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 리더 :: 크리스천 리더

김용현 회장님이
「세상에
가치 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라는
이런 책을 쓰셨어요.

독실한
크리스천인
 부인을 만나서
예수를 믿게
되었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건설업이 한창
잘 될 때에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고백을 했어요.

“저의 배만
채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광대한 사업에
​ 쓰임 받는 삶을 살겠습니다.”
라고 고백을 했는데

돈이 자꾸
들어오다 보니까
돈이 보이는 거예요.

돈을 주신
하나님이 안 보이고
돈이 보이는 거예요.

이 탐욕이
참 무섭습니다.
탐욕을
내려놓지 않으면
탐욕이 결국
여러분을 파멸로
이끄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물질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쓰라고
주시는 것인데

움켜쥐고 쓰지 않고
있다가는 그 탐욕에
빠져서 망해 버리고
말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지 않고
잘못된 길로 가니까
하나님이 심판하셨어요.

투자했던 건설회사가
부도가 나니까
 순식간에 수십억대의
어음이 휴지가 됩니다. 

 빚쟁이들에게
쫓기면서
삶의 의욕도 잃고
‘이젠 죽어야 되겠다.’
자살할 결심까지 했어요.

그때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돌아가야 한다.
도망치는 네
영혼을 나에게 주어라.
그러면 내가
너를 치유하고,
네 가정을 치유할 것이다.”

그때 정신이
버뜩 들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합니다.

“하나님, 나를
용서해 주옵소서.

내가 그만
돈에 눈이
멀어서
하나님을 버리고
마음대로
내 길로 갔습니다.

 완전히 내가
파산에
처하게 된 것은
나의 탐욕
때문이었습니다.”

눈물로
회개하니까

다시
하나님께서
복을 내려가지고
하나님께서 데이빗
종합건설을 포함해서

그가
경영하고 있는
3개 회사가 다
잘되게
만들어 주시고

1989년에
설립한 광산산업은
강구조 산업을
위주로 하고 있는데
동종업계에서
국내 다섯 번째로
큰 그러한 회사로
축복해 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고백을 합니다.

왜 하나님께서
물질을 주셨느냐?

“하나님께서는
아무에게나
재물을
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마음의 중심을
보십니다.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으며
정직하게 신앙의
바른 노선을 걸으면
금과 은 그릇은
아니어도

깨끗한 그릇에
보화를 담아주시듯,
물질과 신앙에
대해 정직하고
깨끗한 마음에
하나님은 재물을
부어 주십니다.

돈에 대한
탐욕을 내려놓고
선교의 비전을 품고
난 뒤에
사업의 규모가
예전보다 더욱
커질 수 있었습니다.”

주님 앞에서
주님의 놀라운
은혜를 잊지 말고
늘 말씀으로
성령으로 충만해서
하나님께 충성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과 능력을
믿고 나가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감사가 넘치는 삶으로
인도하십니다.

지금 조금 힘들고
어려워도 낙심하거나
불평하지 마시고
늘 동행해 주시는
주님의 손잡고
하루 하루 인생의
발걸음을
옮겨나가시길
축원합니다.​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삶에는 얼마나
어려운 일들이 많은지요.

하루에도 수십 번의
한숨을 내쉽니다.

하지만 이 걸음을
멈출 수는 없습니다.

광야에서 견디지
못한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니까요.

세상은 많은 길이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믿음의 길을
시작한 이상
광야에서 쓰러져 죽거나
 광야를 통과하거나
둘 중 하나인 것입니다.

그래서 제게는
목자의 돌봄이
더욱 절실합니다.

낯선 광야에서 스스로
생명을 지킬 수 없으니까요.

저는 목자 옆에 딱 붙어
광야를 통과하기로
마음먹습니다.

나의 목자 예수님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이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에 강을 내시는 분입니다.

이 광야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생명의
푸르름으로
가득한 초원이 될 것입니다.

나는 목자님 옆에 붙어
이 기적을 목격하고,
초원을 걸어
가나안에 이를 것입니다.

광야에서도
찬양할 수 있습니다.

찬양의 근거는
  단 하나입니다.

나를 사랑하여,
나를 결코 놓치지 않을
 목자의 사랑 때문입니다.

출처:이진희목사의
"광야을 읽다"
중에서
[두란노서원]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브루스 라슨은
 『바람과 불꽃』이라는 책에서
격려의 위력을 
참으로 훌륭하게 썼습니다.
 
그는 캐나다 두루미라는
 새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륙을 가로지르는
 머나먼 거리를 날아
 여행하는 이 커다란 새에게는
세 가지 눈에 띄는 특성이 있다.

첫째, 한 마리가 
항상 앞장서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돌아가며 
지도자 노릇을 한다는 점이다.

둘째, 그들은 난기류를
 헤쳐나갈 수 있는
역량 있는 지도자를 
고른다는 점이다.

셋째, 한 마리가 앞장선 
동안 나머지들은
그 지도자를 격려해 주기 위해
 울어댄다는 점이다.”

당신이 지금 
울어대고 있다면,
그것은 지도자를 
격려하기 위함입니까,
 
아니면 지도자를 
더 어렵게 하기 위함입니까?
격려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주님, 
항상 누군가의 도움이 되게 하소서.
누구나 할 수 있는 불평대신
누구나 할 수 없는 격려를 하십시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마르바 던 교수님이
날마다 우리를
깨우시는 음성이라는
책을 지었는데요.

이분은 지금
현시대에 영적인
지도자로 쓰이고 있는
아주 귀한 분이십니다.

 영성 신학자인
유진 피터슨,
리처드 포드와 함께
이 시대를 대표하는
신학자라고 하는데요.

1948년 미국
오하이오주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늘
육체의 질병에
시달렸습니다.
어린 시절을
홍역을 앓고
난후부터 당뇨병과
저혈압을 얻습니다.

이로 인해서
한쪽 눈이
실명합니다.
신장 이식수술과
유방암수술도
받았습니다.

20년 전에는
관절이상으로
갔다가
그만 의사가
오진을 해서
다리를 절단하는
그러한 아픔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
한국을
방문하려 하다가
또 큰 사고를 당해서
나머지 한쪽다리마저
절단하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 교수님은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원망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그의 마음에
평안만을 가지고
주님의 사랑을 전합니다.

이분이
가서 말씀을
전하는 곳마다
많은 사람들이
그 강연을 듣고
큰 감동을 받습니다.

이분은 예수의
사랑을 가지고
그 마음에 넘치는
평안함을 가지고
강단에서
말씀을 전할 때

성도들이
새 힘을 얻고
주님 안에
주님 주시는
큰 기쁨으로
살아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20권 이상의
많은 책을 지었는데
이 대부분에
책들에서
의미없는 고난이
없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날마다 우리를
깨우신 음성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저에게는 아픔도
축복이었습니다.

우리가
고난 중에
있을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삶을 양도받아
모든 것을 임의로
다스리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분의
손 안에 있으면,
그분의
무한한 지혜와
사랑의 돌봄 아래서
온전히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구원을 요청할 때는
최대한
 단순해져야 합니다. 

 우리는
적군들의 손에서
당장 구원받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우리 시대가
바뀌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고난당할 때에
우리가
달라질 것입니다.

더 나아가
고난 속에서
더 성숙하게 되고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목적을
더 잘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현재 이 교수님은
캐나다 밴쿠버에 있는
리젠트칼리지에서
영성신학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여러분
환난을 만날 때
문제를 당할 때
어려운
일이 생길 때
원망불평하지 마세요.

고난중에
예수그리스도의
손길을 느끼며
하나님의 목적을
발견하여 쓰임받는
귀한 축복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광야는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다
광야에서는 스케줄이 필요 없다.

해가뜨면 일어나고 해가지면
잠을 자면 된다.

광야에는
모든 것이 멈춰 있는 듯하다.

아무것도 움직이는 것이 없다.

광야에서는
바쁠 이유가 하나도 없다.

그래서 광야는 하나님의 음성이
가장 크게 들리고 하나님을 가장
분명하게 볼 수 있는 곳이다.

우리는 광야로 들어가야 한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이 있어야 한다.

가콜릭 신학자 까를로 까레또는
[도시의 광야] [분노출판사]라는
책을 통해서 "나날의 생활 속에
광야를 마련하라"고 했다.

또 "당신이
광야로 갈 수 없거든
당신의 생활 속에
 광야를 만들라"고 했다.

헨리 나우웬은
광야의 영성을
"하나님과 함께 그리고
그분하고만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과 장소를 따로 마련하라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만남의 장소를
갖고 하나님과의 만남의 시간을
가지라는 것이다.

굳이 광야 수도원에
들어가지 않아도
우리의 삶 한 가운데서
광야와 같은
장소와 시간을 가질수 있다.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누가복음5장16절)

출처:이진희목사의
"광야를 읽다"
중에서
[두란노 서원]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슈테른베르그(Sternberg)는
 독일의 화가였다.

당시에는 
성화를 그리지 않으면
 명성 있는 화가가 되지 못했다. 

미켈란젤로나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성화를 그려서 대가가 된 것이다. 

슈테른베르그도 
대가가 되고 싶어 
성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모습을 반쯤 그렸지만

 더 이상 영감도 없고 
감동도 없었다. 


그는 길거리로 나갔다가
 멋진 여자를 만났다.

이 여인의 누드 그림을
 그려 돈을 벌어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여인에게 접근했다.

“당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그리고 싶으니 
모델이 되어 주면 
후히 사례하겠습니다.”

그 여인은 
가난한 집시였기에 
흔쾌히 승낙했다. 

화실로 데려가
 여인의 나체 모습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집시 여인이 
화실 한 편에 있는 그림을 보았다. 

거기에는 십자가에 달려 처참하게
 죽은 사람의 그림이 있었다.  


“선생님, 저 사람은
 얼마나 무서운 죄를
 지었기에 나무에 달려 죽었습니까?” 

슈테른베르그는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수라는 사나이인데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고
 죽으신 것이라오.” 

그러자 예수가 누구인지
 몰랐던 집시여인이 되물었다. 

“우리의 죄라구요? 
그 분이 정말 선생님의 죄도, 
나의 죄도 대신해서
 죽으셨단 말입니까?" 

그 순간 슈테른베르그의 가슴은 
건물이 무너져 내리듯
 철렁하는 충격을 받았다.

그는 예수께서 자기를 위해 
돌아가셨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슈테른베르그는
 더 이상 여자의 누드를 
그리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다.

대신에 그는 
교회에 나가 엎드렸다.

“주님, 주님께서 
정말 저를 위해 죽으셨나요?

제 죄도 주님께서
 지시고 돌아가셨나요?

 정말인가요? 
주님, 알려 주세요.” 

진정으로 회개하고 
주님의 은혜에 감격하여

그린 그림이
 에케이 호모(Ecci Home) 즉
 ‘이 사람을 보라’이다.


슈테른베르크는 
예수님이 고난 받으시는 
그 그림 아래 

“나는 너를 위해 
이렇게 하였다.

너는 나를 위해 
무엇을 하였느냐?”는 
글귀를 적어 넣었다.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보혈을 지나"를 
작사와 작곡을
한 김도훈목사님은

여의도 순복음교회에
속한 대학청년국
프뉴마청년선교회
담당하고 계십니다.

이 목사님의 목표는
 60세까지 1000곡을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주가 거기 계심으로’
‘주를 향한 그리움’
‘성령님, 인정합니다’ 등
무려 450여곡을
만들었답니다.

그는
1973년  태어났다.
당시 서울의 큰
법랑회사 사장이었던
아버지가 백혈병을
앓고부터
집안은 기울었답니다.

가장이 2년간
투병생활을 하는 동안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다.

그가
여섯 살 때 아버지는
어린 남매와 여린 아내를
남겨놓고 세상을 떠났다. 

김 목사의 어머니는
건축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하면서
어린 남매를 키웠다.

아들은 어머니의
월급봉투를 훔쳐
오락실과 도박으로
학창생활을 보냈다.

아버지 부재에
대한 반항이었다.

두 살 어린 여동생을
폭력으로 괴롭혔다.

대학생이 된 다음에
알았지만 동생은
‘오빠를
죽게해달라’고
기도할
정도였다고 했다.

 3번이나
자살을 시도했지만
그 때마다 기적처럼
살아났다고 했다. 

질풍노도의 10대를
지켜준 것은
어머니의 신앙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겨우 철이 들었단다.

 당시
조용기 목사의 설교가
바위처럼 굳은 마음을
모래알같이 곱게
만들었다고 했다.

육신의 아버지 보다
더 사랑이 많은 영혼의
아버지가 계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뒤늦은 공부에 집중해,
91년 대학(건국대
충주캠퍼스
기계공학과)에
들어갔다.

신입생 환영회 때
만난 한
여학생의 질문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날 선배들이
권하는 술을 끝까지
거부하는 모습을 본
이 여학생의 질문은

“당신이 믿는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궁금하네요.
말해 줄 수 있나요.” 
 
그 때는
아무 말도
못했다고 했다.
부끄러워서
쥐구멍으로 찾고
싶었다고 했다.

그렇게
대학생활은
2년이 흘러갔다.
교회 찬양단원으로
활동하면서
 피아노 건반을
익히면서
찬양의 세계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신앙생활도
신실해지기
시작했다.
가장 큰 변화는
동생을 사랑하게
됐다는 점이다.

찬양곡을
만들기
시작한 때는
98년 대학원에
입학하면서부터다.

 ‘올 크리스마스
당신이 가장 받고
싶은 선물이
무엇인지’를 묻는
기도를 드렸더니
대답이 기가 막힌
것이었다고 했다.

 하나님의 대답은

‘네가 직접 만든
노래를 듣고 싶다’
였다는 것이다. 

콩나물 머리도
잘 볼 줄 모르는 데
어떻게 작곡을
할지 큰 낭패였다.

몇날 며칠을
고민하다가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했다.

기자들이 가지고
다니는 휴대용 소형
녹음기가 떠올랐다.
당장 오디오 가게로
달려가 녹음기를 샀다.

그리고 2년 동안
어디를 가나
녹음기를 가지고
다니면서 육성으로
작곡을 했다.

‘보혈을 지나’는
1999년에
 만들어진 곡인데

 당시
동역자들과 함께
국내외 단기선교활동과
중보기도모임을
하고 있었는데
기도 중에 환상을
보았다고 한다.

그 환상은
십자가 앞에서
한 방울 한 방울
하늘 보좌로부터
보혈이 흐르기
시작하더니

시내를 이루고
강을 이루고

마침내
폭포수처럼
흐르더니
그 보혈을 지나
하나님의 보좌로
나아가는 영혼들은
새롭게 변화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 환상을
본 김도훈 목사는
기도와 깊은
묵상 끝에
4가지 깨달음을
 얻었는데

 그 첫째는
진정한 회개는
보혈을 지나야만
한다는 것이다.

죄를 씻는 것은
우리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우리가 하는
기도도
 보혈을 지나야
한다는 것이다.

기도에
대한 응답도
우리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지는 예배는
반드시
보혈을 지나야만
하나님께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넷째는 선교인데
이 땅의
모든 영혼들의
손을 잡고
보혈을 지나야
그 영혼들이
변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묵상과
깨달음이 김도훈
목사의 마음에서
떠나지 않고 맴돌았고,
퇴근길의 지하철 안에서
하나님 주신 영감으로
완성되었던 것이다.

김도훈목사님은
이런 고백을 합니다.

“내 마음 속엔
빨간 십자가가
있어요.

죄와 고통으로
가득했던 청소년기를
이겨내고
순종의 길로
들어선 것은
오로지 보혈의
십자가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날마다
보혈의 은혜를
받고 살아야합니다.

이세상에
살아가는 것이
힘들고 어렵지만

우리들에게는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피흙려 죽기까지
사랑하신
그 큰 사랑때문에

우리가 존재하고
또 오늘도
살아갑니다.

예수님의
피흘려죽으신
보혈을 의지하여
당당하게
그리고
묵묵히 전도와
선교를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도 삶이
예배가 되어서
예수보혈의
은혜가 가득한
기도응답과
자녀의 확신의
 사람되시기를
축원합니다.​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양들은 광야에 산다.
그런데 양이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정말 혼자서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자기가 꼴을 찾지 못한다.

길도 잘 못 찾고,
다른 동물들과 맞서 싸우지도
못한다.

심지어 잘 도망가지도 못한다.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동물학자들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 가운데
인간이 돌봐주지 않았으면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사라졌을 피조물로
양을 꼽는다.

양에게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이 다 문제다.

그런데 그들은 아무 문제없이
광야에서 잘 살아간다.

어떻게 아무것도 자기 혼자 할 수
없는 양들이 그 험한 광야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일까?

바로 "목자"때문이다.

목자만 있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목자가 100퍼센트 다
책임져주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광야에
살아도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것이다.

뉴질랜드의 양처럼 좋은
환경 가운데서 남부러울 것이
없이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목자가 필요 없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어도
잘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뉴질랜드 양들이 두려워하는
것이 한가지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보이지 않던
목자가 나타나는 것이다.

그날은 다 긴장을 한다.

바로 도살장에
끌러 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꾼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헤치느니라.

 달아나는 것은
저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아보지 아니 함이나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요한복음10:11~15)

출처:이진희목사의
"광야을 읽다"
중에서
[두란노 서원]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