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 리더 :: '풍경이 있는 묵상' 카테고리의 글 목록 (7 Page)

바이올리니스트 정혜지 씨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음대인 줄리아드와 
더불어 뉴욕의
명문 맨해튼 음대에 합격해 
화제를 일으켰습니다.

 심지어 노스텍사스 대학과
 캠벨스빌 대학은
정 씨에게 전액 장학금까지 
제안했습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더욱 주목을
받은 것은 
정 씨의 바이올린이었습니다.

 정 씨가 이런 놀라운 성과를 
거둘 수 있게 도와준
바이올린은 낡아빠진 
고물 바이올린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어려운 가정 형편에
 좋은 악기를 구할 수 없어
 도움을 받아 장만한 것이었습니다.
 
출석교회인 부산수영로 교회의
 선배 음대생들의 도움을
 조금 받은 것을 빼면 
기본적인 레슨도 받지 못했습니다.
 
유명한 연주자들의 
동영상과 시디를 듣고
따라서 한 반복연습이 
거의 전부였습니다.

고등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검정고시를 봐야 했지만
전액 장학금을 제안한 
캠벨스빌대가 있어서
 유학을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담당 교수인 
필립 루이스는
‘미국에서 1%에 드는 영재이니
 더 좋은 곳에서 배우라’며
더 명문인 맨해튼 음대에
 추천서를 써주었습니다.
 
고물 바이올린에
 나 홀로 할 수밖에 없었던 
연습이지만
재능을 꽃피우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습니다.

시도도 해보기전에 
핑계를 대며 포기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뜻이고 진정한 비전이라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열어주시면 
불가능이란 없음을 믿으십시오.

주님! 
하나님께 불가능은 없음을
 확고히 믿게 하소서!
나를 만드신 분이
 주님임을 항상 기억 하십시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대구 동신교회에
 담임으로 계시는
 권성수 목사님이
『고통의 은총』
이라는​
 책을 쓰셨는데요.

 정말 가난한
목회자 가정에서
태어나서 너무나
너무나 힘들고
어렵게 자랐어요.

너무 가난해서
먹을 것이 없어서
어린 시절 산에
그 지개를 지고
나무하러 다녔고,

또 먹을 것이 없어서
죽으로 끼니를
연명한 것이
한 두 번이 아니고

아버지가
고향땅을 처분하고
서울에 올라와서
판자집 전세금만
남겨놓고
개척교회를 세웠어요.

그래서 판자촌에서
물지게로
물을 길러 나르고
꽁보리밥을
먹어가면서

허기진 배를
붙잡고 살았는데
결국 등록금이
없어서 고등학교도
못 다녔어요.

 그리고
신문을 돌리면서
낮에는 길거리에서
장사를 하면서
검정고시
학원을 다닙니다.

그런데
그 고난 속에서도
고난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할머니가 늘
자기들을 위해서
기도한
기도의 힘이었습니다.

새벽에 산에
올라가 기도합니다.

그리고
군대 갔다와서
신학교에 들어갑니다.

신학교에 가서도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화장품 외판원을 하고
또 서적을 판매하면서
그렇게
학교를 다녀야 됐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미국에 유학을
가게 됐어요.

 한국에 와서
총신대학교에서
교수로 기획실장까지
하다가
대구 동신교회를 갔는데

그분이
담임하고 나서
교회가 일곱배로
성장을 했어요.

그렇게
고난이 많았는데
고난 후에 큰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너무나
힘들고 어려울 때,
또 가난과
질병과 싸우면서
사모님이
아이를 낳지 못해서

오랫동안 눈물로
기도하면서
‘주님 이제 그만
도대체 언제까지 입니까’
하고
주님께 항의 하듯이
기도한 적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세월을
지내놓고 보니
결국 욥의 고백이
진리 중의 진리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욥 23:10)』

삶의 고비마다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기에,
저의 인생은
‘고통의 백화점’이
아니라 ‘은총의
백화점’입니다.

고통을
뒤집으면
주님의 은총만
보입니다.”

 여러분 고난이
고난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고난 후에
다가올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내일의 모습,
축복의 모습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놀라운 일은
하나님의 숨겨진
축복의 비밀은
고난의 보자기에
숨겨져 있어서
고난을 이겨내면
당당하게
기쁨의 면류관과
감사의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우리를
강하게
단련하셔서
예수이름을
증거하게 하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축복의 사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에스더 선교합창단
지휘자를
역임한
김병숙 권사께서 

남편되신 이동훈
선생님의 일생을
책으로 쓰시고
하나님의 부름
받아가셨는데요.

그 책 제목이
『내가 주를
사랑하나』라고
하는 책인데

이동훈 선생님은
우리 찬송가에
두 곡이나
그 분의 곡이 있어요.

 찬송가 574장
‘가슴마다 파도친다’,
582장
‘어둔 밤 마음에 잠겨’
이 분이
지은 찬송인데요,

우리 한국 
 6.25이후 초창기
교회음악 발전에
아주 크게
기여한 분입니다.

북한에서 내려와서
영락교회
초대 지휘자를 하면서
필그림 합창단을
만들어서

합창단을 데리고
전국과 세계를
순회하면서
찬양을 통해
영광 돌리는
귀한 선생님이셨어요.

그 필그림
합창단에서
나온 분들이
다 유명한 교회의
음악 지도자들이
되었습니다.

그가 필그림
합창단을 하다가
이제는
‘선교합창단을 하나
만들어야 되겠다.’

그래서
선교합창단을
만들기 위해서
이제 창단
연주회를 위해서
열심히 준비를 하고
어느 날 밤 돌아오는데
밤늦게까지
소식이 없는 거예요.

그런데 밤늦게
경찰이 집을
찾아왔어요.

“이동훈
선생님 댁입니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교통사고가 났다고
 그런 거예요.

그래서
“아, 교통사고가 났으면
많이 다쳐도 좋으니
제발 살려만
주십시오.” 하고
사고 현장에 가보니

악보를 잔뜩
가슴에 품고 있다가
버스에서 내려서 오는데
차가 그냥
난폭운전을 하다가
콱! 덮쳐서 악보가
다 흩어졌어요.

그 악보는
이제 며칠 후에
창단 연주회를
할 악보인데,
흩어져 있는 악보를
딸하고 울면서 모읍니다.

그 악보가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그래서
장례식을 하는 날이
선교합창단
 창단 공연하는 날인데,

장례식장에 와서
모든 단원들이
눈물 흘리며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때
나이가 52세예요.
그 젊은 나이에.

문제는
난폭 운전한
운전사가
치여 가지고
실고 병원으로
간 것이 아니라
멀리 도망가서
저 보문사에 내려놓고
도망가 버린 거예요.

그런데
마침 누가
차에 실고 가니까
번호를 기억해
놓은 분이
신고를 해가지고
결국 잡았는데,

글쎄 병원에
데려다주지 않고
보문사에 있는데다
버려두고 도망가
버린 거예요.

그래서 뭐 딸 둘,
아들 둘인데
다 그것 때문에
통곡을 하고,
참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셨으니.

그런데 사모님이
늘 이동훈
선생님하고 같이,
하루도 빠짐없이
늘 찬양을 하는
찬양단원으로
지휘자로 따라다니고,

옆에서
도와드렸는데
그날따라 아이들이
다음 날
시험이 있어가지고
아이들 시험
준비 하느라고
같이 안 나갔는데
그 날 사고가 난 거예요.

그 사모님이
내가 남편이 못한 일,
내가 해야 되겠다.
  37년 동안 남편의 뒤를
이어서 성가대를 지휘하고
합창단원을 이끌고 다니며
선교하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편이 한 모든 일을
책으로 정리해 놓고
93세를 일기로
주님 앞에 부름을 받습니다.

하나님이 자녀들을
축복하신겁니다.
이동훈 교수와의 사이에
2남2녀를 두었는데,

 조부와 부친의 뜻을
이어 장남 수철은
바이올린을 전공하여
주안장로교회
오케스트라를 창단,
한국교회음악협회
이사장을 역임했고,

차남 수영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후학을 가르치다
현재
새문안교회를
섬기고 있구요.

장녀 정희는
현재 미국에서
음악선교사로 활동 중이며,

차녀 정옥은
에스더 선교합창 단원이자
서울장신대학교 총장을
역임한 이용원 교수의
사모로 사역 중입니다.  


하나님을 위한
헌신은
반드시
열매를 맺는것입니다.

우리들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다가 고난과
어려움이 오면
반드시
하나님은
또 다른 선물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우리들이
할일은
다음세대에게
반드시 복음의
바톤을 전달해야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로마서 8장18절]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무엇을 집어넣는가가
무엇이 나오는가를 결정한다.
우리 영혼도 그렇다. 

자기 자신을
과대평가하면 안 된다. 
나는 아니라고 자신하지 말라. 
그 누구라도 쓰러질 수 있다. 

우리 중에 다윗보다
영성 좋고 기도 많이 하는 사람 있는가? 

다윗보다 찬양 잘하고
성령충만한 사람 있는가?

그보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은 우리 중에 없다. 

그런 다윗이 무너질 수 있다면
우리 중 누구도 안심할 수 없다.  

청소년들이
왜 그렇게 음란물에
중독되는지 연구하기 위해
음란물을 보던
청소년 사역자가 자기도 음란물에
중독되어서 혼이 난 사례가 있다. 

“죄는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했다.

나는 죄의 유혹과 싸워
이길 수 있다는 오만한
자신감을 버리라.

아예 죄의 유혹과 마주할
가능성부터 차단해버리는 것이 좋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약하다.

사실 우리는 우리의
약함을 알 때 가장 강하다.  

은혜로 구원받았다고 해서
크리스천들이 함부로
막 살아도 되는 것이 아니다. 

나 같은 죄인 구원하신
주님의 은혜를 모독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된다. 

은혜를 더럽히지
않도록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  

교회의 가장
본질적인 경쟁력은 거룩이다.

기독교의 가장 무서운 적은
외부의 핍박이 아니라 내부의 부패이다. 

교회가 아무리 크고
사람이 많아도 거룩을 잃으면
하나님의 임재가 떠나고,
기름 부으심을 잃는다.

기도가 다 막힌다.  

사탄은 거룩하지 않은
교회를 우습게 보고 짓밟는다. 

우리가 유혹에 빠지고
시험에 넘어질 때,
교회가 흔들리고 하나님의 영광이
땅에 떨어진다.

수많은 믿음의 전우들이
그렇게 쓰러져 간 것을
나는 가슴 찢는 눈물로 지켜보았다. 

이 마지막 때에 주님이
기대하시는 사람들은
거룩함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그들만이 역사의 마지막을
지키는 파수꾼이 될 것이다.  

기도가 거룩을 가져오고,
거룩이 기도에 능력을
실어줄 것이다.

우리에게
예수 십자가의 보혈이 주는 거룩이
흠뻑 임하기를 기도하자.    
 
출처:한홍목사의
<하나님이 내시는 길>
중에서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중국의 극동지방에서만 
자라는 희귀종 "모소 대나무"
그 지방의 농부들은
 여기저기 씨앗을 뿌려놓고
매일 같이 정성들여 키운다.

씨앗에서 싹이 움트고
농부들은 수년동안
 온 정성을 다하지만
모소대나무는 
4년이 지나도 불과
 3cm밖에 자라지 못한다. 

타지방 사람들은 
이 모습을 보면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젓는다.

하지만, 이 대나무는
 5년째 되는 날부터
하루에 무려 30cm가 
넘게 자라기 시작한다.

그렇게  6주 만에
 15m이상 자라게 되고, 
그 자리는 순식간에 빽빽하고 
울창한 대나무 숲이 된다. 

4년동안
 단 3cm의 성장에 불과했던 
"모소 대나무"는  5년후부터 
그야말로 폭발적인 성장을
하게되는 것이다.

6주만에
 놀라운 일이 벌어진것 같지만 
그전 4년동안  "모소대나무"는 
땅속에 수백m 에 이르는
 뿌리를 뻗치고 있었던 것이다. 

농부는 뿌리가
 살아 있음을 알기에
 계속 물을 주고 정성을 다해 
돌본답니다.

5년이라는 시간이
 흐른뒤  폭발적인 
성장으로 대나무 숲을 이룹니다. 

오늘은 평범한 날 일 수 있습니다.
무미건조한 날 일 수 있습니다. 
아니 실망스러운 날 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낙담하고,  
포기한 순간에도
희망의 뿌리는 계속 자라고
있습니다.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 
[애3:33]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미국 보스톤에서
 A.J.골든 목사가 있었다. 

어느 날 
그는 교회 사무실에서 
설교를 준비하다가 
피곤하여 깜박 잠이 
들어 꿈을 꾸게 되었다.

꿈속에서도 
주일이 되어 교회는
의자가 모자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는데 

교인들 가운데 30세 정도의
 낯선 사람에게 웬지 시선이 끌려 
예배가 끝난 다음에 그 낯선 사람을 
만나보고 싶었다.

그런데 예배를 마쳤지만 
그 낯선 사람은 보이지를 않았다. 

골든 목사는 안내위원들에게 
그 사람을 아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안내위원이 하는 말이 
“아. 그 사람이요. 알고 말구요.

그 사람은 예수라고 
하는 사람입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예수라고 하는 바람에 
깜짝 놀라 깨어보니 꿈이었다. 

그 다음부터 골든 목사님은 
회중 가운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앉아계신다고 믿고 설교를 했고 
그랬기에 더욱 
은혜로운 교회를 만들 수 있었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야훼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시 23:6)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20세기 가장 뛰어난
찬송곡으로 불려지기도 하는
찬송가 갈보리산 위에
(The Old Rugged Cross)는 

 1913년 조지
버나드 목사(1873-1958)
에 의해 작사 작곡됐다 
 
베나드 목사님은
미국 오하이오 주
영스타운(Youngstown)에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예수를 믿고
목사가 되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16세 된 해에
부친이 돌아가자
모친과 누이를
돌봐야 하기 때문에
그 꿈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결혼한 후
구세군사관교육을
받아
구세군의 한 군단
책임자로 일하다
감리교 교단의 부흥사로
영국과 캐나다 등지에서
활약하였습니다.

미시간 주와 뉴욕에서
부흥집회를 인도하여
교단에서 상당한
인정을 받았고,

부흥회를 인도해
달라는 요청도 끊이지
않았던 버나드는
열심히
부흥회를 인도하던 중,
성도 사이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흐르는 십자가의 환영을 보았다.
 
버나드는
그날 집회가 끝나고
숙소로 돌아와서
깊은 고뇌에 빠졌다.

‘주님은
왜 내게 십자가의
환영을 보여 주셨을까?

내가 그동안
바쁜 일정으로
타성에 젖은 집회를
인도하고 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어려서부터 고생하며
신학을 공부하게
하신 하나님의 계획도
다시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이
십자가와 부활의 능력을
진정으로 깨닫고
있는지를 돌아보았다.
 
이런 고민은
버나드에게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내적 고통을 가져왔다.
집회도
집중하기 어려웠다.

집회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며칠 동안 벽에
걸린 십자가를 바라보며

기도하던 버나드는
환상 중에 십자가에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다.
 
십자가에서 흐르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버나드의 머리와
얼굴을 타고 흘러
온몸을 흠뻑 적셨다.

그때 버나드는
우리의 죄를 사하시려
모든 것을 홀로 붙들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

버나드는
눈물과 땀에 젖어
하나님을 찬양하였고,
찬송 시가 저절로
터져 나왔다.

 그 때
이 불멸의 찬송이
완성되었다.

버나드 목사는
즉시 이 찬송을
그 교회 담임목사인
보스트 윅 목사 부부에게
자신의
 기타 연주로 들려
주었으며

이를 듣고 감동한
보스트 윅 목사는
그 날 밤 집회에서
오르간 연주자인
프로랜스 존스를 
비롯한
5명의 중창으로
이 곡을 부르게 하여
큰 은혜를 끼치게 되었다.

한편, 그 이후
포케이건 감리교회에서는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험한 십자가의 날”로
정하여 해마다
기념예배를 드리는
행사를 가지며

교회 근처에도
첫 연주자의 이름과
찬송이 만들어진
유래를 내건 
기념비를 세워
기리고 있다.

이 찬송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미국 전역으로 퍼져 나갔고
지금은 전 세계 크리스천이
가장 애창하는
찬송가 중 하나가 되었다.
 
버나드는 말년을
미시간 주 리드 시
(Reed City, Michigan)
에서 보냈는데,

그곳 시민은
버나드의 찬송에 
 상당한 자부심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리드 시에서는
버나드 집 근처
상공회의소 앞에
대형 십자가를 세웠고,
후에 이를 기념하려고 
 ‘갈보리산 위에
기념박물관’까지 건립하였다.
 
깊은 고뇌와 갈망으로
주님의 십자가를 체험한
조지 버나드 목사는
40여 년을 목회와
전도에 몸 바치고

1958년 10월 10일,
85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고
하나님 품으로 돌아갔다.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한국교회사상
유일하게
교인 전체가
순교당한 교회가
있습니다.

바로 영광의
야월교회입니다.

1904년부터
광주를 무대로
활동했던 배유지
(유진 벨) 선교사가
배를 이용하여
야월도
(당시는 섬이었다)에
복음을 전하며
교회를 세웠습니다.

야월교회는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항거해
문을 닫고
각 교인들은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다가
해방을 맞았습니다. 

해방과 더불어
곧 재건된 야월교회는
조양현 허숙일
두 영수가 교회
강단을 지켜왔습니다.

그러나 곧 이어
불어 닥친 이념의 갈등은
수많은 사람들이
동족이면서
서로 미워하게
만드는 씨앗을 뿌렸고
결국은 한국전쟁이라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불러왔습니다.

인민군은
야월교회에도
쳐들어왔습니다.

고작 65명밖에
되지 않는
작은 교회였지만
야월교회는
초대 교회처럼
사랑이 넘치는 교회로
소문나 있었습니다.

인민군과 함께
들어온 내무서원
(북한의 사회안전원)은
야월교회를 접수하고
교회를 인민위원회
사무실로 사용하였습니다.

교인들은 교회에
가지 못하고
뿔뿔이 헤어져서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야월교회 교인들이
가정에서 몰래
예배를 드린다는
소식을 들은
인민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한 마을의
좌익 청년들은

밤에 몰래
모여서
예배하는
성도들을 색출해
어른 아이를
가리지 않고
교회로 모이게 하고
그들을
교회에 가두었습니다.

그리고는
내무서원의
명령에 따라
인민위원회 위원들은
교회에 석유를
​뿌리고 불을 질렀습니다.

교회는
전소되었고
신자들은 불에
타 순교했습니다.

교회 성도
65명 전원이
순교하였고
대다수 성도들이
매장되었습니다.

인민군이
물러가고 교회에는
3년 만에 안창근
전도사가 부임하였지만
'예수 믿고
망한 동네'라며
주민들의
냉대가 심했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자라나는 초등학생들을
모아 예배를 계속 드렸고
광주선교부의 도움으로
교회는 점차 자리를
잡아갔습니다.

이들의 순교정신을
기리는 순교기념관은
2006.6월
전국 교회의 헌금과
영광군청의 지원으로
연건평 2백50평
규모로 건립되었습니다.

기념관은 야월교회
​순교자 뿐 아니라
영광군에 속한
기독교인 순교자들을
 기념하기 위한 것입니다.

2층으로 된 기념관은
1층에 역사 전시실과
기도의 손이 있으며
2층에는 대예배실과
순교자들의 모습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당시 9살이던
최종한 장로는
예수를 믿지 않아서
참극을 면할 수 있었다.

그는 1960년대에
예수 그리스도를
극적으로 영접하고
야월교회
초대장로가 되었다.

당시 사건을
목격한 그의
입술을 통해
살아 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목숨이 달린
급박한 상황에서도
선조들은 하나님을
놓지 않았어요.

저는 예수를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살아남았습니다.

그런 저를
하나님께서
축복하셔서
야월교회 장로가
 되었습니다.” 
 
한국교회는
목숨을 버려
신앙을 사수하였던
거룩한 성도들의
희생과 피로 성장한
하나님의 집입니다.

주님이 오실 날이
멀지 않은 이때에
세계를 향해 해야
할 사명을
가진 교회입니다.

신앙선배들이
흘렸던 '순교의 피'가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예수의 증인되시기를
축원합니다.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