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 리더 :: '간증' 태그의 글 목록 (8 Page)

인천 주안 장로교회
나겸일 원로 목사님.
​  약 30년 전
교회가 한참 부흥하던
 어느 날 갑자기
목사님께서 몸의 상태가
안 좋아서 병원에
가보니 급성 간암입니다.

왜 몸이 이지경이 되도록
계시다가 오셨습니까.
그래서 또 다음 병원을 가보는데
그다음 병원에서도
똑같은 진단을 내립니다.

이제 우리가 손대서
치료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세 번째로 갔던
병원이 세브란스 병원입니다.

그랬더니 한
삼일을 못 넘기겠습니다.
그러니 집에 가서
쉬고 계십시오.

아니 지금 사람은
숨이 다 넘어가기
전이라도 숨만 붙어있으면
병원에 입원하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인데
냉정하게 집에 가서 쉬고
죽음을 맞이하라니까 그래서
떼를 써서 병원에 입원을 합니다.
 
금요일 날 저녁입니다.
얼굴이 새까매지고
복수가 찹니다.
본인은 주의 종으로 죽으면
천국 갈 것이니까 죽는 것이
두렵지 않았지만,
홀로 아내를 남겨놔야 되고

아홉 살, 여섯 살 난 어린 두 딸이
옆에서 아빠 죽지 마,
죽지 마 우는데
​너무나 불쌍해요.
교회 성도들을 생각하니까
참 마음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말씀 붙잡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합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제 간을 창조하신 하나님,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제 간이 나을 줄 믿습니다!
제가 죽으면 하나님 영광 가립니다.
하나님 영광 위해 살려주세요!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 53:5)‘는
말씀을 믿습니다! ’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마 8:17)는
말씀을 믿습니다! ’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약 5:15)’는 말씀을 믿습니다!”
 
주일날 목사님이 위독하셔서
곧 임종하실 정도까지 위독하다는
말씀을 듣게 되니까 1부부터 5부까지
모든 성도들이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저녁예배로 7시 반에 모였는데
많은 성도들이 나와서 본당에서
교육관 그 부속 성전까지 다 채워서
밤새 워 다음날 새벽까지
성도들이 떠나지 않고 기도를 합니다.

그런데 상황은 더 악화되었어요.
주일 저녁에 간호사가 와서
상태를 보더니
‘이제 삼십분 못 넘기겠습니다.’
흰 천을 가져다가 ‘이제
운명하시면 덮으시기 바랍니다.’
의사 두 사람이 차트를 들고 와서
이렇게 들여다보더니
 ‘이거 다 됐네.’
 
 성도들이 교회서 밤새부터
우리 목사님 살려달라고
부르짖어 기도하고,
또 옆에 사모는 내 남편
살려달라고 기도하고.
아이들은 집으로 데려갔어요.

 아버지 임종하는 것
안 보여 주려고 데려가고.
그런데 그 밤 12시가 지나가면서
이제 숨이 다 된 순간에
갑자기 배가 꼬르륵하더니,
탁하고 뭐가 혈변이
쏟아지기 시작하면서
시커먼 핏덩어리가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하루에 세 번씩 나흘 동안
열두 번 혈변을 쏟고 난 다음
남산만 한 배가 쑥 들어가고
그다음 회복이 되기 시작합니다.

그를 담당했던 주치 의사
김병수 박사는 말합니다.
“저는 의사로서, 의대 교수로서
이런 기적은 처음 봤습니다.

목사님의 경우는 1%도
장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엔 병원 측에서
목사님을 받으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목사님을 받는다는 것은 곧
시체를 받는 것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의학적으로 설명이 안 됩니다! 이건
‘하나님께서 고치셨다’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로부터 하나님께서
건강을 회복시켜 주셔서
 건강한 모습으로
교회를 부흥시키게 해 주시고
십만 성도를 이루고 큰 교회를 짓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면서 주의 일
하다가 은퇴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더니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병상에서 목사님도 믿었고
성도들도 믿었고
함께 기도하니까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기도는 불가능을 가능케 합니다.
모든 문제와 어려움을 무너뜨리는
위대한 능력이 바로 기도인 것입니다.
 
믿음의 기도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
놀라운 역사를 일으켜 주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막 11:24)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MBC 뉴스데스크와
​생방송 오늘 아침
최윤영의 세계 다큐 기행
지금은 MBN의 아궁이까지
대표적인 아나운서 출신이며
사랑의 교회에 다니고 있는
최윤영자매님을 소개합니다.

최윤영아나운서는
 4대째 믿는 집안이였답니다.
외가쪽은 3대재 이며
어머님이 365일 기도하신답니다.

모태신앙이지만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난것은
중학교 찬양집회때입니다.

너무 감격스럽고
주체를 할수가 없었고
지금은 내옆에 계신 분을 느낍니다.
아이처럼 물어본답니다.

고교시절 선배 아나운서가 쓴
‘9시 뉴스를 기다리며’를 읽은 뒤
 아나운서의 꿈을 키운 그는

대학 2학년 때인
1998년,여성용품
CF 모델로 방송계에 입문했다.

 화장기 없는 맑은 모습으로
시청자들에게 호감을 주었고
한 방송사가
그녀를 리포터로 기용했다.

방송이 나에게
맞는것인지 알기위해서
대학교4학년때 교육방송의
리포터로 시작했습니다.

7분나가는데 아침부터
저녁까지 해서 너무 힘들고
적성에 맞는것 같지 않아서
울기도 했답니다.

이것 내길이 아니다라고
확신했고
어학연수를 신청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감되었다는 사실에
하나님께 원망을 했고
그때 한밤의 TV 연애에서
같이 하자고 연락이 왔습니다.

방송7분밖에 나가지 않았는데
그걸 보고 부른것입니다.

그리고
 방송 아나운서 시험을 보고
합격을 했는데
광고했던것 때문에
취소될 위기에 처했고
너무 힘든 상황에서
 힘들기도 했고
결국 MBC입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도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왜 광고를 하게해서
이렇게 힘들게 하는지요.

나중에 알게된것은
MBC전에 다른곳에
같다면 더 힘들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됩니다.

그의 고백입니다.

"주님이 어려움을 통해서
원하시는 곳으로 이끄시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항상 주님은 최선의 결과를
주셨습니다.

제가 거만해질까봐
하나님이 과정을 주시고
기도하게 하시고 활짝​ 문을
여시고 응답해주시는 분이십니다.

저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은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갈려면
고난을 주시고 주님께 맡기면
좋은 길로 응답하십니다."


자신의 힘으로 한것은 없었고
하나님이 하셨답니다.
나의 것보다 항상
더 많이 주신분입니다.

한번은
2002년 월드컵 방송을 하면서
“송종국 선수가
방송에 출연한 적이 있어요.

그때 송 선수가 골 세리머니로
무릎꿇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제가 ‘은혜스러웠다’ 고
​저도 모르게 하나님을
향한 속마음을 내비쳤나 봐요.”  
멘트를 했는데
그때 항의전화가
빗발치기도 했답니다.

결혼을 하면서
 MBC아나운서를
그만 두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아이의 엄마로써
출산후 3개월을 쉬지 못하고
방송에 나갔답니다.

그런데 아이가 너무 엄마를 찾아서
그만 둘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엄마가 눈앞에 사라지면
너무 불안해 하고 힘들어 해서
결국 1년 휴직을 하다가
결국 사표를 쓰게됩니다.

그때의 상황은 힘들었지만
지금은 하나님이 준비하신
단계를 알게되었답니다.
 
그런데 육아가 넘 힘들고
어려웠다고 합니다.

거의 맨붕상태에서 ​ EBS에서
섭외요청을 했는데
부모라는 프로그램입니다.

그의 고백입니다.
"벼랑 끝에 서있는데
하나님께서
다리를 쫙 놓아 주시면서
“이리로 걸어가지 않을래?”
하는 기분이었어요."
그 계기로 육아에 도움을
받게되고 넘 좋았답니다.

이젠 TV에 나오는 내모습이
너무 좋다는 딸에 맞게
프로그램인 ‘아궁이’
(MBN)에서 연락이 온 거예요.

하나님께서
 미리 준비해주시는데
혼자 불안해 하고 있었답니다.

그의 고백입니다.
"하나님께 푯대를 꼿아라
그럼 길을 예비해 주신답니다." 

선배들이 섭섭하지 하면
저는 주님은 좋은 길로 여시고
인도하신것을 아시기에
이젠 두렵지 않습니다.

롬8:28절에
모든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고 하십니다.
나중에 돌이켜보면
하나님은 최선의 방향으로
인도하신분이십니다.

최윤영 아나운서의
성령충만하는 것이랍니다.

이땅의 젊은이들이
말씀으로 서있길 원합니다.
​“기도는 창이고 말씀은 갑옷이다.
물론 공격용 무기인 창이 중요하지만
갑옷을 입고 있지 않으면
언젠가 이 창이 나를 찌를 수도 있다.
반드시 말씀의 갑옷을 입어라.”
 
그가 좋아하는 성경구절은
 (빌립보서 4장 13절)의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말씀은 항상
암송하는 구절이랍니다. 

지금은 당당하게 멘토가 되어
​젊은이들에게 외칠수 있는것은
어쩌면 최윤영아나운서가
힘들고 괴로워서 울었던
과정을 통하여서
축복의 모델로 쓰시네요.

하나님을 우리가
지금 길이 막히고
어려움이 다가오면
원망하고 불평하지만
하나님은 놀라운 방법으로
길을 예비하시기에
지금은 걱정을 하지말고
믿음으로 감사의 고백을
드리시기 바랍니다.

지금 우리들에게
예수님이 손을 내미십니다.

이시간 손을 잡으시고
항상좋은것 주시는 주님의
품에 거하시기를 축원합니다.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먼저 하나님의
부름받으신
김준곤 목사님은
한국 대학생 모임인
CCC대표를 섬기면서
 거쳐간 대학생이
40만명이나 됩니다.

평신도는 350만
배출했습니다.

그분의 간증을 소개합니다.
 
전남 신안에
있는 2만여
주민이 사는
지도가 고향인데요.​​

유학자 집안으로
7대조 제사를
드리는
집안이며

아버지는
동네
유림회 회장으로
엄격한 선비셨습니다.

어머님이 제일먼저
예수믿으시고
철야기도를
많이 하신분입니다.

여덟살 때
문준경 전도사님을
통해서
예수님을 만나​

일본군에
 끌러 갔다가
구사일생으로
도망오기도 했습니다.

해방후 첫 아내
인정진 사모와
결혼 했습니다.

김준곤목사님의 간증입니다.

6.25가 발발하자  
그 당시 지도면
일대에서는
2천여 명의 민간인이
공산당에게 떼죽음을 당했다

나와 아내가
끌러나가고
어린 딸
살릴려고
조용히 끌러갔습니다.

 동네 뒷산까지
끌려갔더니 마을 친척들을
비롯한 60여명의 사람들이 끌려
나와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곤봉으로 사람들을
때려 신신시킨후
한꺼번에
죽창이나 일본도로
찔러 절명시켰는데
내 눈앞에서 아버지와
아내가 죽어가는 모습을 봐야 했다 

곤봉에 맞아
숨이 끊어졌다가
다시 정신이 돌아오셔서
아들인 내 이름을
간절히 부르고 계셨다

의식을 잃어가던
나는 아버지의 피 토하는
그 부르짖음에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시체더미 밑에
깔려 있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나는 그 때 이
세상의 모든 죄와 죽음,
고통, 저주, 절망을 짊어지고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하고
울부짖었던 예수님의 고토을 보았다 

바로 그 십자가의 고통이
하나님과 만날 수 없었던
우리를 하나님과
만날수 있게 해준 것이고
이런 고통 속에서
주님이 나를 찾아오셨다 

사랑하는 내 가족들의
죽음을 경험했기에
전 인류를 향한 예수님의 고
통과 죽음을 함께 체험한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달아
‘전라남도를
거룩한 도시로 만들자’하고
다짐했다
​ 지금 지도는
63%가 기독교화 되었다

전남 성시화 운동은
그렇게 씨가 터서 싹을 냈다 

김준곤목사님의 또 다른
간증입니다.

둘째 딸 신희는
​ C.C.C에서 아버지를
도와 간사를 하다가
결혼하고 미국에 갔는데
미국 병원의 오진으로
뒤늦게 위암을 알게 되었다 

한국에 나와
165일동안
투병하다가 내게 슬픈
무덤을 남기고
하늘나라에 갔다 

나는 내 딸 신희가
가혹하게 죽음의 순간까지
견디었던 극한 고통을 보면서 
그리고 아버지와 첫
아내의 죽음을 보면서
정신을 놓을 만큼
감당못할 아픔을 겪었다 

‘아빠, 살길이
없을까요?
살고 싶어요’

간절하게
되뇌던 딸은
죽는순간 마지막
유언기도를 했다

‘사랑하는 주님
나의 눈물과 고통과 죽음이
찬송으로 사랑과 기도로
변하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서 딸은
말을 못하고
의식을 놓더니
하늘나라에 갔다 
손이 점점 식어가면서
굳어져 갔다 

그 모든 존재가 사
라지는 제로점이었다 

그때
나의 아버지가
숨을 넘기면서
내 이름을
불렀다는 것이나 
내가 신희의
이름을 부른 것이나 
 
첫 아내가 순교하면서
딸 은희를 불렀을 것이나 
그리고 신희가 죽으면서
불렀을 아이들의
이름을 생각할 때 
그 모든 고통들 앞에서
존재가 사라지는
‘존재의 제로점’을 느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없었으면
피 흘리는 구원이 없었다면
그때 그 사건이 없었다면
회복할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하나님께
섭섭함이 커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럴 때 십자가의
예수님은 소나기 같은
 피를 흘리고 계셨다 

내가 없어지는
존재의 제로점에서
나는 주님을 만나서
영혼 전에 택했다는
사랑도 이해되고

아버지의 학살과
첫 아내의 순교가
이해되고
소중한 보물 같은
내 딸아이의 죽음도
용서가 되었다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일산에 말씀과
찬양의 교회를 섬기고
계시는 김종찬 목사님

 78년 가수로
데뷔했으나
주목을 받은 건  
그의 1집 앨범
‘내 사람아’ 등을
발표한 85년 이후부터,
‘사랑이 저만치 가네’라는 곡으로

모든 방송
 가요 차트를 석권했고 
 ‘토요일은 밤이 좋아’,
‘당신도 울고 있네요’ 등을 
잇달아 히트시키며,
10대가 수상을 받는 등
더 이상 부러울 게 없는 당시  
가요계의 최고의 아이콘이 되었다.

한때 TV, 라디오만 틀면
온통 그의 부드럽고
감미로운 목소리가
흘러나올 정도로 
 무대 위에서 화려한
조명을 받고 승승장구하며
​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 중반을 주름잡던
그가  
1996년 ‘산다는 것은’
음반 이후 
어느 날 그 무대에서 사라졌다.

무대에서 사라진
그는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98년 IMF를 겪으며
사업은 부도가 났고
여러 사람들에게까지
큰 손해를 입혀  
결국 구치소에 수감됐다.
​ 
화려했던
톱스타의 자리에서
곤두박질친 그는 미움,
분노, 증오에 휩싸여  
하루하루를
고통 중에 보냈다.

그러던 중 하루는
교도관 한 명이 왼쪽
오른쪽의 사람을 모으더니  
찬송을 부르는 모습을 목격했고,

​그가 미션스쿨에서
즐겨 부르던 찬송
'234장
나의 사랑하던 책'이었다. 

자연스레
그 모임에 동참하게 되었다. 
어릴 적 미션 스쿨을 다니며
불렀던 찬송이
머리에서 맴돌기 시작했습니다.  

‘절대 세상의 노래를 부르지 않겠다.’

모임을 갖던 중 그는
주체할 수 없는
회개의 기도를 드렸고,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결국 그는 그곳에서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는 하나님께
두 가지 서원을 했다.

한 가지는 나머지 인생을
주님의 종으로 살겠다는 것과
또 한 가지는  
절대로 세상 노래는 부르지 않고 
주님만 찬양하겠다는
하나님을 향한 약속이었다.

수감을 마친 후
그는 7년간 신학을 공부했고, 
2009년 10월 한국 독립교단 및
선교단체 협의회
(한독선연 총회장 김상복 목사)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목사
(한국 백석대학 신학과 졸업)가 되었다.

현재 김종찬 목사는 교도소,
보호감호소, 군부대, 탈북자,
병원, 장애인 치매노인시설 등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가서 찬양을
부르며 지내고 있으며,

아시아, 남미, 미주 등
전 세계를 돌며 
하나님의 사랑과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가 직접 6곡을
쓰고 가사도 쓴,
4집 찬양음반
‘생명의 빛’ 등도 발매했고.
 
그의 가족들도 모두
가장의 뜻을 지지해줬다. 
 일산에서 찬양집회를 통하여
영광을 돌리고 계시며
일산에 개척하여 하나님 영광을
위하여 열심히 사역하고 계십니다.

목사님의 고백입니다.

"사업 실패하고
구치소에 있을 때
교도관이 성경을 읽어주었습니다.

로마서 10장 17절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그 순간 성령님의 역사로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성경을 통독하고
이제 저는
목사로 살겠습니다.
라고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특별한 은혜로 개입하시고
날마다 함께 하기를 원하십니다.

김종찬 목사님은
가장 힘들때 만났던
예수님을 전하기 위해서
부르시는 곳은
어디든지
​달려갈려는
순종의 고백이
우리들에게도 가득해
지기를 축복합니다.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30년의 개그우먼이며
충현교회 다니는 이성미씨는​
서울예술대학
 방송연예학과를 졸업하고,
 1980년 TBC 개그콘테스트에서
대상을 수상하면서 데뷔했습니다.

2013년에는 SBS 연예대상
 러브FM 부문 라디오 DJ상을 수상을
하기도 했는데요.

첫번째 신앙생활은 
새벽기도를
통해서 시작되었답니다.

새엄마가 새벽기도
나가보지 않겠니라는
말에 나가게 되고
10일후에 방언이 터지고
성경공부를 하면서
중보기도의 동역자의
중요성을 깨닭았답니다.

이성미씨의 어린시절은
어머니가 4명이랍니다.

초등학교를 4학년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후에 새엄마가
그렇게 많게되고
그때마다 삐탁하게
살아옵니다.

아버지 사랑만 받고
살아와서
늘 죽음만을 생각하고
늘 유명했지만
불행했답니다.

인터넷을 보면서
내과거를 지으고
싶어요라고 합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삶의 의욕을 잃어버리고
2002년 월드컵때
케나다로 떠났습니다.

내 좋은 것 다 빼았아 가서
늘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TV프로 7개와 라디오를
2개를 하는데도
캐나다로 떠났습니다.

이유는 아이가 유학을
간다고 해서 갔지만
도망치듯이 갔습니다.

2002년 9월
한국을 떠날 때 이 집사는
 마흔셋, 큰아들은 열셋,
​둘째 딸은 다섯 살이었다.

 막내딸은 태어난 지 14개월.
​낯선 곳에서 가족은 힘들었다.
​특히 아들은
 심하게 사춘기를 보냈다.

그때부터 아들과의
갈등이 있었고
공부와의 갈등으로
괴로워합니다.

사실 욕쟁이였답니다.

내안의 상처가 있어서
욕을 아들에게
하기 시작합니다.
“미친놈,“이 XX 진짜 똑똑하다.”
​밥먹듯이 했습니다.

공부를 너무 해서
공부안하면" 너
거지된다."라고 했습니다.

학교를 안가면
학교에서 전화가
오니
"너는 학교 교장이니."라고
욕을 했답니다.

이번에도 아들이
컴퓨터하고 있는데
나오라고 했는데

아들이 애이씨라고
했는데
내가 때릴려고 하니
나를 잡았고
또 욕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갑자기
"집사란 인간이
집안에서 이러는것 알아."
하는데 힘이 빠지고

새벽기도를 또 갔습니다.
가면 아들 바꾸어달라고
매일 기도했습니다.

다음날도
아들에게 밥을 주면서
"야 날샌놈 밥먹고
학교가."

그런데 그때 하나님께 말씀
하신겁니다.

"네 아들 네가 말한대로
만들어 줄까."

갑자기 두려움이
들었고 17년욕을 한것을
방에 가서 회개했습니다.

놀랍게 기도하고 나서
욕을 하지않으니
이제 아들이 욕을
안먹으니 너무 고민이되어
일주일되어서
물었답니다.

"왜 욕을 안해."
하나님이 말씀하셔서
이젠 순종한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아들이 공부하고
조금씩 바뀌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아직 내안에
있는 쓴뿌리가 남아있었고
이때 큰 사건이 터지게됩니다.

아들이 운동을 잘하는데
운동장을 금을 긋고
축구하고 한쪽은 하키를하는데
서로 싸우게 되고
축구공을 발로 찾는데 그중에
한 아이가 맞으면서 넘어져
뇌진탕으로 쓰러지고
아들은 교장실에 갇히게
됩니다.

경찰과 엠브란스를 불렀고
아들의 문자를 받아서
가서 볼려고 차를 탔는데
하나님께서 아들에게
율법으로만 가르치는 모습을
보게 하시고 회개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키우지 못하고
내 이름에 먹칠할까봐
날마다 잔소리로 했는데
40분을 회개하고 갔습니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너희는 추방될것이고
아들은 감옥갈것이다라고
합니다.

가서 만나는데
마침 무전기로 연락이 오길
다친 아이가 깨어나서
아들이 처벌받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고

학교에서 14일 정학만 맞고
집에 오게 됩니다.

집에 와서
아들에게 무릎을 끊고
내가 미안하다
내가 잔소리하고
잘못했다라고
했는데

아들이
나에게 한번이라고
잘한다라고 한적있어라고
하는데 같이 울었습니다.

다음날 새벽기도를
갈려고 하는데
아들이 같이 가겠다는
거예요.
그날부터 같이 다니게됩니다.

어느날 아들이
새벽예배때
하나님이 날 부른데라고
합니다.

목회를 해야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한달뒤에 아들이
목회한다고 하는데
너무 기뻤답니다.

다시 한국으로 오는데
아들을 데리고 오고
싶은데 하나님이
이제 맡기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돈도 주지 말고
하나님이 축복주신것을
가로채고 있다고 해서
혼자 알바하면서 공부하는데

어느날 전화가 왔는데
4년 장학금을 받게 하였습니다.

이성미집사에게 큰 위기가
개인에게 찾아오게됩니다.

건강검진이 아니라
 방송을 위해서
검사하던중에
유방암이 발견되어
12번 수술을 하게됩니다.

그때 "하나님을
그렇게 사랑하고 열심히
사는데 어떻게 암이 올수 있나?
하면서 나중에 알수 있겠지 하는데

사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울랄라세션의
리더였던 임윤택씨가
 한참 암 투병때
이성미집사는
복음을 전하고 싶었는데

마음속에 갈등이
"난 암을 겪지 않아서
고통을 모르니 말로만 떠든라."라고
생각이 들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내게도
 그런 고통이 있다면
내가 다가가서
위로할수 있을텐데라고
했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기도를 들으시고
암을 주셔서 암으로 고생하는
임윤택에게 전화를 걸어서

"윤택아 내가 암에
 걸려보니까 그동안
네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이제는 내가 조금 알겠다"라고
했답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게 되었답니다.
그래서 고난이 축복입니다라고
고백을 한답니다.

결국 무사히
수술을 마친 후 이성미는
"내가 하루하루를 덤으로 사는구나.

내 인생에서 눈을 감았다가
내일 뜬다는 보장이 없다면
내가 오늘 하루 정말 행복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달라진 마음가짐을 알렸다.

그리고는 "그 이후로
 버릴 시간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 순간이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이고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옛날에는 먼 미래에
어떤 행복을 꿈 꾸곤 했는데
이제는 오늘 하루가
가장 행복하다"고 합니다 

이 집사는 북한선교에
 대한 비전을 밝히기도 했다.

이 집사는 "하나님께서
북한선교에 대한 비전을 주셨다"며
 "하나님께 칭찬받는 딸이 되고 싶다.
북한선교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집사의
성경 속 신앙 롤모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대신 짊어진 구레네 시몬이다.
 어떤 고난 속에서도
신앙을 버리지 않으면서
주변에 힘들어 하는 동역자가 있다면
그 짐을 나누고 싶어서라고 한다.

그녀의 고백입니다.

"누군가 힘들어 할 때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갈 수 있는 넉넉한 사람이
되기를 바래요.

그래서 많은 이들을 섬기는 것과
그들을 진심으로 대할 수 있도록
겸손한 마음을 허락해 주실 것을
기도하고 있어요."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탤런트 하희라는
최수종의 아내이기도 하며
선하고 아름다운교회집사입니다.

절친인 신애라씨의
기도제목중에
하희라의 예수믿는것이
있을 정도로
하나님의 개입도 있었는데요.

방송시작하게된
계기가 있었는데요.

초등학교6학년때
선생님과 같이
방청을 왔다가 선생님이
합창단을 하라고 해서
시작하다가 방송을
했다는데요.

집안이 딸이 세명인데
서로 화기애애하게
자랐답니다.

중국요리를 잘하는
중국아빠와 한국의 엄마와
만나서 자랐기에
다문화 가정에 대한
생각이 남다르다고합니다.

하집사님는 2008년 예수를
믿기 시작했다고 했다.

 불교 집안에서 태어난 그녀는
언니와 동생을 따라 교회에 다니고
성경 말씀을 읽으면서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간증했다.  

하집사님의 고백입니다.
 “결혼 초 불교신자였어요.
 시댁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교회에 다니기도 했지만
사람의 상처로
교회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았죠.

 사실 집안대대로 믿어왔던
불교와 미신을 지키면서
영적으로 힘든 성장기를 보냈어요.

미신 때문에
벽에 못 박는 것조차 하나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어요.

결혼하고 나서도 몸도 아프고
 무섭고 영적으로 많이
예민할 때가 있었는데
불교신자였던 동생이
먼저 교회에 가야겠다는 거예요.

동생이 엄마에게
눈물을 흘리면서
" 엄마가 반대해도
나는이제 교회가야돼."
하는데
눈물을 흘리면서
감동을 받게되고

저도 계기를 찾고 있었는데
반가운 마음에 그날 바로
남편에게 전화를 해서
교회에 가겠다고 했어요."

지금은 세자매가
믿음으로 서로를 위로해주고
함께 할수 있어서 감사한답니다.

하집사님은  
1991년도부터
가위에 누리기 시작했는데
상가집을 갔다오거나
사고 난 장면을 보고 나면
사람의 모양으로 귀신이
나타나서 목을 누르고
침대를 뛰어다니고
시달림에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교회를 가야되겠다고
 한 순간부터
​가장 무섭고 두려운
그 일이 없어지게 되고

한번은 드라마를 하다가
잠결에 무엇인가가 나온것 같아서
예수 그리스도이름을 물러거라고
외치고 그주에 주신 말씀이
이미 승리한 싸움이였고
예수이름으로 승리했다라는
승리의 깃발을 꼿게됩니다.

집사님의 고백입니다.

“수요예배에 처음 나갔는데,
신기하게 그날부터 지금까지
가위 눌린 적이 없고
 귀신 따위는 보이지 않아요.
 교회 다니기 시작한 날부터
그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나를 강하게 이끌어
주셨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결혼전에 하희라집사가
믿지 않는 집안이라서
점을 치러갔더니
남편과 결혼을 하면
1년을 못산다고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속았답니다.

연기 생활을 하면서 만난
동료 탤런트 최수종 집사와
1993년 결혼, 봉사활동에 앞장서며
연예계 ‘잉꼬 부부’로 소문나있는데요.  

“크리스천 남편과 결혼했지만
신혼 초기에 잠깐 교회에 따라갔다가
제 딴엔 어떤 상처를 받아
교회를 다니지 않았어요.

그런 저를 남편은
무려 15년이나 기다려준 겁니다
아마 남편이 제게 종교를 강요했다면
저 또한 교회를
형식적으로 다녔을 거예요.”

하희라씨가 예수믿기전에
절에 가게되면
남편 최수종씨는 같이 가서
기다려주고

집안에서도 다같이
기다려주었답니다.
그래서
지금도 감사하고 있답니다.

한번은 특송을 할
스케줄이 있는데
그날 아침에 갑자기
허리가 아파서
그때 깨닭는 사명을
회복하게  됩니다.

연약함을 통해서
아픈사람들을
이해하게 됨으로써
그들을 섬길수있게
되었답니다.

 남편 최수종 씨가
시나리오가 좋다고 해서
 출연하게 된 드라마
‘바보 엄마’를 시작할 때에는
일을 시작하면 하나님 말씀에서
멀어질 것 같아 걱정했다고 한다. 

“믿음을 가진 상대역을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했어요.

그랬는데 신현준 씨가
상대역이라고 해서 놀랐어요.

일을 하면서도 그리스도의 향기를
뿜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연기했어요.
힘들 때면 하나님께서는
신현준씨를 통해 저를 회복 시키셨구요.
믿음의 사람과 함께 일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한 시간이었어요.” 

믿음으로 하나 된 부부는
요즘 봉사활동에 앞장서고 있다.
몇 년 전 손에 화상을
심하게 입는 경험을 한 후,
병원에서 고통 가운데 있는
 화상환자들을 위해
지속적인 봉사를
결심하게 됐다고 합니다.

화상환자들을 위해
음반제작을 하면서 재능기부라는
분야를 생각하게 되었고,
체계적인 공부를 통해
더 많은 사람을 돕기 위해
시작한 대학원 공부
(사회복지학)에도 매진하고 있답니다.
최수종,하희라 부부는
죽어서도 선행할것이라고 하면서
인체조직 기증 희망서약을 했는데요.

인체조직은 뼈·연골·근막·피부·
양막·인대·건·심장판막·혈관 등
9가지를 말하는데요.

피부이식이 필요한 화상환자,
암치료 후 뼈나 조직의
재건이 필요한 환자,
당뇨나 협심증 등으로
새로운 혈관 이식이
필요한 환자 등에 쓰인답니다.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1978년 데뷔하며
대학생 때 데뷔하여
30년이 넘어간 세월 동안
연기자로 활동한
서울 온누리 교회 집 사이 신
강석우 씨를
소개합니다.

모태신앙이며
본인은 크리스천이라고
말하고 다니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까 봐
항상 날마다 기도를 한다고
합니다.

본인은 삶이 예수그리스도의
향기가 드러나기 원하는
개인적인 소망이기도 합니다.

10 때의 교회에서의
수련회 때의 신앙이 가장
뜨거웠다고 하는데요.

충현교회 장로님들이
무조건 믿으라고 하는
그대로 순종했는데
그 믿음이 지금도
감사로 느껴진다고 합니다.

연기자가 아니었다면
다른 것을 상상할 수 없었다고
하는데요.

대학교 때 프로듀서를 하고 있었고
학과에서는 뮤지컬을 하고 있었는데
선배가 연기자로 지망하라고 하는데
별로 가고 싶지 않았지만
친구들이 상금을 타면
그것으로 무얼 먹자고 하는데
가서 그곳에서 뽑히고
연기자로 생활을 하게 됩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1978년에 선배 이미례 감독님의
권유와 도움으로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었던
영화진흥공사 주최 '제1회 남녀
주연배우 공고'를 통해 영화계에 입문했다.

본격적으로 연기자를 시작하게
되는데 1982년 보통 사람들에
캐스팅되어서 인기 있는
스타의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항상
내 길이 아닌가라고
갈등이 항상 있었고
젊은 의 행진을 시작하게 되고
다시는 나오지 않겠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내가 큰 박수를 듣고 살면
나중에 잘못되겠다고 싶어서
그 후에는 쇼 프로는 나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보통 사람 들할 때 미리 한 시간 전에
들어가서 미리 기도하면서
힘을 얻고 이겨내기도 했습니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겸손함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1986년의 겨울 나그네를
하게 되는데 이곳에
목숨을 걸게 됩니다.

이 영화가 흥행하지 못하면
나는 이제 끝이라고
생각하고 했답니다.

하물며 낚시터에서의 장면을
찍기 위해서 일주일을 머리 감지
않고 지낼 정도였답니다.

본인이 신앙이 흔들리는 것은
나이 들면서 더욱 흔들리게
되는데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으
깨닫게 됩니다.

지금도 기도제목이
"흔들리지 않는 신앙인이
되는 것이 꿈이자
목표입니다."

강석우 씨는 교회에서
예배드릴 때 찬양을
너무 크게 불러서
아내와 자녀들이
하소연을 한다고 하는데요.

부인이 하는 말이 "너무 큰소리를
내서 부끄럽다고 하면"
강석우 씨의 말이
"회사에 회식 가거나 야유회 가면
고속버스에서 노래를 목이 쉬도록
부르는데
교회에서 크게 부르다가
죽으면 좋지."라고 한답니다.

한 번은 강석우 씨의 부인이
천주교를 다니다가 와서
강석우 씨가 십일조 헌금을
많이 내는 것을 보고

"당신 무슨 헌금을 그렇게
많이 내요, 돈 모을 수 있을 때
모아야지."라고 했을 때

강석우 씨가
"십일조는 성도의 의무이고
하나님의 명령이야."라고
해서 단 한 번도 그렇게
단호하게 말 한적 없는 남편의
말에 놀랐다고 합니다.

주일날에 스케줄이 잡혀서
지방 촬영을 가야 한다고
전화를 하면
단호하게 "주일엔
교회 가야 합니다."라고 한답니다

사실 신앙생활을 해도
적당히 하면 좋겠지만
그의 신앙에 영향을 주신 분이
계신데요.

특히 어머님의 기도에
영향을 많이 받으셨는데요.

기도 많이 하시는 권사님
주위 사람들이 천사 같다고
하며 고부 간의 갈등이 없을
정도로 며느리하고 관계도
좋았다고 합니다.

남아 드신 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양보하다 보니 갈등이 없었답니다.

어느 정도로 기도하셨냐면
무릎이 나중에는 못쓸 정도로
기도하신 분이 셨답니다.

그래서 매일 밤 12시 되면
아들방에서 딸의 방에서
같이 기도한답니다.

강석우 씨가 고백하기를
"가정예배가 가장
좋은 것입니다."
라고 고백합니다.

대학교에서 강의할
일이 있었을 때
꼭 하는 말이
십일조를 꼭 합니다라고
고백을 한답니다.

믿음의 유산이
축복이라고 고백합니다.

좋은 부모님
좋은 목사님을
만나야 하는 이유는
좋은 기도의 모델이
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결론적으로 강석우 씨가
인생의 삶의 포인트는
첫째 가정예배
둘째 기도의 모델
셋째 십일조를
통하여
믿음의 유산을
남기길 기도한답니다.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1998년 김창완의
 "이야기 셋"으로 데뷔하여
청춘 드라마 "학교"에 출연하여
최고의 하이틴 스타로 거듭났고

어린이 양욱 기관인
 "컴패션 벤드"에 활동하며
아침드라마로 우리의
곁에서 있는 박시은 씨를
소개합니다.

이 분은 현제 동광교회에
출석하고 계시는데요.

박시은 씨가 고백하는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란 나의 인도자이시고
창조주이시고 저의 주관자이시고
한마디로 말해서 저의 전부죠."

작품을 할 때마다
어디든지 숨겨진 동역자를
만나면서 보석을 발견하는
기쁨을 누리게 됨을
감사하다고 하네요.

리키와 친해서
 정글의 법칙을
가자고 했을 때
밤새도록 첫해부터 했던 것을
집에서 보면서 남자들이 왜
나무를 타고 올라가지 않지라고
하면서 가게 되었는데요.

이제 피하지 말고
도전하자는 마음을 먹고
있었을 때에 정글의 법칙을
만나게 됩니다.

박시은 씨의 고백입니다.

"하나님의 때가 반드시 있고
그때에 순종하고 나가게 되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생깁니다."합니다.

정글의 법칙을 갔다 오면서
아프리카에 사시는 선교사님의
마음을 깨닫게 되었고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곳에
가면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주의 손길을 발견하면서
우리가 갈 천국은 얼마나
아름다울까?라고
생각을 했답니다.

데뷔를 길거리 캐스팅으로
하게 되었다는 데요.

처음에는 압구정에서 만난 매니저를
만나고 나서 그냥 두었는데
한 달 후에 다시 만나게 되어서
사무실에 가면서 시작을
하게 됩니다.

신앙은 모태신앙이었기에
중학교 때에  백일기도를 하면서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셔서

다시 고등학교 때에 백일기도를
하면서 공부를 집중적으로
하지 못하다 보니 점수가
낮게 나왔고 실망하다가

다시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 제 갈 길을
빨리 보여주세요."라고
하면서 캐스팅이
되어 시작을 했답니다.

모태신앙이었지만
바쁜 연예계에 있다 보니
하나님과 너무 멀리 와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2000년도에 아버지께서
암으로 돌아가시고 나서
어머님이 힘들어하시기에
어머님이 다니시는 교회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어릴 때 찬양하면
친구를 만나게 되었고

우리들이 청년 예배 때
참석하게 되었는데

찬양하면서 손을 올리는데
손이 올라가지 않고
마음 문이 너무 닫혀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다시 돌아가게 해달라고

몇 년 동안 기도를 하다가
3년 후에 지금의
교회로 인도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 은혜를 받게 되고
새벽예배도 나가게
됩니다.

새벽예배를 하면서
아침에 고요하게
시작하면서
새로운 은혜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너무 힘든 시기가
있었는데

교회가 새벽에 드리는
곳이 바닥인데
오랜 시간을 눈물로 뜨겁게
기도하던 중에

옆에 계신 분이
너무 안쓰러워서 손으로
또닥거려주고 가셨는데
놀라운 일은 계속 등에
뜨거워지면서

"하나님 저 안아주세요."
라고 기도했는데
"너는 혼자가 절대 아니란다."라는
말씀을 깨닫게 됩니다.

지금도 새벽예배를 통하여서
다음 작품이 들어가기 전에
기도로 아뢰고 은혜를 받는답니다.

박시은 씨가 하나님을
다시 만나기 전에
너무 힘들었답니다.

자기 것 자기 일
그리고 일이 없으면
힘들고
스텝들이 말하는 것이
싫어지고
결국 우울증까지 왔었답니다.

지금은 우울하고
답답한 일이 있거나
시기가 오게 되면

"하나님 좀 더 큰 그림을
보게 해주세요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지 않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한답니다.

교회의 극단 "미리암"이라는
연극하는 대표님의
권유로 "컴패션 벤드"에
참여하게 됩니다.

이미 함께 있던
차인표 선배님께서도
함께 하기를 원하셨답니다.

14명으로 창단을 하게 되고
같이 성경공부를 하면서
지금은 현제 100명이
넘게 되고
섬길 수 있게 하신 것 감사합니다.

이곳에 참여를 하면서
자신을 치유받게 되는데요.

그녀의 고백입니다.

"나만 특별한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귀하지 않는
사람은 없구나."를
깨닫게 됩니다.

나만 향하던 생각을
다른 사람들을 보게 되고
나만 혼자서 살아서 되는 것이
아니고
지금도 자신의 꿈을 잃어버린
것이 가난이고
이 아이들이 바뀌는 모습을
보면서 행복을 느낀답니다.

"나도 필요한 사람이 될 수가
있겠구나,
나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하나님이 날 그렇게
만드실 수 있겠구나."
라고 고백하게 되었답니다.

진태현 형제와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드라마에서 만나서
하는 말이 선배님
크리스천이시죠
저도 크리스천입니다라고
했답니다.

이 형제가 드라마가
끝나면 가까운 교회에 가서
꼭 새벽예배를 드리고
가는 것을 보았답니다.

그래서 진태현 형제에게
"당신은 참 귀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라고
하면서

"당신이 참 귀한 사람인 것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라고 했답니다.

그러면서 박시은 씨가
자신이 읽고 있는 책을
선물해 주었답니다.

하늘에 속한 사람이 되라는
메시지와 함께 책을
주었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께서 만나게
하시고 결혼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5년의 열애끝에
화려한 결혼식이 아닌
진태현씨가 다닌 베이직교회에서
담임목사인 조정민목사의 줄례로
소박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연애할 때는 그렇게
기타로 치는 찬양 동영상을
보내주기도 했답니다.

박시은 씨가 좋아하는 말씀은
창세기 26장 28절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의 말씀처럼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고 계신다는 것을 나타낼 수 있을까?

그렇게 살게 싶어서
기도하기를
첫째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게 하시고
둘째 하나님이 함께 하심이
보이게 해주세요.
셋째 예수그리스도의 빛이
비추어지게 해주세요. 
라고 기도한답니다.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