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주룩주룩 오고 있었다. 창문가에서 끙끙대는 소리가 들려 창문을 열어 보니 우리 집 처마 밑에 한 형편없는 거지가 보따리를 옆에 끼고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가 너무 불쌍하고 딱해 보여서 대문을 열고 그 사람한테 다가갔다. “춥고 배고프시죠? 들어오셔서 몸을 녹이고 식사하세요.” 그분을 집에 들이고 식사를 차려 드렸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생겼다. 그 순간 형편없던 거지가 영광스러운 주님의 모습으로 변하는 게 아닌가! 반면 나는 세상에서 제일 피곤하고 지치고 병이 든 아주 비참한 모습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입장이 180도 바뀐 것이다. 끔찍한 냄새가 나고 지저분한 누더기 옷을 입고 지친 나를 주님이 다가와서 안아 주셨다. 그것은 주님의 임재였다. 주님의 눈을 보니 울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까지 나는 내가 주님을 애처롭게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주님을 뵙고 보니, 주님이 나를 사랑하고 계신 것이었다. 모든 수치와 비난과 모멸도 잊으신 채 주님은 내가 내쫓은 문밖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나를 기다리고 계셨던 것이다.
그때 주님은 보따리를 푸셨다. 그 안에는 이런 말씀이 적혀 있었다. “내가 너를 십자가만큼 사랑한다.” 그리고 주님은 물으셨다. “너 목사되지 않을래?” 40년 전의 환상이지만 지금도 생생하다. 내가 얼마나 놀랐을지 상상해 보라.
그날 나는 눈물범범이 된 채 이런 일기를 썼다. ‘나를 사랑하시다 못해, 기다리시다 못해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신 주님이 이제 내가 필요하다고 하신다, 지금 이때가 아니면 내가 언제 순종할까?’ 그날 밤 나의 일생를 주님께 헌신했다. 질병은 나의 목회1번지이다. 오늘 내가 나된 것은 바울의 고백처럼 하나님의 은혜다. 출처 하용조 목사가 쓴 <사도행전적 교회를 꿈꾼다> 중에서
캐나다에 처음 이민 와서 만난 분 중, 12년 전 내가 이곳에 콘서트 겸 왔을 때의 조하문을 기억하는 분을 만나 뵌 적이 있다. 그분은 내가 가수였을 때 나를 자신의 차에 태우고 다녔다고 하셨다. 난 그분에게 “집사님, 집사님이 생각하시는 10년 전 조하문은 1997년 9월에 죽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여기에 있는 조하문은 이름만 같을 뿐입니다”라고 말씀 드렸더니 그제야 비로소 얼굴 표정이 풀리셨다. 그분은 아마 옛날의 나를 기억하고 ‘어떻게 그런 사람이 목사가 되었나’라고 생각하신 것 같았다.
세월이 지날수록, 주님을 만난다는 것이 옛사람의 죽음을 분명하게 포함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주님을 만나고 난 나는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기 위해 그동안 알고 있던 분들을 많이 찾아 다녔다. 그 중에는 당시 내가 운영하던 사업장의 직원들도 있었다. 동일하게 용서를 구하는 과정에서 직원들 중에는 내 달라진 모습을 보고 교회에 출석하는 분이 생기기도 했다. 사업과 음악을 가진 채 만난 예수님은 결국 나에게 모든 것을 내려놓게 하셨고 한참 동안 조용히 혼자 있게 하셨다. 그리고 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하게 하셨다. 계속되는 훈련 속에서 주의 도구로 만드신 것이다. 극장 사업 이후 내가 손대고 있던 사업을 그만 둔 것도 망해서가 아니라, 신학을 시작하고 보니 두 가지를 동시에 섬길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난 ’돈’으로부터의 자유함을 얻었고 그로 인해 스스로 폐업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분의 손을 잡고 동행하면 별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지난 9년간 나에게 문제된 것들이 있다면 가끔 그분보다 앞질러 가거나 나의 생각을 그분 생각이라고 우긴 경우다. 이런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분은 내게 평안을 주셨다.
마약치료·재활공동체 ‘소망을 나누는 사람들’을 만든 신용원 목사님은 17년째 마약 중독자 재활을 돕고 계십니다.
3대째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 태어났지만 아버지께서 갑자기 심장마비로 돌아가셔서 가세가 기울게 되자 방황을 했습니다. 전교 1등 하던 그 학생이 삐뚤어 나갔습니다. 그래서 부잣집 아이들 돈을 뺏고 싸움하다가 마약까지 손을 대게 되어서 마약중독자가 되고 폭력사건에 연루되어 수배자가 되어 도망을 다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숨을 곳을 찾던 중 숨어들어간 곳이 오산리 기도원입니다. 이 오산리 기도원에서 살아계신 주님을 만납니다.
41세에 청상과부가 되어서 늘 자기를 위해서 눈물로 기도하신 어머니 기도가 떠올랐습니다. 그때에 그가 기도원에서 하나님께 매달려 통곡하며 부르짖고 기도할 때 성령이 임했습니다.
이와 같이 그는 고백합니다. “하늘을 보며 살려달라고 빌었죠. ‘어머니가 맨날 하나님은 살아 계시다는데, 나에게 그걸 믿게 해주시면 평생 배신하지 않겠다고’요. 그런데 정말 ‘어마어마한 불덩어리’가 몸 안에 쑥 들어오는 거예요. 방언이 뭔지도 모를 때였는데 제가 ‘방언’을 제가 하고 있었어요!
8시간이나 울다가 웃다가 하며 뒹굴었어요. 아침에 나뭇잎이 흔들리는 걸 보는데, 그게 그렇게 아름다운 거예요. 그때부터 거짓말처럼 마약이 끊어지더라고요!” 신학을 공부한 다음 17년 째 자기처럼 마약 때문에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구해내는 귀한 사명을 감당하고 있고, 2005년에는 세계 마약의 날 기념국민근정포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는 이런 고백을 합니다. “‘복음’으로 안되는 게 어디 있습니까? 마약보다 강력한 체험은 ‘성령 체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신 목사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던 중독자및 그 가족 40여명을 모아 마약치료·재활공동체 ‘소망을 나누는 사람들’을 만들었습니다. 재활을 위해 인천시 남동구 모래내 시장에 떡집과 순대공장을 만들었다. 이후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가질 수 있도록 ‘고추장에 빠진 순대’라는 프랜차이즈 회사를 차렸습니다.
신 목사는 프랜차이즈가 성공한다면 언제가는 마약사범을 노동으로 교화시킬 수 있는 전용교도소를 운영할 꿈을 갖고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성령 충만 받고 주님이 주신 희망을 품고 모든 문제와 어려움을 넉넉히 잘 이겨내고 승리하는 위대한 하나님의 일꾼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78년 가수로 데뷔했으나 주목을 받은 건 그의 1집 앨범 ‘내 사람아’ 등을 발표한 85년 이후부터, ‘사랑이 저만치 가네’라는 곡으로 모든 방송 가요 차트를 석권했고 ‘토요일은 밤이 좋아’, ‘당신도 울고 있네요’ 등을 잇달아 히트시키며, 10대가 수상을 받는 등 더 이상 부러울 게 없는 당시 가요계의 최고의 아이콘이 되었다. 한때 TV, 라디오만 틀면 온통 그의 부드럽고 감미로운 목소리가 흘러나올 정도로 무대 위에서 화려한 조명을 받고 승승장구하며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 중반을 주름잡던 그가 1996년 ‘산다는 것은’ 음반 이후 어느 날 그 무대에서 사라졌다.
무대에서 사라진 그는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98년 IMF를 겪으며 사업은 부도가 났고 여러 사람들에게까지 큰 손해를 입혀 결국 구치소에 수감됐다. 화려했던 톱스타의 자리에서 곤두박질친 그는 미움, 분노, 증오에 휩싸여 하루하루를 고통 중에 보냈다. 그러던 중 하루는 교도관 한 명이 왼쪽 오른쪽의 사람을 모으더니 찬송을 부르는 모습을 목격했고,
그가 미션스쿨에서 즐겨 부르던 찬송 '234장 나의 사랑하던 책'이었다. 자연스레 그 모임에 동참하게 되었다. 어릴 적 미션 스쿨을 다니며 불렀던 찬송이 머리에서 맴돌기 시작했습니다.
‘절대 세상의 노래를 부르지 않겠다.’ 모임을 갖던 중 그는 주체할 수 없는 회개의 기도를 드렸고,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결국 그는 그곳에서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는 하나님께 두 가지 서원을 했다. 한 가지는 나머지 인생을 주님의 종으로 살겠다는 것과 또 한 가지는 절대로 세상 노래는 부르지 않고 주님만 찬양하겠다는 하나님을 향한 약속이었다. 수감을 마친 후 그는 7년간 신학을 공부했고, 2009년 10월 한국 독립교단 및 선교단체 협의회 (한독선연 총회장 김상복 목사)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목사 (한국 백석대학 신학과 졸업)가 되었다. 현재 김종찬 목사는 교도소, 보호감호소, 군부대, 탈북자, 병원, 장애인 치매노인시설 등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가서 찬양을 부르며 지내고 있으며, 아시아, 남미, 미주 등 전 세계를 돌며 하나님의 사랑과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가 직접 6곡을 쓰고 가사도 쓴, 4집 찬양음반 ‘생명의 빛’ 등도 발매했고.
그의 가족들도 모두 가장의 뜻을 지지해줬다. 일산에서 찬양집회를 통하여 영광을 돌리고 계시며 일산에 개척하여 하나님 영광을 위하여 열심히 사역하고 계십니다.
목사님의 고백입니다.
"사업 실패하고 구치소에 있을 때 교도관이 성경을 읽어주었습니다. 로마서 10장 17절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그 순간 성령님의 역사로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성경을 통독하고 이제 저는 목사로 살겠습니다. 라고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특별한 은혜로 개입하시고 날마다 함께 하기를 원하십니다.
김종찬 목사님은 가장 힘들때 만났던 예수님을 전하기 위해서 부르시는 곳은 어디든지 달려갈려는 순종의 고백이 우리들에게도 가득해 지기를 축복합니다.