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 리더 :: '풍경이 있는 묵상' 카테고리의 글 목록 (16 Page)

철강 왕 카네기(A. Carnegie)의
사무실에는 볼품이 없는
그림이 걸려 있었다고 합니다.

모래사장에 나룻배가 있고
그 배 안에 노 하나가
아무렇게나
뒹굴어져 있는 그림입니다.

바닷물은 썰물이어서
물이 다 빠져버리고,
배 주위에는 
온갖 쓰레기와 함께
모래사장에 방치된 그림입니다.

카네기는 이 그림을
아주 귀중한 보물처럼
아꼈다고 합니다.

이 그림은 춥고 배고팠던
청년 시절에 우연히
사들인 그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림 속의
나룻배 밑에 이런 글씨가
적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밀물이 밀려오리라.
그 날 나는 바다로 나아가리라."

카네기는 그림의 배가
초라한 자신으로 생각되었으나 
언젠가 밀물이 왔을 때
반드시 바다로
나갈 것을 믿었습니다.

물이 밀려 올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쓸모 없는 배가 아니라 
물이 들어 올 때를
대비하는 배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들은
어쩌면 말하기 어려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지도 모른다.

    남모르는 고통 속에서
홀로 그 고통을 감내하면서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도 모름니다.

말 그대로
 썰물의 시간이다.
 그러나 이제
곧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기도를
 들 어주시고
밀물의 시간으로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바른 믿음으로 살아갈 때,
우리의 인생에는
 반드시 밀물 때는 온다.

그 날에는 멈춰있던 인생,
고통 중에 있던 인생들이
하나님의 은 혜 안에서
회복함을 얻게 될 것입니다.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시편 40:1)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풍랑의 순간에 우리는
“왜?”라고 하는 대신에
“무엇?”이라고 질문해야 한다.


“주님, 제가 이 풍랑에서
무엇을 배우길 원하십니까?

이 상황을 어떻게
사용하고자 하십니까?”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질문하는 대신에
따지고 의심하고 탈출구를 찾는다.

어떤 시련을 겪든지
빠져나갈 계책을 모색하려고
고심하지 말라.

당신의 시련에는
하나님의 목적이 있다.

그분은 귀하게 사랑하시는
이들의 삶에 시련을 허락하신다.

그러니 명심하라.

당신의 인생에서
어떤 시련과 풍랑을 겪을지라도
당신을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로
내모는 모든 것은 기꺼이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하나님은 당신이
추측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것을 우리에게 주신다.

그것은 고통을 끝까지 견디는 믿음이다.

인생의 풍랑을 지날 때
길 잃은 영혼들이 구원을 받고
소망 없는 자들이
돌연 확신의 소망을 발견한다.

그들은 인생의 풍랑을 통해
믿음을 얻게 되고,
시야가 맑아지고, 빠르게 치유된다.



우리에게 가장 어두운 시간이
하나님의 능력이
가장 강하게 나타나는 때다.

우리는
오직 믿음을 통해서만
불행에 대처할 수 있고,
그분을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믿음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믿기를 중단하는 믿음이 아니다.

신속하게 응답이 오지 않고,
상황은 더 악화되더라도
믿기를 중단하지 않는 믿음이다.

참된 믿음을 가진 사람은
정신을 잃게 할 정도로
흉포하게 인생의 풍랑이
몰아칠 때를 대비하여
하나님께서 이미 건짐과
회복의 역사를 준비하셨다고
굳게 믿는다.

아무런 해결책이 없고
모든 인간적인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때
하나님의 가장 큰 이적이 찾아올 것이다.

그리고 오직 그분의 이적만이
거친 풍랑을 잔잔하게 가라앉힐 것이다.

믿음은 시험과 시련을 받는다.

인생의 풍랑이 격노하고
우리의 모든 것을 앗아갈 때
우리는 믿음의 여정을
포기하고 싶어진다.

"아침마다 권징하시며
순간마다 단련하시나이까"
(욥 7:18)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렘 17:10)

심지어 삶을
가장 극단적인 방식으로 끝내달라고
하나님께 청할지도 모른다.

"어찌하여 주께서 종을 괴롭게 하시나이까
어찌하여 내게 주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게 아니하시고 …
주께서 내게 이같이 행하실진대 구하옵나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내가 고난당함을 내가 보지 않게 하옵소서"
(민 11:11,15)

믿음의
발걸음을 떼기도 전에
 인생의 맹렬한 풍랑에
너무나도 쉽게 압도되어
배에서 물을 퍼내지도 못하고
포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여호와의 손이 짧으냐
네가 이제 내 말이
네게 응하는 여부를 보리라"
(민 11:23)

설교의 황태자라 불리는
찰스 스펄전(Charles Spurgeon)은
말했다.

“광야는
약속의 땅에 이르는 길이다.
패배는 승리를 준비시켜준다.
가장 어두운 밤이 지나야 동이 튼다.”

끝까지 견디는 믿음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아내려는 노력이 없다면
우리는 완벽한 어둠에
빠질 수밖에 없다.

끝까지 견디는 믿음은
우리의 모든 암흑을
광명으로 바꿔줄 것이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야고보서 1장 12절]

출처:체리힐의
"흔들리지마"중에서
[규장출판사] 
-갓포스팅-

'풍경이 있는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나님의 명령이라면   (0) 2019.06.12
내가 여호와를 기다렸더니  (0) 2019.06.12
소풍과 같은 삶  (0) 2019.06.11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라.​  (0) 2019.06.11
놓치지 않으시는 주님  (0) 2019.06.11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젊은 선교사님이
아프리카
말리에서
순교를 하셨습니다.

 권지상 선교사님.
목사님 가정에서
태어나서
어릴 때부터
선교사가 되기를
소원해서
한양대 영문과를 나오고

총신대를 졸업한 후에
그 불어권인
서아프리카 쪽
선교를 위해서
프랑스 어학연수까지
다녀왔습니다.

아프리카는
동쪽으로는
영어권이고
서쪽은 불어권인데요.

아프리카 말리는 오랜
종족갈등으로 내전이 일어나자
여행 금지구역으로 된 것인데

그곳의 ‘보조족’이라는
곳을 가서 섬겼는데
소수민족으로 부족 99퍼센트가
무슬림이고 가보니까
기독교인이 두 명밖에 없었습니다.

이 부족을 섬기기 위해
2010년부터
아내와 함께 들어가서
정말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선교 사역을 하다가

지난 6월 차가
전복되는 사고로
서른다섯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선교사로 간지
4년 만에 그의 삶을 마칩니다.

그런데
그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그러한 위험을 가지고
선교하고 있기 때문에
미리 유서를 써놓으셨어요.
유서가 공개됐는데요,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제가 선교지에서
만약 순교하게 된다면,
개인적으로 무척
영광스러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먼저 저를 아끼는
많은 분이
저의 죽음으로 인해
인간적으로는 잠시 같이
있지 못해 슬프지만,
천국에서 큰 상급을 받고
있을 저를 생각하면서
기쁨으로 장례해주셨으면 합니다.

저는
각막과 장기 기증을
해 놓은 상태입니다.
선교지에서 가능하다면
선교지 사람들을 위해
시신이 쓰여졌으면 좋겠고,
가능하지 않다면
화장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자녀들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이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살 때
가장 가치 있는 일’은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는 것’과
‘그 하나님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입니다.

사랑하고 축복하며
 ‘소풍과 같은 삶’을
잘 마무리하여
‘천국’에서 뵙길 기대합니다.”

우리가 어릴 때 소풍간다고
 하면 들떠서 나가지요.
우리가 이 세상 사는데
이렇게 좀 소풍 같은 삶을
들떠서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되면
모든 것 다 놓고
주님 앞에 서게 되는데
그때에 부끄러움 없이
우리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도 바울은 모든 사람들이
가지 말라고 막았을 때에
울면서 막았을 때에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바울이 대답하되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사도행전21장:13절)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영국 소년 앳킨슨은 둔해 보이는
생김새에 말투와 행동도
어눌하기 그지없었다.

그의 식구들은 그가 분명히
 지능이 낮거나
 바보일 것이라고 생각했고,
 학교 선생님들은 짓궂은
 장난으로 수업 분위기를 흐리는
그를 처치 곤란한 골칫거리로
보았다.

잘난 구석이 하나도 없고
앞날이라고는
더더욱 기대할 수 없는 애물단지,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앳킨슨이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탁월한 재능이 한 가지 있었다.
바로 코미디 연기였다.

연기를 어찌나 천연덕스럽게
 잘하는지
그가 마음만 먹으면 친구, 선생님,
가족 그 누가 되었든 기어코
웃기고 말았다.

자신의 재능을 깨달은 앳킨슨은
그것을 더 갈고닦기로 결심했다.
그는 틈날 때마다 재미있는
 표정을 연습했고,
온갖 코미디 연기를 섭렵했다.

그렇게 갈고닦은 그의 연기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웃음을 주었고 딱딱하고
 지루하기만 했던
 교실에 즐거움과 활력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처음에는 그를
멀리하던 사람들도
어느새 그를 좋아하기 시작했으며
그와 친구가 되기를 원했다.

그가 바로 오늘날 영국의 대표적
코미디언 배우 로완 앳킨슨이다.

이처럼 모든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자기만의
장점과 재능이 있습니다.
그것을 갈고 닦으면 부유하고
행복한 인생이 될 것입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마25:16).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보스턴의 해안인 뉴포트지역으로
피서를 떠난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해변은 피서를 온
 사람들로 매우 북적거려서
 바로 앞의 일행을
찾기가 힘들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
속에서도 사고가 일어나면
안전요원들이 재빠르게
 바다로
들어가 인명을
구출했습니다. 

목사님은 어떻게
안전요원들이
재빨리 대처를 하는지
궁금해 물었습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어떻게 어디서
사고가 났는지 그렇게
빨리 알 수가 있습니까?

“소리를 들으면 됩니다.

사람이 아무리 많고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도
위험에 처한 사람이 간절히 외치는 소리는
 반드시 들리기 마련입니다.”

안전요원의 대답을 들은
목사님은 깊은 깨달음을
얻었고,
휴가가 끝난 뒤 교회로
돌아가 성도들에게
 다음과 같은 설교를
했습니다.

“저는 안전요원의
대답을 듣고 분명히
알았습니다.

간절하게 드리는
모든 기도를 하나님은
절대 놓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응답이 더디 된다 해도 주님께서
우리를 외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믿음이 있는 성도들은
 감사함과
찬양함으로 응답을
기다립니다. 

주님은 나의 기도를
놓치지 않으십니다.

감사와 찬양으로
기다림의 공백을
채우십시오.

반드시 창대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 응답하시는
주님께
믿음으로 간구하게
하소서!

들으시는 주님이
응답해 주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기도하십시오.

[막 1:40] 한 나병환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출처:큐티355일 김장환목사님)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톰 모너건(Tom Monaghan)은
어린 시절을 불우하게 보냈다.

아버지는 톰이
4살이 되었을 때 사망했다.
톰이 6살이 되었을 때에는
톰과 어린 동생 제임스는
가톨릭 교회가 운영하는
고아원으로 보내졌다. 

이 고아원이 미국 미시간
주의 성 요셉보육원이다. 

이곳에서 톰 머너건은
 아주 포악하였다. 
걸핏하면 친구들과 싸웠고, 
학교에서 퇴학까지 당했다.

입양도 실패했다.
이 고아 소년은 웃음과
눈물을 모두 잃어버렸다. 

모두가 이
아이를 기피했지만
한 수녀만은
그를 보듬어 주었다.

어느 날,
베레다 수녀가
그를 꼭 껴안으며
이렇게 속삭였다.

“하나님은 너를 놓지 않는다 .
너를 사랑한다.
힘들 때는 울며 기도하라.”

소년은 이 말에
큰 감동을 받았다
이렇게
어린시절을 힘들게
보낸 그는 군대생활을
해병대에서 마쳤다.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학업을 이어가기 위해
시카고 대학에 입학하였지만
 학업 보다도 생활이 더 급했다.

그래서 톰은
어렵게 마련한
500달러의 창업자금으로
가족의 생계를 위해
미시간주 입실랜티에서
작은 피자가게를 냈다.

1960년 톰이 23세가
되는 해의 일이었다. 

그는 피자 만드는
일에 몰입하였고,
급기야 피자 한 판을
11초에 반죽하는
최고 기술자가 됐다.

그는 '도미닉스
(DomiNic's)'라는
이름의 피자가게를 열었다.

손님이 앉을 좌석도
없는 비좁고
초라한 가게였다.

하지만 수많은
역경에 굴하지 않고,
 이를 시작으로 
전세계 60여개국에
9,000개 이상의 점포를
운영하고 있는
세계최대
피자배달회사를 세워갔다. 



서양에서는 결혼하는
딸에게 어머니가
 ‘얼어붙은 눈물
(frozen tears)’이라고
부르는 진주를 선물한다.

딸이 결혼 후
흘릴 눈물을
상징하는 선물이다.

왜 하필 진주인가. 

진주는
 ‘아비큘리데’라는
 굴의 몸에 들어온
모래알이 변해
생성된 보석이다.

몸에 모래알이
들어오면
굴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나카’라는 특수한
물질을 생성해
살갗에 파고든
모래알을 끊임없이
감싸거나,
아예 모래알을
무시해버려야 한다.

나카가 모래알을 감싸면
엄청난 고통이 따른다.

그러나 고통의 분량만큼
진주는 점점 커진다.

모래알을 무시하면 통증은
없지만 살이 곪아서
곧 죽게 된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삶의 모래알을 만날 때
기도로
맞서 눈물의 진주를
만드는 사람이 있고,
이리저리 피해 다니다가
파멸하는 사람이 있다.

역경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인생이 확연하게 달라진다.

우리인생에
아픔과 슬픔을 가지고
진주같은 보석이
나오도록 가슴에
품고 기도하시면
됩니다.

고아원 아이들은
울지 않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누가와도
안아줄 사람이
없으니까요.

 우린 영적고아가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니까요.

아버지 앞에 울고
매달리셔도 됩니다.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약국에
한 사내가 들어와서
말했답니다.

"딸꾹질 멎게 하는
​ 약 주세요."

약사는
"예! 잠시만요."
하면서 약을 찾는 척하더니
갑자기 사내의 빰을 있는
힘껏 갈겼답니다.

그리곤 히죽거리며
말했답니다.

"어때요? 멎었죠?​ 
딸꾹질은 놀라게 하면
멎거든요."

그러자 사나이는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약사를 한참 바라보더니
.
.
.
.
"나 말고 우리 마누라가
 딸꾹질을 한단 말이야."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오늘 시편에서 다윗은
말할 수 없이 절망에 빠져 있음을 봅니다.

그는 너무 절망하여
정신적으로도 완전히 무너졌고
신체적으로도 병이 들어 쇠약해졌습니다. 

다윗이 이처럼 절망한 이유는
하나님마저 자신을 버리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 시는 다윗의 일곱 개
회개의 시 가운데 하나로
알려진 시입니다.

 다윗은 이 시에서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지는 않으나
자신의 죄로 하나님의 진노를
샀다는 것을 시인합니다.

"여호와여 주의 분노로
나를 책망하지 마시오며
주의 진노로 나를 징계하지 마옵소서"
(시 6:1)

하나님의 진노를 경험하면
영원히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는 절망을 경험하셨습니다.

"제 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마 27:46)

어떻게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버릴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실제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으셨던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온 인류의 죄를 짊어지셨기 때문입니다. 

죄는
하나님과 관계를 단절시킵니다.

그러니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두려운 일, 절망입니다. 

하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으로부터
얼굴을 돌리신 것입니다.

아무리 괴로워도 하나님께서
지켜보고 계신다고 믿으면
이길 수 있습니다. 견딜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얼굴을 돌리셨다,
그러면 끝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전히 나를
사랑하시는지 믿어지지 않는
순간이 올 때,
그 순간에도
‘하나님께서는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 증거로 주신 것이
두 가지 입니다.

첫째는 십자가입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요일 4:10)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님마저 버리는 절망을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다시는 그러한 저주가
임하지 않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십자가를 보실 수 있다면
어떤 절망적인 상태에 빠졌고
아무리 우리 죄가 크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나에게서
얼굴을 돌리지 않으신다.’는
확실한 증거를 가졌음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증거는
우리 안에 오신 성령 하나님입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요 14:6-7)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저 오신 것만 아닙니다.

우리와 함께 거하시고
우리 속에 계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엄청난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겠다는
확실한 약속이요 증거입니다. 

여러분, 고통에
외로움이 더해지면 절망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외롭지 않으면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받은 복음이 무엇입니까?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고후 13:5)

예수님이 우리 마음에
계시다는 것이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24시간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우리가 빛이신 예수님을
24시간 예수님을 바라보는 일은
우리 삶을 엄청나게 변화시키는 일입니다.

우리의 상황은 때때로
우리를 절망으로
몰아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절망적인
상황을 볼 것인지 아니면
변함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볼 것인지는
우리의 선택입니다.

우리는 항상 십자가와
성령님의 증거를 붙잡고
결단해야 합니다.

“내가 절망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배신이다.”
생각하며
절망을 이기고 승리하는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절망에 순간에
주님을 바라보라!

그것이 나를 살게 하는 방법이다.

주님을 바라볼때
소망이 생기며 절망에서 나올 수 있다.

절망은
주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사단에게서 온 것입니다.

​출처:유기성목사의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사람"
중에서
 [규장출판사]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