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 리더 :: '풍경이 있는 묵상' 카테고리의 글 목록 (12 Page)

2차 세계 대전 중에
 있었던 일이다.

 독일군에게 쫓기는
 유대인을 숨겨 주었다는
 이유 하나로,
네덜란드의 처녀 코리 텐 붐과
 그녀의 온 가족은
나치 수용소에 갇히고 말았다.

끔찍한 고문으로 말미암아
그녀의 가족은 생명을 잃고 말았다.

다만 기적적으로 그녀만
생명을 건질 수 있었다.
 
전쟁이 끝난 후에
코리 텐 붐 여사는
복음전도자가 되어
 온 세계에 다니며
용서의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

그녀가 용서의 메시지를 전하는
곳곳마다에서
 놀라운 삶의 변화들이 일어났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말씀을 듣고 큰
은혜와 감동을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독일에서
그녀를 초청하여 특별 집회가 있었다.

그때 그녀의 명성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그 집회에 참석을 했다.

 저녁 집회를 은혜롭게 마치고
코리 텐 붐 여사는
교회 정문 앞에 서서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과
인사하며 감사의 악수를
나누고 있었다.

그 때 자기 앞에 서서
 손을 불쑥 내미는 노신사를
 바라보다가 그녀는 너무
놀라 얼굴이 창백해지고
피가 거꾸로 솟는 것만 같았다.

그 노신사는 바로 자기
가족을 극심하게 고문해서
죽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그 당시 처녀였던 자신의 옷을
전부 벗겨내고
온갖 고문을 하며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수모를 주었던 바로 그
전범이었기 때문이다.
 
그 때 코리 텐 붐 여사는
“온 세상 사람들을 다 용서해도
이 자 만큼은 내가 도저히
용서할 수 없습니다.” 라고
하나님께 고했다.

그녀가 그의 손을 잡고
 악수를 한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 때 그녀의 마음속에서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얘야! 난 그 사람까지도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를
졌단다.”

그녀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나서
 그 즉시 마음속으로 회개했다.

놀라운 주님의 사랑과
용서의 은혜를 다시금
마음속 깊이 깨닫고
그를 용서할 수 있었다.

그리곤 코리텐 붐 여사는
그 노신사와 용서의 악수를
하면서
무거운 마음의 짐을
모두 주님의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자신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큰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다고
 한다.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마태복음 18장 35절)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충북대학교 천문우주학과
김용기 교수님.
두 살 때
소아마비를 앓으면서
보조기가 없으면
기어 다녀야 되는
그러한 장애를 앓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그 아버지는
‘너는 앞으로
너 혼자 먹고 살려면
시계 수리공이라도 되어라’하고
학교로 자전거를 태워주시던
 그 아버지가 중학교 2학년 때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어요.

그때로부터
참 이 장애로 인해서
주변의 멸시와
편견으로 인해서
말할 수 없는 상처와
고통 중에 자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크리스천 교수님의 도움을 받아
 연세대학교 천문학과에 입학가고
독일에 유학까지 가서 20대 후반에
베를린 대학에서 박사학위까지 받습니다.

그런데 다시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일 년 동안 편지를 통해서
사귀던 자매에 청혼을 했더니
그 집안에서 장애인과는
결혼 할 수 없다
그래서 둘이 결혼을
이루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박사가 되면
 무엇 하나, 결혼도 못하고.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

그 절망의 때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납니다.
하나님께서 그 마음 가운데
 온 우주만물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이 너의 하나님이다.

내가 비록 장애가 있지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므로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귀하게 쓰임 받을 것이다.

그래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의 장애를 이해하는
믿음의 배우자를
저에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간절히 기도하는데
일 년도 안 되서
연세대 성악과
출신 자매를 만나 결혼해서
보란 듯이 6명의 자녀를 낳았어요,

몇 년째 시간
강사로 전전한 가운데,
하나님 내게
안정된 직장을 주옵소서.
그때 주신 말씀이
시편 42편 11절 말씀입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이 말씀
붙잡고 난 후에
충북대학교
천문우주학과 교수로
임용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강의 첫 시간에
늘 자기가 만난
하나님을 간증하고
기도로 강의를 시작합니다.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한때 장애란 이유로
 대학입학이나
결혼을 반대했던
사람들을 용서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은
‘용서의 대상’이 아니라
‘감사의 대상’이었습니다.

제 믿음의 성장에
‘훈련 파트너’로
쓰임 받았기 때문에,
오히려 제가
그들에게 빚진 자이지요.

저의 육신의 아버지는
시계 수리공이라도 되어
자립하길 바라셨지만,
영의 아버지인
하나님의 계획은
시계 수리공도 아니고
약사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제가 ‘절뚝거리며
강의하는
대학 교수’가 되어
‘대학 선교’의 비전을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학생들에게 말합니다.
“인생이 캄캄할 때
마음의 조리개를 여세요.
인내하고 기다리면
우리를 위로해주는
희미한 빛들이 모아져
캄캄한 인생의 밤하늘을
밝혀줄 것입니다!”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신
주님의 은혜를 감사합니다,
넘치는 감사로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더 큰 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주의 백성이요
 주의 목장의 양이니
우리는 영원히 주께 감사하며
주의 영예를 대대에 전하리이다 
(시편 79편 13절)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이랜드를 이끌고 있는
박성수회장의 간증을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 

비교적 부유한 환경 속에서
 자라나서 71년 연세대학교
식품공학과에 입학했습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좋은 스승이신
옥한흠전도사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구원의 비밀을
못누리던 김성수씨는
예수 영접하는 계기가
마련되었는데요.

그는 말하길
"​이 무렵 CCC활동을
하는 사촌 누이로부터
「성령 충만의 비밀을 아십니까?」라는
 전도 지를 건네 받았다.

​중생하지 못한
성도들을 위한 글이었는데
명목상의 주님을 섬기고
아직 죄책을 떨쳐 버리지 못했던
나에게 큰 도전을 주었다. 

나는 그 자리서
무릎을 꿇었다.
​"주여, 당신을 제 삶의
주인으로 영접합니다.
​저를 인도하시고
제 삶을 주장해 주옵소서"
 
그러자 내가 느끼지 못했던
평안과 승리감, 기쁨과
감사가 봇물처럼 밀려왔다. "

구원받은후에
큰 시련이 다가왔는데
대학4학년때
근육무력증이라는
병을 얻게된것입니다.

[참고로 근육무력증은
서서히 몸이 마비되다가
나중에는 누워서 침도
삼키지 못하며 죽어가는
병입니다.]

그때에 유일한 희망은
대학생 후배들을
신앙 지도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가장힘들때
그는 책을 3천권을
읽고 다방면의 지식을
습듭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병에 대한
불안과 염려속에도
하나님은 때를
허락하시어서
주변사람들의
중보기도로
치료의 역사를
주셨습니다.

그때의 상황을 설명합니다

"1978년,
2년여를 넘게 끌던
 나의 질병에
드디어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해 치료의
손길을 베풀어 주셨다.
이것은 「기적」이라고
표현해야 가장 타당할 듯하다.

어머니의 소개로
어떤 한의사를 만나
한약을 먹게 되었다.

 나는 약을 먹으며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러자
서서히 몸에 부쩍 힘이
생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루 하루가 달랐다.
3개월쯤 지나니 행동에
큰 불편함을 느낄 수 없었다.
​치료가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진 이 증세가 치료된 것이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는 치료의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찬양했다.
하나님께서 고쳐 주셨다는
확신이 섰지만 혹시 재발할지
모른다는 인간적인 생각에 다시
그 한의사를 찾았다.

​"정말 이상합니다.
​제가 어떤 처방을 썼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군요.
​거기다 처방전까지
어디로 갔는지
사라져 버렸어요"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한의사를 보며
나는 비로소 내 곁에 계시는
하나님의 숨결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처음 학원강사를 했는데
​정부의 과외금지조치로
학원을 그만두게 되자
한달간 기도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사업의 길이
열리도록 허락하여 주옵소서.
제 삶은 이미 하나님께 드리기로
서원하지 않았습니까?.
​사업이 성공하더라도 온전히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는데
사용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업자금을
주셨는데
여동생이 불신자와 결혼반대로
결혼식도 참석하지 않아서
부모님의 도움이 없이
500만원을 하나님이 주셔서
이화여대앞에 2평짜리 옷가게를
오픈하게되었습니다.


적은 돈으로 깔끔하고
 세련된 옷을
디자인을 골라서
팔기시작했는데
너무 잘되어서
디자인팀을 뽐고
상호를 "잉글랜드"
변경하게됩니다.

사업을 하면서
양심에 걸리는 부분은
물건을 받아
넘겨주는 위탁업하기에
세금계산서를 발행
못해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 당신의 영광을 돌리는
이 사업이 떳떳하길 원합니다.
 양쪽 모두가
세금계산서를 원치 않으니
올바르게 이 일을 할 수 있는
방법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양심에 꺼렸던 이 일은
결국 법인으로 전환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86년 (주)이·랜드가 탄생했다. 

대리점의 원칙은
주일을 지키지 않으면
대리점 계약취소를
시켜버려던 것입니다
그런데
주일을 지키는데도
더욱 성장하게됩니다.

그의 말입니다.
"먼저 「그와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자,
​쓸 것을 하나님께서 채워주신 것이다.
​직원들의 신앙 교육에도 중점을 두었다.

​월요일마다 목사님을 모셔
다 예배를 드리고
계속 그룹별로
성경공부까지 하고 있다.
​따라서 월요일은 정상업무가
오전11시가 다되어야 시작된다.
 매일 아침 전 직원이 30분간
「경건의 시간」을 갖는다.
​말씀을 묵상하며 말씀이 자신의 삶에
적용되도록 훈련하는 것이다.

그는 말합니다.
"나의 삶의 목표는 선교에 있다"

김성수 이랜드대표는
자신의 가장 어려운
질병에 있을 때에
많은 책과 아이디어를
통하여 하나님께
쓰임받을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도로 치유하시고
또 기도로 사업의 문을
여는것을 볼수 있습니다.

성경말씀을 그대로
사업에 적용함으로써
하나님이 주인되는
사업을 하게된것이지요.

 어떤 절망과 고난속에서
힘들어 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은 반드시
때를 주십니다.

기도로 준비하고
말씀으로 무장하고
준비하면
그 고통과 아픔이
큰 응답의 발판이
될줄 믿습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욥기32:10)​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인생을
하나님의 시각으로 봐야 한다. 
요셉을 생각해보라. 

요셉은 어린 나이에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가면서
인생의 모든 꿈을 포기했을 것이다. 

그대로 자랐더라면
부잣집 아들로 잘살았을 텐데,
그 꿈이 십 대 때 산산조각 나버렸다. 

그 당시 한 번 노예로
팔리면 평생 노예였다.

상식적으로 풀려날 길이 없었다.

고향 땅으로 돌아가
아버지와 가족들을 다시
만나리라는 희망도 사라졌다.

보디발의 집으로 팔려가
그곳에서는 형편이 좀 나아지나 싶더니
또 누명을 쓰고 감옥으로 끌려가버렸다. 

요셉은 자기 인생이
끝없이 절망으로 내려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요셉이
내리막길이라고 생각했던
그 길이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오르막길이었다. 

축복으로 가는 길이었고,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는 길이었다.

그것이 애굽과 열방을 살리는
축복의 리더십을 발휘하는 길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팔레스타인에서 자란 요셉이
정상적인 코스로 애굽네 가서
국가고시를 치고
다른 수만 명의 공무원들과 경쟁하여
총리대신까지 올라가려면
할아버지가 돼도 안 될 일이다.

길이 없다. 

그러나 노예로 떨어진
그 길이 축복된 결론으로
가는 길이었다. 

이 길이 저 길로
어떻게 연결되는지
우리의 지식과 경험으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도저히 연결될 수 없을 것같은
길들을 연결시켜서
반드시 길을 내신다. 

그러니 자꾸
자기가 생각하는 해결책으로
하나님을 설득하려고 하지 말고
이렇게 기도하라.

"하나님,
제가 모르는 길을 보여주시옵소서.
하나님의 길을 보여주십시오."

끈덕지게 기도하라.

기도하는 사람만이
그 길을 갈 수 있다!

출처:한홍목사의
"하나님이 내시는 길"
중에서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로버트 실베트 목사는 1922년에
소아마비로 이 세상에 태어났 습니다.
그가 태어날 때 의사들은
그가 단지 며칠밖에 살지 못 
할 것이라고 극히
비관적으로 진단하였지만,
수년이 지난 후에 도 그는 여전히 살아있었습니다.

이 분의 이야기를 다 기록 하자면
족히 사흘도 부족할
것이지만
 여기서는 그분의 희망과  
자신에 찬 말을 간단하게 기록합니다.

다음은 실베트 목사님의 기록입니다. 

"나의 부모님은 의사로부터
 나의 다리가 꼬여서
걸을 수 없으며  
따라서 사는 동안 식물
인간처럼
 살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나의 어머니는
내가 곡 걸어야 한다고
 생각하셔서 희망 을 버리지 않고 나의 신체를
운동시켰다.

그후 나는 9살 때 
에야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하는
 18개월 된 아이처럼 몸을 사용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홉살 때 학교에  
들어갔다.

수많은 조롱과 질시를 받으면서도
나의 신체적인  결함은
나를 자주,
좌절과 고통속에
빠뜨렸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내 방 거울 앞에
서서
내 몸을 비춰보며 매우 괴로워하였다.  

그런데 바로 그때,
나의 마음속에서
뚜렷한 음성이 들려왔다.

'바로 내가 너를 그렇게 만들었다. 그러므로
 슬퍼하지 말라!'

너무도 놀라운 말이었지만
나는 정신을 차리고
 그 말씀을 받아 드리고
그 이후로는 나의 신체에
 대하여 좌절하지 않고 슬퍼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내게 넘친다는 사실을
인정 
하였기 때문이다.

그후,
 고등학교 3학년 때
 나는40명이 경쟁하는
 웅변대회에서 당당히 
 2등을 하였다.

그리고 학급내에서
10% 안에 드는 성적으로
졸업 하였다.

그리고 대학을 들어갔고,
대학을 진학한 후에
양쪽 집안  
부모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하였다.

 부모님들의 걱정은  
장애자들끼리는 살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나의  아내는
뇌성마비였다). 
 
우리는 결혼을 한 후로
 뇌성마비의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하였다.

많은 사람들의 비판과 조롱속에서 시작하였지만
결국은 전국의 장애자들에게 희망을 주게 되었고,
 그 일은 세계적으로 까지 알려지고 장애자들에게도
희망이 있다는 것을 개우쳐주었다.

그리고 얼마후 나는 다시 공부하여
엘라버마주 버밍햄 교외에  
있는 한 교회의 담임목사로 시무했고,
버밍햄 장로회의 의장으
 로도 일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 세상의 불우한 이웃들에게 말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는다면
 결국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축복을
주신다고....
    
그리고 그는 36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 습니다.

그가 죽을 때 전
국민들이 슬퍼하고 그의 장례식날은  
버밍햄시의 모든 시민들이 머리를 숙여
그의 가는 길을 슬퍼
하 였다고 합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이사야43장1절)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삶의 의미를 찾아서』라는 책을
 쓴 빅터 프랭클이라는
 심리학자가 있습니다
그는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유대인입니다.

신경정신과 의사였던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아내,
형제들과
아유슈빙츠 수용소에
 끌려갑니다.

그는 아우슈비츠에서
끌러오자마자
책으로 내려 했던 원고를
독일군에 빼앗기고 낙담합니다.

그는 수용소에 들어온 후부터
 언제 가스실로
보내져서 죽게 될 지 모르는
 상황에 처해졌습니다.

이미 90%가 입소 당시
가스실로 보내져
죽었기 때문에 죽음은 바로
 코 앞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희망을 포기한 자는
얼마 못 가 병으로
 죽던지 가스실로 끌려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에게 주어진 옷 속에서
그 옷을 입었던
 죽은 포로가 쓴 종이쪽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 쪽지에는 유태인의 기도문인
쉐마 이스라엘( Shema Israel)의
“ 네 영혼과 힘을 다하여 네 주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내용의 기도문이었다.

그는 그 내용을 정통적인
의미와는 달리 해석하였는데
그에게 있어서 그것은 고통이나
 심지어 죽음 앞에서나
무슨 일이 닥치더라도
삶을 긍정하라는 명령같이
느꼈다.

빅터 프랭클은 그때부터
하나님이 주신 삶의 목적을
 찾고
희망을 발견합니다.

하루에 한 컵씩 배급되는
 물을 반만 먹고
나머지는 세수하는데 쓰고
유리조각으로 면도까지
했다고 합니다.

건강하고 깨끗해 보이면
가스실로 가는 시간이
미뤄질 것을 알았던 것이죠.
결국 그는 끝까지 살아남아
아우슈비츠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리고 쓰지 못했던 원고를
 완성하게 된것입니다
지금 절망가운데 희망을
 잃어버렸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기까지 희망을 주신것입니다.

절망은 또 다른 희망의
시작이 될것입니다.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예레미야 29장 11절)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한 여자 아이가 시골
구석에서 사생아로 태어났고,
9살 밖에 안 되는 어린 나이에
사촌오빠로부터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14살에는
미혼모가 되었으나
그 아이는 2주 만에
죽고 말았습니다.
또 마약 사범으로
수감되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사람도 아름다운 미래를
설계하며 꿈을 꿀 수 있을까요?

하지만 바로 이런 그가 20세기의
가장 부유한 흑인계 미국인이 되었고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중
한 사람으로 선정 되었습니다.

또한 미국의 상위 자선 기부자들
중 한 명인 그가 바로 오프라 윈프리
(Oprah Gail Winfrey)입니다.

그는 엉망인 과거를 청산하고
19살에 시카고 지역 방송국에서
 일하게 되고 저녁 뉴스의 공동
뉴스캐스터를 맡았는데
마침내
삼류였던 지역 토크 쇼를
최고의 자리로 끌어올렸습니다.

그는 매주
최소 1400만 명이
 청취하는 자신의 토크 쇼를
25년 동안 진행하였고
2011년 5월 17일
스스로 멋지게 은퇴하며
막강하고 아름다운
영향력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그는 명예로운 상을
휩쓸다시피 하였습니다.
2010년 케네디 센터 평생공로상
 2005년 국제 에미상 방송인상
2005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명사 100人 중
최고의 명사로 선정되었고
2004년에는 유엔이 주는
‘올해의 세계지도자상’
수상하였습니다.

오프라 윈프리를 보며
배우는 것은 무엇입니까?
어릴 적 또는 젊은 날의 실패와
아픈 상처는 극복하기에 따라
분명히 성공을 위한
밑거름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에게는 독특한
성공 십계명이 있었습니다.
몇 가지만 소개하면
1. 내 인생을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하기 위해 살지 마라.
4. 등 뒤에서
헐 뜯는 사람들을 없애고
나를 더 높은 곳으로
올려줄 수 있는
사람들로 주위를 채워라.

5. 친절해라.
 6. 음식이건
술, Drug이나 행동
습관들이건 간에 중독
될 만한 것을 없애라.
7. 본인만큼 똑똑하거나 아니면
더 똑똑한 사람들과 함께 하라.
9. 절대 네 힘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지 마라.
10. 꿈을 추구함에 있어 꾸준히 하라.

그렇습니다.
주위에 좋은 사람들로
채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절대 네 힘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 주지 말라는 부분도
의미가 있습니다.

과거의 실패와 상처에
매여 살지 마십시오.
과거는 과거일 뿐입니다.
미래를 향한 꿈을 갖고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꿈을 향해 전진하는 인생은
그 자체만으로 아름답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부르실때
왕따,노예팔림
누명,감옥이
있었지만

애굽의 공무원의
정식공무원이 되는
나이때를 기다리시다가
응답하십니다.

우리들을 부르실때
미래에 대한 계획과
비젼을 꿈꾸기 원하시고
과거는 축복의 발판이며
응답의 열쇠입니다.

지금 잃어버린
꿈을 회복하시고
과거에 머물러
계시지 마시고
당당하게 일어나세요.

하나님은 지금
시작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모세는 도망자로
80평생을 살았고
이제 끝났다고 했을때

하나님은
인생에서
나머지 40년을
쓰셨습니다.

하나님의
시작은
지금부터 입니다.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할 수밖에 없다”
(잠언 29:18, 현대어 성경)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에 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마틴 루터는
천주교의 신부로
있으면서
교황의 종교정책이
성서적이지 못하고
본질에서 벗어난
일들을 자행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고민하다가
1517년 이를 반박하는
95개의 반박문을 비텐베르그
대학 정문에 붙이게 됩니다.

이를 기점으로
종교개혁이 시작이 됩니다.
그런데 신앙의 본질로
돌아간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루터의
종교개혁의 대상이
되는 기존의 교회세력들이
루터를 위협했습니다.

생명의 위기까지도
느껴지는
압박감이 있었습니다.
이 일로 인해 루터는
불안함 속에 수심에
잠겨 고민하며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루터의 아내,
카타리나가
상복을 입고서
루터 앞에 나타났습니다.

루터는 물었습니다.
“여보, 누가 돌아가셨나요?
왜 장례식 복장을 하고 있어요?”
그럴 때에 아내는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돌아가셨어요”
“어떻게 하나님이
돌아가실 수 있단 말이요,
그런 가당치 않은
말은 하지도 마시오”
루터는 아내를 꾸짖었습니다.

그러자 아내 카타리나는
정색을 하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당신답지 못하게 이렇게
실의에 빠져 있을 수 있나요?”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과 동떨어져서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살아가는 시간들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세상의 근심과 염려에 빠져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외면하는 시간들이 있는 것입니다.

루터는 또한 아내
​카타리나를 포함하여
가정의 모든 다섯 자녀들과
함께 자신이
직접 기타의 전신인
라오테를 연주하면서
하나님께 즐거운 찬송의 시간을
수시로 가졌던 것으로 전해진다.

루터의 찬송으로
오늘 날 우리가
 즐거이 부르는
“내 주는 강한 성이요”
(384장)를
기억하게 되는데,
가사를 음미할 때 참으로
핍박과 시련으로 위기 가운데
불렀던 찬송임을 실감하게 된다.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되시니
큰 환난에서 우리를
구하여 내시리로다.

옛 원수 마귀는
이 때도 힘을 써 모략과
권세로 무기를 삼으니
천하에 누가 당하랴.

내 힘만 의지할 때는
패할 수밖에 없도다.
힘있는 장수 나와서
날 대신하여 싸우네.
이 장수 누군가
주 예수 그리스도
만군의 주로다.
당할 자 누구랴.
반드시 이기리로다. ”

과연 루터에게 있어서
찬송은 하나님의 도우심과
임재를 실감하는 능력 있는
또 다른 기도였음을
우리는 확인하게 된다

1542년 큰 딸
마그달레나가 14살의
다 큰 나이로
죽어가고 있을 때
아버지 루터가 최후의 순간에
그녀에게 들려준 가슴
찡한 위로의 메시지입니다.

“사랑하는 딸아,
천국에 너의 또
다른 아버지가 계시단다.
거기로 네가 옮겨가는 거란다.”

이 말은 루터는
이 마그달레나를 잃었을 때
얼마나 가슴 아파했는지 모른다.
또한 그 딸의 묘비에 루터는 친히,
“여기에 루터 목사의
사랑스런 딸이 모든 성도들과
함께 안식 가운데 잠들다.

나는 죄 가운데 태어나서
마땅히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었으나,
그리스도 보혈의 공로로 영원한
생명과 기업을 얻었노라”고
기록하였다.

믿음의 아내의 담대한 용기가
종교개혁의 시발점이 되었고
루터가족이 부르는 찬송은
온우주를 울려퍼지는 승리의
함성이되었습니다.

지금 비록 힘들고
어려운 환경속에서
절망하고 계신다면
일어나십시요.
하나님은 돌아가시지
않으셨습니다.
내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되시니
큰 환난에서 우리를
구하여 내실줄 믿습니다.

우리의 장수되신
예수님이 대신 싸워
주실줄 믿습니다.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여호수아 1:9)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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