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주안 장로교회 나겸일 원로 목사님. 약 30년 전 교회가 한참 부흥하던 어느 날 갑자기 목사님께서 몸의 상태가 안 좋아서 병원에 가보니 급성 간암입니다.
왜 몸이 이지경이 되도록 계시다가 오셨습니까. 그래서 또 다음 병원을 가보는데 그다음 병원에서도 똑같은 진단을 내립니다.
이제 우리가 손대서 치료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세 번째로 갔던 병원이 세브란스 병원입니다.
그랬더니 한 삼일을 못 넘기겠습니다. 그러니 집에 가서 쉬고 계십시오.
아니 지금 사람은 숨이 다 넘어가기 전이라도 숨만 붙어있으면 병원에 입원하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인데 냉정하게 집에 가서 쉬고 죽음을 맞이하라니까 그래서 떼를 써서 병원에 입원을 합니다.
금요일 날 저녁입니다. 얼굴이 새까매지고 복수가 찹니다. 본인은 주의 종으로 죽으면 천국 갈 것이니까 죽는 것이 두렵지 않았지만, 홀로 아내를 남겨놔야 되고 아홉 살, 여섯 살 난 어린 두 딸이 옆에서 아빠 죽지 마, 죽지 마 우는데 너무나 불쌍해요. 교회 성도들을 생각하니까 참 마음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말씀 붙잡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합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제 간을 창조하신 하나님,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제 간이 나을 줄 믿습니다! 제가 죽으면 하나님 영광 가립니다. 하나님 영광 위해 살려주세요!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 53:5)‘는 말씀을 믿습니다! ’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마 8:17)는 말씀을 믿습니다! ’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약 5:15)’는 말씀을 믿습니다!”
주일날 목사님이 위독하셔서 곧 임종하실 정도까지 위독하다는 말씀을 듣게 되니까 1부부터 5부까지 모든 성도들이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저녁예배로 7시 반에 모였는데 많은 성도들이 나와서 본당에서 교육관 그 부속 성전까지 다 채워서 밤새 워 다음날 새벽까지 성도들이 떠나지 않고 기도를 합니다. 그런데 상황은 더 악화되었어요. 주일 저녁에 간호사가 와서 상태를 보더니 ‘이제 삼십분 못 넘기겠습니다.’ 흰 천을 가져다가 ‘이제 운명하시면 덮으시기 바랍니다.’ 의사 두 사람이 차트를 들고 와서 이렇게 들여다보더니 ‘이거 다 됐네.’
성도들이 교회서 밤새부터 우리 목사님 살려달라고 부르짖어 기도하고, 또 옆에 사모는 내 남편 살려달라고 기도하고. 아이들은 집으로 데려갔어요. 아버지 임종하는 것 안 보여 주려고 데려가고. 그런데 그 밤 12시가 지나가면서 이제 숨이 다 된 순간에 갑자기 배가 꼬르륵하더니, 탁하고 뭐가 혈변이 쏟아지기 시작하면서 시커먼 핏덩어리가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하루에 세 번씩 나흘 동안 열두 번 혈변을 쏟고 난 다음 남산만 한 배가 쑥 들어가고 그다음 회복이 되기 시작합니다.
그를 담당했던 주치 의사 김병수 박사는 말합니다. “저는 의사로서, 의대 교수로서 이런 기적은 처음 봤습니다. 목사님의 경우는 1%도 장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엔 병원 측에서 목사님을 받으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목사님을 받는다는 것은 곧 시체를 받는 것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의학적으로 설명이 안 됩니다! 이건 ‘하나님께서 고치셨다’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로부터 하나님께서 건강을 회복시켜 주셔서 건강한 모습으로 교회를 부흥시키게 해 주시고 십만 성도를 이루고 큰 교회를 짓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면서 주의 일 하다가 은퇴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더니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병상에서 목사님도 믿었고 성도들도 믿었고 함께 기도하니까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기도는 불가능을 가능케 합니다. 모든 문제와 어려움을 무너뜨리는 위대한 능력이 바로 기도인 것입니다.
믿음의 기도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 놀라운 역사를 일으켜 주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막 11:24)
MBC 뉴스데스크와 생방송 오늘 아침 최윤영의 세계 다큐 기행 지금은 MBN의 아궁이까지 대표적인 아나운서 출신이며 사랑의 교회에 다니고 있는 최윤영자매님을 소개합니다.
최윤영아나운서는 4대째 믿는 집안이였답니다. 외가쪽은 3대재 이며 어머님이 365일 기도하신답니다.
모태신앙이지만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난것은 중학교 찬양집회때입니다. 너무 감격스럽고 주체를 할수가 없었고 지금은 내옆에 계신 분을 느낍니다. 아이처럼 물어본답니다.
고교시절 선배 아나운서가 쓴 ‘9시 뉴스를 기다리며’를 읽은 뒤 아나운서의 꿈을 키운 그는
대학 2학년 때인 1998년,여성용품 CF 모델로 방송계에 입문했다.
화장기 없는 맑은 모습으로 시청자들에게 호감을 주었고 한 방송사가 그녀를 리포터로 기용했다.
방송이 나에게 맞는것인지 알기위해서 대학교4학년때 교육방송의 리포터로 시작했습니다. 7분나가는데 아침부터 저녁까지 해서 너무 힘들고 적성에 맞는것 같지 않아서 울기도 했답니다.
이것 내길이 아니다라고 확신했고 어학연수를 신청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감되었다는 사실에 하나님께 원망을 했고 그때 한밤의 TV 연애에서 같이 하자고 연락이 왔습니다.
방송7분밖에 나가지 않았는데 그걸 보고 부른것입니다.
그리고 방송 아나운서 시험을 보고 합격을 했는데 광고했던것 때문에 취소될 위기에 처했고 너무 힘든 상황에서 힘들기도 했고 결국 MBC입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도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왜 광고를 하게해서 이렇게 힘들게 하는지요.
나중에 알게된것은 MBC전에 다른곳에 같다면 더 힘들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됩니다.
그의 고백입니다.
"주님이 어려움을 통해서 원하시는 곳으로 이끄시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항상 주님은 최선의 결과를 주셨습니다. 제가 거만해질까봐 하나님이 과정을 주시고 기도하게 하시고 활짝 문을 여시고 응답해주시는 분이십니다. 저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은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갈려면 고난을 주시고 주님께 맡기면 좋은 길로 응답하십니다." 자신의 힘으로 한것은 없었고 하나님이 하셨답니다. 나의 것보다 항상 더 많이 주신분입니다.
한번은 2002년 월드컵 방송을 하면서 “송종국 선수가 방송에 출연한 적이 있어요.
그때 송 선수가 골 세리머니로 무릎꿇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제가 ‘은혜스러웠다’ 고 저도 모르게 하나님을 향한 속마음을 내비쳤나 봐요.” 멘트를 했는데 그때 항의전화가 빗발치기도 했답니다.
결혼을 하면서 MBC아나운서를 그만 두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아이의 엄마로써 출산후 3개월을 쉬지 못하고 방송에 나갔답니다.
그런데 아이가 너무 엄마를 찾아서 그만 둘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엄마가 눈앞에 사라지면 너무 불안해 하고 힘들어 해서 결국 1년 휴직을 하다가 결국 사표를 쓰게됩니다.
그때의 상황은 힘들었지만 지금은 하나님이 준비하신 단계를 알게되었답니다.
그런데 육아가 넘 힘들고 어려웠다고 합니다. 거의 맨붕상태에서 EBS에서 섭외요청을 했는데 부모라는 프로그램입니다.
그의 고백입니다. "벼랑 끝에 서있는데 하나님께서 다리를 쫙 놓아 주시면서 “이리로 걸어가지 않을래?” 하는 기분이었어요." 그 계기로 육아에 도움을 받게되고 넘 좋았답니다.
이젠 TV에 나오는 내모습이 너무 좋다는 딸에 맞게 프로그램인 ‘아궁이’ (MBN)에서 연락이 온 거예요.
하나님께서 미리 준비해주시는데 혼자 불안해 하고 있었답니다.
그의 고백입니다. "하나님께 푯대를 꼿아라 그럼 길을 예비해 주신답니다."
선배들이 섭섭하지 하면 저는 주님은 좋은 길로 여시고 인도하신것을 아시기에 이젠 두렵지 않습니다.
롬8:28절에 모든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고 하십니다. 나중에 돌이켜보면 하나님은 최선의 방향으로 인도하신분이십니다.
최윤영 아나운서의 성령충만하는 것이랍니다. 이땅의 젊은이들이 말씀으로 서있길 원합니다. “기도는 창이고 말씀은 갑옷이다. 물론 공격용 무기인 창이 중요하지만 갑옷을 입고 있지 않으면 언젠가 이 창이 나를 찌를 수도 있다. 반드시 말씀의 갑옷을 입어라.”
그가 좋아하는 성경구절은 (빌립보서 4장 13절)의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말씀은 항상 암송하는 구절이랍니다.
지금은 당당하게 멘토가 되어 젊은이들에게 외칠수 있는것은 어쩌면 최윤영아나운서가 힘들고 괴로워서 울었던 과정을 통하여서 축복의 모델로 쓰시네요.
하나님을 우리가 지금 길이 막히고 어려움이 다가오면 원망하고 불평하지만 하나님은 놀라운 방법으로 길을 예비하시기에 지금은 걱정을 하지말고 믿음으로 감사의 고백을 드리시기 바랍니다.
78년 가수로 데뷔했으나 주목을 받은 건 그의 1집 앨범 ‘내 사람아’ 등을 발표한 85년 이후부터, ‘사랑이 저만치 가네’라는 곡으로 모든 방송 가요 차트를 석권했고 ‘토요일은 밤이 좋아’, ‘당신도 울고 있네요’ 등을 잇달아 히트시키며, 10대가 수상을 받는 등 더 이상 부러울 게 없는 당시 가요계의 최고의 아이콘이 되었다. 한때 TV, 라디오만 틀면 온통 그의 부드럽고 감미로운 목소리가 흘러나올 정도로 무대 위에서 화려한 조명을 받고 승승장구하며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 중반을 주름잡던 그가 1996년 ‘산다는 것은’ 음반 이후 어느 날 그 무대에서 사라졌다.
무대에서 사라진 그는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98년 IMF를 겪으며 사업은 부도가 났고 여러 사람들에게까지 큰 손해를 입혀 결국 구치소에 수감됐다. 화려했던 톱스타의 자리에서 곤두박질친 그는 미움, 분노, 증오에 휩싸여 하루하루를 고통 중에 보냈다. 그러던 중 하루는 교도관 한 명이 왼쪽 오른쪽의 사람을 모으더니 찬송을 부르는 모습을 목격했고,
그가 미션스쿨에서 즐겨 부르던 찬송 '234장 나의 사랑하던 책'이었다. 자연스레 그 모임에 동참하게 되었다. 어릴 적 미션 스쿨을 다니며 불렀던 찬송이 머리에서 맴돌기 시작했습니다.
‘절대 세상의 노래를 부르지 않겠다.’ 모임을 갖던 중 그는 주체할 수 없는 회개의 기도를 드렸고,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결국 그는 그곳에서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는 하나님께 두 가지 서원을 했다. 한 가지는 나머지 인생을 주님의 종으로 살겠다는 것과 또 한 가지는 절대로 세상 노래는 부르지 않고 주님만 찬양하겠다는 하나님을 향한 약속이었다. 수감을 마친 후 그는 7년간 신학을 공부했고, 2009년 10월 한국 독립교단 및 선교단체 협의회 (한독선연 총회장 김상복 목사)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목사 (한국 백석대학 신학과 졸업)가 되었다. 현재 김종찬 목사는 교도소, 보호감호소, 군부대, 탈북자, 병원, 장애인 치매노인시설 등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가서 찬양을 부르며 지내고 있으며, 아시아, 남미, 미주 등 전 세계를 돌며 하나님의 사랑과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가 직접 6곡을 쓰고 가사도 쓴, 4집 찬양음반 ‘생명의 빛’ 등도 발매했고.
그의 가족들도 모두 가장의 뜻을 지지해줬다. 일산에서 찬양집회를 통하여 영광을 돌리고 계시며 일산에 개척하여 하나님 영광을 위하여 열심히 사역하고 계십니다.
목사님의 고백입니다.
"사업 실패하고 구치소에 있을 때 교도관이 성경을 읽어주었습니다. 로마서 10장 17절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그 순간 성령님의 역사로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성경을 통독하고 이제 저는 목사로 살겠습니다. 라고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특별한 은혜로 개입하시고 날마다 함께 하기를 원하십니다.
김종찬 목사님은 가장 힘들때 만났던 예수님을 전하기 위해서 부르시는 곳은 어디든지 달려갈려는 순종의 고백이 우리들에게도 가득해 지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