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 리더 :: '풍경이 있는 묵상' 카테고리의 글 목록 (10 Page)

어느 날 나다니엘 호오돈이
 비참한 얼굴로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의 아내에게,
자신의 인생이 완전히 실패했으며
다니던 직장인 세관에서
해고당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때 그의 아내 소피아는
 오히려 기쁨의 환성을 질러
그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습니다.

 아내 소피아는 
“이제 당신은 드디어 문학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라며
격려해 주었습니다.

호오돈은 고개를 저으며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렇긴 해,
하지만 내가 글을 쓰는 동안
 우린 뭘 먹고 살지?”
그 말에 소피아는 서랍을 열고
상당한 액수의 돈을 꺼내
놓았습니다.

 호오돈이 놀라서 물었습니다.

“도대체 이 많은
돈이 어디서 났지?”
소피아가 대답했습니다.
“난 당신이 천재적인 작가라는
 사실을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언젠가는 당신이 명작을
남기리라는 걸요.

그래서 매주일 당신이
가져다주는
생활비에서 조금씩 떼어
놓았어요.

이 돈이면 우리가 앞으로
 1년은 생활할 수 있어요.

” 나다니엘 호오돈,

그는 아내의 칭찬과
격려에 힘입어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미국 문학의
대명사 격인
“주홍글씨”를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히브리서 10:24,25)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현대 선교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윌리엄 캐리
(1761-1834)는
 어느날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성경 말씀을
 묵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마음 속에서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음성이 들려왔다.

그는 물었다.
"주님, 저 말입니까?
그래, 너 말이다.
너 말고 지금 여기에 누가 있느냐?
주님, 여기 제가 있습니다.
제가 가서 복음을 전하겠습니다."
그는 즉시 순종했다.

제화공으로 생활하고
있었던 그는 그때부터
가죽 위에 그린 세계 지도를
구두방에 걸어놓고
외국어를 공부하였다.

특히 그는
 "쿡 선장의 항해기"를
 열심히 읽었다.

주위 사람들은 이런
그를 망상가로 혹은
 바보취급했다.

하지만 그는 먼 인도로 가서
인도의 4대 언어로
성경 전체를 번역했고
성경을 32개국의 언어로
번역하도록 했으며
100여개의 기독교 학교를
설립하도록 도왔다.

그는 생전에 유명한
말을 남겼는데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일을 기대하라.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을 하라".

 이는 이사야 53:2-3을
본문으로 하여
해외 선교의 중요성에 관해
 설교할 때 했던 말로
지금까지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도전과 용기를 주어왔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시 43:5)”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49회 발명의 날’  
옥조근정훈장 받으시고
농촌 진흥청에
근무하는
한귀정 박사님이
있습니다.

이 분이
말씀 묵상을 하다가
세계 최초로 굳지
않는 떡을 개발했는데요.

우리나라에 남아도는
쌀이 1년에
70만 톤 입니다.

70만 톤.
1년에 음식물
쓰레기가요,
2조랍니다.

 우리나라가
옛날부터
떡을 잘 먹었는데
떡이 대중화되지
못하는 이유는
오래두고 먹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굳지 않는 떡을
이 박사님이
기도하는 가운데
만들었는데 

화학물질 이런 것을
처리하지 않고,
어떤 첨가물도 넣지 않고,
쫄깃쫄깃한 떡을 만들어서
오랫동안 보관하게 되고
또 냉장고 에 넣었다가

그 다음 꺼내서
냉동했다 해동하면
언제나
처음의 그 모습으로
돌아가게 되는
그러한 떡을 만들어서
세계에 특허를 냈는데요.

이 기술이
1조3천억의
경제적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실험을
1,600번을 했어요.
그런데
다들 다 안 된다고,
불가능하다고 그러는데
 말씀만 읽으면
주님이
은혜를 주시는 거예요.

고백합니다.

“모두들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햅쌀로 만든 떡을
굳지 않게 하는 방법이
없다는 것은
학술적으로도
공인된 사실이었거든요.

그런데
성경의 ‘떡’에
관한 말씀을 묵상하고
마음속으로 기도하면서
‘굳지 않는 떡’을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결국 1,600번
실험 후에
만들어냈습니다.
농업
연구대상도 받았고요,

다른 직장에서
많은 돈을 주고
오라고 하는데
내가 이 기술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내가 돈을 받고
이 기술을 팔기
원치 않습니다.

이런 고백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 인생에 허락하신
특별한 선물을
사사롭게 사용해서는
안 될 것 같아

이 기술로 갖는
모든 수익금은
사회에
환원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기념하는 성찬식에도
이 ‘굳지 않는 떡’이
사용되었으면 좋겠어요.

이 연구결과가
영원한
생명의 떡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데
작은 보탬이
되기를 바랍니다.”
 
요한복음14장6절을
좋아한다는
이분의 고백입니다.

.“무슨 일을 하던지
간에 옳은 길이고
진리에
접근하는 방법이면
하나님께서
이뤄주실 줄 믿어요.

하나님께 기도하며
한걸음 한걸음 나가면
하나님께서 또
모두에게 필요한
좋은 기술을 개발하게
해주실 것을 믿습니다”

​많은 사람이 부정적으로
말하고 학술적으로도
할수없다고 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나갈때

불가능을 가능케하시고
할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는 고백이
이루어진것 감사하네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살기 보다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가치 있는 삶이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소중한
인생이 될줄 믿습니다.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한국 대표적
인기가수로 활동하다
크리스천이 된 후
30여년을 복음 사역에만
매진하는 윤복희 권사가
윤복희 권사님.

여섯 살때부터
무대인생을 시작했는데요.

 아버지는 정부의 정책과
반대되는 공연을 하다가
결국 방해공작으로
빚쟁이로 전락했다.

그리고
손대기 시작한
마약으로 인해 결국
죽음의 길을 가셨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빚을 갚기 위해
유랑극단을 따라나섰다가
심장마비로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하셨다.

 돈과 이름을 함께
얻게 되었을 때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세상에 없었답니다.
 

특히 대표곡인
 여러분은
주님이 직접 말씀으로
주신 것이라는데요.

1978년도에 과로로
 열병이 나고
마침 옆에
하용조목사님이 입원하고
 계셔서

평신도인 저에게
기도해달라고 했고

병원에서 기도하다가
영어로 주신 것인데
이것이
여러분이라는
곡입니다.

하용조목사님께서
계속적인
성경공부를 하실때
자주 쓰시던 여러분을
붙여서 만들었다는데요.

직접 고백합니다.

"내가 지팡이이니까
나만 잡고 따라와라
그 사랑이 필요한데
그게 바로 나다
나를 보라"

MBC에서 국제 가요제를
하니까 곡을 발표하라고
해서 냈답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외롭니
내가 널 위로해 줄께

내가 왜 하나밖에 없는
아들 보내사 십자가에
못박히게 한줄 아니
바로 너희들을 위해서"

여러분 (LYRICS)
가사입니다.

“네가 만약 괴로우때면
내가 위로해줄께
네가 만약 음음으므음
서러울대면 내가 눈물이 되리

어두운 밤 험한 길 걸을때
내가내가내가
너의 등불이 되리
허전하고 쓸슬할때
내가 너의 벗 되리라

        나는 너의 영원한 형제야
나는 너의 친구야 오오
나는 너의 영원한 노래여
나는 나는 나는 너의 기쁨이야

네가 만약 외로울 때면
내가 친구가 될께
네가 만약 음으므음
기쁠때면
내가 웃음이 되리
어두운 밤 험한 길 걸을 때
내가 내가 내가 너의
등불이 되리

        허전하고 쓸쓸할때
내가 너의 벗 되리라
나는 너의 영원한 형제야
나는 너의 친구야 오오
나는 너의 영원한 노래여
나는 나는 나는 너의 기쁨이야
만약 내가 외로울때
누가 나를 위해주지 여러분.”
         
미국에서 한국에
오게된것도
윤향기오빠를
전도하기 위해서
나오게 되었는데
오빠는 신문에
동생이 미쳤다고
하기도 했답니다

그래서
오빠이름으로
여러분을 낸것이지요.

지금은 오빠가
목사가 되어
쓰임받고 계시지요.

한번은 
임재범가수가
전화를 하여서
선생님을 만난
 주님 만나고 싶습니다.

그때 임재범씨는 부인이
암 투병으로 힘든시기였는데
윤복희권사의 전도로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계기가
나가수때 임재범씨가
여러분을 불렀는데요.

특별히 임재범씨가
이곡을 선택한 이유가
이런 인연이지
않았을까요?
 

 
온전히 예수앞에
 돌아오게된
계기가 있었는데요.

전주에서 다시 대구로
공연을 하기 위해서
내려갔는데

그 때가
1976년 2월 26일
막 시간을 아껴서
공연을 해야하는데

120킬로로 막 달려가는데
갑자기 급하게
브레이크 잡는 소리가 나면서
막 차가 도는데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 ‘야,
내가 죽는구나’ 하는 순간
주님의 음성이 들렸어요.

“놀라지 마라.
이건 사고가 아니다.
나니 안심하라.”
주님의 음성이 들렸어요.

그 순간, “아
성령님이 내게 임하셨구나.
그 때 저는 분명히
성령님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날 공연에서
어메이징 그레이스
나같은 죄인살리신
주은혜 놀라워...
반주도 없이 조명도 없이
부르게 되었고

청중으로 가득찬
대구극장에 모여든
관객들이 열광을
했답니다.

공연뒤 호텔에서
잠을 청하는데
잠은 오지 않았고
다음날
새마을호 기차를 타는데

왜 나는 나 밖에
몰랐을까?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고
자신의 인생이
필름처럼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주위 사람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엉엉 울었다.

마음 한 구석에서
(성령님이) 곽규석 아저씨
(나중에 목사님이 되셨고,
지금은 천국에 계신다)에게
전화를 걸라고 부추겼다.

이유는 잘 몰랐다.
'아침에 걸지 뭐' 그렇게
생각하고 잠을 청했다.
그분은 내게 처음으로
성경책을 선물하신 분이다.

아침에 벨이 울렸다.
곽규석 아저씨라는
생각이 직감적으로 들었다.
"나야." 역시
곽규석 아저씨였다.
 
"서대문 노라노
예식장 건너편에
아시아 연합신학
대학교가 있거든,
응, 한 시에 소개해
줄 사람이 있어."
 
한 시에 나오라는
전화를 받았지만
더 기다릴 수 없었다.
참을 수가 없어
그냥 주섬주섬
옷을 입고 나갔다.

한 시 약속이었는데
내가
도착한 시간은
열한 시였다.
그냥 털썩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목에 찼다.
약속 시간에
곽규석 씨가
젊은 청년이랑 왔다.
그분은 하용조 전도사였다.

대중 문화를
구원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연예인 성경공부를
시작하려던
참이었다고 했다.
 
"잘 왔어."
"기다렸어요."
일행은 조그마한 예배실이
있는 이층으로 올라갔다.
빛이 환하게 드는 방이었다.

하 전도사는 내게
성경책을 주면서
사도행전을 읽으라고 했다.
그냥 읽는데 눈물이 났다.

어떻게 하나님은
2천년 전에
나 같은 것을 위해
이런 글을 써놓으셨는가?
나를 위한 이야기가
거기에 쓰여 있었다.

마구 울었다.
평생 처음으로
내 입으로 부르는
찬송가가 울려 퍼졌다.

비로소 뜨거운 무언가가
내 속에서 꿈틀거리면서
나를 일깨웠다.
놀라운 일을 알게 되었다.

 
90년도에 피터팬
무대에서 공연하다가
군함대가
부서진 일이 있었다.

배에서
무대 바닥으로
뛰어내렸다가
척추 두 개가 다쳤다.
너무나 아팠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했다.
 
"돈, 명예에 몰두했다면
나를 데려가 주시고
아버지를 위해
노력했다고 보이시면,

나사로도 살리신
하나님께서 들어간
뼈를 하나 빼는 데
뭐가 힘드세요.
고쳐주세요."
 
나는 4년 동안
오른쪽 손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주로 왼손을 사용했다.

그런데 그날
사고로 주저앉아 있다가
목이 너무 말라
오른손으로 주전자를 잡았다.

순간 나는 놀랐다.
그러는 사이에 내
몸 오른쪽 안에서
신경이 살아나는
일이 일어났다.
 
몸 안이 밤송이가
찌르는 것처럼
따끔거렸다.
몸 안에 신경이
가렵기 시작하자
어쩔 줄 몰랐다.

손이 닿는 피부라면
긁기라도 하는데
살 속 신경들이 요동을 치니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내 몸이 깨끗이 나았다.

참 어릴때 부터
힘든 인생을 살았지만
하나님은 윤복희권사님을
통해서 쓰실려고
준비하신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어떤
고난과 어려움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놀랍게
만들어서 쓰실려고
이벤트를 준비하고
계신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염려하지 마세요.
지금부터
하나님이 하신일을
발견하고 체험하는
예수님의 증인된
인생되시기를
축원합니다.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하나님이 아닌 누군가가
자신을 완전하게 채워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이 우상숭배이다.

그것은 쓸데없는 짓이다.

왜냐하면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를 완전하게
채워줄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당신의 신으로 삼고
관계를 맺을 때,
그 관계는 결국 당신의 마음에
실망과 쓰라림이라는
깊은 흠집을 남길 것이다.

누군가가 당신의 신이 되어
당신을 완전히
채워줄 것이라고 기대할 때,
그 누군가는 분명
당신을 실망시킬 것이다. 

로맨스의 신은
다른 모든 우상들과
마찬가지로
확 끌리는 것들을 약속하지만
결국 고통스러운 손실만 가져다준다. 

새로운 사랑이 일으키는
급격한 아드레날린 분출은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 
그것은 지나간다.

신혼여행은 금새 끝난다. 

진실은 무엇인가?

당신과 내가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줄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깊고 풍성한 사랑을 위해
지어졌다는 것이다. 

당신이
결혼하지 않은 사람이면,
하나님께 드릴 시간과
헌신을 더 많이 가질 수 있다.

오해는 하지 말라.
결혼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결혼은 좋은 것이다.

하나님은 결혼에
반대하지 않으신다.

사실 우리를 위해
결혼이라는 제도를
만드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제아무리 환상적으로 사랑한다 해도,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대신할 수 있는
대체물이 될 수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우리 마음에
있는 텅 빈 공간은
하나님에게 딱 맞게
맞추어져 있는 것이지
우리의 '짝'에게 딱 맞게
맞추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다른 무엇이나
누구보다 하나님을
더 깊이 사랑해야 한다.

마땅히 하나님을 사랑할 때
비로소 다른 사람들이나
다른 것들을 사랑하기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출처:카일아이들먼의
"거짓신들의 전쟁"중에서
[규장출판사]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오래 전 영국에서는
"국가의 허락을 받지 않고
설교하는 자는 모조건
처벌을 받는다" 라며
신앙을 제한한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젊은 이가
 이 법을 어겨
12년 동안 감옥에서
지내야 했습니다.

그 긴 세월 동안에 앞을
보지 못하는 그의 아내는
거지처럼 구걸하다가 죽었고,
  그의 세 자녀들은 졸지에
고아가 되어
생계를 스스로 책암져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나는 가끔씩 밧줄을 목에
두른 채
사다리 위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것은 1660년대를
싸늘한 감방에 앉아
 보내던 존 번연이 자신이
 교수형으로 죽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그 기억을 후에
다시 떠올리며 했던 말입니다

이러한 비참한 상황 속에서도
그 젊은 이는 감옥에서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전 너무나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제가 주를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요?
만약 제가 하나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있다면
저는 절망하지 않겠습니다."

이때 주님께서 그의
마음에 감동을 주셨습니다.

"너는 글을 쓰거라.
나는 너에게 글을
쓸 수 있는 달란트를 주었노라."

주 앞에 엎드리어 기도하는
그 젊은 이에게 이런 환상이
보였습니다.

주님의 나라를 향하여
 걸어사는 한 사람의
모습이 보였던 것입니다.

이 젊은 이가 바로
그 유명한 존 번연
(John Bunyan)이며
그가 쓴 책이 바로 "천로역정"
이라는 책입니다.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광풍을
평정히 하사 물결로 잔잔케 하시도다"
(시107:28-29)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한 소년이 밤새 진땀을 흘리며
끙끙 앓고 있는 말을 보면서
어쩔 줄 몰라 동동거렸습니다.

마침 집에는 어른들이
아무도 계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소년이 말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곤
시원한 물을 먹이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소년의 간호에도 불구하고 말은
 나아지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음날 아침 할아버지가 돌아왔을 때
말은 이미 기운을 거의 잃은 상태였습니다.

소년에게서 말의 상태를 들은
 할아버지는 깜짝 놀랐습니다.
‘말이 아플 때 찬물을 먹인다는 것이
얼마나 치명적인 일인가를 몰랐단 말이냐?’
소년은 기운 없이 대답했습니다.
‘네, 정말 그러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제가 얼마나 말을 사랑하는데요.’

그러자 할아버지는
 오랫동안 말문을 열지 않다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얘야,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어떻게 사랑하는지를 아는 것이란다.’

지금 내가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방법으로 사랑을 주고 있습니까?
내가 좋은 방법으로
사랑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오히려
 내 사랑이 그 사람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이제 내 방식이 아니라,
그 사람 방식으로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깊은 관심이 필요할 것입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요한복음 13장 34-35절)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한국 방송 사상
최초로 시각장애인으로서
앵커가 된
이창훈 씨가 있습니다.

현재는 KBS에서
퇴사해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계시는데요.

지금은 ‘좋은 이웃
엔터테인먼트’라는
소속사에 들어가 있다.

현재는 KBS 2TV에서
매주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방송되는
 ‘사랑의 가족’ 중 
‘이창훈의 마주보기’라는
코너를 맡고 있다.

 KBS 라디오에서는
 ‘한 주간의 장애인 소식’을
전달하는 역할을
열심히 하는 중이다.

 그리고
한국정책방송에서
 ‘이창훈의 포피 초대석’을
진행하고 있다.

이분은 태어난지
7개월만에
뇌수막염으로
시신경이 손상되어
1급 시각장애인이
되었습니다.

형체는 물론 빛과
어두움도
구별할 수 없었습니다.

당시 예수님을
몰랐던 어머님은
 생업을 포기하고
 어린 아들의 눈을
고치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했다.

아들의 눈을 뜨게
하리라는 일념으로
전국  병원은
물론이고 굿판,
여호와의 증인,
지리산 도사 등
다양한 종교 단체를
섭렵하며 어린
아들을 끌고 다녔다.

그러나 아무런
효과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내 아들
눈만 뜰 수 있다면
하여간 용하다는
도사들을 다 만났는데

어느 날 그
도사라는 사람이
“이번에도 차도가
없으면 교회 나가세요”
그러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교회 나와서 아들의
눈을 고쳐달라고
눈물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
어머니가 은혜를 받았어요.

그동안에 아들이
눈이 멀게 돼서
앞을 보지 못하게 돼서
늘 세상을 원망불평하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고 그랬는데
원망, 불평하는 것이
하나님 뜻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다
맡기게 되었습니다.

 “아들을 주님,
내 아들을
주님께 맡깁니다.”
어머니가 은혜받으니까
그 아들도 은혜를
받게 되었어요.

어머님의
눈물의 기도가
자녀의 운명을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어머니가 이상여
집사님이신데요,

그 아들이 믿음
안에서 잘 자라가지고
이 아들 이창훈씨가
523대 1의 경쟁을 뚫고
한국방송사상 최초의
지상파 앵커가 되었구요.

교회에서는
청년부 회장과
교회학교 교사,
그리고
피아노 반주까지 하면서
주님을
섬기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보이지 않는 삶이
오히려
감사하다고 합니다.

이렇게 간증을 합니다.

“제가 앞을
볼 수 없었기에
부모님께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어요.

또 제가
앞을 볼 수 없었기에
홀로 서울에 와서
공부하며 독립심을
키울 수 있었어요.”

그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영적인 눈이 뜨여져서
날마다 감사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어머니는
지금도 매일같이
눈물로 새벽에 나와
이 아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다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잠시 고난이 우리를
힘들게하고
낙심케 할수는 있지만

문제속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계획과
축복을 막을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자신의
독생자를 죽기까지
내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젠 우리들이
할일은 하나님의
자녀의 자격과
유업을 당당하게
누리시고
예수의 증인되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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