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 리더 :: '가수' 태그의 글 목록 (2 Page)

예빛교회를 담임하고
계시는 홍수철 목사님은
 대표곡[철없던사랑] 등히트곡으로
1980년대 가요프로 1위를 차지했던
 인기가수로
​화려한 연예인 생활을 했다.

그는 또한 권투 선수
홍수환씨의 동생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지금은 같은 교회에서
장로님으로 섬기고 계십니다.

홍수환장로님은
​ 1974년 첫 번째 챔피언에 올랐을 때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그리고
“그래 내 아들아, 대한국민 만세다”라는
대화로 새로운 유행을 만들고

우리나라 최초의 두 체급
 세계 타이틀 석권이란
신화를 만들어 낸
분이시죠.

처음에는 찬양사역을 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는데
많은 사람들이 신학교를 가라고
권면해서 나중에는 찬양사역에
유익을 위해서 신학을 했는데
결국 목사님으로 쓰임받게
됩니다.

신학을 졸업하고는
처음 홍목사님은
큰 교회에서 사역을 배우고
개척을 하고 싶다고 했는데
사모님이 그럼 나는 다른 교회에
다니겠다고 해서 결국
개척을 하게 됩니다.

원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이북에서
믿으셨고 아버님이 신앙생활을 했는데
주일학교까지도 다녔답니다.

어머님은 불신자이셨고 결국
교회를 그만두게 됩니다.

나중에는 어머님도 예수믿고
천국가셨는데요.

홍목사님은 가수를 활발하게 할때
그런 환경속에 있을 때 만족을
할수가 없었답니다.

세상적으로는 풍요롭지만
허탈함과 고독속에서 빈 공간을
찾을수 없어서 여러가지를
해 보았지만 만족하지를
못합니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은 아내
박미령 사모를 예비해 두십니다.

집안 대대로 믿는 사모를 만나서
20년을 떠나 있던 교회를 다니는데
아직은 엉터리 신앙이였답니다.

그래서 교회들어가기전
시간이 아까워서 담배를
3개를 피우고 들어가기도
했답니다.


당시 영락교회
 최재순전도사님이
 가수 홍수철에게
​ 예배 전에 주보를 나누어주며
​ "세상 인기보다 하나님의 인기를
​ 얻는 사람이 되세요."라고
​ 말하곤 했다.

그는 그 때마다 인기 가수인
​자신을 무시하는 것 같아
​은근히 자존심이 상했다.

어느 날 그는
​ "내가 교회를 계속
​나가든지 아니면
​ 끊든지 분명히 해야겠다."는
​ 결심을 하게 됐다.

이 상태로는
​ 너무 불편해서
​교회에 다니기가
​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그 때가 지난
​ 1988년 12월 24일이었어요.
​크리스마스 이브인데도
​그날따라 스케줄이
​ 여유가 있었어요.

집에 성화가 있어서
 진지하게 '기도'라는 것을
​하게 되었지요.

'하나님, 도와 주세요.
​교회를 제대로 나가
​술과 담배도 끊고
​살든지 아니면
 그만 두겠습니다'라는 식으로
기도를 하게됩니다.

​그 때 갑자기 제 마음이
​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어요.
​갑자기 회개의 기도부터
​많은 기도를 하게 되었지요."​

그때 하나님께서
 개입하시게 되고
내가 기도하면
응답하심을 알고
하나님을 신뢰하게 됩니다.

​오랜만에 찾아 온 여름휴가를
​ 어떻게 보낼지 고민하던 차에
당시 영락교회를 담임하고 계신
​ 임영수 목사가 '성경통독'을 권유했다.

​그 때가 1989년이었다.
​그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홍 목사는 신앙생활에
​ 대해서 궁금한 것이 많았다.
그중 예수님이 왜 그렇게까지
​고난을 받으셔야 했는지
​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예수님이 분명 잘못이 있어서
이렇게 고난을 받고 죽음을
당한것인데 이유를 찾을려고
더욱 성경을 집중하게 됩니다.

성경을 계속 읽던 그는
​그만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리고 기도했다.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주변 사람들이
​모두 쳐다봤지만
​ 그의 입에서는 계속해서
​ '주님, 절 용서해 주세요."라는
​고백 밖에 나오지 않았다.

드디어 예수님이
나때문에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으시고
고난을 당하신것을
발견하게 되고
예수님을 영접합니다.

이런 고백을 합니다.

"그 때 참 기쁨이
​무엇인지 비로소 알았어요.
그 동안 화려해 보이는
​연예인 생활을 하면서
​항상 공허함에 시달렸었거든요.

​이제부터는 '나'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으로 살겠다고
​ 다짐하고 또 다짐했지요."

이런 은혜를 체험하니
방송이 싫어지고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린것이
좋아서

선한 거짓말로 방송보다는
예배시간을 드리게되고
나의 달란트를 하나님께
드리겠가고 고백합니다.

연예인들도 홍목사가
너무 광신도처럼 은혜를
주셔서 일반노래를 부르는것
조차 싫고 기타들고 전도하러
다니게 됩니다.

형님인 홍수환장로를 전도를
할려고 하는데 안 믿어서
너무 부담스러워서
매달려서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7년간 작정기도중에
어머님이 예수믿고
그 다음에 형님이 돌아오게됩니다.

신학교를 다니면서
"저는 바보입니다.
저를 도와주세요."
기도를 했답니다. 
                        
      홍목사님은
내가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는 목회를 하고 싶어서
가장 좋은 단어를
코람데오를 좋아한답니다.

음악 방송 프로그램에서
연락이 와서 노래를
불러달라고 하면

마음에 평안이 없고
불편해서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생각을
하고 죄송하다고 한답니다.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잘 가, 대화가 필요해
김밥, 놀자 등
우리들에게 익숙한
노래를 불러 히트를
시킨 자두(김덕은)을
소개합니다.

2013년 12월 결혼한
자두의 남편은
 현재 일산 기쁨이 있는 교회
(조지훈 담임목사)에서
영어예배를 섬기는
지미 리(Jimmy Lee)
목사입니다.

자두란 이름은
소속사 대표께서
여러 이름 중에
자두 해라고 해서
시작되었답니다.

19살에 데뷔를 해서
신나고 즐겁게
활동을 했다는데요.

원래의 꿈은
가수가 되는 것은
상상도 해보지
못했다는데요.

고등학교 때
록 페스티벌에서
캐스팅이 되어서
댄스곡으로 데뷔하게
되었답니다.

사실 춤도 제대로
배우지도 않고
데뷔를 하였다는데요.

교회는 모태신앙은
아니지만 어릴 때부터
다녔다고 합니다.

조용한 성격이었지만
반항기 때에
남들과 다른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살게 되면서도

교회를 잊지 않고
다니게 되었답니다.

부모님께서 가정예배와
교회 예배를 꼭 드리라고
교육을 시키셨답니다.

사춘기 때 많은 방황하는
시기에도 교회에서
자신을 받아주고
 이해해주었기에
가능했답니다.

김밥이라는 3집의
노래를 부르게 된
이유가 있답니다.

그때에 다른 음악에서
일상 속에 있는
소재로  부른 노래가
없다 보니 김밥을 가지고
나오게 되었고
큰 인기를
얻게 되었답니다.

그 당시에는
"대화가 필요해"
라는 노래가 싫었지만
지금은 하나님이
좋은 곡을 주신 것에
감사한답니다.

지금은 재해석해서
주님과 기도가 필요해라고
고백한다고 하네요.

당시에 히트를 제조하시는
작곡가 최준영 씨가
자두를 통해서
예상과 다르게
대화가 필요해,
그리고 김밥을 주셔서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너무 인기가 있다가
보니까
교회 다니기보다는
놀기에 바쁘었고

술을 먹으면
끝까지 갈 정도였고
술 중독되기 전까지
가게 된 것입니다.

모든 즐거움을
술에 빠지고 의존하게
되었고

하나님이 절망의
상황으로
인도하십니다.

술 없으면
방송을 할 수 없었고
그런 어려움 속에서

자두가 진행하는
라디오에 믿음의
선배가 게스트로 오게
되면서 인생이 바뀌게 됩니다.

에스더라는 분인데
공영방송에서
"너 예수님을 믿니"라고
하면서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답니다.

우울증과 자살 충동의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만남으로
행복했지만

집에 오면 다시
술을 먹게 되었고
그러면서도
"하나님 죽고 싶어요
그런데 저를 다시
만나 주셔서 감사합니다"

밤새도록 하나님과
대화를 하게 됩니다.

그러면 다음날
하나님을 너무 쉽게
가식적으로 부르고
술 먹고 기도하는 것에
죄책감이 있었지만

하나님은 기다려 주시고
사랑으로 돌보아 주신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그러면서 서서히 술과
멀어지게 되고
삶의 본질이 달라지니
이전 것들에 영향을 받지
않게 되었고
주위 사람들이 너무
바뀌니까 놀라워 한 것입니다.

3집의 끝에서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만난 것이지요.

4집 이후부터는
소속사를 옮기면서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소속사를 옮기게 된 계기가
믿음의 사람들과 하고 싶었지만
도리어 그것이 소속 분쟁으로
법적으로까지 가면서

본인도 모르게
분노가 가득 차게 되었고
그때 이렇게 기도했답니다.

"하나님 용서해 주세요"
그리고 하나님께 용서의
주권을 드렸답니다.

믿는 사람들에게
사기당하고
4년의 고통을 당한 것이지요.

지금은 광야의 시간을
주신 것에 감사하답니다.

하나님이 고난을 허락하셔서
본인의 모든 것을 다 잃게 되었고
빚이 쌓이고 신용불량까지
간 것이지만

하나님의 공급으로
반 이상을 정리해 주시었고
그때 가장 힘든 상황 중에
하나님에 대한 불평불만도
많이 하고 눈물도 흘렀답니다.

자두 씨가 이렇게 기도했답니다.
"주님 죽겠습니다.
이게 지금 내가 뭐 하는 짓입니까?
내가 주를 위해 무엇을 잘못했나요."

그런데 그때 집에서 찬송가를
펴니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들어
약한 마음 낙심하게 될 때에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그렇게 위로를 주신 것입니다.

자두 씨에게는 주위에
동역자를 많이 주셔서
지금은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갈수 있는 응답을
주신 것에 감사하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자두가
예수를 믿고 고집스럽게
하다 보니 오해도 많이
듣게 되었답니다.

자두 씨는 소향 씨를
멘토라고 하는데요.

서로 코드가 맞다 보니
사랑의 빛 피처링도
자두에게 맡기기도
했답니다.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대중음악 작곡가, 가수
방송인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컴패션밴드의 음악감동으로
온누리교회를 섬기고
계시는 주영훈 씨를
소개합니다.

1993년 심신의
"내가 처음 사랑했던 그녀"
를 통해 작곡가로 데뷔해

엄정화의(배반의 장미)
터보의(나어릴 적 꿈)
컨트리 꼬꼬의(오! 가니)
유채영, 코요태, 김종국 등
​많은 가수들의 작곡가로
유명하답니다.

지금은 방송인으로써
열심히 하고 계시는데요.

미국에서 아버지께서
목회하시는 목사님의
아들로 태어났답니다.

어느 날 예언하시는
권사님을 모시고 와서
아들 중에 목사가 나온다고
했는데 주영훈 씨를
신학교에 보낸다고 해서
한국으로 도망을 왔다고 합니다.

도망 올 때에 전 재산이 27만 원이었고
공항 세관에게 악기가 걸려서
세금을 78만 원을 내라고 해서
한 시간을 울면서 빌기도 했답니다.
 
20대 초반에 목사님을 따라
미국 동부 워싱턴으로
이민을 와서

아버지께서 사역하시는
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로
또한 찬양대로 봉사를
하였답니다.

주영훈 씨가 음악을 하게 된
계기가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고 나중에는 고백합니다.
​ 

주영훈 아버지께서는
이북 출신으로 보수적인
분이셨답니다.

 예배 도중에는
아멘을 크게 해도 안되고
교회에서 기타나 드럼도
함부로 하면 안 될 정도였답니다.
 
찬송가를
제외한 세상 모든 음악을
마귀의 음악이라고 해서
반대가 심하셨다고 하네요.

그래서 학교를 갔다 오면
LP가 항상 두 동강 나있었고
교회 가면 기타를 칠 수 있어서
같지만 아버지가 계실 때는
찬송가를 치다가 안 계실 때
몰래 세상 음악을 했답니다.

지금도 초청을 받아서
교회에 가서 메들리를
하다 보면 찬양을 하다가
중간에 일반 음악을
부르면 손뼉을 치다가도
멈추어 계신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팝송을 좋아해서
혼자서 DJ가 되겠다고
연습도 하기도 했답니다.

홀로 한국에 와서
​테이프를 만들어 각 기획사를
찾아다니면서 들어봐 달라고
발품을 팔면서

잘 되지 않으니
하나님을 원망했답니다.

한국에 나오게 해달라고
했다가 다시 왜
한국에 오게 했냐고
원망했답니다.

많은 사람을 1년 동안
만나면서 수백 곡을
만드는 시간이었답니다.

그래도 교회는 다녔지만
뜨거움은 없었답니다.

술 취해서 울면서
기도하기도 했답니다.

심신의 가수를 만나게 되면서
그분이 점을 보면서
점쟁이가 웃는 모양을 보여주는데
그것이 주영훈 씨였답니다.

나중에 주영훈씨는
하나님께서는 귀신을 쓰기도
한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들의 주변에도
점보러 가서 너는
예수믿어야 산다고 해서
진짜 예수 믿기도 하지요.

그때는 인기 있는 가수와
만남이 시간 되면서
심신의 작곡을 7곡을
하면서 소방차까지 연결되고
태진아 씨와도 시작됩니다.

주영훈 씨가 만든 곡들이
거리에서 울려펴지는 것을
보면서 행복해지고
자신이 교만하게 재능을
하나님이 주신 것인 줄을
몰랐답니다.

주영훈 씨는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방황하게 됩니다.

유독 주영훈 씨가
온갖 오해와 억측으로
어려움이 겪게 되고
많은 어려움을 가지는데요.

나중에는 하나님이
이런 경험을 통해서
지금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힘을 주게 된답니다.

자신의 연약하고
부족함을 훈련시키기 위해
좋은 벗들을 연결해주시고
온누리교회를 통해서
뜨겁게 기도하고
이전에 잃어버린
첫사랑을 깨닫게 되는데요.

성공한 작곡가에게
사실 여러 번 위기가 찾아옵니다.

손태영과의 결별과 오해
살이 빠졌다고 두 번이나
검찰청에 불려가서 마약검사를
받기도 했고요.

주영훈 씨의 고백입니다.

"살을 갑자기
예전에 많이 뺐을 때는
마약조사를 받을 때도 있었고,

2007년도에 학력을 속였다
그래서 모든 방송도
쉬게 됐던 적도 있었고,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하면서
빚도 지고
공황장애도 많이 앓았었고.

하용조 목사님께서
큰 힘이 많이 됐던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힘들거나 할 때
정말 하 목사님이 보고 싶어요."

2007년 온누리교회에서
주최한 일본 문화선교 집회
‘러브 소나타’에 참가했는데,

손지창 형제가
하용조 목사님 부탁으로
주변의 연예인을 모을 때
저도 불려가게 된 거예요.

가서 할 일은 연예인들과 함께
찬송가 두 곡 부르는 것밖에 없어서
저는 솔직히 편한 마음으로 따라갔지요.
 
그런데 그곳에서
회개하는 눈물 많이 흘렸어요.

그때 은혜를 참 많이 받았어요.
그런데, 그렇게 은혜를 받고 나서
제게 어려운 일이 바로 닥쳐왔습니다.

일본에 다녀온 지 2주 후였어요.
뜨거워지려고 할 때 사탄이
제게 가장 약한 부분을 건드리더군요.

아마 은혜가 없었다면
과거처럼 예민해서
미쳐버렸을지도
모를 정도로 큰 어려움이었어요.

하지만 “올 테면 와봐라” 하는
담대함이 생겨 감당할 수 있었답니다.

사실 군대를 못 갈 수밖에 없는
심실 조기 흥분 증후군이라는
질병이 있는데

일부러 군대를 가지 않으려고
했다는 오해를 사기도 합니다.

주영훈 씨는 독신 주의자였고
이윤미를 만나면서 마음이
바뀌게 됩니다.

가장 어려운 시기에
악성 루머와 사업 실패
그리고 대인 기피증과
공황장애에 시달리게 되는데

이때 하나님이 예비해 두신
2006년 이윤미와의 결혼으로
평안을 회복하게 됩니다.

주영훈 씨의 고백입니다.

"배우자 기도를 오래 했어요,
제가 혼자서. 항상 웃는 여자,
나보다 남에게 배려가 더 많은 여자,
키 170센티미터
플러스마이너스 1
이렇게 구체적으로 적었어요.

10가지를 정확하게 가진 아내를
제가 만났기 때문에 만나자마자
하나님이 보내주셨나 보다
이런 생각을 갖게 됐죠." 

배후자의 기도에
이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내용이 있는데

그 첫 번째가
잘 웃는 여자인데
이윤미 씨가 심하게
잘 웃는 여자랍니다.

또 하나는
야망이 크지 않는 여자인데
다시 말하면 가정적인 여자를
원했는데

결혼 후에 아내의
내조 덕분에 신앙이 더욱
깊어지게 됩니다.

어느 정도로 이윤미 씨가
남편을 위해 기도하는가 하면

주영훈 씨의 고백입니다.
"어느 날 우연히 수첩을 봤더니
남편이 잘 되게 하는 기도 방법과
주로 남편을 위해 책을 읽고 있었고
항상 우리 오빠 기도를 우선하니
너무 감사하답니다"

부모가 딸의 이름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데요.

두 부부는 큰 딸의 이름을
주 아라라고 지었는데
그 뜻을 "주님의 아름다운
나라를 꿈꾸며"라고
지었답니다.

지금은 컴패션을 통해서
전 세계에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계시답니다.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댄스 가수가
흔치 않았던
80년대 후반에
 ‘아 바람이여’로
데뷔한 이후
‘널 그리며’,
​‘사랑의 불시착’ 등의
히트곡을 통하여
뛰어난 가창력에
탁월한 댄스 실력으로

1989년
KBS 10대 가수상과
mbc 가요대상 등
최고의 인기를 누린
가수 박남정을
소개합니다.

어머님의 소원이
목사가 되는 것을 원했고
박남정 씨는 음악에
관심이 많았는데

1985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음악을 하고
싶었지만 눈물을 흘리시는
어머니의 모습에

음악을 포기하고
안양 성결 신학대 영문과에
입학을 하게 되었지만
결국 적응을 못하고 
대학을 그만두게 되었고
연예인으로써의 삶을
살게 됩니다.

처음 방송을 시작을
mbc 합창단으로 하였답니다.

합창단에 들어간 이유가
연예인이 되기 위해서
였다는데요.

그곳에서 문희옥이
있던 소속사에
뽑히게 되었고

소속사 사장님이
작곡가이신데
이분이 아 바람이여를
주셨고 연습을 하고
데뷔하게 됩니다.

그리고 널 그리며를
통하여 ㄱ, ㄴ춤인
 댄스 열풍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렇게 잘 나가던
순간에 잠시 재충전의 기회를
가지고자 잠시 쉬는 중에
급변하는 가요계에
 따라가지 못하고

2004년 재기를 꿈꾸며
7집 음반을 발표했지만
성대결절이라는 큰 어려움에
가요계의 활동을 접게 되면서

다시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고
그의 곁에는 아내와 두 딸이
곁을 지켜주었고
날마다 기도해주시는
어머님이 계셨기에
힘을 다시 낼 수 있었답니다.

그런데
결혼 전에 부모님의
반대가 있어서
4년간의 연애와
4년간의 동거 끝에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왜냐하면 박남정 씨의 어머님이
목사님이셔서 지금의 아내
집안이 불교 집안이기에
반대를 하셨답니다.

그리고 또한 장모님도
반대를 하셨는데
아내의 나이가
8살 연하였고
연예인이라는 것으로
반대하셨답니다.

두 사람은 너무 사랑하였기에
4년의 동거를 통하여
결국 어머님이 인정해 주셨고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린 후에
지금은 두 자녀와 같이
교회에 잘 다니고 있답니다.

그의 아내인 허은주씨는
박남정 씨가 슬럼프에 빠졌을 때
불평이나 투정을 하지 않고
대신 기도로 힘을 주었답니다.

얼마 전에는
 "유자식이 상팔자"라는
곳에 나오셔서
딸 박시은, 박시우가
나와서
시청자의 사랑을 받기도
했답니다.

박남정 씨의 끼와 재능을
그대로 물려받은
딸 시은이가 탤런트로
데뷔를 했는데요.

육룡이 나르샤와
시그널에서 야무진 딸로
멋진 연기를 보여주면서

박남정 씨의 기도로
새롭게 펼쳐질
하나님의 쓰임 받을
시은이를 기대해 봅니다.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조용필의 (상처), 유미리(젊음의 노트)
최진희의 (꼬마 인형), 박정식(천년바위)
장미화의 (어떻게 말할까) 등
수많은 히트곡을 만들어

별명이
히트 제조기일 정도의
인기를 누렸고

그 당시에 크게 히트했던
가요 "고목나무"를 불렀던
 장욱조씨가
예수님을 만나고
목사님이 되셨는데요.

장욱조목사님은
총회 개혁신학
대학원(MDIV)을
졸업하고
 일산 한 소망교회
선교 목사로
계신답니다. 

 수많은 히트곡과
천곡이 넘는 곡을
작곡했던 이분이
 
어느 날
음반 제작을 하다가
완전히 실패해서
빚더미에
앉게 되었습니다.
 
집마저
다 잃어버리고
 빚잔치하고 나니까
가진 것이 없어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아내가
그를 교회로
인도했습니다.

만약 한참
잘나가고
뭐 여기저기
부르는 곳이
많았더라면
아마 교회 오기가
힘들었을지 모릅니다.

완전히 실패하고
빚더미에 앉은
그를
아내가 인도할 때
순순히 교회로
따라 나왔던 것입니다.

그가
교회에 나와서
연예인 선교단과 함께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찬양을 부르다가
은혜가 임했습니다.
그때의 고백입니다.

“하루는 연예인
선교단을 따라
찬양집회를 갔는데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이란
찬양을 부르면서
마음에 이상한
감정이 치솟아
올랐습니다.
 
그 전부터
알던 찬양이었는데
그날따라 왜
그렇게 눈물이
쏟아지는지
알 수가 없더라고요."

눈물 콧물 쏟고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빚을 갚고
생계를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에서도
술집 무대에
서지 아니하고, 
 약속의 말씀만
붙잡고 나아갔습니다.
 
그때 붙들었던
말씀이 마태복음
6장 26에서 33절입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 말씀 붙잡고
나아갈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습니다.
기적이 임했습니다.
축복이 임했습니다.

1년 6개월 만에
모든 빚을 다 갚고
그리고 장막 터까지
마련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변에서는 예수를 믿고
미쳤다고 했지만
기쁘기만 했답니다.

복음을 전하고 찬양집회를
다녔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은혜받고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이 무엇일까?"하다가
내린 결론이 가족을 먼저
전도하기로 합니다.

장인을 집으로 모시 고와
병든 몸을 1년간 수발하며
복음을 전하게 되었고

드디어 장모가 먼저 변화되었고
40년간 원불교였던 장인도
예수를 믿게 됩니다.

너무 기쁘고 감격에 넘쳐서
지은 찬양들이 "할 수 있다 하신이는"
"주님 나의 동산" 하늘나라 여는 문"
"전하세"등 100여 곡을
발표하게 됩니다.

특히 신앙적으로 경제적으로
힘들 때에 교인들이 즐겨 부르는
"할 수 있다 하신이는"의 가사는
이영후 장로님이 주셔서
본인이 작곡을 하게 된 것이랍니다.
 
 그런데 교회에 사역을 하면서
말씀의 갈증을 느끼게 되면서
평신도이기에 설교와 축복권이
없어서 고민하다가

같은 동역자인 김석균 와
노문환목사,그리고 김민식전도사와
의논을 하여
"우리가 평생 하나님의 종으로
사역을 할 거라면 신학공부를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결론을
내리고 네 사람이 함께
신학교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아내는 신학교를
가지 말고 평신도로 찬양으로
사역을 하라고 말렸지만

3년 동안 설득하여 결국
신학교에 입학을 하고
졸업을 하여
2000년 안수를 받게 됩니다.

현재는 일산 한 소망교회에서
선교목사와
남양주 세계로 교회의
협동목사로 섬기며
한국 복음성가 협회를
섬기고 계신답니다.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1986대학가요제에서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
데뷔하여 대표곡으로는
 (이별 이래)  (화려한 날은 가고)
(가을비)  (사랑의 찬가)이며

2005년 KBS 가요대상과
2011년 대한 가수협회 부회장과
 현제 유열컴퍼니 대표이사,
어린이 뮤지컬의 감독으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처음 신앙생활을 하게 된 것은
중학교 때라고 합니다.

친구 따라 크리스마스 때
불광동 성서침례교회에서
시작을 했답니다.

대학을 재수와 삼수하면서
잠시 하나님을 떠나 있었고
집도 기울어졌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나중에 강남에 소망교회를
출석하게 됩니다.

중학교 때 성가대에서
발성과 찬양을 통해서
가수에 큰 도움이 되었답니다.

교회 여자 선배에 잘 보이려고
기타를 치다가 재능을
발견하기도 했다는데요.

대학가요제에 대상을
받기 전에
기도하기를 "하나님 본선에만
오르게 해주세요."라고 기도를
드렸는데 대상을 받게
되었다는데요.

유열 씨는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세 가지로 이야기하는데요.

첫째는 1886년 대학가요제와
두 번째는 2012년 결혼과
세 번째는 아이의 탄생이랍니다.

 "하나님께서 왜 나에게
이렇게 쓰임 받게 하셨나요?"
라고 하나님께
질문하면서

요즘 기도제목이
더불어 사는 삶을
실천하며 살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한답니다.

원래의 꿈은 가수가 아닌
무역학과였는데 본인에게
맞지 않는 것 같아서
결국 가수로 데뷔를
하였답니다.

라디오 DJ를 13년을
하다가 그만두게 된
이유가 있답니다.

개인적인 애착이 있었지만
새로운 개편으로 바뀌게 되면서
드라마 "겨울연가"를 통해서
연기에 도전하게 됩니다.

나중에 연기는 나의
길이 아니라는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하면서

어린이 뮤지컬을 하게 되고
자신의 전문성을 발견하고
나중에는 결국 CEO로
쓰임 받게 됩니다.

유열 씨는 어린이 뮤지컬이
우리나라에 너무 열악하고
전문성이 부족해서
더욱 사명을 가지게 됩니다.

브레멘 음악대가
대표적인데요.

큰 규모의 뮤지컬을
다시 줄여서
어디든지 가서 산골까지
가게 됩니다.

프랭키와 친구들이라는
뮤지컬을 또 준비하고
있기도 합니다.

매년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있는
것을 느끼고 있다는 데요.

어떤 목사님의 설교에서
들은 말씀이 가슴에
파고들게 됩니다.

"왜 걱정하느냐
기도할 수 있는데"

하나님은 기도 한 후에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수많은 어려움을 통해서
자신을 단련시키시는
하나님을 고백합니다.

유열 씨가 15살 차이가 나지만
아내를 만나게 된 계기가
음악을 통해서 서로 힘든 부분들이
있었지만 결국 하나님께서
결혼까지 하게 됩니다.

사실 오랫동안 사귀면서
만나고 있었지만
하나님이 허락하신
선물이었다고 고백합니다.

유열 씨가 감사의 제목을

첫째는 새로운 삶을 갖게 된
아빠가 된 것이 감사합니다.

둘째는 발견할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합니다.
삶 속에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게 하신 것 감사하답니다.

세 번째는 살아있는 동안
사랑할 수 있고 사랑받을 수
있는 것 감사하답니다.
사랑은 지친 누군가를 위로하고
힘을 줄 수 있어 서랍니다.

결혼할 시기에 큰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 고난을 이겨낼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하네요.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가수이며 방송인 황보 씨는 
여성 댄스그룹 샤크라의
멤버로 데뷔하여
200년부터 2005년까지
 활동을 하다가
그룹이 해체되어
 솔로곡을 내기도 했으며

요즘은
방송뿐만 아니라
 식당과 카페를 운영하며
 패션사업에도
활발하게 하고 있답니다.

현제는 동부 이촌동에 있는
충신교회에 출석하고 있으며
송은이, 박미선 씨도 함께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어머니를 따라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여
행복한 신앙을 시작했답니다.

학창시절에 교회는 당연히
학교처럼 다녀야 되는 줄 알았답니다.

방송을 데뷔하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요.

아는 언니가 레스토랑을 
도와주라고 해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에

처음에는 이혜영 씨가
데뷔를 권했고
가수 이상민 씨가
가수해보지 않겠느냐고 해서
그룹 브로스로 처음 데뷔하게 됩니다.

2000년도에
샤크라에 데뷔를 하자마자
인기를 얻게 되었고
리더이기에 모범을 보이려고
노력했답니다.

그런데 샤크라의 멤버들과
의견을 나누고 해체를 선언하면서
홀로서기를 하다 보니
힘든 시기였답니다.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시기가
 있었는데요.

소속사 사장이 돈을 가지고 가버리고
세금을 대신 내야 되는 상황이 되면서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게 됩니다.

고소하고 재판을 준비하는데
"용서"라는 단어가 떠올리게 되는데
계속 하나님께 다시 다른 생각을 달라고
했지만 결국 용서하게 됩니다.

그 대신에 동업하셨던 분이
무료로 곡을 내게 해주셨답니다.

예능에서 솔직하고 당당한
모습이었지만 본인은
일반인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으로
홍콩을 가게 됩니다.

사실 미국에 가고 싶었지만
송은이 씨가 무한걸스를 하다가
가버리면 안 된다고 해서
가까운 홍콩을 택하게 되었답니다.

1년 6개월을 있으면서
교회에 가면서
더욱 힘들고 어려운 삶 속에서
하나님께 나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한 끼라도 교회에서
 밥 먹는 것에도
감사하게 되었답니다.

한편으로는
외로운 생활에서
울면서 지내면서
더욱 성장하게 됩니다.

홍콩에서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기획사의 엑스트라를 하면서
생활비를 벌면서 살게 되었답니다.

홍콩에서의 삶을
적응해 가는 시기에
건강 악화로 아버지가
쓰러지게 되었으며
한국에서 다시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교회를 다니다가
그만두셨는데
지금은 세례를 받았답니다.

오랜 병원생활로 많은 병원비를
감당하게 되면서 십일조를 드리는데
생활비가 부족함이 없더랍니다.

황보 씨의 고백입니다.
"모든 것을 채워주시는 하나님"이
신기하답니다.

십일조를 처음에는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믿음으로 드리기 시작하면서
기대를 했는데 가방 안에 있는
3만 원을 발견하면서 하나님이
주셨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고
더욱 드리는 것에
기쁨을 누리게 되었답니다.

현제는 컴패션이라는 단체에서
전 세계에서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위해 1대일 후원하는 일에 사역을 하면서

그곳에서 벤드로 활동을 하면서
"광고비를 줄여서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들을 돕자"라는
취지로 활동하게 되었답니다.

가수로써 노래를 부를 때보다는
봉사자로서 노래할 때가 가장
행복하답니다.

한 번은 비전트립으로 방글라데시로
가서 말라리아 약을 미리 먹고 가는데
그 약을 먹고 본인이 힘들어서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는데

한 아이가 다가와서
아임 해피 아임 해피 하는데
다시 힘을 얻게 됩니다.

그날 밤에 하나님께 기도를 들렸답니다.

"내일부터 약 먹지 않겠습니다.
병에 걸리지 않게 해 주세요"

그 다음날부터 아이들과
즐겁게 지내고 왔답니다.

이전에는 황보 씨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을 알리지 않으려고
했답니다.

크리스천으로써의 먹칠을 하기 싫었고
차인표, 신애라 씨가 닦아놓은 봉사단체에도
혹시 해가 될까 봐 주저했답니다.

그런데 황보 씨가 봉사를 한다고 해서
많은 분들이 가입을 하게 되면서
다시 당당하게 알리게 되었답니다.

황보 씨의 고백입니다.
"저 같은 비슷한 사람들이 보면서
새로운 삶을 살도록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께 다시 돌아오면 됩니다"
라고 외치고 싶답니다. 

황보 씨가 새롭게 하소서를
출연 후엔 인스타그램에 올린
진솔한 신앙고백입니다.

"종교방송은
언제나 부담되는 건 사실입니다.
 그래서 피하게 되기도 합니다.

나 또한 그리 살지 못하기에.
떳떳하지 못하기에. 
하나님이 늘 용서해주시는 건
막살라고 해주시는 게 아니라
다시 살라고 기회를 주신다 합니다.

사람들이 묻습니다.
두 얼굴로 살면 힘들지 않느냐고...

아니요
저는 두 얼굴로 사는 걸
숨기는 게 더 힘듭니다.

그러나
그 나약함을 나누고
그 부족함을 고백합니다"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2003년 MBC 10대
가수 가요제 대상을
 수상하고
 2004년(휠릴리)골든디스크
 대상까지 거머쥐었던

우리들이 잘아는 노래
휠릴리, 덩그러니 굿바이등
수많은 노래를 부른
이수영씨를 소개합니다. 

가수가 꿈이였던
이수영씨가
중3 때 라디오프로
 ‘별이 빛나는 밤에’에서
 주 장원을 했어요.

 제가
가수의 꿈을 꾸면서
 계획했던 절차 중의
 첫 번째 관문이었어요.

거기서 상 받고
 대학가요제 가서
그런 꿈을 꿨는데,
그전에 하나님의
계획이 계셨던 거예요.

고3때 친구따라
 가스펠 콘서트한다고 해서
 그것도 모르고 그냥 갔어요.

처음에는 가수들이
 나오는 걸로 생각했는데
 저도 모르게 막
 눈물이 쏟아지는 거예요.

 가슴은 뜨겁고
 눈물은 쏟아지고….
 친구 손잡고 그냥 간 건데.
 친구가
 나를 전도하기 위해
애를 쓴 것도 아닌데

그냥 가서 울게 되고,
그 다음날부터
 제 삶이
 완전히 변화되었어요.

 ‘하나님이
살아계시는구나.’
 그리고 호기심이
 끝도 없이 시작됐어요. 

 가수를 준비한
소속사에 전화를 걸어
가수하지 않겠다고
하고
가수의 꿈을 접고

24시간 중에
 다른 친구들은
 4시간 자고
 20시간 공부할 때
 저는 4시간 자고
 20시간 전도하는 데에
 시간을 다 썼어요.

300명의 친구들을
  전도했답니다.

이수영의 아버지는
 그녀가 초등학교
 2학년일 때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으며

 어머님은 스무살 때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그 후 2명의 동생과
 외할머니를 모시고
 살아야 했다. 

 그 때부터 여동생과
 남동생의 가장이 됩니다.

큰 시련이 오니
하나님을 원망하고
 가수의 길로 다시 가게되어
인기있는 가수가 됩니다.

정상의 위치에 있으나
영혼은 공허해지고
너무 힘들어 했는데

그때 친구인
이지훈가수가
너 왜 그렇게 사니?
그때 정신이 바짝들게 됩니다.

이지훈씨 자신이 간증하면서
새벽2시부터4시까지 기도하면서
자신은 어려움을 이겨냈다는 거예요.

그친구의 손을
 잡고 기도모임에
같는데 2시간의 기도가
처음에는 힘들었는데

나중에는
잊고 살던 방언기도가
터지면서 
밑바닥까지 잊고 살았던
상처가 치유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세월을
지었던 죄, 받았던 상처를
씻어주셨고 그때부터
하나님 앞에 다시 서게되었습니다.

그의 고백입니다.
"너무 부끄러웠고
시편 2편4절의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는 말씀을 깨닭게 해주셨습니다.

처음 가수 시작한 소속사가
가수가 혼자이였고
 사장이 핍박이 심해서
그것때문에  힘들어서
차에서 뛰어내리고 싶었고
그것이 상처가 되어
힘들었고 어려웠답니다.

그곳에서
주일을 지킬수도
없었​답니다.

기도중에 최고의 몸값일때
기독교인 사장의 소속사를 만나게
돈보다는 신앙을 선택하여
 처음은 좋았습니다.

또 다시 소속사가
가수를 키운곳이 아니라서
회사가 커질수록 사장의
모습이 바뀌면서
너무 힘들게 됩니다

그의 고백입니다.

"다 내려놓고 오직
기독교인 사장을 선택했는데
잡은 것이 썩은 밧줄입니까?"
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했답니다.

오직 수익 창출과 악행을
보면서 끝까지 기도하면서
기다렸는데 돌아오지 않아서
돌아서게 되고 그 회사가
소송을 걸고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것은 자신의
고모가 부모역할을 했는데
대리법적으로 오고 가면서
하나님께 돌아오게 된것입니다.

영혼구원을 위해
고난을 주신것에
감사하게 되면서
잘 정리해 주게됩니다.

결국 일인 기획사로
시작하게 되면서
목사님과 예배드리게
되었고

그때 목사님께서
"하나님이 가라고
 하면 가라"
이 말씀에
경험이 없지만
순종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응반8집에
"내려놓음"을
발표하게됩니다.

지금은
2013년
 9월 이후
블루프린트
 뮤직 소속이다. 

이수영씨가 전도했던
탈렌트 서민정씨의
간증을 들어보면
하나님은 놀랍게
역사하시게됩니다.

서민정씨가
2004년 SBS 라디오에서
 DJ를 하고 있을 때
그의 프로그램에
가수 이수영씨가
출연하여 처음 만나게 되었다

 그날따라 이수영씨가
아름다워 보였기에
그 비결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이수영씨는 하나님이
다 해주시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예전같았으면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비웃을 지도
모르겠지만
그날만큼은 알지도 못했고
 알수도 없었던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주셨을 것
같은 확신이 들었다.

방송중 광고나 노래가
 나올때마다 이수영씨에게
 하나님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주었는지를 물었다.

 이수영씨는
이번 주일 우리교회
한번 같이 가자고 제안했다.
그래서 함께 분당
 지구촌교회 예배에 참가했다.

하지만 설교내용이
귀에 들어오지 않고
찬양할때마다
사람들이 손을 드는
모습도 어색하고 무서웠다.

그래서
몇번 예배를 참석하다가
 이수영씨의 전화를
피하게 되었다.
 이수영씨는 마지막 음성
 메세지를 다음과
같이 남겨주었다.

 "너를 통해 다시
겸손함을 배우게 된다.
네가 나에게
하나님에 대해 질문할때
나는 전도할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으로 마음이 들떠있었는데
 하나님은 다시 들뜬
 내마음을 내려놓게 하신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기도뿐이라는
 말씀을 주셨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하나님은 한번 시작하신 일은
 절대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나의 임무는 여기까지이지만
다른 사람을 너에게 붙여주셔서
 더깊이 하나님을 알게 하실거야.
그때까지 기대하고 기도를 할께"

그후에
사랑과 야망이라는
드라마를 찍으면서
 이유리씨를
만나게 되면서

결국 서민정씨는
예수를 믿게 되었고
 거침없이 하이킥을 통해서
인기도 얻고 미국에서
결혼해서 예수님을
증거하게 됩니다.

이수영 커플은 
 다니는 교회
지인의 소개로 만나
 1년 가량 교제한 끝에
 부부의 연을 맺게 됐다.
 
 이수영은
 예비 신랑을
 “내가 항상 기도해오며
 꿈꾸던 분”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하나님은 한 영혼
한 영혼의 구원을 위해
고난을 통해서 이지훈을
통해서 이수영씨가 예수믿고
또 서민정씨가 예수믿고
참 하나님은 멋진분 같아요.

하나님께서 우리들통해서
죽어가는 영혼들을 살릴려고
잠시 어려움과 고난이 와도
더 큰 하나님의 계획이 있답니다.

고난을 당당하게 기도와
말씀으로 붙잡고
지금도 하나님께 나오지 못하는
영혼들을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기도하도록해요.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