선교의 사명을 다하기
원합니다."

이진 씨는 2014년 지인의
소개로 6살 연상인 미국 시민권자
신랑을 만나서 현지 교회 목사님의
주례로 스몰 웨딩을 올렸답니다.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