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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
처음 이민 와서 만난 분 중,
12년 전 내가 이곳에
콘서트 겸 왔을 때의
조하문을 기억하는 분을
만나 뵌 적이 있다.

그분은 내가 가수였을 때
나를 자신의 차에 태우고
다녔다고 하셨다.

난 그분에게 “집사님,
집사님이 생각하시는
​ 10년 전 조하문은
1997년 9월에 죽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여기에 있는 조하문은
이름만 같을 뿐입니다”라고
말씀 드렸더니
그제야 비로소
얼굴 표정이 풀리셨다.

그분은 아마
옛날의 나를 기억하고
​‘어떻게 그런 사람이
목사가 되었나’라고 
생각하신 것 같았다.

세월이 지날수록,
주님을 만난다는 것이
옛사람의 죽음을 분명하게
포함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주님을 만나고 난
나는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기 위해
그동안 알고 있던 분들을
많이 찾아 다녔다.

그 중에는 당시 내가 운영하던
사업장의 직원들도 있었다.

동일하게
용서를 구하는 과정에서
직원들 중에는
내 달라진 모습을 보고
교회에 출석하는 분이 생기기도 했다.

사업과 음악을 가진 채
만난 예수님은
결국 나에게 모든 것을
내려놓게 하셨고
한참 동안 조용히
혼자 있게 하셨다.

그리고 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하게 하셨다.

계속되는 훈련 속에서
주의 도구로 만드신 것이다.

극장 사업 이후
내가 손대고 있던 사업을
그만 둔 것도 망해서가 아니라,
신학을 시작하고 보니
두 가지를 동시에
섬길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난 ’돈’으로부터의
자유함을 얻었고
그로 인해 스스로
폐업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분의 손을 잡고 동행하면
별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지난 9년간 나에게
문제된 것들이 있다면
가끔 그분보다
앞질러 가거나 나의 생각을
그분 생각이라고 우긴 경우다.

이런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분은 내게 평안을 주셨다.

출처:조하문이 쓴
<내 아픔을 아시는 당신께>
​중에서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조셉 스크리븐
지금으로 부터 약 200여년 전인
1819년 아일랜드에서 태어났습니다.

청년이 되었을 때
 그는 가문의 전통을 따라
직업군인이 되고자 했지만
건강상의 문제로 어쩔 수 없이

문학을 전공하게 되는데
이 기간에 복음을 접하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됩니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한 후
교직에 몸담게 됩니다. 
 

1843년에는 그의 인생에 있어
큰 비극을 경험하게 됩니다. 
 
결혼식 하루전날 그의 약혼녀는
강위로 난 다리 위를 말을 타고

그의 집으로 오다 그만
말에서 강으로 떨어져서
 
머리가 돌에 부딪혀 의식을
 잃고 익사하고 맙니다.

그는 이 사고를 강 저편에서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그 후 아일랜드에서 캐나다로
이주한 그는 가정교사로 일하는 동안
캐서린 로체(Cathrine Roche)라는
여인과
1859년에 약혼을 하게 됩니다.  

결혼을 하기전에
그의 약혼녀인
캐서린은 몸전체를 물에
잠그는 침례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보리걷이를 막 끝낸
계절이었기 때문에
날씨는 여전히 추웠습니다.

캐서린은 이미 몸이 아파서
쇠진 해 있는 상태에서
침례를 받았기 때문에
한기가 들고 아프기 시작해서
 
폐렴에 걸리게되고
4개월 후에 결국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이처럼 조셉 크리스븐은
첫번째와 두번째 약혼녀
모두를 잃고 맙니다.  

스크리븐은 큰 충격 속에
 식음을 전폐하고 누웠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교회에서
기도하던 중
이런 음성을 들었다고 한다.

 “너는 사랑하는 약혼녀를
 호수에서 잃었으나,
 나는 하나뿐인 독생자를
십자가에서 잃었다.
그것은 하나를 잃음으로
모두를 사랑하기 위함이다.”

 그때 그는 주님의 깊으신
사랑을 경험하게 되었고
그래서 쓴 찬송시가 바로

‘죄 짐 맡은 우리 구주’(478장)였다.
“근심 걱정 무거운 짐 아니 진 자 누군가
 피난처는 우리 예수 주께 기도드리세
​​세상 친구 멸시하고 너를 조롱하여도
 예수 품에 안기어서 참된 위로 받겠네”

살면서 누구나
다 조셉 스크리븐 처럼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과 사별,
사람들로 부터의 상처, 가난,
 
불확실한 미래 등과 같은
인생의 풍파를 경험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모든 일 속에서도
그리스도는 우리를 결코 떠나지도
버리지도 않는 친구로 함께
계시다는 사실은
정말 큰 위로가 됩니다.

"비방이
나의 마음을 상하게 하여
근심이 충만하니 불쌍히
여길 자를 바라나 없고
긍휼히 여길 자를 바라나
찾지 못하였나이다 니"
​(시69:20 )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단순히 성령을
구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가만히 있고
성령께서 모든 것을
다 바꾸어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이미
성령이 임하여 계신데도
우리가 무기력한 것은
성령께 반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구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성령께 반응하는 것이 무엇인지
주님께서 제게 깨우쳐주신 사건이
임현수 목사님의 석방이었습니다. 

 임현수 목사님이
석방되신 후
제가 캐나다
큰빛교회 집회에 갔을 때

어느 성도님이
“목사님,
기도는 간절히 했지만
솔직히 이렇게 석방될 줄은
정말 몰랐어요”라고 고백하시며
“이런 것도 믿음인가요?” 하고
물었습니다. 

 이분은 그동안 목사님이
석방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는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언제까지
이렇게 매일
기도해야 하나 하는 생각에
 시달리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이 정말
꿈과 같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분은 석방되리라
믿지는 못했지만
계속 기도하게 하시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시고
내게 기도를 지시하시고
주님이 이끄시는 대로
주님을 바라보면서
계속 기도한 것이지요. 

 지금 성령님을
구하라는 것은
내 눈에는
도무지 안 될 것 같아 보여도,
 되고 안 되고를
내가 판단하지 말고
성령님이 주시는 지시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이미 우리 안에 오셨고,
개인 상황이든
나라를 위한 문제든
우리의 모든 상황에 대해
성령님이 우리에게 지시하십니다.
우리가 그것에 순종해야 합니다.

출처:유기성목사의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라"
중에서
[규장출판사]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30년의 개그우먼이며
충현교회 다니는 이성미씨는​
서울예술대학
 방송연예학과를 졸업하고,
 1980년 TBC 개그콘테스트에서
대상을 수상하면서 데뷔했습니다.

2013년에는 SBS 연예대상
 러브FM 부문 라디오 DJ상을 수상을
하기도 했는데요.

첫번째 신앙생활은 
새벽기도를
통해서 시작되었답니다.

새엄마가 새벽기도
나가보지 않겠니라는
말에 나가게 되고
10일후에 방언이 터지고
성경공부를 하면서
중보기도의 동역자의
중요성을 깨닭았답니다.

이성미씨의 어린시절은
어머니가 4명이랍니다.

초등학교를 4학년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후에 새엄마가
그렇게 많게되고
그때마다 삐탁하게
살아옵니다.

아버지 사랑만 받고
살아와서
늘 죽음만을 생각하고
늘 유명했지만
불행했답니다.

인터넷을 보면서
내과거를 지으고
싶어요라고 합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삶의 의욕을 잃어버리고
2002년 월드컵때
케나다로 떠났습니다.

내 좋은 것 다 빼았아 가서
늘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TV프로 7개와 라디오를
2개를 하는데도
캐나다로 떠났습니다.

이유는 아이가 유학을
간다고 해서 갔지만
도망치듯이 갔습니다.

2002년 9월
한국을 떠날 때 이 집사는
 마흔셋, 큰아들은 열셋,
​둘째 딸은 다섯 살이었다.

 막내딸은 태어난 지 14개월.
​낯선 곳에서 가족은 힘들었다.
​특히 아들은
 심하게 사춘기를 보냈다.

그때부터 아들과의
갈등이 있었고
공부와의 갈등으로
괴로워합니다.

사실 욕쟁이였답니다.

내안의 상처가 있어서
욕을 아들에게
하기 시작합니다.
“미친놈,“이 XX 진짜 똑똑하다.”
​밥먹듯이 했습니다.

공부를 너무 해서
공부안하면" 너
거지된다."라고 했습니다.

학교를 안가면
학교에서 전화가
오니
"너는 학교 교장이니."라고
욕을 했답니다.

이번에도 아들이
컴퓨터하고 있는데
나오라고 했는데

아들이 애이씨라고
했는데
내가 때릴려고 하니
나를 잡았고
또 욕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갑자기
"집사란 인간이
집안에서 이러는것 알아."
하는데 힘이 빠지고

새벽기도를 또 갔습니다.
가면 아들 바꾸어달라고
매일 기도했습니다.

다음날도
아들에게 밥을 주면서
"야 날샌놈 밥먹고
학교가."

그런데 그때 하나님께 말씀
하신겁니다.

"네 아들 네가 말한대로
만들어 줄까."

갑자기 두려움이
들었고 17년욕을 한것을
방에 가서 회개했습니다.

놀랍게 기도하고 나서
욕을 하지않으니
이제 아들이 욕을
안먹으니 너무 고민이되어
일주일되어서
물었답니다.

"왜 욕을 안해."
하나님이 말씀하셔서
이젠 순종한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아들이 공부하고
조금씩 바뀌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아직 내안에
있는 쓴뿌리가 남아있었고
이때 큰 사건이 터지게됩니다.

아들이 운동을 잘하는데
운동장을 금을 긋고
축구하고 한쪽은 하키를하는데
서로 싸우게 되고
축구공을 발로 찾는데 그중에
한 아이가 맞으면서 넘어져
뇌진탕으로 쓰러지고
아들은 교장실에 갇히게
됩니다.

경찰과 엠브란스를 불렀고
아들의 문자를 받아서
가서 볼려고 차를 탔는데
하나님께서 아들에게
율법으로만 가르치는 모습을
보게 하시고 회개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키우지 못하고
내 이름에 먹칠할까봐
날마다 잔소리로 했는데
40분을 회개하고 갔습니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너희는 추방될것이고
아들은 감옥갈것이다라고
합니다.

가서 만나는데
마침 무전기로 연락이 오길
다친 아이가 깨어나서
아들이 처벌받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고

학교에서 14일 정학만 맞고
집에 오게 됩니다.

집에 와서
아들에게 무릎을 끊고
내가 미안하다
내가 잔소리하고
잘못했다라고
했는데

아들이
나에게 한번이라고
잘한다라고 한적있어라고
하는데 같이 울었습니다.

다음날 새벽기도를
갈려고 하는데
아들이 같이 가겠다는
거예요.
그날부터 같이 다니게됩니다.

어느날 아들이
새벽예배때
하나님이 날 부른데라고
합니다.

목회를 해야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한달뒤에 아들이
목회한다고 하는데
너무 기뻤답니다.

다시 한국으로 오는데
아들을 데리고 오고
싶은데 하나님이
이제 맡기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돈도 주지 말고
하나님이 축복주신것을
가로채고 있다고 해서
혼자 알바하면서 공부하는데

어느날 전화가 왔는데
4년 장학금을 받게 하였습니다.

이성미집사에게 큰 위기가
개인에게 찾아오게됩니다.

건강검진이 아니라
 방송을 위해서
검사하던중에
유방암이 발견되어
12번 수술을 하게됩니다.

그때 "하나님을
그렇게 사랑하고 열심히
사는데 어떻게 암이 올수 있나?
하면서 나중에 알수 있겠지 하는데

사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울랄라세션의
리더였던 임윤택씨가
 한참 암 투병때
이성미집사는
복음을 전하고 싶었는데

마음속에 갈등이
"난 암을 겪지 않아서
고통을 모르니 말로만 떠든라."라고
생각이 들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내게도
 그런 고통이 있다면
내가 다가가서
위로할수 있을텐데라고
했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기도를 들으시고
암을 주셔서 암으로 고생하는
임윤택에게 전화를 걸어서

"윤택아 내가 암에
 걸려보니까 그동안
네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이제는 내가 조금 알겠다"라고
했답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게 되었답니다.
그래서 고난이 축복입니다라고
고백을 한답니다.

결국 무사히
수술을 마친 후 이성미는
"내가 하루하루를 덤으로 사는구나.

내 인생에서 눈을 감았다가
내일 뜬다는 보장이 없다면
내가 오늘 하루 정말 행복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달라진 마음가짐을 알렸다.

그리고는 "그 이후로
 버릴 시간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 순간이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이고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옛날에는 먼 미래에
어떤 행복을 꿈 꾸곤 했는데
이제는 오늘 하루가
가장 행복하다"고 합니다 

이 집사는 북한선교에
 대한 비전을 밝히기도 했다.

이 집사는 "하나님께서
북한선교에 대한 비전을 주셨다"며
 "하나님께 칭찬받는 딸이 되고 싶다.
북한선교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집사의
성경 속 신앙 롤모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대신 짊어진 구레네 시몬이다.
 어떤 고난 속에서도
신앙을 버리지 않으면서
주변에 힘들어 하는 동역자가 있다면
그 짐을 나누고 싶어서라고 한다.

그녀의 고백입니다.

"누군가 힘들어 할 때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갈 수 있는 넉넉한 사람이
되기를 바래요.

그래서 많은 이들을 섬기는 것과
그들을 진심으로 대할 수 있도록
겸손한 마음을 허락해 주실 것을
기도하고 있어요."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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