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 리더 :: '풍경이 있는 묵상' 카테고리의 글 목록 (5 Page)

'모험'이라는 말을 들을 때
어떤 느낌이 드는가?

판타지 영화 속 대장정 같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그림이 그려지는가?

그렇다면 ‘위험’은 어떠한가?
조금 더 현실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우리는 삶의 도처에서
위험한 상황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다.

우리는 자주 삶이
안전하지 못하다고 느낀다.

당장 오늘 일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하나님은
내일 혹은 5년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자세히 알려주지 않으신다.

 미래를 알 수 없다는 사실은
우리를 두렵게도 하고 설레게도 한다.

그 떨림 앞에서
많은 순간 ‘그저 무사하기를,
아무 사건이 일어나지 않기를’
기도하기도 한다.

우리 삶이
안전하기를 자주 바란다.

그런데 존 파이퍼는
이 책에서 안전에 대한
우리의 착각을 과감히 깨뜨린다.

즉, ‘안전은 없다’는 것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안전이란 신기루일 뿐이다.

우리는 전지하신 하나님과 달라서
내일 일을 백 프로
예측할 수도 확신할 수도 없다.

오직 하나님만이 모든 일을 아신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하나님은
우리에게 장래 일을 모두 알려주지 않으신다.

마치 미래를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우리가 살아가기를 바라시는 듯하다.

즉,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알 수 없는 내일을 향해
기꺼이 나아가는 것이다.

 다시 말해 위험을
무릅쓰는 것, 모험을 말이다.

우리에게는 모험 DNA가 있다

모험은
우리와 동떨어진 단어가 아니다.

우리 삶이 곧 모험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험을 피할 수 없다.

특히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세상 사람은 경험하지 않을
모험이 존재한다.

그리스도인이기에
입을 수 있는 해로움과 손실,
그리스도인이기에 내려야
하는 결단이 있기 때문이다.

존 파이퍼는 우리가
있지도 않은 안전을 추구하느라
그리스도를 존귀하게 하는
믿음의 모험을 감수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은 허비될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
그리스도를 높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모험이 답이다.

 당신의 신앙이 오래도록
정체된 듯 느껴지는가?

혹시 그리스도를 위한 모험을
회피하고 있지는 않는지 생각해 보라.

출처:존 파이터의
"모범이 답이다"
중에서
[생명의 말씀사]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많은 사람은 자기가 
어느 정도는 착해져야
하나님께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사실상 가장 쉬운 일이다.

 옆집에 가는 길이 
두 가지 있는데
한 가지는 지구를 
한 바퀴 돌아서
옆집까지 가는 길이고
또 하나는 그냥 
바로 가는 방법이다.

 하나님을 만나려고
 전 세계를 다니며
온갖 수고를 
다 하는 사람도 있다.
 
자기 부족, 자기 잘못, 
자기 악습, 
자기 죄의식을 다 버리고
자기를 완전히 극복할 때까지 
처절한 자기 훈련에 들어간다.
 지구를 한 바퀴 도는 것이다.

영적 변화는 
자기 성취가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다.
 
그냥 받는 것이다. 
한 발짝만 내디디면 된다.
 
하나님을 향해 돌아서서
그냥 “네”라고 한 마디만 하면 
거기가 바로 옆집이다.

하나님은
 지금 가장 가까운 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다만 사람들이 
너무 먼 길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출처 :상복 목사(할렐루야교회)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김용현 회장님이
「세상에
가치 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라는
이런 책을 쓰셨어요.

독실한
크리스천인
 부인을 만나서
예수를 믿게
되었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건설업이 한창
잘 될 때에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고백을 했어요.

“저의 배만
채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광대한 사업에
​ 쓰임 받는 삶을 살겠습니다.”
라고 고백을 했는데

돈이 자꾸
들어오다 보니까
돈이 보이는 거예요.

돈을 주신
하나님이 안 보이고
돈이 보이는 거예요.

이 탐욕이
참 무섭습니다.
탐욕을
내려놓지 않으면
탐욕이 결국
여러분을 파멸로
이끄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물질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쓰라고
주시는 것인데

움켜쥐고 쓰지 않고
있다가는 그 탐욕에
빠져서 망해 버리고
말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지 않고
잘못된 길로 가니까
하나님이 심판하셨어요.

투자했던 건설회사가
부도가 나니까
 순식간에 수십억대의
어음이 휴지가 됩니다. 

 빚쟁이들에게
쫓기면서
삶의 의욕도 잃고
‘이젠 죽어야 되겠다.’
자살할 결심까지 했어요.

그때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돌아가야 한다.
도망치는 네
영혼을 나에게 주어라.
그러면 내가
너를 치유하고,
네 가정을 치유할 것이다.”

그때 정신이
버뜩 들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합니다.

“하나님, 나를
용서해 주옵소서.

내가 그만
돈에 눈이
멀어서
하나님을 버리고
마음대로
내 길로 갔습니다.

 완전히 내가
파산에
처하게 된 것은
나의 탐욕
때문이었습니다.”

눈물로
회개하니까

다시
하나님께서
복을 내려가지고
하나님께서 데이빗
종합건설을 포함해서

그가
경영하고 있는
3개 회사가 다
잘되게
만들어 주시고

1989년에
설립한 광산산업은
강구조 산업을
위주로 하고 있는데
동종업계에서
국내 다섯 번째로
큰 그러한 회사로
축복해 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고백을 합니다.

왜 하나님께서
물질을 주셨느냐?

“하나님께서는
아무에게나
재물을
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마음의 중심을
보십니다.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으며
정직하게 신앙의
바른 노선을 걸으면
금과 은 그릇은
아니어도

깨끗한 그릇에
보화를 담아주시듯,
물질과 신앙에
대해 정직하고
깨끗한 마음에
하나님은 재물을
부어 주십니다.

돈에 대한
탐욕을 내려놓고
선교의 비전을 품고
난 뒤에
사업의 규모가
예전보다 더욱
커질 수 있었습니다.”

주님 앞에서
주님의 놀라운
은혜를 잊지 말고
늘 말씀으로
성령으로 충만해서
하나님께 충성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과 능력을
믿고 나가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감사가 넘치는 삶으로
인도하십니다.

지금 조금 힘들고
어려워도 낙심하거나
불평하지 마시고
늘 동행해 주시는
주님의 손잡고
하루 하루 인생의
발걸음을
옮겨나가시길
축원합니다.​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삶에는 얼마나
어려운 일들이 많은지요.

하루에도 수십 번의
한숨을 내쉽니다.

하지만 이 걸음을
멈출 수는 없습니다.

광야에서 견디지
못한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니까요.

세상은 많은 길이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믿음의 길을
시작한 이상
광야에서 쓰러져 죽거나
 광야를 통과하거나
둘 중 하나인 것입니다.

그래서 제게는
목자의 돌봄이
더욱 절실합니다.

낯선 광야에서 스스로
생명을 지킬 수 없으니까요.

저는 목자 옆에 딱 붙어
광야를 통과하기로
마음먹습니다.

나의 목자 예수님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이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에 강을 내시는 분입니다.

이 광야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생명의
푸르름으로
가득한 초원이 될 것입니다.

나는 목자님 옆에 붙어
이 기적을 목격하고,
초원을 걸어
가나안에 이를 것입니다.

광야에서도
찬양할 수 있습니다.

찬양의 근거는
  단 하나입니다.

나를 사랑하여,
나를 결코 놓치지 않을
 목자의 사랑 때문입니다.

출처:이진희목사의
"광야을 읽다"
중에서
[두란노서원]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브루스 라슨은
 『바람과 불꽃』이라는 책에서
격려의 위력을 
참으로 훌륭하게 썼습니다.
 
그는 캐나다 두루미라는
 새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륙을 가로지르는
 머나먼 거리를 날아
 여행하는 이 커다란 새에게는
세 가지 눈에 띄는 특성이 있다.

첫째, 한 마리가 
항상 앞장서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돌아가며 
지도자 노릇을 한다는 점이다.

둘째, 그들은 난기류를
 헤쳐나갈 수 있는
역량 있는 지도자를 
고른다는 점이다.

셋째, 한 마리가 앞장선 
동안 나머지들은
그 지도자를 격려해 주기 위해
 울어댄다는 점이다.”

당신이 지금 
울어대고 있다면,
그것은 지도자를 
격려하기 위함입니까,
 
아니면 지도자를 
더 어렵게 하기 위함입니까?
격려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주님, 
항상 누군가의 도움이 되게 하소서.
누구나 할 수 있는 불평대신
누구나 할 수 없는 격려를 하십시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마르바 던 교수님이
날마다 우리를
깨우시는 음성이라는
책을 지었는데요.

이분은 지금
현시대에 영적인
지도자로 쓰이고 있는
아주 귀한 분이십니다.

 영성 신학자인
유진 피터슨,
리처드 포드와 함께
이 시대를 대표하는
신학자라고 하는데요.

1948년 미국
오하이오주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늘
육체의 질병에
시달렸습니다.
어린 시절을
홍역을 앓고
난후부터 당뇨병과
저혈압을 얻습니다.

이로 인해서
한쪽 눈이
실명합니다.
신장 이식수술과
유방암수술도
받았습니다.

20년 전에는
관절이상으로
갔다가
그만 의사가
오진을 해서
다리를 절단하는
그러한 아픔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
한국을
방문하려 하다가
또 큰 사고를 당해서
나머지 한쪽다리마저
절단하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 교수님은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원망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그의 마음에
평안만을 가지고
주님의 사랑을 전합니다.

이분이
가서 말씀을
전하는 곳마다
많은 사람들이
그 강연을 듣고
큰 감동을 받습니다.

이분은 예수의
사랑을 가지고
그 마음에 넘치는
평안함을 가지고
강단에서
말씀을 전할 때

성도들이
새 힘을 얻고
주님 안에
주님 주시는
큰 기쁨으로
살아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20권 이상의
많은 책을 지었는데
이 대부분에
책들에서
의미없는 고난이
없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날마다 우리를
깨우신 음성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저에게는 아픔도
축복이었습니다.

우리가
고난 중에
있을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삶을 양도받아
모든 것을 임의로
다스리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분의
손 안에 있으면,
그분의
무한한 지혜와
사랑의 돌봄 아래서
온전히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구원을 요청할 때는
최대한
 단순해져야 합니다. 

 우리는
적군들의 손에서
당장 구원받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우리 시대가
바뀌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고난당할 때에
우리가
달라질 것입니다.

더 나아가
고난 속에서
더 성숙하게 되고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목적을
더 잘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현재 이 교수님은
캐나다 밴쿠버에 있는
리젠트칼리지에서
영성신학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여러분
환난을 만날 때
문제를 당할 때
어려운
일이 생길 때
원망불평하지 마세요.

고난중에
예수그리스도의
손길을 느끼며
하나님의 목적을
발견하여 쓰임받는
귀한 축복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광야는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다
광야에서는 스케줄이 필요 없다.

해가뜨면 일어나고 해가지면
잠을 자면 된다.

광야에는
모든 것이 멈춰 있는 듯하다.

아무것도 움직이는 것이 없다.

광야에서는
바쁠 이유가 하나도 없다.

그래서 광야는 하나님의 음성이
가장 크게 들리고 하나님을 가장
분명하게 볼 수 있는 곳이다.

우리는 광야로 들어가야 한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이 있어야 한다.

가콜릭 신학자 까를로 까레또는
[도시의 광야] [분노출판사]라는
책을 통해서 "나날의 생활 속에
광야를 마련하라"고 했다.

또 "당신이
광야로 갈 수 없거든
당신의 생활 속에
 광야를 만들라"고 했다.

헨리 나우웬은
광야의 영성을
"하나님과 함께 그리고
그분하고만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과 장소를 따로 마련하라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만남의 장소를
갖고 하나님과의 만남의 시간을
가지라는 것이다.

굳이 광야 수도원에
들어가지 않아도
우리의 삶 한 가운데서
광야와 같은
장소와 시간을 가질수 있다.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누가복음5장16절)

출처:이진희목사의
"광야를 읽다"
중에서
[두란노 서원]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슈테른베르그(Sternberg)는
 독일의 화가였다.

당시에는 
성화를 그리지 않으면
 명성 있는 화가가 되지 못했다. 

미켈란젤로나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성화를 그려서 대가가 된 것이다. 

슈테른베르그도 
대가가 되고 싶어 
성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모습을 반쯤 그렸지만

 더 이상 영감도 없고 
감동도 없었다. 


그는 길거리로 나갔다가
 멋진 여자를 만났다.

이 여인의 누드 그림을
 그려 돈을 벌어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여인에게 접근했다.

“당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그리고 싶으니 
모델이 되어 주면 
후히 사례하겠습니다.”

그 여인은 
가난한 집시였기에 
흔쾌히 승낙했다. 

화실로 데려가
 여인의 나체 모습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집시 여인이 
화실 한 편에 있는 그림을 보았다. 

거기에는 십자가에 달려 처참하게
 죽은 사람의 그림이 있었다.  


“선생님, 저 사람은
 얼마나 무서운 죄를
 지었기에 나무에 달려 죽었습니까?” 

슈테른베르그는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수라는 사나이인데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고
 죽으신 것이라오.” 

그러자 예수가 누구인지
 몰랐던 집시여인이 되물었다. 

“우리의 죄라구요? 
그 분이 정말 선생님의 죄도, 
나의 죄도 대신해서
 죽으셨단 말입니까?" 

그 순간 슈테른베르그의 가슴은 
건물이 무너져 내리듯
 철렁하는 충격을 받았다.

그는 예수께서 자기를 위해 
돌아가셨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슈테른베르그는
 더 이상 여자의 누드를 
그리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다.

대신에 그는 
교회에 나가 엎드렸다.

“주님, 주님께서 
정말 저를 위해 죽으셨나요?

제 죄도 주님께서
 지시고 돌아가셨나요?

 정말인가요? 
주님, 알려 주세요.” 

진정으로 회개하고 
주님의 은혜에 감격하여

그린 그림이
 에케이 호모(Ecci Home) 즉
 ‘이 사람을 보라’이다.


슈테른베르크는 
예수님이 고난 받으시는 
그 그림 아래 

“나는 너를 위해 
이렇게 하였다.

너는 나를 위해 
무엇을 하였느냐?”는 
글귀를 적어 넣었다.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