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 리더 :: '온누리교회' 태그의 글 목록

미국 유학을 끝내고
한국에 돌아와 온누리교회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나는 곧 교회 안에 있는
창조과학위원회를 섬기게 되었습니다.

또 7주 새신자 등록 과정 중
‘창조주 하나님’과정을 맡아
약 3년 동안 섬겼습니다.

그 후 순장으로, 다른 위원회의
총무로 섬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나의
신앙생활에 한계가 있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나의 모든 시간을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
여기지 않고,
내 아까운 시간을 쪼개어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 눈에는
내가 성공한 과학자로
보였는지 모르지만,
사실 나의 내면에는
많은 열등감과 수치심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려고 노력했지만
내 마음 깊은 곳에 자유가 없었습니다.

내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학교,
교회, 창조과학회 일에
완벽을 기하려 했지만,
우스꽝스러운
모양새일 뿐이었습니다.

그냥 두면 폭발할 것이
뻔한 나의 내면을 돌보기 위해
나는 1년간 안식년을 갖기로 했습니다.

밥 버포드의
​ <하프 타임>이라는 책을 읽으며
내 인생을
다시 조율하는 시간을 갖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실까’를 깊이
묵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1999년에
내적치유위원회 팀장으로
섬기게 되었습니다.

처음 6개월 동안 팀장으로서
내가 한 일이라고는 집회 때마다
우는 일뿐이었습니다.

굳게 닫혔던 마음의 문이 열리고
그 안에 꼭꼭 숨겨 두었던
상처를 하나님께 내드리고,
죄를 회개하고,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내적치유를 받으면서
성령님께 매달렸습니다.

그러자 성령님이
나를 강력하게
사로잡기 시작하셨습니다.

나 자신을 포기하는 만큼
성령님이 일하신다는
진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출처:손기철이 쓴
<고맙습니다. 성령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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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스펀지" 좋은 나라 운동 본부"
"사이다" 하이파이브"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중계 때는
유일한 여자 MC까지 맡게 되고

아침 6시 뉴스광장의
앵커를 진행한
예쁜 외모와 잘 전달되는 말투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대한민국의 KBS 대표적인
이정민 아나운서는

2012년 5월 26일
MBC 뉴스 앵커 출신인
조정민 목사의 주례로
서울 온누리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는데요.

남편과의 만남도
교회 오빠라고 할 수 있는
3살 연상이며
이비인후과 의사인데요.

교회 안에서 모임을 통해서
서로 호감으로 가까워졌고
6개월 만에
드디어 결혼을 하여
하나님이 딸을 선물로
주셨답니다.

이정민 아나운서는
힘든 출산과 육아 속에서도
가정과 일, 엄마와 아나운서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정도로
열심인데요.

그럼 이정민 아나운서는
언제 신앙생활을 시작했을까요?

원래는 집안이
불교 집안이었답니다.

할머니는 아침저녁으로
예불을 드리는 분이셨고
아버지는 불교 재단 동국
대학의 직원이셨답니다.

그런 그녀가 기독교인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해 보지 못했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 추첨 원서 쓸 때
살던 동네에서 제일 선호하는
곳이 미션 스쿨이였답니다.

 예일여고의 반에서 교회를
다니지 않는 아이가
이정인 아나운서뿐이였다네요.

고등학교 때같이 다니는
친구들이 4명이 있었는데

그 친구들의 부모님들이 모두
매일 새벽예배를 드릴 정도로
열심히 하는 분들이었답니다.

그러다 보니 그 친구들에게
영향을 받게 되었고
1년 정도 멀리서 친구들을
관찰하면서 지켜보게 됩니다.

이정민 아나운서의 고백입니다.

"고등학교에 올라와서 멀리서
친구들을 늘 관찰하듯 했죠
그러다 보니 저 스스로
교회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미션스쿨에서는
교회 다녀온 증거로
주보를 내야 하는데

이전에는 친구에게 한 장만
가져와서 제출했는데
이번에는 직접 가져와야 되겠다
라고 생각이 들었답니다.

그래서 혼자 교회를 찾아갔는데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저를 강하게 이끌어 주셨어요"

특히 신앙이 갑자기 성장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는데요.

2학년 때 동네 교회에서
집회가 열려 독서실에 간다고
하고 예배에 참석하게
되면서 놀라운 변화를
체험하게 됩니다.

목사님이 다들 눈 감으라고
하시면서

"오늘 예수님이 내 마음에
들어 오시기를 원하는
사람은 손들어"하시는 거예요.

갑자기 용기가 생겨
손을 들게 되었고

그 순간 밑에서부터
뜨거운 무언가가 밀려
올라오더니 위에서
팍 터지는 것 같았답니다.

이정민 아나운서의 고백입니다.

"제가 의도한 것도 아닌데
예수님 잘못했어요!
용서해 주세요"

회개 기도가 나오기 시작했고
그때 처음으로 성령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게 됩니다.

그때부터 기도의 사람이 되어
고3 때는 매일 기도실에
가서 기도를 했답니다.

사실 그때에 본인이
두려움이 많고 미래에 대한
고민과 대학입시의
불안감에 주님께 매달리게
된 것이랍니다.

기도의 제목은 오직
하나였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 나라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면서
평생을 살수 있을까요?"

이렇게 기도를 하고
하나님께 맡기니

당연히 기독교 대학 계통으로
가게 될 줄 알았답니다.

때 마침 고3 때 특별 전형으로
E 대에 갈수 있었는데
성적이 333점 커트라인에서
330점이 되어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그때 집안에 본인을 포함해서
쌍둥이 동생 둘까지 3명이
재수를 해서 아빠가
동국대에 들어가라고 합니다.

큰 충격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는데
결과가 이렇게 나오게 되니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답니다.

결국 동국대에 들어가게 되고
정말 불교 집안이 싫었는데
학교에서 일주일에 한 번은
스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 너무 싫었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셨답니다.

"네가 만약에 원하는 대학으로
갔다면 넌 날 버렸을 거야"

본인의 성격이 밝고 명랑해서
친구들과 사귀면 타락했을지도
몰랐다는 거예요

이정민 아나운서의 고백입니다.

"내 생각은 크리스천
 대학가는 것이 맞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
방향을 틀어서라도 저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셨어요"

그러면서 가슴속에
남은 꿈이 있었는데
그것이 방송일이었답니다.

어릴 때부터 주변에서
"너는 말 잘하는 아이니까
아나운서 하면 되겠네"

그 말을 그대로 순수해서
받아들이게 되었는데요.

막상 그 일을 하려고
하니 잘나고 예쁘고
똑똑한 사람들이
너무 많았답니다.

어떤 친구는 빽도
있어서 든든했는데
본인은 하나라도
해당사항이 없었다네요.

그러던 중에 농촌
사회봉사활동을 하는 중에
레크리에이션 진행을 맡게 되었고

그때에 이정민 씨의 말에
호응해 주고 웃어주는 분들이
너무 행복해하는 것을 보면서
그 순간 "나는 이길이다"라고
확신이 생겼답니다.

아나운서 준비를 하면서
토익의 성적이 좋지 못했고
마침 마지막 시험 기회인데
새봄맞이 성경학교하고
겹치게 되었답니다.

한 달 내내 성경학교
준비를 하느라 시험 준비를
제대로 못한 겁니다.

그때 외우던 말씀이
마태복음 6장 33절의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였답니다.

그런데 토익시험이 최고 점수가
나오게 되었고 합격을 하게됩니다

이런 일도 있었답니다.

첫 시험을 SBS에서 봤는데
4차 최종에서 떨어졌고
그다음에 KBS에서 1차에서
떨어지고 말았답니다.

그런데 가을쯤에 SBS에서 전화가
와서 골프채널에서 해 볼 생각이
없느냐고 해서

그곳에서 하게 되었는데
골프채널에서 최선을 다했는데
마침 KBS 사장님이 보고 계셨고
나중에 다시 시험 준비를 하여
KBS에 다시 도전을 하였고

5차 최종에서 1300명이 지원을
했고 그곳에서 10명까지 줄여 가는데
면접에서 사장님이 골프에 관해서
물으신 것이지요

나중에 알고 보니
제가 했던 골프채널의
애청자이신 것입니다.

언제 난 다른 아나운서처럼
특별히 똑똑하지도 않고
특별한 빽도 없고
오로지 하나님이
본인의 빽이었답니다.

아나운서로서 많은 일을
맡겨주셨는데

"내가 잘할 수 있을까"라는
부담과 두려움에 있을 때

고등학교 때부터 항상
붙들고 있었던 말씀을
기억하게 하시고
그 말씀을 묵상하게 됩니다.

이사야 41:10의 말씀입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실제로 방송국에 들어와서 보니
아나운서의 영향력이 사회에
엄청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아나운서의 실수나 잘못된
판단이 용납이 되지 않아서
부담감이 있었지만
감사하답니다.

이정민 아나운서의 고백입니다.

"크리스천이라는 걸 알리고
나니까 사실 더 부담이 되긴 해요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그저 감사할 뿐이에요

내가 뭔데 하나님이
 이렇게
날 사랑해주시고
영향력 있는 자리에 세워주시고
다름 사람에게 사랑받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셨으니까요"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온누리교회 집사님이신
 우리 한국의 국가대표선수로
이름을 날린 이영표 집사님,

2002년
한일월드컵 주역이자
KBS 축구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고 계신데요.

어릴때 기독교가
싫었답니다.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이 세뇌당했는데
그것을 모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서로 사랑하라고 하는데
자신들이 사랑하지 않고
서로 용서하라고 하면서
자신들이 용서하지 않아서
싫었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왜 선악과를 주셨고
따먹게 그대로 두셨는가?

한국에 복음이 오기전에
있는 조상들은 어떻게 되는가?

어떤 사람들은 선하게 사는데
고통을 당하는데
 공평하다고 하는가?

이런 고민으로 기독교가
싫었답니다.

그런데 국가대표선발이 되고
친구들이 계속 전도를 했는데
하나님을 믿게된 계기가
있었답니다.

결정적인 두가지가
있었답니다.

첫번째가
제가 죽는다는 것입니다.

죽은 이후에 무언가 있다라는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았답니다.

하나님은 영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귀신을
과학적으로 확인되지는
않지만 귀신은 있기에
나는 어떻게 할것인가의
고민으로 갈등합니다.

그때 이런 질문을 드립니다.

"하나님 나는 당신을
믿을수 없습니다.

당신과 나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두번째는
살아계신다고 믿는
사람들을 보니
믿을수가 없습니다.

제 앞에 컵이 있는데
이 컵을 올렸다가 내려놓던지
아니면 하나님이
나타났다가 살아지던지
하세요."
라고 질문을 드렸는데

컵이 사라지거나
하나님이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그런데

또 다른 질문이 있었다.
내 마음을 바꾸어주세요.

그런데 그때부터
마음이 바뀌기 시작했고
성경공부를 하고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깨닭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고 나서
하나님께서 처음으로
주신 말씀이

"나는 언제나 네 주위에
있었는데 네가 믿지 않아서
만나지 못했다."


처음 믿고
예수님을 자랑하고
다니는데 

그날도 숙소에서
전도를 하고 있으니
어떤 선배가 너만 믿지
왜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가라고는
말을 듣고

호텔에 들어왔는데
책을 읽을려고 6개월을 들고
다닌 곳을 펴니
이렇게 써 있었습니다.

하얀백지에
"진리를 아느자가
진리를 모르는 자 앞에서
침묵하는 것은 죄이다.

그때부터
 침묵하지 않았고
나중에 그 책에서
하얀백지에 한줄이 있는
그곳을 다시 찾는데
그 책에는 없었답니다.

신앙심이 깊어진
계기가 있었는데요.

2002년 한일 월드컵 개막
사흘 전 부상을 당합니다.

근육이
12센티미터가 찢어져서
6주 진단에 회복까지는
석 달 이상 걸린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기부스를 하고
아파서 쩔뚝거리며 월드컵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본인은 교회 집사로
 1년 반 동안 하나님, 
 월드컵에 나가서 
 좋은 성적을 얻어가지고

그래서 유럽에
프로선수로
진출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기도했는데
그만 부상을 당한 거예요.

그래서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욥기를 읽다보니까
마음에 탐심이 있었어요.

월드컵을 발판으로
내가 유럽으로 진출해서
내 이름을 좀 날려야 되겠다.

기도 하는데
주님 물으십니다.

“지금 너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뭐냐?”
“월드컵입니다.”

“그 월드컵을 날
위해 포기할 수 있느냐?” 
 “네. 포기할 수 있습니다.”

주님 앞에 회개하고
자기의 욕심, 모든 것
다 내려놓으니까
맘이 편안해지는데
그때부터 이상하게
다리가 아프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처음 두 시합을 쉬고
그다음 나간 것이
포르투갈전인데

포르투갈전에
그의 어시스턴트로
말미암아
박지성이 꼴을 넣어서
역사상 최초로
16강에 진출합니다.

 이렇게 고백을 했습니다.

다음날 신기하게도
 다리가 아프지 않은 거예요.
목발 없이 걸었고
사흘 뒤에는
뛰게도 되더라구요.

의료팀에서는
오진이 아니었느냐라는
말까지 나왔어요.

처음 두 경기는 쉬고
세 번째 포르투갈전에 나갔는데
보통 선수가 열흘 정도 쉬면
체력이 떨어져 90분을 소화하지
 못하는데
저는 전혀 힘들지가 않더라구요.

그날
어시스턴트한 공이
들어가 16강 진출이
결정되자마자
믿는 선수들끼리 무릎 꿇고
한참을 감사하며 기도드렸어요.

그다음에 더
놀라운 일은 이탈리아전에서
그의 어시스턴트로
안정환이 다시 골을 넣습니다.

이때 4강 신화를
만들어냈는데요.

이때도 탁
어시스턴트 했는데
그 골이 들어갔어요. 
다 포기하니까
하나님이 주셨어요.

이런 간증을 합니다.

월드컵이 끝나고
온누리교회에서
6개월 간 거의 매일
새벽기도를 했어요.

그러던 2002년
11월 24일 주일예배에
찬양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마음에 감동이
밀려오고 눈물이 났어요.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해 주셨거든요.

“내가 너를
유럽에 보내주겠다.”

그리고 정확하게
두 주 후,
히딩크 감독님이
저를 찾으셨어요.

그리고
또 정확히 5주 후,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네델란드 아인트호벤으로 갔어요.

제 능력이라기보다
그분의 보이지 않는 손이
보내주신 것이죠.

이 세상에
우연은 없습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 은혜입니다.

이렇게 간증합니다.

“저에게 축구는
예배입니다. 

 저의 실력과
위치를 인정하고
겸손히 무릎 꿇고
고난과 역경을 이겨냅니다.

성공과 실패가
중요하지 않아요.
오직 한 곳을
향해서 달려갈 뿐입니다.

제 역할을 다할 때
아름다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저는 하나님을 위해
축구를 하는 예배자입니다.”

하나님께서 멀리계신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
않아서 손을
내밀지 못하신겁니다.

우리가 고난과 어려움을
통해 간구할때에
놀라운 기적과 응답을
선물로 주신답니다.

지금 어떤 힘든일때문에
좌절과 낙심해 있나요?

지금이 기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문제에 결코 답답해하거나
고민하지 않으십니다.

더 이상 내려갈때가
없다면 이제 하나님께서
일을 시작하실때가
된것이지요.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대중음악 작곡가, 가수
방송인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컴패션밴드의 음악감동으로
온누리교회를 섬기고
계시는 주영훈 씨를
소개합니다.

1993년 심신의
"내가 처음 사랑했던 그녀"
를 통해 작곡가로 데뷔해

엄정화의(배반의 장미)
터보의(나어릴 적 꿈)
컨트리 꼬꼬의(오! 가니)
유채영, 코요태, 김종국 등
​많은 가수들의 작곡가로
유명하답니다.

지금은 방송인으로써
열심히 하고 계시는데요.

미국에서 아버지께서
목회하시는 목사님의
아들로 태어났답니다.

어느 날 예언하시는
권사님을 모시고 와서
아들 중에 목사가 나온다고
했는데 주영훈 씨를
신학교에 보낸다고 해서
한국으로 도망을 왔다고 합니다.

도망 올 때에 전 재산이 27만 원이었고
공항 세관에게 악기가 걸려서
세금을 78만 원을 내라고 해서
한 시간을 울면서 빌기도 했답니다.
 
20대 초반에 목사님을 따라
미국 동부 워싱턴으로
이민을 와서

아버지께서 사역하시는
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로
또한 찬양대로 봉사를
하였답니다.

주영훈 씨가 음악을 하게 된
계기가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고 나중에는 고백합니다.
​ 

주영훈 아버지께서는
이북 출신으로 보수적인
분이셨답니다.

 예배 도중에는
아멘을 크게 해도 안되고
교회에서 기타나 드럼도
함부로 하면 안 될 정도였답니다.
 
찬송가를
제외한 세상 모든 음악을
마귀의 음악이라고 해서
반대가 심하셨다고 하네요.

그래서 학교를 갔다 오면
LP가 항상 두 동강 나있었고
교회 가면 기타를 칠 수 있어서
같지만 아버지가 계실 때는
찬송가를 치다가 안 계실 때
몰래 세상 음악을 했답니다.

지금도 초청을 받아서
교회에 가서 메들리를
하다 보면 찬양을 하다가
중간에 일반 음악을
부르면 손뼉을 치다가도
멈추어 계신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팝송을 좋아해서
혼자서 DJ가 되겠다고
연습도 하기도 했답니다.

홀로 한국에 와서
​테이프를 만들어 각 기획사를
찾아다니면서 들어봐 달라고
발품을 팔면서

잘 되지 않으니
하나님을 원망했답니다.

한국에 나오게 해달라고
했다가 다시 왜
한국에 오게 했냐고
원망했답니다.

많은 사람을 1년 동안
만나면서 수백 곡을
만드는 시간이었답니다.

그래도 교회는 다녔지만
뜨거움은 없었답니다.

술 취해서 울면서
기도하기도 했답니다.

심신의 가수를 만나게 되면서
그분이 점을 보면서
점쟁이가 웃는 모양을 보여주는데
그것이 주영훈 씨였답니다.

나중에 주영훈씨는
하나님께서는 귀신을 쓰기도
한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들의 주변에도
점보러 가서 너는
예수믿어야 산다고 해서
진짜 예수 믿기도 하지요.

그때는 인기 있는 가수와
만남이 시간 되면서
심신의 작곡을 7곡을
하면서 소방차까지 연결되고
태진아 씨와도 시작됩니다.

주영훈 씨가 만든 곡들이
거리에서 울려펴지는 것을
보면서 행복해지고
자신이 교만하게 재능을
하나님이 주신 것인 줄을
몰랐답니다.

주영훈 씨는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방황하게 됩니다.

유독 주영훈 씨가
온갖 오해와 억측으로
어려움이 겪게 되고
많은 어려움을 가지는데요.

나중에는 하나님이
이런 경험을 통해서
지금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힘을 주게 된답니다.

자신의 연약하고
부족함을 훈련시키기 위해
좋은 벗들을 연결해주시고
온누리교회를 통해서
뜨겁게 기도하고
이전에 잃어버린
첫사랑을 깨닫게 되는데요.

성공한 작곡가에게
사실 여러 번 위기가 찾아옵니다.

손태영과의 결별과 오해
살이 빠졌다고 두 번이나
검찰청에 불려가서 마약검사를
받기도 했고요.

주영훈 씨의 고백입니다.

"살을 갑자기
예전에 많이 뺐을 때는
마약조사를 받을 때도 있었고,

2007년도에 학력을 속였다
그래서 모든 방송도
쉬게 됐던 적도 있었고,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하면서
빚도 지고
공황장애도 많이 앓았었고.

하용조 목사님께서
큰 힘이 많이 됐던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힘들거나 할 때
정말 하 목사님이 보고 싶어요."

2007년 온누리교회에서
주최한 일본 문화선교 집회
‘러브 소나타’에 참가했는데,

손지창 형제가
하용조 목사님 부탁으로
주변의 연예인을 모을 때
저도 불려가게 된 거예요.

가서 할 일은 연예인들과 함께
찬송가 두 곡 부르는 것밖에 없어서
저는 솔직히 편한 마음으로 따라갔지요.
 
그런데 그곳에서
회개하는 눈물 많이 흘렸어요.

그때 은혜를 참 많이 받았어요.
그런데, 그렇게 은혜를 받고 나서
제게 어려운 일이 바로 닥쳐왔습니다.

일본에 다녀온 지 2주 후였어요.
뜨거워지려고 할 때 사탄이
제게 가장 약한 부분을 건드리더군요.

아마 은혜가 없었다면
과거처럼 예민해서
미쳐버렸을지도
모를 정도로 큰 어려움이었어요.

하지만 “올 테면 와봐라” 하는
담대함이 생겨 감당할 수 있었답니다.

사실 군대를 못 갈 수밖에 없는
심실 조기 흥분 증후군이라는
질병이 있는데

일부러 군대를 가지 않으려고
했다는 오해를 사기도 합니다.

주영훈 씨는 독신 주의자였고
이윤미를 만나면서 마음이
바뀌게 됩니다.

가장 어려운 시기에
악성 루머와 사업 실패
그리고 대인 기피증과
공황장애에 시달리게 되는데

이때 하나님이 예비해 두신
2006년 이윤미와의 결혼으로
평안을 회복하게 됩니다.

주영훈 씨의 고백입니다.

"배우자 기도를 오래 했어요,
제가 혼자서. 항상 웃는 여자,
나보다 남에게 배려가 더 많은 여자,
키 170센티미터
플러스마이너스 1
이렇게 구체적으로 적었어요.

10가지를 정확하게 가진 아내를
제가 만났기 때문에 만나자마자
하나님이 보내주셨나 보다
이런 생각을 갖게 됐죠." 

배후자의 기도에
이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내용이 있는데

그 첫 번째가
잘 웃는 여자인데
이윤미 씨가 심하게
잘 웃는 여자랍니다.

또 하나는
야망이 크지 않는 여자인데
다시 말하면 가정적인 여자를
원했는데

결혼 후에 아내의
내조 덕분에 신앙이 더욱
깊어지게 됩니다.

어느 정도로 이윤미 씨가
남편을 위해 기도하는가 하면

주영훈 씨의 고백입니다.
"어느 날 우연히 수첩을 봤더니
남편이 잘 되게 하는 기도 방법과
주로 남편을 위해 책을 읽고 있었고
항상 우리 오빠 기도를 우선하니
너무 감사하답니다"

부모가 딸의 이름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데요.

두 부부는 큰 딸의 이름을
주 아라라고 지었는데
그 뜻을 "주님의 아름다운
나라를 꿈꾸며"라고
지었답니다.

지금은 컴패션을 통해서
전 세계에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계시답니다.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1986년 MBC  아역배우로 데뷔하여
1989년 19살 때 KBS 드라마 토지로
이름을 알렸고

제빵왕 김탁구, 로열패밀리
오작교 형제들, 해를 품은 달
돌아온 황금 복까지 많은
작품과 영화에 출연하였고
출연한 드라마가 대부분
인기가 있어서
드라마의 보증수표라는
수식어가 붙었고

촬영 감독과 결혼하여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계시며
온누리교회를 섬기는
전미선 씨를 소개합니다.

제빵 왕 김탁구를
시작하기 전에는
기도를 많이 하게
되었는데요.

"내가 과연 연기를 계속해야 되나
그럼 하나님이 어떻게 써주실까요?"
라고 기도하는 중에
이 대본이 오게 되었답니다.

대본을 받는 순간
하나님이 나를 키워주시기
위해 주셨구나라고
고백합니다.

연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는데요.

외숙모가 학원을 시작했다고
방송국 견학을 하던 중에
우연히 드라마 캐스팅이
됩니다.

연기하면서 힘든 점은
성격이 소심하다 보니
연기 외에 인간관계가
어려웠답니다.

그 이유가 어릴 때
가정에서만 거의 지내다가
보니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힘들었답니다.

어릴 때는 연기를
계속할 거라고 생각이
아니기에 잠시 내려놓기도
하였고

우울증이 심해져서
거울이 보면
눈과 눈 밑이 파래지고
죽은 사람 같더랍니다.

화장을 해도 더 이상하고
삶의 소망을 잃고
극단적인 생각을 가지게
되었답니다.

그 순간에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정신을 차리게
되었고

다시 연기가 소중함을
깨닫게 되면서
다시 일어나 해보자라고
하게 됩니다.

우울증이 오게 된 이유가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고
목표가 없다 보니까
살아갈 이유가 없어지게
되었답니다.

성격도 밝지 못 해서
대인기피증까지 오게 되었고
집안에만 있게 되고
생각이 좁아졌답니다.

슬럼프를 벗어나서
계속해야 된다고
해서 지금은
계속 달려간답니다.

신앙이 불교 집안이었는데
촬영으로 집을 비운 사이에
어머니께서 교회를 먼저
다니시고

전미선 딸에게 교회를
다니자고 하였답니다.

교회가기로 한 그날에
늦게 일어나서
못 가게 되었고

다음에도 가기로 했는데
가기가 싫어서

이렇게 기도했답니다.

"하나님 어머니에게
먼저 보여주시면
제가 그 말을 듣고
사인인 줄 알고 가겠습니다"

그런데 잠을 자는데
"넓은 강에 흰옷 입은 8명과
뒤에는 빨강 옷 입은 8명이
있는데

물에 빠지면 안 되는데
옆에서 환한 빛이
내려오면서 손을 같다가
데어 보라고 하는데

죄송한데 얼굴에
상처가 나면 안 된다고 했더니
그것은 너와 나만이
아는 표식이라고 하면서

내가 너에게 한가지
해줄 말이 있다는 것입니다.

세 번 반복한 후에는
나중에 이야기해줄 것이다"

그때 엄마에게
나 교회에 가야 되겠다
교회를 갔다 왔는데

예수님을 영접한 후에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답니다.

교회를 나가고 나서
처음으로 친구를 위해
기도하고 싶은 것입니다.

또 집을 이사한 후에
살 곳을 청소한 후에

이전에는 굿도 하고
점도 해보았는데

꿈에 그 언니가
굿을 해준다고 하고
글을 써준다는데

교회를 다니는데
그럼 안되는데

꿈속에서
"미안한데 교회를
다닌다"하니까

다른 사람을 또
데리고 오는데

"너의 속에 안 좋은 것
두 가지를 빼야 한다는
것입니다.

꿈속에서
"저는 안됩니다
이제 하나님을 알기
시작했으니 안됩니다"
라고 했더니

알코올 중독된 할아버지가
나가게 된 것입니다.

이전에 너무 술에
취해 살았던 모습이
없어지게 됩니다.

전미선 성도가
하나님의 사인과
꿈이 하나님이 주신 것인지
나쁜 것인지 기도한 후에
확신을 갖게 되었답니다.

신앙생활을 하기 전에서
혼자 기도를 했지만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았었고

사람들은 왜
잘못한 후에 교회를 가는지
그전에 잘못을 하지 말지라고
했었답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쉽게 연기하고
쉽게 돈 벌겠다고 했는데
남의 잘못을 지적하기만
했답니다.

친정엄마 2박 3일 연기하면서
다치지 않고 많은 사람 오게
해달라고 기도했지만

나중에 이 기도가 잘못인 것을
알게 되었고
내가 연기에 최선을 다하면
관객은 많은 사람이
알게 되면 모여들 것이라라고
하면서
연기하는 자세도 달라지게
되었답니다.

황진이를 찍게 했을 때에는
"하나님 예쁘게 나오게
해주세요"라고 했더니

촬영 때에는 언제든지
날씨가 화창해지는 것입니다.

또 한번의 어려움이
왔는데요.

계획하지 않는 임신과
출산으로
이 아이 때문에 내가
일을 할 수가 없구나라는
생각으로 시한
산후 우울증을 겪었답니다.

이쁜 아이가 미워지고
임신으로 30킬로의
살이 불어났고

기도는 안되고
누구도 인정해주지 않고
연기를 못하는 마음에
답답하고 싫었답니다.

계속해서 아이와
신랑이 미워지고
못된 말을 신랑에게
하게 되고

6개월을 지나면서
다시 기도를 하게 됩니다.

생각하는 방법이
틀렸음을 깨닫고

다시 사랑하게 되고
열심하는 마음을
주십니다.

전미선 씨의 고백입니다.

"20년 이상의 연기하는 동안
아무도 들어주지 않고
왜 나에게는 이야기할 시간을
주지 않는가라고
원망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하나님은 큰 연기자로 그릇을
만드시려고 침묵으로
일관하셨으므로 감사하답니다."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

1978년 데뷔하며
대학생 때 데뷔하여
30년이 넘어간 세월 동안
연기자로 활동한
서울 온누리 교회 집 사이 신
강석우 씨를
소개합니다.

모태신앙이며
본인은 크리스천이라고
말하고 다니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까 봐
항상 날마다 기도를 한다고
합니다.

본인은 삶이 예수그리스도의
향기가 드러나기 원하는
개인적인 소망이기도 합니다.

10 때의 교회에서의
수련회 때의 신앙이 가장
뜨거웠다고 하는데요.

충현교회 장로님들이
무조건 믿으라고 하는
그대로 순종했는데
그 믿음이 지금도
감사로 느껴진다고 합니다.

연기자가 아니었다면
다른 것을 상상할 수 없었다고
하는데요.

대학교 때 프로듀서를 하고 있었고
학과에서는 뮤지컬을 하고 있었는데
선배가 연기자로 지망하라고 하는데
별로 가고 싶지 않았지만
친구들이 상금을 타면
그것으로 무얼 먹자고 하는데
가서 그곳에서 뽑히고
연기자로 생활을 하게 됩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1978년에 선배 이미례 감독님의
권유와 도움으로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었던
영화진흥공사 주최 '제1회 남녀
주연배우 공고'를 통해 영화계에 입문했다.

본격적으로 연기자를 시작하게
되는데 1982년 보통 사람들에
캐스팅되어서 인기 있는
스타의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항상
내 길이 아닌가라고
갈등이 항상 있었고
젊은 의 행진을 시작하게 되고
다시는 나오지 않겠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내가 큰 박수를 듣고 살면
나중에 잘못되겠다고 싶어서
그 후에는 쇼 프로는 나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보통 사람 들할 때 미리 한 시간 전에
들어가서 미리 기도하면서
힘을 얻고 이겨내기도 했습니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겸손함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1986년의 겨울 나그네를
하게 되는데 이곳에
목숨을 걸게 됩니다.

이 영화가 흥행하지 못하면
나는 이제 끝이라고
생각하고 했답니다.

하물며 낚시터에서의 장면을
찍기 위해서 일주일을 머리 감지
않고 지낼 정도였답니다.

본인이 신앙이 흔들리는 것은
나이 들면서 더욱 흔들리게
되는데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으
깨닫게 됩니다.

지금도 기도제목이
"흔들리지 않는 신앙인이
되는 것이 꿈이자
목표입니다."

강석우 씨는 교회에서
예배드릴 때 찬양을
너무 크게 불러서
아내와 자녀들이
하소연을 한다고 하는데요.

부인이 하는 말이 "너무 큰소리를
내서 부끄럽다고 하면"
강석우 씨의 말이
"회사에 회식 가거나 야유회 가면
고속버스에서 노래를 목이 쉬도록
부르는데
교회에서 크게 부르다가
죽으면 좋지."라고 한답니다.

한 번은 강석우 씨의 부인이
천주교를 다니다가 와서
강석우 씨가 십일조 헌금을
많이 내는 것을 보고

"당신 무슨 헌금을 그렇게
많이 내요, 돈 모을 수 있을 때
모아야지."라고 했을 때

강석우 씨가
"십일조는 성도의 의무이고
하나님의 명령이야."라고
해서 단 한 번도 그렇게
단호하게 말 한적 없는 남편의
말에 놀랐다고 합니다.

주일날에 스케줄이 잡혀서
지방 촬영을 가야 한다고
전화를 하면
단호하게 "주일엔
교회 가야 합니다."라고 한답니다

사실 신앙생활을 해도
적당히 하면 좋겠지만
그의 신앙에 영향을 주신 분이
계신데요.

특히 어머님의 기도에
영향을 많이 받으셨는데요.

기도 많이 하시는 권사님
주위 사람들이 천사 같다고
하며 고부 간의 갈등이 없을
정도로 며느리하고 관계도
좋았다고 합니다.

남아 드신 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양보하다 보니 갈등이 없었답니다.

어느 정도로 기도하셨냐면
무릎이 나중에는 못쓸 정도로
기도하신 분이 셨답니다.

그래서 매일 밤 12시 되면
아들방에서 딸의 방에서
같이 기도한답니다.

강석우 씨가 고백하기를
"가정예배가 가장
좋은 것입니다."
라고 고백합니다.

대학교에서 강의할
일이 있었을 때
꼭 하는 말이
십일조를 꼭 합니다라고
고백을 한답니다.

믿음의 유산이
축복이라고 고백합니다.

좋은 부모님
좋은 목사님을
만나야 하는 이유는
좋은 기도의 모델이
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결론적으로 강석우 씨가
인생의 삶의 포인트는
첫째 가정예배
둘째 기도의 모델
셋째 십일조를
통하여
믿음의 유산을
남기길 기도한답니다.
Posted by 주님닮기 원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