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 리더 :: '간증' 태그의 글 목록 (6 Page)

1996년 영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로
데뷔하였지만
1994년 영화
"이도백화"가
데뷔작인데요.

그후로도
영화와 드라마에서
종횡무진 활발한
활동을 하고 계시며

2005년 11월 11일
결혼을 하였고
지금은 아이를
세번을 둔 당당한
엄마이기도 합니다.

조은숙씨의 남편은
 틈커뮤니케이션즈 대표이사
(광고기획사)룰 맡고 있는
CEO 박덕균씨입니다.

그런데 조은숙씨보다는
남편이 열심히 있는
크리스천이라는데요.

남편따라서 신앙에
깊이가 생겼다고
합니다.

시어머니와 남편이
적극적으로 연기자생활을
하도록 밀어준것에
늘 감사하다고 하네요.

첫째달(박윤)의 이름을
무엇으로 할지를 가지고
 온가족이 고민을
하다가 남편이 기도하는중에
"윤"자가 떠올라서
외자로 지었다고 합니다.

어릴때부터 탈렌트가 될려는
꿈을 가진것이 아니고
대학도 문예창작과를 진학을
했답니다.

유학을 결심했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혼자서
유학비용을 벌려고
여러가지 아르바이트를
해 보았답니다.

그러던중에
"사주 팔자를 고칩니다"라는
연극에 출연하게 되면서
잘한다는 평을 듣게 되었고

그 다음에 출연한
"나의 라임 오렌지"에
영화 관계자분들이 오셔서
결국 케스팅되게 되었습니다.

신앙생활은 어릴때부터
다녔고 교회가 평안했답니다.

어느날 친구들끼리 모여서
7명이 기도를 하다가
갑자기 큰 불덩어리가
한명 한명에게 다가와서
그때는 성령의 역사를
모르기에

뒤로 넘어지고는 너무
무서워 다시는 교회에
다니지 않게 됩니다.

그후로 점집에 제집 드나들듯이
다니게 된것입니다.

조은숙씨가 너무 어려울때에
점집을 찾아다녔는데
그 말대로 하니 더욱
되는 일이 없자

이제는 점을 끊겠다고
결심하고 점쟁이를 찾아갔는데

그때 하는 말이
"너 같은 사람은 다신
이런 곳에 오면 안돼!
교회를 나가, 교회를!"

그때는 황당했지만
결국 남편를 따라서
독실한 기독교인이
된것이지요.

그래도 유일하게
하나님께 기도한것이
있는데 남자친구에 대한
기도는 했답니다.

"이런 것 저런 것
다 필요없으니
하나님 보시기에 온전한
사람을 달라"고
해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된것이랍니다.

남편은 밤새 술집에서
조은숙씨의 말벗이 되어주다가
새벽기도를 드리는 곳에
같이 데리고 가기도 했답니다.

결혼전에 남편은 2년동안
경제적 어려움이 많아서
결혼에 대한 고민을 하다가

어느날 교회로 운전을 하고
가서는 조은숙씨를 차안에
두고는 혼자 교회로 가서
자신의 전재산 130만원을
헌금을 드리고

이렇게 기도했답니다.
"같이 살고 싶은
은숙이가 밖에 있어요"라고
간절한 기도를 드리고
결국 결혼하게 된것이랍니다.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그때 그사람"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사랑받게 난 몰라"
"여자이니까"등으로 
80년 대를 주름잡았던
가수 심수봉
 (본명 심민경)씨는

여러가지 고난과
아픔을 겪으면서
예수님을 영접했지만
당당하게 고백을 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고

그러면서 더욱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개인적인 체험을 한 간증을
고백했는데요.

집을 짓고 지하에 와인저장
창고를 만들려고 땅을
파는데 계속 물이 나와서
결국 하나님께 회개하고
나니 물이 멈추더랍니다.

그때부터 그 집을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산의 이름을 따서
"모리아"라고
고백을 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기도와 찬양하는
공간으로 만들어져서
쓰임받게 하셨답니다.

심수봉씨는
1955년 7월 11일
충청남도 서산에 태어나서
19​78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그 때 그 사람(자작곡)으로
데뷔했습니다.

원래는
 1976년 "여자이니까"를
발표했지만
데뷔곡은 이것이지요.

그전에 1975년 청와대의
초청받아 박정희 대통령앞에서
노래를 불렀고

그당시 최고의 가수
나훈아앞에서도
노래를 불러서 음반을
녹음했지만
음반사와의 분쟁으로
취소되면서
뒤늦게 명지대학교에
입학하게 됩니다.

그후에 명지대학교
경영학과에
재학중일때에
대학가요제에
참가한 곡이
"그때 그사람"으로
가요제에 입상은 못했지만

당시 ‘그 때 그 사람’이
전국을 강타하면서
1979년 최고의
히트곡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1979년 10.26 사건에
 휘말려 출연금지령을 받았고
잠시 활동을 중단했었고

그 당시 계엄사에 끌러가서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하게 되었고
한달동안 고통을 겪다가 나왔지만
1980년 방송정지를 당하게 됩니다.

​1984년 가수로 복귀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를 내놓아
​2만여장을 판매하는
기록을 세웠으며,

​이후에도
(사랑 밖엔 난 몰라)
(백만송이 장미) 등
주옥같은 히트곡을 남기며
음악인으로 사랑받았습니다.

심수봉 씨는 수많은 히트곡과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뒤에
숨겨져 있던 외로움과
완벽한 사랑을 찾아
헤메던 젊은 날들,
​그리고 진리를 찾은 기쁨과
고난을 통과하며
“나의 하나님“을 만났다.

심수봉은
상아색 그랜드 피아노 앞에서
하늘색 원피스를 곱게 차려 입고
스물셋 꽃 다운 나이에
​‘그때 그 사람’을 부르며
1978년 화려하게 데뷔했다.

​그러나 이듬해
10·26 정치현장을
 목격했다는 이유로
5년간 방송 출연
금지 조치를 당했다.

참으로 팍팍한 인생.
​한창 열정적으로 무대에
서야 할 나이에
그녀는 족쇄에 묶여버렸다. 

벗어날 방법을
찾던 그녀는
사주와 점술에 빠졌다.

“무엇을 보고,
​누구를 만나도
제 운명은 항상 나쁘더군요.


1985년 큰언니가
기도를 하다가
전도를 하였고
어이없게도 따라가게 됩니다.

 제게
‘너 같은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길이 있다’고
했어요.

​바로 예수님을 믿는 것이라고.”

심수봉씨는 사주 운명 팔자는
바뀔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말에 너무 큰 충격을 받아서
결국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1985년 그녀는 충현교회에
등록하고 믿음생활을 시작했다.

 3일 동안 눈물만 흘렸다는
심수봉씨의 고백입니다.

“마치 잃어버렸던
부모님을 찾은 심정이었지요.

​세상에서 겪은 외로움
서로움 고통들이 모두 얽힌
눈물이었을 거예요.

​절대자 앞에
다 내려놓으니
그렇게 마음이
편안할 수 없었어요.”

​이후 첫 남편과
광림교회에서
결혼한 그녀는
집사 직분도 받았다.

​그러나 곧 이혼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

​외국에 나갈 때면
가끔 찬양 간증집회에
초청되기도 했지만

이혼 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
교회 집회에
일절 나서지 않았다.

​그러다가
1993년 재혼하면서
그녀는 교회와 멀어지게 됐다. 

기독교에 대한
남편의 거부감이 심했던 것.

그러나 ‘아이들을 키우는 데
말씀보다 더 중요한 게 없다’는
것을 깨닫고
심씨는 남편을
이끌고 6년 전 부터
한우리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답니다.

심수봉씨는 험난했던
지난 세월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자신이 있었다면서
전화위복을 주신 주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고
고백했다.

심수봉 씨는
 “아버지 없이 자라면서
평생 아버지 사랑 같은
완벽한 사랑을 찾아 헤맸다.

하지만 결론은
이 세상엔 완벽한 사랑은
없다는 것이었다.

​배우자에게
완벽한 사랑을 기대했지만
나중에는 제가 더
사랑을 주고 끌어안아주고
북돋워줘야 할
사람임을 깨달았다. 

완벽한 사랑은
우리가 완벽한 사람,
​예수를 만났을 때
비로소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이혼의 아픔을 겪고
현재의 남편과도 한 때
어려운 시기를 겪은 그녀는

“평생 소망이
사랑 받고 싶은 것이었기 때문에
남편과의 문제가 제일 힘들었다.

​그러나 모든
축복의 통로는 나이며,
하나님과
저와의 관계가 바로서면
남편이나 자식과의 관계,
​모든 것이 풀린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고백한다.

하나님은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을 놓게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너 한테는 내가 있지 않니?"
라고 하셨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지은 노래가 바로
(백만송이 장미)입니다.

​라트비아 가요
‘마라가 준 인생’을
원곡으로 하는
이 곡은 심수봉 씨의
신앙이 묻어있다. 

그녀는
"최근에서야
기도의 기쁨을 알게 돼
시간만 나면
기도를 하게 된다"면서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다"고 고백했다.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2012년,
시청률 40%를 넘기며
화제의 드라마, 
최고의 드라마가
된 해를 품은 달! 
극중 꽃도령 허염 역을 맡으며

차분한 연기와 반듯한 외모로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배우 송재희!

서울예대 영화​과를 졸업하고
10년이라는​
오랜 무명에 지쳐
배우를 포기하려는 순간 
주신 선물이었다.

해품달로 얼굴이 알려졌고,
일도 많아졌다. 
그러나 배우 송재희는
어깨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죽음의 문턱에서 그를 살리시고 
세워주신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

원래는 초등학교 때
카톨릭에서 영세를 받았고
집안이 천주교인이며

본인 주위에 기독교인들이
안 좋은 모습을 보여서
싫어했답니다.

고등학교 때 검도를 했는데
허리 부상으로 그만두게 되고

주위에서 잘생겼다고
해서 그럼 배우를
해볼까라고 시작했답니다.

2004년에 20대 초반에 쉽게 
돈을 벌고 싶은 마음에 
시작했던 배우의 길이지만

CF 메인 모델로 
시작은 거창했으니
당연히 돈도 벌고
잘되다 보니
성공할 줄 알았는데
 그 후 일이 뚝 끊겼다.

기획사도 있었고
노력도 열심히 했으므로​
잘 될 거라는 희망고문 속에
무명생활은 계속됐다.

친구들에게 밥 한 번도 못 사고
부모님을 도와드리지도 못하고

연예인이지만 늦게 지급되는
상황에서 ​
돈이 없어 밥을 굶어야 했고, 
한줄기 희망도 보이지 않았다. 

인생의 벼랑 끝에서
그는 자살을 생각했고, 
행동에 옮겼다.

아 그만하자라고
하면서 자취방에서
자살을 기도하기까지
했답니다.

그 순간에 너무 억울하고
나 자신이 행복해보지도
못한다는 생각에
다시 
정신을 차렸다.

숨이 턱밑까지 차오를 때
 불현듯 찾아든 생각 하나는

 ‘내가 진정 행복해
본 적이 과연 있었나?’

라는 생각에 노트에
글을 쓰는데
나에게도 빽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하나님이 내 빽”이라
자주 떠들던 친구에게
왠지 전화를 걸고 싶어졌다.

친구에게 30분간 울면서
나 살고 싶다고 하니까
그럼 교회에 다니자라고 합니다.

 친구 따라 간 오륜교회에
예배당에선
스캇 브래너 목사가
예배를 인도하고 있었고,
 
그때 담임목사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답니다.

“너 왜 이제야 왔니?
내가 널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니?!”

 ‘나만 잘못 들었나?’ 싶어
확인하려고 다시 교회를
나갈 때마다 그 음성은 계속 들렸다.

그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게 되었고
들릴 때마다  울었답니다.

진짜 사랑하는 아버지가
눈물을 흘리신 것 같았고
들을 때마다 그의 영혼은
치유받았으며
급속도로 회복되었습니다.

혹시 몰라서 다시 그 음성을
듣고 싶어서 교회를 가면
또다시 그 음성을 듣게 됩니다.

죽으려다가 만난 하나님이니,
 죽었다가 살아난 인생이었다.

그러니 모든 걸 접고 내려놓으며
주의 길을 가리라는 다짐도 했다.

처음 교회를 다니다 보니
적응이 안 됐다,
사이비 집단 같았다,

그런데 말씀으로
주님의 터치를 받은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매주 주님께서는
목사님의 말씀을 통해 
그에게 말씀하셨다.

성경책을 팔에 끼고 다니고
주위 사람들에게 본인은
행복하다고 이야기하고
다닙니다.

조금씩 행복함이 느껴졌다,

세상에서
느껴보지 못한 행복이었다. 
행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알기 위해 
말씀을 읽기 시작했다. 
말씀이 꿀보다 더 달았다.
 
​어느 정도로 은혜를
받았는가 ​하면
"하나님께 내 삶을 드리자고
결심하게 됩니다."

그리고 배우는 그만두고
목회자가 되자고 했는데

하나님을 만났지만 
바로 인생이 풀린 건 아니다.
오히려 시험이 많이 들었답니다. ​

누구나 겪는 일이지만
처음 하나님 만나고 기쁘고 즐거움이
있는 것만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3년을 더
광야에 있었지만
그러나 그의 마음이 달라졌다.

​너희 힘들어서 기도와 말씀에
갈급해서 집 근처 아무 교회나
갔는데 그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받게 됩니다.

예레미야 29장 11절 말씀인데요.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빨리 응답이 오지는 않았지만
말씀을 붙들고 있었답니다.

돈도 없고 일도 없었지만
하나님만 바라보았고
그래도 행복했답니다.

사람들이 오해하기를 힘드니까
교회에 열성 광신도가 되는구나라고
주위에서도 부모님도 걱정할
정도 없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3년이 지나자 응답의
문을 여신 것입니다.

‘해를 품은 달’ 오디션이 그랬다, 
배우 생활을 접으려는 순간 주신 기회였다. 
부담 없이 오디션을 봤고, 기대도 하지 않았다,

감독님과 한 시간을 이야기하는데
거의 대부분을 간증이었답니다.

​그의 고백입니다.
"난 이 작품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난 얼마 전에 깨달았고 모든 것에
감사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감독님이
하신 말씀이
"내려놓는다는 걸
당신 참 빨리 느낀 것 같다면서
대단하다."
그리고 그런 총명함에
뽑았답니다.

그런데 결과는 합격이었다.

해품달을 하며,
또 일일드라마를 하며 
그는 자신이
크리스천임을 자연스럽게 
알릴뿐 아니라

하나님을 만난 이후로
하나님의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연기자 동료들과 함께 
기도도 하고,
지인들을
적극적으로 전도한답니다.

최근에는
오랜 카톨릭 신자였던 
어머니를 전도해
큰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어머니가 26년 이상을
카톨릭에 다니셨기에
반발도 심하고
싸우기도 했답니다.

어느 날 어머님께
우상과 연옥에 대한
비성경적인 것을
말씀드리고

어머니를 위해서
기도문을 벽에 붙여놓고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는
어느 날 집안의
우상들도 없어지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번 주부터
교회에 간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머님이
교회에서 기도하시면서
신앙이 회복되었고
나중에는 아버지도
같이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송재희 씨는 날마다
감사편지를 노트에
쓴답니다.

"아침에 눈 뜨게 한 것
감사합니다."
하면서 죽음에서
다시 살려주신 것에
감사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답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의 내 인생이 아닌
당신의 내 인생이기에 내가
지금 겪는 두려움도 실패도
절망도 팝박도 아픔도 약함도
당신을 드러낼 탁월할 기회이기에
이젠 당신만 드러내게 하소서"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조용필의 (상처), 유미리(젊음의 노트)
최진희의 (꼬마 인형), 박정식(천년바위)
장미화의 (어떻게 말할까) 등
수많은 히트곡을 만들어

별명이
히트 제조기일 정도의
인기를 누렸고

그 당시에 크게 히트했던
가요 "고목나무"를 불렀던
 장욱조씨가
예수님을 만나고
목사님이 되셨는데요.

장욱조목사님은
총회 개혁신학
대학원(MDIV)을
졸업하고
 일산 한 소망교회
선교 목사로
계신답니다. 

 수많은 히트곡과
천곡이 넘는 곡을
작곡했던 이분이
 
어느 날
음반 제작을 하다가
완전히 실패해서
빚더미에
앉게 되었습니다.
 
집마저
다 잃어버리고
 빚잔치하고 나니까
가진 것이 없어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아내가
그를 교회로
인도했습니다.

만약 한참
잘나가고
뭐 여기저기
부르는 곳이
많았더라면
아마 교회 오기가
힘들었을지 모릅니다.

완전히 실패하고
빚더미에 앉은
그를
아내가 인도할 때
순순히 교회로
따라 나왔던 것입니다.

그가
교회에 나와서
연예인 선교단과 함께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찬양을 부르다가
은혜가 임했습니다.
그때의 고백입니다.

“하루는 연예인
선교단을 따라
찬양집회를 갔는데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이란
찬양을 부르면서
마음에 이상한
감정이 치솟아
올랐습니다.
 
그 전부터
알던 찬양이었는데
그날따라 왜
그렇게 눈물이
쏟아지는지
알 수가 없더라고요."

눈물 콧물 쏟고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빚을 갚고
생계를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에서도
술집 무대에
서지 아니하고, 
 약속의 말씀만
붙잡고 나아갔습니다.
 
그때 붙들었던
말씀이 마태복음
6장 26에서 33절입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 말씀 붙잡고
나아갈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습니다.
기적이 임했습니다.
축복이 임했습니다.

1년 6개월 만에
모든 빚을 다 갚고
그리고 장막 터까지
마련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변에서는 예수를 믿고
미쳤다고 했지만
기쁘기만 했답니다.

복음을 전하고 찬양집회를
다녔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은혜받고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이 무엇일까?"하다가
내린 결론이 가족을 먼저
전도하기로 합니다.

장인을 집으로 모시 고와
병든 몸을 1년간 수발하며
복음을 전하게 되었고

드디어 장모가 먼저 변화되었고
40년간 원불교였던 장인도
예수를 믿게 됩니다.

너무 기쁘고 감격에 넘쳐서
지은 찬양들이 "할 수 있다 하신이는"
"주님 나의 동산" 하늘나라 여는 문"
"전하세"등 100여 곡을
발표하게 됩니다.

특히 신앙적으로 경제적으로
힘들 때에 교인들이 즐겨 부르는
"할 수 있다 하신이는"의 가사는
이영후 장로님이 주셔서
본인이 작곡을 하게 된 것이랍니다.
 
 그런데 교회에 사역을 하면서
말씀의 갈증을 느끼게 되면서
평신도이기에 설교와 축복권이
없어서 고민하다가

같은 동역자인 김석균 와
노문환목사,그리고 김민식전도사와
의논을 하여
"우리가 평생 하나님의 종으로
사역을 할 거라면 신학공부를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결론을
내리고 네 사람이 함께
신학교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아내는 신학교를
가지 말고 평신도로 찬양으로
사역을 하라고 말렸지만

3년 동안 설득하여 결국
신학교에 입학을 하고
졸업을 하여
2000년 안수를 받게 됩니다.

현재는 일산 한 소망교회에서
선교목사와
남양주 세계로 교회의
협동목사로 섬기며
한국 복음성가 협회를
섬기고 계신답니다.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가수이며 방송인 황보 씨는 
여성 댄스그룹 샤크라의
멤버로 데뷔하여
200년부터 2005년까지
 활동을 하다가
그룹이 해체되어
 솔로곡을 내기도 했으며

요즘은
방송뿐만 아니라
 식당과 카페를 운영하며
 패션사업에도
활발하게 하고 있답니다.

현제는 동부 이촌동에 있는
충신교회에 출석하고 있으며
송은이, 박미선 씨도 함께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어머니를 따라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여
행복한 신앙을 시작했답니다.

학창시절에 교회는 당연히
학교처럼 다녀야 되는 줄 알았답니다.

방송을 데뷔하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요.

아는 언니가 레스토랑을 
도와주라고 해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에

처음에는 이혜영 씨가
데뷔를 권했고
가수 이상민 씨가
가수해보지 않겠느냐고 해서
그룹 브로스로 처음 데뷔하게 됩니다.

2000년도에
샤크라에 데뷔를 하자마자
인기를 얻게 되었고
리더이기에 모범을 보이려고
노력했답니다.

그런데 샤크라의 멤버들과
의견을 나누고 해체를 선언하면서
홀로서기를 하다 보니
힘든 시기였답니다.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시기가
 있었는데요.

소속사 사장이 돈을 가지고 가버리고
세금을 대신 내야 되는 상황이 되면서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게 됩니다.

고소하고 재판을 준비하는데
"용서"라는 단어가 떠올리게 되는데
계속 하나님께 다시 다른 생각을 달라고
했지만 결국 용서하게 됩니다.

그 대신에 동업하셨던 분이
무료로 곡을 내게 해주셨답니다.

예능에서 솔직하고 당당한
모습이었지만 본인은
일반인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으로
홍콩을 가게 됩니다.

사실 미국에 가고 싶었지만
송은이 씨가 무한걸스를 하다가
가버리면 안 된다고 해서
가까운 홍콩을 택하게 되었답니다.

1년 6개월을 있으면서
교회에 가면서
더욱 힘들고 어려운 삶 속에서
하나님께 나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한 끼라도 교회에서
 밥 먹는 것에도
감사하게 되었답니다.

한편으로는
외로운 생활에서
울면서 지내면서
더욱 성장하게 됩니다.

홍콩에서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기획사의 엑스트라를 하면서
생활비를 벌면서 살게 되었답니다.

홍콩에서의 삶을
적응해 가는 시기에
건강 악화로 아버지가
쓰러지게 되었으며
한국에서 다시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교회를 다니다가
그만두셨는데
지금은 세례를 받았답니다.

오랜 병원생활로 많은 병원비를
감당하게 되면서 십일조를 드리는데
생활비가 부족함이 없더랍니다.

황보 씨의 고백입니다.
"모든 것을 채워주시는 하나님"이
신기하답니다.

십일조를 처음에는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믿음으로 드리기 시작하면서
기대를 했는데 가방 안에 있는
3만 원을 발견하면서 하나님이
주셨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고
더욱 드리는 것에
기쁨을 누리게 되었답니다.

현제는 컴패션이라는 단체에서
전 세계에서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위해 1대일 후원하는 일에 사역을 하면서

그곳에서 벤드로 활동을 하면서
"광고비를 줄여서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들을 돕자"라는
취지로 활동하게 되었답니다.

가수로써 노래를 부를 때보다는
봉사자로서 노래할 때가 가장
행복하답니다.

한 번은 비전트립으로 방글라데시로
가서 말라리아 약을 미리 먹고 가는데
그 약을 먹고 본인이 힘들어서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는데

한 아이가 다가와서
아임 해피 아임 해피 하는데
다시 힘을 얻게 됩니다.

그날 밤에 하나님께 기도를 들렸답니다.

"내일부터 약 먹지 않겠습니다.
병에 걸리지 않게 해 주세요"

그 다음날부터 아이들과
즐겁게 지내고 왔답니다.

이전에는 황보 씨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을 알리지 않으려고
했답니다.

크리스천으로써의 먹칠을 하기 싫었고
차인표, 신애라 씨가 닦아놓은 봉사단체에도
혹시 해가 될까 봐 주저했답니다.

그런데 황보 씨가 봉사를 한다고 해서
많은 분들이 가입을 하게 되면서
다시 당당하게 알리게 되었답니다.

황보 씨의 고백입니다.
"저 같은 비슷한 사람들이 보면서
새로운 삶을 살도록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께 다시 돌아오면 됩니다"
라고 외치고 싶답니다. 

황보 씨가 새롭게 하소서를
출연 후엔 인스타그램에 올린
진솔한 신앙고백입니다.

"종교방송은
언제나 부담되는 건 사실입니다.
 그래서 피하게 되기도 합니다.

나 또한 그리 살지 못하기에.
떳떳하지 못하기에. 
하나님이 늘 용서해주시는 건
막살라고 해주시는 게 아니라
다시 살라고 기회를 주신다 합니다.

사람들이 묻습니다.
두 얼굴로 살면 힘들지 않느냐고...

아니요
저는 두 얼굴로 사는 걸
숨기는 게 더 힘듭니다.

그러나
그 나약함을 나누고
그 부족함을 고백합니다"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드라마 "사랑을 그대 품 안에"
이후에 스타덤에 오른 후에
신애라 씨와 결혼하였고

지금은 아동학대
예방 홍보대사와
북한 어린이 돕기,
세계 빈곤 아이들을
돕는 "컴패션"에서
활동하고 있는
차인표 씨를 소개합니다.

차인표 씨는 수많은 작품 하면서
한 번은 할리우드 영화
"007 어나더 데이"에서
북한군 장교로 캐스팅
제안이 왔지만 거절했는데

그 이유는 영화의 내용이
남북 관계를 왜곡했다고
할 정도로 개념이 있는
배우로도 통하는데요.

어릴 때 자라온 배경에는
가정의 아픔이 있었는데
우성해운이라는 전회 장인
차수웅의 아들이었지만

중학교 들어가기 전에
부모님의 이혼으로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러나 차수웅 전 회장은
차남 차인표에게
기업을 물려받기를 원했지만
연기자의 길을 택하게 됩니다.

차인표씨는 10대 시절부터
연기자를 꿈꿨다는 데요.

대학 진학 후에는
"장군의 아들"의 오디션을
보기도 했는데
결국 부모님의 권유로
어머니와 함께 미국 유학을
떠나게 됩니다.

한진해운 미국지사에서
영업사원으로 근무하다가
방송국 공채 탤런트에
시험을 보게 되고

SBS, KBS의 공채시험은
탈락하고
1993년 MBC
 22기 공채시험에
합격하는데
심은하 등이 입사
동기랍니다.

한지붕 세가족에 데뷔하였고
1994년 MBC 미니시리즈
"사랑을 그대 품안에"를
통해서 스타 덤에 오르게
됩니다.

그런데 차인표씨가
당당하게 펜들에게
예수그리스도가 인생의
주인임을 고백하게 된
계기가 있었답니다.

40년간 예수님을 믿었지만
삶의 구체적인 예수님과의
동행을 깊이 발견하지
못하던 가운데

2006년 봄에
인도의 캘커타 지역으로 여행을
가게 됩니다.

원래는 아내 신애라씨가
가게 되어 있는데
갑자기 다른 사정이
생겨서

사실 가고 싶지 않았지만
신애라의 설득으로
못 이겨 캘커타에
가게 됩니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아이들을 만나려 가는데
1등석을 타고 갈 정도로
섬김과 나눔을 몰랐다는데요.

마침 비행기에 내려
버스를 갈아타고
3시간을 이동하는데
불평을 하게 됩니다.

"왜 이렇게 덥고
버스는 너무 불편하고
모기는 왜 이리
많은 거야"라고
하는데

그때같이
동행하시는 목사님께서
부탁하시는 겁니다.

"차인표씨가 만나는 아이들은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아이들입니다.

이 아이들을 만나면
꼭 안아주시고
너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말해 달라고 합니다.

버스에서 내리자
너무나 빼빼 마르고
더러운 아이가
먼저 손을 내밀어서
그 아이 손을 잡았답니다.

그 순간 40년간 믿었지만
한 번도 보지 못했고
듣지 못했고 만질 수 없었던
예수님께서 찾아온 것입니다.

그 아이 손을 잡는 순간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인표야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
내가 너를 사랑한단다.
너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단다.
이제 내가 너를
위로해 줄게"

40년 동안 기다린 예수님이
그 아이의 손을 잡는 순간에
만나 주신 것입니다.

차인표씨의 고백입니다.

"이제는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살아계십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예수님은
우리들이 당신 앞에 나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내밀고
 계신 손을 잡을때
세상에서 가장 작고 연약한
아이를 통해 나를 만나주신
예수님이 여러분도 반드시
만나주실 줄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차인표씨는
한국컴패션을 후원하고
있는데요

그의 고백입니다.

"가난한 나라의 어린이를
양육하는 일은 봉사활동이
아닌 예수님의 일입니다.
크리스천으로서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은

예수님이 하시는 일에
동참하는 것
예수님의 마음이 계신 곳에
함께 있는 것이 아닐까요?라고
고백합니다.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1986년 MBC  아역배우로 데뷔하여
1989년 19살 때 KBS 드라마 토지로
이름을 알렸고

제빵왕 김탁구, 로열패밀리
오작교 형제들, 해를 품은 달
돌아온 황금 복까지 많은
작품과 영화에 출연하였고
출연한 드라마가 대부분
인기가 있어서
드라마의 보증수표라는
수식어가 붙었고

촬영 감독과 결혼하여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계시며
온누리교회를 섬기는
전미선 씨를 소개합니다.

제빵 왕 김탁구를
시작하기 전에는
기도를 많이 하게
되었는데요.

"내가 과연 연기를 계속해야 되나
그럼 하나님이 어떻게 써주실까요?"
라고 기도하는 중에
이 대본이 오게 되었답니다.

대본을 받는 순간
하나님이 나를 키워주시기
위해 주셨구나라고
고백합니다.

연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는데요.

외숙모가 학원을 시작했다고
방송국 견학을 하던 중에
우연히 드라마 캐스팅이
됩니다.

연기하면서 힘든 점은
성격이 소심하다 보니
연기 외에 인간관계가
어려웠답니다.

그 이유가 어릴 때
가정에서만 거의 지내다가
보니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힘들었답니다.

어릴 때는 연기를
계속할 거라고 생각이
아니기에 잠시 내려놓기도
하였고

우울증이 심해져서
거울이 보면
눈과 눈 밑이 파래지고
죽은 사람 같더랍니다.

화장을 해도 더 이상하고
삶의 소망을 잃고
극단적인 생각을 가지게
되었답니다.

그 순간에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정신을 차리게
되었고

다시 연기가 소중함을
깨닫게 되면서
다시 일어나 해보자라고
하게 됩니다.

우울증이 오게 된 이유가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고
목표가 없다 보니까
살아갈 이유가 없어지게
되었답니다.

성격도 밝지 못 해서
대인기피증까지 오게 되었고
집안에만 있게 되고
생각이 좁아졌답니다.

슬럼프를 벗어나서
계속해야 된다고
해서 지금은
계속 달려간답니다.

신앙이 불교 집안이었는데
촬영으로 집을 비운 사이에
어머니께서 교회를 먼저
다니시고

전미선 딸에게 교회를
다니자고 하였답니다.

교회가기로 한 그날에
늦게 일어나서
못 가게 되었고

다음에도 가기로 했는데
가기가 싫어서

이렇게 기도했답니다.

"하나님 어머니에게
먼저 보여주시면
제가 그 말을 듣고
사인인 줄 알고 가겠습니다"

그런데 잠을 자는데
"넓은 강에 흰옷 입은 8명과
뒤에는 빨강 옷 입은 8명이
있는데

물에 빠지면 안 되는데
옆에서 환한 빛이
내려오면서 손을 같다가
데어 보라고 하는데

죄송한데 얼굴에
상처가 나면 안 된다고 했더니
그것은 너와 나만이
아는 표식이라고 하면서

내가 너에게 한가지
해줄 말이 있다는 것입니다.

세 번 반복한 후에는
나중에 이야기해줄 것이다"

그때 엄마에게
나 교회에 가야 되겠다
교회를 갔다 왔는데

예수님을 영접한 후에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답니다.

교회를 나가고 나서
처음으로 친구를 위해
기도하고 싶은 것입니다.

또 집을 이사한 후에
살 곳을 청소한 후에

이전에는 굿도 하고
점도 해보았는데

꿈에 그 언니가
굿을 해준다고 하고
글을 써준다는데

교회를 다니는데
그럼 안되는데

꿈속에서
"미안한데 교회를
다닌다"하니까

다른 사람을 또
데리고 오는데

"너의 속에 안 좋은 것
두 가지를 빼야 한다는
것입니다.

꿈속에서
"저는 안됩니다
이제 하나님을 알기
시작했으니 안됩니다"
라고 했더니

알코올 중독된 할아버지가
나가게 된 것입니다.

이전에 너무 술에
취해 살았던 모습이
없어지게 됩니다.

전미선 성도가
하나님의 사인과
꿈이 하나님이 주신 것인지
나쁜 것인지 기도한 후에
확신을 갖게 되었답니다.

신앙생활을 하기 전에서
혼자 기도를 했지만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았었고

사람들은 왜
잘못한 후에 교회를 가는지
그전에 잘못을 하지 말지라고
했었답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쉽게 연기하고
쉽게 돈 벌겠다고 했는데
남의 잘못을 지적하기만
했답니다.

친정엄마 2박 3일 연기하면서
다치지 않고 많은 사람 오게
해달라고 기도했지만

나중에 이 기도가 잘못인 것을
알게 되었고
내가 연기에 최선을 다하면
관객은 많은 사람이
알게 되면 모여들 것이라라고
하면서
연기하는 자세도 달라지게
되었답니다.

황진이를 찍게 했을 때에는
"하나님 예쁘게 나오게
해주세요"라고 했더니

촬영 때에는 언제든지
날씨가 화창해지는 것입니다.

또 한번의 어려움이
왔는데요.

계획하지 않는 임신과
출산으로
이 아이 때문에 내가
일을 할 수가 없구나라는
생각으로 시한
산후 우울증을 겪었답니다.

이쁜 아이가 미워지고
임신으로 30킬로의
살이 불어났고

기도는 안되고
누구도 인정해주지 않고
연기를 못하는 마음에
답답하고 싫었답니다.

계속해서 아이와
신랑이 미워지고
못된 말을 신랑에게
하게 되고

6개월을 지나면서
다시 기도를 하게 됩니다.

생각하는 방법이
틀렸음을 깨닫고

다시 사랑하게 되고
열심하는 마음을
주십니다.

전미선 씨의 고백입니다.

"20년 이상의 연기하는 동안
아무도 들어주지 않고
왜 나에게는 이야기할 시간을
주지 않는가라고
원망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하나님은 큰 연기자로 그릇을
만드시려고 침묵으로
일관하셨으므로 감사하답니다."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1992년 SBS
개그맨으로 데뷔해 
그간 많은 이들에게
웃음을 전해 온
개그맨 표인봉 집사님은
일산 충만한 교회의
집사로 섬기고
계시는데요.

지금은 연극과
뮤지컬에도 활동을 넓히며
사역하고 계시는데요. 

연극을 하면서
같은 동료들에게
예수님을 영접하고
잘 믿도록 도와주는 일에
행복을 느낀다고 합니다.

신앙이 연약하다고
생각해서 기독교의
뮤지컬이나 연극의
연출을 할 줄은 상상도
못했답니다.

그런데 교회에
고난 주간 새벽 기도가
있어서 가게 되었는데

마침 같이 신앙생활을
하는 김원희 씨도 와
있었는데

예배를 드리는데
태어나서 처음으로
기도하는데 방언을
받게 되었고

그날 김원희 씨도
동시에 받게 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명령인 줄 알고
기독교 뮤지컬을
하게 됩니다.

표인봉 집사님은
할아버지는 장로님과
할머니는 권사님이셨고

지금 아버지도 장로님
어머님은 권사님으로
집안이 대대로
기독교 집안이었기에

​ 모태신앙으로 성장하며
 신앙생활을 해 왔기에
​당연한 삶으로
받아들였답니다.

특히 아버지는
경찰이셨는데
어느 날 택시 운전사로
전업하셨고

그 이유는
택시를 통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전도하기 위해서
였답니다.

​성격은
​ 워낙 외향적이고
활발한 성격으로
​수련회나 문학의 밤 등에서
자신의 재주를 뽐내며
일찍이 재능을 인정받았다.

대학교 진학 후에는
집을 떠나서
제 갈 길 간다고
했답니다.

아르바이트하면서
자유롭게 살게 되었고
주일날도 소풍도 가고
기독교에서 벗어나서
살고 싶다고 하면서
신나게 놀게 됩니다.

처음에는 즐거웠지만
갈수록 죄책감이 들었고
휴학계를 내고

해군 생활을 하면서
저절로 신앙생활이 되었고
​병장 때는 군종병이 되어
신앙이 회복하게 됩니다.

제대한 후에
또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 서울예대 연극과에
진학한 후에는
본격적으로 극단에서
활동하며

세상이 좋아서
사는데 부모님이
자식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였답니다.

오전에는 아동극을
하고 저녁에는
성인극을 하였고
하루 종일 극단에 있었는데

처음 맡은 뮤지컬이
숲 속의 곤충들인데
그곳에서 악당 곤충인
거미가 되어

벌레들이 걸리게 되어
거미줄에 걸리는데

첫 번째 걸린
아내 유정화 집사가
정말 결혼하게 됩니다.

​아내는 불교 집안이었고
​중 고등부에 교회를 가서
부담이 없었고
나중에 남편을 따라가
신앙에 눈을 뜨게 되고
지금은 표인봉 집 사보다
믿음이 더욱 좋답니다.

아내는 표 집사님이
힘들고 어려울 때는
성경 구절을 찾아주고
뒤에서 묵묵히
기도해 주는
분이 되셨답니다. ​

신동엽 씨도 어머님이
기도를 그렇게 많이
하셨답니다.

새벽까지 술 먹고
집에 들어가면
새벽 기도하러
가시는 ​어머님과
늘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SBS 개국 방송을
하면서​ 신인들을
찾아다니는데

​신동엽과 표 집사님이
뽑혀서 방송국 들어가 보니

그곳에 이휘재, 안재욱
송은이​씨가 앉아 있는 것입니다.

뽑힌 것도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다음 기수로
김경식, 홍록기
이동우 씨가 들어오게 되고​​

서로 알고 있었던
학교 개그우먼 동아리
후배들이었기에

학교에 했던 것을
그대로 방송국에서
해보자고 해서
결국 6주 동안
합숙하며

드디어 틴틴 파이브가
탄생하게 됩니다.

하지만 90년대 중반에
후배 김경식, 홍록기,
이동우 등과 함께
'틴틴파이브'로 활동할
당시 최고의 인기 누리면서

하나님과 멀어지고
교만해졌고

그런 어느 날
술에 만취해서
다음날 보니
차가 거의 파손되었는데
성경책만 보이게 됩니다.

​그때에 아내가
저를 꼬집으면서
이렇게 살지 말라는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새롭게 시작하게 됩니다.

그리고 결혼해서
신앙생활을 시작한 것이지요.

​표인봉이 방황하였을 때
아내가 하루는 여행을
가자고 해서 갔는데

그곳에서 이제 우리
해어지자
아직까지 기도를
했는데 안되겠다라고
해서

"안녕"하고
가버리는데

교회를 가서 회개하고
다시 아내의 집에
찾아갔는데 문을 열어주지
않고 밤새 용서를 구하고
받아달라고 했답니다.

딸의 이름을 바하라고
하는데  
바다의 바와
하늘의 하의
앞 글자를 붙여서
지었는데

바다와 하늘처럼
평안과 기쁨이 넘치길
원하는데

어릴 때부터 연극을
하고 있답니다.

​연극을 시작할 때에
늘 큐티로 시작하고
하자고 했는데

처음에는 반대를 했답니다.

기도하면서 준비를 하고
앞에 있는 동숭교회로
모이자고 했고

거의 한두 명 빼고는
거의 스템이 예수를
믿게 되었답니다.

표인봉 집사님은
신앙이 늘 기복이
심해서 본인도
힘들고 어려웠지만
연극 연출을 하면서

사명감을 회복하게 되었고
선교를 위한 목표를 가지고
하다 보니
표인봉 집사님이
행복하답니다.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